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쉬어가며 보는 영화

나의 해방일지, 추앙, 환대, 박해영

새벽길 2022. 6. 6. 15:02

나의 해방일지
휴먼, 가족, 로맨스, 오피스, 코미디, 느와르, JTBC 16부작 토일 드라마
방송 기간: 2022년 4월 9일 ~ 2022년 5월 29일

연출: 김석윤
극본: 박해영
출연: 이민기, 김지원, 손석구, 이엘
견딜 수 없이 촌스런 삼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소생기.

[기획의도] 살면서 마음이 정말로 편하고 좋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항상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하루를 알차게 살아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몸은 움직여주지 않고, 상황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지리한 나날들의 반복. 딱히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문제가 없다는 말도 못 한다.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
해방. 해갈. 희열.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있던가?
‘아, 좋다. 이게 인생이지.’라고 진심으로 말했던 적이 있던가?
긴 인생을 살면서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살다가는 게 인생일 리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혹시 아무것도 계획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 보면 어떨까?
혹시 아무나 사랑해보면 어떨까?
관계에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기에 이렇게 무기력한 것 아닐까?
시골과 다를 바 없는 경기도의 끝,
한 구석에 살고 있는, 평범에서도 조금 뒤처져 있는 삼남매는 어느 날 답답함의 한계에 다다라 길을 찾아나서기로 한다.
각자의 삶에서 해방하기로!

 
지난 6월 3일과 4일에 걸쳐 이틀동안 <나의 해방일지> 16화를 한꺼번에 몰아봤다. 충분히 추앙받을 만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다만, 추앙이란 단어가 뜬금없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박해영 작가의 <나의 아저씨>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고 하던데, 난 불호 쪽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볼 생각이다. 박해영 작가의 <또 오해영>은 아주 좋아하는 드라마 중의 하나다. 여기에 나오는 OST도 좋고, 특히 오해영 역으로 나오는 서현진을 좋아해서다. 
<나의 해방일지>가 엄청난 걸작이라고 보진 않는다. 그냥 그저 그런 수준.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 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한번쯤은 봐줄만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15화에서 구자경(손석구)는 "왜 너는 끝까지 예의 없었으면서 나는 너한테 끝까지 예의 지켜야 되는데..왜!"라고 얘기하고 이는 명대사 가운데 하나로 얘기된다. 하지만 드라마를 제대로 본 사람이라면 이를 명대사로 뽑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염미정(김지원)은 자신에게 해를 가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스스로 초라해지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환대하고 용서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구자경 또한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돈가방을 들고 달아나버린 도박중독자인 현진이형에게 "형, 환대할게"라고 음성 메시지를 남긴다. 구자경도 변한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가 주는 메시지는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질문하게 하는 것 아닐까.
또한 염미정이 말한 “5초, 7초의 설렘을 모아서 하루 5분 정도의 숨통이 트이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듯하다. 내가 어찌보면 쓸데없이 <나의 해방일지>에 대한 소감을 쓰는 것도 그런 숨통이 트이도록 하는 기제이기도 하고...
 
