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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신당(NPA) 창당대회를 다녀와서 (미디어충청, 원영수, 2009-02-19)

새벽길 2009. 2. 19. 21:51
참세상에 실린 원영수의 NPA 창당대회 참관기는 레디앙에 실린 일련의 글들보다 훨씬 생생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글의 곳곳에 나와 있는 진보신당에 적대감을 어떻게 봐야할지 모르겠다.
 
분명히 레디앙이나 엄기호의 기사 중에 잘못해석한 부분이 있고, 진보신당 대표단이 노회찬 탄원서 서명을 받은 것과 같이 약간 갸우뚱할 수 있는 행태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과장하여 부각시킬 필요가 있을까. 원용수는 NPA가 "기본적으로 선거정당이 아니라 투쟁정당"이고, 그런 차원에서 당의 로고도 메가폰이며, "가두의 선전과 선동, 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정당"인데, 진보신당 대표단은 이를 간과하고 있단다. 진보신당이 가두의 선전과 선동을 하지 않았던가. 당의 로고가 메가폰이라는 게 투쟁정당의 상징이라고? 그거야 갖다 붙이기 나름 아닌가?
 
레디앙의 기사는 NPA가 어떠한 정당인지 보여주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프랑스어로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않은 한계가 있는 원영수의 참관기보다는 다양한 NPA 당원들과의 대화, 토론을 보여준 레디앙이 더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양자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레디앙, 진보신당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지나치게 발랄함에 집착한다면, 원영수로 대표되는 구 노힘 성향의 활동가들은 엉뚱한 곳에서 선긋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면 이상한 걸까. 아래 글은 참세상의 글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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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신당(NPA) 창당대회를 다녀와서 (미디어충청 www.cmedia.or.kr, 원영수, 국제연대활동가 / 2009년02월19일 11시36분)
프랑스 NPA: 새로운 투쟁정당의 역사적 실험
 
LCR 총회 - 쟁점과 의의
총회의 진행방식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이미 최소 6개월 전에 총회에 하나의 총괄문서로 안을 제출한다. 2개의 안이 제출될 수도 있고 3-4개의 안이 제출될 수도 있다. 당내 의견그룹들 간의 합종연횡이 가능하다. 이번에는 450여명의 대의원들 앞에 두 개의 안이 제출되었고, 다수파의 A안은 역전의 노장 알랭 크리빈이 기조발제를 했고(<레디앙>의 관련 기사는 총괄발제인줄 착각하지만), 소수파의 B안은 크리스티앙 피케(당내 분파/의견그룹인 연계Unir를 대표)가 설명했다.
 
2월 5일 오전 토론은 LCR의 해산과 NPA의 건설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다보니, 별다른 이견은 없다. 물론 소수파는 해산과정이 너무 조급하다든지, 더 충분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등 나름 일리는 있지만 뻔한 비판을 제기한다. 물론 NPA로의 확장이 혁명운동의 반자본주의운동으로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냐는 매서운 비판도 제기된다. 유럽의회 선거와 좌파연대를 둘러싼 문제제기와 비판도 제기되지만, LCR 총회에서 결정하기보다는 NPA 총회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오후 토론은 달랐다. LCR이 속한 제4인터내셔널 문제가 나오니까 토론이 쉽게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수파는 깔끔하게 LCR을 정리하고 NPA에 LCR협회 또는 제4인터 지부를 만들지 말자는 입장이고, 소수파는 제4인터와의 관계를 위해서 최소한의 형식적 틀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 형식적 틀은 의견그룹이나 경향도 아닌 단순한 협회(association) 수준이니까 문제가 안 된다고 강력히 되풀이해서 주장한다.
 
나중에 다수파 견해에 깔린 얘기를 들어보니, 진상은 이렇다. 소수파가 NPA에서 의견그룹을 만들 권리는 당연히 있지만, LCR을 전체로 묶어서 협회든 지부든 만들게 되면 제4인터 문제가 NPA에서 중대한 사안이 되고 불필요한 논의로 새로 결합한 새세대 활동가들을 역으로 소외시킬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수십 년간의 누적된 노력의 성과물로 만든 NPA가 순식간에 과거의 고립적 종파조직으로 회귀할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하튼 오후의 열띤 토론을 거쳐, 저녁회의에서 표결이 이뤄졌다. 최종 표결은 비공개 회의로 진행한다. 나중에 결과를 확인하니, A안이 87.1%, B안이 11.5%, 기권 1.4%란다. 대충 LCR 내부의 구도를 알 수 있는 결과였다.
 
