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지역에서 변혁을
'좌석버스'가 그리워 / 저상버스, 버스만 도입한다고 다가 아니다 / 인기 버스노선 5412번은 왜 공중분해되었는가? (이준혁)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준혁 기자의 기사는 서울시의 대중교통 문제에 천작하고 있다. 항상 사람이 북적대던 5412번 버스가 왜 폐지되었는지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다.
8월달에 어머니가 올라오셨다가 다시 광주에 내려가실 때 평소처럼 5412번 버스가 다니는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리면 어머니가 그걸 타고 고속터미널로 가실 줄 알았는데, 내가 학교 정문까지 걸어가도록 5412번 버스가 오지 않아 의아하게 생각했고,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직접 터미널까지 함께 가기로 한 후 버스를 한차례 갈아타는 과정을 거쳐서 터미널에 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5412번 버스가 없어지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이 아쉽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체계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야겠고, 그에 대한 진보적인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예전에는 은하철도 999를 노가바한 '관악교통 289'라는 노래도 있었는데, 세월이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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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까지 1시간 반? '좌석버스'가 그리워 (오마이뉴스, 이준혁 기자, 2008.03.03 16:10)
환승 할인 혜택이 있고, 정류장 수가 최소인 빠른 노선을 기대하며
그가 현재 사는 서울 강서구 등촌동. 강남역에서 등촌동까지 가는 데에는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논현역 혹은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15~20분 정도의 긴 배차간격을 보이는 642번으로 한 번 갈아탄 후, 강서구청사거리에서 내려 10분을 더 걸어가는 형태이다. 이렇게 환승에 도보시간까지 더해 퇴근하는 데는 1시간이 넘는다. 심지어, 노들길과 올림픽대로가 극심하게 막히는 월요일 출근 때에는 1시간 30분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천 계양구 계산동에 사는 그의 직장동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퇴근 시간 중 가장 막히는 시간대라는 금요일 저녁 시간을 제외하면 그보다 훨씬 먼저 집에 도착한다. 인천광역시 면허의 광역버스인 9500번을 타면, 평시에는 40~50분 정도면 계산역 정류장에 닿으며 아무리 막혀도 70~80분이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9500번은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계양구 임학사거리까지의 긴 거리를 무정차로 운행하는 노선이기 때문이다.
A씨는 종종, 2004년 7월에 이뤄진 서울특별시 대중교통개편 이전에 자주 애용하던 좌석버스 760번이 그립다. 좌석버스라 비싸긴 했지만, 좌석버스답게 좌석의 상태가 좋아 짧지 않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에 편히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편 후 760번은 일반 간선버스 642번으로 변경됐으며, 642번 변경 초반에 잠깐 존재하던 좌석버스 차량은 얼마 못 가 대부분 일반버스 차량으로 바뀌었다. 정차횟수와 운행시간이 증가했음은 물론이다.
등촌동보다 인천이 강남역에 더 가깝다?
2008년 2월 28일 현재 서울특별시에 등록된 도시형버스(광역(R)·간선(B)·지선(G)·순환(Y))는 407개 노선에 7748대이다. 이러한 서울특별시 도시형버스 중 광역버스는 총 20개 노선에 411대. 현 광역버스의 노선 수와 차량 수는 서울특별시에 등록된 총 도시형버스의 5% 전후로서 매우 적은 수치이며, 이 적은 수치마저도 시간이 갈수록 간선버스로의 형간전환 및 노선 폐선 등을 통해 광역버스로서의 노선이 점차 사라지며 꾸준히 감소 중이다.
또한, 현재의 광역버스 노선들 중 거의 대부분은 서울지역 내에서의 빠른 이동보다 서울지역과 비서울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빠른 이동에 주 목적이 있는 노선이다. 현 20개 광역노선은 모두 '출발지는 비서울, 회차점은 서울'이라는 형태이며, 서울 내의 정류장은 최소화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특별시에 등록된 노선이면서 서울지역의 정류장은 회차점 단 한 군데뿐인 노선도 존재(9202번, 마석~호평~평내~도농~잠실, 잠실역 정류장 외의 나머지 정류장은 모두 경기도 남양주 내에 위치)하는 실정이다.
물론, 9403·9408·9502·9600·9602·9703·9709·9710번 등 서울특별시 내에서 긴 운행구간을 가진 노선도 있다. 하지만 이들 노선은 서울특별시 내에서, 도시철도운행구간과 동일구간을 운행하거나(9403·9502·9703·9709·9710), 평소의 정체 및 지하철공사 등으로 인한 일시 정체로 인해 속도상 일반시내버스와 큰 차이 없는(9408·9600·9602) 노선이다.
사실상 서울 내에서 '고급버스' 목적 외로 효과적으로 이용가능한 광역버스는 몇 안 된다. 현재 서울 내에서 시내급행 효과를 낼 수 있는 광역버스 운행구간은, 9409번 '강남~여의도'(신사역~63빌딩 무정차), 9702번 '수색역~도심'(수색역~광화문 무정차, 연세대 외 정차 정류장 없음), 9711번 '강남~상암동'(신사역~월드컵경기장 무정차) 정도다. 기타 노선의 경우 서울구간이 이용할 마음이 안 생길 정도로 짧거나, 전 정류장 하차 혹은 정체구간 통과 등으로 느리고 답답하다. 하지만 이 노선마저, 배차간격이 꽤 길거나(평일 평균 20분), 이미 비서울권 승객들로 차 안이 가득 차 서울권 승객은 차에 못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경기도 혹은 인천광역시 면허 광역버스로 이를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인천광역시 면허 노선의 경우, 서울역행 노선(양평동~신촌~서울역, 양방향)과 강남역행 노선(서초역~강남역~양재AT센터, 단방향)은 서울구간에서 광역버스의 이용 수요가 크지 않을 구간이며, 여의도~종로 방향 노선은 중앙버스전용차로로 이 구간을 운행하고 있는 간선 160·260번 등에 비해 운임만 배 이상 비쌀 뿐 뚜렷한 속도의 증가 효과가 없다.
