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현장에서

[이남신 인터뷰] 민주노총은 이미 죽었다…부수고 새로 지어야" (프레시안, 09-02-23)

새벽길 2009. 2. 23. 16:01
 <프레시안>이 민주노총의 성폭력 사태를 계기로 붉어진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연속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이전에 했던 인터뷰는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 하부영 전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등과 가졌던 것인데, 이들의 발언에서 뭔가 해법을 찾기 어려웠다. (하부영 인터뷰 글은 아직 읽지 않았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동운동 외의 다른 사안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들은 노동운동의 위기와 비정규직의 문제를 엮어내는데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되었다. 그 점에서 이남신의 인터뷰는 관심이 갔다. 물론 그가 뭔가 쌈빡한 대안을 제출해줄 것이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의 진정성(진정성이라는 단어는 별로 사용하고 싶지 않은데 어휘구사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또 쓰게 된다)은 인정해줄 수 있다.
 
민주노총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민주노총이 11월까지가 임기인 임시집행부를 통합지도부로 하여 뽑자고 한다는데, 거기에서 과감하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후보가 나와서 선거공간에서 이를 선전선동하면 어떨까 싶다. 단순봉합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재탄생을 위한 노력으로서 말이다. 역시 조합원이 아닌 관계로 뭐라 말하기 어렵다.
  
아무튼 이남신 직무대행이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가지고 민주노총 내부에서 치열한 토론이 진행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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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이미 죽었다…부수고 새로 지어야" (프레시안, 여정민 기자, 2009-02-23 오전 7:42:36)
[위기의 민주노총, 길을 묻다⑤]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직무대행은 시종일관 '과격'했다. 이남신 직무대행은 "한국노총과 마찬가지로 이익단체일 뿐인 민주노총은 이미 죽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더 이상 개선이 불가능한 지경"이라며 "비정규직, 중소 영세 노동자 입장에서는 1차 가해자인 정부·자본과 2차 가해자인 민주노총은 똑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남신 위원장 직무대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성폭력 문제가 아니"라며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고 토로했다. 민주노총이 이 지경이 된 원인은 간단했다. "10년 동안 열심히 싸워 민주노총을 지켜 온 조합원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인을 짚고 나면 해법도 간단하다. 무게 중심을 옮기면 된다. 이남신 위원장 직무대행은 "정규직도 지키고 비정규직도 잘하자는 건 비정규직을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기존의 민주노총이 가졌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를 부정하고 버릴 때 새로운 상상력이 가능하다"는 것.
 
그는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중심에 놓은 노동운동을 하려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연맹 사무총국 성원의 절반을 비정규직 사업에 배치할 정도의 '혁신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그럴 때만이 민주노총의 진정한 혁신을 가능케 하는 "당사자 민주주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규직 양보론' 주장을 놓고도 그는 정규직이 움직일 자세가 안 돼 있는 한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내놓지 않으면서 정권과 자본에게만 책임지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민주노총의 맹점은 정권의 탄압 때문이 아니"라며 "싸우기 쉬운 조건에서 못 하는 이유는 문제가 내부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만 하더라도 그랬다. "민주노총에 자리 잡은 단단한 정파 구조는 이 사태가 우리 정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계산하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피해자의 인권은 없었다.
 
그는 "민주노총이 죽은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 자체를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짓던지, 아니면 그 집을 포기하고 다른 집을 지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이젠 민주노총이 죽은 걸 숨길 필요가 없다.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다. 어떻게 변하는지만 남았다."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남신 : (이번 사태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솔직히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올게 왔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사건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성폭력이나 성희롱 사건은 유통 사업장에서도 간간히 일어난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결정판이었을 뿐이다. 수배 중인 위원장을 수행한 핵심 참모와 은신처를 제공한 조합원의 문제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민주노총이 타락했는가하는 충격은 있었지만, 참담하지는 않았다.
 
비리도 마찬가지다. 대공장의 경우 활동가들 사이에 노조가 회사에 발목 잡혔다는 말이 늘 있었다. 싸워야 할 때 힘차게 싸우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노조가 회사에 비리 건으로 발목이 잡혀 있거나 이권 문제가 개입돼 있는 경우가 많다.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사건이 벌어진 이후 그런 모든 것들을 점검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더 큰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꼴이다. 다만 '왜 하필이면 이런 때…'라는 생각은 많이 했다. 민주노총이 자정 능력을 잃어가고 이명박 정권이 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주력 부대인 민주노총이 건강한 모습으로 싸우지는 못할망정 최악의 상황으로 주저앉은 것이 너무 안타깝다.
 
