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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길 2025. 11. 16. 01:44

아직도 영포티라는 용어가 뜬금 없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6641
‘영포티’에 긁히는 자, 신나는 자, 뻘쭘한 자 [정준희의 ‘미디어 레퀴엠’] (시사IN, 정준희 (미디어인문학교 해시칼리지 원장), 2025.11.02 07:36)  
문제에 주목하기로 했으면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뜬금없이 불어온 영포티 조롱 바람에 제도권 언론이 호응하는 방식은 ‘바이러스적 담론 주체들’과 다를 바 없다.
참 하기 싫은 말이지만 해야 할 때가 있다. 누군가 듣기 싫어할 고언(苦言) 같은 걸 가리키는 건 아니다. 고언은 애초에 그 말의 정의가 “듣기에는 거슬리나 유익한 말”이다. 그런 건 별 주저 없이 한다. 약간 사이코패스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은 하기 싫지 않다. 유익하다면 상대가 거슬려하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그 말을 하는 내가 미움을 받을까 봐 주저하는 거라면, 그냥 해야 한다. 소명으로서의 내 직업은 원래 그런 직업이다. 그렇다고 ‘미스터 쓴소리’ 같은 허접한 칭호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고언이라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에게 인기를 끌기 위함일 경우가 많아서다. 그건 고언이라기보다는 감언에 가깝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감히 던지는 말인 감언(敢言)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달달해서 내게 이로운 감언이설(甘言利說)이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할 말이란 무얼까. 그렇게 하는 게 정말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걸까 싶기는 해도, 반드시 ‘인용’해서 ‘언급’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말을 가리킨다. 예컨대 나는 어지간해서는 정치인들의 말을 인용하는 걸 매우 싫어한다. 그들은 어떻게든 인용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족속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의 귀와 심장에 콕 박히는 말을 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것 자체는 나쁠 것 없다. 또 애초에 정치란 그런 거다. 하지만 정치인이, 권력자가 한 말이라고 해서 그냥 옮겨주고 싶지는 않다. 정말 해야 할 말이고 들어야 할 말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퍼뜨리고 싶어서’ 하는 말에 나까지 도움을 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미스터 쓴소리’가 그렇듯 ‘명언 제조기’라는 호칭 역시 전혀 명예롭지 않다. 잘 퍼지는 말과 좋은 말은 같지 않으며, 때로는 그 성격이 상충되기까지 한다. 지금처럼 혐오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인용하여 언급하기 싫지만 그래도 그럴 필요가 있는 경우란 그것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떠오를 때다. 현존하게 됐고, 누구나 인지할 수 있게 된 걸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게 옳지 않을 때인 것이다. 근거에 대해서는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는, 주장을 위한 주장, 애초부터 억지를 부리려고 지어낸 말들은 비록 언급하기 싫지만 때로 해야 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책임이 큰 자리에 있는 이들의 발언일 경우 정확한 사실을 짚고 논박 해주지 않으면 자칫 사회적 영향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 인용은 무익하다. ‘비판’과 ‘교정’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혐오의 언어다. 인용을 하는 내 입과 손이 더러워질뿐더러 그걸 보고 들어야 하는 이들의 눈과 귀가 불쾌해지고 나아가 오염이 될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비판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여의치 않다. 혐오는 감정이다. 이성과 달리 감정은 비판으로 교정되지 않는다. 다른 감정으로 감화시키거나 튕겨내는 수밖에 없다. 혐오를 만들고 퍼뜨리는 자들은 혼내야 하지, 설득할 수 없다. 이들을 혼내는 건 그들의 반성보다는 그걸 지켜보는 이들의 ‘윤리의식’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언급하기 싫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언급하기 싫지만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같은 최근의 혐오 언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포티’이다. 나는 이 말이 대략 한 달 전쯤부터 부쩍 많이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생뚱맞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만들어진 지 오래된 말이었다. 세대를 규정하는 숱한 말들이 거의 그렇듯, 매우 부적절하고 그리 설득력도 없다. 지적으로는 참으로 나태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을뿐더러 감성적으로도 별반 달라붙는 맛도 없는 단어였기에, 그냥 무시하고 살던 터라서 더 그랬다. 별안간 이 단어의 언급이 온라인에서 급격히 늘어난다 싶더니, 이미 떠돌던 것들이 다시 호출되거나 새로운 밈이 만들어졌다. 그걸 총망라한 이미지가 등장했다 싶더니, AI 시대에 걸맞게 동영상으로 ‘실사화’된 것들까지 나왔다. 급기야 제도권 언론이 이를 언급하는 데에 이르렀다. 
문제에 주목하기로 했으면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 나는 이것을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현상’이라 보고, 그것의 주체와 원인, 그리고 그것이 지금 활성화되도록 이끈 조건을 탐색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엄밀한 학술적 분석이 필요한데, 지금 이 자리에선 그걸 하나하나 수행할 순 없다. 그래서 관련된 주체의 다양성과 그들의 ‘동기적 다양성’에만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요컨대 이 현상의 배후에는 여러 주체들이 얽혀 있으며, 각자가 이것에 주목하고 언급할 때 어떤 감정적 동기가 작동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조롱과 폄훼, 혐오의 대상이 된 당사자들은 당연히 불쾌해하며 이를 언급한다. 불쾌하기만 했으면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을 테다. 이걸 만들고 퍼뜨리는 자들의 의도가 그런 불쾌감을 자극하여 ‘발끈’하게 만드는 데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요즘 많이 쓰이는 ‘긁힌다’라는 표현은 일부러라도 피할 생각이다. 저들의 언어, 가뜩이나 조잡하고 저열하기 짝이 없는 언어를 굳이 가져다가 우리의 마음, 이 복잡하고 중층적인 심사를 표현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은 딱히 어쩌지도 못한 채 난감해한다. 자신들의 자식뻘, 조카뻘, 한참 후배 혹은 멀기만 한 어린 직원급에 해당하는 이들이 온라인에 숨어서 자신들을 손가락질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다. 자신들이 사회적 약자까지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연령이나 지위로 치자면 저 단어를 쓰며 낄낄대는 이들이 조금 더 약자라면 약자인 것 같다. 풍자라고 말하기엔 저급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혐오라고 말하기도 어색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불쾌하지만, 주춤하며, 난감해한다. 
이걸 만들고 퍼뜨리는 자들은 모처럼 신이 났다. 원래는 자신들이 만든 단어도 아니었고,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케케묵은 표현에 불과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반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속 시선으로 보자면 꼴같잖은 늙다리들이 ‘미중년’이니 ‘영포티’니 하면서 별로 아름답지도 않고 별로 젊지도 않은 시늉을 하는 게 못마땅하고 역겨웠을 뿐일 테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들의 주변에서 흔히 마주할 만한 그런 ‘꼰대’ 초입의 인간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자신이 늙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군상들의 ‘청춘 코스프레’가 가뜩이나 싫었는데, 그걸 기가 막히게 짚어서 조롱하는 이미지가 나왔다. 게다가 마침 조롱의 대상이 된 그들은 ‘요즘 젊은것들’을 욕하고 훈계하던 윗세대로 직장에서, 학교에서, 혈연과 지연이 작동하는 공간 안에서 자신들을 ‘아랫것들’로 찍어 누르던 ‘윗것들’이다. 오프라인에서야 보는 눈이 있고 본인과 상대의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대놓고 조롱할 순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눈치 볼 일도 없고 세력이 딱히 밀리지도 않는 듯하니 좋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세대는 ‘성별’에 의해 ‘정치적 성향’이 나뉘는 것 같았는데, 이런 문제에 있어서만은 상당 부분 일치단결한다. 
딱히 혐오의 대상이 된 세대도 아니고, 또 이걸 만들고 퍼뜨리는 적극적 주체도 아닌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무심하게 시크’하다. 하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고, 은근히 재미나기도 하고, 은근히 고소하기도 하고, 은근히 긴장도 된다. 연령대는 비슷하지만 정치 성향이나 행태 등에서 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 요컨대 ‘나는 대충 그 세대에 걸쳐 있지만, 너희들이 욕하고 싶은 그런 사람은 아니다. 따라서 너희들이 알려주는 영포티에 속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모양새다. 영포티 조롱 이미지에 등장하는 복장과 액세서리는 가급적 피한다. ‘스윗남’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여성주의로부터도 거리를 두고, 김어준 추종자라거나 민주당 지지자라는 욕을 먹지 않기 위해 그들의 편향과는 다른 자신들의 공정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렇게 온라인에서 손가락질하는 젊은이들을 이해해주면서,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을 탓하는 진정한 서티·포티·피프티·식스티 등등이 되려 한다. 