경기도 면허 노선의 경우는 서울특별시 면허 노선과 마찬가지이다. 한강을 기준으로 '강을 건너는 노선'은 분당·용인발 도심 노선, 남양주발 잠실 노선, 고양발 공항·송정 노선 외에는 찾기 힘들며 그마저도 서울 구간은 짧다. 또한, 남부지역발 광역노선의 경우 중앙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하는 일반 노선과 속도상 큰 차이 없는(3030·5601·9301) 노선이며, 북부지역발 광역노선의 경우 단거리운행(수유·청량리·강변 회차), 광역버스시내수요 부족구간 운행(7권역), 정체구간 운행 노선이다. 타 시·도 노선을 활용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 시내에서 장거리이동을 하려면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반버스 및 오르락내리락하는 불편함이 큰 도시철도 외에는, 개인교통이라고 볼 수 있는 택시나 자가용 정도가 남는다. 서울시민 중 일부는 조금 많은 이동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급행버스노선 신설로 빠르고 편한 대중교통이용이 가능한 현실을 원하면서도 이미 운행되는 광역버스를 기피하며, 광역버스는 영업이 어려워진다. 악순환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내구간전용 좌석버스
조금 세월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서울특별시 내에서도, 현재의 '광역버스'와 같은 위계인 옛 '좌석버스'가 지금의 광역버스와 달리 크게 성황을 누릴 때가 있었다. 특히, 현재처럼 '출발지는 비서울, 회차점은 서울' 형태가 아닌 '서울 내에서만 운행' 형태도 많았다. 이 중 '서울 내에서만 운행하는 노선'의 경우 배차간격이 짧고, 노선이 다양하며, 차량 상태도 좋아 상당수 시민들은 도심·강남 등으로 이동할 때 이런 좌석버스 노선을 애용하곤 했다.
하지만 전술한 대로, 현재의 광역버스는 모두 '출발지는 비서울, 회차점은 서울' 형태로써 이용승객 다수는 예상이나 실제나 비서울권 이동자들이다. 더불어 현재 운행되는 광역버스노선의 반수는 서울구간이 짧고, 나머지 반수는 서울구간은 길다 해도 '정체로 인한 느린 속도' 혹은 '동일·유사구간운행 일반버스' 등으로 이용에 주저한다. 이제 '서울 내 구간'을 기준으로, 광역버스 경쟁우위는 '심야운행'과 '매우 피곤할 때 편리한 좌석'뿐이다.
2004년 7월의 서울특별시 대중교통개편 이전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시외 구간을 연결하는 좌석버스 중에서도 서울 시내구간에서도 급행버스 역할을 톡톡히 해낸 노선들과 서울시내구간만을 운행하는 좌석버스가 적지 않았다. 또한, 일반버스 차량의 고급화로 인해 서울시내구간만 운영하던 좌석버스 노선이 꾸준히 폐선되던 추세에도, 서울 시내구간만 운행하던 좌석버스 노선은 서울특별시의 대중교통개편 직전까지도 총 9개 노선이나 있었다.
하지만 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9개의 시내구간만을 운행하는 좌석버스 중, 일부는 폐선되며(구 좌석 64-1번, 129-1번), 일부는 단순형간전환의 과정(구 좌석 30·42·68·760·959·960번 → 현 간선 362·406·601·642·300·960번)을 거치며, 좌석 772번은 큰 폭의 운행구간 변경 후 형간전환하며, 현재는 모든 좌석버스가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서울 시내구간만을 운행하는 고급형·급행형 버스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간선노선으로 단순전환한 노선들의 경우 과거와 거의 동일한 구간을 운행 중이다. 그렇지만, 통합운임제가 적용되며 단거리 승객이 증가하여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운행의 형태' 로 바뀌며 시간 경쟁력을 상실했고, 차량도 좌석형 버스차량에서 점점 일반형 버스 차량으로 대차하며 차량 경쟁력도 상실 중이다. 형간전환과정을 거쳤을 뿐이지, 사실상 '좌석버스노선을 없애고 동일 구간에 일반버스노선을 신설하는 형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출발지는 비서울, 회차점은 서울' 형태의 광역버스 노선의 경우 근본적으로 대다수 노선이 서울 내 수요보다 서울 외 수요를 꾀하는 노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과거의 '빠르고(급행운행), 편하며(고급차량), 편리한(도시철도와 달리 오르내리지 않음)' 이동 욕구의 충족을 위해 좌석버스를 이용하던 서울 내 승객수요는 간선버스와 도시철도보다 자가용 등으로 흩어졌다고 본다. 간선버스가 이를 대체하기는 여러모로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시내급행형 버스노선을 기대해본다
개인적으로 2004년 7월의 서울특별시 대중교통개편 때 가장 기대하던 노선은 (이용기회가 별로 없을 것이 명확했음에도) 간선 150번이었다. 현재는 일반버스처럼 모든 정류장에 정차하는 노선이지만, 당초 150번은 노량진에서 서울역까지 무정차로 운행하기로 한 노선으로, '서울 내에서만 운행하던 좌석노선'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노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150번 구상'은 단 하루도 못 가 바뀐다. 시민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간선 150번의 초기 노선은 얼마 전 멀지 않은 미래에 실제추진을 목표로 여러 언론을 통해 크게 알려진 'Skip 노선' 형태로써, '도봉산~수유역~대학로~서울역~노량진~시흥동~석수역'에 걸쳐 총 74㎞인 엄청난 운행거리를 보유한 노선의 급행형 운행을 추진하여, 장거리 승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노선운영의 효율을 꾀하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홍보에 있었다. 물론, '우리 동네에도 세워달라' 하는 형태의, PIMFY성 민원도 한몫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홍보가 별로 안 됐던 이 노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잘못 승차했던 상당수 승객들의 항의의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무정차 구간인 '노량진~서울역' 구간은 대체노선도 많았다. 그러나 환승제도자체가 서툴렀던 당시 사람들은 이 제도를 맹렬히 비판했다. 결국 좋은 취지의 이 급행형 노선은 사라지게 된다.
