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아니 원래부터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던가.
김수행 교수는 분석은 나름 날카롭게 하면서도 대안을 왜 그 모양으로 제시일까.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은 이미 다 제기되었던 것이라 조금은 진부한 느낌이다. 새로운 것도 별로 없고...
----------------------------------------------- “‘민주’ 정부의 실패한 10년이 이명박 정부라는 ‘괴물’낳아”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 2009-01-20 오후 09:19:34) [진보신당 ‘이명박 정부 1년 평가’ 토론회]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기조발표문을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와 경제는 이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오늘의 사회경제적 위기의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책임에 앞서 시장의 폭군화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국가의 실패, ‘민주’ 정부 10년의 실패에 있다고 짚었다. 지난 ‘민주’ 정부 10년의 경험이야말로 이명박 정부라는 ‘괴물’의 출현이라는 결과를 가져온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준엄한 책임과 자성이 필요했는데, 이명박 정부 1년이 이를 잠재워 버리고 과거와 유사한 ‘반엠비 민주대연합’의 낡은 틀이 또 다시 강요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건설할 대안적 힘의 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노 대표는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은 정치의 복원을 통해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 시스템을 수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본으로 하여금 고용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의 출발은 사회와의 개방적 소통이라고 주장했다. 좋은 정치 리더십의 창출과 좋은 정당정치의 실천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노 대표는 결론으로 “분노와 열정에 기초한, 서민중심형 복지동맹의 구축”과, 그에 기초한 ‘사회소통형 대안정당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 분야는 김수행 교수(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세계공황과 한국경제’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개인의 재산 불리기’와 ‘국민경제 살리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국민경제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부를 생산과정에서 창조해야만 부유하게 되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는 1997년 말의 공황 이래 서민들의 생활이 크게 악화되었기 때문에 지금 공황이 발생하면 큰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다”며 “정부는 지금과 같은 국민 분열적인 양극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지 말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호철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는 ‘위기의 한국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를 주제로 발표했다. 손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시위가 사그러든 광복절 이후 공세에 나섰다”며 △신자유주의적 토건국가 추구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 추구 △제왕적 대통령으로의 역주행 등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던 국민들에게 한국의 냉전세력은 ‘부패한데다가 무능하기까지 하다’는 것, 한 발 더 나가 ‘부패하고 무능한데다가 오만하며 불도저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의 정책연구소격인 사단법인 ‘마들연구소’가 20일 ‘이명박 정부 1년 평가’를 주제로 첫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은 지난 1년을 민주주의 후퇴, 신자유주의 심화로 보고, 올 한 해는 더욱 혹독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 대표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B학점을 받았다면 현 정부는 C, D 학점으로 추락했다”고 평가했다.
경제부문 발표자로 나온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 ‘경제 살리기’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개인의 재산 불리기’와 ‘국민경제 살리기’를 구분 못하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명박 정부는 위기를 기회라고 하는데, 죽은 아들 보고 자꾸 살아있다고 하는 것”이라며 안이한 현실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벌써 속이 다 드러나 망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심화하는 것이 문제”라며 기득권 세력의 양보를 얻어내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제안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놔두고 투자율만 높이려 할 것이 아니라 현재 투자율로 국민이 만족할 소득과 고용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현 정부 경제 정책의 난맥을 ‘시쳇말’로 비유해 정리했다. 유 교수는 “일자리 나누기가 절실한데 공공부문에서는 일자리를 줄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인턴을 뽑는다고 한다. 또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더니 태산명동 서일필이라고 딱 한 마리만 퇴출 대상이 됐다. 녹색뉴딜이라더니 녹슨 삽질이었다”고 했다. 그는 “진보개혁 세력이 잘하지 않으면 파출소를 피하려다 경찰서 만난 정도가 아니라 안기부를 만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부문 발표자인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라디오 연설에서 예고했듯 공사 기간 단축의 ‘노가다 정치’에 나섰다”고 진단했다.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19일 개각을 보니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협의하는 것도 조급해하는 것 같다”며 “자기 의지와 상황이 불일치하는 데서 오는 조급증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4월 재·보선과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와 관련,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선거연합이나, 진보진영의 일정 수준의 연합이 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전망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한 쪽은 모든 것을 좌우로 볼 정도로 정치적으로 과잉돼 있고, 한 쪽은 아예 무관심한 극단적 정치 양극화가 존재한다”며 “생활의 정치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김수행 "더불어 사는 복지국가", 손호철 "주전선은 반신자유주의" (레디앙, 2009년 01월 21일 (수) 12:48:32 정상근 기자) [마들연구소 심포지엄] 진보학자 총출동…공황 진단, 정치 전략 등 토론
이날 경제 분야 심포지엄에 참여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와 김상조 한성대학 교수, 유종일 KDI국제대학원 교수, 이정우 경북대 교수,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각자 차이점을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공통된 시각을 드러냈다. 그들은 경제위기를 진단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을 넘어 조소하는 한편 이에 대한 대안으로 “경제공황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이 확대분이 서민층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분배(복지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2부-정치’ 분야에서는 이와 같은 위기상황에 대해, 진보좌파정치가 어떤 길을 모색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2부 토론에서는 손호철 서강대 교수의 '지난 10년'을 바탕으로 위기를 진단한 것과 전선을 기준으로 위기해법을 제시한 것에 대해 구갑우 북한대학원대교수와 서복경 민주주의교육연구센터 정치학 박사, 신광영 중앙대 교수, 정대화 상지대 교수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1부 발제를 맡은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현재의 세계공황이 “금융위기만이 아닌 산업위기와 금융위기가 결합해서 진행된 진정한 ‘경제위기’”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그런 관점에서 “금융기관에 집중되는 미국 공황대책은 부족한 점이 많다”며 “미국 사회를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평등한 복지사회로 전환시키면 공황은 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동북아 금융 허브’같은 허구를 버리”고 “더불어 사는 복지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사회복지비를 늘리고, 부자는 소득세율을 늘리고, 취업노동자는 일정한 임금감소를 수용하면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거나 일자리는 나누는 등 조금씩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현 공황을 설명하는데 도덕적 해이와 정경유착은 때론 중요한 도구적 개념이 될 수 있다”며 “기업들은 건전한 경제운영을 위한 규제와 제제를 막기 위해 정경유착을 하고 있으며 이는 지금의 삼성처럼 국가시스템을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김수행 교수가 “공황을 도덕적 해이, 정경유착으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론이다. 