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현장에서

비정규직 800만 시대 경향신문 기획기사

새벽길 2008. 9. 1. 13:57

비정규직 노동자가 800만을 넘어간다는 것이 기념할 일은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도 있고...
비정규직에 관한 글이나 기사를 자주 보긴 하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길어지겠지만, 경향신문의 기획기사를 발췌하여 담아오면서 이전에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었던 기획도 함께 담아놓는다.

 
2008. 9. 1
경향신문의 비정규직 800만 시대 기획기사가 토론회 정리기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토론회에서 다룬 쟁점은 비정규직법을 어떻게 볼 것인지, 비정규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화할 것인지, 진보진영의 대응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사회적 타협은 가능한지 등이다. 지금 상황에서 전혀 가능하지 않은 사회적 타협이 포함된 것은 조금 생뚱맞은데, 만약 필요했다면 그 발제자로 김호기 교수보다는 이종태 연구위원이나 장하준 교수, 또한 사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이 타당했을 것이다.
 
토론회에서 발제에 대해 반대토론을 부친 것이 흥미로웠다. 은수미 연구위원의 입장은 예상은 했지만 실망을 금할 수 없었고, 김성희 소장은 최근에 그렇듯이 갈수록 왼쪽으로 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상정 대표는 오랜만에 내 맘에 드는 말을 해주었지만, 과연 자신의 발언을 진보신당 내에서조차 관철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관련된 부분이 중요한데, 박승흡 대변인과 이재영 기획위원 모두 나와는 생각이 달랐다. 비정규직 조직화가 노조로 가능한지에 대해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며, 진보정당이 나름의 역할을 할 수는 있고, 해야한다는 점에서 이재영 기획위원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점차 맛이 가고 있는 기존의 진보정당으로는 무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뭐? 글쎄... 제대로 건설된 산별노조가 제 역할을 하는 수밖에...
 
김호기 교수가 사회연대전략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먹이는 것은 사회연대전략의 급진성에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과연 이를 통해 계급을 형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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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800만 시대]“사회 전체가 비정규직 바다” (경향, 장은교기자, 2008년 07월 14일 18:24:17)
시리즈를 시작하며
  
회사원 김영진씨(27·가명)는 비정규직 6년차다. 대학졸업 후 세 번 직장을 옮겼다. 모두 비정규직이다. 지금은 제조업체의 임원 비서실에서 일한다. 김씨는 “제가 하루에 만나는 비정규직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라고 묻고는 “사회 전체가 비정규직 바다예요”라고 자답했다.
 
비정규직. 정규직과 구별짓는 앞 글자 ‘비(非)’는 한숨과 절망의 상징어가 됐다.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인력시장의 주홍글씨가 된 지 오래다. 작년 한 해 최저임금(시급 3480원)도 받지 못한 노동자의 94.4%는 비정규직이다. 똑같이 주 45시간을 일하지만 평균 월급은 124만원으로 정규직의 절반이다. 정규직이 십중팔구 가입한 국민연금·건강보험 가입률도 30%대다. ‘직업 계층’ 사다리의 끝에 매달린 그들의 위기는 스스로 꿈을 접어가는 현실이다.
 
지난 3월 기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한 비정규직 숫자는 858만명. 여기에 지난해 평균 가구원수(2.87명)를 대입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비정규직 생활권’에 있다. 741만명인 정규직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숫자는 많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는 “비정규직은 촛불집회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주변인)로 본다. 노동시간 결정권이 약하고 주말과 밤 시간대에 일이 더 몰리는 파트타임 인생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정된 비정규직법은 고용의 질이 낮은 파견·용역·파트타임직을 양산하며 이달부터 100~299인 기업까지 확대 적용된다. 정작 비정규직의 애환이 함축된 산업재해·하도급·외주화는 정부 통계에서도 사각지대다.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은 2.8%. 비정규직은 뭉치지도, 스스로를 대변하지도 못한다. 대선·총선 때마다 대표적인 ‘계급 배반’ 투표층으로 분류될 정도다. 정치·사회적 음지에 고립된 비정규직의 갈등이 위험수위까지 차올랐다는 뜻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는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이 다수이면서도 아직까지 ‘예외적 상황’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무능한 정치 때문에 사회적 난민 취급을 받고 있다”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와 임금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 의미를 되묻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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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800만 시대]“비정규직, 국가적·국민적 의제화 시급하다” (경향, 정제혁·송윤경기자, 2008년 08월 31일 18:44:56)
비정규직 주요 쟁점 토론회
 
경향신문은 ‘비정규직 800만 시대’ 기획을 마무리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4개의 주제토론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이 토론회 전체 사회를 맡았다. 제1주제(‘비정규직법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는 발제를 맡은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과 지정토론자로 나선 김성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이 토론을 벌였다. 제2주제(‘진보진영 대응 방향’)는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가 발제를,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정토론을 맡았다. 제3주제(‘비정규직 조직화, 어떻게 가능한가’)는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이 발제자로,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이 지정토론자로 나섰고, 제4주제(‘사회적 타협은 가능한가’)는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의 발제와 심상정 대표의 반대토론으로 진행됐다.
 