현재, 도시철도에 대비했을 때 버스의 강점 중 하나는 도시철도역사가 없는 부분을 훑어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체가 없어 신속한 이동'이 장점인 도시철도망이 이제 서울 곳곳에 뻗어있는 것은 사실이나, 지하로 운행되는 특성상 해당 노선별 선로를 벗어난 직결운행을 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하지만 버스는 이러한 이동의 제약이 적다.
비록, 이미 급행형 간선에 대한 실패 전례가 있었다 할지라도 이는 외적 요인(홍보부족)으로 인한 실패로서, 현 시점에서 다시 급행형 간선 혹은 시내운행 좌석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반버스·도시철도보다 편하고, 택시·자가용보다 저렴하며, 장거리·장시간 이동에 적합한 대중교통수단의 수요는 어디서나 항상 존재한다. 대도시로서 면적이 넓은 서울은 이런 수요가 필연적이며 인구가 많아 시행에 어렵지 않은 여건을 갖는다. 더군다나 곧, 경의선·서울9호선 신설구간 및 서울3호선 연장구간 등의 수도권전철망으로 편입될 도시철도가 개통될 경우, 해당구간을 운행하는 버스 차량은 현 버스준공영제 하에서 쉽게 조정이 가능하다. 다수의 잉여차량의 발생으로 인해 급행형 간선 운행에 따른 차량 확보까지도 어렵지 않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지금이 준비의 적기라는 의미이다.
다만 급행형 간선을 신설할 때, 차량은 일반버스 차량 중 신형 차량을 쓰는 형태로 약간만 업그레이드를 한다 하여도, 운임체계는 현재의 광역버스처럼 환승에 따른 할인·무료 혜택을 일절 못 받는 형태가 아닌, 간선·지선 버스보다 약간 비싼 수준의 기본운임이 적용(예를 들어 '교통카드 기준 성인 1200원' 등)되는 경우가 되어도 환승 시 할인·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노선이 돼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수의 급행형 간선 이용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중교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다수가 이용 가능한 편리한 대중교통체계를 시도해봐야 한다고 본다. 정체 혹은 전 정류장 정차 등으로 느린 버스와 지나치게 많은 승객으로 불편한 도시철도 사이에서, 급행형 간선은 둘의 단점을 보완하는 보완재적 교통수단이 될 것이다. 급행형 간선의 신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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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버스만 도입한다고 다가 아니다 (오마이뉴스, 이준혁 기자, 2008.08.13 22:19)
도입 5년 만에 1000대 돌파한 저상버스... 인식 바뀌고 시설관리 잘 돼야
지난 7월26일 낮, 인천 주안역 부근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시 주안역 환승정류장에는 한 지체장애인이 버스를 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가 타려고 했던 버스는 514-1번. 전국 마을버스 노선 중 저상버스가 운영되고 있는 유일한 노선으로 총 9대 중 5대가 저상버스인, 아주 모범적인 노선이다(인천시 지선(초록)버스는 과거 마을버스를 그대로 이용하는 것으로, 타 시·도 마을버스 요금을 받고 있다).
514-1번 배차간격은 9분으로 배차간격을 이용해 계산해 보면 15분마다 저상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 정도 간격이라면 지체장애인은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저상버스를 탈 수 있다.
1분 걸리는 휠체어 탑승에 왜 5분이나 걸렸나
통상 저상버스 차량에 지체장애인이 탄 휠체어가 오른 후 버스가 출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각은 1분 정도다. 대략 아래와 같은 과정에 1분 정도 소요되는 것이다(이 경우는 가장 모범적인 경우다. 도로 상태, 차량 상태, 기사의 숙련도 등으로 이 시간은 달라질 수 있으나, 아무리 길어도 2분을 넘기진 않는다).
① 앞측 오른쪽바퀴의 공기압을 빼며 차체를 기울인다 ('kneeling', 10초 이내)
② 뒷문(중문)에 있는 슬로프를 보도블럭 쪽으로 내보낸다 (10초 이내)
③ 지체장애인이 탄 휠체어가 오르고 휠체어를 체어락에 고정한다 (40초 이내)
하지만 그날 514-1번 버스는 장애인 한 명을 태우기 위해 무려 5분이나 주안역 환승정류장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주안역 환승정류장 일대는 큰 혼잡을 빚었고 주안역 남광장 일대 교통상황이 마비되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514-1번은 늦게 출발한 것일까? 당시 상황과 원인을 짚어보자.
▲ 현재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곳곳이 깊이 패 있어 비가 오면 웅덩이가 형성된다. 촬영 후 2주가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사진 속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 이준혁
위 사진을 보자.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사진에서 보는 곳에 형성된 3곳(버스 왼쪽에 1곳이 더 있음)을 포함해, 총 4곳에 승강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기다리기가 가장 편한 사진 속 승강장의 경우 사진에서와 같이 정류장 노면 곳곳이 움푹 파여 있다. 더군다나, 그날은 비가 내려 움푹 파여 있는 곳에 빗물이 고여 있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저상버스 차량은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한, 3곳 승강장 중 우측 승강장을 자연스레 기피하게 된다. 저상버스와 일반버스의 차체 높이가 많이 차이나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서처럼 깊은 웅덩이가 형성돼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럴 땐 차체 하단부가 긁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주안역 환승정류장의 경우, 사진에서 지적한 우측 승강장 이외 다른 승강장 노면 상태도 상당히 불량하다. 하지만 '최선이 아니면 차악'이라는 말이 있듯, 버스기사들은 그래도 노면 상태가 덜 불량한 곳을 찾게 된다. 이는 되도록 왼쪽 혹은 중앙 승강장을 찾도록 하는 원인이 된다. 그렇다면 왜, 왼쪽이나 중앙 승강장에 정차할 경우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이 저상버스 차량에 오르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다음 단락에서 그 원인을 파악해 보도록 하자.
