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현장에서

노동없는 사회 (경향신문, 정제혁기자 / 박상훈 대표, 2009-03-12, 19)

새벽길 2009. 3. 20. 16:07
 오랜만에 정제혁 기자가 실력발휘를 했다. 이 기사가 신문지면에 그대로 실리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자가 노동문제에 대해 이렇게 긴 기사를 쓰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저 대단하다는 느낌. 
  
우선은 쉽게 써서 좋다. 그러다 보니 술술 잘 읽혀진다. 노동의 가치와 파업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짚은 것이 핵심이다. 그래,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자. '과연 정당한 파업이라고 기억되는 것이 있는지...' 그리고 민주정부라고 일컬어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노동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악화되었고, 그 연장선 하에서 이명박 정부가 노동배제적인 정치를 펼치고 있다는 것. 
 
어찌보면 다 아는 사실 같으면서도 이렇게 정리하기도 쉬운 것은 아니다. 이 기사는 소위 '새내기를 위한 교양용'으로 읽혀도 좋을 듯 싶다.
 
여기에 박상훈 대표가 민주주의와 관련지어 노동없는 사회에 대해 글을 썼다. 정제혁 기자의 글에 비하면 짧은 편이지만, 노동과 민주주의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를 잘 지적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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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2부 - (4)노동없는 사회Ⅰ (경향, 정제혁기자, 2009-03-11 17:44:45)
‘노동=막노동·투쟁’ 인식… 파업을 惡으로 규정
 
세계 최장시간 중노동해온 한국노동자
“앞선 세 세대가 그토록 열심히 일했지만 이 조국이 그렇게 좋은 나라는 못 됐다. 어른들이 세계 최장시간 중노동을 하며 이 나라를 만들어 왔다. 그랬으면 우리는 지금쯤 낙원에 도착해 있어야 하는데, 정작 아주 슬픈 시대에 왔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이 지난해 말 한 강연에서 “우리 시대의 ‘난장이’는 비정규직”이라며 한 말이다.
 
“70·80년대에는 이 산만 넘으면 좋은 세상이 오고,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소외받는 사람이 적어질 거란 생각을 했는데, 한 산만 넘으면, 하루만 지나면, 한 해만 더 가면 좋아질 것이라 했는데… 올해는 태일이 죽고 제일 절망적인 때였어. 40년 살아왔지만 지금만큼 절망적인 적이 없었다니까.”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지난해말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토로한 심경이다.
 
조세희와 이소선. 1970년대 참담한 노동 현실을 고발한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다. 두 사람은 오늘 노동이 처한 상황이 70년대에 비해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악화됐다고 말한다. 70년대와 2009년을 관류하는 노동 배제의 동일성은 대체 어찌된 영문일까.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 금속노조 갔나?”
2007년 5월7일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는 파이낸스포럼 초청강연 도중 이런 말을 했다. “(인도의 한 업체를 방문해 보니) 소위 대학 출신 종업원들이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평시에 오버타임(초과근무)을 해도 수당을 안 받는다고 한다.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도 만들지 않는다던데, 만들 수 없어서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 수 있는데도 스스로 프라이드(자부심)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대학교수 노조를 만들기 위한 법안이 국회 상임위의 소위원회를 통과했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도대체 대학교수란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겠다니, 교육이 제대로 되겠느냐…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었다. 아니, 음악하는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가 있는데, 그것도 전에는 금속노조에 가 있었다. 아마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서 그랬나 보다.”
 
그의 발언에서 노동은 하찮은 것, 천한 것, 고상하지 못한 것으로 표상된다. 여기에는 흔히 ‘공돌이’ ‘공순이’ ‘노가다’로 상징되는, 노동을 천대하는 우리 사회의 정신적 바탕이 날것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발언이 알려진 후 “노동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우리 사회 전체가 이런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노동 가치보다 막노동·투쟁만 떠올라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는 근대적 형태의 노동가치가 정립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근대적 노동가치’란 평등성과 대등성의 원리에 터를 두고 있다.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동일한 노동에는 동일한 부피의 존엄과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일 하며 먹고 사는 모든 사람은 노동하는 시민으로서 모두 대등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격차사회’이다. 사회적 위신의 피라미드에서 ‘노동’은 맨 아래 쪽에 있다. 노동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인간 본성의 표출이자, 자아 실현수단이 아니라 벗어나야 할, 대물림되지 말아야 할 노역이 된다. 노동자는 경영의 도구, 혹은 경영자가 ‘벌어 먹이는’ 식솔이다. 시민이 아니라 기업에 종속된 ‘산업역군’이다.
 