차별시정 요구조차 못해 현실적 한계 뚜렷
1. 비정규직법을 어떻게 볼것인가
 
“비정규직 문제가 10개라면 그중 1~2개는 비정규직법으로 해결됐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비정규직법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효과보다 긍정적 효과가 더 컸다고 말했다. 은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비중이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이 촉진된 것”을 비정규직법의 효과로 꼽았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일자리 감소는 경기효과일 가능성이 높다”며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은 연구위원은 일일근로·용역 등 취약노동자가 증가한 점, 차별시정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점을 비정규직법의 한계로 지적했다.
 
차별시정효과가 미미한 수준에 그쳤던 이유는 복합적인 것으로 분석했다. 먼저 노동자가 차별시정신청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회사 측으로부터 받게 될지 모를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지난 5월 말 현재 차별시정신청을 한 경우는 전체 기간제·파견노동자의 0.9%(2816명)에 그쳤다. 차별시정신청을 하더라도 시정명령이 내려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지난 5월까지 차별시정신청을 한 814건 중 579건이 기각됐다. 은 연구위원은 “차별시정제도가 차별을 합리화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차별시정의 대상이 기간제와 파견으로만 제한되어 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처우 격차를 줄일 수 없다는 점도 한계다.
 
은 연구위원은 비정규직법의 큰 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법 시행 1년의 결과만을 가지고 입법효과를 판단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차별시정제도와 같이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 문제에 대한 입법적 보완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사내하청·일일근로 및 단기근로·특수고용 등 비정규직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고용형태의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은 연구위원은 “간접고용은 원·하청 연대책임을 핵심으로 해 기존의 법제도를 보완하거나 새로운 법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은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사용 자체를 제한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입장을 취했다. 비정규직 규모가 너무 커져버린데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도 어려운 여건이라는 것이다. ‘정규직 대체형’ 비정규직이 대부분이고 간접고용 사용 관행이 정착된 상태에서 ‘사용사유’를 제한할 경우 간접고용 등 취약노동자만 늘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토론에 나선 김성희 한국비정규직센터 소장은 비정규직법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김 소장은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종사자 수 300인 이상 기업의 정규직은 줄고, 100인 이하 기업의 비정규직은 늘어났다”며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규직을 늘렸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또 “비정규직법은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크고, 한 번 제도로 만들어지면 쉽게 고치기 힘들어진다”며 “차라리 비정규직법을 없애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을 사회의 고용원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비정규직 사용관행이 만연한 현실에서 그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관행이나 간접고용 확대추세도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원칙에 입각해 규율할 수 있다고 봤다. 김 소장은 “비정규직의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것은 고용의 기준과 원칙의 문제”라며 “차별관행은 제도적 수단으로 시정하기가 힘들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용사유 제한이라는) 기준과 원칙을 세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간접고용의 경우 상시직에 대해서는 직접고용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이나 국회의 구성을 보면 비정규직법을 좋은 방향으로 고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싶다”며 “현재 시점에서는 (제도의 바깥에서) 운동적 차원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치적 주체로 성장 시켜야” 원칙엔 동의
2. 진보진영 대응 방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는 민주정부 이래 ‘비정규직 확산은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득세해 온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심 대표는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이 참여정부의 비정규직화 드라이브에 무기력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심한 경우 참여정부와 공모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의 위기가 심화됐다고 주장했다.
 
심 대표는 “비정규직법 입법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세력이 기간제를 수용하고 차별을 부분적으로 시정하자는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따랐다”며 “참여정부 시절 시민사회세력은 성장주의와 신자유주의 전략의 기본 틀을 대체로 전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또 “조합원의 상당수가 참여정부를 세우는 데 참여했던 민주노총은 정권 초기에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정부에 끌려다녔고, 민주노동당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묶어낼 만한 정치적 역량을 갖추지 못한 채 여러 제약에 안주했다”고 분석했다.
 
심 대표는 비정규직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최우선 조건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진보진영은 성장주의와 대비되는 구체적인 비전과 프로그램을 갖고 비정규직 문제를 정치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심 대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정치적 슬로건으로는 매우 미흡하고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자리가 보장되고 노동의 가치에 걸맞은 대가가 지불돼야 한다는 것, 비정규직이라도 노동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재교육과 직업훈련, 생활수단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 그를 위해 고용과 임금, 복지, 기업민주화, 원·하청민주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담은 개념과 프로그램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심 대표는 “상황이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경도돼 있는 경우 균형을 잡기 위한 방법은 왼쪽으로 확실하게 꺾는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비정규직법 개악을 막겠다고 ‘개악 저지’를 슬로건으로 내놓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반대토론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국가적·국민적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데는 심 대표와 인식을 같이했다. 이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는 정치·경제·사회·노동의 전 분야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며 “내수 침체, 자살률의 증가, 노사갈등 심화, 노동 없는 민주주의, 노동운동의 연대성 위기 등이 비정규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심 대표와 상당한 입장차를 보였다. 특히 비정규직법 도입 과정에 대한 평가를 놓고는 시각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 교수는 심 대표의 태도를 원칙론, 자신을 비롯한 시민사회세력의 태도를 현실론으로 규정했다. 이 교수는 “비정규직법에 사유제한 항목을 넣는다고 해도 자본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느냐”면서 “자본은 수동적 존재가 아니다. 간접고용을 늘려 법 규제를 회피할 수도 있고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화된 조건 속에서 좋건 싫건 경쟁과 노동·자본의 이동은 피할 수 없다”며 “이런 현실적 제약 속에서 타협도 하면서 자신의 정책을 실현해 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현재의 시점에서는 정부·여당의 비정규직법 개악을 막고 기존 입법의 구멍을 메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규모 영세사업장 조직화 주력해야
3. 비정규직 조직화 어떻게 가능한가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비정규직 문제를 정치적 공론의 장에 끌어내는 것은 진보정당·노동운동·시민사회운동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비정규직 문제의 정치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발제를 했다.
 
