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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을 건설사를 왜 국민 세금으로 살려야 하나 / 6만개 건설사를 다 살리는 방법은 없다

새벽길 2008. 11. 19. 09:12

2008/10/18 21:14
소위 말하는 시장원리에 충실한 경제학자들은 건설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까. 이런 건설사들이 망하면 지역경제가 무너진다고 아우성이겠지. 사실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황 아닌가. 
 
현 정부의 건설업 지원 대책, 부동산 대책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의 글을 담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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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을 건설사를 왜 국민 세금으로 살려야 하나 (미디어오늘, 2008년 10월 17일 (금) 09:00:33 이정환 기자)
[경제뉴스 톺아읽기] 정부 건설업 지원 대책 실효성 의문… 새우깡 안 팔리면 새우깡 다 사주려나 
 
건설회사 최고경영자 출신 대통령은 역시 다르다. 정부가 건설업계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어디 어려운 데가 건설업 뿐일까. 과연 건설업이 무너지면 경제 전반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것일까. 만약 건설업을 지원한다면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정부는 5조 원에 이르는 건설업 종합지원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미분양 아파트를 환매 조건부로 매입하는 방안, 부동산 펀드를 조성하고 공공택지를 매수하는 방안, 담보 대출과 자산 유동화 증권 발행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한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2조6천억 원 규모의 기업 어음에 대해 만기 연장을 유도하기로 했다.
 
물론 미분양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은 맞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16만595세대로 1993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특히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이 4만562세대나 됐다. 아직 짓기 전에 분양이 안 되는 상태라면 크게 신경 쓸 바 아니지만 다 지은 멀쩡한 아파트가 주인이 안 들어온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업계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미분양 물량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미분양 추이. 국토해양부.
 
일부에서는 12월 대란설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부동산 시장도 결국 수요가 없는데 공급이 한없이 늘어날 수는 없다. 팔리지 않는 아파트를 계속해서 더 짓지는 않을 것이고 미분양 증가 추세도 진정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전체 미분양 물량 가운데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오히려 둔화하는 추세다. 수도권은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인데, 수요자들이 부동산 가격 하락을 예상하고 구매를 꺼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방은 이미 공급 과열이 해소되는 추세고 수도권은 수요가 급격히 둔화하는 국면이다. 실제로 정부가 우려하고 일부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처럼 위기 국면이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안 팔리는 아파트를 왜 정부가 사줘야 하나. 금융권에서 우스갯 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새우깡이 안 팔려서 농심이 부도 위기에 직면하면 정부가 새우깡을 다 사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한국일보는 17일 "외국은 어떤 대책 쓰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집을 짓기 전에 분양을 하기 때문에 미분양이 발생해도 다 지을 때까지 분양가를 내리지 않고 버티면서 정부에 부동산 시장 안정 대책, 미분양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건설업체의 부도를 막기 위한 은행권의 일시적인 채무 만기 연장, 미분양 펀드에 보증업체가 보증을 서도록 유도하는 등 정부의 건설업체 금융지원은 오히려 금융 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경향신문도 16일 "건설업체 도덕적 해이 부추긴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적기 시행도 중요하지만 모럴 해저드의 문제없이 경쟁력 있는 업체를 구제하는 실효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비교적 기업 이해를 대변해 왔던 매일경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 신문은 15일 "건설사 묻지마 지원 모럴 해저드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위기를 빌미로 한 퍼주기식 지원이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정책 오버슈팅에 대한 경계심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다같이 어려운데 건설업에만 천문학적인 정부재정 투입을 압박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견이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한다"고 전했다. 매일경제는 사설에서 "금융권에서도 건설업체의 부실을 덮어두려고만 하지 말고 도태될 업체는 도태되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분양 사태가 금융권은 물론이고 전체 금융시장에 시한폭탄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뇌관을 미리 제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당수 언론이 건설업체의 부실보다는 건설업체의 부실이 금융권으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어 주목된다. 일부 건설업체의 부도가 불가피하지만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이들의 실패를 국민들 세금으로 보전해주거나 한발 더 나가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히려 부실을 키울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 금융위기가 과도한 부동산 거품 때문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언급하지 않더라도 정부의 건설업 지원방안은 부실을 확대재생산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그러나 머니투데이는 16일 "건설업자들의 절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찔끔찔끔 규제를 풀거나 단기적인 금융지원을 해주기 보다 시장 실패를 가져온 각종 규제를 풀고 건설사들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건설사들에 한번 더 기회를 줘 앞으로 그들이 시장에서 페어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해 다른 신문들과 다른 논조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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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추가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설사 구조조정은 행해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현 시기에 좌파적 대안은 아니지만 시장을 통한 부동산 거품 해소라는 처방이 타당한 것 같다.
도덕적 해이, 역선택 등 최근10여년 만에 미시경제학에 들어온 용어들이 거침없이 전방위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면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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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개 건설사를 다 살리는 방법은 없다 (미디어오늘 2008년 10월 21일 (화) 21:26:25 이정환 기자)
"과장된 건설업 위기는 보수 언론과 강부자 정부 합작품"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또 내놓았다. 올해 들어 여섯 번째다. 투기지역을 해제하고 부동산 대출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건설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분양 주택과 토지를 매입하는 등 모두 9조원 상당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대책이다. 정부는 21일 이 같은 내용의 건설부문 유동성 지원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먼저 돌아볼 문제는 과연 정부와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처럼 건설업 위기가 심각한 상태냐는 것이다. 미분양이 사상 최대 규모로 늘어나고 있고 건설사들의 연쇄 부도 위험도 확대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분양가가 시장의 기대보다 높고 일부 지역의 경우 이미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탓이다.
 
