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행정 정책/노동, 고용, 노사관계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매경 기획기사, 09.1.22-2.22)

새벽길 2009. 2. 4. 00:08

매경이 심심하면 하던 것처럼 노동문제를 다룬 기획기사를 5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당연히 그 시각은 자본의 관점에 서 있다. 정규직 과보호의 문제를 제기한다든지, 불안정 노동을 노동유연화로 포장한다든지 등의 서술이 그러하다. 게다가 사실관계 등에서 왜곡하거나 편향된 측면이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이를 통해 쟁점을 파악할 수는 있으리라 본다. 
노사가 고통을 분담하면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어떠했는지에 대한 평가 위에서 고통 분담 얘기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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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비정규직 75% 해고" (매일경제, 기획취재팀=최용성(팀장) 기자 / 고재만 기자 / 임성현 기자 / 박승철 기자 / 강다영 기자, 2009.01.21 17:57:20)
매경ㆍ대한상의 300개 기업 설문조사…실직대란 고통분담으로 넘어야
 
울산의 한 중소 부품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박 모씨(39)는 지난해 말 계약기간 2년을 채우기 바로 전날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같은 날 박씨 외에도 10여 명의 비정규직이 계약 연장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는 매년 비정규직 가운데 절반 정도를 정규직으로 전환했지만 최근 경기가 나빠지면서 올해부터는 다른 파견직으로 전원 교체할 방침이다.
 
현대차 전주 공장 출고대기하역장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고속버스 1000여 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쌓여가는 재고를 감당하지 못한 현대차는 2교대였던 근무를 1교대로 바꿔 감산하려고 했지만 노조는 `주간 2교대제`를 주장하며 파업을 결의했다. 지난해 단체협상에서 이미 약속된 사항이라는 이유에서다. 만들 물건이 없는데도 노조가 2교대를 주장하며 파업 카드로 압박하는 바람에 1000대 넘는 재고에도 불구하고 고속버스는 주야 2교대로 생산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노사관계 역시 생존을 넘어 승리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대한민국의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연초부터 실직 대란이 가시화되고 있고 현대차 노조 등 강성노조들의 파업 결의는 노사 관계를 또다시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특히 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사용기간 만료를 앞둔 비정규직들은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올해 7월부터 비정규직 근로자가 한 직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의무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비정규직법이 오히려 해고 대란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경제신문과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300개 기업(300인 이상 기업 176사ㆍ300인 미만 124사)을 대상으로 최근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 기업 중 38%(114사)가 오는 7월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 중 단 1명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25% 미만 정규직 전환`이란 응답이 15%(45사)로 뒤를 이었다. 절반 이상 기업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전원 해고하거나 4명 중 3명은 해고할 것이란 얘기다. `전원 정규직 전환`이란 응답은 12%(37사), `75% 이상 정규직 전환` 응답은 5.3%(16사)에 불과했다.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가 많은 제조업종에서는 54.7%가 `단 1명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해 서비스업종(26.6%)과 기타업종(38.9%)보다 월등히 높았다.
 
노동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다음달 중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또 경제난과 고용한파에 따라 외환위기 사태 이후 처음으로 실업급여를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벌써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가 조용히 이뤄지고 있고 이런 방식으로 일자리를 잃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9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설이 지나면 비정규직법 개정안 제출을 결정하겠다"며 2월 국회에 상정할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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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쫓아내는 비정규직 보호법? (매경, 기획취재팀, 2009.01.21 17:55:44)
2년 일하면 무기계약 전환…오히려 해고 부추길 우려
◆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 ① 코앞에 닥친 실직대란 ◆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금지와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비정규직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시행 2년째인 비정규직법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45.3%가 `부정적인 영향이 더 많다`고 응답했다.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는 답변도 42.7%에 달했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이 더 많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2007년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부터 실시된 비정규직법은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된 상황이다. 하지만 올 7월 300인 이상 사업장 비정규직의 사용기간이 끝나면서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조사에서도 비정규직법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48.9%로 나타나 100인 이상 사업장(39.8%)보다 훨씬 높았다. 기업들은 비정규직법의 부정적 영향으로 `비정규직 계약 해지`(34.6%), `비정규직 채용 기피`(28.7%)를 꼽았다.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비정규직법이 되레 2년 뒤 해고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걱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용역 등 아웃소싱 확대`(23.5%), `노사갈등 증가`(11%) 등이 비정규직법의 부정적 영향으로 나타났다. 100인 이상~300인 미만 사업장에선 `비정규직 계약해지`를 우려하는 답변이 54.1%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27.9%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반면 긍정적 영향으로는 `정규직 전환 등 고용안정`(36.1%),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 및 정규직과 차별 해소`(33.3%),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 전환`(30.6%)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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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사협상 또다른 뇌관들 (매경, 기획취재팀, 2009.01.21 17:55:44)
노조전임자 임금 폐지ㆍ복수노조 허용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 ① 코앞에 닥친 실직대란◆