LCR은 특히 1995년 연금파업을 시발로 2003년 CPE 반대투쟁, 2005년 유럽헌법반대투쟁 등으로 이어지는 투쟁주기의 활성화 속에서 새로이 급진화 된 세대가 조직에 가입하면서 70년대 초중반 1만 당원과 일간지를 내던 전성기에 비해 2천대오로 줄어든 조직원이 다시 3천명수준으로 늘어난다. 특히 소련의 붕괴 이후 새로운 정세에 새로운 세력재편을 위한 노력은 1999년 유럽의회선거, 2002년 대통령 선거(이때 약관 27세의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등장한다)를 거치면서 새로운 정당 프로젝트로 구체화된다.
 
그리고 2005년 유럽헌법 반대투쟁과 CPE 반대투쟁의 조직적 성과가 바로 NPA 건설로 집약된 것이다.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고 새로운 틀로 결합하는 것이다. 2007년 대선의 득표로 지급되는 정치지원금(원래는 우파 소규모 정당들이 생존을 위해 요구했던 것)을 제4인터내셔널에 지원하는 외에 40년간 축적된 모든 것을 NPA로 이전하는 결단은 좌파운동사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그 40여년의 세월에 녹아있는 절절함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NPA 총회 - 새로운 실험의 첫발
‘이제 반자본주의신당이다!‘는 슬로건과 메가폰 로고!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들이 평생을 혁명에 바친 노장과 더불어 아래로부터 새로운 당을 건설한다. 벌써 전날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밖에는 눈발이 흩날리는데, 회의장이 북적거린다. 해산시점으로 LCR의 회원규모가 3200명인데, NPA는 총회 경과보고에 의하면 9,123명으로 1만 대오에 육박한다. 전날 널널했던 회의장은 꽉 차고 드나들기도 쉽지 않다. 즐거운 비명!
 
새로운 정당이라고 얼치기 초보 정당은 아니다. 벌써 1년 반 동안의 조직적 준비가 이뤄졌고, 그냥 입만 들고 오는 게 아니라 최소한 회원 10명의 대표로써, 지난 6개월간 아니 1년간의 토론과 투쟁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섰다. 강령에 해당하는 창당원칙과 규약, 투쟁방향을 결정하는 정치결의안에 대한 토론은 이미 전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이제 총회가 내부적으로 공공연한 정치활동의 무대로 펼쳐진다.
 
총회의 쟁점: 당명, 사회주의의 지향, 정세와 유럽선거
새로 당을 건설하는 만큼, 토론할 거리도 많다. 창당원칙과 규약, 정치결의안은 3개의 분과위원회 형태로 나누어 효율적으로-조직적으로 토론한다. 당 안팎에서 핵심쟁점으로 부상한 유럽결의안은 정치결의안과 분리하여, 전체회의에서 토론되고 심의된다.
 
NPA는 부르주아 선거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갖지 않는다. 다수파의 안과 소수파의 안이 부딪힌다. 다수파는 이미 자본주의의 수호자로 변신한 사회자유주의적 사회당과의 원칙적인 단절을 조건으로 하는 반자본주의 좌파연합을 제시하고, 소수파는 조건 없는 범좌파연합을 제시한다. 회의장 안팎에서는 프랑스 공산당과 최근 사회당에서 탈당한 장뤽 멜랑숑의 좌파당(GP)이 촉각을 세운다.
 
사회당에 대한 태도가 하나의 잣대가 되고, 공산당의 고민은 깊어진다. NPA 다수안이 제시한 사회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은 이번 NPA 총회가 제기한 좌파연대의 핵심원칙인데, 그 핵심은 프랑스 공산당 운동 100년의 역사에 비수를 꼽는다. 사회당의 하위파트너로서 생존한 그 세월이 심판대에 오를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좌파들은 NPA의 좌파연대가 프랑스 정치지형에 던지는 문제의식을 오해한다.(엄기호, <실천적 좌파여 단결하라>, 한겨레신문 2월 10일자 기사) 유럽의회의 의석을 위해서 NPA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공산당과 좌파당은 닭쫓던 X꼴이다. NPA의 결정은 목전의 이익이 아니라, 기존 프랑스 좌파의 구도와 지형을 허물기 위해 사회당과 선을 그었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파언론은 올리비에 브장스노를 ‘대책없는 인간’으로 몰아붙이고, NPA를 무책임한 정치세력으로 매도한다. 사회당의 현실적 주도성을 인정하고 제도안으로 들어오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이제 총회의 몫은 끝났다. 3월초에 소집되는 새 지도부의 첫 회의가 대회의 결정에 따른 정치투쟁을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의석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경제위기 시대에 반자본주의 투쟁이자 21세기 사회주의를 투쟁이다.
 