이어 경제위기에 대해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은 오류들은 국내에서도 진행되는 등 내적요인들이 있었으며 이를 참여정부 시절 관리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의 결과를 일으킨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이명박 정부 주장처럼 투자율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투자율을 가지고 국민이 만족하는 고용과 소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신자유주의 정권”보다는 “중상주의”로 규정하며 “중상주의자인 윤증현을 기획재정부 장관에 임명하고 관치금융을 통해 한국경제 위기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아담스미스가 밑으로부터의 에너지를 통해 중상주의 경제 기득권을 깨뜨렸듯이 우리도 아래로부터 신자유주의와 중상주의를 동시에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종일 KDI국제대학원 교수는 “국내 경제가 10%가 위축이 된다 한들 한국은 여전히 잘사는 나라”라면서도 “그럼에도 이렇게 어려운 것은 그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즉 “나누기를 잘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핵심은 ‘일자리-소득 나누기’”라며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선 근로시간 줄여야 하는데 정부는 자꾸 임금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며 “경제가 어려워질 때 임금을 줄이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질서 정연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구조조정 기관이 도덕적 권위와 신뢰를 갖춰야 하는데 이런 것이 결여되어 있다”며 “때문에 금융경색현상을 완화시킬 수 없고 잠재적 문제는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또 필요한 것은 유효수요 확대를 위한 재정투입”이라며 “재정투입은 경기부양효과를 최대로 하면서 미래지향성을 고민해야 하는데, ‘녹색뉴딜’은 굉장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토목공사는 중장비가 다하기 때문에 고용창출은 엉터리”라며 “건설을 하겠다면 대대적인 보육시설을 건설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종일 교수는 “마지막으로 신뢰가 중요하다”며 깊은 한숨을 내쉰 후 “국민들은 노무현을 기대했는데 배신감을 느꼈고,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 경제 한 번 살려보라고 한 건데 이렇게 된 것”이라며 “‘파출소 피하려다가 경찰서 만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개혁세력이 잘하지 못한다면 다음에 국민들이 ‘경찰서 피하려다가 안기부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그래도 참여정부”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교수는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정지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IT나 부동산, 카드 거품을 일으킨 것”이라며 “외환위기 극복에 초조함을 갖고 있던 국민의 정부부터 이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거품이 꺼지는 과정이 참여정부의 시기”였다며 “시장만능주의를 교정해보려고 한 것이 참여정부였으며 과거 풀었던 규제들을 다시 조이는 과정이 참여정부였기 때문에 경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참여정부 때 처음으로 복지예산이 성장예산을 역전시켰으며 OECD수준으로 가려 했는데 역부족이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겠다더니 시장만능주의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시장만능을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여전히 관치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은 이명박 정부에게는 없다”고 말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타 토론자들보다는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장 교수는 “한국은 60년대 이후 압축 성장을 해왔고 IMF이후 자본주의의 모순도 압축적으로 겪었다”며 “이러한 위기는 과거 선진국에선 복지국가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했는데 우리는 이 같은 문제해결을 압축적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장 교수는 “우리는 자유주의적 자본을 육성하는 체제에서 복지국가란 것을 확립하지 못하고, 다시 외환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로 오면서 우리 사회 모순을 키웠다가 세계경제위기에 휘둘린 것”이라며 “지난 10년, 서민들이 양극화에 휘둘린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대책은 ‘뉴딜 정책’을 살펴보면 답이 나와 있다”며 “재정정책으로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복지를 늘리고 노조를 보호해 소득불균형을 극복해야 한다”며 “또한 사적 자본의 투자를 지원하는 금융의 사회화와 공적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다”며 “지나친 수출의존 경제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하기도 했다. 장 교수는 “현재 이명박 정부는 완전히 역주행하고 있다”며 “방향을 바꾸게 하려면 국민들의 인식과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펀드 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사회복지를 통해 내 돈을 돌려달라고 촛불을 들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GDP대비 복지예산을 OECD 수준으로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럼 정치에서의 위기진단과 진보좌파진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 2부 발제를 맡은 손호철 교수는 “현재 위기 진단은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로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지난 10년은 민주개혁에는 무능했고 신자유주의 개악에는 유능했던 시기”라고 규정했다. 이어 “현재의 위기는 지난 10년 이후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냉전적 보수세력이 정치사회뿐 아니라 조직화된 시민사회, 일반대중의 수준에서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결국 무당파성을 보이고 있는 25%의 대중을 비롯해 대중을 견인해 내고, 대중으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는 것만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에 대해 “지난 광복절 이후 공세를 시작한 것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박정희식 발전국가를 결합하는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를 추구하는 한편, 지난 10년 동안 나타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는 것”과 함께 “제왕적 대통령으로의 역주행, 그리고 의외로 강한 이념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손 교수는 이후 이명박 정권에 의해 2009년이 “최악의 한 해 가 될 것”이라며 “MB악법 실패로 ‘상처 입은 야수’처럼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내년 지자체선거로 자신의 레임덕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올해는 ‘MB대 국민’ 전면적 양상의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일회성을 넘어 그동안 쌓은 진보적 진지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대응방안으로 다양한 전선을 언급하며 “이명박 정권의 반동성에 의해 죽어가던 ‘민주 대 반민주’구도가 살아나고 있는데, 악법저지가 아무리 중차대하더라도 우리 시대의 주전선은 ‘반신자유주의’가 되어야 한다”며 “상층부 연합이 아닌 민중과 대중으로부터의 연합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보선, 2010년 지자체선거에서 민주당이 발본적으로 자기비판을 하고 신자유주의와의 근본적 단절을 선언하며, 선거에서 진보세력에 대해 발본적인 양보를 하지 않는 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은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결국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선거연합, 합당 시나리오가 현실적이고 의미있는 시나리오지만 두 당 내부정치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손 교수는 선거에 대한 진보진영의 대안으로 “△독자세력화에 기초한 선거연합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진보신당+사회당+사회주의노동자정당 준비모임의 소연합 △역시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다른 진보진영의 소선거연합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무엇보다 진보진영은 풀뿌리부터 시작해야 하며, 마들연구소의 실험은 중요하고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갑우 교수는 “지난 10년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지만 진보좌파진영의 잘못은 없었는가”라며 “87년 이후 진보좌파가 미시적-거시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는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 교수는 세부적으로 “진보-좌파의 윤리학”을 강조하며 “정권의 부도덕성과 잘못은 말하지만 삶 속에서의 진보좌파 구성은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위기 속에서 진보좌파의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며 “이명박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만 진보좌파가 대중들에게 체감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정부정책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한국정치는 파시즘, 파퓰리즘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전쟁과 파시즘의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진보좌파가 말하는 계급정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말하지만 어떤 자본주의인지 말하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진보좌파의 국제관계 전망을 알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구 교수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진보좌파의 의견을 잘 모르겠다”며 “민족주의의 과잉, 북한의 미래에 대해 신자유주의 개방론 두 가지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세적으로 북-미관계가 정상화되고 남-북관계는 경색되었을 때 진보좌파는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을 말하기도 했다.
서복경 박사는 손 교수의 ‘한국 정치시스템 분석’에 대해 “정당정치와 조직된 시민사회 등이 보수 세력에 의해 압도되었다기보다는 87년 체제가 해체한 이후 새 체제가 등장하지 않은 상태란 표현이 적절하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역대 최저 득표수를 얻은 것은 이를 반증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한나라당이 좋아서 지지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에서 진보신당까지 ‘풀패키지 정당체제’가 마음에 안드는 것”이라며 “이 결과가 퇴행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묵인 내지는 승인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권자들은 ‘무엇인가 다른 정치세력, 정당이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실질적으로 ‘시장에서의 이해’와 ‘정치적 차원에서 이해’를 어떻게 연결시키는가가 중요하다”며 "생활정치"를 강조했다. 신 교수는 “교육과 건강 같이 생활정치에 맞게 한국사회와 유권자, 시민들의 의식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이슈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연장선에서 신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반신자유주의' 대신 '시장 전제주의, 시장독재'”를 대안용어로 제시하기도 했다. 신 교수는 이어 “노무현 반사이익으로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매우 단순한 정치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신과 배반감을 줄 것”이라며 “미네르바 현상은 이와 같은 연장선에서 해석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향후 일본-미국에서의 변화가 이명박 정권에게는 상당히 곤혹스러운 환경으로 대두될 것”이라며 “이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가도 정당에 중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대화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 정도의 의욕은 있는 것 같다”며 “의욕은 있는데 촛불로 스타일을 구겼고, 이를 만회하려다 보니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19일 개각은 ‘한나라당하고도 얘기 안하겠다’는 조급증의 발로”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는 우리 사회를 정직하게 반영하고 있다”며 “재벌, 지역주의, 반공분단주의, 거대한 자영업자들의 존재는 진보를 불가능하게 한다”며 “이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보수는 너무 저급하고 대안은 취약한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계속 얘기해도 대중화가 안되는 ‘신자유주의’보다는 생활 속에 느낄 수 있는 언어가 좋다”며 “정권이 이상하게 넘어갔기 때문에 권토중래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다만 5년간 상처를 많이 입을 텐데 내상을 크게 당하지 않는다면 도전할 기회는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손 교수가 범진보의 통합에 대해 말했는데, 보수와 자유주의가 과잉이라면 진보는 과소인 상황에서 우리의 대안은 ‘진보의 통합’이 아닌 ‘진보의 창출’아닌가”라며 “대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보의 통합’과 ‘진보의 창출’은 마음가짐이나 과제부터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1년 평가 : 2009년 대한민국, 위기 진단과 해법 찾기” ◎ 일 시 : 2009년 1월 20일(화) 오후 2시부터 6시 30분까지