 
`한 해 사용자가 부담하는 노조 전임자 급여만 3400억원.`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는 조합원 4만명 중 247명이 노조 전임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평균 연봉 5300만원을 받는다. 현대차 지부는 단체협상을 통해 공식적인 전임자는 90명으로 정했지만 교육, 영상물 제작 등 파견지원 형태로 247명이 노조 활동을 하면서 월급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전임자는 근로 계약상 노무를 면제받고, 노동조합 일만 하는 직원이다. 파업을 하더라도 고정적으로 시간외수당을 지급받고, 노조 전임기간 중에는 노동법에 따라 해고되지 않는다. 노사정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기준 우리나라 노조 전임자 수는 약 1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340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법대로라면 노조 전임자에 대한 이 같은 임금 지급은 내년 1월 1일부터 불법이 된다. 1997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노조법에는 `사용자의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다`고 명문화돼 있다. 다만 노사 충돌을 염려해 시행 시기가 2009년 말까지 유예됐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조 재정자립도가 극도로 취약해 소기업 노조는 존립 자체를 위협받기 때문에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국제노동기구(ILO)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입법적 관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관련 법 조항을 폐지할 것을 권고했는데 이 조항을 존치하겠다는 것은 국제노동 기준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반면 사용자 측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 현행 법을 조기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 전임자 월급은 노동조합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복수노조 허용 문제도 올해 노사의 뇌관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97년 제정된 노조법은 복수노조 허용을 명시했으나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마찬가지로 시행시기가 2010년 1월 1일부터다. 사용자 측과 노동계 모두 복수노조 허용에는 일단 찬성하고 있다. 회사와의 교섭창구 단일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 사용자 측은 지지하는 반면 노동계는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두 사안은 노사 간 견해 차가 너무 큰 데다 경기 침체, 구조조정, 고용 불안 등과 맞물려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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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기간 연장은 미봉책…노동시장 유연해져야 (매경, 기획취재팀, 2009.01.21 17:55:44)
기업 38% "정부 방침대로 3~4년으로 연장
"노동계 "정규직 전환 거부 꼼수" 강력반발
◆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 ① 코앞에 닥친 실직대란 ◆


 
국내 시중은행인 A은행은 지난해 12월 29일부로 비정규직 근로자 457명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은행 측에서 청원경찰 자리를 알선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일부만 해당된다. 해고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 윤 모씨는 "믿고 일해 온 회사에 배신감만 들 뿐"이라며 "노조도 정규직 챙기기에 바빠 비정규직 해고에 대해서는 힘을 써 주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윤씨는 함께 해고 통보를 받은 동료들에게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고 회사를 상대로 싸우자"고 말했지만 대부분 청원경찰 일자리라도 잡아 보겠다고 하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해고하기 쉬운 비정규직이 1차 정리 대상이 되고 있다. 오는 7월 비정규직법이 정한 기간제 근로자 사용시한 2년을 앞두고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은 100만명이 넘는다.
 
매일경제신문과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절반 이상은 기간제 근로자 사용시한 2년이 끝나는 오는 7월 `비정규직 근로자 4명 중 3명 이상을 해고하겠다`고 답했다.
 
해고 이유와 관련해 경기 침체는 그다지 큰 이유가 아니었다. 응답자 10명 중 6명 이상이 `비정규직이 하는 일이 단순ㆍ보조 업무거나 일시적인 업무여서`(63.9%)라고 답했다. `회사가 어려워서`라는 의견은 17.8%에 불과했다.
 