한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윤모씨(39)는 “노동이라고 하면 ‘막노동’과 투쟁하는 모습이 연상된다”며 “나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직업의 종류에 따라 사회적인 위신이나 평판의 차이가 나는 것은 급여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며 “의사나 변호사라고 해도 일반 직장인과 같은 수준의 돈을 번다면 ‘똑같이 돈 받고 일하는 사람이네’ 이런 생각이 들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많이 배우고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민주노총 공공서비스노조 국립오페라합창단 조남은 지회장(39)은 최근에야 자신도 노동하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조 지회장은 2002년 3월 국립오페라단에 합창단원으로 입단했다. 1년 계약직이었지만 2003년 상임화시켜 주겠다는 오페라단 측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상임화는 미뤄졌고 지난 1월 신임 단장은 합창단을 해체하겠다며 전체 단원들에게 해고통보를 했다. 이에 반발해 조 지회장 등은 지난 1월15일 노조를 결성했다. 입단 7년차인 지난해 조 지회장이 받은 월 급여는 75만원. 4대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했다.
 
나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했을 뿐 노동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노동자, 그것도 비정규직보다 훨씬 못한 불안정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파업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쟁취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실질적 파업권 없는 한국
우리 사회가 노동을 포용하지 못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파업에 대한 반응이다. 파업은 노동하는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지만, 한국에서는 ‘정서법’상 불법이다. 파업은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것으로 낙인찍혀 있다. 파업을 해서 안 되는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임금인상을 목적으로 한 파업은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난을 듣는다. ‘촛불파업’은 ‘근로조건과 관계없는 파업’이라 불법이다. 지하철노조의 파업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기 때문에 안 되고, 제3세계 노동자에 대한 지원은 ‘파업을 수출한다’고 비난 받는다. 대공장의 파업은 지역경제를 힘들게 해서 안 되고, 중소기업의 파업은 회사를 쓰러뜨릴 수 있어 안 된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공세에 여론은 대체로 동조적이다. 윤모씨는 “파업이 무분별하고 요구도 과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한 파업으로 기억되는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신문을 통해 파업에 대한 정보를 얻는데, 대다수 언론이 부정적으로 보도를 하니까 그런 논조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노동부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플래시 광고를 게재했다. ‘파업의 나라’가 배경이다. 노사는 툭하면 싸우고, 국가경제는 무너진다. 노사는 공멸한다. 이를 막기 위해 노동부가 나서 노사갈등을 해결하고 노사관계를 선진화하겠다는 게 광고 내용이다. 광고는 파업이 노사간 이해갈등을 조정하는 정상적 소통수단이 아니라, 공동체 이익에 반하는 사회적 해악으로 묘사되고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기본권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한국은 파업권이 없는 나라’라는 말이 과장만은 아니다.
 
노동에 대한 부정적 표현 넘치는 교과서
교과서에 기술된 노동의 이미지도 부정적이다. 2006년 송태수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는 우리나라 초·중·고 교과서에 나타난 노동 관련 내용을 분석했다. 교과서는 노동자를 폭력적인 집단이나 계층으로 묘사했다. 파업과 같은 정당한 단체행동에 대해서도 ‘혼란’이란 용어를 사용, 부정적으로 기술했다. 노동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 소중한 것인지, 노동자는 왜 자기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소속 신성호 교사가 7차 교육과정 경제교과서의 노동 관련 내용을 분석한 결과도 다르지 않다. 노동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지면의 1%에도 못 미쳤다. 그나마 내용도 ‘기업편향적’이었다. 예를 들어 교학사의 교과서는 외환위기 이후의 대량 실업 사태에 대해 ‘성공적 구조조정을 통한 경기 회복만이 이런 실업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만 짧게 적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 다른 대안은 나와 있지 않다. 노조의 파업이 외국인 투자 유치의 걸림돌이라는 대목도 보인다.
 