사회운동 세대, 새로운 세대의 정치불신, 좌파불신에 종지부를 찍다!
NPA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정치학자는 앞으로 1-2년간은 NPA가 성장하겠지만, 2012년 대선 전에 몰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총회장에서도 올리비에 브장스노가 나타나자 비디오 카메라의 무리들로 몰려다닌다. 회의에 방해가 된다. 대의원들이 우~ 하면서 야유를 보낸다. 빨갱이 우체부 올리비에 브장스노의 대중적 인기가 NPA의 인지도와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한 몫은 부정할 수는 없지만, 총회장에서 올리비에 역시 한명의 대의원일 뿐이다.
 
올리비에는 여전히 파트타임 우체부로서 일하고 조직 내에서 그저 한명의 당원일 뿐이다. LCR에서 알랭 크리빈과 더불어 당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대변인단의 일원이었다. 이번 창립총회에서 대의원 78%의 지지로 지도부에 선출되었지만, 그가 당을 대표하는 대변인으로 선출될지 여부는 3월초에 모이는 전국지도부(CPN, 전국정치평의회)의 첫 번째 회의에서 결정될 것이다.
 
어쨌든 브장스노가 상징하는 것은 새로운 좌파의 활력이다. LCR 지도부와 올리비에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트로츠키주의를 버렸다는 헛소리는 프랑스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들린다. 그러나 그들이 트로츠키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신념을 버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들은 여전히 트로츠키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고하게 믿고 있으며, 이른바 스탈린주의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단지, 트로츠키주의는 반자본주의-사회주의의 큰 틀에서 하나의 경향일 뿐이며, 그들이 주도하는 제4인터내셔널 역시 새로이 건설되어야 할 인터내셔널의 한 부분이라고 솔직히 인정한다.
 
기본적으로 NPA는 투쟁정당이다. 프랑스령 과달루페와 마르티니크의 총파업에 총회 전체가 기립박수로 환호하고, 팔레스타인민중해방전선(FPLP)의 가자지구 투쟁보고에 열렬히 연대를 표했다. 반자본주의는 21세기 사회주의를 향한 첫걸음이다. 적어도 프랑스 좌파의 지형에서. 이 실험에 대한 섣부른 논평은 사양하겠다. 그들의 문제가 과연 그들만의 문제로 끝날 것인가? 프랑스의 자본주의가 끝장나는데, 남한의 자본주의가 살아남는다면 그것은 전지구적 반동의 한 부분 외에 무엇이 되겠는가?
 
뱀발: 진보신당 대표단의 몰이해와 코미디/사기극
 
해외 대표단 모임에서 벌어진 낯 뜨거운 해프닝은 짜증났다. 국제 좌파정당들 간의 간담회에서 진보신당 대표단이 내민 노회찬 탄원서 서명제안(왜 또 탄원서인가?!)의 몰상식한 뻘쭘함은 그렇다고 해도, 공동성명이 채택됐다는 <레디앙>의 다분히 고의적인 오보는 황당할 정도로 정파적이다. 비록 <레디앙>이 데스크의 오버를 인정하고 기사를 수정했지만 이미 정치적 효과를 거두었다. <한겨레신문>이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인용보도를 했으니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레디앙>의 관련기사(‘21세기 사회주의’ 선언)와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기사(엄기호, <실천적 좌파여 단결하라>)에서 증폭된다. LCR-NPA 프로젝트에 대한 무지와, 과도한 단순화의 정치적 경박성은 진보신당=반자본주의신당의 어거지 등식화를 위한 맹목에 갇혀있다. 총회의 진행방식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는 몰상식하고 경박한 평가와 함께 LCR/NPA의 의미를 희화화한다.
 
이것은 국제주의도 아니다. 국제연대의 기본도 없다. LRC-NPA는 기본적으로 선거정당이 아니라 투쟁정당이다. 당의 로고도 메가폰이다. 가두의 선전과 선동, 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정당이다. 비록 NPA로의 하향평준화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정당은 하나의 도구일 뿐 근본적 목적은 자본주의의 전복을 통한 사회변혁임을 명확히 하는 대회장의 수많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거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