프레시안 :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사람들은 민주노총의 처리 과정을 많이들 비판한다.
이남신 : 지금 구조 속에서는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굳건한 정파 구조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지금 민주노총은 여성,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없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받아 안지 않았던 것이 내부의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성폭력과 일맥상통한다. 비정규직을 홀대하고, 전체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말만하고 기득권을 놓지 않았던 것은 소속 여성 조합원을 성폭행하고 2차 가해까지 저지른 것과 똑같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어떻게 보면 이번 일은 빙산의 일각이다. 성평등 의식 교육은 하지만 현실로 잘 안 된다. 여성 할당도 면피식으로 하긴 하는데 민주노총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지엽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뒤풀이 문화도 문제다. 지금 상태로는 나도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 가해자가 평소에도 과연 '개차반'이었을까? 나름대로 신념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일정 부분 검증된 활동가였을 테다. 개인의 잘못과 민주노총의 구조적 문제도 따져야 하지만, 운동 진영의 뒤풀이 문화도 잘 따져봐야 한다.
 
프레시안 : 뒤풀이 문화가 지나치게 술 중심이라는 얘긴가?
이남신 : 너무 획일적이다. 또 남성 중심적이다. 술을 강권하고 남녀 간 성적인 차이도 무시된다. 문화 수준이 저급하다. 다른 방식의 문화 활동도 가능한데, 고민이 없다. 남성 중심의 주류 문화는 사실 거친 군사 문화의 연장이다. 말로는 양성 평등을 얘기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 여성은 중성이 될 것을 강요받는다.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똑같은 문제는 독버섯처럼 곳곳에서 자생할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 문화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고 삶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해결되기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새로 구성된 진상 조사단이 철저하게 이번 사건에 대해 밝혀 가해자를 징계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는 것만으로는 똑같은 사건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긴가?
이남신 : 일이 터질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넘어가는 것뿐이다. 이번에는 총사퇴로 정리했지만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진정성을 인정받을 것인가. 진상 조사도 기존 정파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리될 것이다. 자기 정파가 선거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2차 가해자가 누구냐 등의 소모적인 논란만 벌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해법은 기존의 민주노총이 가졌던 관성과 문제점, 한계들을 완전히 바꾸는 것뿐이다. 어설프게 악세사리 몇 개나 인테리어 바꾸는 것으로는 안 된다. 완전히 집 자체를 허물고 다시 짓던지, 아니면 그 집을 포기하고 다른 집을 짓던지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노총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싶다. 지금의 위기가 성폭력 문제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근본 인식을 놓친 데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민주노총은 더 이상 '개선'이 불가능한 지경이라고 본다. 그동안은 건강한 활동가들을 믿었다. 다른 방식으로 민주노총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안 된다' 싶다.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진통을 거쳐야 할 때다. 정파 폐해도 수도 없이 많이 얘기했지만 늘 비켜갔다. 조합원이 대상이 되는 구조를 뿌리에서부터 근절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번 사건이 이렇게 확대된 데 정파 구도가 영향을 미쳤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동의하나?
이남신 : 피해자가 납득할 수준에서 해결되지 못한 이유는 우선 성폭력 문제에 대해 의식 수준이 저열했기 때문이지만,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정파 구조다. 이 문제가 앞으로 '우리 정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다들 계산했다. 게다가 올해 말 직선제를 앞두고 있어 더 그랬다. 내용이 있는 올곧은 정파였다면 더 가해자에게 엄격하게 정리됐겠지만, 정파가 선거 조직으로 변질되면서 자기 조직에 닥칠 최악의 상황을 먼저 고려했다. 그 자리에 피해자의 인권은 없었다.
 
사실 언론에 사건을 확인시켜 준 2차 가해를 누가 했건, 공동의 책임이다. 어느 정파도 자유롭지 않다. 정파의 이해관계로 인해 가서는 안 될 길로 갔던 책임을 지는 것은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건강한 활동가들이 정면으로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야 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노총에 그나마 애정을 가지고 있던 조합원과 국민이 모두 등을 돌릴 것이다.
 
