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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흉기난동, 좌절 사회가 불러낸 ‘병리적 증후’…이대로 두면 더 곪는다 (경향, '23.8.16)

새벽길 2023. 8. 16. 12:49

런 분석기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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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308160600015
무차별 흉기난동, 좌절 사회가 불러낸 ‘병리적 증후’…이대로 두면 더 곪는다 (경향, 이유진·윤기은·김세훈 기자, 2023.08.16 06:00)
무차별 흉기난동
진짜 범행 동기는

“현실과 괴리된 게임중독 상태에서 불만과 좌절 감정이 쌓여 저지른 이상동기 범죄.”
검찰은 지난 11일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 사건 피의자인 조선(33)을 재판에 넘기며 범행 동기를 이같이 밝혔다. 분당 서현역 사건 피의자인 최원종(22)을 지난 10일 검찰에 송치한 경찰은 최씨가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에 의한 피해망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수사기관은 두 사건의 연관성은 낮다고 봤지만, 이들 사건을 ‘현상이자 징후’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조선의 범행 배경으로 ‘게임 중독’을 지목한 검찰 수사 결과에 뒷말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23년 한여름, 한낮 번화가 길거리와 대형 쇼핑몰 한가운데서 2주 간격으로 벌어진 ‘무차별 흉기난동’ 범죄는 서로 무관한 것일까. 어떤 사회·문화적 토양에서 범죄의 싹이 틔워졌는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봤다.
조선과 최원종, 그들은 왜 지금 등장했나
2008년 논현동 고시원 살인사건, 2016년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 등 사회에서 고립된 이들이 저지른 무차별 흉기 살인사건은 과거에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사건들과 연이어 터져 나온 릴레이성 ‘살인예고’는 코로나19로 분기점을 맞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막대하게 풀린 돈으로 인한 ‘유동성 잔치’ 국면이 끝난 후 찾아온 사회 전반의 ‘박탈감’이 반사회적 정서를 증폭하는 기제가 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 ‘코로나 버블’로 사회·경제적 상승 기대감을 지녔던 이들이 현재 자신의 위치와 사회의 방향 사이에서 큰 괴리를 느끼면서 사회에 대한 반감이 커졌을 것”이라며 “일본에서도 버블 이코노미(거품경제)가 끝난 이후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무차별적 살인사건이 급증했다”고 해석했다. <보통 일베들의 시대> 저자 김학준 독립연구가는 “코인·주식·부동산의 급등과 폭락으로 2022년을 전후해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공통의 감성이 만연한 점이 하나의 분기점”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박탈감 심화
청년들 불평등·불안감 임계점 달해
정상성 좌절이 ‘무차별 공격’ 불러
인정 욕망과 경쟁은 살인예고 낳아
검찰 수사 결과 조선은 길게는 1년3개월, 짧게는 며칠간 지속되는 단기 일자리에 종사하는 등 경제활동이 안정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조선은 직장을 잃고 올해 1월부터 대출받은 300만원으로 집 앞 편의점에서 담배나 먹을거리 등을 사고 배달음식을 시켰는데 잠자는 시간을 빼고 게임만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최원종 역시 비정기적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외에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생활을 이어온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심화된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이들의 반사회적 분노를 키웠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제는 서울대를 졸업해도 취업을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며 “플랫폼·비정규직 노동 등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늘수록 사회적 신뢰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성장과 일자리 정책 실패로 청년들이 부모 도움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성인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좌절을 겪고 있다”며 “청년 사회 전반에 불평등·불안정 심리가 누적됐고, 그 임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고 했다.
