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쉬어가며 보는 영화

미나리

새벽길 2021. 3. 8. 19:48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한예리에 주목했다. 그녀는 예전부터 왠지 끌렸고, 그녀가 계속 좋은 연기를 보여주길 바랬는데, 미나리에 출연한 거다. 
미나리는 너무 기대를 하고 봐서인지 처음에 볼 때에는 생각만큼 괜찮지가 않았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최고였고, 미국의 평론가들과 관객들이 환호한 이유가 있을 텐데 싶어, 그게 뭘까 궁금해했다. 리뷰들을 봐도 그럴싸한 설명이 나오지 않았고... 한국에서 환호하는 거야 미국에서 상을 받았다니 제2의 기생충을 기대하며 국뽕 때문에 그런 거겠지 싶었다. 마지막에 윤여정이 집에 화재가 난 이후 사망하고 남은 한국인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지 않는 대목도 좀 이해가 안 되었다. 더욱이 이 영화는 80년대 한국계 미국 이민자들의 삶을 잘 보여주는 것에 불과한데, 미국에선 왜 그리 호평을 받았을까? 도대체 왜?

그 의문점을 손이상의 리뷰를 통해 풀었다. 이를 보고 확실히 난 영화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미나리를 보고서도 한 동안 이 영화가 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몰랐는데, 손이상의 리뷰를 보고 알게 된 것이다. 역시 영화도 그냥 많이 본다고 해서 영화를 보는 시각, 관점이 생기는 것은 아닌 듯하다. 손이상의 리뷰에 완전 공감한다. 다시한번 미나리를 봐야겠다.
 
http://fabella.kr/xe/blog10/84031
영화 <미나리> 리뷰 (파벨라, 손이상, 2021.03.08 12:50:45)
한국인 관객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나리>에는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이 거의 투영되지 않는다. 한국인 가족이 이민자로서 미국 주류사회와 갈등을 겪는 장면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한인 밀집지를 피해 이주해온 가족과 한인 교회로부터 벗어나려고 시골까지 왔다는 여성의 발화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탈-한국을 시도해왔음을 짐작케 한다.
영화를 관통하는 정체성은 민족성이 아닌 계급성이다. <미나리>는 미국 남부 시골에서 이동식 주택에 사는 가난한 소농민을 다루며, 현실의 삶에 최대한 밀착해 그 안에 가득한 결핍과 불화와 환상들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분노의 포도>나 <에덴의 동쪽> 같은 20세기 작품들이 보여주었던 완고한 사회주의 미학의 직접적인 후계자라고 할 수 있다.

<미나리>는 계급 갈등이나 저항을 그리는 대신 20세기 리얼리즘이 가지 않았던 다른 길을 걷는다. 계급성 외에 <미나리>를 지탱하는 또다른 축은 <애정의 조건> 같은 헐리우드 통속영화에서 반복되었던, 사건을 통한 감정이입이다. 
<미나리>의 가족은 한국에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를 미국으로 모셔온다. 할머니는 한예리가 항상 부채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는 홀어머니이자 유일한 혈육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예리 부부가 일하느라 아이를 돌볼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할머니는 갑자기 발병한 뇌졸중으로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이 펼쳐진다. 이 일은 이윽고 연쇄적인 재앙으로 이어져,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이나 타르코프스키의 <희생> 같은 작품들에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한 비극으로 치닫는다.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미국인 관객이 경험할 정신적 충격은 한국인 관객이 느끼는 감정과 매우 다르다.