뜬금없이 불어온 영포티 조롱 바람에 제도권 언론이 호응하는 양식 속에서도 이런 감정적 동기가 읽힌다. 이들이 공을 들여 그 바이러스적 혐오를, 그 혐오의 밈을 받아서 퍼뜨리는 동기는 결코 불쾌감이나 우려 혹은 비판에 있지 않다. 한편으로는 신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흥미롭다. 은근히 고소하지만 대놓고 공감하긴 멋쩍다. 이런 감정적 동기는, 아주 쉽게 말하면, 언필칭 민주당 지지자들과 김어준 추종자들을 ‘까고 싶은’ 마음, 요컨대 ‘스스로 정치적 성향이 없다고 말하기 위해 갖게 되는 실질적 정치 성향’에 의한 것이 크다.
게다가 지금 당장 제도권 언론의 기층에서 시쳇말로 박박 기는 사람들은 이 ‘현상’의 적극적 주체에서 소극적 주체까지 폭넓게 구성하고 있는 아랫세대와 겹친다. 그리고 이걸 승인하고 내보내기로 결정하는 ‘편집권’은 스스로 영포티라 조롱받고 싶지 않은 윗세대에게 있다. 이들 모두, 대놓고 영포티 담론과 밈에 공감할 수야 없지만, 자신들이 영포티를 손가락질하는 세대의 적극적 일원은 아님을 입증하는 한편, 스스로가 영포티라 조롱받지 않아야 할 사람들임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로서 적합하다. 게다가 혐오 바이러스에 올라타는 게 그 어떤 ‘뉴스 가치’보다도 성공이 보증되는 ‘달달한’ 공식 아니었던가? 
언어와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마저도
나는 제도권 언론이 이렇게 영포티 바이러스에 올라타기 전에, 적어도 애초에 그 담론을 만들고 퍼뜨린 주체가 자신들이었다는 점만은 알고 또 인정했으면 한다. 영포티라는 단어는 지금부터 10년 전인 2015년에 창안됐다. 세칭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이, 제목에는 2016년을 붙였지만 정작 2016년이 오기 전 몇 개월간 팔리는 게 목적인 ‘트렌드 예언서’를 내면서부터였고, 새해 벽두에 그 책 저자를 인터뷰한 〈한국일보〉가 참으로 상세히도 이 용어를 설명해줬다. 이른바 X세대 열풍의 주역이던 1970년대 초반생들이 40대로 진입했는데, 과거에는 명백한 중년에 해당하는 나이지만 결코 중년으로 부를 수 없는 ‘여전히 젊고 적극적인 소비층’으로서 이들을 시장에 묶어둘 필요가 있었던 거다. 〈동아일보〉는 이에 화답해서 ‘사초세대’라는 말을 더하기도 했다. 그런데 워낙 이런 말들이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별로 쓸모가 없었고, 사실상 죽은 말이 되어 잊혔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신들과 같은 마케팅 주체가 아니라 혐오 표현에서 정체성을 느끼는 바이러스적 담론 주체들이 이걸 되살려버린 것이다. 아뿔싸, 담론적 주도력은 물론 의제에서부터 유행어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는 언론들은 혼란스러운 행보를 보인다. 원래 지칭하고자 했던 이들이 이미 40대를 지나버렸기 때문에, 그리고 실은 그 바이러스적 혐오 담론 주체들의 간판급인 이준석 의원이 40대로 진입해버렸기 때문에, 황급히 ‘영피프티’ 같은 변형 단어를 만들려고 했지만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 ‘영피프티’는 2024년 김난도 교수가 만들었다. 솔직히 영포티라는 실패한 선행어에 10년을 더한 것밖에 없어서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그걸 〈중앙일보〉가 인터뷰해줬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망언적 명언 이후 칭찬은 물론 욕으로부터도 멀어졌던 김난도 교수는 이걸 계기로 2030한테 잔뜩 욕을 얻어먹었다. 
당시 ‘영피프티 현상’을 두고 〈주간경향〉도 분석 기사를 썼다. 하지만 분석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2030의 반발 안에서 이미 도사리고 있던 단단한 혐오의 감정을 짚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들의 ‘정서’를 이해해야 함을 넌지시 타이르고는, 혐오의 대상이 된 세대들의 성차별적 편향을 문제 삼는 식으로 그런 혐오 감정에 나름의 근거를 제시해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이해하고 정당화해주고 싶었던 감정은 불과 1년 뒤에 ‘영포티’ 혐오 담론으로 총결집하는 바탕 동력이 되고 있다. 1년 전에는 그걸 볼 수 없었던 걸까? 아니면 혹시 지금도 그걸 보지 못하고 있는 건가? 
그리하여 원래 마케팅 목적에서 호출되었다가 이젠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폄훼 목적에서 재호출된 세대의 실제 ‘연령대’와는 무관하지만, 대충 눈 껌벅대며 서로 다 알고 있다는 시늉을 한다. 영포티가 가리키는 건 ‘생물학적 40대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하기야, 애당초 혐오에 무슨 용어적 정확함 같은 게 필요했겠는가, 혐오하는 감정만 퍼뜨리면 그만인 것을. 언어와 정보를 다룬다는 자들마저도 이렇다. 참으로 가관이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020800021
조롱을 넘어 멸칭으로…2030은 왜 영포티를 긁나 (주간경향, 이재덕 이혜리 기자, 2025.11.02 08:00)
직장인 A(여성·29)는 시내를 거닐 때마다 챙이 일자형인 모자, 스투시 티셔츠, 통이 넓은 바지, 나이키 에어맥스 운동화 등을 입은 40대가 자주 보인다고 했다. 이런 패션을 소위 ‘영포티룩’이라 부른다. “옆에 있는 친구한테 ‘야 저기 영포티 지나간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낄낄’대는 거죠. 나이 많은 거 티가 나는데, 어울리지도 않는데 젊은 척하는 아저씨들이요. 되게 부담스럽게 느껴져요.” A에게 “젊어 보이는 게 뭐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그가 말했다. “기자님도 ‘긁?’(약점이나 콤플렉스를 건드려 삐졌냐는 뜻).” 
10여 년 전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기 관리에 적극적인 소비 주체인 40대’를 뜻하던 조어 ‘영포티’는 이제 조롱의 단어가 됐다. 2022년 중반 ‘디시인사이드’ 같은 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쓰이던 이 조롱의 언어는 지난해 2030세대 전반에 퍼졌고, 올해 하반기부터는 신문과 방송에서까지 언급되는 대중적인 ‘멸칭어’가 됐다. 주간경향은 대학교 1학년인 2006년생(19세)부터 직장인인 1990년생(35세)까지 남녀 19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에게 영포티란 무엇인가. 이들은 왜 영포티를 말할까. 
2030이 말하는 영포티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다. B(남성·28)는 “영포티룩에 ‘우영미’나 ‘준지’ 같은 브랜드가 있다. 20대들이 입는 옷과 비교해 금액대가 3~4배 차이 난다. 40대는 그런 브랜드를 걸치면서 자신이 젊고 트랜디하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 같다. 근데 그게 어울리지 않고 괴상하게 느껴진다. 그 괴상함을 ‘영포티’라고 부른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20대는 돈은 없고 젊음만 있거든요. 40대는 젊음은 없는데 돈이 있잖아요. 근데 20대의 젊음을 돈으로 사려는 게 꼴불견이죠.” 
C(남성·22)는 “‘스투시’나 ‘슈프림’ 같은 영포티 브랜드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유행하다 이제는 한물간 느낌이다. 그래도 잘 매치해 입는 20대도 많다. 근데 영포티들은 스타일에 맞게 매치할 생각은 안 하고 너무 과하게 입고 다닌다”고 했다. 
