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우승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정말 그리 했다. 야구를 좋아하긴 하지만, 일본고교야구에까지 관심을 갖진 않았는데, 교토국제고의 선전이 기사화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계 학교여서가 아니라 160여명밖에 안되는 학교에서 고시엔 우승을 했다는 자체가 놀랍고 감동적이다. 게다가 그 감독은 첫 시합에서 34:0으로 깨질 때 상대고교 선수였다니...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도 될 듯...
언론에선 한국어 교가를 많이 부각시키는데, 그게 의미는 있다고 보지만, 선수들의 야구를 향한 열정을 더 높게 봐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중학교 재학생 22명(이들은 모두 재일교포 학생일 듯하다)을 제외하고 137명 정도 되는 고등학생 중에서 남녀 반반(남 68명, 여 69명)이고, 61명이 야구부라고 하는데, 야구부원이 아닌 남학생 7명도 애초에 야구부 소속이었으나, 응원단장을 맡은 친구와 같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만둔 경우일 듯하다. 야구부원 가운데에는 재일교포 학생이 3명밖에 되지 않는다 하니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일본학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실제 교토국제고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학생들이 일부러 그 학교에 진학한 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한국계 학교임을 부각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듯하다. 교토국제고보다 더 힘들게 버티고 있는 조총련계 민족학교들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말이지. 물론 협한 압박 속에서도 교토국제고가 한국어 교가를 꾸준히 지키고 있는 점도 훌륭하긴 하다.
현지에서는 한일대결보다는 지역대결이라는 측면이 주목을 받았나 보다. 68년만에 교토부에서 여름 고시엔 대회 우승팀이 나왔고,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에 구 수도인 교토 대표와 현 수도인 도쿄 대표가 맞붙었으니 그럴 만하다. 공유한 글에서처럼 인근 학교의 응원단들과 지역주민들도 응원을 온 것을 보면 이런 점이 드러난다.
암튼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우승을 축하한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2216070000526
헌 공 테이프 감아 쓰던 교토국제고 '고시엔 결승 기적'엔 KIA 응원 있었다 (한국일보, 윤현종 박주희 기자, 2024.08.22 19:00)
"열악한 연습 환경에 공인구 전달"
학교 측 "낡은 공 재사용해왔다" 화답
열악한 환경에도 고시엔 결승 진출
심재학 단장 "앞으로도 지원 계속"
23일 첫 우승 도전, 日전역 생중계
심재학 KIA단장은 이날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프로 팀 교류차 갔던 일본 오사카 출장길에서 교토국제고 출신 재일동포분을 만났고, 모교 야구부의 연습 환경이 열악하단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심 단장은 "제일 부족한 게 야구공이라고 해서, 마침 고치에 있는 2군 스프링캠프의 야구공 1,000개를 보내드렸다"고 밝혔다.
박 교장은 "(우리에게) 야구공은 매우 귀중하여 야구부원들은 항상 낡은 야구공에 비닐 테이프를 감으면서 재사용하고 있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기부받은 공은 부원들 연습에 의미 있게 쓰겠다"며 "고시엔에서 활약할 교토국제고 야구부의 멋진 모습을 기대해 달라"고 화답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155016.html
25년 전 0-34 패배 안긴 선수가 감독으로...교토국제고 강자 우뚝 (한겨레, 니시노미야/홍석재 기자, 2024-08-23 11:31)
