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이길저길-샛길(펌글)

2019년 3월 7일 거제 조선소 노동자들은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새벽길 2024. 5. 4. 01:43

실 대우조선의 오늘이 궁금했다. 과연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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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7일 거제 조선소 노동자들은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경남도민일보, 주찬우 기자, 2024.04.29 17:18)
현대중, 대우조선 인수 추진에
구조조정·지역경제 파탄 우려
노동자·시민 매각반대 '인간띠'
헐값 논란 속 한화오션 출범
위기마다 구원투수는 노동자
허리띠 졸라메고 회사 지켜내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 경칩도 지났지만 바람 끝 아직 매섭고 동백이 통꽃으로 툭툭 떨어지는 2019년 거제는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았다. 3월 7일 오후 5시가 넘어서자 퇴근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다. 공정이 밀린 부서는 늦게까지 잔업을 하기에 업무 종료 시각이 제각각이므로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야외 작업장에서 독과 안벽 선박에서 일손을 놓고 한꺼번에 퇴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리로 나선 노동자들 = 노동자들은 샤워실이나 사내 식당도 들르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가까운 회사 출입문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루 노동을 끝내고 지친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어야 할 통근버스는 텅텅 빈 채 줄지어 나갔다. 조선소 밖에서는 출입문 근처 버스 정류장마다 여느 때와 달리 일반 시민들이 많이 내렸다. 파업 현장에서 울리던 억센 노랫말과 강한 리듬의 투쟁가 대신 차분하거나 경쾌한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노동조합에서 나눠준 촛불을 든 5000여 명 시민과 노동자들이 긴 띠를 이루어 옥포동 오션플라자에서 아주동을 지나 두모동에 이르는 약 6㎞, 시오리 담장을 등지고 조선소를 에워싼 사람 울타리가 세워졌다.
이들은 정부와 산업은행이 밀어붙인 재벌 특혜와 동종사 졸속 매각을 규탄하고 철회하라는 목소리를 높였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는 거제 그 자체였다. 양대 조선소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군산 유령도시나 '말뫼의 눈물'은 비할 바가 아니라 아예 거제가 증발해버릴 판이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시민들과 노동자들은 조선소를 지키는 것이 거제 경제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이날을 한마음 촛불띠 잇기 항쟁이라 하고 '외식하는 날'로 잡았다. 참가자들은 행사를 마친 후 집으로 가지 않고 가족들이나 동료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식당마다 대우조선 매각을 반대한다는 스티커를 붙였다.
◇매각 시장에 나온 대우조선 = 대우조선해양은 1973년 대한조선공사에서 첫 삽을 뜬 뒤로 대우그룹이 인수하여 1981년 완공되었다. 한때는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선박 수주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했으나 외환위기 소용돌이에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다른 대우 계열사와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이후 구조 조정으로 인원 감축과 임금을 동결, 삭감하고 법인 분할과 출자전환을 하는 등 자구책으로 2년 만에 가장 빨리 워크아웃에서 벗어난다. 유가가 높게 형성되면서 조선업 호황이 계속되자 이명박 정부는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을 통해 매각을 추진한다. 살집 통통한 먹잇감을 놓고 동종사인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포스코, GS, 한화, 두산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침을 흘리는 가운데 최종적으로 한화그룹이 우선 협상자 자격을 따낸다. 100% 고용승계를 약속하며 야심 차게 진행했으나 6조 원대 인수 가격에 대한 내부 반발과 미국발 금융위기로 자금 마련이 여의치 못해 포기한다. 다시금 찾아온 조선업 불황은 10여 년 세금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쓰고 주인 없는 회사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2018년 정부가 국내 조선업을 빅2 체제로 재편하는 계획으로 대우조선을 매각 도마에 올려놓고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의사를 물어본다. 삼성중공업이 외형을 키우는 것보다 회사가 잘하는 LNG선과 해양 생산과 시추 설비에 역량을 집중해 내실을 다진다는 이유로 인수전에 불참하자 현대중공업그룹이 최종 인수 후보자가 되어 본 계약까지 진행한다.