◎ 장 소 : 프레스센타 20층 국제회의장
◎ 주 관 : 마들연구소
◎ 공동주최 : 경향신문 /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 진보신당 정책연구소 ‘미래상상’
<기조발표문> 한국사회의 정치와 경제: 이제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다 노회찬 (마들연구소 이사장 /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
1. 상황 규정 : 고단한 삶이 지속되는, 탈출구 없는 고통의 감옥
위기, 실망과 절망, 분노, 재앙. 2009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로 내가 선택한 단어의 목록이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위기의 핵심은 서민들의 사회경제적 고통의 누적과 그로 인한 총체적인 삶의 질의 악화,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대안의 부재로 모아진다. 정치에 대한 분노와 실망, 신뢰의 철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탈정치․반정치화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한편 사회경제적 삶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생존에의 공포와 퇴락의 두려움이 일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상식이 해체된 시대 상황에서 진보적 사회운동과 민주적 정치과정에 대중의 참여가 깊고 넓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새로운 사태에 직면하여 민주주의 발전의 사회적 기반이자 주체라고 인정되어 온 노동을 비롯한 민중 부문의 발언권이나 영향력은 오히려 생산과 사회의 영역을 넘어 정치의 영역에서도 급격히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퇴행과 위기의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게 전적으로 묻거나, 또는 세계경제의 위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엄중한 사태를 너무 한가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전에 일차적으로는 민중적 기초로부터 멀어지는 정치경제체제를 발전시킨 민주화 20년의 역대 정부와 그것에 편승한 기성 정당에게서, 부차적으로는 그것을 제어하지 못한 운동의 약화, 특히 민중적 요소의 급격한 축소에 따른 제도권 밖 정치적 다이나믹스의 사회적 원천 소진 등 주체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민주주의 이름으로 너무 쉽게 민주주의를 배반한, 노무현 정부가 묶어 놓은 이 실타래를 풀지 못하면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의 실현은 요원하다고 할 것이다.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준엄한 책임과 자성이 필요했는데, 문제는 이명박 정부 1년이 이를 잠재워버렸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오히려 과거와 유사한 ‘반MB 민주대연합’의 낡은 틀이 또 다시 강요되면서, 새로운 희망을 건설할 대안적 힘의 조직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오늘의 사회경제적 위기와 사회 중하층 구성원들의 삶의 파탄은 운동의 책임이기도 하다. 오늘에 기초하여 더 나은 미래와 새로운 세상을 설계해 온 진보정당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등 각종 운동들은 대중의 열정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설득력 있는 대안과 실천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운동의 침체와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와 관련해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정치제도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려면 무엇보다 ‘폭군적인’ 경제권력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하에서 (좋은) 정당 없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할 방법은 없다.”는 지적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좋은 정당정치야말로 자본과 시장의 경제적 횡포에 맞서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삶을 지켜주는 제도적․실천적 기제라고 할 때, 오늘의 사태는 어떤 면에서 좋은 정당을 만들어내지 못한 운동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정치가 바뀌어야 경제가 살아나고, 또 민생이 고통의 나락에서 벗어나 평안해질 수 있다.”는 말로 압축된다. 돌이켜볼 때, 2008년 거리를 뜨겁게 달군 촛불의 물결은 기성 질서에 대한 경고와 거부와 심판을 의미한다. 그 핵심 메시지는 ‘변화 없이 기회 없다’(No Change, No Chance), ‘변화 없이 희망 없다’(No Change, No Dream)는 것으로 요약된다. 총체적인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시대적 화두로서 경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를 운영한 결과, 잃어버린 것은 ‘희망’이고 얻은 것은 ‘빈곤과 절망’뿐이며, 그것이 바로 현 경제위기의 본질이다. 이처럼 먹고 사는 경제문제가 한국정치의 중심적인 사회균열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태가 진전되면서 사회 중하층의 삶은 훨씬 가혹한 파국적 상태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한 경제의 정치화가 필요한 핵심 이유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민주정부들은 점진적으로 자본에게 권력을 넘겨준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요구되는 정치의 역할은 노동자의 권리와 고용, 복지와 결합되지 않은 자본 중심의 성장체제와 그 물신화된 이데올로기들을 타파하고 대중의 삶과 결합한 지속가능한 성장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는 것에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의 첫 출발은 사회 중하층 구성원들의 삶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문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대안의 구체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 패러다임과 관련해 다음으로 주목할 것은,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경제성장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 사회경제적 평등이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경제성장에 동의했던 것은 현재의 고통을 해결해 줄 방안과 내일의 희망을 열어줄 비전을 단지 ‘과거의 언어’로 표현했을 뿐인 것이다. 또 뉴타운 공약에 혹했던 것은 미흡한 한국의 사회안전망의 현실적 대안이 바로 부동산을 통한 재산의 증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교육에 그렇게 순응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나마 높은 학력을 보유해야 먹고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기 때문인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사회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해소, 사회경제적 평등을 갖고 오지 못하는 경제성장이란 대안의 경제 패러다임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경제의 금융화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세계가 새로운 모색과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 지금, 한국만큼은 여전히 과거의 낡은 모델을 폐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키고 있다.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 강화, 감세가 아닌 증세를 통한 복지재정 확보, 교육과 의료 등 공적 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한 고용 창출과 내수 중심 성장노선으로의 전환, 임금격차 축소와 보편적 생활임금체계의 구축,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경제운영체계 구축 등 경제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에서 오로지 부유층에 대한 감세와 토목건설 중흥만을 외치며 역주행에 따른 갈등만을 확산시킨 것이 이명박 정부 통치 1년의 실상이다.
지금 한국사회 대다수 서민층이 겪고 있는 삶의 고통에 대한 책임은 바로 무책임한 자본과 이에 투항한 무능력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통제되지 않은 자본의 자유는 사회적 책임이나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무제한의 이윤 추구와 금권정치를 통한 민주주의의 부패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경제 시스템과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지금,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은 정치의 복원을 통한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시스템을 수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핵심은 자본으로 하여금 고용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실정에 맞는 대안의 경제모델을 만들어내기 위해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 또는 기조를 제시할 수는 있다고 본다.
첫째, 고용 중심-사회적 책임의 순선환을 이룰 지속가능한 성장 모델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GDP 중심의 성장에서 빈부격차와 사회 양극화의 폭을 줄이는 고용 중심의 성장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 중심의 성장 노선에서 핵심은 노동의 권리와 함께 하는 일자리의 창출이며, 그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노동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 수 있으며 또 연쇄 효과를 통해 위기의 경제 상황을 극복해갈 수 있는 열정과 희망의 원천을 새롭게 창출해낼 수 있다. 둘째, 보편적 복지 중심-생태친화적인 원칙 속에서 디자인된 모델로 보편적 복지를 통해 결실에 대한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져야 하며, 또 지속가능한 성장이 ‘인간에 대한 자연의 복수’를 저지하는 흐름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경쟁과 갈등의 주체들 간에 합의할 수 있는 공정한 룰의 정착이다.
