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행정 정책/규제,안전,행정통제,반부패

공공안전, 사회적 참사, 중대 산업재해, 국가 책임 관련 글

새벽길 2022. 12. 4. 18:55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8036.html
희생자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아침햇발] (한겨레, 안영춘 | 논설위원, 2022-11-20 16:04)
참사에 의한 희생은 개별적인 이야기마저 넘어선다. 정치적 맥락의 죽음이다. 슬퍼만 해서는 죽음의 원인을 사인화의 굴레에 가두고 만다. 책임자들을 처벌한다고 정의가 온전히 복원되지도 않는다. 참사의 배후에 죽음을 강제하는 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은 체제의 거대한 구조 앞에서 대면해야 한다. 희생자들에게 정당한 발언권을 제공하고 구술을 채록하는 것, 산 자들의 세계에 죽임의 힘이 작동하는 구조적 맥락을 가시화하고 전복하려는 것까지가 참사에 대한 애도의 전 과정을 이룬다.
그 과정이 순탄할 리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체제 지배세력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며 진상 조사 활동을 벌인 시간이 8년 남짓이다. 지금이 그 시간보다 고통스러운 건 뒤늦은 자각 탓이다. 이태원 참사는 긴 애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안전한 체제를 향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가혹하게 증명했다. 애도의 과정은 충분하지 못했고, 결과도 미완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애도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길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걸림돌이 숱하다. 우리의 발부리는 무엇에 걸린 것일까.
‘유사 애도’는 애써 식별해야 보인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정하고 슬픔 이외의 행위를 금지한 ‘탈정치화 기획’ 따위는 꼼수가 빤히 보인다. 지배 시스템 안에 내장된 자기지시적 원리를 찾는 건 훨씬 어렵다. 시스템의 힘은 자신이 정상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에 있다. 정작 시스템을 장악한 건 정상작동을 못 하게 하는 시스템 내부의 ‘반시스템’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날마다 드러나고 있는 (타락한) 관료주의를 보라. 그런데도 시스템은 해법마저 시스템 내부에서 찾도록 회로화돼 있다.
우리의 정동이 그 회로에 갇혀 있는 한, 애도의 완성은 요원하다. 지난 8년 남짓 우리가 그 회로를 꿰뚫어보려고 해왔는지 의문이다. 가령, 세월호의 침몰을 음모론으로 재구성하려는 일각의 집요한 시도는 죽임의 시스템을 냉철하게 응시하려는 애도의 이성을 흐려놓지 않았는가. 시스템의 악마성 대신 실제 악마를 색출하고자 하는 욕망은 이미 회로화된 욕망이 아니었나. 그리하여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할 수첩은 자기독백으로 채워졌고, 세월호 참사가 이태원 참사로 회귀하는 걸 막을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단 공개에 어떤 애도의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에 대한 추궁도 마찬가지다. 명단 공개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순수한 슬픔 이상을 금지하는 것과 동일한 구조 위에 있다. ‘유족들의 동의를 받았느냐’는 질문도 본질은 아니라고 본다. ‘명단 공개는 희생자들에 대한 말 걸기인가’로 질문은 전환돼야 한다. 생전 공적으로 통용된 이름 몇자 호명한다고 말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자칫 죽음에 신병 비관, 실연, 생활고, 수사 압박, 입시 실패를 배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기왕 이름을 불렀으면 애도의 대화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희생자들을 죽임의 시스템 회로 밖으로 구조해낼 수 있을 때까지.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210300045
이태원 참사에서 되풀이되는 한국증후군 (경향, 조광희 변호사, 2022.11.21 03:00)
원인과 책임을 밝히기는커녕 오리무중 만드는 한국증후군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은 후에야 이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을까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삼각지 근처로 이사한 지 4년이 되었다. 삼각지가 속한 용산구는 서울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어쩐지 어설픈 느낌이었는데, 몇년 전부터 새로운 도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실마저 이곳으로 이전했다. 위압적이고 비밀스러운 느낌의 청와대를 떠나려는 의지는 수긍할 수 있다. 의지를 보인 여러 대통령들이 못한 것을 윤석열 대통령이 과단성 있게 실행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러나 하루라도 청와대에 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은 태도로 부랴부랴 이전한 것은 이상했다. 도무지 다른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고 그저 결단이라기에는 기이했기에 주술적인 사연이 있으리라는 온갖 추측이 떠돈다. 세월이 흐르면 억측이었는지 실체가 있었는지는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다.
그 와중에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구의 첨단을 걷고 질서를 잘 지키는 것으로 이름난 나라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행정력과 경찰력이 무색하다. 서울에 돌연 블랙홀 하나가 떨어진 것 같다. 출퇴근길에 내가 타는 버스는 그 골목 옆을 지나간다. 나는 그 골목 주변에 놓인 추모의 꽃다발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사고 못지않게 큰 재난은 사건을 둘러싼 온갖 주장과 보도와 공세와 해명이 난무한다는 점에 있다. 대통령의 책임이라는 주장부터 다른 나라 축제에 왜 부화뇌동했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는 성토부터 참사를 정치화하는 세력이 문제라는 진단까지 온갖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솔직히 말해서 날마다 되풀이되는 레퍼토리라서 낯설지도 않다.
나는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건의 원인과 책임소재를 결코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 물러나고 누군가 유죄 선고를 받겠지만, 그렇다고 사건이 질서정연하게 일단락되지 않을 것이다. 아까운 사람이 뒤집어썼다는 서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진상을 모른 채 살아가고, 언젠가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할 것이다.
대통령실의 이전과 이 사건 사이에는 거의 틀림없이 자연적 인과관계가 있다. 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행위와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근접하여 이 정부에서 가장 큰 재난이 발생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관련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런 추론은 상식적이다. 그러므로 대통령과 그 의사결정에 관여한 사람들은 자숙해야 한다. 정치적·법적 책임이 있든 없든 수많은 이들이 죽었다면 성찰과 참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정치적·행정적·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연적 인과관계는 어떤 개인이나 조직의 책임으로 저절로 이어지지 않는다. 대통령실의 졸속 이전은 용산이라는 구역의 행정과 경찰의 업무에 분명히 부정적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영향이 행정의 잘못된 공백을 야기하고, 참담한 사건으로 이어졌으며,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조사와 엄정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선정적인 추측과 아니면 말고 식의 주장 말고는 정작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이 위대한 동시에 초라한 이 나라의 실상이다. 책임이 있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과 그저 불운일 뿐이라고 단정 짓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양극화된 정치세력, 사실에 천착하지 못하는 언론, 편으로 갈라져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이 아수라장이 된 채 뒤엉켜 있다.
대한민국은 나라의 기술력과 행정력으로는 분명히 어떤 사건의 원인과 과정과 책임을 밝힐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사건이 정쟁화되는 과정에서 그것을 밝히기는커녕 오리무중으로 만들고 마는 심각한 증후군을 앓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 도달한 나라치고는 너무 예외적인 이 현상을 ‘한국증후군’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치명적 증후군의 원인은 무엇일까.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존을 초래하는 선거제도, 정확한 팩트체크와 불편부당함을 외면하는 언론, 전 세계적으로 의견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인터넷 알고리듬이 이 증후군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 증후군을 치료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것을 누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국민적 저항? 언론의 자성? 지식인의 연구와 고언? 알다시피 모두 불가능하다. 가장 책임이 큰 정치권의 새로운 리더십? 그나마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오랜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증후군을 긴 시간 시름시름 앓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은 후에야 이 증후군을 치료할 수 있을까.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1212118005
행안부, ‘주최 있는 행사’ 149건 중 132건 ‘안전’ 검토 안 했다 (경향, 김원진·강은 기자, 2022.11.21 21:18)
올해 ‘지자체 행사 안전관리계획서’ 들여다보니
1000명 이상 땐 제출 의무
축제 944건 중 149건만 받아
현장 안전 점검 17건에 그쳐
정보공개 청구 확인한 12건
다중 인파 사고 대비 2건뿐
올해 전국적으로 지자체 공식 축제가 944건에 달하지만 축제·행사 안전을 담당하는 부처인 행정안전부가 지자체에서 받은 축제 안전관리계획서는 149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안부는 제출받은 안전관리계획서 중 상당수는 별도의 ‘계획서 검토’ 등을 하지 않았다. 특히 ‘다중 인파’에 대비한 안전관리 검토도 부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행안부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이후 줄곧 ‘주최 없는 행사’는 지자체나 행안부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주최가 있는 축제도 미흡하게 관리해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향신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행안부 안전관리계획서 제출 지역축제(2022년)’ 내역을 보면, 올해 행안부가 기초지자체에서 제출받은 안전관리계획서는 총 149건이다.