A는 “지금도 자기가 20대 여자한테 어필한다고 믿는 자의식 과잉의 중년 남성”이라고 했고, D(남성·25)도 “젊게 입고 홍대 클럽에서 여성을 꼬시려는 아저씨 이미지”라고 했다. ‘영포티’를 주제로 한 유튜브 영상 중에는 젊게 입고 헌팅을 시도하는 40대를 재현한 영상들이 있다. 보수 성향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페미니즘에 관대한 척, 여성들에게 자상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음흉한 중년을 ‘영포티’로도 소비한다. 이들 커뮤니티에서는 성비위, 성범죄 등으로 문제가 된 정치인 중에서 범여권 정치인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중년 남성을 조롱하는 의미로도 쓴다. 인터뷰에 응한 2030 중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이는 D와 E(남성·23)였는데, D는 “정치 성향을 뜻하는 의미가 있는지 몰랐다”고 했고, E는 “그런 뜻이 있다는 건 알지만 나는 그렇게 쓰진 않는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F(여성·34) 같은 직장인들은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 젊은 ‘꼰대’의 이미지가 겹쳐 있다”고 답했다. 
왜 40대가 타깃이 됐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살아남기_밈과 혐오의 세계 생존 전략> 책을 쓴 곽주열 작가(28)는 “커뮤니티에서는 소위 타격감이 좋은 상대를 찾는다. 긁히는 반응을 즐긴다는 뜻이다. 40대들은 디시인사이드 초창기부터 활동한 이가 많고, 그렇다 보니 2030이 이들을 공격하면 바로 반응한다. 반면 50대나 60대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2030이 보기에는 타격감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40대 민주당 성향의 커뮤니티로 꼽히는 ‘클리앙’이나 ‘오늘의유머’ 등에서는 영포티에 ‘긁힌’ 이들의 글이 상당수다.
문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2030 남성이 주로 쓰던 ‘영포티’라는 멸칭이 어떻게 현실세계에서까지 생명력을 갖게 됐냐는 점이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은 자신이 겪은 직·간접적인 경험이 ‘영포티’ 이미지와 겹쳤다고 말한다.
G(여성·33)는 “우리 팀장님이 중년 남성인데 딱 ‘영포티’”라고 말했다. “팀장은 캐릭터가 크게 그려져 있거나, 로고가 큰 옷들을 주로 입으면서 젊게 보이려고 해요. 자신이 틱톡을 많이 본다는 것을 팀원들에게 자랑하는데 ‘나이 어린 당신들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거든요. 얼마 전에는 회사 야유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자기 또래의 여성보다는 젊은 여성들이 좋다면서 저희들과 어울리겠다고 하더라고요. 완전히 ‘개저씨’예요.”
식품 회사에 다니는 F는 이렇게 말했다. “회사 선임 중에는 ‘내가 몇 살로 보여?’ 이런 말 자주하는 분이 많아요. 요즘은 다들 외모가 좀 어려 보이긴 하잖아요. 그래서 뭐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는데, 업무하는 방식을 보면 예전 방식을 고수하려고만 하죠. 우리는 조직의 중간에 있으니까 팀장에게 ‘요즘은 시대가 좀 바뀌었으니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제안을 하거든요. 그럼 팀장은 ‘라떼(나 때)는 그렇게 안 했어’라며 우리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젊은 감각인 척,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꽉 막혀 있죠.” 
B는 “내 주변의 40대 중에는 ‘영포티’ 범주에 넣을 수 없는 이가 더 많지만, ‘영포티’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이 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아는 형이 서른여덟 살이에요. 거의 ‘포티’죠. 근데 이형이 여자를 소개시켜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30대 중반의 여성을 찾아보겠다고 했는데 ‘너무 나이가 많지 않아?’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는 차도 GV80이고, 직장도 좋고, 옷도 잘 입는데 좀더 어린 여성도 가능하지 않냐. (여자 나이) 서른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하는 거 있죠. 그 말 듣고 ‘넌 진짜 사람되긴 글렀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터뷰에 응한 2030들은 최근의 ‘카카오톡 업데이트’가 ‘영포티 감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카카오톡은 친구 탭을 인스타그램과 유사한 방식으로 개편했다가 ‘쉰내 나는 인스타’라는 조롱을 받는다. G는 “젊은 감성에 어필하려고 인스타그램을 모방한 거잖아요. 그걸 쓰는 이용자들은 카톡을 인스타처럼 쓰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이용자 경험은 싹 무시하고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한 거라고 홍보했죠. 이런 ‘어울리지 않음’과 ‘이중성’이 딱 ‘영포티 감성’이죠. 처음에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있어도 ‘국민 메신저’니까 결국에는 따라올 것이라는 생각 아니었겠어요?” 이 같은 방식의 카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인물이 40대의 카카오 최고제품책임자(CPO)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카톡 업데이트=영포티 감성’이라는 인식에 일조했다.
스스로를 ‘찐’이라 부르는 이들
‘영포티’ 같은 남을 조롱하는 단어가 등장한 것에 대해 “2030 남성을 중심으로 강한 패배주의적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곽주열 작가)이라는 분석도 있다.
“2030세대가 10대, 20대일 때 유행했던 담론이 ‘수저계급론’이었어요. 이들은 세대 내, 세대 간 계급 차이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느껴요. 흙수저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들은 흙수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죠. 2030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그런 패배주의가 가득해요. 예컨대 ‘찐’이나 ‘찐따’라는 자조적인 표현을 많이 쓰죠. ‘나는 내가 찐따라는 걸 아는데, 너는 자신이 찐따라는 걸 모르는 찐따야’라는 식으로 상대를 비하하거든요. 결국 약자가 약자와 싸우는 형국이에요. 서로의 약자성을 파고들어 공격하는 거죠.” 
그에 따르면, 남초 커뮤니티의 2030 남성들이 40대를 공격하는 말을 만들어낸 건 40대가 ‘돈’과 ‘문화자본’ 등을 점유한 기득권층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40대 남성은 기득권층이 아닌 약자이고, ‘자신이 찐따라는 걸 모르는 찐따’라는 걸 놀리기 위함이다. “생각해보세요. 지금 40대 중에 부동산 있는 40대가 얼마나 되겠어요?” 
인터뷰를 한 2030 중에는 현실에서는 자신의 약자성을 철저히 감춘다고 답한 이들도 있었다. 전남의 한 농촌 출신인 H(남성·19)는 올해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최근 대학 동기로부터 ‘소비쿠폰 2차 받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소비쿠폰을 받았다고 했는데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대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소비쿠폰 2차는 부자들 빼고 대부분 받는 거 아니에요? 물론 서울 애들이라 대상자가 아닌 이가 많겠지만 거짓말하는 애도 있겠죠. 저도 이젠 약점이 될 수 있는 건 알리지 않으려 해요.” 그는 최근 친척 형에게 90만원을 빌려 루이뷔통 지갑을 샀다. 그가 가진 ‘아이폰’과 ‘루이뷔통 지갑’은 자신의 계급을 가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H에게는 ‘전남 농촌 출신’이라는 게 약점이다. 출신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은 H가 ‘농어촌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전남 출신이라는 것도 놀림 대상이다. “친구들은 ‘너도 혹시 날 드럼통에 넣을 거야?’라고 묻기도 해요. 우리 사이에선 ‘드럼통’이 이재명 대통령을 연상하는 안 좋은 말로 쓰이니까 전라도 출신이란 이유로 그렇게 놀리는 거죠.”
H 외에도 ‘자신의 계급’을 언급한 이들이 있었다. 최근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B는 이렇게 말했다. “제 주변의 친구들 10명 중 3명만 결혼했어요. 2명은 부모님이 집을 해줬고, 1명은 애가 생겨 결혼했죠. 나머지는 결혼 생각도 못 해요. 여자친구와 헤어진 걸 모르는 엄마가 ‘너는 결혼 언제 하니?’라고 묻더라고요. ‘나도 엄마가 집 해주고 뭐 해주고 했으면 진작 결혼했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어요.” 