천재교육의 교사용 교과서는 최저임금법에 대해 “최저임금제는 가격 하한제이므로 노동의 초과 공급을 초래한다. 즉, 노동의 공급량이 수요량을 초과하게 되어 실업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기술했다. “최저임금이 고용안정을 저해한다”는 기업 측 논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정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는 오모씨(29·여)는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노동법이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특별히 배운 기억은 없다. 다만 노동에 대한 청교도적 가치, 사람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주장만을 주입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 “노동자 권리는 인간 존엄성 문제”
선진국의 경우는 다르다. 신선미 한국여성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이 2003년 발표한 ‘프랑스의 학교 노동교육’ 가운데 몇 대목을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우리와 다르다. 예를 들어 중학교 3학년 교육과정 지침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기업체 내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노동자로서 인간은 ‘체인’의 번호나 도구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다뤄져야 한다. 각각의 노동자는 일정한 권리와 자유를 부여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으며, 이 상황은 기업체 내에서 그들의 조건을 특징짓는다. 노동법은 노동관계 속에 존재하는 이런 불평등 때문에 생겨났다. 문제는 국가가 노동자들의 권리와 기업 권리 간의 관계를 어떻게 부분적으로 중재할 수 있느냐에 있다.”
 
지침서는 ‘기업체의 규칙들을 비교 연구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가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오랫동안 느리게 진행된 투쟁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기업체 내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사표현 사례를 분석한다’ ‘노동자의 권리가 어떻게 보호되는지를 알려주기 위하여 판례를 공부한다’ 등의 구체적인 사례 공부를 제안하고 있다.
 
초등학교 4~5학년이 배우는 <시민교육 교과서>에는 ‘연대정책’이라는 제목 하에 “최저편입임금은 아무런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삶을 유지하고, 자녀를 키우며, 치료받고, 집을 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최저편입임금은 필수적이지만 충분하지 않다. 사실, 사회에 편입되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돈을 만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일은 개인들 간에 필수적인 관계들을 만든다”고 설명되어 있다. 또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시민의 의무 즉, 우리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관련되는 의무이다. 동시에, 가난에 대하여 투쟁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직장이 없는 사람들과 실업자들을 사회에 재편입시키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다. 국가는 특히 궁극적 해결책이 되는 고용을 창출하고자 애써야 한다(자료4)(36~37쪽)”고 가르치고 있다.
 
반공체제로 인해 노동가치 정립 안돼
우리 사회에서 근대적 노동가치가 정립되지 못한 배경에는 분단과 냉전으로 굴곡진 현대사가 놓여 있다. 한국 사회의 출발부터 ‘노동’은 금기 단어였다. 분단이 사회의 이념적 균열을 남북간 지리적 균열로 재편하고 남쪽에는 극단적 반공체제가 들어서면서 노동자는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없었고 남에 의해 대변되지도 못했다. 노동권을 운위하는 것조차 불온시됐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50년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용자의 책임으로 판정되는 경우보다 노동자의 책임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20배나 많았다. 산재의 절반가량만이 보상을 받았다. 58년 전체 400개 노조 중 단체협약을 체결한 노조는 68곳에 지나지 않았고, 80% 이상의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
 
60년대 10년 동안 취업노동자수와 제조업노동자수는 네 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경제잉여가 노동자에게 귀속되는지를 나타내는 피고용자 보수구성비는 59년 38.7%에서 64년 28.8%로 5년 동안 무려 10%나 하락하다가 68년에 이르러 겨우 59년 수준을 회복했다.
 
74년 ‘신동아’ 11월호에 실린 ‘르포 근로자’라는 기사는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일하다 산재를 당한 어느 노동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철판 자르는 일을 하던 이 노동자는 작업 도중 손가락 3개가 잘렸는데, 회사 측은 두 달치 월급과 치료비 3만원을 주고 해고시켰다. “이 노동자는 병신이 된 것을 비관해서 자살했다. ‘손가락 하나에 1만원씩’이라는 우울한 유행어가 나돌기도 했다”고 기사는 적고 있다.
 