공공·민간이 주최하고 1000명 이상 참석이 예상되는 축제는 재난안전법 66조에 근거해 안전관리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 작성 주체는 민간 축제 개최자나 기초지자체다. 행안부는 지난 1월28일 축제 안전관리계획서를 제출하라는 취지의 내용을 담은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보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의 2022년 지역축제 개최 계획을 보면, 올해 전국에서 열리는 지역축제는 944건이다. 경연대회, 음악회 등은 제외한 수치다. 지자체 공식 축제 944건 중 149건만 안전관리계획서를 제출받은 셈이다.
행안부가 안전관리계획서를 받은 149건은 올해 전국에서 예정된 축제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달 15~1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열린 ‘지구촌축제’ 안전관리계획서도 행안부는 제출받지 않았다. 지구촌축제에는 약 100만명이 다녀갔다. 행안부 관계자는 “재난안전법령상 행안부가 기초지자체에서 안전관리계획서를 제출받을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행안부는 안전관리계획서를 제출받은 축제 149건 중 17건에 현장 점검을 나갔다고 밝혔다. 나머지 132건은 안전관리계획서만 제출받고, 기초지자체에 별도의 수정 지시 등이 없었다고 한다.
행정 인력 부족 등을 감안해 모든 현장을 방문하기는 어렵더라도 지자체가 제출한 안전관리계획서는 행안부가 검토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안부가 문서 내용까지 공개한 12건의 안전관리계획서를 보면, 대부분 30~80쪽 분량이었다. 그러나 4~10쪽에 불과해 구체적인 내용 파악이 어려운 안전관리계획서도 3개 있었다. 계획서에는 화재, 식중독 예방 등이 주로 언급됐다.
안전관리계획서 작성의 지침인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안전관리 매뉴얼)이 만들어진 계기가 ‘다중 인파’로 인한 사고였음에도, 다중 인파에 대비한 구체적 내용은 공개된 12개 계획서 중 2개에만 담겼다. 안전관리 매뉴얼은 매뉴얼 개발 배경을 소개하며 ‘2005년 경북 상주시민운동장 압사사고’를 언급한다. 이 사고로 11명이 숨지고, 162명이 다쳤다.
행안부는 현행 재난안전법상 기초지자체에서 열리는 축제의 안전 책임은 지자체에 있고, 이를 감독하는 책임은 광역지자체에 우선적으로 있다고 본다.
행안부가 내세운 원칙과 달리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 사이에는 소통이 제때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 지난달 용산구에서 열린 지구촌축제에는 100만명이 몰렸지만, 용산구와 서울시 사이 안전에 관한 사전 논의가 없었다. 용산구는 안전계획을 세웠고, 이후 자체적으로 지역축제 안전관리 심의위원회를 열어 안전계획을 심의했다. 관련 내용은 서울시나 행안부에 사전 공유되지 않았다.
행안부가 현장 안전점검 내역을 강조하며 밝힌 ‘여름철 물놀이 현장 점검’ 사례는 기존 행안부 입장과 배치된다.
행안부 관계자는 2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기초지자체에서 안전관리계획서를 받지 않았더라도 여름철 물놀이를 하는 곳 등 총 50여곳에 점검을 나갔다”며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도 안전점검을 했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지금까지 ‘주최자 있는 축제’의 안전만 행안부 소관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복수의 행안부 관계자들은 이태원 참사 발생 이후 줄곧 ‘핼러윈 축제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라 지자체나 행안부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280300045
반복되어서는 안 될 말 (경향,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2022.11.28 03:00)
선명하게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치과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TV를 등지고 앉았는데, 맞은 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TV에 집중된 것을 깨달았다. 몸을 돌려보니 화면 속에서 커다란 배가 기울어지며 가라앉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큰 배가?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라고? 어떡하지? 하지만 걱정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빨간 바탕에 커다란 흰색 글자,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속보 자막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아유, 그럼 그렇지. 저 고등학생들, 오늘 저녁에 무용담 자랑 엄청나겠네. 그러고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현실을 알게 된 것은 치료를 마치고 지하철로 이동해 일터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8년 전 일이지만, 그 순간의 느낌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분노도 슬픔도 아닌, 그냥 ‘얼음’이었다.
4주 전 주말 저녁, 바로 이 코너의 글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휴대전화에 재난 알림 메시지가 떴다. 코로나19 이후 재난 알림 문자에 둔감해졌지만, 이날은 달랐다. 오전에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괴산의 지진 발생 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무슨 일? 이태원에서 심정지 환자가 다수 발생했단다. 아무 설명도 없었다. 불이 났나? 혹시 가스 유출? 건물 붕괴? 얼른 트위터에 접속했다. 그리고 영화에서조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을 보았다. 전쟁터도 아니고, 병원 응급실도 아닌, 서울 시내 한복판 도로 위에 여기저기 사람들이 쓰러져 있고 ‘단체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바깥에서는 다급한 구급차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저 구급차들이 바로 이 작은 화면의 흔들리는 영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참이었다. 초현실적이었다.
참사가 발생하던 두 순간의 기억이 충격의 스냅샷이라면, 이후의 수습 과정은 놀라움과 분노, 통탄의 롤러코스터였다.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피해자에게 위로와 보상을 제공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것. 당연한 수순이지만, 이것이 말도 안 되게 어려워지면서 피해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기억을 돌이켜보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 당연한 것을 위해 정치인에게 무릎 꿇고 사정했다. 거리에서 노숙도 했고 물대포도 맞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떤 유족이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정부와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되고 정부의 은폐와 책임회피가 계속되면서, 이들은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되자마자 ‘순수성’을 의심받았다. 게다가 보상과 관련한 거짓 정보는 피해자들을 분열시켰고, 시민들이 피해자를 비난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여당 정치인들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는 유가족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픔을 공유할 수 없게 만들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정부와 만나 추모 절차나 진상규명에 대한 집단적 의견도 제시할 수 없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에서 얻은 그들만의 교훈이리라. 정부는 갑자기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하면서도 굳이 ‘참사 희생자’를 ‘사고 사망자’로 부르게 했다. 그러면서 참사의 책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보내는 중이다.
“가장 큰 치유의 약은 뭐냐, 딱 하나라고 보거든요, 죽은 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정말로 안타까운데, 그 죽음으로 인해서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고 당신 자녀의, 이웃의 죽음이 그렇게 헛되지 않았어. 우리는 이렇게 기억할 것이고 이렇게 바꾸었어, 라고 하는 게 가장 큰 선물일 거 같아요. 그게 지금 안 되는 거예요, 왜 죽었는지도 모르겠어, 사방이 나를 지금 방해하고 있어, 거기서 무슨 치유가 된다는 것은 사실은 웃기는 거죠. 지금도 때리고 있으면서 약 먹으라고 하는 것과 똑같아요.” 세월호 관련 연구를 하면서 2015년에 만났던,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유가족의 말이다. 2022년의 유가족이 다시 이런 말을 하게 할 수는 없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113017143769859
사회적 죽음에 무감한 당신들의 사회에서, 건투를 빈다 (프레시안,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2022.11.30. 17:15:39)
[기고] 사회적 죽음은 더 오래, 깊이 추모되어야 한다
수도권 최대 화물역인 오봉역에서 또 한명의 입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입환은 다수의 철도차량을 나뭇가지처럼 펼쳐진 선로 곳곳으로 이동시키며 분리, 연결해 재배열하는 일이다. 철도 본선으로 내보내기 위해 새로 열차를 편성하는 과정이 입환인 셈이다. 철도 본선과 달리 입환 구내는 위험이 가중되더라도 업무 효율을 위해 충돌 방지 및 신호 장치 상당수가 제외된다. 그렇다보니 기관사는 주로 신호가 아닌 입환 노동자의 무전 지시에 따라 운전한다.
입환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위험과 마주한다. 열차, 선로, 전철주, 선로전환기 등 죄다 쇠덩어리인 공간에서 바쁘게 이동하며 일하기 때문이다. 특히 오봉역은 촘촘한 선로 간격과 열악한 시설물 등 위험한 환경으로 악명 높다. 더구나 기관차가 열차 선두에서 끌지 않고, 후미에서 밀고 가는 ‘추진운전’ 입환 비율이 매우 높다. 이때 기관사는 연결된 차량 수에 따라 멀게는 수백미터 뒤에서 운전하기에, 앞 상황을 알 수 없다.