민주노총을 살리려고 하지 말고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미 '죽었다'고 선언하고 인공호흡 대신 새로운 형태의 조직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보수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집을 나와 노숙하는 심정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 그것조차 안 된다면 새 노총을 만들 수도 있다. 한국노총을 민주화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 끝에 결국 민주노총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기존의 정파들이 기득권을 포기한다면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프레시안 : 지금의 민주노총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단지 이름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남신 : 민주노총 조직은 기껏해야 65만~80만 명이다. 1800만~1900만 명이 방치돼 있다. 집 안에 있는 사람보다 집 밖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65만 명을 중심에 두지 말고 1800만 명을 중심에 둬야 한다. 지금까지는 65만 명이라는 '거대한 소수'로 노동자를 대표한다고 행세해 왔지만, 이제는 반대로 가야 한다. 노동운동이라면 집이 없는 사람, 허름한 집에서 간신히 사는 사람과 함께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파 해체가 절실하다. 이미 내용적으로 정파는 해체됐다. 대공장으로 가면 정파란 그저 '허접한 선거 조직'일 뿐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정책을 듣고 저 사람들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곧은 정파는 이미 사라졌지만, 정파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다. 대의원만 해도 대부분 특정 정파 소속 아닌가. 민주노총의 모든 의사 결정은 정파 간 '셋팅'으로 모두 끝난다. 투쟁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던 건강한 사람들도 위로 올라올수록 '줄서기'를 한다.
 
정파가 권력이 돼버렸다. 물론 권력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권력이 어디에 복무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의 정파는 정규직에게 복무하고 있다. 그래서 실패한 것이다. 인정해야 한다. 지난 13년 동안 소위 '민주'를 붙인 노동조합 운동은 실패했다.
 
프레시안 : 참 좋은 말이긴 한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가 의문이다. 이미 민주노총의 소위 의견 그룹은 단단해졌다.
 
이남신 : 솔직히 가능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기대하진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가능성을 믿었다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대난망'이 아니라 '기대무망'이 됐다. 그런 측면에서는 허영구 전 부위원장이 얘기한 '리모델링으로는 안 된다'는 말에 동의한다. 내부에 건강한 활동가들은 분명히 있지만 지금의 민주노총 틀에서는 소수의 목소리일 뿐이다.
 
510일의 파업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출발이 하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까르푸와 이랜드, 뉴코아로 각각 출발은 달랐지만 우리만큼 치열하게 공동 투쟁을 한 사업장은 없다. 그런데도 앙금이 많았다. 산별이 안 되는 이유도 출발이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하나로 시작하지 않으면 조직 전환으로는 그 정신이 살아나지 않는다. 수년 동안 혁신을 외쳐도 안 되는 이유도 서로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불신만 커진다. 다 부수고 같은 출발선에서 새롭게 함께 시작해야 한다.
 
프레시안 : 집을 뛰쳐나와야 한다, 다 부숴야 한다는 말을 정파 해체 외에 구체적 행동으로 설명해 본다면?
이남신 : 당사자 민주주의다. 예를 들면, 80만 명 민주노총이 그렇게 반대를 해도 허망하게 통과됐던 비정규직법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건 500명도 못 되는 홈에버 아줌마들이 매장을 점거하면서였다. 총연맹이 1~2년 동안 노력했던 비정규직법에 대한 '선전'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순식간에 이뤄진 것이다. 당사자가 나섰기 때문이다. 촛불도 마찬가지다. 조직을 동원하는 형태의 기존의 운동권 방식과 촛불은 달랐다. 이랜드의 투쟁도, 촛불도 당사자가 나섰을 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민주노총은 어느 지점에서 당사자가 될 수 있을까? 대공장 정규직 중심이라는 구조에 갇혀 있는 한, 결국 정규직이 당사자다. 냉정하게 말하면 비정규직은 지금 민주노총 틀 안에 없다. 말로는 비정규직 조직화를 얘기하지만, 당사자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50억 원의 비정규직 기금으로 민주노총이 무엇을 했나? 무게 중심을 확실히 옮기려면 전국적으로 각 단위노조부터 총연맹까지 수천 명에 이르는 상근자의 배분도 달라져야 한다.
 
