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지난 10월 12일에 있었던 북부 지역운동 토론회의 첫번째 토론, '서울 북부 지역운동의 평가와 과제'에서 진보신당 성북 집행위원장인 박경원 동지가 발표한 글입니다. 지역운동과 진보정당의 관계를 나름대로 풀어놓고 있습니다. 물론 조금은 구체적이지 못한 느낌입니다. 박경원 동지가 쓴 '새로운 지역운동의 방향'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고요.
북부 지역운동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사회진보연대와 연관이 있는 듯한 활동가들입니다. 사회진보연대가 지역활동을 고민해온 단체 중의 하나이고, 그 구체적인 할동지역이 서울북부지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토론회가 마련된 듯 합니다. 이러한 토론회가 다른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면 좋겠지만, 서울은 이랜드공대위에 결합했던 서대문, 마포, 은평 지역을 제외하고는 별로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북부 지역운동 토론회에 관심이 생겼구요.
새로운 지역운동의 방향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지역운동은 우경화된 지역 NGO 운동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변혁의 기초가 될 급진적인 지역운동이다. 노동자가 활동의 주체라는 계급적 성격을 분명히 하고, 주민들을 삶을 씨줄과 날줄로 이어주는 공동체주의 지향을 갖으며,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만들어 내는 문화/생태주의가 우리가 나가야할 방향이다.
지금까지 지역운동 또는 주민운동 속에서 노동자는 한 번도 주체가 된 적 없다. 87년 이후 지역노동조합협의회가 있었지만, 지역을 노동조합운동의 일부로서 사고했을 뿐만 아니라 이마저도 기업별노조가 안착되고 전노협이 해체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운동은 지역을 매개로 노동자운동과 급진적인 지역사회운동, 정치운동이 짬뽕되는 지역사회운동이다. 특히 산별노조가 갈피를 잡고 못하고 지역의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들의 증가와 사회공공영역이 해체되는 바로 지금, 지역은 또 하나의 투쟁 공간이 될 수 있다. 지역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넘쳐나는 해방의 공간이 될지 착취와 억압의 공간이 될지는 향후 몇 년 동안의 지역운동의 성패에 달려 있다.
지역주민운동단체들은 유연한 신자유주의 지배시기를 거치면서 운동단체로서의 활동보다는 사회복지전달체계의 말단기관 역할 밖에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 주민조직형 사업보다는 주민대변형 사업이 대부분이며, 관의 지원 없이는 고정비용조차 조달하고 있지 못한 단체들이 수두룩하다. 사회의 변화시키려는 담대한 포부와 의지도 없고, 독립적인 활동을 지속할 만한 자생력도 없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지역운동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율적인 운동이다. 우리 운동은 자본과 권력에 대한 적대를 기본으로 하되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주민들을 각종 기관과 단체로 조직하고, 기관과 단체들의 소통체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를 형성하도록 조력하는 것이 새로운 지역운동의 나갈 방향이다. 그 과정에서 특히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운동이 생활협동조합이다. 현재 생협 운동을 더 적색으로, 더 공동체주의적으로 만드는 것도 향후 우리 운동의 중요한 임무다.
노동자들이 지역에서 새롭게 투쟁하고, 생활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1차 목표라면, 또 대안 사회 운동으로 지역운동을 재구성하는 것은 두 번째 과제다. ‘노동을 거부하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못 하더라도 노동중독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지역에서 기획하고 전파해야 한다. 타인과 우리 후손의 삶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자신이 가진 가치를 최대한 발현 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문화운동과 생태주의운동의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본주의사회의 수동적인 소비자가 될 것인지, 또 다른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능동적인 생산자이자 대안 사회의 주체가 될 것인지는 문화운동의 몫이다. 또 현 자본주의체제의 문제는 발전과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가능성 그 자체다. 생태주의적인 접근을 통해 지역운동을 평가하고 반성함으로써 지역운동의 급진성과 반자본주의성을 회복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자들을 지역으로 이끌어 내고 지역의 사회운동과 정당운동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의 임무는 그러한 과정이 원활하게 때로는 급속하게 이뤄질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이다. 또한 별개의 부문으로 사고하던 노동-문화-생태 운동을 결합하면서 지역 공동체운동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 운동의 또 다른 목표가 되어야 한다.
