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시도.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과)는 “지역 특성에 맞는 행정 서비스를 주민에게 제공하는 게 지방자치의 핵심이지만 공공시설, 사회 인프라 등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서로 협의·협력하는 공유도시 개념은 매우 의미 있다. 공유가 지역 생존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https://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1034244.html
병원·휴양림·화장장 등 함께 사용…‘공유도시’ 눈길 끄네 (한겨레, 오윤주 박수혁 손고운 기자, 2022-03-10 04:59)
충북 진천 음성 괴산 증평 2019년 ‘메가카운티’ 구상
삼척 동해 공동 화장장, 서울 서북 3구 폐기물 소각장 공유
경북 김천, 충북 영동, 전북 무주 등은 ‘의료버스’ 공동 이용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이 서로가 가진 복지·문화시설과 자원·자산 등을 나눠 쓰며 협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경계를 허물어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공유도시’ 개념을 도입해 눈길을 끈다. 지방뿐 아니라 형편이 나은 서울 자치구도 서로가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모자라는 것은 보태고, 남는 것은 나누는 공유에 공을 들인다.
■ 우린 ‘메가카운티’
충북 중부권 이웃자치단체인 진천·음성·괴산·증평군은 2019년 5월 ‘중부 4군 공유도시’를 선언했다.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등 광역자치단체들이 추진하는 메가시티보다 작은 인구 30만명 안팎의 메가카운티를 만들어보자는 구상이다. 이들은 업무협약과 실무회의, 조례 제정 등을 거쳐 현재 15가지 공유도시 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 대상 평생학습 네트워크가 눈에 띈다. 이들 네 지역 주민은 군 복지관 등이 진행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을 어느 곳에서든지 수강할 수 있다. 자연휴양림 등 자치단체마다 소유하고 있는 휴양시설을 이용할 때도 군민 할인 혜택을 서로에게 준다. 트랙터·이앙기 등 농기계 임대도 공유한다. 애초 인사 교류와 체육대회 등도 추진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미뤘다.
충북혁신도시가 들어선 진천과 음성은 조금 더 나가 문화·복지공간도 함께 만들고, 함께 사용한다. 지난해 2월 19억2천만원을 들여 공유 청소년문화공간 두드림센터를 조성한 데 이어, 오는 10월엔 198억원을 들인 주민 복합문화공간이 문을 연다. 두곳 지역화폐도 혁신도시 안에선 함께 통용된다. 중부 4군 공유도시를 제안한 송기섭 진천군수는 “인구·재정 등이 적은 자치단체가 서로가 지닌 자원·자산 등을 공유하고 활용하면 예산 효율화, 경쟁력 강화 등 여러 이점이 있다. 공유도시 추진으로 지역 주민이 서로 교류·소통하면서 중부 4군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지역 특성을 간직하면서도 통합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메가카운티’ 조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25년 6월께 음성군 맹동면에 들어설 국립소방병원 유치도 중부 4군 공유도시가 만들어낸 성과다. 전국 자치단체 62곳이 유치 경쟁에 나섰지만, 진천·음성과 충북도의 공유 전략이 먹혀 음성에 둥지를 틀게 됐다. 국비 1432억원에 음성 110억원, 진천 40억원, 충북도 50억원 등 모두 1632억원을 들여 3만9755㎡ 규모로 짓는 소방병원은 302병상 규모로, 19개 과목을 진료한다. 화상·재활 등 소방전문병원이지만 일반 진료도 병행해 충북 중부 4군은 종합병원 유치라는 숙원을 이루게 됐다. 조병옥 음성군수는 “중부 4군이 힘을 모아 유치한 소방병원은 지역 의료 사각지대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소방병원은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한다. 지역엔 큰 병원이 없어 아프면 무작정 서울로 가야 했지만 이젠 안 가도 된다. 소방병원은 전국 모든 소방인의 병원이기도 하지만 충북도민의 병원이기도 하다”고 자랑했다.
■ 화장장·매립장 함께 써요
주민 기피시설인 화장장이나 폐기물 매립장 등을 함께 쓰며 ‘윈윈’하는 자치단체들도 있다. 강원 삼척시와 동해시는 지난달 23일 동해시 강원남부로 하늘정원에 2046㎡ 규모 ‘삼척·동해 공동화장장’을 준공했다. 국비 28억6천만원, 도비 2억4천만원에, 삼척과 동해가 49억원을 공동 출자해 80억원으로 지었다.