프레시안 : 그래도 민주노총만큼 비정규직 조직화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한 곳이 없다.
이남신 : 민주노총이 한국노총보다 잘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열심히 싸워 조합원이 늘었다. 어찌 보면 검증된 사람들이 산별노조와 총연맹을 맡아서 10년을 해 왔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니 '공적'이 돼버렸다. 열심히 잘 싸워 늘어난 그 조합원들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당연히 출발 당시 스스로 선언했던 것과 반대로 가고 있다. 이명박만 반대로 가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지만, 민주노총도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것이다.
 
단위노조야 조합원의 이익을 챙긴다 하더라도, 상급단체는 달라야 한다. 지금의 민주노총은 한국노총과 마찬가지로 이익단체일 뿐이다. 잘 했지만, 지금은 '독'이 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왜 그렇게 됐는지, 문제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이다.
 
지금은 아무도 기득권을 주장할 수 없다. 이미 대중적으로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지금이 기회다. 자기 뿌리를 자르지 않으면 '도로 민주노총'이 될 것이다. 그러면 허영구 부위원장의 말대로 '새로운 노총'의 흐름이 가시화되리라 본다. 민주노총이 애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부수지 않고 보수만 하려고 해서 그렇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프레시안 : 혁신에 대한 상상력이 일정한 기존의 틀 내부에 갇혀 있다는 말인가?
이남신 : 만약 민주노총이 사라지면 예산부터 모든 것이 파격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총연맹 상근자가 40명이라면 그 가운데 20명을 비정규직 사업으로 돌릴 수 있다. 지금은 절대 그렇게 못 한다. 기존 조직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폼 잡기'다.
 
매년 똑같은 사업계획으로 무슨 혁신이 가능한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10년 동안 만들어진 시스템이 녹록치가 않다. 일거에 무너질 만한 조직도 아니다. 단단하다. 아마 이 상태로도 민주노총은 꽤 오랫동안 '유지'가 가능할 것이다. 점점 더 욕을 먹겠지만…. 달라져야겠다고 결단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민주노총의 모든 것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잔머리 굴리지 말아야 한다. 정권과 자본을 향해 얘기하는 것보다 우리가 무엇을 파괴해야 하는지 빨리 정리해야 한다. 이명박과 싸우는 것은 그 다음이다. 지금은 싸울 래야 싸울 동력이 없다. 민주노총의 맹점은 정권의 탄압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때보다 싸우기는 참 쉬운 조건 아닌가. 그런데 못 하는 이유는 문제가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노총도 소수자와 약자를 스스로 내치고 있다. 그러면서 정권에게 '니들이 소수자를 책임져라'고 외치면 먹히나.
 
민주노총이 정부가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미조직, 중소 영세 사업장 노동자에겐 민주노총이 기득권이다. 차라리 우리는 이만큼을 책임질 테니, 너희는 이것을 해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규직 양보론은 안 된다'는 주장은 정말 소모적인 논쟁이다. 미조직, 영세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1차 가해는 정부와 자본이 했지만, 민주노총은 2차 가해를 하고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1차 가해자나 2차 가해자나 똑같다. 2차 가해자로서 나는 무슨 책임을 져야 하나를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대정부 요구안만 내놓을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을 위해 본인들이 무엇을 내놓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얘긴가?
이남신 : 민주노총은 대한민국에서 이미 중간 기득권이다. 그 위상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보다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을 전제로 정권을 압박해야 한다. 금속노조가 얘기하는 '일자리 나누기'에 대해 정부는 '그럼 너희는 무엇을 내놓을 거냐'고 묻는다. 자기들은 다 가진 채로 정몽준 보고만 내놓으라고 하면 결국 하나마나한 얘기일 뿐이다.
 
사회연대전략이 좌초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정규직이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은데 그냥 포기한다. 심각한 임금 차별을 나누지 않고 해소할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물론 우리가 큰 힘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하다. 그런데 5%도 안 되는 조직율로 싸워서 따내긴 너무 힘들다.
 
지도부가 먼저 포기하고 헌신하면 조합원들은 힘들어도 같이 간다. 510일 파업했던 우리 이랜드만 해도 그렇다. 김경욱, 이경옥이 자기 기득권을 버린 것 아닌가. 파업하기 전부터 조합원들은 김경욱, 이경옥이 정규직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정규직 몫을 조금 양보해서라도 비정규직의 작은 이익을 따내는 것을 봤다. 스스로 정규직이면서도 3년 동안 그렇게 해 왔다. 신뢰는 그렇게 쌓인 것이다.
 
