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회 사법시험 합격자 1천5명의 명단이 발표되었다. 올해 사법시험에서는 여성 합격자 수가 사상 최대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한양대, 이화여대 출신의 합격자가 전체의 75%를 점했고...
사법시험 3차 면접에서는 10명이 탈락했다고 하는데, 올해 법적으로 쟁점이 되었던 시사적인 이슈들이 집단면접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이버모욕죄, 촛불집회의 순기능과 역기능 등...
이것 때문에 글을 쓴 것은 아니고, 이번 사시 합격자 중에 시각장애인 최영(27) 씨가 포함된 것이 글을 쓴 이유이다. 2차합격시에 워낙 화제가 되어서 3차에서 떨어질 리는 없었고, 역시나 법무부는 자매 합격 등을 포함하여 최영 씨의 합격을 이번 합격생의 특이한 점 중의 하나로 보도자료에 실었다.
과거 언론에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개천에서 용 났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였다.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사회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번 최영씨의 합격이 장애인들의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식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 최영씨는 장애인들이 세상을 헤쳐나가는데 많은 법적,제도적 제약이 있음을 토로하고 있다. 자신 또한 주위의 많은 도움이 있었기에 합격할 수 있었지 만약 사회적 뒷받침이 장애인들에게 고루 향했다면 자신이 첫 시각장애인 사시합격의 영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최영씨의 합격이 이 사회에 장애인 의제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진보신당 내에서 제2창당 토론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진보신당의 진보장판 장애인 당원들은 그 과정에서 장애인 의제를 비롯한 소수자 의제가 제대로 논의되고 당원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은 없음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진보정당에서 장애인 의제나 소수자 의제를 당이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실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문의 이익이나 입장이 아닌 진보정당이기에 요구하는 것"이며, "그 요구가 합리적인 절차에 의해 당이 수용하고 적극 실천할 때만이 그건 장애인 운동이 사는 것만 아닌 진보정당이 사는 것이고 노동운동이 사는 것이고 지역운동이 사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다. 최영 씨는 힘겹게나마 그것을 입증하였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힘든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해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아래에는 최영씨의 사시 2차합격과 관련하여 나왔던 기사들을 모았다.
사법시험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인이 2차 시험에 합격했다. 1947년 법조인 선발시험이 시작된 이래 61년 만에 처음이다. 주인공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최영씨(27).
2002년부터 5차례 사법시험 1차에 응시했으나 시각장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연거푸 불합격의 고배를 마신 뒤 지난해 1차시험 합격에 이어 올해는 2차시험마저 통과했다. 마지막 관문인 3차 면접시험이 남아 있지만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으면 최종 합격하는 점을 감안하면 ‘5전6기’로 법조인 등용을 눈앞에 두게 됐다.
시각장애 3급인 최씨는 완전실명은 아니지만 사물의 희미한 형태만 분별할 수 있을 뿐 책을 읽는 것은 물론 보조자의 도움 없이는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시력이 나쁘다고만 여겼던 그는 고3 대학입시가 끝나고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3급이라는 청천벽력의 진단을 받았다.
2000년 대학에 들어가 2002년 사법시험을 보기 시작할 때만 해도 희미하게 글을 읽을 수 있었지만 2005년부터 급격히 시력이 나빠져 책을 보는 게 불가능해졌다. “사법시험에 대한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눈이 더욱 악화된 것입니다. 시험을 포기하고 다른 살길을 찾기 위해 장애인 직업재활센터에서 교육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남 양산에서 일용직 일을 하는 부모님이 어렵게 벌어 매달 보내주시는 50만원의 생활비를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같은 학교에 다니는 시각장애인 친구가 음성 교재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있고 일본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시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최씨는 복지재단의 도움을 받아 법학 교재를 음성 파일로 만들어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수십, 수백번씩 반복해 들으며 공부했다. 그리고 이듬해 사법시험부터 시각장애인들이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장착된 컴퓨터를 통해 시험을 볼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최씨는 도전을 재개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어머니는 “잘했다, 잘했다”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최씨는 판·검사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자문을 한다든지,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며 장애인들도 사회에서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고 한다.