노동자로 달려온 수십년, 결국 벼랑끝에 서다
73년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는 마산수출자유지역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당신은 작업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일하는가’라는 물음에 ‘죽지 못해 일한다’(35.8%)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33.1%)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87년 민주화는 노동의 시민권 확보를 위한 중대한 기회였다. 수십년 억눌려 있던 노동자들의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87년 6월29일부터 10월 말까지 총 3311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다. 그 중 파업은 3235건으로 하루 평균 44건, 총인원 122만5830명이 참가했다. 모든 파업에 ‘인간답게 살고 싶다’가 공통된 구호로 내걸렸다. 87년 말까지 1361개의 노조가 새로 만들어졌다. 86년 2657개이던 노조는 89년 7883개로 세 배 가까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노조원 수도 103만6000명에서 193만2000여명으로 76.8% 증가했다. 바야흐로 정치·교육·기업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노동의 참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민주화 이후의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민주세력은 멈칫거렸고 때로 역주행했다.
 
민주화 이후 노동문제 관심 오히려 후퇴
박찬표 목포대 정치학과 교수가 2006년 발표한 ‘노동정당 부재 의회의 노동이익 대표기능’이라는 논문은 87년 민주화와 98년 정권교체를 전후로 노동 문제에 대한 민주세력의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표를 담고 있다. 논문에서 박 교수는 11대 국회부터 16대 국회까지 정기국회에서 행해진 총 63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타난 노동 관련 발언 빈도와 방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13대 국회에서 최고점을 기록한 민주세력의 노동 관련 발언 빈도는 14대 국회 이후 급격히 줄어들었다. 발언의 방향을 봐도 90년을 고비로 노동 우호적인 태도가 현저히 약화됐다. 이런 경향은 97년 외환위기와 정권교체 이후 더욱 강화돼 15대 국회에서는 2000년과 2003년을 제외하고는 노동에 대해 거리두기 태도가 줄곧 유지됐다.
 
박 교수는 “일반적으로 민주화 및 민주정부의 등장은 노동권익 보호나 실질적 민주화의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해석되지만 국회의 노동 관련 발언은 그 반대 경향을 뚜렷이 보여준다”며 “노동의 관점에서 국회의 이익대표 기능을 볼 때 절차적 민주화는 오히려 실질적 민주화의 후퇴를 가져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극과 극을 오간 노무현 대통령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88년 7월8일 13대 국회 본회의장. 국회 노동위원회 소속 노무현 의원이 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 나섰다. 그는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의 가치를 열정적으로 옹호하고 정부와 기업의 노동 탄압을 매섭게 질타했다. 노 의원은 “노조와 파업의 자유가 부인되는 곳에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노조와 파업의 자유에 대한 도전은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는 입만 열면 노사화합을 외칩니다. 그러나 노조 한 번 해보려고 하다가 전기도 끊기고 수도도 끊긴 공장 바닥에서 ‘스티로폼’ 한 장 깔고 앉아서 생라면을 씹고 있는 이 노동자가, 가족이 가져다 준 주먹밥마저 빼앗아서 불태우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노동자가, 그리고 끝내는 감옥에 갔다가 해고되어 길거리에 내쫓긴 이들 노동자가 그들을 내팽개친 기업주와 이 땅 위에서 서로 화합해서 살기를 기대하십니까”라며 정부를 매섭게 질타했다. 그의 연설은 질문시간 종료로 마이크가 꺼진 뒤에도 한동안 계속됐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03년 6월24일 청와대 국무회의. 김진표 경제부총리로부터 철도노조 등의 파업 동향을 보고받은 노 대통령은 “불법 파업 주동자에 대해서는 사태가 해결되더라도 법에 따라 사법처리를 해야 하며 이것이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취임사에서도 “노사화합과 협력의 문화를 이루기 위해 노사 여러분과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터였다. 초선의원 시절 ‘파업의 자유’를 호소하던 것에서 ‘불법파업 엄단’과 ‘노사화합’으로 강조점을 바꾼 것이다.
 
민주화의 결과, 비정규직만 양산
노동에 대한 민주세력의 태도 변화는 신자유주의 도입과 맞물려 있다. 앞서 언급한 박찬표 교수의 논문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국가경쟁력·국제경쟁력·기업경쟁력 등 ‘경쟁력’ 발언이 급증할수록 민주세력의 노동 관련 발언은 중립적 또는 부정적 방향으로 바뀐 것으로 분석됐다.
 