부동산 담보 대출 부실 역시 세계적인 금융 불안 영향이 크지만 결국 부동산 거품에 편승해 과도한 부채를 끌어들인 개인과 이를 방조한 금융회사들 책임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투기적 거래를 늘려 부동산 가격 하락을 막고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와 금융 부실을 동시에 해결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윤순철 국장은 "정작 위기의 근본 원인인 건설사들 구조적 부실을 뿌리 뽑는 대책이 없다"면서 "이런 상황이라면 언제든 위기가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도 "개별 기업들 경영 실패를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식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말하는 위기의 근본 해법은 부실한 건설사들을 퇴출시키고 분양가를 강제로 낮추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건설사들 재무구조를 엄격히 규제하고 분양가 상한제를 강화하면 된다. 국민들 혈세를 퍼붓는데 건설사들도 구조조정의 성의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윤순철 국장의 이야기다.
 
최근 인천 청라지구에 참여한 하도급 업체들이 받은 건축비가 280만원 수준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분양가 거품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해도 500만원이 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는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30%만 분양에 성공해도 손해는 안 본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윤 국장은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달리 건설업의 위기는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건설사들 6만개를 모두 안 망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 후분양제와 최저가 입찰제, 직접 시공제 등을 도입하고 분양가를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이 거래를 늘리고 침체된 건설경기를 살리는 유일한 해법이다."
 
입찰만 받아 하도급을 주고 이윤을 챙기는 페이퍼 컴퍼니들도 분양가 거품의 주범이다. 10년 전보다 건설사 수가 3배 가까이 늘어났는데 이들을 먹여 살린 것은 300조원 이상의 부동산 담보 대출을 끌어다 쓰며 투기 열풍에 동참했던 국민들이다. 혹독한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인데 정부의 대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와 언론은 왜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는 시장원리에 맡겨둬야 한다면서 가격이 떨어질 때는 개입을 하고 나서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당장 충격은 피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결국 부실이 터져 나올 것이고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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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건설 활성화 대책] “혈세지원은 건설사 도덕적 해이 조장” (서울, 류찬희 이영표기자, 2008-10-22  3면)
경제 호전되면 집값 급등 ‘부메랑’ 우려
 