<미나리>는 이 가족이 어쩌다 미국까지 흘러왔는지, 왜 이런 삶에 놓였는지, 클라이맥스 부분의 그 재앙을 어떻게 딛고 일어섰는지, 이후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을 의도적으로 생략한다. 관객이 이미 알기 때문이다. 미국 관객들은 이 가족이 아칸소로 향하는 첫 장면부터 닥쳐올 비극을 예감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의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이 가족에게 펼쳐졌을 일들을 상상한다. 이 가족은 하필이면 그곳에 정착했기 때문에 평생 가난하고 불행했을 것이며, 곧이어 오일 쇼크를 겪고 몰락했든지 또는 근근히 이겨내 집 한 채를 겨우 꾸렸더라도 모기지 체계가 무너지면서 모든 것을 잃었으리라는 상상을 관객 누구나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이 미국 소농계급이 지난 수십 년간 겪어온 삶이며 거기서 더 나아진 경우가 극히 드문 예외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정신적 충격을 안겨주며 관객을 흔들어 깨우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나리>는 영화 속 가족의 이전과 이후의 삶에 침묵함으로써 미국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명확한 사실을 대단히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 이미 오래 전에 실패했고 처참히 무너졌다는 사실 말이다. 폐허가 된 삶의 자리는 아직도 복구되지 않고 있다. 거기에 휩쓸린 계급은 단지 가난할 뿐 아니라 온전한 삶을 아주 놓아버린다. <미나리>의 아내는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엑소시즘 같은 미신에 기울고 그녀를 비난하던 남편마저도 물을 찾기 위해 유사과학을 받아들인다. 몽매해서가 아니라 다른 수단과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즉, 윤여정이 한국에서 가져와 심은 미나리는 비단 한국인 이민자의 은유가 아니라, 그 정도로 무너진 삶을 지금까지 그대로 지속하고 있는 계급의 은유다.


이것이 미국 영화계에서 <미나리>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또한 이 영화가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반발까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미국 관객들과 평단의 반응은 2021년 현재의 미국, 철저히 파탄난 미국을 <미나리>보다 잘 드러낸 영화가 없기 때문이고, <미나리> 가족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삶의 은유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영화평이다. 미국 관객들의 <미나리> 리뷰를 보면 트럼프 현상을 언급하는 글이 흔하다. 한국인 관객들에겐 이런 지점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미나리>에 대한 한국인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힐링 영화라는 관점(실제로 왓챠피디아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평가 중 하나). 다른 하나는 가부장적인 남편의 답답함에 주목하는 관점(그렇게 된 현실적인 요인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인 가족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미국에 정착하는 집단 서사로 보는 관점이 있는데, 이 세번째 관점을 장착한 관객들은 <국제시장>을 보듯이 <미나리>를 본다. 그리고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나오지 않는 결말에 크게 실망한다.


