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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금융위기에 직면한 국가의 딜레마 (김성구 교수)

새벽길 2008. 9. 23. 18:42
미국발 금융위기의 분석에 있어서 김성구 교수는 다른 이들과 확연히 구분된다. 그는 미디어오늘의 이정환 기자와의 인터뷰와 참세상의 논설을 통해 이번 사태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훌륭한 분석도구임을 보여주었다고 이야기한다. 국독자론, SMC론, 얼마만에 들어보는 말이냐.
 
하긴 세계 금융위기를 분석하는 여러 글들을 살펴봐도 - 물론 장문의 논문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고,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기사나 코멘트를 통한 것이다 - 명확하게 그 상이 잡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김성구 교수의 글을 읽으니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현재의 신자유주의 금융위기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 3차 조절위기의 마지막 단계라고 한 것에 대해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렇게 명쾌한 것이 또한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말의 불안도 있다. 
 
김성구 교수의 인터뷰 기사가 평소 김성구 교수의 글쓰기 스타일로 봤을 때 나름대로 이해하기 쉬운 것은 이정환 기자의 질의가 요령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성구 교수는 인터뷰에서 사회공공성 투쟁을 강조하는데, 이는 사회공공성 투쟁과 사회화를 대립시키던 과거의 입장에서 약간 변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또한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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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기자는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잘 해주고 있다. 시장지상주의자들의 태도가 어떠한지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장주의자들의 어설픈 타협… 시장에 원칙이 없다 (미디어오늘, 2008년 10월 06일 (월) 08:48:01 이정환 기자)
[경제뉴스 톺아보기] "정부 개입 최소화" 주장하던 이들이 "경제 살리자"며 정부 개입 촉구 
 
최근 미래에셋 증권에서 나온 보고서에 흥미로운 비유가 있다.
 
"의사(미국 정부)가 수술(7천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막 하려는 찰나 환자 보호자(미국 국민)가 뛰어들어 수술비 협상을 벌인다. 의사는 응급 상황이라고 외치지만 보호자는 의사의 일방적 결정에 화가 단단히 나 있다. 환자(미국 경제와 금융시장)가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은 의사도 보호자도 잘 알지만 번번이 멋대로 수술을 결정해 온 의사에게 뿔이 난 보호자는 이번만큼은 참지 않겠다는 태세다. 그 사이 환자의 혈압은 불안정하고 환자 가족들 역시 불안에 떨고 있다. 구제금융 법안이 퇴짜를 맞은 이후 대형 금융기관의 부도 리스크를 반영하는 CDS는 재상승하고,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반영하는 VIX 지수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벌어지고 있는 장면으로만 보자면 최악이다. 하지만 수술 이외에 현재로선 대안이 없어 보인다. 최악이지만 최선일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선택이다."
 
짚고 넘어갈 부분은 과연 미국 국민들이 이 환자의 보호자인가 하는 사실이다. 또한 지금 수술하려는 환자가 미국 경제와 금융시장인가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좀 더 정확한 비유를 하자면 수술대에 누운 환자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시스템이고 미국 국민들은 보호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신세를 많이 졌다는 이유로 수술비를 내기 위해 불려 나왔다.
 
애초에 죽어가는 환자에 비유할 때부터 생명은 고귀한 것이고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어서 논점이 흐트러진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금융 시스템은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라 도려내야할 질병의 핵심 원인일 수도 있다. 미국 경제라는 두루뭉술한 카테고리로 엮고 있지만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최근 금융위기 국면에서 이른바 시장주의자들은 그들의 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툭하면 도덕적 해이를 부르짖고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고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시장의 실패를 지켜보면서 정작 침묵하고 어설픈 타협을 요청한다. 그리고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어처구니없게도 국민들에게 그 부담을 떠넘긴다.
 
미국 정부는 부실 자산을 인수하는 방법으로 금융 불안의 확산을 차단한다는 계획인데 짚고 넘어갈 부분은 세계적으로 금융 불안이 확산되고 달러화 부족 현상이 계속되면서 채권 금리가 형편없이 떨어지고 미국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싼 값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기축 통화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정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바다 건너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춰야 한다거나 외환 유동성을 풀어야 한다거나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등의 온갖 반시장적 주장이 넘쳐나고 있다. 이른바 비용의 외부화다. 이런 주장에는 아무런 원칙도 없다. 위기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이들은 우리 경제의 극단적인 양극화나 비정규직의 확산, 가계 부채의 확산 등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중소기업들을 휘청거리게 만든 키코만 해도 마찬가지다. 원칙대로라면 키코로 손실을 본 기업들은 문을 닫아도 할 수 없다. 키코를 판매한 상당수 금융회사들이 기업들에게 그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거나 일부 은행들의 경우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강매를 한 정황도 발견되지만 투자의 최종 책임은 결국 투자자가 져야 하고 이를 최종 결제한 경영진은 최악의 경우 배임 혐의로 주주들에게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손실을 본 기업들 대부분이 중소기업들이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이 단순히 환율 방어 차원을 넘어 시세차익을 노리고 투기적 목적에서 키코를 사들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새삼스럽게 금융회사들의 도덕성을 문제 삼거나 정부가 이들 중소기업들을 구제해줘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뜬금없다.
 
잘 몰라서, 또는 은행에서 정확히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손실을 봤다는 변명이 먹혀들 수 있을까. 키코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들은 파생상품 같은 건 잘 모르는 순진한 중소기업이에요"라는 등의 우스꽝스러운 동정심이 넘쳐난다. 상당수 언론이 "손실"이라고 쓰지 않고 "피해"라고 쓰는 것도 이런 동정심의 무의식적인 발로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지난 1일 키코로 손실을 본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한국은행과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을 통해 8조3천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은행의 총액한도 대출 규모를 확대해 자금상환 압박을 덜어주고 신보와 기보 등을 동원, 신규 대출이나 출자 전환, 분할 상환, 만기 연장 등을 해주기로 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때 키코를 판매한 은행들을 "S기꾼"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중소기업들이 연쇄 도산할 조짐을 보이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도덕적 해이를 방조해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원칙조차 포기한 셈이다. 결국 국민들 세금으로 중소기업들의 투자 손실을 보전해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언론은 이에 대해 비판을 꺼렸다.
 
미국 금융위기와 우리 정부의 대응은 시장에 충격을 줄 만큼 부실 덩어리가 커지면 정부가 나서서 뒷감당을 해야 한다는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금융 불안이 계속되고 있지만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이 돼서는 곤란하다. 언론의 호들갑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