‘묻지마’ 범죄?…“정상성 좌절이 핵심”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안정성에 더해 ‘정상성 좌절’도 불특정 다수를 향한 반사회적 범죄의 주요 동기로 지목된다. 신림역 사건 피의자 조선은 지난 7월21일 경찰 검거 당시 “열심히 살았는데도 안 되더라. 그냥 X 같아서 죽였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서는 “오랫동안 나보다 신체적·경제적 조건이 나은 또래 남성들에게 열등감을 느껴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학준 독립연구가는 “조선의 ‘열심히 살았다’는 말은 헤테로(이성애자) 남성이면서 취업을 해 가정을 꾸리고 가부장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욕망, 더 나아가 서울에 사는 중산층의 삶에 도달하려는 정상성의 욕망을 드러낸다”며 “좌절된 욕망을 또래 남성을 향한 공격으로 회복하려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범행의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인 데는 정상성의 압박과 좌절, 이를 왜곡된 남성성으로 극복하려는 성향이 영향을 미친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 형사사법저널의 ‘미국의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대량 살인범’(2013) 논문에서 연구진은 “무차별 살인을 저지른 남성 28명을 연구한 결과, 71%는 실업·부채 등으로 재정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며 “재정적 성공에 대한 장벽을 느낀 범인은 권력과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폭력적 행동을 취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위는 지위를 과시하는 것이자, 그들이 여전히 중요하고 권위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방법”이라고 적었다.
이는 국내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다. 김현미 교수는 “열린 공간에서 무차별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 역시 힘의 과시를 통해 자기우월주의를 회복하려고 하기 때문”이라며 “얼핏 동기가 없어 보이지만 이러한 사건은 오히려 동기가 명백하다. 오랜 시간 범행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크고, ‘노바디’에서 ‘섬바디’가 되는 데서 쾌감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범행에 ‘무동기’ ‘묻지마’ 등의 수식을 붙이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20년 앞서 ‘무차별 살상’ 겪은 일본은?
전문가들은 특히 20여년 전부터 무차별 살상범죄를 겪어온 일본 사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거품경제의 붕괴와 양극화, 정상성에 대한 높은 사회적 압박 등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과 닮았기 때문이다. 일본 법무성은 2013년 일명 ‘도리마(通り魔·길거리 악마)’, 무차별 살상범죄자 52명의 신상·범행 동기 등을 기록한 ‘무차별 살상사범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범죄자 52명 중 남성이 51명으로 98.1%에 이르렀다. 30대(16명·31.4%)와 20대(14명·26.9%)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월수입이 아예 없던 이가 31명(59.6%)으로 절반 이상이었고, 학교와 직장에서 친구나 동료가 아예 없거나, 사이가 나빴다고 말한 이도 27명(51.9%)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이성 교제 경험이 전혀 없던 이도 18명(34.6%)이었다.
무차별 살상범죄의 원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진단은 ‘경제적 빈곤’과 ‘원만하지 않은 대인관계’였다.
문제는
20여년 전 ‘길거리 악마’ 겪은 일본
버블경제 붕괴 뒤 경제난 주원인
한국 청년들도 취업난으로 고립
삶에 대한 희망·의욕 상실 깊어져
7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2008년 ‘아키하바라 살인사건’의 범인 가토 도모히로(당시 26세)는 검거 이후 “삶에 지쳐서 그랬다”거나 “세상이 싫어졌다”며 사회에 대한 반감을 표했다. 그는 범행 직전까지 일본판 ‘디시인사이드’인 온라인 커뮤니티 ‘2ch’에 1000건이 넘는 게시물을 올렸고, 비정규직 관련 고충을 여러 차례 토로하기도 했다.
일본 법무성은 연구에서 “범인의 공통적 특징은 생활에 대한 희망이나 의욕을 잃고, 그로부터 생각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편중되면서 좁은 시야에 의한 생각에 사로잡혀버리는 것”이라며 일부 무차별 살상범은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가 언론에 보도되면 자신이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병리 현상, 놀이가 된 ‘살인예고’
흉기난동 사건과 함께 등장한 또 다른 징후적 현상도 있다. 범행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직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간 ‘살인예고’가 그것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신림역 살인사건 이후 지난 14일 오전 9시까지 전국에서 살인예고 글 354건을 확인해 작성자 149명을 검거(구속 15명)했다고 밝혔다. 살인예고 범행 피의자 가운데 10대 비율이 47.7%에 이르렀고, 게시글 다수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 익명 게시판에 게재된 것으로 파악됐다.