흔히 ‘최상위권’으로 분류되는 대학에 다니는 I(남성·28)는 “우리 학교에선 소위 9분위, 10분위 학생들이 절대다수”라며 “세대 내부의 불평등이 더 심화됐다. 우리 세대에서 이는 극복할 수 없는 차이”라고 말했다. 인턴사원으로 일하는 J(여성·29)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게 가장 큰 고민거리”라며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40대를 만나기도 했는데, 금융 상담 업무를 하는 한 남성(43)은 “영포티 당사자인 40대보다 그 말을 만든 ‘2030세대’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상담 업무를 해보면 2030의 격차가 너무 심해요. 알바를 전전하며 빚까지 있는 2030도 있고, 6억~8억원 정도 되는 자산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투자할지를 물어보는 이들도 있어요. 그런 자산을 어떻게 모았겠어요? 다 부모가 만들어준 자산이지. 심지어 30대 중반의 상담사들이 ‘현타’가 온다고 말할 정도예요. 대형병원 영상의학과에 근무하는 제 아내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신이 입사할 때는 동기가 20명이나 됐는데, 지금은 대규모 공채도 사라지고 주로 계약직으로 뽑는다’고요. 우리 세대가 한때 ‘88만원 세대’로 불렸잖아요. 지금 젊은 친구들은 더 끔찍해요. 아예 희망이 없어요.” 
‘영포티’ 담론에 대응하는 법
이런 상황에서 ‘영포티’에 대응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40대가 “젊게 입는 게 뭐가 문제냐”고 하면, 2030은 “그러니까 영포티”라고 답한다. “‘영포티’는 세대 갈등을 일으키는 말”이라고 지적하면, “너희야말로 ‘MZ는 이렇다’는 세대론을 퍼뜨리는 당사자”라는 답이 돌아온다. 조롱과 혐오의 밈을 일종의 ‘놀이문화’로 받아들이는 2030은 그냥 한 글자로 답한다. “긁?” 
곽주열 작가는 “20대에게 어떤 얘기를 하든, 상대가 그런 식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한다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피해의식이 있고 방어기제가 생겨서 진심 어린 반응에도 ‘혹시 날 공격하려는 건 아닌가’ 하며 오히려 자기가 먼저 공격성을 보인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라는 그라운드에서 젊은 세대는 그런 감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주간경향은 인터뷰에 응한 2030에게 ‘40대에게 어떤 모습을 원하냐’라고 물었다. A는 “40대는 팀장들이거든요. 하는 말이나 행동에서 ‘찐어른이네’ 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F는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외에도 “귀감이 되고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어야 한다”, “외적인 것 말고 행실에서 성숙함과 품격이 드러나고 그게 자신의 색깔이 되는 사람” 등의 답변이 나왔다. 키워드만 뽑아보면 ‘어른’, ‘책임’, ‘존경’, ‘귀감’, ‘성숙’, ‘품격’, ‘경청’, ‘협력’ 등이다. 이들의 답변은 40대만이 아닌, 그 윗세대까지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우창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40대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40대도 자신들이 보기에는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지금 가장 많은 의사결정권과 자원 배분권을 갖고 있는 세대가 40대가 아니니까. 하지만 (영포티라는 단어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영포티 밈은 ‘한국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어른들이 필요한가’, ‘어른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존경할 만하거나 상호존중이 가능한 어른의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라고 말했다. 
결국 ‘영포티’는 40대만이 아닌, ‘40대를 포함한 기성세대’를 향한다. 불평등, 불합리, 계급 격차, 조직 문제 등을 해결하지 않고 자신의 안녕을 좇는,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영포티’라는 멸칭에 숨을 불어 넣었다는 얘기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021000001
40대 싸잡고, 여성은 배제···비뚤어진 ‘영포티 밈’ (경향, 이혜리 이재덕 기자, 2025.11.02 10:00)
MZ부터 영포티까지…세대 내 불평등·구조적 문제 가리는 세대론의 문제점
‘정치 공작·갈라치기’ 주장도…“광장의 청년들 목소리 외면한 민주당 탓도”
영포티 밈이 그리는 40대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추고 고가 브랜드의 옷을 살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이는 40대지만 여전히 고용과 주거 불안 등에 시달리는 이가 많은 게 현실이다. 세대론의 치명적인 문제점이 여기에 있다. 세대 전체를 싸잡아 조롱하는 데 집중하면서 세대 내의 다양한 모습과 불평등, 구조적 문제가 가려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간경향이 인터뷰한 19명의 청년 중 상당수는 영포티 밈의 유행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MZ, 영포티와 같은 세대론이 불편하다고 했다. 영포티 밈이 어린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는 남성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40대는 다 같은 모습이 아니다
40대 남성 A씨는 스투시, 우영미, 슈프림, 솔리드옴므 등 소위 영포티 브랜드 아이템을 갖고 있지 않다. 직장에 다닌 지 10년이 넘었지만, 티셔츠 하나에 20만~30만원 하는 옷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A씨는 유니클로, 자라 같은 스파브랜드 옷을 주로 산다. 내 집은 없고, 결혼은 아직 하지 않았다. 영포티 밈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산하면서 40대 자체를 저격하는 의미로 쓰이는 게 A씨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40대를 비판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풍족하게 살지 못하는 40대가 더 많다”고 했다. 
40대 남성 B씨도 40대가 다 경제력이 있고 사회적 기반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인 B씨는 “불안한 친구도 많고 이직을 생각하는 친구도 꽤 있다. 공무원 같은 직업이 아닌 이상에야 안정적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고 했다. 그는 “(현장에선) 기술자를 대우하지 않는다”며 “안정적으로 일을 해서 소득을 버는 게 인간 존엄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쉽게 자르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했다. 40대 남성 C씨는 “20대가 볼 땐 40대가 뭔가 사회적으로 탄탄한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40대가 다 그런 게 아니고 영포티에 딱 맞는 사람도 (나한테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C씨는 “나도 집이 없이 전세를 살고,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프리랜서”라며 “패션엔 관심조차 없다”고 했다. 영포티 밈이 말하지 않는 40대 남성의 현실이다. 
A씨는 “잘사는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고 미디어에 노출이 되니까 2030 입장에서는 그런 것만 보이는 것이지 않겠나. 못사는 사람들은 최대한 안 드러내려고 한다”며 “인스타 같은 데서 외형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가 대세가 되면서 확대 재생산된다”고 했다. 박제민 녹색정치연구소 공동대표는 “고가 브랜드 옷을 마음껏 사면서 젊게 보일 수 있는 40대가 아닌 40대들, 그것을 재수 없어 하는 20~30대가 아닌 20~30대들과 같이 (세대론은) 갈등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문제를 볼 수 없게 한다”며 “심지어 40대 전기와 후기의 삶도 매우 다른데, (세대론으로) 갈등을 납작하게 보면 사회적으로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되고 갈등만 반복하게 된다”고 했다.
세대론은 사회문제를 세대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영포티 밈 이전엔 20대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아서 보수 정권이 탄생했다는 ‘20대 개새끼론’부터 ‘이대남’, ‘MZ세대’도 있다. 이런 세대론은 청년들 스스로가 붙인 것보다 다른 세대에 의해 붙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영포티 밈이 기성세대가 붙인 MZ세대론에 대한 청년들의 ‘미러링(mirroring·모방)’이라는 의견도 있다. 세대론의 오류를 또 다른 세대론으로 대응한 셈이다. 
30대 여성 D씨는 “사내 익명게시판에 글이 올라오면 ‘MZ들이 올렸구먼’, ‘MZ는 조직생활이 뭔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며 “항상 뭐만 하면 ‘MZ세대는?’ 그런다. 나는 실제로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했다. D씨는 “그러다 영포티 밈이 나왔는데 ‘4050 이미지를 잘 표현했다, 이것은 찐이다’라고 생각했다”며 “우리(청년)는 항상 타깃이 되는 세대였는데, 영포티 밈으로 4050을 타깃으로 삼게 됐고, 사실 좀 시원한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30대 여성 E씨도 “우리 세대는 계속 사회에서 ‘MZ라서 이래’라는 말을 들었다”며 “그동안은 윗세대가 아랫세대를 뭐라고 했다면, 지금은 20대가 영포티라는 단어로 역공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세대론은 허상일 수 있다고 20대 남성 F씨는 지적했다. F씨는 “세대 갈등이 정말 큰일 난 비상상황이냐고 물으면 그런 것 같지 않다”며 “사회가 변하면서 따라오는 문화가 세대에 따라 다르고 이에 대한 포용성이 조금 떨어진 정도이지, 세대 갈등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겠다”고 했다. F씨는 “오히려 세대 안에 있는 또 다른 불평등, 불공정, 역차별 문제를 많이 가린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대 남성 G씨는 “(영포티 밈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모든 상황에 대한 조롱거리가 영포티로 집중되는 것에는 공감하지 않는다”며 “지금 조롱하고 있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그 나이대가 될 것이고, 그 나이대에 가면 비슷한 상황을 경험할 수도 있는데 그걸 사회적 놀림거리로 만들어야 하느냐”고 했다. G씨는 “40대여도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르다”라고 했다. 