사실 내가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지점은 북유럽형 모델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북유럽형 모델에 대한 대부분의 논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것은 무엇보다도 운동의 정치, 즉 민주적 통제를 통해 자본에게 사회적 책무를 부과할 능력을 갖춘강한 진보정당과 노동조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북유럽형 모델은 사회적 합의와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 : 정치의 변경 없이 작은 변화도 이룰 수 없다
정치란 민주주의를 통해 부와 권력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사회 정의와 인간관계를 재구성하는 연대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인민 다수의 신뢰와 지지에 바탕해 권력의 획득을 넘어, 인민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정치·사회적 ‘권위’를 획득하는 실천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규범(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정의와 연대의 실현)과 실리(정치·사회적 권위의 획득)의 통합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를 가늠하는 것은 바로 그 규범과 실리를 얼마나 높은 수준에서 균형감 있게 통합시켜내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한국사회의 현실과 정치의 본질적 역할을 고려할 때, 당면한 현실에서 한국정치가 수행해야 하는 핵심 과제는 무엇보다도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이며, 그 해소를 위한 실천은 서민들의 참여와 결정(또는 그 기회의 보장)에 바탕해서 이루어져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자기들만의 리그 속에서 ‘민주적 책임성’(democratic accountability)이 결여된 나쁜 정치의 지속이야말로 한국정치의 비극적 현실이며 위기의 실체인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 하에서 정권과 다수당은 선거에서의 경쟁만이 아니라 일상적 정치과정에서도 인민의 지지를 구하기 위한 경쟁에서의 승리를 요구한다. 한국정치에서 ‘민주적 책임성’의 원리의 작동 불능 상태는 M+B 해저드를 공유하고 있는 집권여당과 무력한 야당에 의해 구축된 것이자, 사회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사익추구 정치의 확산이 가져온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의 제 자리 찾기, 좋은 정치를 향한 정치 패러다임 전환의 출발은 사회와의 개방적 소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앞서 말한 경제위기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 문제, 사회 중하층 구성원의 파타난 삶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 문제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다음으로 정치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 기제는 좋은 정치 리더십의 창출과 좋은 정당정치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리더십의 문제와 관련해서 볼 때, 중요한 것은 공동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목표들을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명확히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전략적 기회구조를 만들어냄으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이 과정은 구성원들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동태적이며 역동적인 과정이다. 좋은 리더십이 존재할 때, 그 공동체의 생명력은 강하고 대안적 비전의 창출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고 할 것이다. 특히 좋은 리더십이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은 바로 공동체의 고통과 소외의 주된 담지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민주화 20년의 경험은 “좋은 정당 없이 좋은 정치 없다”는 것과 함께, 그 결과의 참혹함을 동시에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련의 방송 장악 프로그램이나 ‘미네르바’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요구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그리고 소통불능의 정치를 구축한 원죄와 함께 사회적 요구에 오랫동안 귀를 닫아버린 민주당은 나쁜 정치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지난 87년 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좋은 정당 건설을 통한 이른바 ‘좋은 정치’의 실현을 위한 계기를 창출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 한국의 정치를 지체시킨 핵심 주범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2008 촛불 민심의 요구와 소통하고 책임 있는 실천을 통해 응답할 수 있는 좋은 정당의 건설이야말로 오늘의 위기를 돌파해낼 수 있는 관건이라고 본다.
좌파의 경우 무력한 폐쇄적 좌파가 힘있는 열린 좌파로 거듭나 정치적 경쟁축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그랬을 때 사회와의 소통을 통한 자기 성찰 속에서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을 뛰어넘는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나는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적 다툼이나 구역 지키기 싸움은 사회적 반향을 만들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소모적인 지루한 시간 속에서 피로도만을 증가시킬 뿐이라고 본다. 좀 더 아래로 내려와 함께 만난다면 공동의 실천을 통한 상승효과를 만들어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현재 진행중인 전선 논의는 20세기형 전선 질서 논의의 재판이라는 점에서 새롭게 짜여질 필요가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갈등과 균열구조에 대해 새로운 언어를 통한 새로운 프레임 구축이며, 일단 출발은 시대적 가치와 의제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전선 질서의 논의는 새로운 정치의 판짜기, 정치적 구조개편으로 이어져 정당 건설의 문제의식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활동가들의 주관적 의지나 생각에 앞서, 사회와의 소통이며 함께 하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본래 이름으로 호명하면서 ‘악어의 눈물’에 불과한 이미지 정치가 아닌, 그들에게 직접 말을 걸고 그들의 고통과 애환과 소외된 삶을 함께 나누는 정치가 필요하다.
4. 맺는 말 : 분노와 열정에 기초한, 서민중심형 복지동맹의 구축
청와대에 종속된 한나라당의 기본 구도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이 사회적 요구에 응답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무망하다. 그리고 존경받는 리더십의 부재, 내부 분열의 씨앗 상존, 모호한 정체성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민주당의 경우, 다른 정치 대안이 부재한 상태에서는 수십년에 걸친 역사와 전통의 기반, 그리고 특정 지역의 제한된 지지 속에서 정치적으로 생존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명박 이후의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현재 여론조사 결과 30% 지지율로 고정된 채 독주를 계속하는 박근혜 현상은 한국정치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늘에 기초하여 미래의 새 세상을 설계하고자 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은 사태 전개에 대한 ‘권위’ 있는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만의 매력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블루오션’의 제공자로서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는 정치 시장’과 사회적 지지의 기반을 끊임없이 개척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지금과 같은 비상사태 앞에서, 나는 탈출구 없는 감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다수의 보통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서민중심형 복지동맹’ 구성이 필요하며, 그 속에서 진보정치의 블루오션을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내가 말하는 서민중심형 복지동맹은 탈출구 없는 감옥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희망에 대한 열정에 기초하며 사회정의와 연대라는 기조 아래, 노동의 권리와 함께 하는 일자리 창출을 자기 과제로 하는 실천동맹의 성격을 띤다. 그리고 가진 자들에 대한 증세를 기본으로, ‘복지와 세금의 부분적 맞교환’을 부차적으로 해서 개인이나 가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위험과 불안을 공동체적으로 해결하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기본 목표로 한다. 분노라는 부정에 기초한 힘을 열정이라는 긍정의 힘으로 전환시키고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운동의 역할도 물론 필요하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좋은 정당과 좋은 정치 리더십이 관건이다. 운동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국정 운영의 근본적 대안과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운동의 역할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서민중심형 복지동맹은 동맹 건설 그 자체로 마감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 -> 신뢰 획득 -> 정당 건설’이라는 단계를 통해 실현된다. 오바마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알린스키(Saul D. Alinsky)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그리고 사민주의냐 사회주의냐를 떠나 내가 꿈꾸는 새로운 정치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태의 전개와 그 과정에 내장된 갈등에 대한 나름의 이해에 기초하여, 2009년 오늘의 시점에서 나는 그 구체적 표현을 “분노와 열정에 기초한, 서민중심형 복지동맹의 구축”과 그에 기초한 ‘사회소통형 대안정당의 건설’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 없이 희망 없다”, “변화와 희망을 재건하는 첫 출발은 다름 아닌 정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추상적인 말의 성찬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해서 사회경제적 삶의 위기를 돌파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진보의 재구성-주체의 재구성을 이뤄내는 것이 오늘의 시대가 우리에게 부과한 핵심 과제라는 것, 그것을 위해 사회와 소통하는 새로운 대안정당의 건설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기조발표를 마친다.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에서는 산업과 은행이 모두 사회의 소유라면, 경제활동이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자율이나 이윤율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고 위기나 공황이 발생할 수도 없고 대규모의 해고도 있을 수 없다.
2. 석유가격의 폭등은 1974/75년 세계 대공황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
3. 2008년의 세계공황은 ‘금융귀족들의 탐욕과 사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누진세에 의해 유지되던 사회보장제도가 감세정책을 통해 축소되고, 노동의 유연화를 통해 실업자가 증가하고 임금수준이 저하하며, 부익부 빈익빈이 강화되자, 국내시장과 세계시장이 갑자기 좁아졌기 때문이다. 생산을 해도 생산물이 팔리지 않게 된 것이다. 선진국 정부는 후진국들에게 무역과 외환과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강요하면서 자국 출신의 자본가들에게 세계를 무대로 이윤을 추구하라고 권장했다. 그런데 국내시장과 세계시장이 축소하면서 세계화가 진전되니까 선진국의 금융부문은 산업부문보다도 더욱 큰 이윤획득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특히 국제금융시장이 환율, 이자율, 유가증권의 가격 등에서 매우 큰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미국의 은행들과 펀드들은 주식, 채권, 금융파생상품, 외환을 매매하면서 훨씬 쉽게 이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제의 ‘금융화’는 이것을 가리킨다.