살인예고가 일종의 놀이 문화 양상을 띠는 것 역시 사회병리적 징후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학준 독립연구가는 “조선에서 출발한 사건이 하나의 모티브가 되면서 ‘잃을 게 없으니 참여하겠다’라는 식의 일종의 밈(meme·인터넷에서 모방 형태로 전파되는 문화 요소 및 유행)이 됐다”며 “사회로부터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이들과 이를 지켜보며 유희하는 이들이 얽히고설킨 상태”라고 해석했다. <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정서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부정적인 방식으로라도 관심을 끌고 인정받으려 하는, 병리적 형태의 인정 투쟁이나 주목 경쟁이 격화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살인예고 글이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익명 커뮤니티에 대한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다시 불거졌다. 특히 디시인사이드는 지난 4월 ‘우울증 갤러리’가 청소년 범죄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자율규제 강화’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경찰이 망상을 범행 원인으로 지목한 최원종 역시 4년 전부터 디시인사이드에서 활동하며 반사회적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폭력 선동과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강하게 제재하고 있다”며 “거대 플랫폼이 된 디시인사이드도 책임감을 느끼고 자정작용을 해나가야 한다. 자율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땐 책임자들에게 혐오 표현과 폭력 선동을 방치한 데 대해 책임을 지우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산된’ 범죄자들…중장기 대책 필요
법무부는 최근 가석방 없는 무기형 도입, 살인예고·공공장소 흉기소지 처벌규정 신설 등 엄벌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살상범죄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고립 및 경제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의 병리화만을 흉악범죄의 원인으로 봐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안전망 확보와 고용시장 안정화 등 장기적인 범정부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 사회가 내놓았던 해결책도 장기적 대책에 방점이 찍혔다. 일본 정부는 “사회적 유대가 희박할수록 범죄 행동에 대한 억지력이 약화한다”는 분석 결과를 토대로 아키하바라 사건 한 달이 지난 2008년 7월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범정부적 종합 대책인 ‘범죄에 강한 사회 실현을 위한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행동 계획에는 자원봉사자가 고립된 시민들과 함께 소규모 집회, 육아 지원, 범죄·비행 방지 활동을 하는 방안이 담겼다. 같은 해 12월엔 12조엔 규모의 ‘신고용 대책’을 발표하며 저소득층 젊은이들의 취업을 장려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보험 가입요건 완화, 실직자에 대한 주택수당과 생계보조금 지원 정책도 잇따라 내놨다.
해결은
무기형 등 처별만이 능사는 아냐
일본은 사회안전망 확보에 총력
한국도 중장기 복지대책 병행해야
평등 해치는 ‘과시 문화’도 경계를
국내 전문가들 역시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김학준 독립연구가는 “작금의 사태는 우리 사회가, 정치가 생산해냈다고 봐야 한다”며 “특히 20대 공동체의 와해는 체계적으로 진행된 사회적 생산의 결과”라고 말했다. 김현미 교수 역시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는 확장됐으나 왜 사람들은 존재감과 소속감을 잃었는지, 사회불안이 어떻게 가중됐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같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조장하는 사회적 병폐를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김 교수는 “코로나19가 노동환경과 사회적 관계에 부정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 특히 취약계층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지난 3년간 사회적 위치를 잃어버린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덕진 교수는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는 기준을 다양화하거나 혹은 성과를 내지 않아도 청년 세대가 사회적 끈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고립된 이들을 어떻게 해서든 사회 속에 남겨둘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두드러지는 ‘과시 문화’에 대한 경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교수는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해 시민사회를 구성해온 유럽의 많은 나라는 지나친 과시를 사회적 평등의 감각을 해치는 행동으로 본다”며 “반면 한국에서는 타인과 관계를 맺는 데 ‘과시성’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부의 과시도 있겠지만, 최악으로 발현될 때는 지금처럼 공격성·폭력성을 가시화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