고인 역시 150미터가 넘는 열차를 추진 입환 중 참변을 당했다.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는데, 다른 선로로 가야 할 열차가 고인이 있던 선로로 진입해 왔다. 2014년에도 유사 사고가 있었다. 두 사고 모두 3인조 작업을 2인이 하다 발생했다. 축구장 수십배에 이르는 입환장에서 동료 한명의 존재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오봉역에서는 사망사고 외에도 낙상, 발목 절단과 같은 산재가 빈발했다. 이미 오래 전 철도공사 노사 간에 인력 확보, 추진운전 감축을 위한 선로 개량, 위험 시설물 교체 등 여러 개선안이 마련되었음에도, 국토교통부에서 예산 문제로 인해 거부당했다. 
결국 별로 개선된 부분 없이 노동자들은 위험을 감내하며 일해왔다. 오봉역이 철도 물류 허브로 기능할 수 있었던 건, 노동자들의 땀, 그리고 말 그대로 ‘피’ 때문이었다. 비용 핑계로 인력 충원, 시설물 개량을 도외시한 것은 생산성을 위해 노동자들을 위험에 내몰았다는 의미다. 그래서 고인의 죽음은 잘못된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 사회적 죽음이다.
이러한 사회적 죽음 앞에서 정부는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오봉역에서 더 많은 사고가 안 난 이유는 노동자들이 안전에 신경쓰며 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 차관은 “안전무시 작업 태도를 타파하라”며 고인을 모독했다. 원희룡 장관은 소관 책임은 언급도 없이 조사 후 코레일 관련자를 엄정 조치하겠다고 엄포 놓고, 사고는 노조 때문이라고 강변했다. 비용 때문에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주무부처 장차관이 수치심은커녕 책임에 관한 체면치레조차 하지 않았다.
비단 오봉역 사고만이 아니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정부의 규제 실패와 법령 미비로 인해 발생한 무수한 사회적 죽음이 작업자 과실로 치부된다. 일하면서 한번도 죽을 위험에 처해 보지 못한 자들이 노동자를 탓하고 있다.
그 뿐인가. 숱한 생명이 하염없이 스러져간 이태원 참사가 정치적 책임 문제로 번질까봐 윤석열 정부는 참사의 탈정치화를 밀어붙였다. 대형 재난을 ‘사고’로 축소하고, 책임은 현장에 전가하며, 군사작전 하듯 사회적 애도를 신속히 종결시키려 했다. 유족은 안중에 없이 정부는 이태원 참사를 대중의 뇌리에서 빠르게 지우려 한다. 친정부 세력은 희생자들이 놀다 죽은 거라며 조롱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폄훼하고, 근거 없이 희생자와 유족을 비난한 그들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안전 민감도는 대단히 높여졌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 안위만 소중할 뿐, 사회적 죽음을 깊이 애도하고, 성찰해 보지 않은 당신들은 정부나 기업이 아닌 노동자와 시민한테 책임을 돌리고 있다.
현대 안전이론에 따르면, 위험은 말단 현장이 아닌 관료와 경영자의 책상에서 시작된다. 사회적 죽음의 책임은 정책을 결정하고, 사회 자원을 분배하는 정치인과 관료, 경영진에게 일차적으로 물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의 사슬 정점에 있는 자들에 대한 사회적 처벌과 감시는 취약하다. 되려 그들은 사회적 죽음을 입맛대로 가공한다.
사회적 죽음을 하찮게 여기는 당신들이 타인의 생명을 중시할 리 만무하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생명을 대하는 태도와 정확히 일치한다. 타인의 죽음과 생존에 무감한 당신들이 통치하는 시대. 그런 정부를 옹호하는 당신들의 사회.
이런 시대라 할지라도 희생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사회적 죽음은 더 오래, 깊이 추모되고, 반면교사의 사회적 상흔으로 남아 승화되어야 한다. 여기 그러한 차원에서 나선 이들이 있다. 철도, 지하철, 도로 등 공공 안전과 직결되는 일터의 노동조합들이 노동자와 시민의 사회적 죽음을 막기 위해 단체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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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9 22:07
태원 참사 이후 공공안전과 관련된 글을 모았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국가 책임의 강화가 필요한데, 지금은 이를 요구만 할 수 있을 뿐 현실화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배권력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952
국가 소환 말고 파쇼국가 개조해야 (매노,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2022.11.14 07:30)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2주일이 지났다. 이 참사를 놓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날 그곳에 국가는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국가의 부재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심지어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국가의 부재를 언급한다.
지난 12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10만명의 노동자가 결집해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숭례문 앞길에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 촛불집회’가 개최됐다. 이 촛불집회에서 사회자는 “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국가가 책임져라”고 다함께 외칠 것을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국무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하며, 진상규명 후 잘못한 공직자들은 처벌돼야 한다고 했다. 집회장 주위에 내걸린 현수막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사퇴해야 한다는 글귀도 눈에 띄었다.
그런데 국가가 부재했음을 비판하면서 국정 책임자가 물러나게 하는 것이 능사일까? 먼저 총리 이하 임명직 관료들이 물러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조·중·동’조차 사설에서 취임 6개월도 되고 지지율도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국정쇄신’ 차원에서 개각을 단행하라고 권고한다. 이처럼 임명직 관료들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면하고 민심을 무마하는 하나의 방책일 뿐, 국가가 책임지는 조치가 아니다. 그들이 감옥에 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는 것은 어떤가.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를 요구하는 쪽이든 이를 거부하는 쪽이든 모두 이것을 대단한 일로 평가한다. 하지만 대통령 사과를 대단하게 평가하는 것은 대통령을 국민의 통치자로 바라보는 권위주의적 사고의 표현일 뿐이다.
그러면 대통령이 퇴진하도록 하면 되는가? 세월호 참사만으로 박근혜 정권이 물러나지 않았듯이 윤석열 정권이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는 이번 이태원 참사만으로는 근거가 불충분하다. 윤석열 정권에 대해서도 이태원 참사와 더불어 그동안의 폐정을 한데 묶어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윤석열 정권은 0.7%의 득표 차이로 집권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에 승리한 장수가 전리품을 챙기듯이 정권을 휘두르고 있다. 첫째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국회 의석 과반을 훌쩍 넘긴 야당이 반대하는 데도 그는 이것을 강행했다. 둘째는 인사권 행사다. 그는 검찰 출신 측근들에게 권좌를 나눠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검찰기구화’했다.
셋째, 그는 선거 당시 공정과 상식을 내세웠는데, 당선 이후에는 이 말은 쑥 집어넣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자유를 내세운다. 그런데 그가 내세우는 자유는 상식과 달리 국민의 자유가 아니라 재벌과 자본의 착취와 축적의 자유이다. 자본의 자유를 위해 산재 사망사고가 세계 최고인 나라에서 걸레가 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마저 개악하려고 한다.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도 완화하고, 부정식품 안전 규제도 완화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 질서유지에 꼭 필요한 합리적 규제만 남겨 놓겠다”고 한다.
넷째, 그가 말하는 자유는 이승만의 자유처럼 반공 파시스트의 자유다. 북한과의 전쟁을 선동하고 노동자·민중을 탄압하는 자유이다. 그는 경찰국을 신설하고 초대 경찰국장에 보안사 프락치 전력의 인물을 앉혔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퇴진’은 부적절하다. 그것은 유산된 촛불혁명을 떠올린다. 촛불혁명 당시 민중의 박근혜 ‘하야’ 요구는 ‘퇴진’으로, 그리고 ‘탄핵’으로 순차적으로 순화됐다. 이렇게 순화된 합법적 절차를 따라 박근혜는 국회에서 탄핵이 소추되고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돼 퇴진했다. 하지만 헌법 질서는 하나도 바뀌지 않으면서 기존 헌법 질서에 의거한 선거로 보수야당 후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그 결과는 촛불혁명의 배신과 실종이었다. ‘퇴진’ 요구는 이런 실패한 전철의 되풀이를 예고한다.