문제는 제대로 관리 안 된, 울퉁불퉁 '노면'
▲ 한 지체장애인이 저상버스차량에 오르지 못한 채 밖에서 저상버스차량에 오르는 비장애인을 바라보고 있다. ⓒ 이준혁
위 사진은 514-1번 저상버스가 주안역 환승정류장 중앙 승강장에 정차했을 때 모습이다. 514-1번은 주안역이 회차점으로 주안역에서 모든 승객이 내리고, 내린 승객 만큼의 새로운 승객이 버스에 오른다. 이날 당시 20여명의 승객이 탔고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은 차량에 승객 3명만 더 태우면 되는 상황에 사진 속 위치에 도착하게 된다. 버스기사는 사진 속 위치에서 뒷문(중문)을 열지 않았고, 지체장애인은 기사를 향하여 왜 문을 열지 않느냐고 항의를 했다. 버스기사는 모든 일반 승객이 승차한 뒤 앞문을 통해 나와 지체장애인을 향해 말했다.
"여기서는 도저히 휠체어를 태울 수 없어요. 옆 정류장에 갖다 댈테니 기다리세요."
그 지체장애인은 "왜 내가 저기까지 가서 타야 하냐"며 마구 화를 냈지만 사실 기사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 서두에서 밝힌 저상버스 차량이 휠체어를 태우는 과정이 저 위치에서는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차체를 기울인다 하더라도, 슬로프를 차도 높이까지 갖다 댄 후 휠체어가 오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승차법이다.
'차량을 앞으로 대고 휠체어도 앞으로 오면 되지 않냐'라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승강장의 폭이 너무 좁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가로등이 있어 휠체어가 앞으로 많이 나갈 수 없고 가로등이 없는 경우라 할지라도 휠체어의 길이와 승강장의 폭이 비슷해 휠체어가 승강장에 올라 차내로 좌회전하기는 어렵다. 결국 514-1번의 기사는 전진과 후진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우측 승강장으로 진입했다. 승강장이 끝나는 지점은 보도블록과 택시 승강장으로 인해 무조건 우회전해야 하는 구조로, 승강장 끝부분에서 직진할 수 있는 공간이 얼마 없어 어쩔 수 없이 여러 차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주안역 환승정류장, 4~5분간 정체 시달리다
주안역 환승정류장의 경우 통상 왼쪽 승강장은 비워 놓는다. 노선버스가 아닌 버스 및 잘못 들어온 승용차 등이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사용하는 승강장은 511번 승강장을 제외하면 중앙과 우측 두 곳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중앙 승강장과 우측 승강장을 동시에 가로막은 채 있는 514-1번으로 인해, 주안역 환승정류장은 위 사진 모습에서와 같이, 무려 4~5분에 걸친 오랜 시간동안 극심한 정체에 시달렸다.
상당수 시민들은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직접적으로 꼬집어 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당시의 상당수 타 노선 이용객들은 '왜 저 회사는 저런 차를 들여 도로를 이 지경으로 만드느냐'의 가벼운 불만을 표현했다.
자신을 향해 직설적으로 욕하지는 못하지만, 결국 자신으로 인해 생긴 상황에 대한 불만을 많은 시민들에게 들어야만 했던, 그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 하지만 버스에 탄 뒤로도 문제는 계속됐다. 평상시에는 일반 좌석으로 사용하던 체어락 위의 접이의자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내가 왜 일어나야 해'라며 일어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결국, 뒤의 젊은 승객이 자진해 일어나며 마무리됐고, 휠체어가 고정된 뒤 버스가 출발할 수 있었다.
저상버스 도입 5년 만에 전국 1000대 돌파
절대적인 수치로만 보면 선진국에 비해 저상버스 차량의 비율이 극히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법정대차연한도 안 된 멀쩡한 버스를 조기폐차할 수는 없는 문제' 및 '저상버스 도입 보조금의 마련이 쉽지 않은 문제' 등 여러가지 어려운 사정 등을 감안할 때, 국내 저상버스 차량의 도입은 꽤 적극적이라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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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량의 도입만 적극적이었지 시설의 개선 및 시선의 전환은 아직 제자리 걸음이다. 위에서 언급한 514-1번의 경우, 단돈 600원(성인 교통카드 기준)을 받는 마을버스업체가 저상버스 차량을 출고한, 국내 유일의 사례다. 물론 보조금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대다수 업체처럼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저상버스를 꺼렸다면 저상버스 차량이 다니는 모습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기사의 각종 장비 조작능력 및 교통약자(장애인, 노인, 유아, 임산부 등)에 대한 마인드는 상당히 향상됐다.
그러나 막상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태우려 하니, 열악한 정류장 시설로 인해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자연스레 저상버스 차량과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을 욕하는 것이다. 저상버스 차량에 대한 인지가 아직 낮은 상황에서, 어찌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반응인 것이다.