------------------------------------ 진보정당의 활동과 지역운동과의 관계 박경원
민주노동당 1997년 겨울 총파업 투쟁의 성과를 기반으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건설됐던 국민승리21은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불과 1.4% 득표라는 초라한 성과를 냈다. 정치연대는 국민승리21의 우경화를 비판하면서 탈퇴했고,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의 과제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다행히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의 위기를 진보정당으로 돌파하자’라는 전략을 채택하고 적극적으로 진보정당 운동에 개입하면서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이 창당될 수 있었다.
87년 이후 한국 좌파들은 매 선거 국면에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법정 최저 득표율을 넘지 못해 모두 해산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민주노동당도 2000년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을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해 선관위에 재등록해야만 했다. 하지만 과거의 진보정당들처럼 법적 해산이 곧 민주노동당의 해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제한적이지만 노동조합운동을 기반으로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도까지 민주노동당은 중앙 의회에 의석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한 비제도권 정당이었지만, 민주노동당이 존재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과제는 현실에서 구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노동당의 일차적인 성과는 진보정당운동을 추상수준에서 구체로 상승시켰다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어떻게 정치세력화를 할 것이냐가 문제가 되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정치세력화를 완성시키느냐가 중심 문제가 됐다. 중앙당 차원에서는 당 강령 정신을 어떻게 구체적화 시킬 것인가가, 지역 조직에서는 당원들의 자발성과 의식성에 기반 한 창의적인 지역조직을 어떻게 만들고 운영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특히 진보정당의 전국적인 지역 조직 결성과 운영은 민중운동진영이 한 번도 시행해본 적이 없는 미지의 가능성의 영역이었다.
당 조직의 근간이 지역이냐 현장이냐, 조직체계가 2단계냐 3단계냐, 분회의 역할을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논의들이 이어졌다. 그 결과 중앙당-광역시도당-지구당(지역위원회)-분회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당원들은 거주지 중심으로 편제하는 것으로 조직 형태가 결정된다. 지역조직들은 수도권지역과 산업지역 중심으로 건설되기 시작해 2005년경에는 전국의 거의 모든 시군구에 지역조직을 갖추게 된다. 지역 조직의 건설은 양적인 규모만 따져보더라도 한국 진보운동의 대단한 발전이다.
개별분산적인 사회/노동/농민/빈민 운동이 정당 운동 조직을 기반으로 중앙과 지역에서 공동투쟁을 만들어 낸다면 정당운동과 사회운동이 동반 발전할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89년 지방자치제도가 재시행된 몇 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좌파는 지방 정치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지역운동을 재활성화시키고, 지방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 만들어졌다. 이권과 탐욕의 아수라장인 지방 정치를 사회 변혁과 투쟁의 장으로 만들 시간이 온 것이다.
지역 차원에서 본 지난 진보정당 운동의 한계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지역 운동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좌파 정치는 그 가능성을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 지난 10년의 진보정당 운동은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듯 지역운동이 가지고 있는 미래에 가능성을 현실의 안주하는 대가로 지불하고 말았다. 한때 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지구당, 지역위원회)는 대안적인 참여 정치의 창구이자 진보 정치의 모범 사례로 높이 평가됐다. 하지만 2006년 경부터 지역 조직은 진보정당의 황금알을 낳은 거위에서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2008년 현재 진보정당과 민주노동당은 지역 조직에 대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폐지를 당론으로 삼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지역조직 활동을 제한하고 있는 정당법에 따라 지역 조직을 폐지해야 한다는 과도한 합법주의, 지역 운동이나 지역 조직은 선거 때만 활용하면 된다는 선거주의, 지역에서 아무리 박아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는 우리 역량이 부족하다는 패배주의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보다도 더 근본적인 원인이 몇 가지 있다.