“시험 준비를 하느라 시력을 잃고도 재활교육을 받지 못해 보행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갈 걸음마 연습부터 해야겠습니다.” 최씨는 장애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찾아 나가길 바란다며 환하게 웃었다.
---------------------------- 귀로 읽은 법학책…‘6년 도전‘ 빛을 보다 (한겨레, 정유경 기자, 2008-10-21 오후 08:58:49) ‘사시 2차합격’ 첫 시각장애인 최영씨
눈앞 어두워질수록 변호사 꿈도 어두워져 절망과 도전의 나날
음성 교재 제작 등 주변인들 도움 컸지만 제도적 지원 아쉽네요
21일 오후 찾아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원룸. 그가 공부했던 책상과 책장은 단출했다. 고시생의 책상에 쌓여 있을 법한 두툼한 <민법 총칙>이나 <형사소송법 해설서>도 없었고, 시각장애인이 이용할 만한 점자책도 없었다. 대학 수업교재로 쓰는 법학개론 두어 권과 노트북이 다였다.
책상의 주인은 ‘건국 이래 최초의 시각장애인 사법시험 2차 합격자’ 최영(28)씨다. 최씨는 이날 여성 합격자 수가 384명(38%)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사법시험 2차 합격자 1005명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는 시각장애 3급으로, 왼쪽 눈은 측정이 불가능하고, 오른쪽 눈은 안경을 써도 시력이 0.2~0.3밖에 나오지 않는다. 맨눈으로는 빛을 겨우 분간하는 정도다.
“오늘 낮 12시께 합격했다고 법무부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일 먼저 부모님께 전화했습니다. 어머님이 ‘잘했다’는 말만 하시면서 많이 우셨어요.” 그의 부모는 경남 양산에서 일용직 일을 하며 그에게 매달 50만원씩 생활비를 보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 저편에 그가 넘어야 했던 절망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처음부터 안 보였던 건 아니다. 어려서부터 밤길을 가면 자꾸 부딪히고 걸려 넘어졌다. 그저 눈이 나쁜 줄로만 알았다. 시력은 계속 떨어졌지만, 왜인지 몰랐다. “초등학교 땐 날아오는 공이 보이지 않아 공놀이는 어림없었죠. 친구들에게 한 번도 먼저 인사해 본 적이 없어요. 목소리 듣고 인사했죠.”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한의원을 찾았던 고3 어느 봄날, 한의사가 ‘망막 박리일 수도 있다’며 안과 검진을 권했다. 결과는 ‘망막색소 변성증’. 점차 시야가 좁아져 실명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재수 끝에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지만, 꿈은 그의 시력처럼 사그라드는 듯했다. 꿈꾸던 변호사가 되려고 2003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2005년까지는 다른 이들과 나란히 필기시험을 치렀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책 한 쪽 한 줄밖에 안 보이더니, 이내 한 글자만 보이고, 2년 전부턴 글자를 전혀 볼 수 없게 됐거든요.” 사용법을 익히지 않았기에 점자책도 소용이 없었다.
절망에 빠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시각장애를 지닌 친구가 “일본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으로 시험문제를 읽어 준다”고 귀띔했다. 2006년 1월 법무부에 신청서를 냈고, 법무부는 2006년 2월부터 국가시험 최초로 시각장애 응시자에게 컴퓨터를 제공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점자를 읽지 못하는 그에게 ‘장인욱 복지재단’은 시험 교재들을 컴퓨터 텍스트파일로 만들어 줬다. 한 권 만드는 데 석 달씩 걸리는 작업이다. 텍스트파일들과, 이것을 읽어 주는 화면낭독 프로그램에 의지해 기본서 14권 가량을 독파했다. 학원 강의나 동영상 강의를 받지 못하니, 좁은 원룸에 틀어박혀 “7시에 일어나 12시에 잠들기까지 하루종일” 강의 테이프를 들었다. 식사 때면 찾아와 함께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집에 데려다 주던 친구들도 없어선 안 될 버팀목이었다.