저상버스 차량의 출고가는 1억6천만원에서 2억 사이(옵션사양에 따라 달라짐)이나 각종 보조금을 합치면 일반버스 차량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저상버스 차량은 일반버스 차량에 비해 섬세한 관리가 필요하고 고장 시에 수리 기간이 오래 걸리는 등의 문제가 많아 통상 해당업체에서 오랜 경력을 가진 베테랑기사가 맡아 운행하는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안역 환승정류장의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떤 베테랑기사라도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상버스, '도입'만 능사는 아니다... 인식 바뀌어야
문제는 대한민국에 이런 상황에 놓인 곳이 주안역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주안역은 구조적 설계와 잘못된 노면관리가 겹친 저상버스 차량에게는 최악의 장소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문제가 있어도 저상버스 차량과 휠체어의 만남은 큰 어려움을 맞이하게 된다. 차량만 도입해서는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당시 다른 버스에 타고 있던 한 시민은, "저 회사 좋은 일 하자고 저런 차 뽑았을 텐데, 오히려 저런 차 때문에 온갖 사람들에게 욕 먹게 생겼네"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따지고 보면 해당 운수업체의 잘못은 없다. 잘못된 것을 찾자면 불량한 시설과 아직 부족한 시민의식이다. 전국적으로 노선버스에 운행되는 저상버스 차량이 1000대라 가정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이 최하 800억원은 쓰였다고 볼 수 있다. 값 비싼 차량을 세금으로 들여온 만큼 더욱 효율적인 활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두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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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버스노선 5412번은 왜 공중분해되었는가? (오마이뉴스, 이준혁 기자, 2008.08.15 19:23)
극렬한 님비, 정책의 오류, 운수 업체의 최후의 선택
2008년 7월 28일 저녁. 서울대학교 정문 버스정류장에서 5412번 시내버스노선을 기다리던 김 아무개씨(서울대학교 재학생, 02학번)는 정류장에서 한 안내문을 보게 된다. 8월 2일부터 기존 5412번 버스노선(시흥2동벽산A~신림동~서울대정문~봉천사거리~사당역~이수교차로~고속터미널~서초동~강남역교보타워)이 폐선된 후 643번(양천공영차고지~개봉역~난곡사거리~봉천사거리~사당역~이수교차로~고속터미널~서초동~강남역교보타워), 5520번(시흥2동벽산A~신림동~서울대정문~봉천사거리), 8541번(기존 5412번, 평일새벽시각 3회 운행)의 세 노선으로 분할된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꽤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서울대에 입학한 2002년 이전부터도 운행되던 전통의289-1번 버스노선(구 5412번 전신 버스노선)부터, 2004년 7월의 서울특별시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후에 노선번호만 변경된 5412번 버스노선에 이르기까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만원버스 아닌 때를 본 적이 없는 인기노선'의 갑작스런 폐선소식이 믿겨지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8월 2일 마침내 5412번 버스노선은 사진속으로만 볼 수 있는 '과거 버스노선'이 되었다. 대신, 매우 급히 만든 듯한 '녹색도색 간선버스' 643번 버스노선과, 5412번 버스노선 시절에 존재하던 차량 중 낡은 차량만 모아놓은 것 같은 5520번 버스노선이 보였다. 시흥2동·신림6동·신림9동 주민들 및 서울대학교 학생 등은 이제, 강남역과 강남고속터미널까지 버스로 단 한 번에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표적 승객과밀 버스노선으로, 오래 전부터 명성(?)이 자자했던 5412번 버스노선이, 왜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일까? 본 기사에서 5412번 버스노선의 폐선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자.
(주 : 이하 본문에서는 '버스노선'이라는 단어를 빼고 번호만 적는다)
5412번, 탑승인원기준 '서울 버스노선 상위 5%노선'
5412번은 정말로 인기가 있던 버스노선일까? 흔히, 자기가 사는 동네가 대중교통이 가장 불편하고, 자신이 이용하는 버스노선의 운행이 가장 불량하고 차량 현황이 가장 열악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법이다.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이제는 사라진 옛 5412번을 살펴보자.
서울 교통카드인 T-money를 운영하는 한국스마트카드(주)에서는 버스노선별 이용객 수 현황을 주간 단위로 집계해 발표한다. 폐선 직전인 지난 7월 21일부터 7월 27일 사이 한 주간의 자료를 살펴보면, 5412번의 이용객 수는 일 평균 26,005명. 서울특별시 면허로 운영중인 시내버스(광역, 간선, 지선, 순환, 맞춤) 중 21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다. 서울특별시 내에 다니는 버스노선이 총 417개이니 '상위 5%'에 해당하는 인기 노선인 것이다. 이는 다른 주의 자료를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순위는 주별로 변화하긴 하지만 25위 밑으로 내려갈 일이 없을 정도로 이용객 수는 많다. 지선버스 중에는 4212번(전체 10위 전후) 및 5531번(전체 15위 전후) 다음의 '부동의 3위'를 형성하고 있는 버스노선인 것이다.
5412번이 289-1번 시절부터 인기있던 이유는, 시흥2동·신림6동·신림9동 지역주민 및 서울대학교 학생, 고시촌 고시생 등이 봉천사거리(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사당역, 강남고속터미널 등으로 가는 데 이용되던 유일한 버스노선이었기 때문이다. 2004년 7월 1일의 서울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후 5517번, 5528번 등이 5412번의 보완 역할을 했으나, 전 구간을 한 번에 잇는 노선은 5412번 뿐이었다. 당연히 인기있을 수 밖에 없는 노선이었다. 출근 시각대에는 시흥2동 벽산아파트 정류장(기점)부터 입석이 생길 정도로 인기있던 노선, 서울대정문 이전 승객들이 서울대입구역·사당역 등에 모두 내려도 사당역에서 다시 새 손님으로 입석상태가 되던 노선, 그런 노선의 폐선에 의문을 갖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폐선원인 1 - 모두가 좋아하는 버스노선신설, 모두가 싫어하는 가스충전시설
2004년 7월 1일의 서울특별시 대중교통체계 개편에 맞춰 서울특별시는, 서울특별시 면허로 운행되는 노선버스의 차량으로서 대차연한(주 : 운수자동차사업법상 법정대차연한은 10년) 초과 등으로 인해 새 차량을 출고할 때에는, 경유를 연료로 쓰는 차량의 출고를 금지하고 CNG(천연가스버스)를 연료로 쓰는 차량을 출고하도록 하는 지침을 시행중이다. 이는, 환경오염이 심한 노후 경유버스차량을 없애고 경유버스차량보다 환경오염이 극히 미미한 CNG차량을 투입해 서울 내 환경오염을 줄이고 향후 국제기후변화협약에 대비하기 위함으로, 환경단체를 비롯 다수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매스컴 등에 의해 엄청난 호평을 받는다. 시민들도 환영했다. 과거보다 맑아진 서울하늘이 눈에 선했고, 객관적인 수치로도 해가 가면 갈 수록 미세먼지농도(PM10)가 줄어, 올 상반기의 경우 ㎥당 55㎍을 기록(주 : 서울 대기상태 관측이 이뤄진 1995년 이래 최저수치)하기도 하였다.