현행 2년으로 돼 있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제한에 대해서는 `사용기간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34.3%로 가장 많았다. 해고와 고용에 대한 유연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 방침대로 `3년 또는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38.3%에 달했다. 노동계 주장인 `현행 2년보다 단축해야 한다`는 응답은 2.7%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해고해도 아쉬울 게 없다는 태도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다수가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비정규직 해고 대란은 이미 소리 없이 시작되고 있다"며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면 차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길거리로 내몰리지 않게 하기 위해선 기간 연장이 차선책이란 얘기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2년 후 해고되든 4년 후 해고되든 달라지는 건 없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기업에 대해 인센티브 부여, 세제 지원 등으로 고용을 안정시키는 게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노동부는 이르면 다음달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합의가 시급하지만 노ㆍ정 간 견해 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정규직화를 거부하는 꼼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2년 후 해고되든 4년 후 해고되든 달라지는 건 없다"며 "정부가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고착시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그러나 고용기간이 4년 정도로 연장되면 기업은 물론 근로자 선택폭이 넓어지면서 고용시장이 보다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화진 노동부 차별개선과장은 "기간제를 2년으로 짧게 제한하다 보니 기업으로서는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 전환이나 해고라는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이라며 "근무기간이 늘어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정규직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는 기존 고용 관행을 바꾸는 등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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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비정규직 갈등도 경영에 장애 (매경, 특별취재팀, 2009.01.22 17:55:43)
"억울하면 다시 시험 쳐 정규직으로 들어와라", 용역ㆍ파견직 구내식당 밥값까지 차별
무기계약직 돼도 임금ㆍ승진체계 달라, 불황에 노조간부ㆍ노조원 갈등도 커져
◆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② ◆

 
서울메트로 차량기지에서 일하는 용역직원 A씨는 요즘 밥값이 부담이 돼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다. 작년만 해도 1500원 하던 밥값이 올해 2500원으로 66%나 올랐다. 그런데 A씨가 화가 나는 건 정규직 직원은 작년과 똑같이 계속 1500원을 내고 식사를 한다는 점이다. A씨 같은 용역직과 파견직만 밥값이 올랐다. A씨는 "용역직인 것도 서러운데 외부인 취급을 하면서 우리만 인상된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며 "먹는 것 가지고 차별하는 게 제일 서러운데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 용역직원은 엄연한 외부인
= 서울메트로 5개 차량기지 가운데 일부에서는 올해부터 구내식당 식대를 15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리면서 용역ㆍ파견직에게만 인상한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용역ㆍ파견직에게만 색깔이 다른 식권을 구입하도록 강요하는 차별이 논란이 됐지만 식대를 차별하지는 않았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야근이 많은 용역직원은 하루 세 끼 모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사례가 많다. 한 끼 식사에 1000원을 더 내야 하는 것은 한 달 100만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는 용역직원 처지에서는 여간 부담되는 액수가 아니다.
 
차량기지 용역직원 가운데 상당수는 회사가 구조조정 차원에서 일부 부서를 통째로 외주화하면서 하루아침에 정규직 직원에서 용역직원이 됐다. A씨는 "정규직 노조가 이에 동조한 점에 대해 섭섭함과 서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어제의 동료`였던 용역직원을 `외부인` 취급하면서 일반 민원인과 똑같은 식사비를 내게 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회사 측은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회사 관계자는 "용역ㆍ파견직은 엄연한 `외부인`으로 인상된 식비를 적용하는 것은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다른 차량기지에서는 구내 목욕탕을 정규직만 이용하게 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곳 인터넷 게시판에는 한 정규직 직원이 "용역직원은 험한 꼴 당하기 전에 목욕탕 이용을 자제하라. 억울하면 정식 안건으로 올려 운영위원회에서 통과시켜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 정규직 전환 대신 무기계약직 편법
= 은행 비정규직이던 B씨는 2006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정규직이 되면 많은 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말이 정규직이지 실상은 무기계약직이었다. 기간을 정하지 않은 근로자란 뜻의 무기계약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모범사례로 꼽히지만 엄밀히 말해 정규직은 아니다. 정규직과 직군이 다르고, 임금ㆍ승진 체계도 다르다. 이런 이유로 서울메트로 등 일부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 직원이 무기계약직 전환에 응하지 않고 있다. B씨는 "기간이 안 정해져 있을 뿐 평생 정규직 밑에서 일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며 "술자리에서 `억울하면 다시 시험 쳐서 정규직으로 들어와라`고 말하는 정규직을 보면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금융회사 노조 사무국장 출신 C씨는 "유럽처럼 차별이 전혀 없는 완전 정규직이 아니라 `무기계약직`이라는 새로운 고용 형태를 만들어 오히려 비정규직 신분을 고착시키고 있다"며 "이는 일종의 정규직 전환 회피 모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시장 유연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해 임금과 승진 등에서 정규직과 똑같이 하라는 것은 기업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무기계약직 형태 고용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차선책"이라고 강조했다.
 