나는 언제나 영화 자체보다도 그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반응 혹은 사회적인 움직임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미나리>를 사실 5공 때만 해도 한국에 개봉조차 어려웠을 유형의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관객들은 이 영화가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에는 아랑곳 않고 한류에 도취하여 어떻게든 긍정과 희망의 영화인 것처럼 왜곡해 받아들인다. <노마드랜드>와 <미나리> 모두, 온전한 감상법은 미국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다. 감독의 혈통을 잊고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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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2211651001&code=960401
[리뷰]지극히 한국적인 영화 ‘미나리’, 세계에 통한 이유 (경향, 이혜인 기자, 2021.02.21 16:51)
영화 배경이 되는 시대와 장소는 현재와 좀 떨어져 있지만, 영화는 너무나 보편적이라 별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가부장적인 모습이 답답할 때도 많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짠하게 느껴지는 아버지, 생업에 쫓겨 늘 지쳐있다가도 자식들 일이라면 눈에 결기가 어리는 어머니, 손주라면 덮어놓고 1등으로 여기는 할머니. 그 옛날 우리가 늘 보면서 자라왔던 가족들 모습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미나리> 리뷰에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과 <페어웰>에서는 문화적 충돌과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가족을 소재로 뒀으나, <미나리>의 이야기는 이와는 정반대다”라고 적었다. “<미나리>는 가족의 분투를 첫 번째로, 정체성 이야기를 두 번째로 뒀다. 이 때문에 <미나리>는 매우 일상적이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야기다”라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84189.html
한예리 “미나리 아카데미 수상? 마음은 굴뚝” (한겨레, 서정민 기자, 2021-02-24 02:07)
[아카데미 청신호 켠 영화 ‘미나리’ 주연 한예리]
“첫 시나리오 번역본을 받았을 때는 이게 어떤 영화인지, 모니카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어요. 빨리 감독님을 만나 물어보고 싶었어요. 만나보니 감독님의 어린 시절이 제 유년시절과 다르지 않았어요. 한국의 보통 가정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에 공감대를 이뤘고, 우리가 함께 모니카라는 인물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출연을 결정할 때만 해도 그는 “작은 영화를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카데미 후보로 거론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아카데미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묻자 그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상을 주려나 모르겠다. 감독님과 (여우조연상 후보로 꼽히는) 윤여정 선생님에겐 좋은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를 연기한 윤여정과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현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선생님의 유머 감각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무엇보다 외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작업하는데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 선생님에게서 용기를 배웠어요. 저는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부터 덜컥 겁이 났거든요. 선생님의 솔직한 모습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나도 힘들면 힘들다 하고, 좋으면 좋다 하고,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011820001&code=960100
"미국 영화란 무엇인가" '미나리'가 골든글로브에 던진 질문 (경향, 심윤지 기자, 2021.03.01 22:28)
정 감독은 한국인 이민자를 다룬 영화 <미나리>가 미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로 국적과 시대, 언어를 초월하는 ‘가족의 힘’을 첫손에 꼽았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페어웰>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족이란 소재를 사용했다면, <미나리>는 미국과 한국의 문화 충돌이나 인종차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대신 싸우고 반목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에 보다 주목한다. “할머니한테서 ‘한국 냄새’가 난다”며 투덜대던 손자 제이콥이 어느새 할머니 순자와 사이좋게 화투를 치는 식이다. 이러한 보편성은 국적과 시대를 불문하고 많은 관객들에게 울림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나리>의 제작사(플랜B)와 배급사(A24)는 미국 자본으로 설립된 미국 회사다. 정 감독과 주연배우 스티븐 연은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이다. 하지만 골든글로브는 대사 대부분이 한국어라는 이유로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했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작품상 후보작의 경우 대사 절반 이상이 영어여야 한다는 ‘50% 규정’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은 대사의 영어 비중이 30% 정도임에도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에 감독과 배우가 백인이 아니라고 해서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해 중국계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페어웰>로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에 올랐던 중국계 미국인 감독 룰루 왕도 HFPA를 비판하고 나섰다. 왕 감독은 “올해 <미나리>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건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이자 미국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이야기”라며 “오직 영어만 사용하는 것으로 특징짓는 구식의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할머니 순자로 열연한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지명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진다. 현재까지 윤여정이 받은 여우조연상은 미국 4대 비평가협회상으로 불리는 전미비평가협회상, LA비평가협회상을 비롯해 총 26개에 달한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723333
들쭉날쭉 기준... '미나리'는 안 되고 이 영화는 되고? (오마이뉴스, 이선필(thebasis3), 21.03.02 16:04)
[기획]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수상으로 본 골든글로브의 현주소