1) 이념과 지향의 모호함
민주노당의 강령 정신은 “국가사회주의와 사민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이념과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당명과 강령을 놓은 시비가 끊이지 않았고, 2005년경부터는 강령은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한 공문구가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2002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에서 다수의 당선자를 내면서 당 활동의 중심은 급격하게 의회로 옮겨졌다. 생산과 생활의 현장 정치에서 의회정치로, 당원 직접 행동의 정치에서 에서 대의-대의정치로, 지역 정치에서 중앙 정치로 변화됐다. 그에 따라 당 활동의 일차적인 목표가 각종 선거에서 후보를 최대한 출마시켜 당선자를 내는 것이 됐다.
하지만 울산 등 몇 개의 지방정부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만한 정치권력을 쟁취했음에도 대안적인 지방정치 이념과 지향, 사회 모델을 만들어 내지 못함으로써 이후 지방 정치를 단순한 선거운동 준비와 선거 과정으로 협소화시키고 말았다.
선거 중심의 당 활동은 득표와 당선을 중심에 두고 모든 당 활동을 재배치한다. 선거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거 운동의 주체, 즉 출마자다. 상품성 있는 후보를 발굴하고, 최대의 득표를 얻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 중심의 사업보다는 보다 개개인의 상품성과 개인기에 의존하는 당 활동 방식이 용인된다. 지향과 가치가 불분명한 당, 의회의주가 만연한 당, 권력이 수단이기보다는 목적이 된 당에서 사회 운동적 정당보다는 선거 중심 정당, 인물 중심 정당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정당은 ‘권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기본적인 가정 하에 정치권력 획득을 1차적인 목표로 하는 운동조직이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진보정당은 권력을 획득한다 한들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는 무능력과 새로운 세상을 기획하고 구성할 비판적 상상력의 극심한 빈곤을 보여줬을 뿐이다.
2) 갈피를 잡지 못하는 지역위원회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2004년까지 당원은 완만하게 늘다가 2004년 총선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당원이 증가한다. 하지만 중앙은 물론이고, 지역에서도 늘어난 당원들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창당시기부터 분회활동을 주구장창 얘기했지만, 사실 모범적인 분회 활동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분회 활동이 한 달에 한번 모여서 술 먹는 자리정도였다. 이도 점점 마니아층만 참여하는 폐쇄적인 사교모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면 몇 번의 연속적인 선거로 인해 당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선거 비용 모으는 것과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재정의됐다. 평상시에는 술이나 먹다가 선거 때가 되면 돈빵, 몸빵하는 것이 마치 진보정당 당원의 덕목처럼 여겨졌다. 선거를 중심으로 당 활동을 이끌어 가려고하는 간부 당원들과 복잡하고 피곤한 일상적인 정치 활동 참여보다는 돈만 잘 내고 선거 운동 열심히 해서 좋은 국회의원이나 시장을 만들어 놓으면 좋은 세상은 ‘의원님’들이 알아서 만들어 주겠지 하는 당원들의 대리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조직의 가장 일차적인 임무는 당원 관리와 동원이 아니라 당원의 교육하고 다가올 세상의 근간이 될 당원들 간의 인적-생활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강령이라는 것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당원들도 알고 있었다. 사문화된 강령을 굳이 읽어볼 필요성을 못 느낄 뿐만 아니라, 누구하나 강령 읽기를 제안하는 사람도 없었다. 학습도 마찬가지였다. 당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지 못했고, 학습을 통해 활동의 구체성과 실천적 의지를 심어주는데 실패했다. 그 결과는 조직적인 응집력을 갖춘 조직을 만들지 못했고, 지역 조직을 대안 사회의 진지로 만드는데 실패했다.
지난 진보정당이 운동이 실패한 이유 중 하나를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선거중심 정당 활동은 당원들을 동원 대상으로 비주체화/탈정치화시킨다. 하지만 그 동원의 기제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역에서 중심당원 그룹의 선거중심적인 경향과 평당원들의 편의주의적인 발상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3) 잘하면 지역판 참여연대, 못하면 지역판 좌파 자민련
지역운동에서 정당운동의 차별성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보다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얻어 놓고 마치 자기 밥상인 것처럼 어깨에 힘주고 있는 꼴이다. 지역 활동 잘 한다는 지역조직은 여러 밥상에 숟가락 걸쳐 놓은 곳이다. 못한다고 평가받는 데는 숟가락조차 올려놓지 못한 곳이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볼 때는 차려진 밥상에 주인 행세하는 것도 꼴불견인데, 때 되면 선거한다고 돈 달라, 사람 내놔라 투정까지 하니 정말 밉상이었을 것이다.