또한 기관투자가들이 주요 산업부문의 대주주가 됨에 따라 산업부문은 더욱 쇠퇴하게 되었다. 상업은행, 투자은행, 펀드, 보험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은 산업부문이 연구와 개발을 통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발전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배당을 많이 주고 주가를 상승시키는 것을 바랬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기업 경영진에게 스톡옵션까지 주면서 단기이익을 많이 올려 주주에게 배당을 많이 주고 주가를 상승시키라고 주문했으며, 경영진은 해고를 증가시키고 노동의 유연성을 강화했으며, 심지어 회계를 조작해 당기 순이익을 높이는 부정을 저질러 산업기업을 파산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금융부문이 산업부문보다 더욱 더 급속히 발달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되었다. 왜냐하면 산업부문의 노동자들만이 새로운 부가가치와 이윤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금융부문이 당좌계정의 운영이나 예금자들 사이의 대차관계의 결제 등을 통해 사회의 ‘화폐취급비용’을 감축시키거나, 사회의 유휴화폐를 산업자본으로 전환시키는 한, 금융부문은 잉여가치의 창조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금융부문이 유통분야에서 주식이나 채권을 사고팔아 자본이득을 얻고, 불투명한 금융파생상품을 매매해서 투기이득을 얻으며, 서민에게 자금을 대출하고 높은 이자를 받아 자기의 자본을 증식시키는 것은, 사실상 사회의 부를 조금도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남의 주머니를 털어 치부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기생적이고 사기적인 금융활동에서는 정보가 풍부한 기득권층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게 마련이어서 소득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면서 국내시장이 더욱 축소되었다. 1980년 이후의 경제성장률이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경제성장률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경제는 1995년 이후 달러가치가 상승해 수출경쟁력이 저하하고 대폭의 무역수지 적자를 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2000년 상반기까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고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이 낮은 상대적인 호황을 누렸다. 주류경제학은 미국 경제가 이제 ‘신경제(New Economy)’의 경지에 도달해 오랫동안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 호황은 2000년 상반기에 막을 내렸다. 신경제를 창조한 요소로서는 디지털혁명이라는 기술혁신, 이 기술혁신에 자금을 공급한 벤처자본, 그리고 벤처자본에게 대박을 얻을 수 있게 한 흥청거리는 뉴욕증권시장 등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세계의 유휴자금이 거대한 규모로 뉴욕증권시장에 모여 유가증권 가격을 계속 상승시켰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주식가격이 상승함으로써 주식소유자는 장래의 재산이 증가하리라고 생각해 미리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해 소비를 증가시켰고, 벤처기업은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었으므로 투자를 증가시킨 것이다. 이리하여 소비와 투자가 증가해 경제 전체가 과열현상까지 보였다. 또한 세계의 달러 유휴자금이 뉴욕에 집결했기 때문에 달러의 대외가치는 거대한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하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부문에서 과잉투자가 발생해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하기 시작했으며, 2000년 봄부터 주가 상승이 머뭇거리다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실업률도 다시 증가함으로써 신경제는 막을 내렸다. 그 뒤 2001년 9월 11일 미국 심장부에 대한 테러공격에 대항하여 2001년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2003년의 이라크 침략 등으로 미국 경제는 군사화의 길을 걸었으며, 거대한 무역수지 적자, 대외순부채 및 정부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대외가치가 유지되고 뉴욕증권시장이 붕괴하지 않는 것은, 경제의 금융화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면서 미국 제국(Empire)이 기타의 제국주의국들과 종속국들로부터 일종의 공납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달러를 어느 순간에 유럽연합의 유로로 전환시킨다면, 미국의 달러는 가치가 폭락하면서 세계화폐로서 역할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뉴욕증권시장은 큰 공황에 빠질 것이며, 세계경제는 새롭게 편성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공황을 흔히들 ‘금융’위기라고 불러 위기를 단순히 금융부문의 문제로 국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산업위기와 금융위기가 결합해서 진행된 진정한 ‘경제’위기다. 금융위기는 산업의 과잉생산 위기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온갖 장래 예측과 풍문에 민감한 증권시장에서 증권 가격의 폭락을 통해 금융위기가 산업위기와는 ‘독립적으로’ 먼저 발발해서 나중에 산업위기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발 세계공황은 다음과 같은 경과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첫째로 2000-2001년에 정보통신산업의 거품이 터지면서 주가가 폭락하자, 미국의 중앙은행은 정보통신산업과 금융기관 및 증권회사의 광범한 피해를 막기 위해 2001년 한 해에 금리(연방기금)를 연 6.5%에서 1.75%로 인하하면서 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했다. 둘째로 이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가서 주택가격의 폭등, 주택의 과잉생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의 거대한 증가, 모기지관련 금융파생상품(MBS, CDO, CDS 등)의 과잉발행과 과잉거래(국제금융시장 전체에 걸쳐 일어났다)를 야기했다. 셋째로 민간주택건설은 2006년 이후 감소하고 주택가격은 2006년 7월 이후 저하하기 시작했으며, 비우량 모기지차입자들이 모기지대출의 원리금 상환을 연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모기지관련 금융파생상품의 가격은 폭락하고 모기지관련 금융기관들은 2006년 12월부터 파산하기 시작했다. 넷째로 이런 주택산업과 모기지관련 금융활동의 위기는 1980년 이래의 신자유주의와 경제의 금융화가 야기한 경제의 난맥상--생산적인 산업부문이 침체해 실업자가 증가하고 평균임금수준이 저하한 것, 노동의 유연화전략에 따라 고용의 안정성이 파괴된 것, 금융활동의 규제와 감독이 사라짐으로써 헤지펀드 등이 과도한 차입으로 위험한 금융자산에 투기함으로써 온갖 위험성과 불확실성이 더욱 증가한 것, 사회보장제도가 크게 축소되고 소득불평등이 증가함으로써 국내시장과 세계시장이 점점 더 좁아진 것, 미국의 경제적 헤게모니가 전쟁과 외채로 점점 더 약화됨으로써 각 국민국가 사이의 국제적 협력이 쉽지 않게 된 것--과 결합함으로써 격렬한 공황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다.
미국 경제는 2006년 하반기부터 주택의 과잉생산, 주택 가격의 하락, 모기지 연체율의 상승, 모기지 관련 금융상품과 주식들의 가격 폭락 등에 의해 ‘위기’ 국면에 들어갔고, 중앙은행이 값싼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2007년 9월부터 이자율(연방기금)을 종전의 5.25%에서 계속 인하해서 2008년 10월 29일에는 0%로 인하했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 금융기관과 기업의 파산을 막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원래의 규정에는 중앙은행이 직접 대출할 수 있는 금융기관은 상업은행뿐인데, 대출을 받은 상업은행은 자신의 부채 상환에 대비하기 위해 화폐를 퇴장시키고 다른 금융기관(투자은행, 증권회사 등)이나 기업들에게 자금을 융통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이 사상 최초로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에게 300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제이피 모건체이스(J.P. Morgan Chase)에게 인수시킨 2008년 3월부터는 미국경제가 ‘공황’ 국면에 빠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위기’ 국면에서 ‘호황’ 국면으로 올라갈 수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금융주와 산업주의 주가가 폭락하고, 산업기업과 금융회사가 파산하면서, 세계 각국도 산업과 금융의 공황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세계화의 진전으로 산업적 금융적 연관관계가 긴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국 모두가 신자유주의정책을 실시해서 소득분배의 불평등과 빈곤율을 증대시킴으로써 심각한 경제공황에 빠진 것은 아니다. OECD 30개 회원국들 중에서 시장만능주의를 가장 숭상한 나라들(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이 소득불평등과 빈곤율은 가장 높고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으면서 가장 심각한 경제공황에 빠졌지만, 사회민주주의를 숭상한 북유럽 나라들(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은 소득불평등과 빈곤율이 가장 낮고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으면서 경제공황의 강도는 가장 낮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는 ‘더불어 사는 연대성’을 ‘경제적 효율성’보다 높게 평가하면서 정부가 자본가의 치부욕을 억제하면서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4. 미국의 공황대책은 유효한가?