그런데 산별을 보면 갑갑하다. 신뢰가 없으니 조합원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 곳에는 정파만 있지 김경욱, 이경옥이 없다. 수준도 낮고 학습도 별로 안 하고 파업도 경험해보지 못한 간부들과 조합원도 이랜드처럼 해내는데, 왜 민주노총이 못하나. 마음먹기 나름이다. 물론 '그래서 넌 대체 어떻게 하자는 건데'라고 물으면 사실 나도 답이 없다. 이렇게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만 든다. 나라면 다르게 하겠다.
 
프레시안 : 만약 보궐 집행부가 본인이 맡게 된다면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나?
이남신 : 정파 연합으로는 안 된다. 정파 연합으로는 계획은 나오겠지만 구호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얼굴부터 시스템, 계획, 예산 모든 것을 일신해야 한다. 처음부터 정파는 아예 무시한, 인사 탕평책을 써야 한다. 비록 부족하고 설익었더라도 비정규직을 모든 결정의 중심에 두겠다.
 
하지만 지금 들리는 얘기로는 '기대해봐야 제자리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민주노총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미 단위노조도 총연맹과 비슷해졌다. 역동성도 없고 이익단체 기능만 한다. 한국노총처럼 장기집권하는 집행부가 생긴다. 현장과 멀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간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 같은 단위노조 간부들의 책임도 있다.
 
투쟁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조합원들까지 구체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상층에서만 뚝딱뚝딱할 것이 아니라 정파의 폐해부터 투명하게 공개하고 해답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어차피 싸워봤자 진다. 어설프게 싸워 계속 깨지느니, 계속 당하더라도 내부를 수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낫다.
 
그동안 우리는 조합원과의 소통이 너무 부족했다. 마땅히 들어야 할 쓴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작 우리가 함께해야 할, 주체가 됐어야 할 사람들로부터도 고립되고 있다. 그렇게 연대를 외쳐도, 일반 시민사회와의 연대는커녕 정규직과 정규직노조 간의 연대도 잘 안 된다. 비정규직과의 연대는 고사하고 말이다. 당연히 산별노조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더구나 현재의 대한민국은 노동중심만으로 말하기 어렵다. 이제는 구체화시켜 얘기해야 한다. 비정규직 중심, 이주노동자 중심, 이런 식으로 정체성을 구체화해야 한다. 정규직도 지키고 비정규직도 잘하자? 이 말은 비정규직을 희생시키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위선과 가식을 내부에서 용인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실패를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프레시안 : 기존 패러다임의 전환을 얘기하는 것인가?
이남신 :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나 민주노총의 '노동자 살리기'나 비슷한 수준의 패러다임이다. 근본적으로 발상을 바꿔야 한다. 경제만, 노동자만 살리면 세상이 진보할까? 아니다. 우리가 꿈꿔왔던 세상이 2만 달러 버는 사회인가?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명박을 이기지 못한다. 박정희와 똑같은 기준으로 보다 나은 것을 보여주겠다는 얘기로는 안 된다. 거꾸로 가야 한다. 조금 덜 가지게 되더라도, 더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 우리는 조합원과 타협했다.
 
양극화가 너무 심해서 문제지만, 대한민국 전체를 보면 너무 부유하다. 이 좁은 땅에서 너무 많이 생산되고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한다. 더 많이 생산해서 더 많이 분배하자? 수구적 패러다임이다. 여성과 생태가 중요하다? 지금 민주노총은 말 뿐이다. 오히려 노동보다 그런 가치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중심에 두는 것이 진정한 노동운동일 수 있다. 그런데 다 팽겨치고 조직된 노동자만 중심에 놓았다. 결과적으로 한국노총과 다를 바가 없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의 실패와 사망 선고'가 일관된 주장인 것 같다. 지나치게 패배적인 얘기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이남신 : 실패라는 것이 꼭 나쁜 평가는 아니다. 열심히 했고 정말 헌신했는데 실패한 것이다. 게을러서도 아니다. 그래서 의미 있는 실패다. 밑거름으로 새롭게 태어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단병호 전 위원장이 진정성이 있다. 단병호는 기득권이다. 그런데 진보장당 운동의 실패를 얘기하면서 모든 것을 버렸다. 지금까지의 자기를 부정한 것이다. 정권을 부정하긴 쉽지만 자기를 부정하긴 쉽지 않다.
 
