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

패러다임 전환 위한 7개 논점? 그럴싸한 진단, 진부한 대안 (레디앙, 김석연, 08-11-29)

새벽길 2008. 11. 29. 15:08
현재의 경제위기가 과거의 위기와의 다른 질의, 더 심각한 것이라는 김석연 변호사의 진단에 동의한다. 하지만 거기에 입각해서 제시하는 시스템 전환을 위한 논의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소위 사회투자정책을 언급했던 이들이 이미 제시했던 것들이다. 그럴싸한 진단에 진부한 대안이랄까.
 
물론 그렇다고 이러한 정책들이 의미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지금의 진보진영이 제출하여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전제로 노동운동의 힘이 있어야 여기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에 그렇게 힘이 있다면 사회투자정책 정도의 것을 통해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실현에 멈출 이유가 없다. 그것이 바로 사회투자정책의 딜레마이자 한계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김석연 변호사가 제안한 것이 왜 이 정도 수준에 그치는 것일까. 민주당의 소위 개혁파들이 제기하면 딱 맞겠다 싶은 제안인데 말이다. 과거보다 김석연 변호사가 더 현실적으로 되었고, 더 오른쪽으로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내가 이상한 걸까.
  
아래 글은 레디앙에 실린 것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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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긴 '경제 겨울'이 시작됐다, 10년 전보다 혹독한 이유 5가지 (레디앙, 2008년 11월 28일 (금) 11:42:29 김석연 / 변호사)
[경제위기 현실과 대안] 패러다임 전환 위한 7개 논점을 말한다
 
우선 과거의 위기는 한국경제만의 위기였지만 지금은 글로벌 위기라는 점이다. 경쟁력을 회복한 재벌자본 중심의 수출 활황은 당시 위기의 한국경제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글로벌 위기이며,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회복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번째로, 과거에는 존재했었던 내수부양을 위한 정책수단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내수부양의 주요한 수단이 되었던 건설경기 부양이나 신용카드, 할부금융 등의 소비자신용 확대수단과 같은 내수 진작을 위한 정책수단들이 지금은 고갈된 상태이다.
민간의 부채비율이 높아 추가적인 소비자신용의 창출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세 번째로, 과거에는 위기 이후 자산가치가 빠르게 회복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도 지속적으로 상승했지만 현재의 위기는 장기적으로 자산가치를 하락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네 번째로, 과거에는 구조조정 이후 기업과 가계의 부채 수준이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가계를 중심으로 부채증가를 통한 투자와 소비 증가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반대이다. 가계와 중소기업은 소득감소, 영업부진 상황에서 오히려 과도하게 끌어다 쓴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부채는 고정되어 있는 반면 부채를 상환하기 위한 소득창출능력은 약화되고 있고, 담보가 되는 자산의 가치도 하락하고 있기 때문에 과도한 부채를 정리하는 과정은 모든 경제주체에게 혹독한 구조조정과 절약을 강요하고 있다.
 
다섯 번째로, 과거에는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사람들이 퇴직금과 보유주택 등의 자산을 활용하여 자영업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자영업은 그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일 뿐만 아니라 이미 포화상태여서 오히려 구조조정을 통해 실업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는 영역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충시킬 수 있는 영역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갈 곳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 정부에게 남아 있는 정책수단이라곤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정책 역시 투자와 소비가 극도로 위축되는 상황에서 그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위기는 한국사회의 시스템 전환에 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기회일 수도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화된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지점들은 시스템 전환을 위한 논의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대외적 안정성을 고려할 때 적자국채 발행은 한계가 있으므로 사회안전망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가 행해져야 한다.
 
둘째, 고용보험제도를 선진국형으로 전환하는 과제를 추진하여야 한다. 예를 들면 영세자영업자를 포함시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급여의 지급수준을 높이며, 지급기간을 대폭 늘리는 등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셋째, 산업구조조정에 맞추어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시스템에 대대적인 공적투자가 필요하다.
 
넷째,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인적자원에 대한 장기투자효과를 가진 분야, 예를 들면 교육이나 의료 등의 공공서비스 영역을 중심으로 조세부담에 의해 대량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재생에너지 분야에도 대대적인 투자가 행해질 필요가 있다.
 
다섯째, 기존 취업자들의 노동시간을 합리적으로 분할, 재배치함으로써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다각도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여섯째, 미조직 노동자들의 노조조직률을 높이고, 산별노조의 단체협약 효력을 확대함으로써 하후상박의 연대임금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고, 최저임금수준을 높임으로써 임금격차를 축소하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일곱째, 위와 같은 시스템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과거의 노사정위원회보다 더 포괄적인 규모의 사회적 협의기구가 가동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