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흡수되었으며,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했고, 베어스턴스는 300억 달러의 지원을 받으면서 제이피 모건체이스은행에 인수되었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이유는, 파산위기에 처한 금융기관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유가증권을 모두 한꺼번에 뉴욕증권시장에 팔 수 밖에 없어 유가증권 가격을 폭락하게 하기 때문이다. 2008년 9월에는 정부가 보증하는 최대의 모기지회사인 패니매(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을 국유화함으로써 정부는 두 회사의 총부채 5조 3,000억 달러를 인수했다. 또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에이아이지(AIG: American International Group)에게는 정부가 850억 달러를 지원하면서 경영권을 인수했다. 에이아이지는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이나 채무담보부증권(CDO)을 발행한 금융기관이 파산할 경우 그 증권의 상환을 보증하는 채무불이행스왑(CDS: credit default swap)을 세계적으로 판매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는 10월 3일에 의회를 통과한 긴급경제안정화법(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 of 2008)에 의거한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roubled Assets Relief Program, TARP)을 현재 집행하고 있다. 공적 자금 1차분(3,500억 달러) 중 2,500억 달러는 대형은행에 투입되었고 400억 달러는 AIG에 출자되었으며 나머지 중 얼마는 지엠(GM)과 크라이슬러에 제공될 예정이다. 그런데 공적자금 2차분(3,500억 달러)에 대해서는 의회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는데, 재무부장관은 11월 12일에 앞으로 부실자산은 매입하지 않으며, 중소형 비상장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보험회사와 여신전문금융사 등)에도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소비자 신용의 경색을 풀기 위해 자동차 할부회사, 학자금 대출회사, 신용카드 대출회사 등에도 공적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위와 같은 공황대책은 매우 부족하다. 첫째로 거대한 금융기관이 호황일 때는 규제를 제거하라고 외치면서 거액의 투기이윤을 금융엘리트 사이에 나누어 먹다가, 이제 파산위기에 빠지니까 국민의 혈세로 자기들의 손실을 메우려고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금융엘리트가 정부와 중앙은행까지도 ‘사유화’하려는 계획이 구제금융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금융엘리트에게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을 국민 모두의 소유로 하면서 민주적으로 경영되는 공익사업으로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로 이 구제금융에서는 모기지차입자를 구제하는 조치, 예컨대 모기지대출의 연체를 완화하는 조치나 주택압류를 해제하는 조치 등이 전혀 없다. 셋째로 정부는 금융기관을 살리기 위해 금융기관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기보다는 국내수요를 증가시켜 산업활동을 촉진함으로써 고용을 증가시키고 임금수준을 상승시켜야 할 것인데, 이번의 공황대책에는 전혀 아무런 언급이 없다. 금융부문은 기본적으로 새로운 부를 창조하지 않으며 대출이나 유가증권의 매매를 통해 남의 주머니를 털어 이득을 얻고 있기 때문에, 금융부문을 대폭 축소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의 공황을 야기한 큰 원인이 신자유주의와 경제의 금융화로 사회보장제도가 축소되고 노동의 유연성이 강화되어 국내시장과 국제시장이 축소되면서 산업부문이 정체되고 실업이 증가하며 대중의 빈곤이 심화된 것에 있기 때문에, 미국은 사회보장제도를 개선 확대함으로써 빈부격차를 줄이고 대중에게 기본생활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넷째로 기간산업과 사회의 하부구조를 재건하여 고용을 안정시키고 외채를 감축하면서 세계경제의 공평성과 균형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는 전쟁경제를 청산하고 부자들에 대한 누진세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로 결국 미국 사회를 자본가계급의 이윤추구욕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복지사회로 변혁시킨다면, 금융공황이나 산업공황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5. 1997년 12월의 한국공황은 도덕적 해이와 정경유착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IMF와 주류경제학은 한국공황의 원인은 정부주도형 경제에 내재하는 도덕적 해이와 정경유착 때문이라고 진단하면서 정부는 경제에 개입하지 말고 시장에 경제를 맡길 것을 권고했다. 도덕적 해이나 정경유착은 경제용어가 아니지만 주류경제학에는 처음부터 공황이론이 없기 때문에 공황을 설명한다고 일상적인 용어를 빌려온 것이다. 도덕적 해이는 은행과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자꾸 구제해 주니까 은행과 기업은 정부를 믿고 위험한 대출과 투자를 계속하는 것을 가리키며, 정경유착은 정부 관리가 은행에게 특정한 기업에게 대출하라고 부탁하면 은행은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지도 않고 대출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1997년 12월의 한국공황이 이런 도덕적 해이와 정경유착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한다면, 다른 나라들에서 일어난 공황도 동일한 이론에 의해 설명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이론은 일반적 타당성을 가지지 않는다.
또한 한국은 1990년대 중반에 WTO와 OECD에 가입하면서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구함으로써 정부주도형 경제로부터 상당히 탈피했다는 점이다. 국내의 금융자유화에 의해 은행이 스스로 금리를 결정하게 되었고,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에도 은행에서 차입하기보다는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그리고 정부가 산업정책을 실시하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한보에게 철강공장을 건설하라고 허가했고 삼성에게 자동차공장을 허가한 것이다. 따라서 1997년의 공황이 정부주도형 경제에 내재하는 도덕적 해이와 정경유착 때문이었다는 주장은 실증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IMF나 주류경제학과는 반대로 케인스주의자들은 한국공황의 원인을 정부주도형 경제가 붕괴한 것에서 찾는다. 한국 정부가 IMF, OECD, 미국 정부, 서방 은행과 기업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990년대 중반에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를 급진적으로 해제함으로써, 대기업의 해외차입이나 은행의 대출, 외국자본의 유출입을 통제할 수 없어서 공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주류경제학의 주장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케인스주의자들은 한국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면 한국 경제는 언제나 고도성장을 할 수 있다는 ‘국가물신주의’에 빠져 있다. 그리고 수출주도형 소국 개방경제인 한국경제에서는 경제적 성장과 안정이 국외 상황의 변화에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1997년 12월의 한국공황도 다른 나라의 공황과 마찬가지로 투자의 과잉에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1986년, 1987년, 1988년 3년 동안 한국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했고, 이 기회를 이용해 대기업들은 투자를 크게 증가시켰다. 노동집약적 산업(신발, 의류, 장난감 등)에서는 중국이나 동남아가 한국을 능가했고, 고기술, 고단가 품목에서는 일본, 독일, 미국에 밀린다고 생각한 대기업들은 한국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전자,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 산업에 대규모로 투자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했다. 대기업들은 외국으로부터 기계와 원자재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외자를 국내 은행이나 해외 은행으로부터 차입했다. 이리하여 한국의 대외부채는 1993년 말의 439억 달러에서 1996년 말에는 1,635억 달러로 세 배나 급증했다. 이 당시 한국은 계속해서 고도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국 은행과 투자자들은 앞으로도 한국경제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지 않았는데도 경쟁적으로 한국에 자금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렇게 투자한 산업들이 1996년에 거의 완성되어 세계시장에 생산물을 출하하기 시작했는데, 세계시장이 축소되고 경쟁이 격심해서 한국계 기업들이 제값에 원하는 양만큼 판매할 수가 없었다. 1980년 이후에 선진국들이 신자유주의정책을 채택한 결과로 세계시장의 규모가 축소한 것이었다. 한국계 기업들이 대규모의 생산량을 세계시장에 공급하니까 팔리지 않으면서 가격은 폭락했다. 결국 지금까지의 투자가 ‘과잉투자’라는 것이 판명되었고, 이제 대기업들은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원화와 외화를 갚아야 하는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이리하여 1997년 1월부터 대기업들이 파산하기 시작하고 이어서 금융기관들도 파산하기 시작한 것이며, 이에 놀란 외국 은행들이 외화자금의 기한을 연장하지 않고 상환을 요구했기 때문에, 환율이 1997년 6월까지는 800원 정도 하던 것이 12월 23일에는 최고수준인 1,995원에 이르고, 외환부족의 형태로 공황이 폭발한 것이다.
IMF는 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한국의 은행과 기업의 외채를 정부가 보증하는 외채로 전환시키면서 한국경제를 신탁통치했는데, IMF는 재정금융긴축정책을 실시해서 금리를 인상하고 돈을 풀지 않음으로써 알짜배기 대기업들이 현금을 구하지 못해 주로 미국투자자들에게 헐값에 팔렸다. 또한 대기업들에게 부채/자기자본 비율을 200%로 낮추기 위해 주식을 발행하도록 권장함으로써, 외국투자자들이 싼 값으로 주식을 대량 매입해서 대기업의 주요 주주가 되게 한 것이다. 결국 미국 정부, IMF, 월 스트리트가 한통속(IMF-Treasury-Wall Street Complex)이 되어 한국경제를 수탈한 것이다.