“모든 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라던 최씨는 ‘아쉬움’도 이야기했다. “교재나 장애인 이동권을 사회적 제도로 뒷받침해 준다면 장애인들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어요. 일본에서는 20년 전에 시각장애인 변호사가 나왔고, 미국에도 시각장애인 변호사들이 많고요. 사회적 뒷받침만 있었다면 제가 최초는 아니었을 겁니다.”
-------------------------------------- “시련에 꿈접고 싶었지만 굴복할 수 없었다” (서울, 오이석기자, 2008-10-22 1면) 시각장애인 첫 司試2차 합격 최영씨
“법률서적의 한 글자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젠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교시절 망막색소변성증 진단
시각장애인으로는 사법시험 사상 처음으로 2차 시험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21일 법무부로부터 받은 최영(27)씨는 기자와 만나 “시력을 잃고 사법시험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남 중 장남인 그는 고교 시절인 1999년 병원에서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았다. 재수 끝에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그의 시력은 점점 나빠졌다.
오른쪽 눈은 아예 볼수 없었고 왼쪽 눈의 시력은 0.2~0.3 정도였고 시야가 10도 이하로 좁아져 사물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시력장애 3급2호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시력이 계속 나빠져 책 한 페이지 넘기기가 어려웠다.”면서 “2005년 1차 사법시험을 치고 그만둘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를 타고나지 않았기에 점자를 읽기도 어려웠던 탓이다. 하지만 장애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대학 후배로 시각장애인이 들어오면서 시각장애인 프로그램 이용법을 배웠다. 그는 일본처럼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지원을 해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했다. 법무부는 2006년 사법시험에 문제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도입했고, 그는 여기에 용기를 얻었다.
●음성 교재로 독학… ‘5전6기´ 시중 고시학원의 강의를 녹음한 테이프를 구입해 들었다. 한 재단은 최씨가 들을 법학 교재 한 권을 음성낭독 기능이 있는 컴퓨터에 서너달씩 걸려서 입력해줬다. 남들보다 공부 시간이 3~4배 더 걸렸지만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다. 최씨는 “강의를 듣고 난 뒤 10분도 안돼 내용을 까먹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무식하리만큼 반복하다 보니 처음에 어려웠던 내용도 차츰 기억되기 시작했다.”고 합격의 비결을 전했다.
최씨는 2007년 1차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6번째 도전한 끝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1년만에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2차시험을 통과했다. 그는 쏟아지는 축하와 관심에 “아직 3차 면접도 남았어요. 최종합격한 것도 아닌데...”라며 겸손해했다.
최씨는 미래의 꿈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미국에는 이미 250여명, 일본에는 3명의 시각장애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그 분들의 활동을 살펴보고 조언을 얻어보겠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들에게도 읽을 권리가 보장됐으면 한다.”면서 “저작권 문제로 음성파일로 변환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은데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으로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최영씨와 민주당 천정배 의원과의 특별한 인연이 화제다.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지난 2006년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시각장애인들이 음성 지원 프로그램이 장착된 컴퓨터를 통해 사법시험을 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 사람이다.