그 대안은 ‘타도’다. 이것은 기존의 헌정질서와의 단절을 함축한다. 4월혁명 이후에도 이승만이 하야하고 나서 허정 과도정부가 수립되는 한편 헌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기존 헌정질서와 단절하지 못한 결과 권력은 민중에게 주어지지 않고 한민당의 후신인 민주당에 주어졌다. 그리고 혁명은 배반당했다. 이런 실패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파쇼헌정은 중단돼야 한다. 구정권이 물러간 후에 들어서는 과도정부는 기존 국가 관료에게 맡겨질 것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해서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참답게 민주적인 헌정질서를 세우기 위해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새 헌법에 의해 의회와 행정부 및 사법부를 새로 구성해야 한다. 이렇게 국가를 개조하는 급진적 전망이 없이는 지옥 같은 현실을 타파할 수 없다.
“국가가 부재했다” “국가가 책임져라”는 비판에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원인을 캐묻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우리 국가가 원래 그런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국가는 분단과 예속 질서 하의 국가다. 이같은 질서 하에서 어느 정권하에서나 ‘파쇼통치’가 국민을 지배한다. 그리고 그 파쇼통치체제가 사회구성체의 토대인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분단과 예속의 질서를 타파해야 하고, 분단과 예속의 질서를 타파하려면 이 파쇼통치체제부터 타파해야 한다. 파쇼통치체제를 타파하려면 헌법 자체를 새로 제정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이니 노동악법이니 하는 파쇼악법을 두지 못하게 헌법에 대못을 박아야 한다. 또 국정원을 해체하고 검찰, 경찰, 법원 같은 파쇼통치기구들을 민중의 밑으로부터 통제를 받도록 못 박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파쇼통치의 물적 토대인 천민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변혁해야 한다.
이런 급진적 전망 없이 윤석열 정권 퇴진을 얘기하는 것은 결국 부패하고 기만적인 더불어민주당에게 정권을 넘겨주자는 얘기다. 다당제를 하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111410111801359
"약속은 하지만 실제 책임지는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프레시안, 시민건강연구소 | 2022.11.14. 10:34:56)
[시민건강논평]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어내자
이태원 10.29 참사 후 2주가 흘렀다. 일상으로 돌아온 듯 하다가도 문득 먹먹하고 무기력하고, 화가 날 때가 있다.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들의 인식과 태도가 슬쩍 엿보일 때 특히 그렇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야당의 인식과 진단, 대응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의 그것과는 괴리가 너무 커서 암담하다. 참사 이후에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추가적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참사가 아닌 사고, 희생자 아닌 사망자로 규정하는 데서부터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다. 처음에는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지금은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직접 관련 있는 개인과 조직의 행위를 조사해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아마 개인과 조직을 문책하는 것에서 좀 더 나아가더라도 일부 조직 개편이나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을 추가하는 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사고를 당한 사람들과 시민들에게 보상과 심리 지원을 하면 정부는 스스로 할 만큼 했다고 여기리라 예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느끼는 문제의 핵심은 참사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책임지는 국가의 부재다. 
돌이켜보면 이번 참사뿐이 아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지 않은 크고 작은 사건들의 배경에는 국가권력의 책임회피가 있었다. 책임회피는 사후 대응 방식이면서, 사전에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은 그보다 높은 우선순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민의 삶을 지키는 책무가 최우선의 가치가 아니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무엇인가. 진상규명을 하고 대책을 세운다면 표면적, 우연적 요인을 넘어 이 부분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권력이 스스로 책임회피를 성찰할 의향과 역량이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 이를 감시하는 시민들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는가보다 실제 시행하거나 시행하지 않는 정책이 무엇인가 주의를 기울이면, 정부가 우선시하는 것이 보인다. 예를 들기 위해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SPC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망한 이후 기업의 대처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고, 대통령은 안타깝다 했다. 그와 동시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는 건 무슨 의미인가.
코로나19 유행으로 의료체계 붕괴를 걱정하던 시기에 의료진들이 고군분투하며 온몸으로 위기를 막아냈다. 정부가 나서서 ‘덕분에’ 챌린지를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국립중앙의료원과 국립대병원은 오히려 인력을 감축할 예정이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유행이 잠잠해지고 인력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의료진의 노동 강도는 올라가고,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추진하는 것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예산을 어디에 투입하거나 투입하지 않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정부의 본심을 확인하기 좋은 방법이다. 이번 달 들어 한국철도공사 노동자가 작업 중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어서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가 탈선했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무슨 속셈인지 철도공사를 다 바꿔야 한다고 탓했지만, 지난 몇 년간 시설 유지보수인력 및 운영인력 충원 요구를 정부가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3년 예산에는 급기야 단 한 명의 인력 충원도 반영되지 않았다. 사건 이후 기재부에서 공공기관 혁신 계획 검토 시 필수안전인력을 감축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례. 폭우로 반지하 방에서 일가족이 목숨을 잃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정부는 근본 대책을 마련하겠다 했지만,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 7천억 원 삭감했다. 예산 없이 마법처럼 해결할 방법이라도 있는 것일까.
약속은 하지만 실제 책임지는 국가는 보이지 않는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것! 이제 이것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이 자본가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경제성장과, 효율성을 중심에 두는 통치 비용의 절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선택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국가의 책무성을 축소하는 것이 통치전략이고, 이 전략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는 것은 시민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거나 스스로 내면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책임지지 않으면, 시민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이를 받아들이면, 안전과 생명, 인간다운 삶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 되고, 결국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 된다. 개인이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고 알아서 자신의 삶을 살되 그 책임 역시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되는 사회!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것 같지만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에게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일 리 없다.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기반한 시민사회의 전망은 더욱 약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국가권력이 원하는 것이 이러한 상태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기반한 사회를 꿈꾸고 있다면 시민사회는 반격해야 한다. 시민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순위가 되는,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어내야 한다. 앞서 정책과 예산을 언급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반격은 사회적 규범과 가치, 문화, 정치를 아우르는 간단치 않은 작업이며,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어렵고 복잡해도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수밖에 없다. 이태원 참사의 구조적 원인까지 진상규명이 이뤄지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정책을 만들어 나가도록, 그리고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예산안이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예산안으로 거듭나도록 감시하고 목소리 내고, 소통하자. 지난 주말에는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국가의 통치 전략에 대한 저항의 촛불이 더 늘어났다고 하니 사회권력의 반격은 이미 예상보다 많이 진행되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7381.html
[기고] 국가의 부재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 (한겨레, 권혁용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겸 정치연구소장, 2022-11-15 18:09)
이태원 참사 사진을 1면에 실었던 미국 <뉴욕 타임스>는 “확실히 막을 수 있었다”(absolutely avoidable)고 보도했다. 여기서 참사를 막지 못한 주체는 정부, 즉 국가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는 전국 각지 학생들이 그린 타일벽화가 있는데, 그중 한 타일벽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라가 있었는데….”
이태원 참사와 국가의 부재는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과 맞물려 있다. 정치학자 낸시 버메오는 합법적으로 선출된 집권자가 민주적 수단을 활용해 민주주의 가치와 규범, 작동원리를 점진적으로 잠식해 가는 현상을 민주주의 퇴행이라 불렀다. 그 특징적인 징후는 행정부 권력 증대와 야당 괴롭히기다. 행정부 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견제하는 입법부와 사법부를 약화하고, 정치적 경쟁자인 야당을 부패집단 또는 악의 무리라는 프레임을 씌워 수사-기소라는 매뉴얼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윤석열 정부는 경찰, 검찰, 감사원 등 억압적 국가기구를 동원해 야당 괴롭히기에 여념이 없다. 트럼프도 집권 뒤 한해 동안 한 일은 오바마 행정부의 업적을 뒤집는 일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현재까지 한 일도, 잊을 만하면 나오는 대통령 설화와 문재인 정부 비난·정책뒤집기 아닌가? 경찰, 검찰, 감사원 등 국가기구를 동원해 야당을 괴롭히면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등엔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어떤 것을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권력일 때도 있다.
윤석열 정부 집권당은 대통령 충성파로 지도부를 구성했고 유승민, 이준석 전 대표는 체계적으로 치밀하게, 그리고 ‘적법한 절차를 따라’ 각각 배제됐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들의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시행령 정치를 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대표적이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우회하는 시행령 개정도 추진되고 있다. ‘시행령 정치’는 미국에서도 이뤄졌는데 정치학자 앤드루 리브스와 존 로가우스키는 유권자 다수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로부터도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의회를 우회하는 방식은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국가권력은 선택적으로 행사되고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들을 방기한다. 국가권력이 권력분립과 견제와 균형을 핵심으로 하는 입헌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무너지도록 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애 단어인 ‘자유’는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다. 고교생이 그린 만평 ‘윤석열차’에 “엄중 경고”했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자유와 자유주의에 엄중히 경고한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책임성의 체제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에 행정부 권력이 책임을 지는 수평적 책임성이 그 하나이고, 시민과 유권자에게 책임을 지는 수직적 책임성이 또다른 하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국회에 책임을 진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시민과 유권자에게 책임을 진다는 자세는 있는가?
