진보정치로 가는 길/대안사회, 대안이론

위기, 그리고 '새로운 진보'의 대안 - 혼합경제체제로 가는 세발자전거: 지역협력, 국가, 혼합형 조직 (프레시안, 이일영 교수, 08-12-24)

새벽길 2008. 12. 26. 12:06
이일영 교수가 말하는 혼합경제체제로 가는 세발자전거라는 것은 사실 진보가 아니라 보수 쪽에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것이고, 실제 이를 고려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제3의 길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더 오른쪽으로 향한 이러한 대안을 '새로운 진보'이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진보'가 민주당이 최근에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딱 들어맞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그걸 염두에 둔 것 같다.
 
-------------------------------------------------
위기, 그리고 '새로운 진보'의 대안 (프레시안,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2008-12-24 오후 12:22:26)
[창비주간논평] 혼합경제체제로 가는 세발자전거
 
시민들은 현실적인 경제위기의 공포에 휩싸여 있으며, 고단한 일상 속에서 기세가 꺾여 있다. 진보개혁세력은 현재의 위기를 "그다음은 무엇?"이라는 물음과 연관시켜 풀어낼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기업부도와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은 파시즘의 토양이 될 수 있으므로, 진보개혁진영은 현실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위기의 원인을 너무 포괄적으로 진단함으로써 위험하고 실현되기 어려운 수술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신뢰를 구하기 어렵다. 흔히 위기의 원인을 금융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금융씨스템으로 거론하곤 하는데, 이런 진단은 처방의 범위를 너무 넓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반(反)금융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가 당면한 위기에 대하여 일반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이번 금융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과 차별화되는 것은 각국 정부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출범했지만, 자신들의 신념과는 달리 금융감독을 강화하고 재정지출을 대폭 확대하는 '큰 정부'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확대된 재정지출은 자신들이 잘 안다고 믿는 분야, 특히 토목건설공사에 집중 투입하여 빠른 경기부양 효과를 취하려 할 것이다.
 
위기에 대응하고 위기를 넘어서고자 할 때, 어느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가?
 
동아시아 지역경제협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국가를 넘어선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과의 스왑도 늘리는 한편, 동아시아 역내에서부터라도 통화와 자본의 단기적 이동을 늦추는 협력체계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고용창출 노력과 교육투자
다음으로, 경제를 활성화하는 새로운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방안이, 재정을 복지분야에 쏟아붓고 이를 계기로 위기 다음에 복지국가의 틀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곧바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 같다. 복지국가가 지속되려면 높은 조세부담과 높은 고용률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급박한 위기상황에서 증세나 완전고용 조건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위기국면에서는 오히려 자본에 감세혜택을 제공하고 대신 고용창출을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고용유지 및 확대를 최고의 정책목표로 놓고 이를 토대로 노동에 대한 소득세 증세나 사회보장세 신설을 통해 복지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복지확대에 앞서 교육투자에 대한 재정을 대대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조세의 부정적 효과를 줄이는 방안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복지지출을 보편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교한 제도설계가 필요한데, 교육투자의 집행에는 상대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덜 소요된다는 장점도 있다. 적어도 초·중·고 단계에서는 공교육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므로, 외국어처럼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부문의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면 교육효과는 물론 고용효과도 함께 거둘 수 있다. 그리고 지방에 국가재정을 투입하여 이공계를 중심으로 한 실업교육―고등교육 체계의 거점을 형성하도록 한다.
 
혼합형 경제조직
산업 차원에서 대안적 성장동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내수확대, 고용창출, 안정성 증진, 격차축소, 사회통합 같은 목표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다.
 
꼭 국가의 보호나 지원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사회써비스 부문도 이제 성장동력의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이를 육성하기 위해 반드시 국가복지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써비스를 국가가 직접 담당할 경우 그 공급비용이 크게 상승한다. 사회써비스는 속성상 그 품질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써비스는 공급조직 내·외부 구성원들 사이의 상호 신뢰도가 높은 혼합형 조직(hybrid organization)이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혼합형 조직은 시장과 기업조직이라는 양극단의 중간에 존재하는 중간형 조직이다. 이는 자원의 공동이용, 계약, 경쟁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네트워크, 공동브랜드, 파트너십, 협동조합, 전략적 동맹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혼합형 경제조직은 격차해소에도 비교적 유용성을 나타낼 수 있으며,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을 구하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생명공학산업 같은 첨단분야 기업들은 연구개발을 위한 다른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혁신능력과 자체 브랜드파워에 취약성을 보이는 중소기업이라든지 정보씨스템과 물류씨스템에서 뒤처진 전통적 도소매업에도 혼합형 조직이 의미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진보개혁세력이 위기를 넘어 도달할 수 있는 곳은, 새롭게 구성된 혼합경제(mixed economy)이다. 여기로 가기 위해서는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를 지역협력, 국가, 혼합형 조직이라는 세 바퀴를 가진 '세발자전거'(tricycle)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