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지역에서 변혁을

"서울공화국 '강부자'에게 전쟁을 선포하라" (프레시안, 정희준 교수, 2008-11-25)

새벽길 2009. 1. 11. 22:48

 공감이 가면서도 지방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될 수 있을지, 하나되는 게 타당한지가 의심스러워 뭔가 찝찝함이 남아 있는 정희준 교수의 글. 하긴 진보, 좌파세력임을 자임하는 이들도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사고하고 활동하는 것을 보면 꼭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부터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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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화국 '강부자'에게 전쟁을 선포하라" (프레시안,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2008-11-25 오전 10:26:17)
[정희준의 '어퍼컷'] 지역인들에게 고(告)함
 
자식 중에서도 가장 골치 아픈 자식이 이런 자식 아닌가 싶다. 장남이라는 자식이 힘빠진 부모를 졸라 받아낸 사업 자금을 다 날려 버리고는 또 다시 찾아와 이번엔 동생들 몫까지 뜯어가려고 한다. 내가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 이번엔 정말 된다, 내가 잘 돼야 집안이 잘 되는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결국 '내가 제사 모시지 않느냐'는 협박 아닌 협박으로 부모를 못 살게 굴고 '나중에 잘 되면 다 돌려준다'며 동생들을 윽박질러 형제들 몫까지 가져가 버린다.
 
지금 서울이 하는 짓이 딱 이런 거다. 과거 우리는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우리 민족이 일어서는 길이라 여기고 서울을 부잣집 맏아들 부럽지 않게 키워줬다. 우리는 '국가 발전'을 믿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다,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다 해서 미스유니버스대회, IPU총회, IMF총회를 뒷바라지 했다. 온국민이 헐떡이는데 또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 해서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젖 먹던 힘까지 보태 치러냈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에는 '서울공화국,' '강남공화국'이라는 공룡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무능한 서울, 집에 와서 '동생'만 괴롭히나
그렇다면 '국가 발전'을 위해 우리 지방인들이 양보 하며 키워준 서울은 그래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도시가 됐는가. 몇 년 전 학회 참석차 독일에 갈 기회가 있었다. 심심한 호텔방에서 CNN의 일기예보까지 꽤 '집중'해서 보게 되었는데 문득 나의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세계 각국 도시의 일기예보가 줄줄이 화면 위로 올라가는데, 거기에 서울은 없었다. 우리가 한 수, 두 수 아래로 여기고 코웃음 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도시도 한둘씩 올라가는데 '세계적'이라 믿어왔던 우리의 서울은 없었다.
  
또 그렇다면 수도권이 30년 넘게 독식하며 잘 살게 되니 지방도 덩달아 잘 살게 됐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1960년대 20%에 불과하던 수도권 인구 집중이 지금 50%에 다다르게 됐는데 부의 집중은 완전 수도권의 싹쓸이다. 수도권은 경제, 사회, 정치, 문화의 90%를 독식할 뿐 아니라 일자리도 독식한다. 2000년 이후 지방에서 새로 창출된 일자리는 40만에 불과한데 같은 기간 수도권에서는 1181만 명의 취업자가 늘었다고 한다. 내가 사는 부산은 오히려 3만 명 줄어들었다.
 
IMF 때도 끄떡없던 석유산업의 메카 여수가 공장 가동 중단과 감산에 들어가 불꺼진 도시가 되고 있고 한때 국내 최고 부자 도시라던 구미도 공장가동률이 78.9%로 떨어졌다. 부산의 제조·도소매 부도업체는 지난 9월 15개 기업에서 지난달 40개 기업으로 급증했다. 이렇다 보니 지방의 자영업도 문을 닫고 있다. 한국음식업 광주지회 1만3500여 개의 회원업소 가운데 올 들어 지난달까지 3500곳이 휴·폐업했다.
  
수도권 집중 30년 동안 수도권은 양적으로도 성장했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환상적인 성장을 했다. 종부세 대상자의 94%가 수도권에 모여살고 있다. 그러면 정부는 이제 지방을 먹여 살릴 생각을 하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지방의 어려움에 대해선 '쌩 까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지방이 가진 것마저 뺏어가려 하고 있다. 국가도, 정부도 다 서울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먹고 살기 힘들면 이제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지방을 또 희생시키려 하고 있다.
 
이제까지 우리 지방이 서울을 형님, 오빠 대접하며 참고 살았지만 이젠 '서울 형님'과 선을 그어야 할 때가 됐다. '세계적'이 되겠다며 집안 돈을 쓸어 가더니 세계엔 명함도 못 내밀고 다시 집으로 와 동생들 것 뺏어서 자기 곳간만 채우는 이 못나고 무능한 장남에게 더 이상 뺏길 수는 없다. 이젠 몽둥이라도 들고 우리 집 대문을 지켜야 한다.
 
수도권 여론 주도층 달래려 지방 희생시키는 2MB
현 정부는 위기에 몰리자 서울과 수도권 거주 여론 주도층을 달래기 위해 지방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고 있다. 지방에서 퍼다가 이들에게 안겨 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재벌, 감세, 교육 관련 '부자 정책'들은 사실상 서울 내지는 수도권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다. 재벌이 서울에 살고 있고 종부세 대상자의 94%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수도권 규제 완화를 '중앙 대 지방'의 이분법적 대결구도로 보지 말라고 그런다. 국가발전을 생각하라고 그런다. 이는 철저하게 '장남의 시각'이고 '가해자의 시각'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어떤 이들은 국가란 지배계급의 지배와 권력의 영속화를 위한 도구라고 했다. 국가를 보다 긍정적으로 본 학자도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는 비록 국가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지만 부자와 빈자의 수입을 합리적으로 재분배하고 공익과 공공서비스분야의 기능과 과정을 통제할 수단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아무리 들여다봐도 전자에 가깝다. '강부자 정권,' '1% 정부'를 향해 어린 아이 개한테 쫓기듯 발바닥 땀나게 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강부자'와 '1%'는 누구인가. 강부자는 강남사람이요 1%는 서울 사람들이다.
 