정치학자 다니엘레 카라마니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두가지 위협으로 포퓰리즘과 전문기술 관료주의를 든 바 있다. 시민들의 신탁위임(트러스트)을 받은 전문기술 관료주의(expert technocracy)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권력자에게만 성과를 보여주고 평가받을 뿐 시민의 요구와 민의에 반응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언급했듯이, 정치적으로 동등한 시민의 요구에 정부가 지속해서 반응하는 체제다.
판사 출신 ‘법률 전문가’ 행정안전부 장관, 시행령 정치의 법리적 근거를 강변하는 검사 출신 ‘법률 전문가’ 법무부 장관, 대법원에서 보복기소라며 공권력 남용으로 지적받고도 권력 핵심에 발탁된 검찰 출신 ‘법률 전문가’ 대통령실 관계자, 정경관 유착의 아이콘 ‘경제 전문가’ 국무총리, 그리고 ‘부패수사 전문가’ 대통령을 보면, 전문기술 관료주의의 위협이 이 나라에서 현실화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참사에 대해, 희생자에 대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공적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전문기술 관료 출신들은 자신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대한 이해가 없다. 지금 이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기에 한국의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5849723
시동 걸린 민주노총 총파업…꽉 막히는 勞政 갈등 (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2022-11-16 05:00)
11월 말부터 민주노총 공공부문·화물연대·학비노조 잇따라 총파업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와 노동시간·임금제도 개편안 세부 내용 발표 앞둔 시점에서 파업 나서
정부의 중대재해 대응 변화 우려에 노란봉투법 개정 논란까지…勞·野 정부·여당 압박 본격화
공공부문 등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이 달 말부터 대(對)정부 파업의 기치를 올린다. 최근 노동계 이슈가 주요 정치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노동계가 본격적인 정부 압박에 나선 것이다.
공공부문부터 화물연대·학비노조까지…잇따르는 파업의 불길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15일 대정부 공동파업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대정부 공동 파업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노조는 △안전인력 충원과 작업환경 개선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 제·개정 및 규제 강화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단·안전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파업에는 의료연대본부, 서울교통공사노조, 철도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인천공항지역본부, 건보고객센터지부, 화물연대본부 등 14개 산하 조직이 대거 참여한다. 특히 30일에는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사측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안에 반발하며 6년 만의 양대노총 합동 총파업을, 다음 달에는 정부가 '은밀한 민영화'를 추진한다고 반발하던 가운데 오봉역 사고를 계기로 정부의 인력 감축 기조도 함께 문제 삼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준비 중이다.
대규모 파업을 예고한 노조는 공공운수노조만이 아니다. 24일에는 화물연대가, 25일에는 학교 비정규직 노조(학비노조)의 급식·돌봄 노동자들이 파업의 줄기를 이어간다.
화물연대의 경우 지난 6월 총파업을 불렀던 안전운임제 일몰기한을 폐지하라고 주장한다. '안전운임제'는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 특고)로 분류되는 화물차 운전기사들의 '최저임금'과 같은 제도다. 2018년 국토교통부가 정한 안전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면 과태료를 부과하는 안전운임제가 도입됐지만, 화주와 운송사업자들의 반발에 2020년~2022년 3년만 시행하도록 제한이 걸렸다.
일몰기한을 앞두고 지난 6월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벌인 끝에 정부가 안전운임제를 연장 적용하고 이를 지속·확대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약속했다. 또 야당을 중심으로 일몰기한을 폐지하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별다른 진전이 없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여전히 안전운임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자 화물연대가 다시 파업 카드를 집어든 것이다.
25일 하루 파업을 진행할 학비노조는 기본급이 최저임금보다도 낮고 지역별·직종별로 체계가 다른 점, 이 때문에 임금이 정규직의 70%에 불과한데다 복리후생 수당을 지급하는 기준에도 차별이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무교섭에서 정부가 임금·수당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또 다른 핵심 쟁점 중 하나인 노동 환경 개선 논의는 아예 빠져있다는 것이 학비노조의 지적이다.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발병률은 일반인의 6배에 달한다. 지난 9월 건강검진에서는 전체 급식 노동자 5979명 중 27.3%인 1634명이 폐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지난해 12월 안전보건공단 실태조사 결과 조사대상 93개교 모두 환기시설이 불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학비노조는 급식노동자 배치기준을 하향 조정해 인력난을 줄이고, 급식실 환기시설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勞, 노동 이슈 부각 앞두고 선수 치나…'지원 사격' 야권도 정부·여당과 대립각
이러한 민주노총의 대(對)정부 파업에서 주요한 명분에는 우선 현 정부의 '공공부문 민영화' 기조에 대한 반발에 방점이 찍혀있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통해 인위적인 인원 감축 기조를 밝혔다. 나아가 이 달 말에 기재부는 인력 감축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공공기관 혁신 계획'을 확정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350개 공공기관에서 내년까지 정원 6734.5명(시간제 노동자 포함)을 감축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로 하위직 노동자들이 감축될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인력 감축은 고스란히 공공부문 기능의 민간 부문으로의 이전을 의미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더 나아가 연말에 노동 이슈가 주요 쟁점으로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한 발 앞서 정부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다음 달 13일이면 윤석열 정부의 핵심 노동 정책인 노동시간·임금 제도 개편안에 관해 전문가 기구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구체적인 권고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주52시간 무력화 및 직무성과급제의 부활 시도라며 비판해왔다.
또 정부가 이 달 안으로 발표할 것이 유력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과, 연내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령 개정안 역시 '처벌과 규제'에서 '자율과 예방'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것으로 알려져 노동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회로 눈길을 돌리면 양대노총 모두의 최대 주력 과제인,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조법 2, 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동력을 부여하려는 목적도 엿보인다.
관건은 이처럼 경색되고 있는 노정 관계를 정부가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는 점이다. 현 정부의 '작은 정부' 기조와 노동시간·임금제도 정책 방향에 손을 대는 것은 정부의 노선을 완전히 바꾼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또 중대재해 관련 이슈나 노란봉투법의 경우에도 경영계의 반대가 극심한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의 입지가 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반면 야권은 노동계와 협력해 정부와 여권을 적극 압박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14일에는 한국노총을, 15일에는 민주노총을 잇따라 방문해 정부의 민영화 시도와 노란봉투법, 중대재해법 등을 거론하며 노동계를 지원사격했다.
정의당 이정비 대표도 15일 민주노총을 찾아 노란봉투법에 대해 "내일(16일)부터 정의당 의원들이 노란봉투법을 위해 국회 안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것을 꼭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히고 민주노총과의 협력을 약속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7580.html
[편집국에서] ‘세월호 참사’와 다른 결말을 원한다면 (한겨레, 전정윤 | 사회정책부장, 2022-11-16 18:47)
‘이태원 참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과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큰소리칠 때까지만 해도 감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재난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몹시 부적절한 발언이라 여겼을 뿐이다. 한국 정부의 디엔에이(DNA)에 적어도 세월호 참사의 교훈만큼은 각인돼 있어, 설마 이태원의 그날이 맹골수도의 그날과 포개질 리는 없으리라 믿었다.
불법 증개축과 행정 태만, 안전사고 예방 미비, 신고전화 무시, 컨트롤타워 실종, 경찰과 소방의 초기 대응 실패, 재난안전통신망 부재와 사상자 수습 혼란…. 결과적으로 예고된 참사. 세월호 참사 때 온 국민의 ‘국가는 없었다’던 탄식이 이태원 참사로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면서 정부에 대한 믿음은 회의로 변해갔다. 급기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의 ‘1시간21분 미스터리’를 접하곤 디테일까지 소름 끼치는 기시감에 할 말을 잃었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발생 이후 50분이나 늦게 현장에 도착했고, 참사 발생 1시간21분 뒤에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골든타임에 어떠한 조처를 했는지 확인되지 않은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의 ‘1시간 미스터리’ 역시 8년이 흐른 지난 9월 발간된 ‘4·16 세월호참사 종합보고서’에서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다.