여성 배제한 남초 커뮤니티의 언어
영포티 밈은 주로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 많이 사용되지만, 2030 여성들도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 ‘어린 여성에게 추근거리는 40대 남성’, 소위 ‘스위트 영포티’와 관련해서다. 인터뷰에 응한 청년들은 경험적으로 스위트 영포티 문제를 느낀 적이 있다고 했다. 나이가 많은 남성이 여성의 의사에 반해 접근하고 불쾌감을 주는 일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최근 10년새 유명인이 지위를 이용해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들이 터지기도 했다. 20대 여성 H씨는 “자기 나이대의 여성들과 어울리지 못한 남성이, 자기의 위치를 이용해서 어린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며 “한남이라는 단어가 모든 남성을 싸잡는다고 하지만 한국 남성의 문제가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듯이, 영포티도 그런 단어가 아닌가 싶다”고 했다. 40대 남성의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영포티 밈은 유효한 표현이라는 취지다. 
반페미니즘 정서가 심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어린 여성에게 추근거리는 40대 남성’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2030 남성 청년들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반면 어린 여성을 남성이 쟁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제하고 성적 대상화 하는 남성 중심적 시각이 여전히 담겨 있다는 해석도 있다. 영포티 밈이 40대 남성으로부터 원치 않는 접근을 당하는 피해자를 ‘어린 여성’으로 한정해 문제 제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2030 남성이 연애·결혼해야 할 또래 여성을 경제력을 갖춘 40대 남성이 차지하려 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영포티 밈에서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남초 커뮤니티에선 나이가 있는데 결혼하지 않은 여성(상폐녀), 자녀를 돌보는 여성(맘충), 명품 사는 여성(된장녀) 등에 대해선 비하·혐오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 결혼한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설거지’ 당한 ‘퐁퐁남’으로 비하하기도 한다. 이우창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남초 커뮤니티가 ‘남성 페미니스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이 속으로는 성적인 열망을 품고 있으면서 여성들에게 신사적으로 대하는 위선자라는 인물형을 꾸며내온 것이 영포티 밈에서도 나타났다고 했다. 남초 커뮤니티의 ‘어린 여성에게 추근거리는 40대 남성’ 비판은 페미니즘을 옹호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안티 페미니즘의 일환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 여성 I씨는 “(영포티 밈에서) 여성이 배제돼 있다”고 했다. I씨는 “여성에게 집적거리는 문제는 사실 연령대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여성들은 남성이 여성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압적으로 행동하는 젠더폭력을 문제 제기해왔는데 이게 40대만 문제 된 것은 아니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어느 연령대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20대 남성 J씨는 “청년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동시에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J씨는 “어린 여성에게 추근거리는 남성의 문제가 정말 40대만의 문제인가, 청년 남성 중엔 그런 사람이 적은가”라며 “결국은 개인의 문제일 수 있는데 영포티로 싸잡은 것”이라고 했다. 
정치도구로 활용되는 세대 갈등
영포티 밈은 정치적 맥락에서도 활용된다. 영포티 단어가 등장한 것은 2015년이지만 구글 트렌드를 보면 영포티에 대한 관심도는 올해 들어 확 늘었다. 30대 남성 K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국면 이후 영포티라는 단어가 SNS에서 많이 보였다”며 “40대 지지층이 탄핵 찬성이나 민주당 지지자가 많고 투표에서도 그렇게 드러났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주로 12·3 불법 계엄 이후 결집한 극우·보수 성향 청년들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40대를 조롱하는 표현으로 영포티 밈을 쓴다는 것이다. 
민주당 쪽 진영에선 영포티 밈이 2030 여성과 4050 남성을 갈라놓으려는 공작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9월 30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황희두 노무현재단 이사는 “요즘은 영포티 밈이라고 해서 민주당 핵심지지층을 봉쇄시키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어준씨는 “20대 여성과 40~50대 정체성이 가장 비슷한데 이들을 분리시키려고 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다수의 청년은 영포티 밈이 광범위하게 퍼진 배경엔 민주당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 정부가 청년들의 문제를 소통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했다. 특히 2030 여성들은 계엄 이후 탄핵 촉구 집회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노동자 등 다른 사회적 약자의 투쟁 현장에 적극 연대했다. 이는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연대였지만, 지금 다시 영포티 밈으로 돌아왔다. 
연대 활동을 했던 20대 여성 H씨는 “광장에서의 경험은 노동자나 농민인 4050 남성과 연대하면서 그들의 의제에 귀 기울이고 힘을 보태준다는 점에서 세대의 갈등을 넘어선 것이었다”며 “하지만 (민주당 정부는 2030 여성들의 말을) 대놓고 무시했다”고 했다. H씨는 “우리가 늘 빠지지 않고 이야기했던 것은 차별금지법이었고, 연대로 하나가 된다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민주당 정부는) 빛의 혁명이라는 말은 가져다 쓰면서도 핑계를 대며 생색만 내는 것으로 보인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사회가 그렇게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20대 남성 J씨는 “2030 여성들이 성평등 공약을 보고 투표하겠다고 했지만 이재명 후보는 언급이 없었다”며 “이 후보 지지자들은 ‘일단 뽑으라’라고 했는데 지금은 조용하다”고 했다. J씨는 “작전 운운하면서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할 게 아니라 20대가 왜 우경화되는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반성해야 한다”며 “성별, 세대갈등에 이어 또 어떤 갈등이 나올지, 누가 또 혐오의 대상이 될지를 생각해야 하는 게 답답하다”고 했다. 
박제민 대표는 “정치가 세대를 걸치는 세습과 세대 내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없고, 오히려 정치적 이유로, 갈라치기로 세대론을 활용한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포티 밈이라는) 유행이 지나가도 또 다른 양상으로 갈등이 표출될 것”이라고 했다. 밈 문화를 연구한 곽주열 작가도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면 이미 영포티는 (유행이) 좀 지났다”며 “이제는 30대에 대한 공격도 나온다”고 했다. 곽 작가는 “00년생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감각이 없다, 초등학교 때 반에 30명 이상 있었던 사람들은 동일한 감성을 느낄 수 없다는 말도 있다”며 “말맛이 좋은, 30대를 지칭한 표현이 생기면 30대 혐오의 등장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또 다른 이름의 ‘OO 갈등’이 나올 것이라는 비극적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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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식, 2025년 11월 2일 오전 10:48
모두가 젊음을 동경하지만, 가짜 젊음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영포티’를 향한 조롱이 말해주는 사실이다. 미학적 비판에서 시작된 영포티 밈은 사람들이 자기가 싫어하는 온갖 것을 갖다 붙이면서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한 일간지에서는 이 현상이 민주당 코어 지지층에 대한 반감이라는 해석까지 등장했다. 저 쉰내 나는 분석이야말로 영포티스러움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영포티론의 독특한 점은 이 세대가 유독 남성으로만 표상된다는 점이다. MZ세대가 남녀가 비슷하게 표상되는 데 반해 여성 영포티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다. 여기서 이 담론이 섹슈얼리티와 연관돼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40대가 돼도 ‘젊음을 연기’하도록 더 강하게 요구받는 쪽은 여성이지만 조롱받는 쪽은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것이 권력 관계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영포티 하면 젊은 여성에게 ‘고백 공격’하는 아재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젊음의 연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연기하는가의 문제다.
모든 40대 남성이 그런가 아닌가 하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 전체 구성원의 특징을 묘사하면서도 결코 모든 구성원을 묘사할 수 없다는 것이 모든 세대론이 갖는 한계다. 영포티 밈의 유행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중년 남성들에 대한 미학적 반감이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포티를 향한 조롱은 “40대가 젊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착각을 겨냥한다. 포티는 왜 착각하는가?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지난해 ‘영피프티’론을 주장하면서 몇 가지 소비 기호로 이상화된 젊음을 표상해냈다. 그들이 젊은 이유는 왕성한 구매력을 가진 그들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든 소비를 통해 자신을 빚어낼 수 있다는 생각, 영포티를 만들어낸 것은 젊음조차 구매할 수 있다는 소비지상주의의 신기루다. 
