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단다. 여당이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에 반발해서이다. 어제 대구고·지검을 방문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며 여권을 강하게 비판한 이후 사의 표명이 예견되었다. 그는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를 어떻게 볼까.
우선 윤석열 총장은 이미 징계과정에 있기 때문에 사의 표명을 한다고 사표를 수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대통령과 법무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 싶었는데, 사표를 수리했다.
둘째, 수사·기소 분리가 세계적인 추세라는 점은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사실이다. 윤석열은 이와는 달리 “법 집행을 효율적으로 하고 국민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수사와 기소가 일체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과연 검찰은 사회적 강자와 기득원의 반칙 행위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해왔던가?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칼날을 들이대면서 인권침해를 일삼아오지 않았던가.
셋째, 검찰 내부의 비리, 부패에 윤석열은 단호하게 대응했던가? 윤석열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가 검찰이 ‘거악’과 싸우는 일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했지만, 거악에서 검찰의 비위 의혹은 배제되는 모양이다.
여권 일각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이를 기화로 윤석열은 반발하면서 자신의 퇴임 및 정계 진출의 계기로 삼고, 이 기회에 여권은 눈의 가시 같은 윤석열을 쳐내고... 잘 맞아돌아가네.
윤석열은 “검찰에서 할 일은 여기까지”이고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로 사실상 정계진출을 선언했다. 그리 보면 지금까지의 행보도 나름 철저하게 준비되고 계산된 행동인 듯하다. 이제 논의를 시작했을 뿐인 중대범죄수사청 신설이 사퇴 명분으론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그가 정치를 잘 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 정도까지는 어렵지 않을 듯 하지만, 그 이상은 뭐가 가능할지... 그는 나름 충실한 검찰맨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것 보면 그게 아닌 듯 하기도 하고... 더욱이 '자유민주주의 수호' 운운하는 대목에서 실소가 나왔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구나.
덧붙여, 이런 결과를 초래한 정부여당도 문제다. 검찰개혁을 하고자 했으면 문제 없이 계획성 있게 할 것이지, 문제만 더 키우고, 오히려 검찰개혁에 적대감을 가진 국민들이 생겨난 것에 책임은 없는지...
여기까지는 어제 대충 메모해놨던 것이다. 요즘은 정치가 내 주 관심사가 아닌지라 즉각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페북 등에 옮기는 게 거시기해서 일기장으로 쓰는 메모장에 걍 묻어두었는데, 오늘자 대부분의 신문들이 1면은 물론 나머지 면까지 할애해서 온통 윤석열 사퇴로 떡칠한 것을 보고, 이게 뭐냐 싶더라. 다른 중요한 사안도 많은데, 이게 그리 관심사가 되어야 할 사안인가 싶어 뒤늦게 넋두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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