모든 참사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발생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참사 뒤에는 누구 하나라도 참사 발생 전 ‘전조’에 제대로 대처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는 뒤늦은 후회가 수반된다. 2014년 4월16일 맹골수도의 세월호 침몰은 돌발적 사건이 아니었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증개축과 과적, 그 위험한 배를 바다로 내보낸 해양수산부·한국선급·해운조합, 절박한 신고에 다급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해경·안전행정부·청와대의 조직적 무능과 방조 결과였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용산구청은 이태원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길 보행을 방해하는 불법 증개축 건물을 10년 가까이 방치했다. 인파가 운집하면 위험한 이 일대에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릴 거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지역축제가 아니라며 관리 의무에 손을 놨다. 경찰은 반정부 집회 관리가 더 중요하다며 현장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경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더욱이 참사 발생 약 4시간 전부터 112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은 조처를 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뒤 1조5천억원을 들여 만든 경찰·소방·의료 재난안전통신망도 무용지물이었다. 참사 수습 과정에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실인지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인지조차 여전히 혼선이다.
한국 정부는 8년 전 304명의 목숨을 잃고 한치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다시 158명을 잃었지만, 그 결말은 세월호 참사와 달라질 여지가 남아 있다.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 했다’는 여론의 추궁이 시작되자, 검찰 수사의 초점을 선원과 선장, 해운회사, 운항관리자로 집중시켰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은 물론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설립과 진상규명도 방해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을 ‘순수 유가족’과 ‘강성 유가족’으로 분리하고 고립시켰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세월호의 진상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분열되고, 유족이 고통받는 건 박근혜 정부의 이런 대응 탓이 크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 국면 전환과 정국 안정을 노리는 것은 정부의 본능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역설적으로 신속하고 투명한 진상규명과 완전한 국가책임, 피해자에 대한 전 사회적 추모, 유족에 대한 위로와 합당한 보상이 국면 전환과 정국 안정의 지름길이라는 점이다. 국정조사도 특검도 아닌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셀프 수사’를 고집하며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정부·여당, 야당 의원이 대통령실의 참사 대응을 따져 물을 때 “웃기고 있네”라고 쓴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재난 주무부처 행안부 이상민 장관 문책과 정치적 책임을 묻는 여론에 침묵한 채 경찰만 질타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부디 세월호 참사를 되돌아보길 바란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99269
"국민 안전 최우선으로" 윤 정부 약속 지켜지고 있나 (JTBC, 강버들 기자, 2022-11-16 20:34)
[앵커] 뉴스룸은 윤석열 정부 6개월을 맞아, 윤 정부의 국정과제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하고 있는데요. 오늘(16일) 두 번째로 점검할 과제는 '안전'입니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윤 대통령, 약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이태원 참사를 겪었습니다. '안전'과 관련한 국정과제가 구체적으로 어땠고 또 지금은 어느정도 지켜지고 있는지 뉴스룸이 종합적으로 점검해봤습니다.
[기자] [이태원 참사 추모객 : 100% 인재, 100%… 시민들을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금방 사고가 나는 걸 너무나 느끼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중 안전 대책은 7가지입니다. 특히 재난에는 과학적으로 대응하겠다며 57가지 유형의 예방, 복구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와 같은 '압사'는 여기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공간이 수용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압사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인명 피해도 컸습니다. 그래서 예측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김영욱/세종대 건축학과 교수 : 폴리스라인을 막았을 때, 걷어냈을 때 이런 것들을 시간당 다 분석할 수 있어요. (이 스페이스신택스 프로그램은) 오픈소스로 전세계에 개방돼 있습니다.]
[조성일/르네방재정책연구원 원장 : 위험은 항상 변동하는 겁니다. 다른 나라의 사고 사례들을 세밀하게 조사해서 우리 매뉴얼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미 발생한 유형만,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정부가 안전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로 꼽은 건 '범죄'입니다.
국정과제에서도 '피해자 보호'를 강조했는데, 지난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난 뒤에야 전자발찌 부착 등 관련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9월 16일 출근길 : 이 제도(스토킹처벌법)를 더 보완해서 이러한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접근금지 등 스토킹 가해자에게 잠정조치를 내릴 수 있지만, 피해자들은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스토킹 피해자 : 너무 무섭다고, 그냥 구속이 안 되냐고… '물리적 위협을 한 적은 없으니까 불가능하다'고…]
현재 가장 강한 잠정조치인 '유치' 신청은 절반 이상이 기각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스토킹 피해자 : (나라가)지켜 준다가 아니라, 그냥 저를 지켜본다에 가까운거 같아요.]
추가 피해를 막는데 가해자 차단이 중요한 건 가정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 진짜 무서웠어요. 아무도 안 도와주고, '살려달라'고 소리쳤는데…]
임시조치를 따로 취하지 못한 사이, 이미 가정폭력으로 벌금을 받은 남편은 흉기까지 들고 다시 찾아와 아이 앞에서 때렸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남편이 구속됐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합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 (쉼터는)60km 정도 가야 있는 도시로 가야 이용할 수 있더라고요. 타지 생활도 겁이 났고…]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는 전국 65곳, 정부안대로 예산이 확보돼도 내년에 1개 더 늘어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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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76642
일터에서 죽고, 길에서 죽고... 대체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오마이뉴스, 22.10.31 14:22 l 충북인뉴스 김남균(043cbinews))
사회적 참사 벌어지면 그제야 나타나는 '국가'... 부디 안전할 권리를 지켜달라
이태원 압사 참사가 벌어지기 불과 한 달 전인 지난 9월 26일 오전 7시 45분. 대전광역시 유성구 용산동 소재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대원 126명과 장비 40대가 투입돼 진화작업을 벌였다. 화재발생 6시간 6분만에 불을 끄는 데 성공했다. 불은 꺼졌지만 7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한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망자 중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정규직 노동자는 한 명도 없었다. 사망자는 물류업체, 전기업체, 청소업체 등 용역과 하청업체에 소속된 직원들이 전부였다.
망자의 사연도 기구했다. 전기시설 관리용역업체에 소속된 서른세살의 청년 A씨. 한 시간만 더 늦게 화재가 났더라면 그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퇴근해 꿀 같은 단잠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올 초 전기자격증을 취득하고 용역회사에 취업한 지 5개월만에 사고를 당했다.
환경미화원 B(64)씨. 어려운 집안 환경 탓에 중학교를 마치고 일을 해야 해야 했다. 원양어선까지 타면서 동생들을 대학에 보내는 등 악착스럽게 살았다. C(60)씨와 D(71)씨는 이곳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하도급업체 소속이다. 매장이 개장하기 전 새벽에 일을 끝내야 했다. E(56)씨의 경우 출근 시간이 일찍 출근하는 날과 늦게 출근하는 두 가지였다. 사고 당일 하필이면 일찍 출근하는 날이었다.
"국가차원에서 원인 밝히고 사고 재발 않도록 하겠다"
화재 사고 하루가 지난 9월 27일 윤석열 대통령 대전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합동분향소에 헌화하고 소방본부로부터 사고 브리핑을 들었다. 브리핑을 듣던 윤 대통령은 "공사 현장도 아니고 아무 상황도 아닌데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유가족을 만난 윤 대통령은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적 감식을 통해 원인을 밝히고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라며 "유가족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고 보상 또한 빠르게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에 유가족은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올 수 없었다"며 "앞으로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전기안전공사·소방 당국 등으로 합동감식반이 구성됐고 조사가 시작됐다. 이와는 별도로 대전경찰청은 대전청 수사부장을 본부장, 형사과장과 유성경찰서장을 부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검토를 지시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 광역중대재해관리과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조사관 2명을 현장으로 파견했다. 대전지방검찰청도 조석규 형사3부장을 팀장으로 공공수사부 검사 등 총 6명으로 된 수사지원팀을 설치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 회장은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정 회장은 이번 화재 사고에 대해 통감한다면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피해자 지원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화재의 원인조차 제대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현대백화점 그룹 측이 유족들에게 찾아가 위로금 등을 명목으로 합의를 시도하던 정황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회적 참사가 벌어지면 그때서야 나타나는 국가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가 발생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국가'가 나타났다. 사회적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약속을 한다.
그때도 그랬다. 윤 대통령은 "국가적 차원의 과학적 감식을 통한 원인규명",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장치 대책 마련"이라는 국가의 역할의 언급했다.
