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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우파 지도자로 떴다가 축출된 ‘청년 이준석’이 남긴 것 (한겨레, 2022.7.18)

새벽길 2022. 8. 1. 01:31

준석이 다시 등장할까? 암튼 13개월간의 이준석 대표체제는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51273.html
대안 우파 지도자로 떴다가 축출된 ‘청년 이준석’이 남긴 것 (한겨레, 이재훈 기자, 2022-07-17 18:09)
전문가들이 보는 ‘이준석 대표 13개월’ 평가
이, 윤리위 중징계 재심 청구 안해
경찰 수사 결과에 정치 재개 여부 달려
성상납 증거인멸 교사 의혹으로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이준석 대표가 징계 이후 10일째인 17일까지 재심 청구나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무혐의 처분을 하면 이 대표는 내년 1월 당 대표에 복귀해 남은 5개월 임기를 마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기면 이 대표는 정치적으로 회생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6월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보수정당 대표’가 됐던 이 대표는 지난 13개월 동안 한국 정치에 무엇을 남겼을까.
‘탄핵의 강 넘어선 대안 우파 지도자로 등장했다가 극우 포퓰리즘만 남기고 축출된 기형적 정치 엘리트.’
이준석 대표의 지난 13개월은 이 문장으로 집약된다. 이 대표는 당 대표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6월3일 대구에서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며 태극기 부대와 결별을 선언했다. 그보다 나흘 전인 5월30일 광주에서는 “저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은 단 한 번도 광주사태였던 적이 없고, 폭도였던 적이 없다”고 말하며 “군부 쿠데타 세력을 모태로 하는 국민의힘의 유산 상속을 거부”(이진순 와글 이사장)했다.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이 대표를 기점으로 ‘전통 극우’와 ‘대안 우파’의 분화가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냉전 이데올로기, 극우 기독교, 정경유착, 지역 구도 등에 기대고 있는 극우와 선을 긋는 새로운 우파의 등장”이었다는 것이다. “중장년 남성들이 장악해 온 한국 정치의 얼굴을 청년 남성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청년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중장년 남성의 고정관념을 바꾸고 실제 청년 남성들이 국민의힘에 적극적으로 가입하는 등 참여를 확대시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계파에서 독립된 정치, 유권자들에게 쉬운 말로 다가가는 정치를 했다.
박혜민 뉴웨이즈 대표는 “계파 정치에 빠지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고 꾸준히 그 말을 지켜왔다”며 “특히 이 대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함께 정치 고관여자가 아닌 유권자들이 보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잘 들리고 와닿는 말을 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과의 대결에서 젊은층 일부가 이 대표에게 호응한 것도 그 사람들이 익명 인터뷰로 ‘공작’ 정치를 한다는 이 대표의 비판에 일리가 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라며 “커튼 뒤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성 정치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수 정치의 지형이 확대되면서 청년 정치가 상징하는 의미도 달라졌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2010년대의 청년은 실업, 비정규직, 노동 인권, 주거 빈곤, 부채, 구조적인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분노 등을 상징하는 개념이었는데 이준석의 등장과 더불어 청년은 여성혐오나 중국혐오, 능력주의,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도 결부될 수 있는 기호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가 지니는 의미가 달라지면서 이 대표를 향한 ‘대안 우파’로서의 기대도 차츰 무너져갔다. 대표적인 장면이 지난 6일 열린 윤석열 정부 첫 고위 당정협의회다. 복합 경제 위기로 인해 시민들이 ‘3고’(고물가·고유가·고금리)에 고통받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거론하며 “일반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평소 역설했던 청년·여성·호남 할당제 폐지나 ‘이대남’의 정서를 자극하는 반여성주의 행보 등과 더불어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소수자 혐오에 편승하는 정치를 이어간 것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현실의 불만족을 해결해야 한다고 하면서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희생양 삼고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나머지 다수에게 어필하는 데서 해법을 찾는 전형적인 극우 포퓰리즘의 논리”라고 말했다. 김만권 경희대 교수(정치철학)는 한발 더 나아가 이 대표가 “한국에 21세기형 우파 포퓰리즘을 부상하게 만든 최초의 정치인”이라며 “이준석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혐오를 통한 동원의 논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정치꾼에 가깝다”고 평했다. 그는 “이준석은 그의 저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어떻게 부상했는지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며 “언론이 새로운 정치라고 이름 붙였던 것의 실체가 사실은 미국형 극우 포퓰리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혐오와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갈라치기였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국민의힘의 한 중진 의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 대표의 정치 행태를 보면 20대 초반에 있었던 미국에서의 모습이 기억에 아주 강인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이 대표가 미국에 있을 무렵 민주당과 공화당이 ‘어퍼머티브 액션’(차별 철폐를 위한 적극적인 우대 정책)을 두고 되게 시끄러웠다. 이 대표의 관련 글을 보면 미국 보수 정치인들의 그때 그 연설문들을 많이 참고한다. 한국에서 보수가 (탄핵으로) 궤멸되고 한동안 사라졌을 때, 그걸 대안 삼아 정치 지형을 확보하려 한 것 같다.”
이런 행태는 당 대변인 토론 배틀 선발대회인 ‘나는 국대다’와 공직 후보자 기초자격 평가(PPAT)에서도 나타났다. 상대를 토론으로 억눌러 이기는 능력과 시험 점수로 공직자 자격을 매기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권수현 대표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치는 하나의 답만을 갖고 있지 않다. 다양한 의견과 이견을 민주적 절차에 따라 조율하고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 정치인의 능력이고 자질”이라며 “이미 답이 정해진 시험을 통해서는 그러한 역량을 측정할 수 없고, 다른 의견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사람만 합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폐쇄적인 정당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정치가 어떤 정치철학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이기기 위한 ‘설정’만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희정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급락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을 두고 ‘20일만 주면 대통령 지지율 끌어올린다’와 같은 말을 하는데, 이건 정치가 실천이 아니라 쇼라는 말”이라며 “철학 없이 설정만 있는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의 정치’가 이준석의 정치이고, 그건 정확히 탈정치화와 반지성주의에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대안 우파’로 등장했다가 극우 포퓰리즘과 ‘밈의 정치’를 남기고 중징계로 일보 후퇴한 이준석의 13개월은 후과를 남겼다.
신진욱 교수는 “세대 교체를 통해 정치가 개선되는 게 아니라 개악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준석은 시대 변화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양대 정당 간의 선거 게임 승패가 정치의 지배적 의미가 된 현실의 부산물”이라며 “그의 갈라치기 정치 행태는 자신의 지지 기반을 이끌어 갈 정치 이념과 비전, 전략이 부재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결국 박근혜 키드로 출발해 정치 예능 방송을 통해 성장한 기형적 정치 엘리트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순 이사장도 “이준석은 시류를 읽고 그에 맞춰 자신을 정치적으로 브랜딩하는 데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지만, 보수를 혁신할만한 가치와 철학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며 “그가 한 차별과 혐오의 갈라치기 정치가 앞으로 다양한 변이를 거치며 활개 칠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 역시 이준석 대표가 남긴 과제를 안게 됐다. 신진욱 교수는 “이준석 정도의 정치적 기술과 자기 지지층을 가진 정치인조차 두 번의 선거를 승리한 뒤에 제거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청년 정치인들은 얼마나 쉽게 이용되고 버려질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이준석처럼 자기 철학과 고유한 정책으로 승부하지 않고 자기 시장을 찾아가는 걸로 접근하는 정치는 한계가 있다”며 “이준석을 보고 정치에 입문한 젊은 정치인들이 이준석보다는 나은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