외신과 해외 영화인들의 비판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수상 소식에 먼저 들끓은 건 미국 현지 언론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떠나고 싶었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감독'이란 제목으로 정이삭 감독의 수상과 함께 외국어영화상 선정이 논란이 될 수 있음을 언급했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사례를 언급하며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수상이 다분히 편협하고 인종차별적 논란을 만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CNN 방송은 "미국 사람들 인구의 20% 이상이 집에선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쓴다"고 비판했고, < LA타임스 > 또한 "<미나리>는 다른 외국어영화들과 경쟁하게 된 유일한 미국 영화"라며 골든글로브 후보작을 결정하는 HFPA(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 구성 문제를 지적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변화
봉준호 감독의 말을 빌리면 이번 골든글로브 또한 스스로 '로컬 시상식'임을 입증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번 논란을 인지한 골든글로브 측이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다. <데드라인> 등 외신에 따르면 HFPA 의장 티나 첸을 비롯한 임원진은 "앞으로 골든글로브가 회원의 인종 구성뿐만 아니라 문화적 비판을 수용해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며 "더 이상 우린 골든이 아니다.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준비해야만 하는 때에 와 있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985636.html
상 이름이야 아무러면 어떤가…영화 자체가 이미 성취인 것을 (한겨레, 한동원 영화평론가, 2021-03-05 17:21)
[토요판] 한동원의 영화감별사
<미나리>
정이삭 감독 어린 시절 실제 경험 바탕
1980년대 이민자들 삶 생생하게 그려
찬사 속 윤여정에 한예리, 스티븐 연 등
실감 나는 가족 모습 생생하고 구체적
한 가정의 고난과 극복의 서사 넘어
폴(바울), 제이콥(야곱), 데이빗(다윗)…
아칸소 공간에 담긴 기독교적 세계관
한국 이민 특수성 넘어 보편성 획득
이 영화는 정이삭 감독(겸 각본)의 어린 시절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덕분에 이 영화에 그려지는 가족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특히나 한국인인 우리들에게는 한국인이 아니라면 정확하게 느낄 수 없는 뉘앙스들까지 절절히 와닿는지라, 이 가족에 대한 감정이입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감독의 분신인 듯 보이는 가족의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을 그냥 ‘데이빗’ 대신 ‘데이빗아’라고 부르는 호칭에 묻어 있는 그 구수함은 한국인이 아니면 좀처럼 알아채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이 생생한 기억에 아빠 제이콥 역의 스티븐 연, 엄마 모니카 역의 한예리, 아들 데이빗 역의 앨런 김, 그리고 할머니 역의 윤여정의 연기를 비롯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는 부족함 없는 실물감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당연하게도 이 영화를 한국계 미국 이민뿐 아니라 한국인 자체의 고난-생존-적응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받아들이고, 그것에 웃고 울고 연민하고 공감한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화제의 대사들 중 하나인 제이콥의 “한국 사람은 머리를 써”라는 대사는 외국인들에겐 일종의 허세나 오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꽤 절박한 생존 전략에 대한 대사라는 것을 우리 한국인들은 잘 안다.
우리가 <미나리>의 한국인들과 그들의 고군분투 쪽에 집중하는 동안 자칫 흘려보내기 쉬운 중요한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영화 초반, 제이콥이 농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등장하는 아칸소 현지 농부 폴(윌 패튼)이라는 인물의 존재다. 이 인물이야말로 실질적으로 <미나리>의 테마를 한 몸에 함축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는 아칸소에 오면서 교회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던 제이콥 가족이, 결국 고립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한 어느 일요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폴의 모습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난다. 폴은 아무도 없는 시골길에서 거대한 나무 십자가를 끌며 걷는 고행을 하고 있는데, 차에 태워주겠다는 제이콥의 권유에도 “이것이 나의 교회야”라며 고행을 계속한다. 땀에 전 러닝셔츠만 걸친 그의 모습은, 예배 참석을 위해 오랜만에 깔끔한 셔츠에 넥타이까지 한 제이콥의 모습과 더욱 극적인 대조를 이룬다.
‘폴=바울’이라는 이름으로도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폴은 감독이 생각하는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구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제도화되고 세속화된 교회 대신 그것이 마땅히 지켜나가야 할 정신(!)을 자신의 교회로 삼고, 사도 바울처럼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그것을 실천한다.
사실 폴=바울뿐 아니라 제이콥=야곱, 데이빗=다윗 등, 중심인물들의 네이밍에서부터 <미나리>가 기독교적 주제를 밑바탕에 깔고 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것이다.
하여 이 영화는 단순히 한국인 가족의 미국 이민사에 대한 회고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앞서 언급한 폴은 한국 방식으로 작물을 심는 제이콥에게 “아칸소에서는 아칸소 방법으로 키워야 돼”라고 충고한다. 제이콥은 폴의 조언을 무시하지만, 결국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 폴의 말을 따라야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제이콥은 결국 폴과 미국, 나아가 신의 방식을 따르게 된다.
요컨대 영화의 주요 인물들 중 유일한 미국인(그리고 백인)인 폴은 이민으로 세워진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착하기 위해 인생을 건 사투를 벌이는 이민자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땅에 (제이콥이 심은 한국 채소들처럼) 뿌리를 내리고 생육해갈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정신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인물이다. 그렇다. <미나리>는 트럼프 시대(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2018년에 쓰였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이민의 나라 미국이 기억하고 환기해야 할 미국의 정신, 나아가 이 분노와 증오와 장벽 쌓기의 시대에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으로부터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보편성을 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예술 작품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런 예술 작품을 부각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상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마땅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번 골든글로브의 처사는 다른 누구보다도 골든글로브가 가장 많은 것을 잃은 결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