▲ CNG(천연가스버스)에 대한 서울특별시 안내 서울특별시 버스정보안내(bus.seoul.go.kr)에 기재된 CNG 버스에 대한 안내. ⓒ 이준혁
그러나 해가 가면 갈 수록 버스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주유소를 가도 급유가 가능한 경유와 달리 CNG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은 서울 내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택시 등이 충전하는 LPG(액화천연가스)를 충전할 수는 없었다. 이는 마치 220V 전압을 사용하는 세탁기에 고압전선을 연결하는 꼴과 같았다.
CNG 충전시설이 건설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건설예정지 인근 주민들의 집단 반발이었다. '혐오시설 인근 진입으로 인한 집값하락 방지'라는 '지상 최대의 명제'(?)가 실질적 목표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이전에 청주('08년 7월 12일) 및 전주('05년 8월 19일)에 발생한 'CNG 버스차량 폭발'로 인한 위험 우려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CNG 충전시설 건설 예정지 인근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잇따랐고, 충전시설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가거나 공사가 중단되었다.
타 시·도 상황은 그나마 낫다. 서울처럼 'CNG 버스차량 의무출고' 조항은 없기에 업체 여건에 맞춰 경유차량을 출고할 수 있기 때문(주 : 하지만 절대다수의 비서울 버스업체는 경유형 버스차량만 출고)이다. 그렇기에 CNG 버스차량의 운영이 어려우면 경유 버스차량을 출고한다. (주 : 물론 이는, 'CNG 버스차량 비운용', 'CNG 충전시설 수요 저하', 'CNG 충전시설 축소' 등으로 이어지면서, 해당 지역의 환경오염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차고지가 여럿인 서울 버스업체는 그나마 고민이 덜하다. CNG 충전시설이 있는(혹은 가까운) 차고지의 버스노선에 신형 차량을 투입 후, 대차연령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구형 경유차량은 CNG 충전시설이 없는(혹은 먼) 차고지의 버스노선으로 전환하는 식이다. '카드빚 돌려막기' 식의 '경유버스 돌려막기'인 것이다. 서울에 있는 이러한 사례의 업체는 모두 이 과정을 거치며 버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도 오래 못 간다. 법정대차연한이 '10년'이기 때문이다. 단지 '운 좋은 유예기간 존재'였을 뿐이다.
5412번을 운영하던 관악교통이 위치한 관악구에는 CNG 충전시설이 단 한 곳도 없다. 인근 충전시설이라고 해도 남태령(우신운수차고지), 양천공영차고지, 광명공영차고지 등으로 차로 편도 20분이 걸린다. 2005년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관악교통은 신림동차고지에서 화곡동차고지로 이전(주 : 다음 단락에 서술) 하는데, 그 곳도 CNG 충전시설은 꽤 멀었다.
관악교통 또한 타 업체가 시도한 방법을 모두 썼다. 노선을 가리지 않고 법정대차연한이 된 관악교통 버스노선을 대차하게 될 때에, 새로 출고한 차량은 CNG 충전시설이 있는 양천공영차고지 인근을 회차점으로 삼는 5614번에만 투입하고, 5412번을 비롯 타 노선에는 5614번에서 쓰던 구형 차량을 투입하는 방식은 기본이다. 급기야, 5614번의 주 차고지를 회차점 인근의 양천공영차고지로 바꾸며, 노선도 일부 변경한다. (주 : 이로서, 관악·동작 방향 막차는 1시간 빨라졌고, 양천·구로 방향 막차는 1시간 늦춰졌다)
'관악교통의 돌려막기와 버티기'는 대중교통전문가 및 대중교통동호인들이 보아도 '눈물겨울 정도'였다. 2004년 7월 이래 그렇게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텼다. 주 영업지역(신림동)에서 CNG 충전시설이 10km나 떨어진 곳에 위치하면서도 정말 용하게(?) 버틴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최후 수단으로 단행한 것이 지난 8월 2일의 5412번 폐선 및 노선분할이다.