◆ "경제 어려운데…" 노노갈등 심화
= 노노(勞勞) 갈등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갈등만 있는 게 아니다. 정규직 근로자 간 갈등도 심각하다. 지난 1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는 직원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이어졌다. "투쟁을 위해 파업하자"는 강경론과 "경제가 어려운데 파업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신중론이 맞서면서 공장은 종일 뒤숭숭했다. 노조 집행부의 파업 결의를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결의한 표면적인 이유는 노사가 지난해 합의한 `주간 연속 2교대 근무`를 회사 측이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장 근로자 다수가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100여 명의 노조 간부와 대의원은 집행부의 일방적인 파업 움직임에 이의를 제기하며 대의원대회 참석을 거부하는 등 노노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울산공장 9개 생산라인별 노조 대표들은 "투쟁만 할 게 아니라 현재 정세를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이들 대표는 집행부의 독단적인 파업 추진에 염려를 표시하면서 "조합원이 공감하지 못하면 지난해처럼 혼란이 거듭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 때도 사상 초유의 노노갈등으로 임금협상이 무산되기도 했고, 성과가 없다고 지부장이 사퇴 압박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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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二重苦…실직에 떨고 차별에 울고 (매경, 특별취재팀, 2009.01.22 17:55:43)
◆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② ◆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용불안과 더불어 정규직 근로자들의 차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최근 경기불황이 깊어지면서 이 같은 노노 갈등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기불황으로 정규직마저 고용이 불안하다 보니 구조조정이 손쉬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근로시간, 배치, 해고 등이 용이하지 않은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면서 "요즘처럼 경제사정이 나빠지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더욱 커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경직된 정규직 보호규정이 기업들의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것은 물론 이들의 고용 안정성마저 크게 해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한국은 세계은행의 고용 유연성 조사에서 181개국 중 152위로 최하위권이다. 반면 비정규직 비율은 33.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업들은 △채용ㆍ해고 등 고용문제 △경기상황에 따른 임금조정 △근로시간 변경 등 근로조건과 관련해 노조와의 단체협상 혹은 취업규정 등 절차적인 규제를 받고 있으나 실제 사업장의 단협 상황을 보면 법규 허용 범위를 넘어 정해지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런 것들이 기업들의 탄력성을 저해한다"고 말했다.
 
유경준 KDI 선임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보호 문제는 정규직의 과보호와 분리해 논의할 수 없다"면서 "특히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는 정규직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규직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는 기존 고용 관행이 계속되는 한 비정규직 보호는 요원할 수밖에 없고,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근로조건이 더욱 열악한 용역 등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유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유연성과 근로자의 안정성을 가능한 한 조화시키기 위해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 규정은 개혁돼야 한다"면서 "국가는 고용보험 편입을 책임지는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근로자 역시 직업훈련을 통한 지속적인 자기계발과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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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하는 `줄다리기` 임금협상 2년에 한번만" (매경, 기획취재팀, 2009.01.28 16:57:22)
단체협약 기회비용 한 해 1천억원 달해…미국 4~5년ㆍ독일 5년 주기 유연한 협상
◆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 ③ 소모적인 노사관계 ◆

 
연매출 4000억원 규모 스테인리스 후판 완제품 납품업체 DKC. 창사 이래 지금까지 적자를 낸 적이 없을 정도로 건실하게 운영되던 회사였다. 임금을 삭감하거나 근로자를 정리해고한 적도 없다. 근로자 평균 연봉이 5500만원에 이를 정도로 중소기업치곤 처우도 비교적 좋다. 그러나 DKC는 지난해 10월 31일부터 70일 넘게 파업이 이어지면서 노사 모두 지쳐가고 있다. 폭력과 비방이 난무하면서 노사 모두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고 있다.
 
