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이길저길-샛길(펌글)

윤석열의 ‘혐오 세일즈’, 그리고 우익포퓰리즘 (경향, 김민아, 2022.02.08)

새벽길 2022. 2. 11. 19:20

생각해보면 윤석열 후보의 혐오 세일즈는 전형적인 우익포퓰리즘이라 할 만하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2072223005
윤석열의 ‘혐오 세일즈’, 그리고 우익포퓰리즘 (경향, 김민아 논설실장, 2022.02.07 22:23)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이하 윤석열)가 TV토론에서 다른 후보를 바라볼 때 자세를 바꾸지 않고 고개만 돌리는 모습을 보여 지적받았다. 이를 두고 “누군가의 제스처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쓴 글을 소셜미디어에서 접했다. 공감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은 모르는(혹은 알면서도 못 고치는) 습관이 있게 마련이다. 그 습관은 신체 조건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경우가 많다. 검증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습관’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이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길은 그의 말과 글을 통해서다. 최근 윤석열의 대표적 어록은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일 터다. 이미 여러 언론이 ‘팩트체크’한 바와 같이, 사실과 다르다. 외국인 건보 재정은 흑자다.
선거 국면이 본격화된 이후여서 파장이 컸을 뿐,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의 징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사람이 손발 노동으로, 그렇게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한다.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지난해 9월) 그는 최근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현장에 가서도 “어디 후진국이나 미개한 국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의 또 다른 어록은 “여성가족부 폐지”다. 그는 성평등 정책 주관 부처를 없애는 대신, 인구감소 문제를 다룰 부처를 만들겠다고 했다. 성범죄 피해자 중 무고죄로 기소된 비율이 0.78%(2019년)에 불과한데 성폭력처벌법에 무고죄를 신설하겠다고 했다. 역시 전조는 있었다. 지난해 8월 “페미니즘이 악용돼 남녀 간의 건전한 교제도 막는다”고 말했다. 7일자 한국일보 인터뷰에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선언했다. 무지인가 오만인가. 둘 다인가.
윤석열의 반외국인·반페미니즘 행보를 두고 20대 남성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많다. 의도엔 관심 없다.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주목할 뿐이다. 포퓰리즘 연구자인 카스 무데 미국 조지아대 교수가 2019년 펴낸 <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한국판은 2021년 2월 출간)는 21세기 우익포퓰리즘의 실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극우는 ‘외국인’을 경멸적 용어로 묘사한다. 예를 들어 인도인민당의 아미트 샤는 인도의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을 ‘침입자’와 ‘(인도를 갉아먹는) 흰개미’라고 비난했다.”
“극우에서 여성은 어머니(또는 예비 어머니)로만 정의된다. 헝가리의 급진우익 총리 오르반 빅토르는 새 헌법에 가족주의를 포함했다. 극우는 전통적 성역할을 촉진하는 정책에는 관대하지만, 임신중절 합법 같은 정책은 반대한다.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단체와 개인에게 공격성을 드러낸다.”
외국인을 혐오하고, 여성을 차별하는 행태는 늘 있어왔다. 그럼에도 온라인을 포함한 공적 공간에서 이를 ‘발화’하는 일은 암묵적으로 규제돼왔다. 혐오와 차별은 공동체가 함께 지켜온 ‘룰’을 깨뜨리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선을 넘었다. 유력 정치인과 정당의 ‘혐오 세일즈’는 위험한 신호를 주고 있다. 수면 아래 잠겨 있던 혐오,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던 차별이 스멀스멀 공론장으로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진지한 토론 주제로서가 아닌, 몇 글자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이 되어 떠돈다.
윤석열은 8일로 예정됐던 한국기자협회 주최 TV토론에 참여하기로 했다가 무산시켰다. 그가 토론에 소극적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페이스북의 ‘일곱 글자’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데, 굳이 2시간 넘게 서 있을 필요가 없지 않나. 윤석열은 최근 광주에서 “내편 네편 가르지 않는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갈라치기 행보에 대한 반성일까. 역시 호남 맞춤형 ‘밈’일 것이다.
다시 무데의 책이다. “주류(우익) 정당과 우익포퓰리즘 정당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우익포퓰리즘 정당과 이념은 언론과 경제, 시민사회, 정치권에 의해 용인되고 받아들여진다. 이는 영국의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새 국면에 도달했다.” 아직까지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주류 후보·정당이라 믿고 싶다. 그러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한두 발만 더 옮기면 우익포퓰리즘 딱지를 떼기 어려울 것이다.
무데의 결론은 이렇다. “극우 정치에 면역력을 가진 나라는 없다. 아직까지 극우 정당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나라들이 있다 해도, 수요 문제라기보다 공급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