폐선원인 2 - 모두가 좋아하는 버스노선경유, 모두가 싫어하는 버스노선주차
버스노선이 자신들의 집, 가게, 주 활동범위 인근을 지나도록 설정된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한 버스노선이라도 유치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경기도의 2기 신도시 중 한 곳의 경우, 서울 곳곳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의 추가 유치 및 기존 버스노선의 증차를 위해, 주민들이 인터넷상으로 연합하여 일시와 대상(사이트, 전화) 등을 정하고 홍보하여, 지역 내의 버스업체와 지자체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집단 '민원 폭탄' 투척(?)을 시도한 사례도 존재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것이 '버스노선'이 아니라 '버스차고지'로 대상이 바뀌면 사정이 달라진다. 어떻게든 버스차고지의 진입을 막으려고 안간 힘을 쓴다. 사이버민원 및 관공서앞 시위는 기본사항이다. 운수업체에 대한 불매운동, 인허가권자인 지자체장에 대한 근거없는 루머확산 등까지도 이어진다. 시위의 성격 또한 과격해진다. 경기도의 한 시에서는 공영차고지의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 과정에서 2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참변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 옛 관악교통 차고지 94번, 289-1번 등 신림동 일대 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던 노선들이 차고지로 사용하던 곳. 그러나 현재, 94번과 289-1번을 계승한 노선들은, 다른 곳을 차고지로 삼고 있거나 노선이 공중분해된 상태이다. ⓒ 이준혁
5412번의 운영업체인 관악교통 또한 마찬가지였다. 과거 94번(현 5614번) 및 289-1번(폐선 전 5412번) 등의 차고지로서 오랫동안 사용되던 관악교통의 신림2동 차고지는 '자가'가 아닌 '임차'로, 고시 열풍과 함께 신림동고시촌의 확대로 유동인구가 늘자, 2005년에 지주가 건물건설을 위해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관악교통과의 임차계약 연장을 거부하는 일이 생긴다. 결국 관악교통은 '역사와 전통의' 신림2동차고지에서 쫓겨나게 된다.
관악교통은 '업체명대로' 최대한 관악구에서 더 버텨보고자 관내의 차고지 부지를 알아보지만 '당연히'(?) 실패하고야 만다. 그 후 시흥동 벽산타운 건설 후 연장된 시흥2동 일대에서도 차고지 부지를 찾았다. 경인교육대학교 경기캠퍼스로 연장을 조건으로 학교 인근에서도 차고지 부지를 물색했다. 배차간격이 불량해질 것을 각오하고, 안양 석수동 지역마저도 고려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이해당사자들의 반대가 매우 극심했다. 결국, 관악교통이 선택한 곳은, 엉뚱하게도 서울특별시 소유 공영주차장이 있는 강서구 화곡2동이었다.
그 후 1년이 지난 2006년에 양천구 신정3동에 양천공영차고지가 완공된다. 화곡동을 비롯 곳곳을 떠돌던 관악교통 차량은 모두 이 곳으로 들어왔고, 회차점이 공교롭게도 양천공영차고지 인근인 5614번은 얼마 후 (전 단락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선을 양천공영차고지로 변경한다. 회차점과 차고지가 정반대로 바뀌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자연스레 회차점과 차고지의 막차 운행시간도 맞바뀐다. 차고지 유무에 따른 얄궂은 운명의 교체였다.
관악교통은 5412번 등의 버스에 대해 매일매일 왕복 25km에 달하는 공차회송을 계속했다. 그 날 운행의 시작 전에 양천공영차고지에서 시흥2동으로 차량을 이동 후, 그 날 운행의 종료 후에 시흥2동에서 양천공영차고지로 차량을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서울시에서 연료비 및 추가수당을 관악교통 측에 보조한다지만 모든 것이 낭비였다. 서울특별시도 이를 인지하고 꾸준히 대책을 세워보았지만 도저히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첩첩산중이었다.
회차점 인근 일부 극렬주민들의 반대도 한몫 했다. 5412번의 노선 연장(주 : 과거 미림여고 앞이 회차점이었음) 후 회차점에서 노상정차, 식사, 휴식 등이 이뤄지자 시에 민원이 계속됐다. 폐선 후 찾아간 회차점 지역에서 접한 한 지역주민(익명 요구)은 '버스가 약 10대 넘게 정차되기도 했는데, 장기정차에 민감하던 일부 사람들이 버스를 발로 차거나 심지어 유리창을 깨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버스노선의 존재는 좋지만 버스주정차는 꺼리는 한국인의 대중교통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인 것이다.
최후의 선택, 5412번 폐선
서울특별시 도시교통본부 노선계획팀에서 5·6권역 버스노선을 담당하는 김치훈 공무원은 이번 5412번 폐선에 대해 '정말 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써 봤다' 라고 답했다. 5412번의 폐선을 막고 노선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하여, 일반 주민들을 만나고, 지주를 만나고, 그린벨트 내에 차고지 건설을 시도해보기도 하는 등 무려 1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지만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5412번의 주 구간 중 하나인 '시흥2동벽산A~신림동(미림여고, 신림동고시촌, 서울대정문)~봉천사거리' 구간을 버릴 수도 없었다. '시흥2동벽산A~미림여고~신림동고시촌' 구간은 152번 및 5517번이 함께 운행했지만 신림동고시촌 이후로 방향이 전혀 달랐고, '신림동고시촌~서울대정문~봉천사거리' 구간은 5528번이 함께 운행하지만 5528번만으로는 '운행안전에 위협이 생길 정도로' 만차가 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5412번(총 40대)은, 양천공영차고지를 출발해 봉천사거리(서울대입구역)까지 간 후 그 뒤로 옛 5412번 노선의 '사당역~이수교~고속터미널~서초동~강남역' 구간을 운행하는 643번(총 23대), 옛 5412번의 '시흥2동벽산A~신림동~서울대정문~봉천사거리' 구간을 운행하는 5520번(관악교통 14대, 풍양운수 3대), 옛 5412번 노선 그대로 평일 새벽에 3회 운행하는 맞춤버스 8541번(총 3대)으로 분할되며 폐선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와 관악교통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비록 분할되긴 했지만 '시흥2동벽산A~봉천사거라' 구간과 '봉천사거리~강남역' 구간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인 것이다. 이로써, 전 차량은 아닐 지라도 23대(643번)의 차량이 공차회송을 통한 낭비와 불편에서 벗어났고, 26대(8541번 3대 포함)의 기사들도 노상에서 식사·휴식하던 과거와 달리 더욱 양호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CNG 버스차량 교체도 더욱 수월해지게 됐다.