박권일은 <다이내믹 코리아>(공저)에서 “영포티부터 영피프티까지 이어지는 담론이 사회적 차원에서 ‘벌거벗은 임금님’ 집단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우스꽝스럽다는 걸 본인들만 의식하지 못하는 거대한 인구학적 집단이 있고, 그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소비사회의 욕망이 있다.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의 결말은 임금님이 아첨꾼 신하들을 벌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끝난다. 영포티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쓰일까.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9879
영포티, 열렬히 대변되는 사람들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2025.11.04 23:44)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나는 한국식 표현으로 ‘내일 모레 마흔’이다. 1988년생인 나는 항상 ‘낀 세대’라는 자의식이 있다. 어느 시대나 ‘후반생’들은 ‘구시대의 막내’ 같은 위치를 점하지만 80년대 후반생들에겐 특히나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1981년생부터 2012년생까지’ 라는 밑도 끝도 없이 너른 나이대인 ‘MZ 세대’에 포섭될 때면 어딘가 석연찮지만, 젊은 세대의 한 축으로 호명되는 것 같아 나쁘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MZ가 ‘눈치와 염치 모두를 상실한 자기 주장 강한 후배’로 통용되자, 나는 MZ를 쉽게 타자화했다. 함께 ‘MZ’로 퉁치기에 나는 언론사에서 그 험한 도제식 훈련인 ‘하리꼬미’(수습 기자 시절 퇴근을 하지 않고 경찰서 기자실에서 숙식하며 취재하는 일)를 버티며 상명하복을 체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내가 입사하고 불과 3년 후인 2016년,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며 하리꼬미는 언론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어떤가. 눈살이 찌푸려지는가. 맞다. 나의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세대론은, 같은 또래에 비슷한 직업적 경험을 가진 몇몇이 아니라면 결코 공감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는 각자의 세대별 자의식이 있고, 그걸 다른 세대에게 공감 받는다는 것은 도저한 영역이다. 본디 뜻은 ‘젊은 40대’였을 것이되 어느덧 ‘젊은 척하는 40대’ 또는 ‘스스로가 젊은 줄 아는 40대’로 쓰이는 ‘영포티’의 경우는 세대와 젠더, 계급과 정치 성향까지 교차하는 복잡한 지점에 서 있다. 주로 ‘스스로가 젊은 줄 착각하고, 젊은 척하는 40대 남자’를 호명하는 뜻으로 쓰여, 2030 여성들에게 영포티는 ‘개저씨’와 동의어다. 자기보다 한참 젊은 여성을 잠재적 연애 상대로 보고 어필하려는 태도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젠더적 우위와 연장자라는 위계를 한꺼번에 행사하려는 역겨움으로 발현된다.
2030 남성들에게 영포티는 자신들을 향한 ‘MZ’와 ‘이대남’이라는 ‘멸칭’에 대항하는 무기이자, 사다리를 걷어찬 윗세대 가부장에 대한 경멸에 가깝다. 온라인에 도는 ‘짤’인 ‘코리아 영포티 스타터팩’에는 영포티의 이중적인 위선이 전시돼 있다. ‘여성인권’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공적인 관계에서도 “오빠가~”를 시전하며, 젊은 세대에 대한 훈계를 그치지 않는다. 여기서 ‘키워드’는 ‘깨어있는’이다. 영포티가 ‘깨어있는’ 사람임을 자임하는 김어준 추종자이자 ‘매불쇼’, MBC, JTBC의 주 시청층이라는 ‘코리아 영포티 스타터팩’의 서사는 ‘영포티’가 ‘깨시민’(깨어있는 시민)을 비꼬는 오랜 역사의 변주임을 알게 한다. 

▲ SNS에 올라온 이른바 ‘코리아 영포티 스타터팩’ 이미지. 사진=X(트위터)

세대론은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보편적으로 말 얹기가 쉬운 영역이며, 세대가 흐르며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러나 영포티처럼 유래가 오래된 단어가 끊임없이 다시 팝업되고 의미가 재론되는 것은 신기한 부분이다. 영포티는 2015년 트렌드 분석가 김용석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 책 「라이프 트렌드 2016」에서 유행에 민감한 소비 세력으로서의 중년을 지칭하며 쓴 말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영포티는 안티페미니즘 성향의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밀어올린 새로운 의미의 신조어가 됐다. 남초 커뮤니티뿐 아니라 언론도 영포티를 적극적으로 다룬다. 남초 커뮤니티의 영포티 조롱 밈을 그대로 옮겨 ‘이러이러한 세태가 있더라’ 하는 식의 세태 기사로 소비하거나, ‘영포티’를 말하는 연예인의 발언을 옮긴 기사가 대부분이지만, 영포티의 여러 양상과 전문가 멘트들을 더해 분석 기사를 쓰기도 하고, 오피니언면의 칼럼에서도 자주 소환되는 주제로 기능한다. 이들 분석 기사와 칼럼의 ‘야마’는 대부분 ‘영포티’라는 낙인에 대한 항거와 ‘세대론으로 갈라치지 말라’는 것이다.
의문이 생기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영포티’가 조롱이자 낙인이라는 데는 일정 부분 동의를 한다. 해당 단어로 인해 특정 세대의 구성원 전반을 싸잡아서 보게 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롱과 혐오의 밈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유독 ‘영포티’에 대해서만 언론의 분석과 항변이 넘쳐나는 데는 물음표가 생긴다. ‘영포티’가 낙인이면, ‘대치동에 사는 자녀 교육에 극성인 엄마’로 재현됐던 ‘제이미맘’과 조선족 출신의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묘사됐던 ‘린자오밍’은 낙인이 아닌가? ‘영포티’로 표상되는 남성 일반보다, 여성이며(제이미맘), 이주민·여성(린자오밍)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이들이 사회적으로 약자가 아닌가? ‘대치동맘’을 구체적으로 희화화한 제이미맘, 보이스피싱범의 말투 일반이 ‘조선족 여성’으로 통용되는 데 린자오밍이 끼친 영향이 매우 크지만 언론에서 이런 얘기는 적극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영포티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언론에서 대변되지 못한다는 측면만 봐도, 제이미맘과 린자오밍은 영포티에 비해 사회적 약자가 맞다. 이는 이른바 ‘영포티’에 걸쳐 있는 세대들이 언론사의 데스크일 것이고, 이들이 기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기 때문에 생긴 일일 것이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영포티 담론을 보며, 뜻밖에 언론에 대변되지 않는 이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혐중 시위가 수그러들 줄을 모르고, 혐중이 정치권의 언어가 됐으며, ‘노 차이니즈 존’ 마저 등장한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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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4/03/23/WBTKY62BGBATVKJN62ZRCSKKEQ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 (조선일보, 정시행 기자, 2024.03.23. 03:00) 
[아무튼, 주말]
진보 콘크리트 지지층
4050세대 해부
중년에 이르면 세상일에 미혹돼 갈팡질팡하지 않고, 하늘의 뜻마저 알게 된다고 했다. 마흔 살 불혹(不惑)과 쉰 살 지천명(知天命)의 의미다. 이 무르익은 나이엔 삶의 이치를 깨달아 노인과 자식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어줄 거라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진보 중년’의 시대가 닥치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40~50대 중년이 가장 진보적인 세대가 됐다. 60~70대 이상 부모 세대와 10~30대 조카·자식 세대가 보수화되거나 사안에 따라 지지 정당을 유연하게 선택하는 것과 달리, 4050의 진보·좌파 색채는 이념의 외딴섬처럼 떠 있다. 이들은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진보였다. 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문화·정치적 효능감은 다른 세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년의 사내와 여인들, 무슨 불덩이를 가슴에 품고 사는 걸까.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이달 초 조국혁신당 창당 후 갤럽이 여론조사를 했다. 29세 이하 지지율 0%, 30대 1%, 60대 8%, 70대 1%…. 그런데 40대와 50대만 각각 11%, 18%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조국혁신당은 자녀 입시 비리로 2심까지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 대표가 ‘3년(현 정부 남은 임기)은 길다’ ‘검찰 독재 종식’ 같은 구호를 내걸고 만든 당이다.