이렇게 강조된 국가의 역할은 현재 어느정도 진행됐을까? 대전경찰청은 화재가 발생한 지 한달이 지난 지난 27일 관계자 13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입건된 이들은 현대아울렛 대전점 안전관리 담당자들과 방재·보안 시설 하청업체 관계자들이다. 지하의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화재 당시 지하의 스프링클러 등 방재시설 작동 여부, 대피 유도등과 대피로 등 안전 시설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한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수사중'인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국가적 차원의 과학적 감식을 통한 원인규명'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앞뒤 안맞는 말
"법이나 제도나 이윤이나 다 좋지만, 사업주나 노동자나 상대를 인간적으로 살피는 최소한의 배려는 서로 하면서 우리 사회가 굴러가야 하는 것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 제빵공장 사망사고와 관련해 덧붙인 말이다. 노동계는 대통령의 이 말을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받아들이며 반발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입장을 밝힌 상태. 대통령의 말이 나오기 전인 지난 달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동부에서 제출받은 '기획재정부가 보낸 중대재해법령 개정방안에 대한 노동부 입장' 문건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기재부는 종사자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를 발생시킨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노동부에 제안했다.
우선 종사자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현행법 처벌규정에 대해 기재부는 "고의 또는 반복적으로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에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거나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자고 했다. 형사처벌 대신 "경제벌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현장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의 결과물이다. 법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비용의 문제로 치부해 마련하지 않는 기업, 그 기업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 안전장치를 마련하도록 하자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이 마련된 근거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7명이 사망한 현대프리미엄아울렛 화재사건과 관련 현대백화점 정지선 회장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소식은 현재까지 들리지 않는다. 현대백화점 고위 임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이야기도 없다.
시민단체 생명안전시민넷은 "정치권은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만 잠시 관심을 가질 뿐, 사람이 죽고 다치는 안전사고는 반복되고 구조적·근본적 원인에 대한 진단과 해법 모색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그 결과, 대한민국은 국민 누구나 언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후진적 위험사회'이며 고통은 국민의 개인 몫으로 전가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애도가 전부는 아니다
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정부와 대통령의 대처는 이전의 사고와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야당은 초당적 협력 입장을 밝혔다.
'조문과 애도'는 국가가 해야 할 역할 중 작은 부분일 뿐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길거리에서 사망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진정한 책무다.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해 국가가 역할과 책임을 다했는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또한 법 제정 등 제도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010300065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 (경향,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2022.11.01 03:00)
벌써 세 번째이다. 보수 정부에서 위험이 핵심적인 사회현상으로 등장하는 것 말이다.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정부 때에도 위험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지만 지금과는 양상이 달랐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던 수많은 사고는 회유 혹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취약한 사회 인프라로 인한 일상의 위험은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와 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윤석열 정부 들어 일어난 이태원 참사는 이제 고질화해가는 보수 정부의 패턴처럼 느껴져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위험의 사회화와 그 반작용으로서의 위험의 정치화를 최초로 경험했다. 이익을 보는 집단은 분명한데 그에 따르는 위험은 불특정 다수에게로 분산시켜버릴 때, 국가가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 국민들은 분노하게 되고, 그것은 위험의 폭발적 정치화로 이어진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 광우병 사태는 비과학적 음모론이었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그보다는 좀 더 엄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과학적 기준으로 보면 비합리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수치에 근거해서 보면 그 당시 한국은 광우병으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였는데,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가장 취약한 국가인 영국보다도 훨씬 더 커져 있었기 때문이다. 배후세력의 음모라는 주장은 필요조건을 충족하지만 충분조건에는 한참 못 미친다.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그랬듯이 그 당시에도 집회를 조직화하는 세력, 즉 필요조건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사회운동이란 아무리 열심히 조직하더라도 성공확률이 매우 낮다. 필요조건에 시민들의 폭발적 참여라는 충분조건을 더해준 것은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보냈던 이명박 정부였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위험하면 못 먹고 안 먹는 것인데, 수입업자들도 장사가 안 되면 안 들여올 것”이라는 대통령 본인의 발언이었다. 시장이 어련히 알아서 걸러줄 텐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렸고, 국민들은 분노했다. 오죽하면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한국 사태를 두고 “신자유주의 국가가 다가오는 위험사회에 맞서 국민을 보호할 능력과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라는 훈수까지 둬야 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훨씬 더 큰 비극이었지만, 과정은 아주 단순했다. 낡은 배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완화가 이루어졌고, 그나마 지켜야 할 안전규정을 지키지 않았고, 그것을 감독해야 할 관료들이 사업자와 결탁해 이익공동체가 되었고, 머리를 올리느라 7시간 지나서야 나타난 대통령은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그렇게 찾기 어렵습니까”라는 한가한 소리를 했다는 것이 그 내막이다. 복잡한 현상과 맞물린 광우병 사태에 비하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사건의 전개이다. 그러나 국민을 지킬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8월9일자 이 칼럼에서 나는 “지지율에 갇힌 채 좀 더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면 국민들은 삶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중략) 닥쳐 있는 문제들은 하나같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국민 생존의 문제이다. 이명박 정부 때 보았듯이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은 정부가 국민들의 삶을 지키는 데에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마치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발언은 보수 정부의 가장 큰 위험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어서 부적절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즉각적인 정쟁화 대신 애도와 적극 협조를 택한 더불어민주당은 오랜만에 좋은 선택을 했다. 두고봐야 알겠지만, 이태원 참사가 정치화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광우병과는 달리 위험의 경계선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예고한 여러 정책 중에는 사회적 위험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것들이 다수 섞여 있다. 보수 정부의 개혁이 국민의 삶을 세심하게 지키면서 진행된다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정치적 위험이 곳곳에 도사릴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진짜 리스크는 낮은 지지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높아지는 사회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는 것에 있다. 인파로 가득 찬 축제의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맞이한 억울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여러 정책의 변화가 가져올 혹시 모를 사회적 위험을 수없이 사전에 다듬어야 한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030300105
[정동칼럼] 다시 국가를 묻는다 (경향,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숭배 애도 적대> 저자, 2022.11.03 03:00)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갑자기 156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희생자 중 10~20대가 116명이다. 세월호 참사와 그것이 남겼던 과제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8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던 다짐과 노력은 어디로 갔을까. 말로 다 못할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삶을 누리지도 못한 너무 젊은 희생 앞에서 ‘명복을 빈다’고 말하지 못한다.
거대한 사태에는 복합적이고 다기한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미래의 주인인 젊은이들이 살아갈 이 체제 자체에 대해 다시 진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국뽕’ ‘선진국’ 같은 허위의식 따위는 버리고 말이다.
이태원에는 온갖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고 또 그만한 문화적 축적이 있다. 이주민 중에서도 소수에 속하는 무슬림 사원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들의 클럽도 포진해 있으니, 인종주의적이고 획일적인 이 사회에서 그만한 자유와 개방성이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그런 곳에서 한국과 이태원이 좋아서 왔을 14개국 출신 26명의 외국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이태원길은 소위 ‘선진국’을 자처하는 국가의 위상이나 거리의 국제적인 명성에 걸맞지 않게 너무 좁고 안전하지 않았던 것이겠다. 왜?
누가 어떻게 이 엄청난 참사와 손실에 책임을 져야 할까. 그날 경찰의 배치와 112신고에 대한 묵살에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과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찰과 관료시스템이 갑자기 기능부전 상태가 된 것은 더 크고 근원적인 어떤 원인의 현상이 아닐까.