정부는 21일 건설 부문 지원책을 발표하면서 주택 수요 위축과 건설부문 자금경색 심화 해소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건설경기 부진과 미분양 적체 해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건설사의 경영 잘못까지 국민의 돈으로 메워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기가 살아날 경우 잠자는 투기세력을 깨워 부동산 거품 확대에 따른 집값 급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부동산 불패´ 정부가 뒷받침해주는 꼴
정부는 위기에 빠진 건설사를 구하기 위해 건설사들의 빚을 탕감해주고 미분양 아파트도 사주고, 땅도 사들이는 등 가능한 모든 카드를 빼들었다. 이를 바라보는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미분양 아파트 등 건설업체가 떠안고 있는 부실은 과도하게 높은 분양가 등 건설업체의 방만 경영이 단초가 됐다는 진단이다.
 
홍종학 경원대 경제학부 교수는 “건설업계가 지나치게 몸집을 불리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것인데 정부가 국민 혈세로 지원하는 것은 건설사에 대한 특혜”라면서 “시장주의를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에도 어긋나는 원칙 없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도 “실물경제 악화를 바로잡아야 하는 측면에서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이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는 분명해 보인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동산 불패 신화를 정부가 나서서 뒷받침해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 확대… 경제 큰 짐 될 것
민간업체의 경영 부실을 정부가 도와주는 지원 방식은 건설사의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기업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주택시장 붕괴 원인은 비싼 분양가와 수요예측을 잘못한 공급확대, 투기 수요에 따른 집값 폭등으로 수요자들이 등을 돌린 탓”이라면서 “‘원죄’(고분양·폭리)를 덮어두고 건설사의 엄살을 들어주는 것은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조치가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의 큰 짐이 될 것이란 목소리가 높다. 박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이 당장 침체된 부동산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면서 “오히려 나중에 대외 여건이 개선되고 우리경제가 호전되면 부동산 거품이 확대되는 등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국소 한 연구원은 “투기세력의 ‘학습효과’를 키울 수 있어 앞으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여력이 크게 축소될 수 있다.”면서 “지금 필요한 부동산 거품 해소의 연착륙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분양 할인매각, 비핵심 자산매각 등 건설사들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지원한다는 보완책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보다 아픈 ‘채찍’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 교수는 “투기적 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한 업체에는 강도 높은 ‘페널티’를 부여해 업계의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기업 보유 토지 매입도 시가보다 충분하게 낮은 가격으로 매입해야 도덕적 해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시장 살아날지도 의문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이 당장 살아날지 의문도 남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경기가 바닥인 데다 실질적인 구매능력이 떨어져 거래 활성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건설업체 지원 방식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된다. 인위적인 지원보다는 근본적인 시장 살리기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다. 아랫목을 데우면 윗목이 따뜻해지고 방안 전체에 온기가 퍼지는 것처럼 개인간 거래를 늘려 청약시장을 살리고 자연스럽게 미분양 아파트 소진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개인간 주택거래 규제는 모두 풀어도 문제가 안 된다.”면서 “건설사 지원에 앞서 일반 거래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는 집을 살 사람이 없다.”면서 “거래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한시적으로라도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확대해야 시장이 살아난다.”고 주장했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해제, 처분조건부대출 연장,1가구2주택 중복보유 허용기간 일시적 확대 등의 조치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구매자의 실질 소득 하락으로 구매욕구와 구매능력이 떨어진 데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분양주택 해소를 위해서는 수요자 지원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송현담 대한주택건설협회 정책본부장은 “소비자들이 집을 사고 싶어도 대출금 이자를 감내하지 못해 달려들지 않고 있다.”며 금리인하를 주장했다. 회사채 유동화 대책도 중견 건설업체에는 그림의 떡이다. 중견 건설업체 회사채는 수요가 많지 않고 발행도 적어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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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건설 구조조정’ 난맥 (한겨레, 안선희 김경락 기자, 2008-11-18 오후 07:00:36)
금융·실물 동반부실 우려
자구책 요구 없이 지원책만…은행·건설사 갈팡질팡

