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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불온서적목록은 권장도서목록?

새벽길 2008. 8. 4. 12:12
인터넷 한겨레를 통해 국방부가 23권의 책들에 대해 불온서적 딱지를 붙였다고 할 때 이거 커지겠네 싶었다. 역시나 돌고돌아서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책들이 '국방부 추천도서'가 되어 팔리는 꼴이 되었다. 알라딘에서는 이를 잘 포착하고 이슈화하여 엄청난 광고효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을 선정한 기준을 알 수가 없다. 기껏 추측할 수 있는 게 군 내부에서 문제가 되었던 책이 아닐까 하는 것 뿐이다. 이미 품절된 책들도 포함된 것을 보면 최근의 문제작을 선정한 것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북한을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책들도 빠져 있다.
 
불온서적으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중에서 <지상에 숟가락 하나>, <벗>, <소금 꽃나무>,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한민국 사>,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추천할 수 있다. 이 중에 벗은 북한 소설이기는 하나, <민중의 바다> 등의 북한 소설들과는 달리 이념적인 색채가 진하진 않다. <대학시절>은 고리끼의 책일 수도 있고, 북한 소설일 수도 있다.
 
사실 이 중에 내가 읽은 것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벗>, <핵과 한반도>, <소금 꽃나무>,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한민국 사>, <세계화의 덫> 정도이고,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김남주 평전>은 사놓고 아직 읽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책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우회적으로 국방부의 무식성을 진중권과 우석훈이 비꼬기도 했지만, 내가 볼 때에도 그들의 책이 그리 체제위협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국방부의 선정기준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체사상 비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와 같은 책도 포함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불온서적 선정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겠나. 혹시나 문화부에서 판을 확대하지는 않나. 그러면 재미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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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대학교재·베스트셀러도 “불온서적” (한겨레, 노현웅 기자, 송지혜 인턴기자, 2008-07-31 오전 09:45:20)
국방장관 지시따라 책23권 차단·수거명령
‘나쁜 사마리아인들’ ‘삼성 왕국의…’ 등 포함

 
국방부가 대중성 높은 인문교양서와 십수만권이 팔린 베스트셀러까지 ‘불온 서적’ 딱지를 붙여 수거명령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은 또 장병들의 개인 우편물 내용을 간부 입회 아래 확인하는 등 불온 서적 차단 대책도 전군에 지시했다.
 
30일 <한겨레>가 입수한 공군참모총장 명의의 공문을 보면, 공군본부는 지난 24일 각급 부대에 7월28일~8월8일 불온 서적 반입 여부를 일제 검검해 8월11일까지 상급부대에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 조처는 지난 19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 보안정책과에서 육·해·공군 등 각군에 내린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지시)’에 근거한 것으로 돼 있다.
 
공문은 “불온서적 무단 반입시 장병 정신전력 저해요소가 될 수 있어 수거 지시하니 적극 시행”하라며,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등 세 분야로 나눈 23개 ‘불온서적 목록’을 제시했다. 군 당국이 분류한 불온서적 목록에는, 세계적인 석학의 저서와 대중적인 인문교양서, 일반적인 문학작품과 베스트셀러 등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지난해 10만부 이상 팔리며 상당수 언론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인데도 ‘반정부·반미’로 분류됐고, 대학 교양수업 교재로도 널리 읽히고 있는 <북한의 우리식 문화>(민속학자 주강현 지음)는 ‘북한 찬양’ 딱지가 붙었다. 또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의 저서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는 ‘반정부·반미’ 도서로, 삼성의 불법 비리 의혹과 맞서 싸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반자본주의’ 책으로 각각 분류됐다.
 
공문은 또 ‘군내 불온서적 반입 차단대책’으로 △불온서적 취득시 즉시 기무부대 통보 △휴가 및 외출·외박 복귀자의 반입 물품 확인 △우편물 반입시 간부 입회 하 본인 개봉(확인) 등을 제시했다. 군은 지난해에도 문화관광부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한 <국가의 역할>, <한국사회의 성찰>, <민주화, 세계화 ‘이후’ 한국> 등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모두 거둬들인 바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공군의 한 장교는 “기무사령부가 아니라 일반 지휘 계통을 통해 이런 지시가 내려진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서적이 발간되면 국가보안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반국가적인 내용이 포함됐는지 등을 판단하고 있다”며 “군인복무규율에 의해 군인은 불온도서 등 표현물을 소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