사실 나는 민주노총을 잘 모른다. 현장 간부라는 이유로 어설픈 얘기들을 쏟아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특히 투쟁을 하다 구속된 이석행 위원장까지 사퇴한 것은 너무 안타깝다. 애초에 잘 해결했으면 그럴 만한 사안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성폭행 문제가 아니다. 특히 2000년 이후 보인 부끄러운 행보에 대해 정권과 자본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쇄신해야 한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그것이 민주노총의 정신을 살리는 길이다. 다른 현장 간부들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민주노총이 죽은 건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떻게 만든 조직인데…'라는 생각 때문에 얘기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숨기지 말자는 얘기다. 지금은 더 이상 숨길 수도 없다. 성폭행 사건으로 온 국민이 민주노총을 주시하고 있다. 어떻게 변하는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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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01 17:09

오랜만에 다시 이남신 부위원장의 인터뷰 글을 보았다. 집회에서 그를 가끔 보긴 했지만, 글로 그에 관한 기사를 접하게 된 것은 지난 총선이후 처음이다. 
 
그가 한 인터뷰 내용 중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 - 이를 테면 민주노동당 선도탈당파에 대한 비판 - 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했으면 하는 내용들이다. 
 
이남신이 가야할 길은 김경욱과는 또 다른 길이겠지만, 둘다 공통적으로 해주었으면 하는 과제로서, 노동운동, 특히 비정규운동과 정당운동의 가교를 놓는 역할을 제시하고 싶다. 그들에게는 진정성 - 요새 이런 말 쓰는 이들이 가장 먼저 진정성을 의심 받는다 - 이 있기 때문이다. 이랜드 투쟁이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라고 한다면 그 나머지 절반의 실패를
메울 수 있는 길을 폭넓게 모색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난 총선 시기 이남신 부위원장이 진보신당의 총선 비례대표로 출마했을 때의 논란을 다시 생각해보니 느낌이 또 새롭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논란이 있을 텐데, 2008년 총선의 경험이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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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힘이 절반 승리 원동력"
(레디앙, 2008년 11월 28일 (금) 12:48:01 정상근 기자)
[레디앙 인터뷰]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 "진보신당 비례출마 결정 가장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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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3 22:58
참세상의 이윤원 기자는 기사를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을까. 저번 민주노동당 분당 관련한 기사도 문제가 많았는데, 이번 기사는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사는 그 때문인지 비판 댓글이 매우 많이 달렸다. 물론 게 중에는 진보신당을 추종하여 헛소리를 하는 이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 기사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고, 기사라기보다는 허접한 논평에 가깝다는 타당한 비판을 하고 있다. 
 
나 또한 이랜드 노조가 진보신당으로 후보를 내야 하는지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 이건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거론되었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총선 과정에서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그것이 현장의 동력을 살려주지는 못한다. 어쩌면 진보신당이 비정규직 투쟁에 힘을 쏟고 있다는 모양새를 보여주는데 기여하는, 면죄부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진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과거 민주노총 임원선거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는 사실과, 정규직 남성이라는 점도 이번 결정이 그리 탐탁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아무튼 일단 결정되었으니 제대로 된 선거투쟁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랜드 투쟁이 이대로 흐지부지 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2008.03.14 19:23
이꽃맘 기자의 기사는 그래도 좀더 낫긴 한데, 좀더 생생한 현장기사가 되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정경섭 후보의 글은 과거 같으면 진정성이 느껴졌을 텐데, 진보신당 창당과정에서 심상정 비대위 및 봉합파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다 보니 글 읽는 맛이 감했다. 
 

2008.03.15 15:58
아래 글은 계급전사님이 진보신당 홈페이지 당원토론방에 쓴 글이다. 
 
사실 진보신당에서 비례대표로 비정규직 대표자를 꼽는 것이 그리 맘에 들지는 않는다. 비정규직 투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면피용으로 이남신 동지를 순위에 올려놓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 3월 8일 상암점 앞에서 열린 여성노동자대회에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공히 참석하지 않았다. 집회 참여가 비정규직 투쟁을 열심히한다는 증표는 아니지만, 그러한 것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비례대표로 생색내는 모양새가 우려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