물론 정부는 파산한 금융기관이나 파산위기의 금융기관을 위해 168조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첫째는 금융기관의 주식을 구매해 자금을 공급하는 데 63조 원, 둘째로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부실 금융기관을 인수한 은행이 입은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 18조 원, 셋째로 5,000만 원까지 예금의 반환을 보증하는 예금보험제가 생기기 이전이기 때문에 정부가 파산한 금융기관의 예금을 전액 반환하는 것에 30조 원, 넷째로 부실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던 자산을 구매하는 데 17조 원, 다섯째 부실 금융기관이 가지고 있던 유가증권을 매입하는 데 38조 원이 들었다. 공적 자금의 제공에서 금융기관의 경영자나 대주주는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고, 공적 자금을 받은 금융기관을 국민 모두를 위한 공익사업으로 전환시키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
6. 이명박 정부의 경제운용 1년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점점 더 ‘총체적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 살리기’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개인의 재산 불리기’와 ‘국민경제 살리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개인은 남의 주머니를 털어서도 부자가 되지만, 모든 국민은 남의 주머니를 털어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국민경제는 노동자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부를 생산과정에서 창조해야만 부유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개인의 재산 불리기에 성공한 ‘강부자’가 국민경제 살리기에도 적합하다고 생각해 고위관리로 임명했고, 부자에게 세금을 줄여주어 부자의 재산을 불려주는 것이 국민경제의 부(국부)를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욱이 2009년 신년사에서도 건설회사의 치부를 위해 예산의 큰 부분을 지출하는 것이 국부를 증가시키는 지름길이라고 잘못 판단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발 경제위기가 한국경제에 타격을 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투자자들이 주식과 채권을 팔아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 본국으로 송금하기 시작함으로써, 주식 가격은 저하하고 환율은 상승하기 시작했다. 또한 여기에 더하여 석유와 원자재 및 곡물에 대한 국제적인 투기로 말미암아 가격이 폭등함으로써 특히 중소기업과 서민의 생활은 큰 곤란을 받았다. 수출시장이 좁아지고 국내경기도 좋지 않아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가 부족하게 됨으로써 아파트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하고 주택건설 공사는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과 금융기관 및 가계가 과잉부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한국경제도 미국경제와 마찬가지로 기업과 금융기관과 가계가 파산위기에 빠지면서 공황이 폭발할 것이다.
7.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
현재의 미국공황은 신자유주의와 경제의 금융화가 한국경제도 공황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만약 지금 공황이 발생한다면 서민들을 중심으로 큰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국민 분열적인 양극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지 말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고 확대하는 것이 실제로 국내 시장을 확대하면서 내수산업을 살리는 길이고 세계공황을 상대적으로 작은 피해를 입으면서 피해갈 수 있는 길이다.
북유럽의 나라들처럼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 안에서 각종의 대안을 제시하면서 기득권층으로부터 양보를 하나씩 얻어내는 것이 국민들의 시야를 조금씩 넓히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길이 될 것이다. 투쟁을 통해 일정한 성과를 얻고, 이 성과를 통해 사회를 개선하면서 사회구성원의 능력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투쟁에서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를 걸고 투쟁하면 투쟁의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조금만 투쟁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당면목표로 삼아 투쟁한다면, 참여하는 세력들이 커지고 그들 사이의 협동, 단결, 연대가 생겨 당면목표를 어렵지 않게 달성하게 되며, 이런 훈련과정을 통해 앞으로 점점 더 큰 목표를 제기해 쟁취할 수 있는 역량도 함양될 것이다.
냉전적 보수진영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판하는 지난 10년은 크게 보아 민주개혁, 신자유주의 개혁(개악), 남북관계라는 세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 중 가장 성과가 있었던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이다.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이 상징하듯이 남북관계에 많은 전진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개혁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 일정한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실패가 보여주듯이 민주개혁은 정체됐다. 대신 하지 말아야 할 신자유주의적 개악은 급진적으로 추진했다. 다시 말해, 해야 할 민주개혁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정작 하지 말아야 할 신자유주의적 개악은 급진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민주개혁의 지지층이 실망감에서 이탈했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개악의 결과로 사회적 양극화가 군사독재시절보다 더 심화되면서 박정희 신드롬이 일어났고 서민들 사이에는 “먹고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국가보안법 폐지고 민주개혁이냐”는 비판이 팽배해졌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대선에서의 MB의 압승이고 2008 총선에서의 한나라당의 압승이다.
3. 한국사회의 내부구성과 세력 관계의 변화
현재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작업은 우리 사회의 내부구성과 이 내부구성의 세력관계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 사회는 일상적 통념과 달리 보수 대 진보라는 이분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냉전적 보수세력, 자유주의적 보수세력(개혁세력), 사회민주주의 ‘이상’의 진보세력이라는 삼분구도로 이해해야 한다. 민주개혁의 경우 진보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연대해 냉전적 보수세력과 대립하는 양상인 반면 신자유주의문제의 경우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연대해 날치기 통과시킨 비정규직 확대법안이 보여주듯이 냉전적 보수세력과 자유주의세력이 연대해 진보세력과 대립하고 있다.
나아가 주목할 것은 이같은 삼분구도가 최근 들어 정치사회, 조직화된 시민사회, 비조직화된 시민사회(일반대중)의 수준에서 완결되었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과 함께 정치사회수준에서도 보수독점의 시대가 끝나고 냉전적 보수, 자유주의적 보수, 진보세력이라는 삼분구도가 완결됐다. 조직화된 시민사회에서도 뉴라이트라는 냉전적 보수 시민단체의 조직화와 함께 이념적 삼분구도가 완결됐다.
현재 한국사회의 위기의 핵심은 단순히 이명박정부가 출범해 행정부를 장악했다든가, 설상가상으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냉전적 보수세력이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장악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를 넘어서 냉전적 보수세력이 정치사회뿐 아니라 조직화된 시민사회, 일반 대중의 수준 모두에서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세력이 이들 수준에서 더 힘이 강화지고 있는 반면 반신자유주의세력의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무당파성을 보이고 있는 25%의 대중을 비롯해 대중을 견인해 내고 대중으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는 것만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길이다. 이와 관련, 최근 들어 한나라당 등 냉전적 보수세력에 대한 지지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지만 이같은 이탈이 자유주의세력이나 진보세력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무당파성의 증가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4. MB 원년과 2009년 정국
촛불시위가 사르러든 광복절 이후 MB는 공세에 나섰다. 그리고 갑자기 터져 나온 월스트리트발 금융위기는 이같은 공세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공세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길을 닦아 놓은 신자유주의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지적해,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 신자유주의적 토건국가를 추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를 추구한 것이다. 이는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절 이미 나타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를 더욱 강화시킨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민중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고 반민중적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아가 신자유주의 정책이 민생파탄과 사회적 양극화를 통해 사회적 불안을 가속화시킨다는 점에서 경찰국가화의 경향을 내재하고 있다. 이명박정부는 이같은 내재적 경향에다가 시키면 무조건 한다는, MB의 몸에 밴 ‘노가다 CEO 권위주의’와 불도저식 추진력, 성공신화 등 MB적 알파가 더해져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를 넘어서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로 향해 나갔다. 세 번째, 위임민주주의, 제왕적 대통령으로의 역주행이다. 노무현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3김식의 사당정치와 오랜 제왕적 대통령을 벗어나 대통령을 탈권위주의화한 것이다. 그러나 MB는 지난 1년간 이 같은 역사의 전진을 다시 후퇴시켰다. 한나라당은 다시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대통령 개인의 정당’으로 변화하고 말았다. 검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들 역시 다시 ‘정권의 하수인’으로 되돌려 놓고 말았다. 나아가 속도전이라는 이름 아래 야당과 민의를 무시한 입법전쟁으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예상과 약간 다른 점들이 둘 있다. 하나는 MB정권이 예상 밖으로 ‘강한 이념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주의할 것은 이념적 성격과 스타일을 구별하는 것이다. 스타일의 급진주의, 스타일의 과격성에서는 이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시절 밀어 부치는 불도저식 추진력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공사기간을 단축시켜 가며 주요 공사를 완성시킨 이명박 신화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이대통령이 정치가 마치 공기단축의 문제인 것처럼 착각하여 ‘속도전’ 운운하며 주요 정책들을 힘으로 밀어 부치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지난 일년간 역설적으로 희망적인 부분도 있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MB의 업적으로서 김대중, 노무현대통령으로부터 “양극화를 가장 심화시킨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벗겨준 것, 따라서 민주화운동세력이 무능하다는 오명을 벗겨준 것이다. MB는 성공한 CEO의 경력을 내세워 경제대통령을 자처하고 747을 내걸었지만 김대중, 노무현대통령보다 더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민생파탄을 가져왔다. 한마디로, “무능보다는 부패가 낫다”며 MB를 찍었던 국민들에게 한국의 냉전세력이 “부패한데다가 무능하기까지 하다”는 것, 아니 한발 더 나가 “부패하고 무능한데다가 오만하며 불도저이기까지 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난 한해가 절망이었다면 최악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고 올해야 말로 최악의 한해가 될 것이다. MB는 연초 MB악법의 강행처리를 시작으로 우파 신자0유주의, 신자유주의적 토건국가, 신자유주의적 공안국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재도입, 이념전쟁 등 지난해 시작한 공세들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며 오바마 행정부의 압력에 따른 극적인 반전이 없는 한 냉전적 대북정책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
문제는 이대통령이 자신의 성공신화와 한나라당의 다수 의석에 기초해 속도전, 돌격전을 내세운 공기단축의 ‘노가다정치’에 나선 것이다. 즉 한나라당의원들조차 그 내용을 잘 모르는 85개의 법안을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날치기 통과시켜 역사를 되돌리려는 강공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정치를 단순히 공기를 단축해야 할 건설공사 정도로 간주하는 이명박식 노가다정치가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MB가 라디오 국정연설에서 노가다정치에 대한 반성보다는 야당과 반대세력에 대한 질타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은 올 한해가 어떤 한 해가 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번 입법 실패로 성공신화에 상처를 받은 MB는 ‘상처 입은 야수’처럼 더욱 포악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법전쟁에 임하는 한편 공세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상처 입은 자존심이외에 MB로 하여금 돌격전, 속도전을 더욱 강화해 나가도록 만드는 변수가 있다. 그것은 올해가 사실상 MB가 일할 수 있는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올해 안에 대통령으로서 성공신화를 만들어 내야겠다는 강박관념이다.