진보정당의 특유의 지역운동 전략과 모델을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지역 조직이 가동될 수 있었던 것은 각종 선전과 서명 사업, 상당을 중심으로 하는 민생사업, 그리고 1~2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이 정말 당 운동과 지역운동에 발전에 기여했는지에 대해서는 반성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모든 사업은 선거로 가기 위한 우회로였을 뿐이다.
또 지역 조직은 각종 이슈를 여론화하기 위한 사업도 하는데, 그런 것들 대부분이 주민들의 일시적인 관심을 얻기 위한 사업들이었다. 해서 진보정당의 지역 정치를 기자회견 정치, 보도자료 정치, 현수막 정치라고 자조하기도 한다.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장기간 책임 있는 활동을 하고 주민들에게 평가받기보다는 숟가락 걸치기, 남의 사업에 묻어가기, 허풍 떨기 등으로 일관하는 지역 정치 행태는 주둥아리 좌파라는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많은 시간과 역량이 필요로 하는 지역 조직 사업에 진보정당 지역조직은 의도적인 무시나 기권으로 일관했다.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주거권, 빈곤, 비정규직 문제가 지역 활동의 중심의제가 되지 못했다. 지역에서 공동체나 공동체의 맹아를 건설하는 일 역시 미진했다.
4) 정치인들의 정당
민주노동당 내 좌파는 사회 운동적 정당운동 노선에 동의하고, 당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의회주의 노선이 강화되고, 좌파 헤게모니가 붕괴되면서 실패했다. 좌파 블록의 좌절은 분당으로 이어졌다. 반면 의회주의-선거주의 노선은 현재까지도 비민주노동당 정당 좌파들에게서도 만연되어 있다. 이들에게 지역 운동은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중간 단계정도의 의미밖에 없다. 운동이 여럿이 함께 세상을 바꾸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정치지향적인 진보정당 정치인들은 그 반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몇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출마자 군이 형성되고 그들 중 일부는 전업 정치인으로 나섰다. 이들은 지역조직에서 지도적인 권위를 행사하며 당권 경쟁의 중심에 섰다. 특히 좌-우 정파의 패권주의적인 행태로 인해 몇몇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배타적인 과두 체제를 형성하고 지역조직을 이끌었다. 그 결과는 당원 직접 민주주의의 훼손이었다. 지역 조직은 열린 조직을 지향하기 보다는 폐쇄적인 조직으로 운영되면서, 당원들은 서서히 당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5) 당내에서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들
지난 진보정당 운동은 민주주의의 교육장이라기보다는 비민주성을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었다. 좌-우를 막론하고 패권 유지를 위한 부정 선거는 만연했다. 사회의 위계와 억압은 진보정당으로 그대로 옮겨왔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패거리 구성의 원리인 나이와 학벌은 진보정당 안에서 그 위력을 그대로 발휘했다.
페미니즘 정치는 실종되고 형식적인 할당제만 남았다. 하지만 당 운동의 문화와 활동 방식의 전반적인 변화 없는 할당제는 여성들을 또 다시 남성 중심 정치의 들러리로 세우는 장치로 전락했다. 선거 때마다 여성들은 남성들 공직/당직 출마자를 위해 머릿수를 채워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당내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할 만한 소수자 운동에 대한 태도 역시 불분명했다. 특히 지역에서 소수자운동은 언제나 골칫거리였다. 어떻게 만날지도 모르겠고, 막상 만나다고 해서 별다른 가시적인 이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당의 틀로 묶어 둘 필요를 못 느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소수자들은 당 밖의 사람들이다.