같은 조사에서 40대와 50대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 신당의 지지율 합계가 각각 58%, 51%로 과반이었다. 특히 40대에선 민주당 지지율(47%)이 국민의힘(22%)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2022년 대선 방송 3사 출구 조사에선 40대 유권자의 이재명 후보 투표율이 60.5%, 윤석열 후보 35.4%로 역시 가장 심한 진보 쏠림을 보였다. 2021년 지방선거 재·보선 때도 서울·부산에서 국민의힘 소속 시장 후보들이 당선될 때 유독 40~50대만 민주당 후보를 더 많이 찍어 화제가 됐다. 
선거 때마다 중년이 모인 인터넷 카페와 단톡방이 들끓는다. “우리가 진보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다이아몬드 지지층이지!”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보수 찍을 일 없다”며 ‘1찍’ 인증을 줄줄이 올린다. 한쪽에선 “저도 40대지만 여러분 이해 안 됩니다” “제발 정신들 차리세요”란 한탄도 나온다. 
폭주하는 진보 중년을 보는 20~30대는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꼰대들 왜 이럼?” “자기들도 수험생 자식 키우면서 조국 지지하는 게 말이 됨?” 젊은 층은 몸은 쇠하기 시작하나 심장이 끓는 중년을 ‘진보 대학생’이라 비웃고, 어르신들도 ‘영포티(young forty·젊은 척하는 40대)’에 혀를 찬다. 
배고픔 모른 X세대
통상 40대는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을 희구하는 경향과 함께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age effect)가 나타나는 시기다. 그런데 이 땅의 4050은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현 40~50대는 2차 베이비 붐 세대다. 40대 인구가 792만명, 50대 869만명으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머릿수가 많다. 30대 657만명, 20대 619만명, 10대 465만명, 10세 미만 333만명으로 쪼그라드는 다음 세대를 압도한다. 지금 조직과 사회의 허리를 이루는 4050이 60대, 70대로 갈수록 계속 한국 정치·사회 지형을 흔들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청소년기부터 뚜렷한 세대적 특성을 공유해 왔다. 1970년대 초반~1980년대 초반 태어나, 산업화의 과실이 축적된 80~90년대 고도성장기와 민주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며 성장했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배고픔을 모른 세대’로 일컬어진다.
이들이 중·고교에 다니거나 대학 신입생이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다. 서태지 팬덤은 탈이념과 탈권위, 개인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폭발하던 시기, ‘우리는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신인류의 문화 독립 선언이었다.
1990년대엔 대학 진학률이 두 배 폭증했고, 세계화·정보화 바람에 해외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이 유행했다. 천리안·하이텔 등 초기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겨 또래와 정서적 경험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었다. 당시 10~20대는 세상이 규정할 수 없는 독보적 존재란 뜻에서 ‘X세대’로 불렸다.
2002년 ‘꿈★은 이루어진다’
풍요와 자유의 시절에도 아직 남아 있는 권위주의 문화와 이념의 그늘은 X세대를 무겁게 짓눌렀다. 49세 연구원 박모씨는 “고교생 때 ‘네 욕망에 충실하라’는 서태지와 015B 노래를 듣다 교련복 입고 군사훈련받곤 했다”고 술회했다. 교내 체벌은 만연한 반면, 속속 결성되던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교과서를 덮고 좌파 역사 서사를 가르쳐 학생들 피를 끓게 했다.
박씨는 “1994년 대학에 입학하니 86 운동권 선배들이 무용담을 풀고 주한 미군 철군가를 들려줬다. 토플 공부만 하면 ‘의식 없는 놈’으로 찍혔다”고 했다. 배꼽티에 귀 뚫고, 삐삐에서 핸드폰으로 갈아타던 X세대의 무의식에 왠지 모를 운동권 부채감이 싹텄다.
50세 중견기업 임원 신모씨는 “대학 졸업 직전 터진 1997년 IMF 사태는 ‘보수 대통령(YS)은 무능하다’ ‘기성 질서는 잘못됐다’는 인상을 깊이 남겼다”고 했다. 사실 X세대는 IMF의 타격을 정통으로 맞진 않았다. 이들은 고졸이든 대졸이든 취업 잘되고 내 집 마련도 쉬웠던 마지막 세대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자산 축적 속도가 가장 빠른 세대로 꼽힌다.
X세대가 한창 대학에 다니거나 갓 사회에 나온 2002년은 기념비적 해였다. 6월에 축구 대표팀이 붉은 악마 응원에 힘입어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썼다. ‘우리가 광장에 모이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집단 효능감을 안겨준 강렬한 기억이었다. 9월엔 여중생 효순·미선양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한 데 대한 반미(反美) 시위가 일었다. 
그리고 노무현이 왔다. 언더도그였던 노무현 후보가 온라인 팬클럽 노사모와 함께 민주당 경선 돌풍을 일으키더니 12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마이뉴스와 딴지일보 등 신생 인터넷 매체가 20대에 집중해 불길을 퍼뜨렸다. 46세 대기업 부장인 김모(여)씨는 “당시 친구들 중 노무현 안 찍은 애들은 이상하게 보였다”며 “내 손으로 처음 뽑은 대통령은 노무현이고, ‘진보는 정의롭고 깨끗하다’는 편견이 한동안 각인됐다”고 말했다. 
툭하면 보수 정권·검찰 탓
2009년 노 전 대통령이 가족의 뇌물 수수 혐의로 수사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X세대 영광과 노사모의 자부심으로 뭉쳤던 젊은이들이 돌연 피해의식을 갖게 된 사건이다.
49세 변호사 한모씨는 “광화문 노제에 달려가 ‘지켜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모르는 또래들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김제동이고, 김어준 방송만 듣는다”며 “검찰, 보수 언론과 싸우는 조국을 지지한다. 다시는 검찰에 속지 않겠다”고 했다. 
진보 중년은 30대 때 직장과 가정에서 자리 잡느라 분투하는 동안 보수 정권이 이어지자 ‘내가 살기 힘든 건 보수 탓’이란 반감을 굳힌 경우가 많다. 
45세 주부 정모씨는 이명박 정부인 2010년 결혼했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이런 절망적인 나라에선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실 난임이었다. 사정 모르는 시부모가 “정치가 너희 인생과 무슨 상관이냐”고 하자 연을 끊었다.
정씨 부부는 요즘도 이재명·조국 대표의 범죄 혐의에 대해 “왜 보수의 거악은 놔두고 진보의 작은 흠만 들추느냐” “검찰을 뒤집어엎어야 한다”란 게시물을 올린다. 48세 공무원 이모씨도 “2014년 세월호 참사는 문재인이 대통령이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태극기 ‘2찍’들과는 평생 얽히기 싫다”고 말한다.
이런 선배들을 보는 2030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정규직을 독식하고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값 상승 덕을 본 중년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 정치 구도를 왜곡한다” “우린 상승의 기회 자체가 박탈됐는데 중년 좌파는 ‘MZ는 역사의식이 없다’고 훈계만 한다”는 성토를 쏟아낸다.
중년층 상당수는 2019년 조국 사태를 계기로 맹목적 진보를 손절했다. 친노·친문을 자처했던 47세 공기업 직원 양모씨도 그런 경우. 그는 “보수 정권이건 진보 정권이건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보수는 개인이 노력해 용 되는 걸 막지는 않는다”며 “그런데 진보가 ‘가재·붕어·개구리로 행복하게 살라’고 선동하며 자기들 특권만 챙기니 신물이 나더라”고 했다.
50세 금융사 임원 강모씨도 “노무현은 유일신, 문재인은 신의 아들, 유시민·조국은 사도로 섬기고 나머지는 악마화하는 다단계 집단에서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5/08/30/TQBOWMTD6VB57AG274JTV5IRUY
한층 젊어진 '영포티'... 영원한 청춘이냐, 젊게만 보이는 꼰대냐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2025.08.30. 00:33)
[아무튼, 주말]
한층 젊어진 요즘 '영포티'
그들을 향한 다양한 시선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이선호(47)씨는 최근 주말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아내(41)에게 보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 “뭐야, 완전 영포티네ㅋㅋㅋㅋㅋ.”
‘영포티(young forty)? 오. 그럼그럼, 우리가 40대 같지는 않지. 아직 죽지 않았어!’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다들 여전하네. 그래도 내가 제일 낫지?”라는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였다.
