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사회, 문화예술, 일상

'베토벤 바이러스'의 두루미도 예술노동자

새벽길 2008. 10. 4. 14:11
2부만 잠깐 보았지만, 처음부터 히트예감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곡인데다가, 노다메 칸타빌레의 성공에서도 보이듯이 클래식 드라마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명민이 강마에로 나온다니 타 방송의 바람 시리즈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베토벤 바이러스를 접하면서 느꼈던 감정 중에는 저들 연주자들도 노동자인데 하는 생각도 있었다. 상반기에 공공부문 구조조정 대응에 관한 용역을 하면서 우리 생각과는 달리 문화예술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서울시의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해체기도와 관련하여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보든지 해야지 하면서도 허전한 구석이 있었다. 이를 레디앙의 기사가 보완해주었다. 기사에 나오는 공공노조 세종문화회관지부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노동자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수많은 예술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즐기면서 그 또한 노동의 산물임을 잊지 않을 필요가 있다. 드라마 한편 보면서 별 소리를 다 하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알아둘 것은 알아두어야 한다. 참, 웬 두루미 할지도 모르는데, 두루미는 이지아가 연기를 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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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도 예술노동자예요” (레디앙,  2008년 10월 03일 (금) 10:25:15 윤춘호 현장기자)
[인터뷰-김은정] '베토벤 바이러스'와 서울시 오케스트라   
 
  ▲김은정씨.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열기가 뜨겁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평상시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을 소재로 한 것부터 탤런트 김명민의 신들린 듯한 연기까지 많은 사람이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공공노조 세종문화회관지부 김은정 지부장도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 중 한사람이다. 아니 보통 사람보다 훨씬 관심있게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있다. 김은정 지부장은 3년 전까지 서울시 오케스트라에서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다르지만, 고마운 '베토벤 바이러스'
“고맙죠. 이렇게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준 드라마가 거의 처음이잖아요. 하지만 오디션 문제나 이런 건 현실하고 다른 건 사실이죠.”
 
김은정 지부장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16년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2005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에 세종문화회관 소속의 국공립예술단체가 법인화됐어요. 법인화라는게 민영화랑 거의 같은 의미인데 그러면서 ‘서울시립오케스트라'도 재단법인이 된거지요.”
 
법적으로는 기존단체가 없어지고 새로운 단체가 만들어진 셈이다. 단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직장이 없어진거고 서울시향 입장에서 기존 단원들을 데려다 쓸 의무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곤 오디션을 보고 새로운 단원을 뽑았다.
 
“다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은 단원들은 오디션을 또 봐야 했어요. 단원들 중 저를 포함해서 3명이 오디션을 거부했다고 해고가 됐죠” 지난한 복직 투쟁 끝에 가까스로 복직은 됐지만 그가 일할 오케스트라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사람 자르기 위한 오디션 제도
그리고 법인화된 서울시향 오케스트라는 1년에 한번씩 오디션을 보고 단원들을 자르고 새 단원으로 충원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당연히 최고의 실력이 있어야 하고 그런 실력을 검증하는 오디션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외국의 경우는 한번 입단하면 종신 고용이예요. 평가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해고를 전제로 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드라마에서 김명민도 얘기하지만 오케스트라는 앙상블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 안 하고 나만 오디션 붙어야겠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오케스트라 고유의 색깔을 낼 수가 없거든요.”
 
베를린 필, 뉴욕 필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고 한다. 그건 종신단원들이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1년에 한번씩 오디션을 보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서울시향 특유의 오케스트라 색깔을 내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오디션 제도가 얼마나 웃기냐면 시에서 오케스트라 30% 구조조정 해라. 이렇게 내려와요. 그러면 거기에 맞춰 오디션으로 연주자를 자르는 거예요” 실력 향상과 기량 연마를 위한 오디션 제도가 아니라 사람자르기 위한 오디션 제도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나는 예술 노동자
그렇다면 현저히 실력이 떨어지는 단원들도 끌고 가야 한다는 얘긴가?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단원들은 없어요. 처음 들어올 때 일정 정도 수준을 갖췄고요. 그리고 설사 실력이 모자란고 하면 따로 연수를 받게 하거나 훈련 과정을 갖게 해야죠.”
 
김은정 지부장은 자신을 ‘예술 노동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 노동자 집회에 나갔을 때 사람들의 다른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고 했다. 클래식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무슨 노동자냐 하는 시각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우리도 일한 댓가를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노동자예요. 그런데 처음 집회를 나갔을 때는 같은 노동자들도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하는 느낌이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우리도 똑같은 노동자예요. 해고돼서 잘리는 것도 똑같고 월급 박하게 받는 것도 똑같아요. 먹고 사는 거 걱정하는 것도 똑같구요.”
 
그리곤 노동조합 집회 때 투쟁가요만 부르는 가수들 사이에서 언제부터인가 김은정 지부장이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김은정 지부장이 연대하는 방식이다.
 
바이올린 연주로 연대
“저도 처음엔 공연은 공연장에서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곳.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에서 하는 연주도 필요하다고 느낀 거죠” 그래서 나무로 만든 전통 바이얼린을 두고 전자 바이얼린을 구입했다.
 
“나무로된 바이얼린으로 야외에서 연주를 자주하면 악기가 망가져요. 그래서 전자바이얼린을 구한 거죠.” 지난 촛불 집회때는 서울 시청 앞에서 수만명의 군중 앞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김은정씨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
 

“시민들에게 제가 연주를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위안과 기쁨을 주었다면 전 행복해요. 그리고 언제라도 그런 자리가 있다면 또 연주를 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클래식하면 아직도 사람들은 낯설다, 지루하다, 서민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머리띠를 두르거나, 촛불을 든 사람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은 어렸을 때부터 접근해야 돼요.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초중고로 찾아가야 한다’, ‘가서 직접 클래식을 들려줘야 한다’고 세종문화회관에다 요구했어요.”
 
처음 학교에서 오페라공연을 하면 다 잔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접촉을 하게 되면 집중하는 애들이 생기고 클래식의 참맛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을 시민들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예술하는 사람들의 노조가 필요한 이유
“그래서 예술하는 사람들의 노동조합이 필요한 거예요. 법인화된 예술단체가 효율, 상업성으로 따지게 되니까 찾아가는 음악회나 공연 관람료 인하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주장했죠. 문화 기본권은 먹고 사는 문제랑 똑 같은 거다.
 
돈이 있건 없건 누구나 차별없이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거죠. 최근에 충무아트홀이 ‘윈드앙상블’을 만든지 2년 됐는데 이걸 수익성이 없다고 해체하려 한다고 해요. 이러면 안되는 거죠.”
 
김은정 지부장은 문화는 공공재라고 했다. 예술의 공공성을 망각하고 예술단체를 단순히 수익성으로 내 몰아서는 문화 자체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김은정 지부장이 마지막에 당부했다 "두루미도 예술노동자예요. 방송보시는 분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이다.
 
아직도 평생 세종문화회관을 단 한번도 찾아가지 못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고 오페라와 뮤지컬, 오케스트라 공연을 본 사람보다 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게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이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편한 공간에서 보다 아름다운 공연을 보다 쉽게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게 바로 예술하는 사람들이 만든 노동조합의 목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