민주화를 두고 “군부독재를 시장의 독재가 대체했다”는 혹독한 평가가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정부가 추진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노동의 유연화다. 국민의 정부 집권 이듬해인 98년 2월 정리해고제가 도입됐다. 근로기준법 제31조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 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넣은 것이다. 간접고용을 허용하는 파견법도 함께 법제화됐다.
 
그 결과는 비정규직의 대량 양산이었다. 2001년 8월 736만6000명이던 비정규직 규모는 2007년 8월 861만4000명으로 치솟았다. 전체 노동자 중 임시·일용직이 차지하는 비율은 98년 46.9%에서 2004년 48.8%로 증가했다. 전체 국민소득 중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인 노동소득분배율은 96년 63.4%를 정점으로 하강곡선을 그었다.
 
노동 배제는 민주세력 집권 불구 여전
노동진영은 ‘민주세력’과 ‘냉전세력’이 손을 맞잡은 ‘신자유주의 동맹’의 전방위 공세에 무기력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분단은 노동운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운동 내부의 계파 갈등이나 민주성 약화, 관료주의 득세,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등 안팎의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며 “특히 비정규직·저임금·중소기업·여성 노동자 등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괄하고 대변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민주정부를 거치면서 노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오히려 커졌다. 노동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노사관계 국민의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노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20년 전에 비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몇 대목을 추려보면 ‘노동자들의 요구 내용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89년 32.4%에서 2007년 57.1%로 증가했다. ‘국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시설 분야의 집단행동은 절대로 자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25.9%에서 50.2%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노사협상의 실패는 노조 책임’이라는 응답도 3.3%에서 13.4%로 증가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노조활동은 가급적 자제돼야 한다’는 의견이 74.1%에 달했고, ‘최근 임금인상 요구는 과도하다’는 답변도 70.3%나 됐다.
 
강력한 반노동주의의 이명박 정부
이처럼 반노동·친기업주의에 대한 사회적 저항력이 바닥난 시점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은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같은 선상에 있지만, 강도는 더 강하고 접근법은 한층 원리주의적이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법 개정 움직임이다. 지난해 12월 노동부는 60세 이상 고령자에게 최저임금 밑으로 급여를 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에는 최저임금제 제외 대상인 수습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도 담겨 있었다.
 
최저임금제의 도입 취지를 허물어뜨리는 발상이라는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면서 법 개정은 다소 주춤해진 양상이지만 노동부 관료들은 법 개정에 대한 소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최저임금법은 민주화 이듬해인 88년 도입됐다. 최저임금법 개정이 추진되는 것은 현 정부의 역사적 위치와 관련해 상징적이다.
 
비정규직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남용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2006년 법제화된 것이 비정규직법이다.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2년 넘게 고용하려면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하고 있다. 이런 규제가 비정규직 확산 방지책으로 합당한가에 대해선 도입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지만, 더 이상의 비정규직 확산은 막아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밑바탕이 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뜻을 밝히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예 “비정규직 기간 제한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법 도입 이전의 ‘원시상태’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역임한 윤 장관은 나아가 “노무현 정부가 가장 잘못한 게 바로 비정규직을 도와준다는 명분 아래 비정규직에게 사기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연속성과 단절’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도 같은 선상에 있다. 지난해 12월 노동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2009년 주요 과제로 포함시켰다. 노동부는 ‘유연화·합리화’를 법 개정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해고요건 완화’나 ‘재량근로제 확대’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료들이 ‘정규직 고용의 경직성’을 국내 노동시장의 주된 문제로 꼽는 데서 법 개정의 과녁이 짐작된다.
 
