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만 잠깐 보았지만, 처음부터 히트예감했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곡인데다가, 노다메 칸타빌레의 성공에서도 보이듯이 클래식 드라마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명민이 강마에로 나온다니 타 방송의 바람 시리즈보다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베토벤 바이러스를 접하면서 느꼈던 감정 중에는 저들 연주자들도 노동자인데 하는 생각도 있었다. 상반기에 공공부문 구조조정 대응에 관한 용역을 하면서 우리 생각과는 달리 문화예술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서울시의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해체기도와 관련하여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한꺼번에 몰아보든지 해야지 하면서도 허전한 구석이 있었다. 이를 레디앙의 기사가 보완해주었다. 기사에 나오는 공공노조 세종문화회관지부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노동자로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수많은 예술노동자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을 즐기면서 그 또한 노동의 산물임을 잊지 않을 필요가 있다. 드라마 한편 보면서 별 소리를 다 하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알아둘 것은 알아두어야 한다. 참, 웬 두루미 할지도 모르는데, 두루미는 이지아가 연기를 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바이올리니스트이다.
------------------------------------ “두루미도 예술노동자예요” (레디앙, 2008년 10월 03일 (금) 10:25:15 윤춘호 현장기자) [인터뷰-김은정] '베토벤 바이러스'와 서울시 오케스트라
▲김은정씨.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열기가 뜨겁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평상시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을 소재로 한 것부터 탤런트 김명민의 신들린 듯한 연기까지 많은 사람이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공공노조 세종문화회관지부 김은정 지부장도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 중 한사람이다. 아니 보통 사람보다 훨씬 관심있게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있다. 김은정 지부장은 3년 전까지 서울시 오케스트라에서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다르지만, 고마운 '베토벤 바이러스' “고맙죠. 이렇게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준 드라마가 거의 처음이잖아요. 하지만 오디션 문제나 이런 건 현실하고 다른 건 사실이죠.”
김은정 지부장은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16년간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그러나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정업무를 보고 있다.
“2005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에 세종문화회관 소속의 국공립예술단체가 법인화됐어요. 법인화라는게 민영화랑 거의 같은 의미인데 그러면서 ‘서울시립오케스트라'도 재단법인이 된거지요.”
법적으로는 기존단체가 없어지고 새로운 단체가 만들어진 셈이다. 단원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직장이 없어진거고 서울시향 입장에서 기존 단원들을 데려다 쓸 의무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곤 오디션을 보고 새로운 단원을 뽑았다.
“다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은 단원들은 오디션을 또 봐야 했어요. 단원들 중 저를 포함해서 3명이 오디션을 거부했다고 해고가 됐죠” 지난한 복직 투쟁 끝에 가까스로 복직은 됐지만 그가 일할 오케스트라는 사라지고 만 것이다.
사람 자르기 위한 오디션 제도 그리고 법인화된 서울시향 오케스트라는 1년에 한번씩 오디션을 보고 단원들을 자르고 새 단원으로 충원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이라면 당연히 최고의 실력이 있어야 하고 그런 실력을 검증하는 오디션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외국의 경우는 한번 입단하면 종신 고용이예요. 평가제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해고를 전제로 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드라마에서 김명민도 얘기하지만 오케스트라는 앙상블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 안 하고 나만 오디션 붙어야겠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오케스트라 고유의 색깔을 낼 수가 없거든요.”
베를린 필, 뉴욕 필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고 한다. 그건 종신단원들이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1년에 한번씩 오디션을 보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서울시향 특유의 오케스트라 색깔을 내기란 어렵다는 얘기다.
“오디션 제도가 얼마나 웃기냐면 시에서 오케스트라 30% 구조조정 해라. 이렇게 내려와요. 그러면 거기에 맞춰 오디션으로 연주자를 자르는 거예요” 실력 향상과 기량 연마를 위한 오디션 제도가 아니라 사람자르기 위한 오디션 제도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나는 예술 노동자 그렇다면 현저히 실력이 떨어지는 단원들도 끌고 가야 한다는 얘긴가?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단원들은 없어요. 처음 들어올 때 일정 정도 수준을 갖췄고요. 그리고 설사 실력이 모자란고 하면 따로 연수를 받게 하거나 훈련 과정을 갖게 해야죠.”
김은정 지부장은 자신을 ‘예술 노동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처음 노동자 집회에 나갔을 때 사람들의 다른 시선도 감수해야 했다고 했다. 클래식 하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무슨 노동자냐 하는 시각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우리도 일한 댓가를 받아야 생활이 가능한 노동자예요. 그런데 처음 집회를 나갔을 때는 같은 노동자들도 우리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하는 느낌이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우리도 똑같은 노동자예요. 해고돼서 잘리는 것도 똑같고 월급 박하게 받는 것도 똑같아요. 먹고 사는 거 걱정하는 것도 똑같구요.”
