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국제, 평화, 민족

"워싱턴 컨센서스의 시대는 끝났다"…美서 다시 주목받는 '큰정부'론

새벽길 2023. 9. 23. 02:07

국경제에 이런 기사가 실리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미국에서 큰정부론이 다시 주목받는다는 건 좀 뒷북 같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309152663i
"워싱턴 컨센서스의 시대는 끝났다"…美서 다시 주목받는 '큰정부'론 [글로벌 리포트] (한국경제,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2023.09.19 08:37)
美, '뉴 워싱턴 컨센서스' 선언…적극적 개입에 '탈 세계화'로 변화
전면적 '디커플링'아닌 선택적 '디리스킹'으로 중국 견제
글로벌 리포트-워싱턴 컨센서스의 종말
"파르테논 신전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아방가르드의 시대다."
지난 4월 27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브루킹스 연구소는 웅성거렸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참모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출동해 한방을 터트렸기 때문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날 '미국의 새 경제 리더십'에 대해 연설했다. 두루뭉술했던 바이든의 정책 철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설리번 보좌관은 먼저 "우리는 '차이나 쇼크'의 영향을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시장을 최고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속에서 미국의 국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중국의 부상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1990년대부터 세계를 풍미해온 미국식 국제 경제체제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반성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제 경제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워싱턴 컨센서스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비유했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는 혁신(아방가르드)적 해체주의 건축가로 평가받는 프랭크 게리와 맞닿아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개도국에 적용된 '워싱턴 컨센서스'
설리번 보좌관이 파르테논 신전으로 묘사한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정치경제학자 존 윌리엄슨이 집대성한 미국식 경제 모델이다. 윌리엄슨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특징을 10가지로 열거했다. 설리번 보좌관이 여러 기둥으로 구분돼 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워싱턴 컨센서스가 닮아있다고 한 이유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도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대표주자여서 '레이거니즘'과도 일맥상통한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1989년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던 중남 개발도상국에 처음 적용됐다.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던 경제 처방이 총망라됐다. 요체는 작은 정부다. 정부 역할은 치안과 국방 정도로 최소화하고 민간과 시장에 모든 걸 맡겼다. 구체적으로 탈규제와 긴축재정, 민영화 정책 등이 힘을 발휘했다.
미국 재무부를 중심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이같은 워싱턴 컨센서스를 전 세계에 확산시켰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가 대상이었다. IMF가 총대를 메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워싱턴 컨센서스를 일사분란하게 적용했다. 고금리와 정부 예산 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등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두번째 특징은 세계화와 무역자유화다. 이론적 배경은 비교우위론이다. 각국이 보유한 가장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맞바꾸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윈-윈 무역이론이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뮤무역협정(FTA)을 필두로 국제 교역을 최대치로 늘리는데 집중했다.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워싱턴 컨센서스는 정점을 이뤘다.
금이 간 '파르테논 신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는 30여년만에 철퇴를 맞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를 떠받치던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에 금이 간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분열된 세계에 새로운 국제경제질서를 구축해 수억명의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며 "하지만 수십년 간 이런 기반에 균열이 생겼고 그 변화로 인해 오히려 미국인들과 지역 사회가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제조업과 중산층의 붕괴를 대표적 결과로 꼽았다.
중국의 부상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점도 인정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미국 국내 제조업에 큰 타격을 준 이른바 '중국 쇼크'의 영향을 적절하게 예측하거나 이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과오를 시정하는데서 출발한다. 미국 내 제조업을 일으켜 중산층이 잘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는 게 요체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행한 법이 바이드노믹스 대표하는 3대 법안이다. 지난해 미국 의회를 통과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 인프라법이다. 대규모 자본을 자국의 경제력과 기술력에 투자하는 게 골자다. 기후변화 대응과 공중보건 증진을 위한 공공재에 쓴다도 포함됐다.
경제와 안보의 통합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워싱턴 컨센서스 시대엔 경제는 경제였고 안보는 안보였다. 그러나 중국과 패권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경제와 안보는 상호의존성이 커졌다. 소위 '경제안보 시대'가 된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 믿을 수 있는 국가들끼리 경제블록을 형성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안보 중심의 한·미 동맹이 글로벌 전략적 가치 동맹으로 변모한 게 단적인 예다.
아방가르드 시대엔 큰 정부가 기본
설리번 보좌관은 경제안보 시대에 맞는 건축물로 프랭크 게리의 현대적 건축물을 가져왔다.파르테논 신전이 기하학적 황금비로 분할되는 고대 건축물이라면 게리의 건축물은 칼로 두부 자르듯 정형화하기 힘든 게 특징이다. 질서가 존재하는 듯하다가도 그렇지 않고, 구조가 있는 듯 하다가도 없다. 서로 얽혀 있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해체와 통합을 반복하는 무정형의 세계다. 이 때문에 게리는 아방가르드의 대표적 건축가로 통한다. 미국 LA의 월트디즈니콘서트홀,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이 게리가 설계한 대표적 건축물이다.
모든 것이 얽혀 있는 시대엔 이를 관리할 큰 힘이 필요하다. 시장에 맡겨두지 않고 정부가 일일이 개입한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를 유지하려면 '큰 정부'가 필수적인 이유다.