DKC는 두산중공업이 중동에서 추진하는 8조원 규모 해수담수화 설비에 들어갈 스테인리스 후판을 납품하도록 돼 있다. 여러 블록을 이어 담수화 설비를 만들어야 하는데 DKC에서 납품해야 할 부분만 채우지 못해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한 중소기업의 소모적 노사갈등이 대형 국외 프로젝트의 대외 신인도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DKC의 극단적인 노사 대립은 사측이 금속노조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고 중앙교섭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회사 관계자는 "한 해 6~9개월을 끄는 소모전이 매년 반복됐다"며 "이중ㆍ삼중 교섭 구조로 인해 교섭비용이 너무 커졌다"고 말했다.
 
장기 소모전으로 근로자 사이에도 앙금이 생겼다. 노조원 89명 가운데 22명은 조업 복귀를 결정했지만 파업을 계속하려는 노조원이 이를 제지하면서 폭력 사태까지 빚어졌다. 회사 관계자는 "고용과 임금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이런 갈등을 겪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노사 분쟁이 외국에 비해 잦은 원인으로 임금ㆍ단체협상 주기가 너무 짧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경직된 단체협약은 글로벌 경제위기 같은 환경 변화에 노사 대응력을 감퇴시키고 오히려 정리해고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단체협약 유연화 과제`라는 논문에서 "국내 단체협약 체결에 투입되는 인원의 생산성 손실 기회비용이 한 해 1000억원에 이른다"며 "특히 임금협상은 매년, 단체협약은 2년에 한 번씩 협상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든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단체교섭 빈도는 평균 9.5회로 일본 6.8회에 비해 2.7회나 많고, 회당 교섭시간도 평균 2시간44분으로 일본의 1시간34분보다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쟁의 발생시 근로자 1000명당 노동손실일수를 의미하는 파업성향도 한국은 89일이나 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2일보다 2배 이상 길었다. 그만큼 노사 간 단체교섭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노사관계가 불안하다는 얘기다.
 
현행 노동조합 관련법에 따르면 `단체협약은 2년을 초과하는 유효기간을 정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노사는 관행적으로 임금협상은 매년, 단체협상은 2년을 주기로 진행하고 있다. 대립적인 노사 관계로 인해 임금협상 때만 되면 노사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교섭비용 증가 등 경제적 손실 또한 만만치 않다.
 
미국과 독일은 법으로 교섭주기를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유연성 있게 그때그때 경제상황에 맞게 대처하라는 취지다. 미국은 관행적으로 4~5년마다, 독일도 임협은 2년, 단협은 5년 주기로 교섭하는 기업이 많다. 프랑스는 5년, 일본은 3년으로 정해져 있는 것만 비교해도 한국이 얼마나 소모적인지를 알 수 있다.
 
남용우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외국은 단협을 3~5년마다 하는 대신 생산성과 연계하고, 유효기간이 길어져 발생하는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부속조항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는 임금협상을 2년 주기로 하면 불필요한 교섭 비용을 줄여 합리적인 노사교섭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각 사업장 자율에 따라 교섭주기를 연장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기로 했다. 정종수 노동부 차관은 "그동안 매년 관행적으로 임금협상을 실시해 왔지만 물가상승률이 최근 수년간 안정세를 보이는 등 연례 교섭에 필요한 요인이 많이 줄었다"며 "현행 1년으로 돼 있는 노사 간 임금협상 주기를 2년으로 연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김홍렬 코오롱노조위원장, 민노총 탈퇴ㆍ상근노조원 줄이니 회사도 매달 경영설명회로 화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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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천명 임금 동결하면 30명 고용 가능 (매경, 기획취재팀, 2009.01.29 16:53:59)
고용 유지땐 호황 전환시 발빠른 대처 쉬워
일본 勞使도 "정리해고 피하자" 공동 선언
◆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 / ④ 임금ㆍ고용 하나씩 양보 ◆
 
 