'국가발전'의 가증스러움
우리는 '인식' 하면서 '오인'한다. 알고는 있는데 잘 못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이러한 착각에 해당한다. 우리는 재벌이 우리를 먹고 살게 해준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IMF 이후 이들은 오히려 떼돈을 벌었다. 지난해 10대 재벌의 현금성 자산은 33조5000억으로 전년보다 21%나 늘었다. 그러나 이들은 해외 투자, 인수합병에만 골몰할 뿐 국내 투자나 고용에서는 눈을 돌려 버린다.
 
또 다른 대표적 착각은 우리가 뽑은 일꾼들이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선거 기간 한 달 동안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열심히 허리운동, 팔운동을 한다. 우리들의 '머슴'이 되겠다면서. 그런데 정작 서울 보내놓으면 나머지 4년11개월간 지역엔 군림하면서 서울서는 '딴짓'을 한다. 최근 부산에 지역구를 둔 4선 김무성 의원은 공개적으로 부산시 관계자들에게 면박을 주면서 "수도권 규제완화에 찬성한다"고 했다. 지역에 와서 그런 소리를 할 정도면 우리는 결국 '서울공화국'의 '충복' 정도가 아니라 '주구'를 뽑아 놓은 꼴이다.
  
21세기 들어 우리 지역인들이 꿈에서라도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국가 발전에 대한 환상이다. '국가 발전'이란 수사는 언제 등장하는가. 국가가 국민을 닦달할 때, 서민과 중산층에게 고통분담을 권할 때 주로 등장한다. 최근엔 감옥행의 위기에 처한 재벌총수들이 읍소할 때 '국가 발전에 기여' 운운하며 돌아가며 잘도 써먹는다. 그런데 최근 '국가발전'의 새로운 용도가 나타났다. 바로 지역에 희생을 강요할 때, 즉 국토균형발전을 폐기하고 수도권규제완화를 밀어붙일 때 국가발전을 앞세우는 것이다.
 
중앙의 정부와 재벌, 그리고 여기에 (우리 지방인들이 뽑은!) 국회의원들까지 합세해 '지방죽이기'에 나섰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목적으로 한다면 상식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균형발전이 정답일 터이다. 그러나 정부, 재벌, 정치인이 형성한 삼각동맹은 수도권에 집중투자하면 그 이익이 지방에까지 흘러내려간다는 이른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를 강변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지방은 일단 희생하고 수도권 잘 되면 떡고물 나눠주겠다는 얘기다. 그럼 우리는 기도나 하고 있으란 말인가.
 
국가 발전은 속임수다. 저들이 이야기 하는 국가란 영토적 개념에 근거한 '대한민국'이 아니다. '국가란 지배계급의 지배와 권력의 영속화를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작금의 상황에 여지없이 들어맞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부자프렌들리'한 세재개편을 폭탄처럼 투하하고 1%의 계급재생산을 위한 국제중 설립과 사교육을 조장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 지방까지 자신의 번영을 위한 제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국가 발전'을 떠들고 '상생'을 주장하는 사람들, 다 서울 사람 아니면 서울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이다. 상생, 웃기고 계신다. 제로섬 게임만 남았을 뿐이다. 한국사회 '중앙 대 지방'의 문제는 그래서 계급의 문제로 환원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국가가 조장하는 지역의 계급화
특권층 보호라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수도권 우선 정책의 결정타가 바로 종합부동산세 폐지다. 종부세는 노무현 정부가 지역간 격차가 '지역의 계급화'로 악화된다는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헌법만큼 고치기 어렵게 만든 정책이었다. 그러나 '국가기관' 헌재의 결정 '한방'으로 인해 종부세 대상자의 94%를 차지하는 수도권거주자들이 만세를 부르고 지방은 초상집이 됐다. 부실펀드에 눈물짓는 개미투자자들이 산더미 같은 이때 이들 수도권 특권층은 원금에 이자까지 받는 최고의 금융상품을 선물 받은 꼴이고 지방은 당장 내년 1조5000억, 부산만 1230억원이 날아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 손실은 이제 지역의 서민, 중산층이 메워야 할 판이다.
 
중추 국가기관임에도 불구하고 특권층의 사수대로 전락한 헌재의 '불륜'은 사실 이게 처음이 아니다. 2004년 역시 노무현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추진했던 신행정수도건설 특별법도 결국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주저앉았다. 이전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관습헌법'이라는 법리를 끄집어 내 국가균형발전의 싹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역시 서울은 정권보다 세다.
 
'부자프렌들리'정책의 본질은 '서울프렌들리'
종부세 무력화의 과정도 들여다보면 참으로 고약하다. 강만수 장관이 야인 시절 종부세 때문에 고생했던 '개인적 경험'으로 인해 발동이 걸리더니 결국 9명 중 8명이 종부세 대상자인 헌법재판관들에 의해 '시체'가 됐고 또 그 최대 수혜자는 바로 현 정부의 실세들로 고위공직자 105명 가운데 무려 75명이 그 혜택을 받는단다. 서울 특권층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정책이 추진되고 이를 특권층이 결정하며 그 혜택은 수도권 특권층이 받게 되는데 정작 그 뒷감당은 지방이 해야 하는 빛나는 입법사례다.
  
강준만 교수의 최근 저서 '지방은 식민지다'의 제목이 좀 과장됐다고 생각하는 분들, 이제 다시 생각하시라. 신자유주의시대, 상생은 없다. 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