◇결국 막아낸 매각과 한화오션 = 그러나 동종 기업으로 매각하는데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 첫째로 양사 노동조합은 구조 조정으로 말미암은 고용 불안을 들었다. 동종업이기에 중복되는 사업 통폐합으로 대규모 정리 해고 칼바람이 불 것이라 확신했다. 다음으로, 부동의 세계 1위 조선그룹과 한때 수주 왕좌를 차지했던 대우조선이 합병하여 초매머드급 조선그룹이 된다면 세계 조선 시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보는 선주 소비자들이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것이었다. 동종사 매각에 대한 노동자와 시민의 비난과 반발도 거세게 일어났다. 노동계는 재벌 동종사 특혜 매각으로 그에 따른 고용 불안을 가장 큰 반대 이유로 들었다. 동종업계이므로 연구개발, 설계, 영업, 재무 분야 등에서 통합 운영으로 구조 조정을 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대우조선 노조는 조선 산업 구조 조정은 한국 조선업의 시장 경쟁력을 회복한다는 명분이지만 실상은 현대중공업 재벌을 위해 노동자 희생만을 강요하고 지역의 존립을 위협하는 행위라며 구조 조정을 동반할 것이 뻔한 동종사 매각을 즉각 철회하고 당사자 참여를 전제로 매각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빅2 체제가 아닌 매머드급 빅1 체계로 조선 생태계에 시너지 효과가 없기에 전문가들조차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에 의아해한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이 기자재를 대부분 자회사에서 충당하는 것에 반해 대우조선해양은 거제 및 경남, 부산 등의 중소 업체들을 중심으로 기자재를 납품받고 있어 대우조선의 현대중공업으로 매각은 곧 남해안 조선산업 벨트를 파괴하고 중소 조선기자재 납품 업체 도산으로 대량 실업 사태를 유발할 것임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대우조선 인수가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노동조건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장기적으로 국내 조선산업 기반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밀실 야합으로 대우조선 매각을 추진한 정부를 압박하고 노동자 희생을 담보로 착취한 모든 이익을 세습하려는 현대중공업 자본을 규탄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거제와 경남 시민 단체도 대우조선해양 동종사 매각 반대 지역경제살리기 범시민 대책위를 구성하고 반대에 나섰다. 대책위는 대우조선 매각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수많은 실업을 양산하고 대우조선을 현대중공업의 하청공장으로 전락시켜 지역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위기감만으로도 우리가 살아야 할 이곳을 이미 공포로 몰아넣었다며 허울뿐인 독립경영과 기자재산업 현상 유지라는 저들의 속임수가 지켜지리라고 믿을 순진한 시민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노조와 함께 조선소 정문에서 천막 농성으로 현대중공업의 실사단 진입을 막아냈다. 기술 탈취가 목적이라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3년 동안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던 현대중공업은 인수 자금을 충당하고자 중간지주회사까지 만들었으나 노동자와 시민의 강경한 반대와 예상했던 대로 기업결합심사에서 EU가 LNG선 시장 독점을 이유로 불허해 대우조선해양을 차지하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이 물러난 후 다시 도전한 한화그룹이 헐값 특혜 매각이라는 비난을 안고 최종 승자가 되어 20여 년 만에 사명을 바꾸게 되었다.
◇든든한 조선소 울타리 = 그 지난한 여정 속에서 막대한 공적 자금 투입으로 세간의 눈총을 받는 천덕꾸러기를 위기 때마다 수렁에서 끌어올린 것은 노동자였다. 경영 부실과 비리로 얼룩진 당시 경영진과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산업은행은 오히려 위기를 불러온 주범이었다. 처음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워크아웃에 들어갈 때 정리 해고와 함께 임금 동결과 노동시간 연장으로 흑자를 내어 대우 11개 계열사 중 가장 빨리 2년 만에 워크아웃 수렁에서 회사를 탈출시켰다. 이때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부탁하면서 빵을 키워 함께 배불리 나눠 먹을 수 있게 지금 배고픔을 참아달라고 했다. 그렇게 키운 빵이 크게 부풀어 먹을 만해지자 산업은행이 매각 시장에 내놓았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빵은 다시 쪼그라들고 회사의 무리한 저가 수주에 노동자들은 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뼈를 깎아 살려냈나 했더니 이번에는 경영진 비리가 터져 수렁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2015년 수주 절벽으로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와중에 터진 분식회계 사태로 혹독한 구조 조정에 임금 동결과 삭감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한때 최고였던 조선소 노동자 임금이 제조업 부문 최저로 떨어졌다. 덩달아 골목 강아지도 만 원짜릴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를 듣던 거제도 경기도 반쪽이 되었다. 삼성을 든든히 뒷받침하던 삼성조선소 노동자들이 자조 섞인 농으로 조선소를 삼성 후자(後子)라 부른다. 조선소 노동자들 싼 임금으로 삼성전자 뒤나 봐준다는 비아냥이다. 그래도 지키고 버텨낸 위대한 사람들이다.
노동자들만이 조선소 울타리가 되어 지켜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힘을 낼 수 있었던 동력원인 가족과 하루 노동의 고단함을 풀어 주던 식당도 울타리였다. 근골격계 질환으로 뒤틀어진 허리에 침을 놓는 한의원 원장님도, 조선소 퇴직자 2막 인생 설계를 돕는 상담원도 울타리였다. 조선소 울타리가 된 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