https://www.khan.co.kr/culture/tv/article/202205301721001
올봄, 힐링을 남기고 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경향, 고희진 기자, 2022.05.30 17:21)
스타 작가의 복귀작...뒤로 갈수록 힘 얻어
29일 방송된 <나의 해방일지> 최종회는 공허한 마음으로 살아오던 염미정(김지원)과 구씨(손석구)가 서로를 통해 인생의 행복을 알아가는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경기도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염씨 삼남매의 일상을 그리며 방영 내내 시청자에게 위로와 공감을 줬다.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조금 있으면 겨울이에요. 겨울이 오면 살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앉아서 보고 있을 것도 없어요. 공장에 일도 없고, 낮부터 마시면서 쓰레기 같은 기분 견디는 거, 지옥 같을 거에요.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중 술 마시는 구씨에게 염미정이 던지는 말
각본을 맡은 박해영 작가는 전작 <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에 이어 연타석 흥행 기록을 썼다. 
염미정은 구씨에게 “난 살면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요. (…)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라고 말했다. 드라마에 좀처럼 쓰이지 않을 법한 문어체 대사가 인기를 끌며 두 사람은 ‘추앙 커플’로 불렸다.
장르성 빼고 일상성 더한 힐링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와 <우리들의 블루스>는 콘텐츠 범람 시대에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한 작품이었다. 누군가가 죽거나 매회 주인공이 풀어야 하는 사건·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아도 우리 주변 사람들이 삶 속에서 느끼는 고민을 담았기 때문이다. <나의 해방일지>에는 구씨와 염미정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다. 삼남매의 첫째 염기정(이엘), 둘째 염창희(이민기) 등 열심히 살고 싶지만, 무언가 모자란 것 같은 삶에 지친 보통 사람 캐릭터가 호평받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45590.html
이미 끝난 ‘해방일지’, 당신이 챙겨보아야 할 이유 (한겨레, 김도훈 작가 겸 대중문화평론가, 2022-06-03 08:00)
파김치 같은 인물들이 부딪치며
서로 상처 보듬고 극복하는 과정
뻔한 구원의 서사로 매듭짓지 않아
‘삶에 완벽한 해피엔딩이란 없어
조금 달라진 삶 지속될 뿐’ 메시지
<나의 아저씨>에서 드러난 박해영 작가의 장기는 분명하다. 그는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박박 긁던 순간에 새로운 인물을 만나고, 그 관계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데 재능이 있다. 그건 코엘류나 히로카즈처럼 전혀 다른 문화적 대륙에 사는 예술가들이 동시에 감응할 수 있는 재능이다. 다들 로맨틱 코미디로 생각하며 봤던 <또 오해영>도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그 드라마는 코미디와 미스터리와 멜로 등 온갖 장르가 얽힌 일종의 심리 성장물이었다. 그러니 <나의 해방일지>에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그 기대는 충족됐는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 기대를 넘어섰는가? 나는 감히 그렇다고 주장할 생각이다.
주인공들은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완벽하게 다른 세계에서 온 인물을 통해 아주 조금 달라질 뿐이다. 염씨네 가족과 구씨도 우리가 기대했던 결말을 맞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갑자기 죽는다. 누군가는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누군가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직업을 꿈꾸기 시작한다. 거기서 드라마는 우리 삶에 완벽한 해피엔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홀연히 끝난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6040300045
[숨] 해방, 추앙, 환대 (경향,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2022.06.04 03:00)
이 드라마는 지리멸렬한 삶을 어떻게 버티고 살 것인가에 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독특한 점은 이 과정이 해방, 추앙, 환대라는 대중문화 상품에는 다소 낯설고 무거운 단어를 축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해방’이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표라면, ‘추앙’과 ‘환대’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먼저 드라마는 “추앙하다보면 딴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추앙은 주요 인물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적 관계와 대조된다.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에서 주요 인물들의 선함과 예의바름은 오히려 이들의 삶을 갉아먹는다. 이들이 베푸는 친절함(타인을 위한 행동)은 ‘등신’이 되는 지름길로 작동하여 “사람이 너무 싫은” 감각으로 돌아온다. 추앙은 무례한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는 정서적 연대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조언하지 않고, 위로하지 않고, 정직하게 대하며 응원하는” 행위로 구현된다. 드라마에서는 멜로 라인을 중심으로 사용되지만, 추앙은 오랜 친구, 직장 동료, 가족, 연인 관계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더 나아가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는 해방을 위한 방법을 친밀한 사람들 간의 추앙을 넘어, 적대적인 사람들에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환대’로 확장한다. 이는 “너는 끝까지 나에게 예의 없었으면서 나는 왜 끝까지 예의 지켜야 하는데”라는 질문으로 직접적으로 제시되고, 이에 대한 대답 또한 명확하게 제시된다. 나에게 무례한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으며 공격하는 것은 “내 몸에 썩은 물이 도는 느낌”을 만들고, 그 사람들이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삶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초라하고 비참해진다. 결국 나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환대하는 것은 이들을 향한 부정적 감정으로 쌓아 올린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행위이다. 이 점에서 <나의 해방일지>는 우리에게 일상에서 어떻게 친절함을 지키며 살 것인가 묻는다.
작년 8월 BBC Radio 4와 서섹스 대학이 합동으로 실시한 친절함 테스트(Kindness Test)는 이와 상반된 결과를 보여준다. 144개 국가에서 6만명 이상(18~99세)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생애 동안 친절함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줄었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 중 3분의 2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사람들을 더욱 친절하게 만들었다고 느꼈다. 참가자의 60% 이상이 24시간 이내에 친절함을 경험했다. 집, 의료기관, 직장, 상점이 친절한 행위가 발생하는 빈도가 높은 장소였고, 친절함을 가장 보기 힘든 곳은 인터넷, 대중교통, 거리였다. 이는 인터넷과 같은 익명의 장소보다 공동체가 친절함을 주고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절함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친절함이 잘못 해석될 것에 대한 두려움’(65.9%), ‘시간 부족’(57.5%), ‘소셜미디어 사용’(52.3%), ‘기회 없음’(42.1%), ‘친절함이 약함으로 보이는 것’(27.6%) 등이다. 이러한 친절함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실제 일상에서 친절함을 흔하게 경험하고 있고, 친절함을 더 많이 행하고 볼수록 높은 수준의 웰빙을 보고했다.
BBC의 친절함 테스트 결과는 <나의 해방일지>에서 제시하는 해답과 공명한다. “5초, 7초의 설렘을 모아서 하루 5분 정도의 숨통이 트이는 순간을 만드는 것.” 이러한 순간들은 우리 모두의 작은 친절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일상의 혁명은 이러한 작은 순간들 속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