교토국제고 야구부가 강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고마키 감독이 팀을 맡아 10년 이상 바닥을 탄탄하게 다져온 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99년 교토대회 때 교토국제고에 0-34 패배 아픔을 안긴 당시 교토세이쇼고 선수이기도 했다. 2008년 24살 나이로 교토국제고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현재는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규 학교다. 교육부 재외교육기관학교포털을 보면, 교토국제고 학생 수는 2024학년도 기준 137명으로 여학생 69명, 남학생 68명이다. 재학생 국적(중학교 과정 22명 포함)은 일본 학생이 127명이며 30명 정도가 한국계다. 하지만 지금도 ‘창의력 있는 인재 육성으로 미래 동포 사회를 리드하자’는 창립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애초 학교가 재일 한국계 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현재도 한국어로 된 교가를 부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일본인 학생들은 한국말 교가를 부르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앞서 고마키 야구부 감독도 “한국어 교가가 꽤 어렵다”며 “하지만 (선수들은) 고시엔 대회에서 힘차게 교가를 부를 수 있도록 개별적으로 열심히 교가 연습도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823070652073?input=1195m
한국계 교토국제고, 日고시엔 첫 우승…한국어 교가로 피날레(종합)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2024-08-23 13:07)
결승서 연장 접전 끝 2-1 승리 '기적'…'동해바다' 교가, NHK 통해 日전역 방송
감독 "대단한 선수들에게 감탄"…주일대사 "한일 양국에 빛나는 감동 선물"
https://www.yna.co.kr/view/AKR20240823114200073
[르포] 폭염 압도한 고시엔구장 응원열기…'기적적 우승'에 곳곳 눈물도 (니시노미야[일본 효고현]=연합뉴스, 경수현 특파원, 2024-08-23 16:52)
교토국제고 재학생 160명인데 가족·교직원 등 2천800명 일사불란 승리 기원
손자 응원 온 70대도, 야구부 활동하다 부상에 응원단장 된 재학생도 '한마음'
https://www.khan.co.kr/world/japan/article/202408231710001
듣도 보도 못한 처참한 환경···교토국제고 ‘고시엔 우승’ 비결은 (경향, 조문희 기자, 2024.08.23 17:10)
마이니치, 선전 비결로 “선택과 집중”
감독 “멋진 여름방학 선물해 줘서 감사”
현지 일간 아사히신문은 이날 기사에서 “‘(교토국제고는) 작은 그라운드에서도 수비 연습은 할 수 있다’며 기본부터 철저히 단련했다”며 “축복받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기른 수비와 타격으로 한여름의 고시엔에서 결실을 거뒀다”고 분석했다.
공 돌리기를 예로 들면, 교토국제고 선수들은 일부러 원바운드로 던지기, 달리면서 던지기, 일부러 떨어뜨린 뒤 집어 던지기 등 훈련을 했다. 타격 연습도 “보통의 타격을 하면 바로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 주차장에 있는 차에 부딪히기 때문에, 낮고 강한 공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교토국제고가 이번 고시엔에서 기록한 홈런은 0개였다.
마이니치는 “선택과 집중”을 교토국제고의 선전 비결로 꼽았다. 좁아서 자유 타격이 불가한 대신 수비 연습을 철저히 하고, 공 돌리기를 할 때마다 실전 상황을 가정해 반복 연습한다.
백승환 교토국제고 교장은 이날 결승전 직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과의 인터뷰에서 “중학교에서 우리 학교로 입학할 때 야구부로 들어오겠다는 아이들의 선발 기준이 몇 가지 있다”며 “첫째가 영리함, 둘째가 근성, 셋째가 성실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추면 지금이 실력 좀 떨어지더라도 스카우트를 하라고 한다”고 선발 조건을 밝혔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2315500002818?did=NA
'영화 한 편 뚝딱'…교토국제고 대패시킨 선수가 우승 감독 된 사연 (한국일보, 장수현 기자, 2024.08.23 17:40)
2008년 부임한 고마키 노리쓰구 감독
25년 전 교토국제고 0-34로 패배시켜
"아저씨에게 멋진 여름방학 선사 고맙다"
교토국제고는 1999년 야구부 창설 이후 처음 출전한 교토 지역 대회에서 5회 만에 34점을 내주며 0-34로 패배했다. 당시 상대 팀은 교토의 야구 명문인 세이쇼고등학교. 고마키 감독은 이 학교의 2루수로 출전해 승리에 기여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야구를 하던 고마키 감독은 잦은 부상 탓에 결국 프로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은행원이 된 고마키 감독에게 2006년 교토국제고 수석 코치였던 지인이 "주말만이라도 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주말 연습을 돕던 고마키 감독은 2007년 직장을 그만두고 교토국제고 정식 코치로 부임, 이듬해 감독이 됐다. 그 길로 17년째 교토국제고를 맡고 있다. 고마키 감독은 "처음엔 잠깐만 하려고 했지만 '내년에도 교토국제고에서 뛰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제자들이 있어 그만둘 수 없게 돼버렸다"고 밝혔다.
