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사회, 문화예술, 일상

만만한 상대만 때리는 SNL코리아의 ‘속빈 풍자’ (이승한, 2022-02-07)

새벽길 2022. 2. 6. 14:29

이제는 20대 대선을 화제에 올릴 때 윤석열 후보나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는 아예 무슨 말을 하지 않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굳이 제도 정치 얘기를 하고자 한다면 부족하나마 심상정 후보나 이백윤 후보가 얘기하는 바에 대해 검토하고 공론화하는 것이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29868.html
만만한 상대만 때리는 SNL코리아의 ‘속빈 풍자’ (한겨레, 이승한 _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2022-02-06 09:01)
[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본질 놓친 풍자코미디
후보의 혐오조장은 외면하는 ‘풍자’
대선 주자들이 내놓는 정책이나 표를 얻겠다는 목적으로 대놓고 혐오를 조장하는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뉴스 토크쇼 진행자부터 전국의 택시기사들까지 모두 다 마음 놓고 이야기하는 가십들만 한 차례 더 놀려먹고는 어떻게 대단한 정치 풍자를 한 것처럼 굴 수 있지?
물론 ‘콜드 오프닝’ 코너가 훑고 지나간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아들의 불법 도박과 성매매 의혹, 윤석열 후보 아내 김건희의 경력 조작과 감성에 호소하는 기자회견 등이 마냥 사소한 사안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에스엔엘 코리아>는 윤석열 캠프가 끊임없이 ‘여성가족부 해체’를 말하고 양성평등 채용목표제 폐지를 말하며 젊은 남성들의 여성혐오에 편승하는 것에 대해, 이재명 캠프가 후보의 <씨리얼>, <닷페이스> 채널 출연을 ‘페미 채널’이라는 일부 남성 네티즌들의 지적만 듣고 보류하기로 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외국인 건강보험 납부액이 급여 혜택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사실을 쏙 빼놓은 채 “중국인들이 줄줄이 가족들을 달고 들어와 건강보험 혜택을 본다”는 식의 발언으로 외국인혐오를 조장하는 윤석열 캠프의 혐오 조장 전략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활동가들의 발언에 “다 했죠?”라고만 대꾸하고 자리를 피한 이재명 후보의 회피도 다루지 않는다. 거대 양당 후보의 정책에서 노동정책이 깡그리 실종된 것도 <에스엔엘 코리아>의 관심사가 아니다. 정치 풍자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에스엔엘 코리아>의 관심사는 ‘정치인’을 풍자하는 것에 쏠려 있다. 정작 “그들이 정책을 통해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어 하는가”라는 ‘정치’의 본질은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에스엔엘 코리아>를 만들어가는 작가와 크루들부터 힘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언제나 더 다루기 만만한 쪽, 놀려도 크게 나무랄 만한 사람이 없는 쪽을 놀려먹어 버릇해온 이들이, 정치를 풍자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이 없는 건 일견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판적 시청자 ‘프로불편러’ 조롱도
<에스엔엘 코리아>는 ‘자영업자로 살아남기’라는 콩트를 통해 질병관리청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안이 계속해서 바뀌는 것을 비판했다. 그러나 <에스엔엘 코리아>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입은 영업손실을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 기획재정부의 재정 정책이나, 언제는 백신에 대한 공포를 조장했다가 나중엔 백신을 제대로 확보 못 했다고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말을 바꿔온 언론, 백신에 관련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안티백서들은 건드리지 못했다. 힘센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니, 끝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안을 조정하는 질병관리청만 조롱하고 끝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에스엔엘 코리아> 측은 마치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제대로 된 코미디를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듯, 더 나은 방송을 만들어달라고 비판하는 시청자들을 ‘프로불편러’라고 부르며 조롱하는 콩트까지 만들어 보인 바 있다. 비판도 해봤어야 제대로 하는 법, 비판하는 사람들을 ‘프로불편러’라고 일축했던 이들이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을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