이씨가 나중에 들은 설명을 종합하자면, 땡! 그는 완전 잘못 짚었다. 2015년쯤 등장한 ‘영포티(젊은 40대)’는 본디 ‘기존 중년과 달리 트렌드에 민감하고 젊은 취향을 향유하며 소비하는 40대’를 일컫는 말이다. 스마트폰과 SNS를 능숙하게 다루고, 건강·취미·자기 계발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구매력을 탑재한 4050은 분명 이전의 중년과는 다르다.
하지만 2025년의 ‘영포티’는 용례가 바뀌었다. 눈치 없이 영원히 청춘이고 싶은 철부지 중년, 아직도 자신이 젊고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1970~1980년대생을 비꼴 때 많이 쓰인다. 한 보험사 광고에선 이제 ‘나이X0.8’을 해야 요즘 나이가 된다’는 말도 나왔다. 마흔이면 서른둘, 쉰이어야 마흔이다. 신체 나이도, 사회적 나이도 훨씬 젊어진 것. 그런데 그동안 영포티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영포티 패션은 무엇인가
“당신 친구들 봐. 두 명이나 ‘스투시’ 티셔츠 입었네? 얼씨구, ○○씨 입은 옷은 ‘우영미’ 맞지?” 아내가 휴대폰 화면의 사진을 톡톡 치며 깔깔깔 웃었다. 스투시와 우영미는 이씨도 좋아하는 브랜드다. 재작년 하와이 여행을 갔을 때 산 ‘스투시 호놀룰루’ 티셔츠는 요즘도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이씨는 “스투시 티셔츠에 반바지, 수프림 모자를 쓰고 나이키 조던을 신은 4050 남자, 아예 정형화된 ‘영포티 룩’이 있더라”고 했다. “왜 비하의 대상이 됐는지는 아직도 이해는 안 돼요. 하지만 주말 번화가에서 마주치는 내 또래 남자들의 익숙한 옷차림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더라고요.” 
패션 커뮤니티 등에 정리된 ‘영포티 브랜드’는 이렇다. 스투시, 슈프림, 우영미, 준지, 솔리드옴므, 스톤아일랜드, 아미, 나이키(조던), 옴므플리세…. 부쩍 ‘○○○은 영포티 브랜드인가요?’ ‘이제 ◇◇◇은 아재 브랜드죠?’ ‘△△△ 백로고티 영포티 옷이다 vs. 아니다’ 같은 글이 자주 올라오고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활발하다. “누가 입느냐에 따라 다르죠. 배 나오고 머리숱 없는 사람이 입으면 영포티” “지금 영포티라는 말 나오는 브랜드 다 거르면 벌거벗고 다녀야 돼요” “그냥 내가 좋은 거 입고 삽시다”…. 
이 ‘영포티냐 아니냐’ 도마에 오르면 대부분 ‘영포티 맞음’이라는 확인 사살로 귀결된다. 패션에 관심을 두고 사는 40대 남성의 취향이 쏠리는 브랜드가 분명 있다는 얘기다. 어떤 브랜드의 옷인지 100m 밖에서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로고 플레이’가 있고,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잘나갔던 시절이 있고, 꽤 값이 비싸다는 공통점이 있다.
40대 후반인 이제훈씨는 “티셔츠 한 장에 30만원 가까이 하는데 아웃렛에서 자주 마주치는 것 같다 싶으면 영락없이 ‘영포티룩’이 되더라”며 “스톤아일랜드, 우영미 티셔츠를 다 치웠다”고 말했다. 무역업을 하는 김모(50)씨는 “20년 전에도 입던 스투시를 계속 입는 것뿐인데 한순간에 젊어 보이려 애쓰는 아재가 됐다”고 말했다.
MZ가 되고 싶은 AZ들?
영포티 패션 이전에는 ‘신도시 아재룩’이 있었다. 만화영화 ‘마블’ 로고가 붙은 스냅백과 스키니한 조거 팬츠, 유행이 지난 나이키 신발과 지샥 손목시계. 여기에 ‘패밀리카’의 정석인 SUV 카니발까지 중산층 유부남을 그려냈다. 가정과 밥벌이라는 현실의 무게 탓인지 취향은 유행에 뒤처진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트렌드를 좇는 영포티와 차별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영포티는 유독 ‘긁히는’ 느낌일까. ‘젊은 척, 젊은 줄 아는 아재’, 조롱의 뉘앙스가 짙다. 여기에서 방점은 ‘젊은 척’에 있다. 멀쩡한 마케팅 용어 ‘영포티’에 조롱의 뜻을 담기 시작한 것은 2030이다.
현재 영포티로 분류된 브랜드들은 몇 년 전까지 2030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MZ가 주도한 유행과 트렌드에 4050이 올라타기 시작하면서 MZ는 빠르게 이탈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러닝화 브랜드 ‘호카’, ‘온’ 등의 주가가 빠지는 건 ‘아저씨들이 신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증권업계 분석도 나왔다.
상대적으로 여성 영포티는 패션으로 한데 묶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젊음에 대한 욕망’이라는 면에서 일맥상통하는데, SNS에서는 ‘아줌마 릴스(짧은 영상)’가 밈(meme·유행 콘텐츠)이 됐다. 비교적 젊어 보이는 4050 여성이 율동을 하거나 웃는 영상에 ‘아무도 내 나이를 맞힌 사람 없음’, ‘40대지만 20대 같은 코디’, ‘저 40대인데 20대에게 번따(전화번호 따기) 당했잖아요’ 등의 문구를 띄워 놓는 식이다. 여기에는 대부분 ‘동안호소인이냐’ ‘나이 맞혀보라는 릴스는 죄다 50대다’ 같은 댓글이 달린다. 
‘서윗영포티’는 또 무엇인가
상당수 4050은 커리어를 적극 개척하고 건강 관리에 철저하며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기는 모습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쌓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만 젊은 감각을 내세울 뿐 실제로는 ‘꼰대’의 면모를 보이는 영포티도 많다. ‘서윗영포티’가 대표적이다. 서윗은 ‘스윗(sweet)’을 경상도 식으로 읽은 것. 영포티라는 말에 약간의 애잔함과 쓸쓸함이 묻어 있다면, 서윗영포티는 그저 혐오와 불쾌감으로 점철된 단어다. 흔히 젊은 여성에게 부적절한 관심을 보이는 중년 남성을 뜻한다. 유튜브에는 ‘상위 1%라고 착각하는 40대들의 홍대 헌팅’, ‘알바생 번호 따는 아저씨’ 같은 콘텐츠가 올라와 있다. 이들은 본인은 스마트하고 경험 많은 ‘중년의 매력남’이라고 생각하고, 젊은 남녀를 대할때 이중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직장인 커뮤니티 등에도 스윗영포티 경험담·목격담이 올라온다. 20대 신입 여직원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40대 유부남, 웬 아저씨가 ‘퇴근하고 삼소(삼겹살에 소주)하자’는 쪽지를 주고 갔다는 대학생 카페 알바의 사연 등이다. 스타트업에 다니는 안모(37)씨는 “요즘은 겉모습이나 취향으로는 나이나 결혼 여부를 가늠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며 “관리자 급인 40~50대가 과거보다 덜 권위적이고 열려 있어 소통이 수월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영포티는 정치적 맥락에선 보수세가 강한 젊은 층과 대비되는 친여 성향의 4050을 겨냥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조국 사태 등을 계기로 ‘맹목적 좌파’에서 떨어져 나온 4050도 많지만 상당수는 현재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보수 진영의 잘못은 조금도 참지 못하면서 친여 진영의 내로남불·부정에는 눈을 감는 그들의 ‘선별적 도덕률’에 대한 비판이 많다. 2030은 그들 나름대로 “4050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안 우리들은 상승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기성세대와 MZ 사이에 낀 4050에 대해서는 시선이 여러 갈래로 나뉘기 때문에 꼰대·아재·아조씨 등 호칭이 다양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꼰대·영포티 같은 멸칭부터 호의적이고 친근한 느낌의 ‘아조씨’까지 다양한 시각이 있는데, 개인의 개성이 강해지면서 나이를 기준으로 묶는 세대론의 의미는 갈수록 약해진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영포티들은 사실 ‘영포티 패션’이나 ‘서윗영포티’가 무엇인지 모를 터다. 건강하고 슬기롭게, 그리고 가능한 한 젊게 불혹(不惑)과 지천명(知天命)을 맞으려는 생활인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