그리곤 노동조합 집회 때 투쟁가요만 부르는 가수들 사이에서 언제부터인가 김은정 지부장이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김은정 지부장이 연대하는 방식이다.
바이올린 연주로 연대 “저도 처음엔 공연은 공연장에서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곳.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에서 하는 연주도 필요하다고 느낀 거죠” 그래서 나무로 만든 전통 바이얼린을 두고 전자 바이얼린을 구입했다.
“나무로된 바이얼린으로 야외에서 연주를 자주하면 악기가 망가져요. 그래서 전자바이얼린을 구한 거죠.” 지난 촛불 집회때는 서울 시청 앞에서 수만명의 군중 앞에서 연주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김은정씨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
“시민들에게 제가 연주를 함으로써 조금이라도 위안과 기쁨을 주었다면 전 행복해요. 그리고 언제라도 그런 자리가 있다면 또 연주를 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클래식하면 아직도 사람들은 낯설다, 지루하다, 서민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서라도 머리띠를 두르거나, 촛불을 든 사람 앞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은 어렸을 때부터 접근해야 돼요.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초중고로 찾아가야 한다’, ‘가서 직접 클래식을 들려줘야 한다’고 세종문화회관에다 요구했어요.”
처음 학교에서 오페라공연을 하면 다 잔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접촉을 하게 되면 집중하는 애들이 생기고 클래식의 참맛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을 시민들에게 접근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예술하는 사람들의 노조가 필요한 이유
“그래서 예술하는 사람들의 노동조합이 필요한 거예요. 법인화된 예술단체가 효율, 상업성으로 따지게 되니까 찾아가는 음악회나 공연 관람료 인하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주장했죠. 문화 기본권은 먹고 사는 문제랑 똑 같은 거다.
돈이 있건 없건 누구나 차별없이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거죠. 최근에 충무아트홀이 ‘윈드앙상블’을 만든지 2년 됐는데 이걸 수익성이 없다고 해체하려 한다고 해요. 이러면 안되는 거죠.”
김은정 지부장은 문화는 공공재라고 했다. 예술의 공공성을 망각하고 예술단체를 단순히 수익성으로 내 몰아서는 문화 자체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김은정 지부장이 마지막에 당부했다 "두루미도 예술노동자예요. 방송보시는 분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이다.
아직도 평생 세종문화회관을 단 한번도 찾아가지 못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고 오페라와 뮤지컬, 오케스트라 공연을 본 사람보다 보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게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이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편한 공간에서 보다 아름다운 공연을 보다 쉽게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게 바로 예술하는 사람들이 만든 노동조합의 목표이기도 하다.
---------------------------------- 찌질이들 클래식 반란 성공 (한겨레, 하어영 기자, 2008-09-29 오후 02:56:24) ‘베토벤 바이러스’ 블록버스터급 제치고 1위
김명민 이번엔 강마에로 ‘빙의’
적확한 지휘·감정선 화면 장악
송옥숙 탱고 독주 소름 와르르
연주장면 핸드싱크 일부 어색
3, 5부에서 선보인 영화 <미션>의 주제곡 ‘가브리엘스 오보에’가 귀를 잡아끈다. 영화에서는 남미 오지를 찾은 신부가 오보에 소리를 원주민들에게 들려주며 교감하는 대목에서 울려 나온다. 드라마의 경우 강마에가 오케스트라의 새 경지를 처음 단원들에게 경험하게 해준다는 설정과 맞닿아 있다. 라이벌 정명환이 자신의 ‘떨거지’ 오케스트라를 보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경쟁심에 불타 선곡한 주페의 <경기병서곡>, 소시민 오케스트라의 깜짝 성공을 자축하며 울리는 로시니의 <윌리엄텔 서곡>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3·4부 연습장면의 어설픔이 5부의 완성도와 대비되면서 음악들이 극적효과를 더한다.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는 강렬한 탱고 음색으로 주부 정희연(송옥숙)의 평범한 삶이 뒤바뀌는 느낌을 증폭시킨다.
시장이 단원들의 경력을 문제삼자, 강마에가 “슈베르트가 당신 같은 시장을 만났다면 이런 곡은 나오지 않았다”며 잠깐 들려준 피아노곡은 저 유명한 슈베르트의 <송어>다. 휴대전화 벨소리 등으로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곡이다.