운영비도 두곳이 절반씩 부담하고, 삼척·동해시민은 누구나 10만원만 내면 쓸 수 있다. 공동화장장은 두곳의 고민을 모두 풀었다.
삼척은 자체 화장장이 없어 주민들은 다른 자치단체 화장장을 찾아야 했는데, 관외 거주자로 분류돼 사용료로 60만원을 내야 했다. 화장장 건립에 따른 주민 반대 여론도 걱정이었다. 동해는 1978년 개장한 화장장이 있지만 시설이 낡아 불편했다. 최주헌 동해시 가족교육과 주무관은 “새로 지으려면 40여억원이 드는데 삼척과 협업하면서 예산을 절반으로 줄이면서도 최신 화장장을 갖게 됐다. 삼척도 우리도 윈윈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앞서 강원 춘천시와 홍천군도 2014년 공동화장장을 만들었으며, 강원 원주시와 횡성군, 경기 여주시도 2019년 공동화장장을 지어 도 경계를 허문 사례도 있다. 충북 진천·음성은 광역권 폐기물 소각시설 공유를 추진하고 있으며, 오는 8월 설계를 거쳐 2025년 6월께 하루 50t 규모 처리 시설을 만들어 함께 이용할 계획이다.
서울에서는 서북 3구(마포구·서대문구·은평구)가 폐기물 처리장을 공유한다. 3구에서 나오는 음식물쓰레기는 서대문구가, 생활폐기물 소각은 마포구가 맡고, 재활용쓰레기 처리(선별 작업)는 은평구가 맡는다.
동북 4구(강북구·노원구·도봉구·성북구)는 공공급식센터를 공유하고 있다. 공공급식센터는 농촌에서 공급받은 친환경 식자재로 만든 먹거리를 4개 자치구 어린이집·지역아동센터·복지시설 등에 공급한다. 물류장에서 각 자치구로 배송하기 쉽도록, 4개 구와 인접한 경기도 양주시에 공공급식센터를 지었다.
박경 전 목원대 교수(금융경제학과)는 “자치단체끼리 복지·의료·경제·산업·관광 등 사안별로 협력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예산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행복 공유하는 삼도봉 마을
민주지산(1242m)의 한 봉우리인 삼도봉(1176m) 아래 경북 김천시, 전북 무주군, 충북 영동군은 해마다 10월께 접경인 삼도봉에서 만나 우정을 다지는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를 한다. 음식·덕담을 나누는데, 올해가 34년째다.
이 인연을 끈으로 이들은 2016년부터 의료 사각지대인 오지마을을 찾아가는 의료공유버스 ‘삼도봉생활권 의료·문화 행복버스’(행복버스)를 운행한다. 국비 5억8천여만원을 지원받아 버스를 마련했고, 세 자치단체가 1억원 안팎씩 예산을 내 운영한다. 버스엔 흉부엑스선촬영기·골밀도검사기·혈액분석기 등 장비를 갖췄으며, 이동 영화관인 문화트럭도 동행한다. 행복버스와 문화트럭은 삼도봉 아래 영동군 상촌·용화면, 무주군 설천·무풍면, 김천시 봉산·대항·구성·부항면 등을 순회한다.
순회 진료에는 공중보건의,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이 동행해 지역 주민을 진료한다. 첫해인 2016년 연인원 4542명(영동 197명, 무주 902명, 김천 3443명)이 행복버스 진료를 받은 데 이어, 2017년 8483명(영동 1574명, 무주 1596명, 김천 5313명), 2018년 7573명(영동 1646명, 무주 1209명, 김천 4718명), 2019년 7419명(영동 1581명, 무주 1245명, 김천 4593명) 등이 이용했다. 2020년 이후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버스 운행을 중단한 상태다. 이들 자치단체 보건소 담당자들은 지난달 28일 영동군에서 만나 코로나 여건이 나아지는 대로 행복버스 운행을 재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홍선숙 영동군보건소 진료팀장은 “이들 지역엔 한두가지 이상 질환을 지닌 어르신들이 많은데, 행복버스를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코로나가 문제지만, 여건이 좋아지면 바로 운영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과)는 “지역 특성에 맞는 행정 서비스를 주민에게 제공하는 게 지방자치의 핵심이지만 공공시설, 사회 인프라 등의 효율적 활용 측면에서 서로 협의·협력하는 공유도시 개념은 매우 의미 있다. 공유가 지역 생존과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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