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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곳간’은 없다, 집단 책임이 있을 뿐 (홍기빈, 2022.01.25)

새벽길 2022. 1. 31. 15:07

홍기빈 샘의 글은 지금 시기 확장 재정이 왜 필요한지, 확장 재정이 원만하게 추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잘 정리하고 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1250300005
‘나라 곳간’은 없다, 집단 책임이 있을 뿐 (경향, 홍기빈 정치경제학자, 2022.01.25 03:00)
정부 지출 확대를 반대하는 일반의 정서는 그것을 받아 챙겨서 배불리는 ‘분배 동맹’들의 존재에 따른 불신의 경험칙이 큰 원인이다
전환기인 지금 과감한 확장 재정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출의 양이 아니라 질과 내용에 대해 세세히 계획을 짜 ‘분배 동맹’에 대한 불신을 풀어야 한다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지출 과정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최대한 확보할 때에만 민주주의 국가의 확장 재정은 지속 가능하다
첫째, ‘나라 곳간’이란 없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던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경제 정책에 남겨놓은 최악의 유산은 ‘나라 살림이나 집안 살림이나 똑같아서 수지 균형이 최고’라는 잘못된 생각을 마치 경제 법칙처럼 통용되게 만든 것이다. 국가 경제가 해외 부문과 중장기적으로 공간적인 균형을 취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금융 행위의 중심이며,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유지한다는 과제를 몇 세대에 걸쳐서 달성할 수 있도록 시간적인 균형을 매개하는 금융 행위의 중심이므로, ‘곳간’이 아니라 채권과 채무를 자의적으로 발생시키고 또 청산하는 ‘장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제 나아가 사회 전체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과감한 적자 혹은 흑자 재정을 몇 년 혹은 그 이상 편성할 수 있는 재량의 영역이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가장 강력하고 결정적인 무기이다. 
따라서 적자 재정과 국가 부채는 ‘미래 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는 억설은 터무니없는 일방적 주장이다. 
산업 시스템은 물론 생태 위기라는 거대한 도전이 닥쳐오면서 지구적 산업 문명 전체가 거대한 전환을 겪고 있는 지금, 산업과 사회의 업그레이드와 미래 세대의 역량 강화를 위해 과감하게 적자 재정을 편성할 것인가 아니면 균형 재정을 고집하다가 소수의 승자들을 제외한 산업 구조의 노후화와 사회 전체의 쇠락이라는 결과를 다음 세대에 넘겨줄 것인가? 이는 협의의 금융이라는 시장과 영리의 논리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종류의 자금 ‘융통’이다. 
지출 결과 사후 평가 방법도 중요
이러한 국가 대계 차원에서의 과감한 재량적 자금 ‘융통’이 재정의 본질이다. 지금 세상과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해 국가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먼저 결정하고, 그에 따라 중장기적인 채권과 채무를 조정하는 고도의 정치적 과정이다.
과감한 자금 ‘융통’이 재정의 본질
정부의 지출 확대를 반대하는 일반의 정서는 대처 총리식의 엉터리 경제학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생활 세계에서 느낀 이러한 ‘분배 동맹’들의 존재, 따라서 정부의 지출이 확장되어 봐야 그거 받아 챙겨서 배불리는 이들은 따로 있다는, 그래서 자기들 본인에게나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나아질 것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경험칙이 더 큰 원인이다. 
전환기인 지금 과감한 확장 재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적·사회적으로 마찰 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항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얼마를 풀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에 왜 풀어야 하느냐가 중요하다. 에너지 전환이나 불평등 해소와 같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명분에 안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슨 사업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후생을 증대시키는가를 세세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20세기의 ‘사생아’ 케인스주의의 악영향으로 항상 정부 지출은 총수요 관리 차원에서 규모와 액수만 논의되어 온 문제가 있다. 지금은 지난 반세기 동안 축적된 ‘분배 동맹’에 대한 불신을 풀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지출의 양이 아니라 질과 내용에 대해 세세히 계획을 짜야 한다.
둘째, 이러한 지출의 결과를 어떻게 사후적으로 평가할 것인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정부 지출은 좁은 의미의 금전적 수익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사회적 수익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거니와, 이를 어떻게 반성하고 평가할 것인가를 제시하고 이를 지출의 계획과 연계시켜야 한다. 셋째, 국가 자원이 구체적으로 지출되고 행사되는 과정에 대한 투명한 거버넌스와 수혜 단위의 문제이다.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다원화’이다. 지금까지의 거버넌스라는 것이 결국 관련된 똑같은 이해집단 내부 인사들의 알음알음 노릇에 그쳤다는 비판을 기억해야 한다.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지출 과정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최대한으로 확보할 때에만 민주주의 국가의 확장 재정은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기획재정부에 집중되어 있는 지출의 계획과 예산 작성의 기능을 분리하여 전자를 민주주의 국가와 거버넌스의 원리에 따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
‘나라 곳간’이란 없다. 집단적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해 나가는 21세기형 국가와 사회가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