결국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로 위기처방을 하고 있는 이명박정부의 청개구리 정책으로 경제가 엉망이 되고 민생파탄이 전면화되는 한편 방송을 재벌방송, 조중동방송으로 만들기 위한 언론 관련법으로부터 사이버 모욕죄 신설, 마스크 데모 금지법, 시위 피해 집단소송제, 휴대폰 도청법 등 MB악법 등을 돌격전식으로 강행처리하면서 대결양상이 정치권의 대결을 넘어서 지난 해 촛불시위처럼 ‘MB대 국민’의 전면전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경제공황과 파시즘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경제위기와 민생파탄이 진보세력의 성장의 조건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경제 위기 속에는 극우세력과 파시즘이 준동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 점에서 올 정국에서 예상되는 것, 따라서 진보진영이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대통령의 ‘우파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노무현의 ‘좌파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과 대비되는)이다. 이대통령은 경제위기에 따른 국민들의 불안심리, 그리고 무언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대중심리를 이용해 노조(‘노동귀족’), 공기업(‘철 밥그릇’), 세금(‘경제발전의 장애’)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고 가며 공격할 것이다. 이에 진보진영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MB의 산자유주의 돌격전을 막아내기 힘들 것이다.
특히 주목할 것은 MB 스스로도 공언을 하고 나섰고 여러 악법들의 내용이 그러하지만 이 같은 공격이 단순한 일회성 공격을 넘어서 그동안 어렵게 만들어 놓은 다양한 진보적 진지들을 공격해 해체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 파동과 같은 MB의 이념전쟁, 그리고 공중파를 재벌과 조중동 방송으로 변화시키려는 언론관련법 등 MB의 악법들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 뉴라이트들이 올해 공격해 해체시켜야 할 대상으로 전교조, MBC, 초법적 위원회 등을 지목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계급전쟁’에서 장기적인 진지전, 헤게모니 전쟁을 철저하게 준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문제의 핵심에는 김대중정부가 미국식 신자유주의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면서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전선간의 긴장, 즉 오래된 민주대 반민주의 전선과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반신자유주의전선간의 긴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2009년 현재 우리사회, 특히 정치사회에는 다양한 복합적 전선내지 갈등의 축이 존재한다.
우선 가장 광범위한 전선은 MB악법 저지를 위한 전선(민주전선)이다. 그러나 이 역시 두 개의 전선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공기단축의 노가다 정치에 의해 충분한 심의과정을 거치지 않고 문제 법안을 속도전으로 통과시키려고 한 처리방식에 반대하는 전선이다. 이 경우 일방적 처리방식을 비판하거나 이에 반기를 든 이회창 자유선진당대표, 박근혜의원, 김형오 국회의장까지도 이에 포함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문제법안의 내용에 반대하는 전선이다. 물론 문제가 되고 있는 법안들이 여럿인 만큼 개별 법안의 내용에 따라 반대세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커다란 덩어리로 생각할 때 현재 MB가 추진하고 있는 감세, 출총제(출자총액제한제도) 해제, 금산법, 한미FTA 조기 추진 등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는 아니지만 MB식의 ‘우파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이 경우 민주당(‘좌파 신자유주의 세력?)과 창조한국당 정도까지 포함되는 전선일 것이다. <경제,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제 정당 시민사회단체 각계인사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가 이 수준에 해당된다.
세 번째는 반신자유주의전선이다. 이 경우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민주당은 당연히 빠지게 될 것이다. 대신 다양한 진보세력들이 그 중심에 놓이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보진영 내부의 전선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민주노동당의 분당사태를 가져온 것으로 종북주의, 패권주의를 둘러싼 전선이다. 나아가 보다 변혁적 노선을 강조하는 좌파세력과 그렇지 않은 진보세력간의 전선도 중요한 대립축이다.
위의 여러 전선 중 역시 주전선은 반신자유주의전선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우리 시대의 주전선이 반신자유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의 한나라당의 압승, 여러 실정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율이 이를 입중해주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이명박정부의 반동성이 노골화되면서 반 MB연합의 필요성이 강화되고 있고 죽어가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김대중 전대통령과 지난 수십년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먹고 살아온 민주당과 같은 자유주의세력으로서는 너무도 고마운 MB다!! 그렇다. 현재 이명박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반역사적 정책들을 고려할 때 최대한 광범위한 반MB(정책)연합(필요하다면 이회창까지를 포함해)을 만들어 악법 저지에 나서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악법 저지가 아무리 중차대한 과제라고 하더라도 우리 시대의 주전선은 반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와 관련,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중요한 것은 상층부연합보다는 민중과 대중이라는 사실이다.
반신자유주의전선에 매몰되어 민주당과의 일체의 연대도 부정하는 좌익소아병, 그리고 정반대로 MB악법저지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반신자유주의전선을 포기하는 대동단결론, 이 둘을 모두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통합문제는 어떠한가? 이와 관련해서도 진보세력이 하나의 지붕아래 총집결해 위기를 돌파해 나가자는 범진보연합당론으로부터 각개 약진에 이르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시나리오 1) 범진보연합당: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사회주의노동자정당 준비모임(사노정준비모임)
시나리오 2) 독자세력화에 기초한 선거연합: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사노정 준비모임 연합
시나리오 3) 소연합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사회당+사노정 준비모임
시나리오 4) 소선거연합: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사노정 준비모임의 선거연합
시나리오 5) 각개약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사노정준비모임
이 가운데 시나리오 5)는 현재의 정세로 볼 때 공멸의 길이라는 점에서 피해야 한다. 그러나 시나리오 1)의 경우 민주노동당의 분당과정과 관련된 역사성 등으로 인해 민주노동당이 과거의 노선과 발본적인 단절을 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시나리오 2), 3), 4) 중의 하나가 가능하기도 하고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 되던 이 같은 다양한 연합을 추진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지난 촛불시위가 보여주었듯이 문제는 상층부 연합이 아니라 민중과 대중이라는 사실이다. 대중과 결합하지 못한 진보운동은 항상 실패해 왔고 앞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층부연합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진보진영이 자기혁신과 재구성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인가이다. 이를 위해 진보진영은 바닥으로 내려가 대중을 잡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중을 진보적인 정치적 주체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바마의 성공이 시사하듯이 풀뿌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점에서 마들연구소와 같은 풀뿌리 조직이 중요하고 미래의 희망이다. MB식 자본의 독재와 부드러운 파시즘으로의 길인가, 아니면 탈신자유주의의 희망의 길인가를 결정할 것은 바로 민중과 대중이다. 그리고 우리의 민중, 대중은 절망 속에서도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이 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