고마키 감독은 학생들에게 수비 등 기본기를 철저히 연습시킨다. 이 덕분에 투수는 굳이 삼진을 잡지 않아도 범타를 유도해 아웃을 얻어낼 수 있다. 이런 훈련 방식과 관련, 고마키 감독은 3년 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좁은 운동장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외야 훈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운동장이 좁다 보니 연습 경기를 하려면 외부 연습장을 빌려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기본기 훈련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고마키 감독은 우승 직후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회 전에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오래 너희와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정말 여기까지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런 아저씨에게 멋진 여름방학을 선사해준 아이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감격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82315510003093?did=NA
전교생 160명의 기적… 고시엔구장 100주년 "동해 바다"로 채웠다 (한국일보, 니시노미야= 류호 특파원, 2024.08.23 19:00)
교토국제고, 3년 전 4강 이어 우승 차지
결승전서 간토다이이치고 2-1로 제압
"일본 최고 됐다… 한일 모두가 승리"
1999년 4월 야구부 창단 이래 사상 첫 우승이자, 외국계 학교가 고시엔에서 우승한 것도 교토국제고가 처음이다.
특히 이날 경기는 '라이벌전'을 연상하게 했다. 두 학교 모두 첫 우승 도전이고, 간사이 지역의 상징인 교토를 대표해 나온 교토국제고, 간토 지역의 얼굴인 도쿄도의 간토다이이치고 간 일본 동서 지역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우승 확정 후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한국의 학원"이라는 한국어 가사의 교가를 부르자 응원단도 일제히 응원 수건을 들어 올리며 따라 불렀다. 이 장면은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한국인과 재일 동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게 됐다.
https://www.facebook.com/amdg77/posts/pfbid02RAuYEf3DVDa1gWQa5Zy8dS4HKz6e8TfTudbrTjraLKJAjS7c3A9zRmCtKWEa45UTl
Kim Jeongho 2024년 8월24일 토요일 오후 11:09
교토국제고의 ‘여름 고시엔’ 우승이 어제, 오늘 화제의 중심인데 관련 기사를 읽다 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나처럼 교토국제고의 존재를 이번에 처음 알게 된 페친이 많으리라 추측한다. 교토국제고의 정식 명칭은 교토국제중학고등학교다. 중학교,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에 있는데 전교생 159명의 작은 학교다.
중학교 재학생은 22명(남학생 4명, 여학생 18명), 고등학교 재학생은 137명(남학생 68명, 여학생 69명)이다.
남고생 68명 중 7명을 제외한 61명이 야구부 소속이다. 7명도 원래 야구부원이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남고생 전체가 야구부라고 봐도 무방하다. ‘야구 특목고’로 간주할 만하다.
교토국제고의 전신은 재일 동포들이 1947년에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한 교토조선중학교다. 해방 후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은 이념에 따라 남한을 지지하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약칭 ‘민단')과 북한을 지지하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약칭 ‘조총련')으로 양분된다.
민족교육을 위해 두 단체는 각자 별도의 교육 기관을 세운다. 북한은 조총련 소속 학교들을 지원하는데 초기부터 적극적이었다. 북한의 지원을 받는 조총련 소속 교육기관을 ‘조선학교'라 부른다. 일본 전역에 64개가 있다.(2018년 기준)
민단이 세운 교육 기관은 그보다 훨씬 적다. 한국의 교육 과정을 따르지만 한국 정부가 직접적으로 지원하지는 않는다. 민단 산하에 4개의 학교 법인을 두고 학교를 운영한다. 도쿄에 1개, 오사카에 2개, 교토에 1개가 있다. 이번에 고시엔에서 우승한 교토국제고는 바로 교토에 있는 민단 소속 학교다.
민족교육 기관이 조총련 64개 vs. 민단 4개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검색해보니 조총련 회원은 약 8만 명, 민단 회원은 약 60만 명이다. 8만 명 회원의 조총련은 민족학교를 64개 운영하는 반면, 60만 회원의 민단은 4개를 운영한다는 말이 된다. 전자가 그만큼 더 민족교육에 진심이라고 볼 근거가 되겠다.