물론 5412번 폐선에 따른 과정에는 반론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반론은 '꼭 CNG 차량만 출고하도록 한 서울특별시 지침이 과연 현실에 맞는 지침인가' 하는 것이다. 이 주장은 '현재 서울특별시 내에 CNG 충전소가 미비된 상황'이라는 데에서 시작된다. 비록, 속속 공영차고지가 건설되고 있고 일부 운수업체의 자체차고지에 CNG충전시설이 건설중이지만, 어디서나 급유가 가능한 경유와는 연료공급의 조건이 판이한 상황에서, 현재의 정책은 지나치게 앞서나간 지침이라는 것이 해당 반론의 핵심이다.
그 외에도 일부에서는, '어차피 CNG 버스차량 도입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은 경기도 업체에서 출고한 경유버스가 서울에 경유매연 뿜어내는 상황에서 서울시 버스만 너무 고운 척 하는 것 아니냐'는 힐난도 있고, '왕복 25km가 무슨 대수냐. 다수의 시민들이 잘 타고 다니던 버스를 함부로 없애는 것은 독재정권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계속 운행해야 한다'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떤 의견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현실은 폐선이었다.
새로 생긴 643번, 양천공영차고지로 인한 신정3동의 대중교통이용환경 변화
5412번의 폐선 및 분할로 인해, 신정3동·개봉동·구로1동 주민들은 졸지에 신림역으로 20분 이내에 닿는, 급행 수준의 노선을 하나 더 맞게 되었다. 기존에도 남부순환로를 관통하던 651번이 있었지만, '5~12분'이라는 무난한 배차간격이지만 평일은 물론 일요일 아침 시각에도 입석 승객을 보며 버스를 타야 했기에, 643번 신설은 가뭄의 단비같은 소식이다.
보름이 지난 현재 643번의 신설구간인 '양천공영차고지~개봉역~난곡사거리~봉천사거리' 구간은 매우 순항중이다. 아직 홍보기간인 신설노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요일 아침에도 난곡사거리부터 좌석을 채우는 현 상황은, 분명 긍정적이다. 이제는, 과거의 5412번으로 되돌리고 싶어도, 새 구간 주민들 민원때문에라도 되돌리기 힘들 수준에 온 것이다.
2006년의 양천공영차고지 개장 이후, 신정3동 서부지역은 대중교통 이용에 있어 많은 것이 변했다. 기존에 운행되던 버스노선은 단 10개[651번, 652번, 5012번, 5614번, 6514번, 6614번, 6623번, 양천3번(마을버스), 구로1번(마을버스), 700번(경기 직행좌석버스)] 뿐이었다. 그나마도, 2004년 7월 1일의 대중교통체계 개편 이전에는, 6개(94번, 303번, 388번, 460번, 양천03번, 구로01번)의 노선만 있었다. 전형적인 시계(市界)지역이던 것이다.
하지만, 2008년 8월 현재 이 일대에서 운행되는 노선 수는, 총 19개[602번, 643번, 6613번, 6620번, 6627번, 6640번, 6657번, 6714번, 6716번 추가]로 크게 증가했다. 양천공영차고지가 생기며, 많은 노선들이 양천공영차고지와 연계해 노선을 바꾼 것이다. 643번은 현재까지의 가장 마지막 노선 변경 사례인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은 언제 깨질지 모른다)
타 지역에서 꾸준히 버스공영차고지 운영과 관련해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할 정도로 모범적 공영차고지 건립·운영 사례인 양천공영차고지. 처음에는 양천공영차고지 역시 인근 주민들과의 갈등이 전혀 없지 않았다. 하지만, 관의 꾸준한 설득과 지역주민의 전향적 변화를 통해 현재는 '대중교통 사각지역'에서 '대중교통 중심지역' 중 하나로 급격히 변화한다.
누구나 자기 집 앞에, 자기 땅 앞에 자신의 자산가치가 오르도록 할 시설만을 들여놓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배척하려고 한다. 5412번 폐선은 그러한 이기심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 지 보여주는 미미한 사례이다. 하지만 이번의 사례는 대중교통시설의 건립에 있어 가야 할 미래이기도 하다. '보복성 노선 폐선'을 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운행할 환경을 만들어 줘야' 대중교통의 운영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8541번의 신설 이유>
5412번 폐선 및 세 노선으로의 분할 과정에서 생긴 '출퇴근 맞춤버스'인 8541번. 옛 5412번 노선 그대로 평일 하루 3회 운행하는 이 노선의 차량의 경우 새벽에 3회만 8541번으로 운행할 뿐 평소에는 5412번의 예비차로서 차고지인 양천공영차고지에서 주박하게 된다.
김치훈 공무원에 따르면, 8541번은 시에서 운영하는 BMS(Bus Management System)를 통한 운행정보와 기사들의 적극적 건의에 의해 생긴, 맞춤형 노선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의 첫차 운행이 05시 30분 이후인 상황에서, 서초구 및 강남구 지역의 대형 빌딩에 새벽에 청소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금천구·관악구 일대 이용객들은, 서울지하철보다 1시간 빠른 5412번으로 출근을 했던 상황이었다. 이들에게 5412번은 생계를 위한 대중교통수단이었고, 오랫동안 5412번을 운행하던 기사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노선 폐선을 추진하던 중 기사들에 의해 이런 사실이 서울특별시에 알려지게 되었고, 서울특별시는 BMS를 통해 얻은 이용패턴분석을 통해 이를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대체 버스노선이 없는' 새벽 시간에 이용하는 서민층을 위해 '평일 하루 3회'에 한해 맞춤형 노선인 8541번의 신설이 확정된 것이다. 기사들의 적극적 건의와 첨단 버스관리시스템이 서민들의 '단 하나의 이동수단'을 살린 사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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