앞으로 기대되는 곡으론 오펜바흐의 협주곡 <재클린의 눈물>과 베토벤 <교향곡 9번>의 4악장 ‘환희의 찬가’(합창)가 꼽힌다. <재클린의 눈물>은 강마에의 시립교향악단이 용재 오닐과 협연하는 이번주(7부 예정)에 방영 예정이다. <교향곡 9번>은 7부 이후 다시 한번 갈등과 시련을 겪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9부에서 등장한다. 특히 <교향곡 9번>은 클래식을 업으로 삼기에는 버거운 일상의 소시민 연주자들이 ‘프로’로 거듭나는 클라이맥스의 장식곡으로도 예고된 상태다. 음악을 총괄하는 서희태 예술감독은 “드라마 끝나고 이 곡 어디서 들어봤는데… 하면서 인터넷에서 쉽게 제목을 찾을 수 있는 곡들로 구성했다”고 말했다.
---------------------------------- [문화]‘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 드라마? (2008 10/07 위클리경향 794호, 박용완<월간 ‘객석’ 수석기자>) 피아노 라이브 연주 등 이색 소재 도입… 일부선 “어색하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주변 사람들처럼 “민망하다”는 말을 연발하지는 않는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 음악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휘자 강마에(김명민 분)와 충돌하며 음악을 만들어가는 대다수 사람은 귀족과는 거리가 먼 소위 일반인이다. 그들은 모두 음악에 대한 과거의 끈을 가지고 있지만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해 꽤 오랜 세월을 생활인으로 살아왔다. 특히 연주자를 꿈꾸며 자신을 정련해오다 주부로 사는 정희연(송옥순 분)과 복사기 회사 과장 박혁권(정석용 분)이 드라마의 주제를 가장 설득력 있게 대변하는 캐릭터다. 음대 출신으로 설정된 이들 캐릭터는 제도 교육을 받지 않고도 트럼펫은 물론이고 천재적인 지휘 실력까지 갖춘 경찰 강건우보다 ‘있음직한’ 인물들이다.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등장하면 가슴 한 켠이 찌릿해지는데, 배우의 연기력뿐 아니라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현실성 덕분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 드라마가 아닌, ‘클래식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때문에 음악보다 스토리가 중요하다. 10년간 악기를 놓은 사람이 현역으로 뛸 수 있느냐는 테크닉적인 문제보다 이들이 생업을 버리고 왜 음악으로 돌아오느냐는 문제에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5회에 등장했던 강마에와 강건우의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프로젝스 오케스트라가 석란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날 강건우는 공연에 불참하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경찰서에 출근한다. 강마에가 강건우를 찾아가 함께 공연을 하자고 설득한다. 강건우가 “음악은 그냥 꿈으로 남겨두겠다”며 거부하자 강마에는 “노력하고 그것을 좇을 때 꿈인 것이지, 노력 없는 꿈은 꿈이 아니라 잡을 수 없는 별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강마에가 돌아간 후 강건우는 공연장으로 달린다. 이때 배경음악은 ‘빌헬름 텔 서곡’으로 꿈을 향해 뛰어가는 강건우의 모습과 무척 잘 어우러졌고 감동적이었다.
대부분 공연 장면에 ‘도이치 그라모폰’(독일의 클래식 음반사)의 음원을 사용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노란 딱지’는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한 번쯤 접했을 법한, 최상의 연주를 뜻하는 일종의 표상이다. 석란시향이라는 신흥 오케스트라가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처음으로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될 다수 시청자를 위해서라면 최상의 음원, 듣기 좋은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베토벤 바이러스’가 끝나면 클래식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분명 커질 것이다. 갑자기 늘어난 저변의 수준이 전보다 떨어질 수도 있다. 클래식 공연장이 전에 없이 소란스럽고 부산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어난 저변을 어떻게 교육시키고, 성장시키느냐는 드라마 제작자가 아닌 음악계의 몫이다.
--------------------------------- 브라보 베토벤, 브라보 김명민 (한겨레 21 2008.10.17 제731호,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연기의 마에스트로 반열에 올라선 배우와 작품을 보는 기쁨, 드리마 <베토벤 바이러스>
브라보! 문화방송 <베토벤 바이러스>를 볼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를 연기하는 김명민은 이 순간 연기의 마에스트로 반열에 올라섰다. 김명민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연기하기 위해 필요한 악보를 통째로 외웠다거나, 전문가도 인정할 만큼의 지휘 솜씨를 보여줬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그런 연기를 해야 표현할 수 있는 강마에를 골라낸 김명민의 선택이다.