지역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운동의 주체는 사회서비스부문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과 제도적/문화적 차별에 억압에 맞서 싸우는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하지만 비민주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이고 봉건적인 당 구조에서 여성과 소수자들의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지방정치운동과 지역운동의 지향
1) 이념과 노선이 분명한 지역 정치 운동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노동자가 생산수단과 생산과정 그리고 생산물에 대해서 주권을 회복하고, 인간이 최소한 누려야할 교육, 의료, 주거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사라지고,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를 뭐라고 부르던 간에 그것이 우리의 이념이 되어야 하고, 우리 운동의 노선임은 분명하다.
코뮤니즘이 됐던, 사회주의가 됐던, 생태주의가 됐던, 평화주의가 됐던지 간에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이 필요하다. 큰 틀에서 지역운동의 방향을 마련했다면, 더 세부적인 정책도 필요하다. 지역 정치운동은 주택, 보건, 교육, 환경 재생산에 필요한 집합적 소비수단들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사회화를 위한 지역 차원의 단기 과제와 중장기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각 부문별로 개별적인 계획이 아닌 통합적인 대안사회발전전략도 만들어야 한다.
진보정당 운동의 지역조직의 임무는 이러한 우리의 이념과 전략, 정책에 따라 개별적이고, 체제 내적인 지역 운동들을 분절 결합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사회 운동으로 재조직하는 것이다.
2) 수평적 연대의 매개체로서 당
흔히 당 조직을 관료제적인 피라미드 모형으로 설명한다. 맨 아래 당원이 있고, 맨 위에는 중앙위원회와 대표가 존재하는 형태다. 지도부에게는 의사결정의 권한이 집중되고, 당원들에게는 결정 사항에 대한 실천의 의무가 주어진다. 이러한 역할배분모형은 지역단체와 당 지역조직이 관계 맺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주로 사업의 기획과 구성은 당이 맡고, 지역 단체들은 마지못해 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행되는 사업은 당내외를 막론하고 참여자들의 자발성과 역동성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우선 당내 사업을 이렇게 진행하면 당원들은 수동적인 개체로서만 자신을 규정하고, 당 사업에 참여하기를 꺼린다. 가득이나 역량이 부족한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인적 자원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정당조직이 그 당원들을 추동해 내지 못한다면, 주민 참여/조직적인 지역운동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당과 지역당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당 밖의 단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고전적인 당 모델을 통한 접근은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각종 선거와 지방 정치 사업은 당이 전담하거나 기획하여 지역 단체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었는데,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는 단체는 별로 없었다.
따라서 앞으로 지역운동에서 당의 역할은 머리의 역할이 아니라 심장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운동의 피와 산소가 되는 인력과 재정을 지역 사회와 공유 방법으로 활동 방식을 바꿔야 할 것이다. 당의 정신은 일방적인 지도에 아니라 소통과 나눔을 통해서 지역 전 분야로 퍼 질수 있다. 당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넘어 당원들이 각각의 지역운동 속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당원들이 지역운동에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당 강령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고, 지지를 얻어낸다면 당 중심의 지역 연대 질서를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당은 늘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운동의 중심이 아닌 연대의 매개체로서 자신의 임무를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3) 새로운 사회의 맹아로서 당
지역운동에서 당은 그 자체로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역 당을 하나의 조직체로서만 사고했다. 또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정치권력 획득을 통해야만 한다는 단계론적이고 단선적인 전략만을 고집해 왔다. 하지만 지난 진보정당운동에 비춰 보면 전략의 수정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을 ‘과정으로서 지역 정당 운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만드는 지역조직은 해방을 지향하는 작은 공동체로서 그 구성원들을 이론적으로 각성시키고, 실천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당이기에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선거를 치르기 위한 조직이 아니라 공동체가 수행해야하는 여러 가지 일 중 하나를 선거로 여겨야 한다.
정치권력이 없더라도 지역을 바꾸기 위한 수 없이 많은 일들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연속적이고 지속적인 일련의 운동들은 지역 사회를 바꾸고, 지역 정치를 재구성 할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지역 운동이 침체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현재 운동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적당한 역할 모델과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당 운동이 이러한 운동을 개발하고 일정 정도의 성과만 거둔다면 지역 사회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으면서 정당 운동과 지역운동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동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