천 의원은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인 지난 2005년 11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 녹음봉사를 하는 자리에서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시각장애인 최민석씨의 의견을 듣고 시험제도 개선방안 검토를 지시했고, 법무부는 2006년 2월 장애인 응시 지침을 적용하고 같은 달 24일, 음성 컴퓨터를 도입해 사법시험 1차를 시행했다. 최영씨 역시 지난 2006년 1월 법무부에 음성 지원 프로그램을 사시에 도입해 줄 것을 최민식씨와 함께 신청했고 법무부는 1달 여 만에 도입을 결정하기에 이른 것. 2002년부터 사법시험을 치렀던 최씨는 이 제도가 도입된 지 1년 만에 1차에 합격했고 올해 2차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천 의원은 "굉장히 기쁜 일"이라며 "단순히 한 명이 사시에 합격한 일이 아니라 가장 어렵다는 시험에 시각 장애인이 장애를 딛고 합격한 것"이라면서 "다른 장애인들도 얼마든지 노력하면 장애인 아닌 사람 못지 않게 성취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천 의원은 "이번 일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다"며 "본인도 뛰어나고 시험을 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국정책임자들이 확고한 문제의식을 갖고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천 의원은 "시각장애인인데 정상인과 같이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사시는 2차가 오픈 북이라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전자법전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처음 출마할 때부터 점자 명함을 사용해 온 천 의원은 지난 2005년 11월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 녹음봉사를 하기도 하는 등 시각장애인의 복지에 관심을 가져왔다.
당시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장으로 실무를 담당했던 우병우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도 "신청서를 보고 직접 서울맹학교에 가서 보니 문서 파일을 자동으로 음성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만 깔면 가능하다 싶어 서둘러 추진했다"며 "미국과 일본 사례 등을 참고해 시험 시간을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반영했다"고 밝혔다. 우 부장검사는 "혜택이 아니라 공정한 제도로, 공정성, 보안성, 형평성에 무리가 없다 싶어 바로 착수했고 당시 천정배 장관께 보고하니 좋은 일이니 잘 하라고 격려해 줬다"고 덧붙였다. 우 부장검사는 "최씨가 앞으로 법조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많을 것"이라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최영씨는 "생각보다 빨리 시험 제도가 추진됐었다"며 "도움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 “시각장애인용 책 녹음 저작권 정부가 해결을” (서울, 장형우기자, 2008-10-23 10면) 최영씨를 만든 ‘정인욱 복지재단’
사법시험 사상 최초로 시각장애를 딛고 2차시험에 합격한 최영(27)씨의 뒤에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복지재단과 시각장애인이 개발한 문서 음성화 프로그램이 있었다. ‘리더를 키운다.’는 비전으로 공부하는 시각장애인들을 지원하고 있는 정인욱 복지재단은 1993년 국민들에게 장작 대신 연탄을 연료로 공급해 삼림의 황폐화를 막은 고(故) 정인욱(1999년 별세) 강원산업 회장이 설립했다. 지금은 고인의 맏딸인 정영자(68)씨가 이사장을 맡아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맹학교 앞에 살았던 고 정 회장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20여년간 책 녹음봉사를 했고, 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그 뜻을 이어받아 2004년부터 법전 및 관련 서적을 텍스트 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저작권 문제로 출판사에서 파일을 넘겨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각종 서적의 글씨 하나하나를 모두 컴퓨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재단은 엘리트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맹학교 지원과 점자번역사업, 문화예술, 복지 등 시각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전반의 사업을 펼쳐 가고 있다. 또 매년 시각장애 고등학생 10명, 대학생 3명을 선발해 해외로 어학연수를 보내기도 한다. 재단의 지원을 받는 김정호(37·서울대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씨는 동료 3명과 함께 텍스트 파일 음성화 프로그램인 ‘스크린 리더’를 개발했고, 이 프로그램은 최영씨가 합격의 영광을 안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김씨는 22일 최씨의 합격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면서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장애인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 상징적인 계기”라면서 “정부가 나서 저작권 문제만 해결해 준다면 제2, 제3의 최씨가 줄이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 씨의 사시 합격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다. 과거 종이로만 치러지던 사법시험에 장애인도 도전할 수 있게 IT기술을 도입해 제도를 개선한 천정배 전 장관과 교재 및 수험도서를 음성인식 가능한 파일로 만드는 역할을 지원한 민간복지재단은 칭찬할만하고 시상계획이 있다면 시상을 해야 한다.”
24일 열린 보건복지가족부 종합 국감에서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고시 2차시험에 합격한 최영 씨의 사례를 통해서 장애인정책관, 근로지원인제도, 보조기기지원법 등 우리 사회에서 곧 바로 시행돼야할 장애인정책들을 짚어냈다.