공안통치 대상으로서의 노동
이명박 정부는 노사관계 정책에서 민주화 이전으로 회귀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화보다는 법을 앞세우고, 공안정책이 노동정책을 대체하고 있다. 이런 정책의 바탕에는 노동에 대한 적대적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아왔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3월16일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요즘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파업은 안 될 말”이라며 “정치 목적을 가지고 파업을 한다든가, 법을 어기는 어떠한 일도,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달 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도 “국민 대부분이 한국은 법과 질서보다 떼를 쓰면 된다거나 단체행동을 하면 더 통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에서는 “미국의 GM자동차가 부도 위기에 내몰린 것은 노조의 과잉요구를 최고경영자(CEO)들이 모두 들어줬기 때문”이라며 GM의 경영위기를 노조 탓으로 돌렸다. 현 정부 들어 공안검찰이 화려하게 부활한 것도 이런 기류의 반영이다. 지난 1월15일 검찰은 ‘법질서 확립을 위한 2009년도 공안부 운영방침’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의 불법 파업을 엄단하겠다는 내용이다.
 
‘불법파업의 경우 고소·고발 없이 수사’ ‘화염병·쇠파이프 사용, 주요 시설 점거, 국가기간산업 파업 등에 대한 양형 가중’ ‘무관용 원칙 관철’ ‘법질서 확립지수(일명 떼법지수) 개발’과 같은 방안이 포함돼 있다. 검찰은 지난해 촛불파업을 벌였다는 이유로 이석행 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노총 주요 간부들을 대거 사법처리했다.
 
노동 배제의 끝은 사회 붕괴
현 정부에서 극단에 이른 노동 배제는 노동자들의 생존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리키는 징표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세계 경기침체의 여파로 노동자들의 삶은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고 신규 인력 채용을 꺼리면서 비경제활동인구를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지난 1월 12.6%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지난해 8월 현재 전체 비정규직 840만명 가운데 고용보험에 가입한 비율이 33.5%에 불과할 만큼 사회안전망은 극도로 취약한 상태다.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파시즘의 도래’를 우려한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는 “한국의 빈민율은 중남미 저개발국가의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노동이 폭넓게 대표되는 사회일수록 빈곤이 덜하고 문화적으로 풍요롭고 사회의 해체 정도도 낮다”며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인 노동자들을 체제의 틀로 통합하지 못하면, 사회는 깨지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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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노동의 배제는 곧, ‘공동체 통합’을 저해한다 (경향, 박상훈|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2009-03-17 17:41:00)
ㆍ2부 - (5) 노동 없는 사회 Ⅱ…왜 민주주의가 아닌가
 
민주화 20년의 비극, 노동 존엄성 훼손
신자유주의가 낳은 부정적 영향 가운데 하나는 일에 대한 헌신이 갖는 가치 내지는 노동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데 있다. 노동 유연성이라는 부드러운 말이 실제로 가져온 것은 비정규직 양산과 실업 증가였다. 그로 인한 고용 불안과 빈곤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노동비용의 축소를 가능하게 해주는 정상적 시장 요소로 간주되었다.
 
이렇듯 상당수의 노동자가 열심히 일할 기회도 갖지 못하는 잉여 인간이 되면서,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대신에 ‘일하는 것이 특권이자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새로운 노동 윤리가 만들어졌다. 이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경제 독트린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를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외적 영향 때문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태의 절반만 보는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간의 민주정부들이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제어, 완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추진자로서 역할을 했다는 데 있다. 민주 정부의 이름으로 실천된 신자유주의, 이것이야말로 민주화 20년의 비극적 결산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시민을 위해 만들어진 민주주의
우리는 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가? 민주주의 자체의 그 어떤 숭고한 뜻이나 이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그러한 접근이 위험할 때도 있는데, 이념이나 가치가 과도하게 강조되고 맹목의 신화가 되면 현실의 실제 문제를 못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반창연합’이니 ‘반이명박연합’이니 하는 식으로 구호화된 ‘민주주의 수호론’이 별 영향력을 갖지 못한 채 많은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런 접근을 통해 과도하게 물신화되고 의인화된 민주주의가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직면해 있는 삶의 구체적 현실을 생기 없는 모조품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평생 민주정치를 연구했던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민주주의가 옹호될 수 있는 이유를 어떤 이념성이 아니라, “사회 하층의 요구와 경험을 이해하고 통합하는 일을 다른 어떤 통치체제보다도 잘 할 수 있다는 데”서 찾았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문구, 즉 “민주주의는 보통의 시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민주주의를 위해 시민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민주주의의 위대함은 “평범한 사람들을 모아 비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고, 일의 가치 혹은 노동의 존엄성을 희생해서 경제성장을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노조가 강할수록 불평등 작고 빈곤율 낮아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될 때, 보통의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정치체제가 될 수 있을까?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계층 간 평등의 정도가 큰 나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강력한 설명의 하나는 기업운영-노사관계-정당체제-정책결정 과정에서 노동의 시민권이 얼마나 폭넓게 보장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노동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여러 학자들이 강조하듯, 노동자들의 이익과 열정을 대변하는 노조와 정당의 힘이 강한 나라일수록 계층 간 불평등 정도는 작고 빈곤율도 낮다. 투표율은 어떨까? 노동의 정치적 대표성이 클수록 높다. 범죄율도 낮고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한 보호의 수준도 높다.
 