재일 동포가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굳이 민족학교로 진학해야 할 필요성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이는 학생수의 감소로 이어졌다.
교토조선중학교 또한 폐교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지원하는 학생이 부족했다. 돌파구는 일본 문부성으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아 정규 학교(일조교 一条校)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일본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수령하고, 재일 동포들뿐만 아니라 일반 일본인들로부터도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2003년에 일조교 인가를 받았고, 다음 해인 2004년에 교토국제중고등학교로 새롭게 개교한다.
일조교가 되면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대신 공식적인 커리큘럼에 따라 일본어로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민족교육의 정체성이 흔들리게 되는 것인데 한국어, 한국지리, 한국사 등의 ‘민족교과’를 중학교 과정에서는 정규 과목의 일부로,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것 같다. (교토국제고의 교과목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개교 당시 발표 내용을 토대로 추정)
교토국제고는 교명대로 외국어 특성화고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어, 일본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며 그중 한국어에 특화된 커리큘럼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류와 한국어에 관심이 있는 일본 학생, 특히 여학생을 유인하는 요인일 것이다.
한편 남학생을 끌어당길 요소로는 야구부만 한 것이 없다. 조총련계 민족학교 대부분이 축구부, 럭비부, 농구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창단하자마자 교토 지역 대회에 참가했는데 전통의 야구 명문 교토세이쇼고와 붙어서 5회 만에 0-34로 대패했다. 당시 세이쇼고 2루수였던 고마키 노리쓰구는 훗날 교토국제고의 감독이 된다.
대학 졸업 후 평범한 은행원이 된 고마키에게 교토국제고의 수석 코치인 지인이 주말만이라도 야구부원들을 지도해달라고 부탁했다. 2006년부터 주말 코치를 하다가 2007년에는 아예 은행을 사직하고 전임 코치를 하게 된다. 당시 겨우 24살이었고, 올해로 17년째 교토국제고 감독을 맡고 있다.
교토국제고가 교토조선중학교의 정신을 잇기 위해 한국어 교가를 유지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2021년 ‘여름 고시엔’ 대회에서 4강에 올랐는데 그때 일본 우익 단체들이 한국어 교가를 문제 삼아 여러 차례 위협을 가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어 교가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교토국제고가 진정한 의미의 ‘민족학교’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교토국제고는 일본 사회에 잘 적응한 민족학교다. 그런 유연함이 갖는 장점은 분명하다.
다른 한편에는 비타협적인 조총련계 민족학교들의 매우 고단하고 외로운 현실이 있다. 그걸 조명하는 다큐가 꾸준히 제작되는 것은 그만큼 힘든 현실을 버티고 있다는 방증이다. 2006년에 김명준 감독의 다큐 ‘우리 학교’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2023년에는 일본의 조선학교 지원금 배제와 그에 맞선 손해배상 소송을 다룬 다큐 ‘차별’이 개봉되었다. 조선학교의 현실에는 별 변화가 없는 것이다.
절대 교토국제고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우승을 계기로 재일 동포들의 민족교육 노력이 재조명되는 만큼 다른 민족학교에도 관심을 갖자는 의미다.
이번 고시엔 결승전에는 '동서수도대결'과 '우리 지역 대표'라는 서사가 있다고 일본통인 테츠 사마가 짚어주었다.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기사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댓글에 링크)
누가 그러던데 이번 고시엔 결승전은 “고시엔 구장 개장 100주년에 열린 대회에서 현 수도인 도쿄와 구 수도인 교토의 대표”가 맞붙은 빅 스포츠 이벤트였다. 도쿄와 교토를 대표하는 고교 야구팀이 고시엔 결승에서 맞짱을 뜨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감 잡았다.
학교가 너무 작아서 취주악단이 없는 교토국제고를 위해 교토산업대부속고 취주악단이 응원에 참여한 것(첨부 사진), 교토 지역 예선에서 패한 교토세이쇼고(京都成章高) 야구부원들이 빨간색 머리띠에 메가폰을 잡고 응원을 주도한 것, 교토국제고 응원석을 교토 지역 주민과 학생 1,200여 명이 꽉 채운 이유를 알게 되었다.