먼저 박 의원이 시상계획을 묻자,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이번 일은) 많은 장애인이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며 “시상할 대상도 있고 감사편지 대상도 있는데 주무장관으로서 적절한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박 의원은 “이번 일을 통해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것은 장애라는 것이 본인의 신체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 환경이 어떻게 바뀌느냐 바뀌지 않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 시점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시각장애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이 바로 장애인정책책임관 도입할 기회"
더 나아가 박 의원은 “장애인복지법 12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해당 행정기관의 장애인정책을 효율적으로 수립·시행하기 위해 반드시 장애인정책 책임관을 지정하도록 돼 있다”며 “각 부서마다 법에 따라 장애인정책책임관을 다 지정해 법의 취지를 따른다면 복지부는 다른 부서에 비해 적어도 장애인정책에 있어서 부총리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이번 일을 장애인복지법에 있는 장애인정책 책임관 제도를 시행하는 계기로 만들어 관련부서를 지도하고 끌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전 장관은 “실제 장애인처럼 여러 가지로 차별받기 쉬운 환경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전담해서 책임을 지고 챙겨주는 공무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책임관 제도는 법 검토를 통해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장애인 근로지원인제도, 좀 더 과감하게” 전직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인 박 의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 장애인계가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는 근로지원인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최영 씨가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판·검사직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류를 읽어주고 검토해 주는 보조인이 필요하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권리이며 이미 선진 외국에서도 수용하고 있는 제도이다.”
박 의원은 “사법시험은 개선됐지만 민간 대기업도 배려를 해준다면 얼마든지 중증장애인의 진입이 용이할 것”이라며 “민간기업이 중증장애인을 채용하게 하려면 고용주에게 근로지원인제도 같은 국가가 당연히 지원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노동부에서 현재 시범사업으로 근로지원인제도를 시도하고 있는데 좀 더 과감히 시행될 수 있도록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보조기기지원법 제정도 놓치지 말아야” 보조기기지원법 제정이라는 장애인계의 숙원도 잊지 않았다. 박 의원은 “스크린리더라든지 보이스 아이 등 신기술이 많이 개발돼 시각장애인이 점자 아니더라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인터넷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저작권법과 보조기기 지원법이 만들어지지 않아 현재 어려움 겪고 있다”며 “이제는 장애인정책관 제도를 활용해서라도 좀 더 과감하게 관련 부처에서 이러한 제도에 관심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 장관은 “국민적 관심이 고조될 수 있는 때를 이용해 시각장애인 등 장애인을 위해 박차를 가하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보이스아이는 의원입법으로 발의돼 있는데 문광부와 협의해 통과토록 하겠다. 또 근로지원인제도는 모의적용해 시범사업을 평가 중인데 노동부 장관께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요청하겠다”고 답변했다.
제2의 최영씨를 배출하기 위한 방안은? (에이블뉴스, 맹혜령 기자, 2008-10-25 10:58:11) 나경원 의원 “시각장애인 도서 접근성 높여야”
출판사 전자파일 납본시스템 구축이 대안
시각장애인으로는 국내 첫 사법시험 2차 합격자인 최영씨. 최씨는 정부·공공기관이 아니라 민간기관인 정인욱복지재단 지원으로 제작된 음성도서를 읽으며 수험공부를 했다. 제2, 제3의 최영씨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도서관서비스 이용을 활성화하고 전자파일 납본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정책제안이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됐다.
먼저 국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24일 문화체육관광부 종합감사 보도자료를 통해 “장애인들의 연평균 공공도서관 이용률은 전체이용률의 0.16%에 불과하며 전국 공공도서관 총장서 중 시각장애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대체자료비율은 총장서의 0.2%에 불과하다. 또한 연간 약 5만 종의 신간서적 중 대체자료로 변환되는 것은 불과 2%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들의 연평균 공공도서관 이용률 0.16%
이 국감자료에 따르면 2007년 말 기준 등록 장애인은 214만8,889명으로 전체 국민의 4.3%를 차지하고 있으나 장애인의 컴퓨터·인터넷 접근 및 보유여부와 관련된 정보접근지수는 전체 국민의 76% 수준으로 비장애인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다. 또한 국립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가 2007년 7월 전국 16대 광역시·도지역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장애인들의 연평균 공공도서관 이용률은 전체 이용률의 0.16%에 불과했다.