박 대변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조로 묶는 것이 정치화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 조직화는 기업별 노조체계를 넘는 방향으로 진전되어 왔고 대중적인 조직화의 기초는 마련했다”면서도 “여전히 대기업 중심의 조직화에 머물러 있고 비정규직 대다수가 분포하는 소규모 사업장으로는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산별노조 체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산업을 뛰어넘는 비정규직 간의 연대가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며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전면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방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에 비해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인 것은 사실이나 실질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기보다는 겉도는 양상”이라며 “민주노총은 다수가 된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함으로써 계급대표성의 위기와 함께 사회적 신뢰의 하락, 정치적 무기력의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주노총은 비정규직과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데 주력해야 하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노동운동과 시민·사회 진영의 연대도 복원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주의적 성향이 노동운동의 성장과 확장을 가로막고 정치적인 고립을 불러왔다면 사회적 연대를 전면화함으로써 비정규직의 조직화는 물론이고 정치적 고립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은 진보정당의 역할에 좀더 강조점을 뒀다. 그는 “노조가 일정 수준에 이른 이후에는 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치화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은 민주노총에 기대지 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획위원은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격차가 심각하다는 점을 근거로 비정규직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조직구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논쟁적 의견도 제기했다.
 
그는 “대기업 정규직 조합원의 임금에 비해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비조합원 임금은 45%밖에 안 되고, 비정규직을 노조원으로 인정하는 노조도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모든 노동자가 함께해야 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기존 원칙이 계속 지속돼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기획위원은 “비정규직 문제는 신자유주의 문제라기보다는 재벌을 최정점으로 하는 한국 특유의 수직적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라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수직적 구조의 상대적 수혜자로서 포섭된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정당·노동운동·시민사회 다시 뭉쳐라”
자본 압도하는 현정부엔 기대 힘들어
4. 사회적 타협은 가능한가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살폈다. 김 교수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하지만 이를 위한 여건은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협약 참가자들 사이의 상호 신뢰가 필수적이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이해집단들 사이에 불신의 골이 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포함한 노동계 대표집단들과 전경련, 경총 등 기업계의 대표집단들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책결정의 경험은 전무하다”며 “노동계와 정부 사이의 불신 또한 사회적 합의에 불리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교적 합의가 쉬운 이슈를 통해 신뢰를 쌓은 다음 점차 어려운 이슈로 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비정규직법 개정(노조에 차별시정 청구권 보장, 간접고용 전환 기준과 원칙 마련)부터 시작해 사회연대전략 3대 방안(사회연대 생활임금 도입, 노동시간 상한제 도입,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을 검토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참가자들의 대표성을 높여야 사회적 합의가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대표성이 낮은 경우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어렵고, 타협의 결과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현재 경총이나 전경련의 결정이 개별 기업에 구속력을 갖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사회적 타협을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 정부에 사회적 타협을 요구하기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 등을 신자유주의 좌파라고 하는데 사회적 타협은 보통 이들에 의해 추진된다”며 “어느 나라든 (이명박 정부와 같은) 우파 신자유주의 정부는 타협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느 나라건 타협이 추진되는 시기는 자본과 노동 모두 벼랑 끝에 놓여 있을 때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양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대기업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본이 타협에 선뜻 응해줄 이유가 없다”고 진단했다.
 
심상정 공동대표는 지금처럼 자본의 힘이 노동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비정규직 문제처럼 이해관계가 첨예한 경우 힘의 균형이 전제돼야 합의 도출이 가능하다”며 “잘못한 사람이 잘못을 인정할 때 타협이 가능한 것이지, 양보만 해온 사람에게 또 양보하라고 하는 것은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서유럽 나라들을 보면 진보정당이 집권을 했거나 제1야당 수준으로 성숙해 있는 조건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며 “우리 사회는 노사간 이해관계의 규형을 조정해낼 수 있는 정치적 힘이 없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사회적 타협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의 문제를 검토하지 않은 채 사회적 타협만 주장하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며 “노사간 힘겨루기가 가능한 수준까지 노조운동이 성장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기 교수도 “우리 정치는 강력한 보수와 보수에 경사돼 있는 중도, 그리고 소수의 진보로 구성돼 있어 정치적 교환을 위한 조건이 결여된 상태”라며 “사회적 타협이 가능하려면 진보세력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