강마에의 인생의 기준은 오직 순수한 음악 실력이다. 실력 없는 오케스트라로는 대통령 앞에서도 지휘를 포기하고, 실력 없는 연주자에게는 ‘똥덩어리’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 실력 때문에 늘 새로운 오케스트라에 취직하고, 폭언을 하되 연주자에게 사감을 담지 않을 만큼 공사 구분이 완벽하다. 그는 인간관계나 정에 휘둘리지도 않고, 타인에게 허리 굽히지 않고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음악에서만큼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조언해준다.
‘하우스’나 장준혁과 닮았지만 달라
한국에서 이런 캐릭터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강마에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의 까칠한 천재 의사 하우스와 닮아 보인다. 그러나 강마에는 하우스와도 다르다. 강마에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극단적인 과잉과 결핍을 얻는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음악을 위한 도구로 볼 만큼 실력에 대한 숭배가 과잉이라면, 음악 이외의 어떤 것에도 능숙하지 못한 것은 결핍이다. 그는 운전도 못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어 기르는 개 ‘토벤이’에게 말을 건다. 강마에가 이런 과잉과 결핍을 얻은 것은 그의 지금 생활이 뒤돌아보지 않는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강마에는 돈이 없어 다른 사람들의 발 마사지를 하며 돈을 번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 그가 다른 음악가들처럼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살기는 힘들다. 만약 그가 부유했거나 복지가 발달된 나라들에서 태어났다면, 그의 음악을 대표하는 ‘긴장의 미학’은 ‘여유의 미학’이 됐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강마에처럼 살기 위해서는 강마에처럼 인생의 다른 부분이 결핍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원하는 삶을 살기에는 너무나 고단한 인생의 딜레마. 강마에의 딜레마는 곧 김명민이 연기했던 문화방송 <하얀 거탑>의 장준혁과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강마에와 장준혁은 똑같이 ‘개천에서 난 용’이고, 자기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강마에가 끝없는 실력을 원하는 대신 장준혁은 끝없는 성공을 원한다. 강마에가 음악적 성취를 위해 인간관계의 단절과 완벽한 공사 구분을 선택한다면, 장준혁은 성공을 위해 실력뿐만 아니라 온갖 인맥을 쌓고 부정을 저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강마에는 실력에 대한 욕망이 과잉됐고 평범한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이 결핍됐다면, 장준혁은 성공에 대한 욕망이 과잉돼 윤리가 결핍됐다. 혼자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끝없이 실력을 쌓는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부와 로비와 협잡을 해야 한다. 장준혁이 단순한 악인을 넘어 시청자의 사랑을 받고, 강마에가 비정상적일 만큼 모난 성격에도 시청자를 매혹시키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장준혁과 강마에의 인간적인 결함 뒤에는 원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다른 것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피곤한 삶이 담겨 있다. 강마에가 가장 멋있는 순간은 물론 그가 멋지게 지휘를 할 때다. 하지만 강마에가 괴짜가 아닌 연민의 대상이 되는 순간은 그가 쓰러진 ‘토벤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애견의 죽음을 기다리며 울기 직전의 모습을 보일 때다. 그는 음악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이 돼버렸다. 김명민을 지금 연기의 마에스트로라 부를 수 있는 것은, 그가 상반된 개성의 두 캐릭터를 모두 연기하면서 그들에게 담긴 한국인의 어떤 보편적인 고민을 담아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죽도록 노력해야 하고, 죽도록 노력하는 사이 무언가 결핍되는 인생. 김명민은 그렇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지금 시청자가 매혹과 연민과 공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어떤 사람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준다.
단원들이 채워주는 인간적인 결핍
그건 지금 한국에서 김명민만이 보여주고 있는 유형의 연기다. 지금 TV 드라마에서 이렇게 극의 한가운데에서 시청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호소력을 갖는 배우는 드물다. 이는 한때 연기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연기를 그만둘 생각을 했고 연기를 할 때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는 걸로 유명한 김명민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김명민, 혹은 강마에는 <베토벤 바이러스>에 “브라보!”를 외치게 되는 중요한 이유다.
<하얀 거탑>은 장준혁을 통해 신자유주의 속에서 성공을 위해 헐떡이며 달리다 죽음으로 내리닫는 사람의 인생을 그렸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강마에가 소규모 시향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단원들은 그의 인간적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감성을 나눠준다. 고집불통의 실력 우선주의자가 자신의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고도 세상과 조우할 수 있는 방법. <베토벤 바이러스>는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기이할 정도로 낙관적이고 따뜻한 감정을 만들어낼 줄 안다. 경쟁은 치열하다. 마음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강마에가 변할 수 있다면, 세상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언젠가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 따뜻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또다시 그의 연기에 “브라보!”를 외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