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권도 생소한데, 여성 도시권까지... 서울시가 성 인지적 관점을 도입하고 있다고 해서 얼마나 바뀌었을지...
------------------------------------------------ 남성 주도 도시공간 ‘여성 도시권’ 침해 (한겨레, 마드리드/권태선 기자, 2008-07-10 오후 07:40:20) 세계여성학대회 주목받은 ‘젠더와 도시정책’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지난 3~9일 열린 제10차 세계여성학대회에는 지난 서울대회의 대회장을 지낸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를 비롯한 한국 여성학자 100여명도 참석해 아시아 여성의 연대, 이주 여성 문제 등 다양한 분야의 논의를 주도했다. 그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젠더와 도시정책’에 관한 세션이었다.
외딴 골목길 등 불안·공포 조성 여성 참여 주택단지 훨씬 효율적 입안단계 성인지적 관점 개입을 세션은 이번 대회의 주제인 ‘새로운 변경’의 하나로 도시권(都市權) 문제에 주목했다. 세션의 기조연설을 맡았던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의 토비 포스터 교수는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지금, 시민에 대한 국가의 우선권적 지위가 약화됨에 따라 시민권의 개념에 대한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곧 국가 이외의 주체, 예를 들면, 국가를 넘어선 유럽연합이나 국가의 하위 단위를 구성하는 도시나 지방 시민으로서의 권리 등이 기존의 시민권에 못지않게 중요해지고 있으며, 특히 도시를 이용하고 도시계획과 실제 운용에 참여할 권리를 의미하는 도시권이 일상의 삶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터 교수는 그러나 기왕의 도시 개발과 그 운용은 남성 중심으로 이뤄져 외딴 골목길, 어두침침한 공원처럼 여성에게 공포와 불안을 조성하는 도시 공간을 만들어내 여성을 배제하는 등 여성들의 도시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셰필드 할램대학의 제니퍼 포천 교수도 오늘날 주택 정책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속 가능성이 정책에 대한 여성의 참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규명했다. 그는 영국과 스페인의 건축가 10여명과 건설업자에 대한 심층면접과 건설된 주택에 대한 5년 또는 10년 단위의 추적연구를 통해, 입안 단계에서부터 여성의 의견을 반영해 그들의 요구에 맞춰 건설된 주택단지가 그렇지 않은 단지들보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주민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훨씬 나았음을 확인했다며 주택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여성의 참여를 핵심 요소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여성의 도시권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도시 정책에서 성 주류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빈과 지난해부터 성 인지적 관점을 도입하고 있는 서울은 그런 노력의 예로서 주목됐다.
빈의 도시계획조정국장인 이바 카일은 “1991년부터 도시계획에서 성 인지적인 관점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빈은 2001년 이후에는 도시계획 과정에서 성 주류화를 핵심 전략 중 하나로 삼게 됐다”고 소개했다. 예를 들어 남녀 청소년의 다른 공원 이용 방식에 대한 사회·경제적 분석을 통해 여학생이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의 공원을 조성하는 등 99년 이후 모두 6개의 시범공원이 성 인지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설계됐다. 또 교통과 수송 체계 연구에서 여성 이동의 60%는 보행인 반면 남성은 자동차를 더 많이 이용하는(59%) 사실을 확인하고 교통 체계에서 보행자의 필요를 좀더 반영하는 식으로 교통 체계를 개편했다. 이를 통해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도시에 대한 소속감이 증진된 것은 물론, 빈이 주민 친화적인 도시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게 카일의 주장이다.
조영미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원이 발표한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여행프로젝트)는 시정의 모든 부분에 성 인지적 관점을 통합하려는 시도로 주목됐다. 중앙 정부의 성 주류화 정책에 따라 2004년 성별 영향평가를 도입했던 서울시는 평가 결과를 피드백하는 정책 추진체계가 없어 평가가 형식에 그침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도시 환경, 도로, 교통, 안전, 건강, 문화 등의 시정 전반에 성별 관점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여행 프로젝트’로 나타났다. 여성의 정책 참여를 제고하기 위해 전문가 여성으로 이뤄진 동반자 그룹과 일반 여성으로 이뤄진 프로슈머 제도가 만들어졌다. 프로슈머 제도의 성과는 지하철 화장실의 안전도에 대한 전면 조사를 거쳐 그를 개선하는 등 구체적 성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선 공무원들의 성 주류화 정책에 대한 인식은 미흡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 조 연구원은 “여성 친화적 도시 정책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도시 건설의 바탕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여행프로젝트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양성평등은 실현가능한 일” “변화와 도전 등 부단한 노력 수반” 세계화로 인한 새로운 폭력도 주시
‘평등은 유토피아가 아니다.’ 이번 제10차 세계여성학대회는 이 슬로건을 통해 모든 분야에서 양성 평등한 사회를 달성하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주요한 도전 가운데 하나임을 확인했다.
전세계 100여 나라에서 모인 3천여명의 여성학 및 인접 분야 학자들은 ‘새로운 경계: 전진과 도전’이란 주제를 내걸고 페미니즘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에서부터 여성의 정치적·법적 권리, 도시 공간의 불평등, 인권투쟁, 세계화가 여성에 끼치는 영향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1981년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첫 대회를 연 이래 3년마다 열리는 세계여성학대회의 특징은 학제간 대화를 통해 좀더 폭넓은 관점의 교환이 가능하도록 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도시 공간의 성별 격차를 다루는 세션에 여성학자뿐만 아니라, 건축가·지리학자·도시공학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이다.
48개의 집중토론 프로그램과 600여개의 정규 세션을 통해 여성학자들은 ‘전지구화한 세계는 전례가 없을 만큼 공간적, 사회·문화적 이동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여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에 주목했다. 이런 새로운 현상은 이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가 하면 새로운 경계와 장벽을 형성하거나 여성에 대한 새로운 폭력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번 대회에서 이주를 비롯한 세계화의 영향이 여성들의 구체적인 삶에 가하는 폭력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된 것은 그것이 여성, 나아가 인류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자들은 양성 평등한 사회의 건설은 결코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아닌 실질적인 가능성임을 확인해 나갔다. 대회 의장인 카를로스 알롱소-마르티네즈 마드리드대학 총장은 이때의 평등은 자원과 기회의 재분배뿐만 아니라 여성의 위치에다 정체성에 대한 인정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는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며, 평등을 유토피아 차원에서 현실로 만들려면 계속 노력해야만 한다”는 마리아 에밀리아 카사스 스페인 헌법재판소장의 말을 가슴에 안고 3천여 여성학자들은 3년 뒤 캐나다에서 열릴 11차 대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대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