 
정부가 건설사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고 은행들에는 건설사 지원을 압박하고 있지만, 정작 건설사 구조조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자구 노력 요구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실물경제와 금융권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18일 은행연합회는 건설사 관계자 300여명을 대상으로 은행·증권사 등으로 구성된 건설회사 채권단 모임인 ‘대주단 협약’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설명회에서 건설사의 구조조정이나 자구 노력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건설사들이 가장 궁금해한 선별 기준도 제시되지 않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 적어도 채권은행간 컨센서스는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기준이 없다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금까지 정부에서 ‘옥석을 가리겠다’는 원론 외에 건설사 구조조정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나 액션 플랜을 내놓은 적이 있느냐”며 “이는 기본적으로 정부가 건설사를 정리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옥석을 가려야 하겠지만 중간지대, 한계기업 같은 경우에는 정부가 지원해서 살려줘야 한다”며 “건설사 하나가 쓰러지면 얼마나 많은 고용이 없어지고 경제에 대한 타격이 크냐”고 말했다. 고용유발 효과, 경제 심리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고려하면 건설사들을 되도록 많이 살려야 한다는 의미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경영학과)는 “전세계적인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거품을 터뜨리지 않고 가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은행의 잠재부실만 키울 수 있다”며 “이는 외국인의 국내 은행에 대한 불신을 높여 외채 회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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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건설사 구조조정 머뭇거릴 때 아니다 (한겨레, 2008-11-18 오후 09:16:15)
 
건설회사에 대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인 ‘대주단(채권단) 자율협약’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엊그제로 잡았던 대주단 협약 가입신청의 마감 시한은 아예 없애고, 도급순위 100대 건설사로 했던 자격 조건도 풀었다. 이번주 시작됐어야 할 건설사 구조조정이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이다.
 
대주단 협약은 우량 건설사는 살리고 부실 건설사는 퇴출시키고자 마련됐다. 가입 신청을 한 건설사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더라도, 우량한 업체면 채무 상환을 유예해 주고 자금을 지원한다. 부실 정도가 심하면 가입을 받아주지 않아 회생이 어려워진다. 그런데 대주단에 가입 신청을 하는 것 자체가 유동성 위기 기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수주에도 차질을 빚을 것이란 우려 때문에 건설사들이 주저하고 있다.
 
부실 건설사들을 마냥 내버려둘 만큼 우리 건설업계의 재무상태는 건전하지 못하다. 건설업체의 부실은 은행 신용도를 떨어뜨리고 국가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더 시간을 끌다간 건설사 부실이 금융권에 전이돼 동반부실 악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하루빨리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세계적 금융위기 영향도 있지만 많은 건설사들이 미분양 아파트·상가가 쌓이는 와중에도 무리하게 확장에 나선 탓에 부실을 자초했다.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일차적 책임은 채권은행에 있다. 건설업종은 재무제표 등에 부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옥석 가리기가 쉽지 않다지만, 여신 기준을 엄정히 적용해 과감히 털 것은 털어야 한다. 부실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거나 정치권 등의 외압에 영향을 받아 문제를 키우며 안고가서는 안 된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문제없다며 건설사들이 채권단에 매달리는 배경에는 정부의 모호한 태도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구조조정 지침을 명확히 주지 않은 채 대주단 협약의 목적은 재무구조 개선이라며 건설사들의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건설사는 물론 은행들로선 구조조정이 아니라 지원 신호로 받아들일 법하다. 정부가 단기 경제지표에 연연해 부실사까지 끌고가려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건설사 구조조정은 경제 위기 극복의 시험대이자 앞으로 있을 저축은행, 조선업체 구조조정의 선례가 될 것이다. 정부와 은행이 신속·공정·투명의 원칙에 충실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더해 부실을 키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