작은 정부의 시대가 막을 내린 건 팬데믹(전염병의 대유행)과 궤를 같이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사회 통제정책을 시행하고 정부 권력이 막강할수록 유리했다. 전 국민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백신을 공급하려면 정부 재정도 튼튼해야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큰 정부 시대를 강화하는데 일조했다. 물샐 틈없는 국방을 유지하려면 큰 정부가 필요했다. '누가 언제 나를 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 세계는 군비 강화에 골몰했다. 독일은 2024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향후 5년 간 국방예산을 2배로 늘리기로 했다.
기후변화도 큰 정부와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가뭄과 홍수, 지진 등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다. 정부 역할은 당장 먹거리만 해결할 게 아니라 먼 미래의 기후변화 위기에도 대응하는 형태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 선진국들이 작은 정부보다 큰 정부로 수렴하고 있는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코로나19를 겪고 기후변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며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 이후에 100여년만에 근래 볼 수 없던 방식으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좁은 마당'과 '높은 장벽'
큰 정부로 바뀐 바이든 행정부는 제조업을 육성하는 적극적인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면서 첨단 기술에 대해선 벽을 치고 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를 '좁은 마당에 높은 장벽'(a small yard with high fence)으로 표현했다. 동맹국과 우방국을 중심으로 좁은 마당을 형성해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을 상대로 높은 울타리를 치겠다는 취지다. 결국 '세계화'와 '자유무역' 시대는 막을 내리고 '탈 세계화'와 '선택적 안보경제' 시대로 접어들었다.
미국이 가장 높은 벽을 치는 대상은 중국이다.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게 1차 목적이다. 더 큰 목표는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막자는 것이다. 미국은 특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슈퍼 컴퓨터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중국으로 첨단 기술이 들어가지 않게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을 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과 완전히 등을 돌리는 건 아니다. 선택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 첨단 기술에 대해선 벽을 치되 일반 범용 상품에 대해선 빗장을 허물고 있다. 전면적인 차단인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니라 선택적인 ‘디리스킹’(탈위험)이라는 것다. 디리스킹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제시한 뒤 미국이 받아들이면서 뉴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 개념이 됐다.
실제 지난해 미국과 중국의 교역액은 6906억달러(916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중국과 분리하고 디커플링을 하자는 게 아니라 디리스킹과 다변화(diversification)를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 워싱턴 컨센서스가 지속가능하려면
뉴 워싱턴 컨센서스도 여러 도전을 받고 있다. 우선 이 가치가 유지되려면 무엇보다 돈이 많이 필요하다. 큰 정부를 유지하고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구축하려면 여기저기 자금을 쏟아부어야 해서다.
그러나 돈이 나올 곳은 정해져 있다. 미국인들의 세금과 정부 국채발행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국채는 미래의 빚인 데다 최근 들어 국채 매수세도 줄고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세수를 늘릴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부자 증세'를 통해 대기업과 거액 자산가들을 상대로 세금을 확대하려 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오히려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주는 IRA 등 때문에 세수가 줄고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에드워드 트루프 전 영국 국세청 국장은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을 상대로 어떻게 설득력있게 세수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이것이 현 시대의 가장 큰 정치적 경제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령화도 큰 변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고령 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노년 부양 비율(20~6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은 올해 33%에서 2027년에 36%로 올라갈 전망이다.
'베이징 컨센서스'의 도전
공화당이 집권하면 큰 정부를 중심으로 한 뉴 워싱턴 컨센서스가 현재 형태로 유지되기 쉽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전통적으로 복지를 우선시하는 민주당은 큰 정부를 내세우고 있고 자유를 중시하는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 나온 후보들은 세금을 줄이거나 대부분 정부 조직이나 지출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시기에 소득세와 법인세를 인하했다. 인도계 기업인 출신인 비벡 라마스와미 후보는 교육부와 국세청 연방수사국(FBI) 등 여러 연방 부서 폐지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미국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미국에는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지지하는 인사들이 많다"며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 신자유주의적 외교정책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게 바이든 행정부의 어려운 일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부적으로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들이 늘고 있는 점도 뉴 워싱턴 컨센서스의 변수다. 기존 워싱턴 컨센서스는 미국 외에서 적잖은 비판을 받아왔다. 세계경제 시스템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해 미국 이익만 극대화하는 체제로 인식돼서다. 실제 중남미에서 미국이 제시하는 방향과 반대로 가는 국가들의 정치세력은 어김없이 미국의 제재를 받았다. 친미 정권이 집권하면 다시 지원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런 빈틈을 중국이 많이 파고들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이 중국의 앞마당이 됐다.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의 도전이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식 권위주의 체제하의 시장경제 발전을 대변하는 말로 통한다. 정치적으론 일당 독재 체재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적 요소를 최대한 도입하는 중국식 발전국가 모델이다. 정부 주도의 경제개혁, 타국 주권을 존중하는 내정불간섭을 원칙으로 하는 대외정책을 골자로 한다.
AFP 통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기 집권 체제에 접어든 뒤 대만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망이 더욱 대범해지고 있다"며 "이는 결국 중국과 미국을 군사적 대결로 몰고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