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이길저길-샛길(펌글)

파란 하늘을 보여주마

새벽길 2021. 9. 4. 12:43

파란 하늘을 보여주마

 

“인간, 멸종 직전의 생물.” 20년도 전에 읽었던 어느 과학소설의 자못 충격적인 첫 문장입니다. 외계 종족에게 점령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나 멸종 단계에 이른 인류를 사냥하러 나가기 전 한 외계인이 혼자말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소설 속이 아니라 실제에서, 인류 스스로 이 말을 상기해야 할 지도 모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6차 보고서는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으로서의 1.5°C 상승이 2018년 예상했던 것보다 10년 가까이 앞당겨졌다는 경고를 발표했습니다. 3년 전 바로 우리나라의 인천 송도에서 결론으로 냈던 것보다 더 심각해졌다는 겁니다. 이렇게 계속 탄소를 배출하여 기온이 올라가다간 도저히 막을 수 없게 되는 시기가 약 10년이 당겨졌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갈수록 빈발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폭염과 산불이, 큰비와 홍수가, 한편에서는 가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아 온실가스가 공기 중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대로는 지구적 위기도 위기지만, 언제나처럼 없는 이들부터 ‘갈아넣어’지는 상황이 곧일 거 같습니다.

 

지금 당장, 변화가 필요합니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현 사회경제 체계, 산업구조, 생활방식 모두의 변화를 요구합니다. 오래 전부터 노동자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했습니다. 기후변화 대처에 있어서 존속이 어렵거나 포기해야 할 산업이 있다면 노동자와 지역공동체의 주도적 참여 속에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하게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생산과 유통, 소비, 분배에까지, 정의로운 전환은 삶과 미래를 위한 우리 모두의 길입니다. 오랜 제기와 싸움 끝에 이제 정의로운 전환은 국제기구들도 채택한 경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일부에선 지금의 경제산업구조에 매달립니다. 성장은 포기할 수 없고, 이를 위해 탄소 배출 감축도 덜 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산업전환은 녹색으로 치장해 경쟁력을 잃지 않게 하자는 것에 그치고 맙니다. 발생하는 노동자와 지역민의 피해는 공정 지원해주겠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이게 기후위기 대책인지, 구조조정 대책을 장착한 업계 지원책인지 헷갈립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피해를 볼 수 있는 노동자와 지역민들에게 사후적으로 일부 지원하고 보상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전환이 지금껏 경험한 것처럼 비용과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조정의 반복이어선 안됩니다. 이 사회가 유지해온 많은 걸 포기하고 바꿔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만들어온 현 체계를 둔 채 돌려막기가 아니라 탄소 배출의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경제산업구조를 바꾸는 전환이어야 합니다. 노동시간의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변모하는 다양한 노동을 포괄하는 새 노동법 체계와 노동권의 확대, 작업장 안전과 탈탄소 공정을 실현하는 대등한 노사관계, 사회안전망과 사회복지의 강화까지. 노동도 바뀌어야 하고, 노동자도 변화에 나섭니다.

 

진중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합니다. ‘탄소중립위’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부족하나마 이제 시작됐다 덕담하기에는 매우 심각합니다. 내놓은 시나리오가, 난데없는 끼워팔기가 돼버린 ‘탄소중립·녹색성장법’이, 지금까지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녹색 덧칠로 탄소중립은 일부 포기할 수도 있다는 ‘탄소중립 시민회의’의 ‘숙의’가 그렇습니다. 의례적 의견수렴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겠는지 뜻모으는 게 필요합니다. 민주노총은 의견을 달라는 탄중위를 만나고 뜻도 전달합니다. 탄중위든, 경사노위든, 들어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형식과 배제의 논리나, 듣고 마는 ‘답정너’가 아니라,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신뢰 속의 논의와 실천입니다.

 

20세기의 한 영화에, 깡패두목이 “살아서 21세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애?”라 협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임박한 기후위기의 종말론적 영상 속에 “우리 아이들이 22세기를 볼 수 있을 것 같애?” 물어봅니다. 좀 무섭다면, “우리 아이들이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을 거 같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 같애?” 물어봤음 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할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10206.html

 

원래는 위와 같은 글이었는데, 분량, 문투 문제 때문에 표현을 바꾸고 줄였단다. 원 글이 훨씬 괜찮은데, 아쉬워서 여기에 올렸다.

 

원글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구는 L. 론 허버드의 'BE'에 나온다. BE는 Battlefield Earth를 의미하는데, 나도 나름 감명깊게 봤던 소설이다. 존 트래볼타 주연의 '배틀필드'로도 영화화되었는데, 영화는 원작이 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다시한번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