시장경쟁에 내몰리는 정도도 낮고 규제 없는 금융개방에 대한 방호벽은 높으며 그 결과 경제체제도 안정적이다. 하지만 노사 분규가 증가하고 급진적 노동운동이 출현할 가능성은 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서유럽 여러 나라들에서 볼 수 있듯, 노동의 권리가 폭넓게 인정될수록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의 산업평화가 유지된다.
 
미국의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역임했던 립셋은 노동의 참여가 확대될수록 노동운동의 탈급진화 경향이 커지는 것을 하나의 법칙적 사회현상으로 정의한 바 있다. 요컨대 노동의 시민권에 폭넓은 기초를 둘 때에만 민주주의는 인간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다.
 
자본주의는 계층간 불평등 원리에 기초
잘 알다시피 현대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라고 하는 생산체제 위에 서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역사상 그 어떤 생산체제보다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계층 간 불평등의 원리에 기초를 둔 것이자 인간 사회의 공동체적 통합을 위협하는 부정적 효과를 동반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이상적인 정치를 구상하고 조화로운 이성적 공동체를 꿈꾼다 하더라도, 현실의 불평등한 계층 질서와 갈등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빼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허구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은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으로, 그 수에 있어서나 조직적 잠재력에 있어서 그에 견줄 만한 세력은 없다.
 
따라서 이들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이해되느냐에 따라 그 나라 민주주의 내용과 질은 크게 달라진다. 노동을 축소해야 할 생산 비용으로 간주하고 참여로부터 배제하려 할 때 그것은 단순히 노동만 배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사회 전체를 배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노동을 배제하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온전할 수도 없다.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을 빨갱이나 좌경으로 몰아가는 비이성적 억압의 논리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한 논리는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을 멸시하고 천대하면서 못 사는 사람을 멀리하는 심리를 만들어내며, 이런 환경에서는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윤리적인 토양이 척박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위해 노동자 대변 정치세력 필요
가끔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느냐’를 따져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줄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분배효과가 계층별로 달라질 때, 민주주의는 안정된다.
 
그 경우 어느 사회집단이든 정치참여의 욕구가 자신들의 필요로부터 발생하며, 결과적으로 개인과 민주주의 사이의 결합이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유럽의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노동 정당이 없는 미국조차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와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계층별 소득분배는 뚜렷하게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 인용해 잘 알려진 프린스턴 대학 래리 바텔스 교수의 책 <불평등한 민주주의>에 따르면 1947년에서 2005년 사이 미국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소득 증가율은 공화당 집권기에 비해 민주당 집권기에 6배나 더 높았음을 볼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아직까지 이런 함수관계를 만들지 못했다는 데 있다. 기대했던 김대중, 노무현정부 하에서 비정규직은 최대로 늘었고 소득분배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으며 사회 하층의 빈곤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남북한 사이의 평화관계를 구축하고 여러 개혁조치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평범한 보통사람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 무엇보다도 이 사실이 중요하다.
 
노동 없는 정치는 절망을 낳을 뿐
지난 총선에서 투표를 거부한 54%의 유권자들, 그리고 전체 노동자의 54%에 해당하는 850만 비정규직의 눈으로 볼 때, 정치를 누가 하든 자신들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고 한다면, 민주주의는 참여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말이 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를 위기로 몰고 가는 주범은 다른 것이 아닌, 노동 배제적이고 하층 배제적인 사회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노동 없는 정치가 가난한 보통사람들을 절망으로 이끌고 있다는 데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