또한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62% 이상이 장애인서비스를 실시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실제로 장애인의 도서관 이용률은 장애인들이 접근 가능한 대체 자료가 거의 없어 전체 이용률의 0.16%에도 못 미쳤다. 반면 일본의 경우 공공도서관의 대체자료 소장은 소장종수만 64만7394가지에 소장권수는 152만1717권에 달해 우리나라의 10배 수준에 이른다.
또한 공공도서관 장애인서비스 전담인력 배치현황을 살펴보면 전담직원이 없는 경우가 전체 기관의 69%를 차지하고, 전담인력은 주로 1명 이내가 대부분이어서 전체 도서관의 92%가 장애인서비스와 관련된 직원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체자료 제작현황에 따른 문제점은?
이처럼 국립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의 대체자료 제작현황에 따른 문제점은 민간주도로 인한 비효율성 문제와 중복제작으로 인한 예산 낭비의 문제, 교양도서 중심으로 인한 비실용성의 문제, 불법이용의 문제 등이 지목되고 있다.
나 의원은 첫 번째 문제점으로 장애인을 위한 대체자료를 국가가 주도하지 못한 채 민간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두 번째 문제점으로는 중복제작으로 인한 예산낭비의 문제를 꼽았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5개의 복지관과 4개의 공공도서관이 제작한 대체자료의 수는 총 5만5,696종으로 연간 약 1만4,000종이 제작됐으나 실제로는 동일한 자료들이 여러 기관에서 중복으로 제작돼 장애인계에서는 연간 제작 종수를 1만2,000종에서 2만종 내외로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2007년 우리나라 총 출판물양은 4만1,094종으로 여기에 정부간행물을 포함하면 연간 약 5만종의 신간서적이 발간되고 있으나 이중 대체자료로 변환되는 것은 2% 미만이다.
세 번째는 문학 등 교양도서 중심으로 인한 비실용성을 꼽았고, 네 번째 장애인들의 도서관 이용 비활성화와 관련해 저작권법에 의해 출판사로부터 원본 파일을 받지 못해 일일이 데이터를 입력하는 등의 과정이 전문서적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어 이용실적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비판되었다. 또한 많은 도서관들이 텍스트형태의 전자도서를 인터넷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어 저작권에 저촉되는 불법이용의 문제와 타 장애유형을 위한 대체자료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현행 저작권법상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공표된 출판물을 점자나 녹음도서로 변환할 수는 있지만 텍스트형태로 웹상에 게재하는 것이 불법인 만큼 이와 관련된 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도서관법 개정 통해 전자파일 납본 의무화 이에 대해 나 의원은 “현재 국내 출판물의 납본기관으로 지정된 국립중앙도서관이 출판사로부터 필요시 저작물의 전자파일을 제공받을 수 있는 도서관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 때 파일제공에 따른 적절한 보상은 국고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나 의원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체자료를 제작하는 9개처의 소요경비는 45억원이고 2006년도 전국 37개 점자도서관등에서 대체자료 제작을 위한 총사업비는 73억원에 이르고 있다”며 “출판사로부터 전자파일을 납본 받을 경우 텍스트 재입력에 소요되는 인건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나 의원은 “예산 절감 외에도 장애인들도 비장애인 보는 책을 거의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며 “장애인들도 어렸을 때부터 비장애인들과 같이 다양한 자료들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 장애인들 또한 고학력자가 증가하며 이는 곧 다양한 분야로의 취업의 길이 열리게 돼 장애인들의 재활과 경제적 자립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