`나눔의 미학`이 발휘하는 위력을 확인할 때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업마다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지만 한편으로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자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일자리 나누기는 노동시간 단축이나 업무 전환 배치, 임금 동결ㆍ삭감 대신 해고 자제ㆍ고용 유지, 임금피크제 도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직원 1000명인 대기업이 임금을 동결하면 30여 명이 직접 고용되는 효과가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를 나누면 가계 소득이 유지돼 가계 부실을 막고, 소비가 진작돼 내수를 살리는 효과가 있다"며 "일자리 나누기가 경제위기 극복과 고용 안정을 위한 대안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해고 대신 고용 유지를 선택하는 것은 인력 감축이 장기적인 생산성 향상에 유리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외환위기 이후 `학습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불황 때 대거 감원을 한 경우 추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 새 직원을 뽑아 숙련시키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고용을 유지해 숙련 근로자를 확보하면 훨씬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 현실적으로 임금 축소가 불가피하지만 노조는 기존 강성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며 "노조는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 노사정 대타협은 `반쪽`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먼저 민주노총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사정 각 주체가 스스로의 입장에 매몰돼 대립과 갈등을 확대하는 것은 국민 생존과 실업문제 해소를 외면하는 일"이라며 "민주노총도 참여해 일자리 문제를 여과 없이 함께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경영자 단체와 노동자 단체가 대화를 통해 일자리 나누기에 본격 착수했다. 재계단체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조합총연합(렌고)은 지난 15일 `고용안정을 위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일본 노사가 공동선언을 한 것은 2001년 10월 이후 7년여 만으로 글로벌 경기 악화에 따른 일본 기업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서다.
 
게이단렌이 먼저 제안하고 렌고가 받아들인 공동선언은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기업이 고용을 유지할 경우 정부가 고용기금에서 임금 일부를 보전하도록 건의하는 한편 기업은 근로시간을 단축해 근로자들이 서로 일자리를 나눠 고용을 확보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에서 노사정 대화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본 노동계와 재계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과 잡셰어링에서 한발 앞서 가고 있다는 얘기다.
 
박준성 성신여대 교수는 "노조는 고용과 임금을 모두 보장받으려 하거나 기업은 고용과 임금을 모두 유연화하려 해서는 안 된다"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사가 서로 하나씩 양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 대책
`잡셰어링` 기업 임금 삭감액 50% 손비처리
 
 

=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에 `올인`을 선언했다. 최근 주요 경제연구소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데다 지난해 12월 취업자 수가 1만2000명이나 감소하는 등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당분간 일자리가 늘어나기는 힘들다고 보고 고용안정을 위해 노사 양보교섭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확산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29일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나누기 활성화 대책`을 보면 잡셰어링(Job Sharing)을 하는 기업에 대해 세제 혜택은 물론 정책자금 금리 우대, 연구개발(R&D) 지원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담고 있다.
 
우선 노사 합의를 통해 임금을 삭감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실천한 기업에 대해 2년간 한시적으로 임금삭감액의 50%가량을 세법상 손비처리해 주는 방안을 도입한 게 눈에 띈다. 또 노사 합의 이후 도산이나 해고시 실업급여액과 퇴직금 산정 기준을 임금삭감 이전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감원 대신 휴업, 훈련 등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제공되는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수준도 중소기업은 기존 임금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으로, 대기업은 임금의 2분의 1에서 3분의 2로 상향 조정된다. 이와 함께 일자리 나누기 참여 기업은 △중소기업 기술개발지원사업 참여시 가점 △수출기업화사업 등 선정ㆍ평가시 우대 △해외기술인력도입사업 참여시 가점 부여 △중소기업 쿠폰제 컨설팅 참여 기업 선정시 우대 △정책자금 지원시 금리 우대 등 다양한 경영ㆍ금융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또 사업주와 근로자가 합의로 1개 일자리를 2인 이상 근로자로 나눠 채용하는 `파트타임 근로제` 도입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신규로 파트타임 근로자를 고용할 경우 교육훈련비 등 간접노동비용 일부를 노동부가 지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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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정규직 과보호` 해소가 관건 (매경, 기획취재팀, 2009.02.01 17:44:46)
경직된 노동시장이 `고용없는 성장` 발단…해고근로자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 노사 고통분담 경제위기 넘자⑤ / 노동시장 유연해져야 ◆

 
"우리나라 근로자 보호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중간쯤 된다. 정규직 보호는 1등이고 비정규직 보호는 꼴찌니까 평균 내면 중간이란 얘기다. 정규직 보호를 축소하고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해야 사회 양극화를 줄일 수 있다."(김동원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
 
"노동시장 유연성은 기업이 근로자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과 근로시간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에만 유리하고 근로자에게는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덴마크 등 선진국에서는 `노동시장 유연성=직업 안정성`을 의미한다."(오학수 일본노동정책연구원 박사)
 