교토 주민들에게 이번 고시엔 결승전은 재수 없는 도쿄를 ‘개 처바른’ 경기였던 것이다. 일본 사회가 열광했던 것은 과거의 수도와 현재의 수도의 대결 구도가 그 어느 경기보다 흥미진진했기 때문이었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A0003056969&CMPT_CD=MTO99
'혐한세력' 뛰어넘은 K 물결... 일본 사로잡은 교토국제고 (오마이뉴스, 박철현(tetsu), 24.08.23 17:24)
[박철현의 도쿄스캔들] '고시엔 우승' 재일민족학교 고교야구 소년들의 대서사시
이번 결승전은 여러모로 많은 화제를 낳았다. "동해 바다 건너서"로 시작되는 한국어 교가도 그랬지만, 고시엔 106년 역사상 처음으로 펼쳐진 동서(도쿄vs.교토) 수도의 대결, 결승전에 오른 두 팀이 한 번도 우승 경험이 없다는 점, 전통의 강호 간토다이이치와 신흥 강호 교토국제고의 신구 대결 등등 이른바 '서사' 측면에서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자타공인 탑티어, 응원석 가득 메운 K물결
사실 교토국제고와 간토다이이치고는 전력상 탑티어로 분류되는 강팀이다. 보통 최근 10년 이내 고시엔 본선에 2번 이상 진출했다면 강팀으로 불린다.
혐한세력 뛰어넘는 '우리 지역 대표' 서사
결승전 관객석을 가득 매운 K(교토국제고의 이니셜)의 물결은 교토국제고 당사자들로는 절대 채워질 수 없다. 교토지역민들이 대거 응원하러 간 것이고, 특히 4강전부터 화제가 됐던 브라스밴드 응원단은 이번 결승전에서도 어김없이 교토산업대부속고가 담당했다. 즉 고시엔 결승전에 진출한다는 것은 개인과 학교의 영광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명예가 걸린 중대한 사건이다.
실제로 인터넷으로 결승전 생중계를 한 야후재팬 버추얼이나 주최 측인 아사히신문사의 해당 문자중계 페이지의 응원메시지 분포를 보면 간토다이이치 응원이 60%, 교토국제고 응원이 40%를 차지했다. 도쿄의 인구수를 감안한다면 오히려 교토국제고를 응원하는 비율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시합의 흐름은 매끄러웠고, 심판판정은 공정했다. 우승 후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흘러나올 때 NHK는 "일본어자막은 학교 측에서 제공한 것"이라는 자막을 별도로 달아 논란의 여지를 차단했다. 한국어 교가를 문제 삼는 혐한세력은 물론 있었지만 그들을 반박하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적어도 고시엔에선 한국에서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역으로 그렇기에 바로 '고시엔'인 것이다.
명승부 중의 명승부
무엇보다 이번 결승전은 시합 자체가 명승부 중의 명승부였다. 도저히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니 관심 있는 독자들은 꼭 하이라이트를 챙겨보길 바란다.
폐교 위기 학교의 부활
아무튼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고시엔 우승'이라는, 일본의 모든 고교야구소년들이 꿈꾸는 결실을 교토국제고가 이뤄냈다. 1990년대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까지 몰렸던 학교가 1999년 야구부 창단을 계기로 부활했다. 물론 야구부원들은 일본 전역에서 온 일본국적자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어 교가를 거리낌 없이 부르며 교토국제고 소속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야구부원이 아닌 일본국적 학생들 역시 한국에 대한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인근 학교는 운동장은 물론 응원단마저 빌려줄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그들이 가지는 위상은 대단하다. 재일동포들 역시 민단계, 총련계라는 이념적 차이를 제쳐두고 한마음 한뜻으로 아이들을 응원했다. 전국에서 버스를 대절해 1000여 명이 넘는 재일동포들이 결승전에 몰렸고, 기부금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이제 그들이 교토로 돌아가면 지역 차원의 성대한 환영식이 펼쳐질 것이다. 그 환영식에 국적 같은 건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한다. 무려 '고시엔 우승팀'이라는 타이틀 홀더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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