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상태조사 결과

새벽길 2008. 8. 6. 13:14

프레시안 기사의 원문에는 생생한 코멘트들도 들어 있는데, 아래 담아온 글에서는 이를 뺐다. 이번주에 발매된 시사인에 자세하게 나온 것 같은데, 이를 참조하라.
그런데 이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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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파업' 비정규직 "차라리 노숙인이라면…"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2008-08-05 오후 6:50:56
이랜드·코스콤·KTX 조합원의 35.9%가 "죽고 싶다" 
 
노동건강연대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이날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이랜드일반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 KTX·새마을호 승무원 등 파업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대로 한 정신건강 상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은 120명, 조사 기간은 지난 7월 21일부터 25일까지였다.
 
장기 파업 중인 노동자의 정신건강을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에는 당초 파업 1000일을 넘긴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도 대상에 포함시키려했으나, 조사 기간 중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단식을 벌이고 있어 불가피하게 대상에서 제외됐다.
 
조사 결과 전체 조사대상자 가운데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 '관리대상군'의 비율은 35%에 달했다. 일반인에 비해 2.2배가 높았다. 그보다 더 심각한, 정신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질환의심군' 비율은 18.3%로 일반인보다 무려 7.3배가 많았다.

이는 이들 단체가 지난 1999년 외환위기 직후 명예퇴직 등으로 거리로 쫓겨 나온 서울역 노숙인을 상대로 한 정신건강 조사보다 심각한 결과였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산업의학 전문의)은 "현재의 장애 수준 혹은 심도를 나타내는 지수인 GSI(Global Severity Index, 전체심도지수)를 보면 조사 대상자 평균은 55.8로 서울역 노숙인 평균인 54.7보다 높았다"며 "사회적 배제와 차별 속에 심각한 소외감을 느꼈던 노숙인보다 장기 파업 비정규직의 정신건강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노동조합별로는 가장 오래 파업을 벌인 KTX·새마을호 승무원들이 제일 심각했다. 전체의 21.9%가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코스콤 비정규직(19.5%), 이랜드 비정규직(14.9%)도 응답한 조합원의 15~20%가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우울증, 강박증, 적대감, 신체화 증상이 일반인에 비해 유독 높았다. 응답자의 96.6%가 "매사에 걱정이 많다"고 대답했고,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안 되고 막히는 기분"이라는 사람도 93.1%나 됐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응답한 이들도 전체의 35.9%나 됐다. 이상윤 사무국장은 "일반인의 자살충동 평균치가 19%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일반인보다 2배 가량 높은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는" 적대감 증상도 전체의 95.8%에서 나타났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가는 신체화 증상도 도드라졌다. 응답자 대부분이 머리가 아프거나(85.6%), 근육통 또는 신경통에 시달렸고(82.5%), 허리가 아프다고 느꼈으며(82.3%), 어지럽거나 현기증을 호소하는 사람(77.6%)도 많았다. 특히 코스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에서는 신체화와 대인예민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이날로 파업 329일 째인 이들이 그 시간 내내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됐다. 이상윤 국장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여의도 한 복판에서 장기간 노숙 생활로 인해 주위의 시선에 신경을 쓰게 되거나 몸이 아프고, 분노, 공격성, 울분 등이 쌓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의 가장 큰 원인은 노동조합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역시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41.7%가 본인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의 가장 큰 이유로 경제난을 꼽았다. 조합원의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남성으로 한 가정의 가장도 상당수인 코스콤 비정규직과 40~50대 여성이 대다수인 이랜드 비정규직은 특히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고통 호소가 눈에 띄게 높았다. 각각 39%와 66% 수준이었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영역 2위는 파업의 결과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27.1%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파업의 끝이 과연 장밋빛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이들을 지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3년이 됐든, 5년이 됐든 이길 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이라는 정인열 부지부장의 말은 그런 고통에 대한 토로였다.
 
3위로 나타난 것도 비슷했다. 그것이 복직이든, 포기이든 파업이 종료된 뒤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전체 응답자의 16.2%가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KTX 승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디뎌 2년 반을 일하고 3년 파업 중인" KTX 승무원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하는 불안감이 43.8%로 가장 컸다.
 
주위의 시선도 이들이 털어놓은 고통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현재 서울역에서 농성 중인 오미선 KTX승무지부 지부장은 "농성장 부근에서 혹여 대학 동기나 친구를 만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혹 아는 사람을 만나면 수치스러워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말했다.
 
이 두 단체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해당 비정규직에게 정신과 전문의의 면담 및 상담, 치료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론 당장 나타나는 증상의 치료도 시급하지만, 그보다 이들의 '마음의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때문에 "사회적 해법의 모색"이 강조됐다.
 
또 이날 드러난 결과는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현재 1년 이상 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소위 '장기 투쟁 사업장'은 60여 곳에 이른다. 더욱이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이미 850만 명 시대다. 이들 가운데 또 다른 누군가가 대규모 계약해지와 외주화 등에 맞서 또 다른 곳에서 파업을 시작하고, 장기간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또 마음의 병을 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상윤 사무국장은 조심스러워했다. "정신건강이 나쁘다"고 하면 곧 "미쳤다"로 인식되는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 때문이었다. 혹여 이번 조사 결과가 "저 사람들은 역시 이상한 사람들이라서 저렇게 오랫동안 파업하는 거였구나"라는 시선이 돌아올까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국장은 "그것은 원인과 결과가 오도되는 반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처음부터 '병자'였던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극한 상황에 처하면 나타나는 변화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