세계은행은 지난해 한국 고용 분야 경쟁력을 181개 국가 중 152위로 평가했다. 해고를 근로자에게 사전에 통지해야 하는 기간과 퇴직금 등 해고할 때 기업이 져야 하는 부담을 임금으로 환산한 결과 한국은 근로자 1명을 해고할 때 91주치 임금을 줘야 한다. OECD 평균 25.7주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전재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유연성 악화는 고용 흡수력을 크게 하락시켜 `고용 없는 성장`을 초래하는 발단이 될 수도 있다"며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여 고용 창출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시간 경직성, 해고 곤란도, 해고 비용 등 노동시장 경직성과 관련된 문제만 해결해도 2007년 기준 178개 나라 중 131위에 불과한 우리나라 인력고용 부문 경쟁력이 17위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정규직을 뽑으면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기업은 정규직보다 인력 운용이 자유로운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우리나라 청년실업이 늘고 열악한 비정규직 근로조건 문제가 대두되는 것도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정규직이 누리는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는 이상 해결하기 힘들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용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현재 과보호되고 있는 정규직에 대한 고용 유연성을 꾸준히 높이는 게 비정규직보호법을 둘러싼 노동시장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퇴출이 쉬워야 진입이 쉽고, 해고도 유연해야 고용이 늘어난다"며 "법 개정을 통해 고용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기업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해고 요건을 완화하면 대규모 해고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 고용 불안만 심화시킬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화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확충돼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해고 요건 완화만 주장할 게 아니라 근로자 재취업 가능성을 높이고 사각지대 없는 사회안전망 확충에도 힘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대학원장은 "유연성과 안정성 사이에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정보체계와 정책전달체계에 효율성을 확보하고 취약계층 보호를 확대해 근로자 생활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재식 연구위원은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에게 교육ㆍ훈련이나 능력 개발 기회를 부여하고 적절한 기본적 생활보호를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이 마련돼야 한다"며 "이는 정부가 반드시 신속하게 담당해 줘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사회안전망 제도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도 요구된다. 실업급여만 해도 부정 수령 등 문제점이 불거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김희성 강원대 교수는 "금융권 명예퇴직자는 거액의 명예퇴직금을 받아도 1억원만 넘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다시 수령할 수 있는 등 문제점이 있는 반면 5인 미만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실업급여를 꼭 수령해야 하지만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추가적인 제도를 만들기보다 기존 실업급여 제도 운영에 효율성과 적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덴마크 `플렉시큐리티`로 비정규직 비율 9% 불과
= 덴마크는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사회보장(Security)을 혼합한 개념인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를 성공시킨 대표적인 국가다.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인력을 자유롭게 채용ㆍ해고할 수 있고,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더라도 전과 다름없는 생활수준을 유지한다.
 
덴마크는 성별ㆍ종교ㆍ인종ㆍ임신 등의 사유 때문이 아니라면 인력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굳이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는 덴마크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9%대에 불과한 것을 보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마크 근로자들의 이동 비율은 상당히 높다. 덴마크 전체 경제활동인구 270만명 가운데 80만명이 해마다 직장을 옮겨다니고 매년 30만개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사라진다.
 
노동시장의 이 같은 유연성은 높은 사회보장제도가 뒷받침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기업에서 해고돼도 퇴직 전과 동일한 수준의 실업급여를 최장 4년까지 받을 수 있다. 일반 근로자는 퇴직 전 소득의 63~78%까지, 저소득층은 최대 96%까지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다만 무분별한 실업자 양산을 막기 위해 실직 기간에는 반드시 직업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네덜란드도 1999년 일명 `플렉시큐리티법`으로 불리는 `고용 유연성과 안정성 법`을 시행해 노동시장 경직성을 크게 완화했다. 사실 네덜란드는 기업이 정부 승인 후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해고승인제도` 때문에 유럽에서 해고가 가장 어려운 나라였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1995년 말 `유연성과 안정성`에 관한 각서를 발표하고 근로자들이 누렸던 해고 보호조치를 전격 완화했다. 고용주의 해고 예고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1개월로 줄였고 기업들이 고용안정기관에서 해고 통지를 받는 데 필요한 절차를 간소화했다.
 
대신 근로자 측 안정성 보장을 위해 3개월에 걸쳐 주당 최소 20시간 일하면 법적으로 고용계약이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파견 근로자는 1시간만 근무해도 최소 3시간 일한 만큼의 임금을 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