나는 용산구청장,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의 가볍고 무책임한 언동과 외신기자 회견에서의 한덕수 총리의 말이 ‘실수’라 생각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고 시민사회를 탓하는 위험한 발언과 어이없는 농담이, 있어야 할 곳엔 없고 다른 곳엔 과잉 배치된 공권력의 문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근본적 무능과 빈약하고 전도된 의식이 있는 것이다. 정치검사와 특권층 엘리트들로 구성된 정권이 과연 보통 사람들의 관점에서 안전문제를 생각하고 다룰 능력이 있을까. 그들에게 만원 지하철 출퇴근과 산업현장의 위험에 대해 어떤 경험과 공감이 있을까. 2021년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828명이었다. SPC 공장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과 이태원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이 다른 존재가 아니다. 겨우 만들어놓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덕 기업과 그 소유주에게 적용하기는커녕 시행령으로 무력화하려 하거나, 틈만 나면 주52시간 근무제를 없애려 하는 것이 이번 참사와 다른 맥락에 있지 않을 것이다. 굳이 해밀턴호텔의 불법 증축을 들지 않더라도 참사의 근인에 생명이나 안전보다는 돈, 사람보다는 이윤의 논리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권력과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3월 ‘최악의 대선’을 치르고 (또 그랬기에) 필연적인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 이후, 많은 이들이 정치뉴스는 안(못) 본다 했었다. 피로감 때문만이 아니라, 적실한 방향과 언어는 없고 지저분하고 소모적인 정쟁이 필요한 정치와 정책을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각에선 진작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같은 구호를 들고 나섰지만 설득력은 약했다. 비록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도 미치지 못함에도, 그 주체와 어젠다가 대선 때부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책임의 반은 당연히 더불어민주당의 실패와 그 지도자의 흠결에 있었다. 진심으로 믿고 기댈 만한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없고, 여전히 새로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혼돈이다. 이 와중에 이태원의 비극이 터졌다. 경제와 안보 상황도 더 심각해지고 있고 심화된 기후위기가 또 언제 심각한 자연재해를 불러올지 모른다. 이들을 잘 관리하고 대처할 능력이 윤석열 정권에 있는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어디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까. 이 위기와 참변에서 그래도 뭔가 교훈을 얻고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면, 혼돈 속에서도 타인의 생명을 구하려 이태원 길바닥에서 CPR(심폐소생술)에 뛰어든 시민들이다. 그들은 ‘피 묻은 빵’은 먹지 않겠다는 시민적 공덕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대학생들과 노동조합원들과 서로 다른 이들이 아니겠다. 그외에는 다른 주체가 없고, 공감과 연대 외에 다른 필요한 마음이 없다. 세월호와 이태원을 겪은 청년들은 부디 마음을 잘 추스르고 책임의 소재가 어디 있는지 냉철하게 살피기 바란다. 그리고 무능한 정치와 부패한 기성세대를 용서하지 말고 연대로써 부수고 자신들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바란다.
 
http://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776
위험을 알고 안전대책에 참여할 권리 (매노,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2022.11.03 07:30)
이태원 참사 이후 이틀을 멍한 상태로 보냈다. 종일 사고 소식을 들여다보고 사건을 계속 검색한다. 계속되는 죽음의 소식에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게 트라우마구나 생각한다. 홍수가 나면서 일가족이 지하에 있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밤샘 노동을 하던 여성노동자는 홀로 일하다 배합기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매몰돼 아직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 매일매일 전해지는 산재사망 소식, 매일매일 전해지는 사고 소식. 이를 들은 우리는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우리를 지켜 줄 정부는 없으니 홀로 살아남든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든 모두 당신의 운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CPR을 하고,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이전의 많은 참사에서도 유가족과 피해자들,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무기력하게 있지 않았다. 산재·재난 피해 유가족들은 기업의 살인을 막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기 위해 싸웠고, 비록 한계가 있지만 법을 만들어 냈다. 시민들은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단지 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기 위해 서명도 하고 집회도 했다. 그런데 정작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은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갖고 있는 것일까.
이태원 참사로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애도하는 동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면피성 발언을 쏟아 내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브리핑에서는 ‘주최가 없는 행사’여서 관리도, 책임도 묻기 힘들다는 답변이 반복됐다.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데이가 “축제가 아니며”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지역축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안전관리를 책임지도록 돼 있기 때문에 회피하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장관도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주최측이 없으면 더더욱 정부가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것인데, 애초에 안전관리를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안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시민들과 다른 것 같다. 노동자와 시민에게 안전은 생명을 지킬 권리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정부가 위험을 예방할 것이라고 믿고, 설령 위험에 노출됐다 하더라도 신속하게 구조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정부에 그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경찰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핼러윈에서도 경찰이 투입한 인력은 마약과 성범죄 사범 단속 인력이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즐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경찰의 책무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러니 집회에는 그토록 많은 경찰력을 동원해도, 핼러윈에는 안전을 위한 경찰을 배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있는 한 정부와 경찰에 “안전을 책임지라”고 요구하면, 그들은 ‘안전’을 빌미로 시민들을 통제하는 데 힘을 쏟는다. 코로나19 시기에 집회에 대해서만 강력하게 통제하고 막아섰던 기억을 떠올려보라. 특히 이태원 참사 관련 긴급 대책마련을 위한 시·도부교육감회의에서 교육부 차관은 “11월5일 개최하려는 중고생 촛불집회 역시 학생 안전이 우려되는 행사”라면서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 필요한 조치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이 정부는 손쉽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만을 ‘안전’으로 여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정부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참사 유가족과 노동자, 그리고 시민들이 애써서 안전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왔듯이, 안전을 권리로 규정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산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노동자의 참여권과 작업중지권을 요구했던 것처럼, 시민들이 위험에 대해 알고 안전대책에 시민들이 참여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참사의 원인규명을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들과 유가족의 의사가 반영되는 독립적 조사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2020년 말에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생명안전기본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하는 이유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65640.html
‘안전사회’는 언제쯤…3년6개월 간 만든 사참위 안전대책 시행해야 (한겨레, 정혜민 기자, 2022-11-03 17:14)
독립적인 상설 재난 원인 조사기구
설치·피해자 비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마련 등 권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9월로 3년 6개월간의 활동을 끝마치면서 총 80건의 권고를 내놨지만,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참사는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 사참위가 내놓았던 권고들이 다시 주목 받는 기운데, 권고들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사참위는 독립적인 상설 재난 원인 조사기구인 ‘(가칭)중대재난조사위원회’ 설립 추진을 권고했다. 그 필요성에 대해 사참위는 “재난 원인조사는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중요하지만, 현행 재난조사시스템은 부처 자체조사에 기대고 있어 조사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므로 근본적인 원인 규명과 제도 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참위 지적대로 이번 이태원 참사도 부처 자체 조사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경찰 부실 대응에 대한 의혹이 커지자 경찰은 경찰청에 독립적인 특별기구를 설치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혔지만 서울경찰청 등에 대한 강제수사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하는 경찰 수사’에 의구심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셀프 수사’라고 비판하며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랑희 경찰개혁네트워크 활동가는 “경찰청이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를 수사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어, ‘꼬리 자르기’가 우려된다”면서 “‘형사 처벌 대상’을 밝혀내기 위한 경찰 수사가 이태원 참사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규명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라고 지적했다. 사참위 전직 간부는 “저희가 쭉 살펴봤더니 재난·참사 이후 ‘사회적 학습’이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사회적 학습을 목표로 하는 상설 기구를 조속히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참위는 재난 피해자 인권침해 및 혐오표현 확산 방지를 위해 관련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사참위는 “세월호참사 등 재난 피해자들에 대해 공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도 피해자들에 대해 비방이 계속됐다.
이 밖에 사참위는 △안전 법체계 정비, ‘안전권’ 법제화 △재난 참사 피해자 지원 조직 신설 검토 △체계적 재해구호 위한 매뉴얼 마련 △구조참여 시민 치료비 지급대상에 ‘정신적 질환’ 명시 △재난 피해자 법률지원 등을 권고했다.
관건은 권고의 ‘이행’이다. 세월호 유족인 장훈 416안전사회연구소장은 “사참위 권고에 좋은 내용이 많이 담겨있긴 하지만 이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는 권고 이행을 위한 작업을 준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 등은 지난 1일 이행점검 주체를 ‘국회’에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로 보다 분명히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2211041348011
“이태원 참사는 안전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민주노총, 12일 10만 전국노동자대회 연다 (경향, 유선희 기자, 2022.11.04 13:48)
민주노총이 오는 12일 정부의 노동 개악을 저지하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다. 민주노총은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 무력화 시행령 등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10만 총궐기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회견에서 “노동할 권리, 노동자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 안전할 권리 그 무엇 하나 제대로 보장받거나 지켜지지 않는 이 지옥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투쟁에 나선다”고 선포했다.
이번 총궐기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는 시행령 개정과 노동시간 및 임금체계 개편 등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악 저지, 노조법 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 촉구, 민영화 중단 쟁취 등에 목적이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이태원 참사에서 드러난 정부의 안전체계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묻는 기조도 더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우리가 약속한 생명과 안전에 대한 약속은 무너졌다. 다시 나라를 나라답게, 모든 시민이 안전한 나라를 세우자”며 “안전하게 일하고 일한 만큼 보상받으며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절실한 요구를 걸고 투쟁에 나서겠다”고 설명했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서면서 노동 여건이 악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20대 노동자의 사망사고는 기본적인 안전보건 장치가 갖춰지지 않아 피해를 키운 중대재해였다. 국내 5대 건설사 중 하나인 DL이앤씨의 사업장에선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4번째 사망사고가 났다.
노동계는 정부가 법 시행 1년도 안된 중대재해법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내용으로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우려한다. 이러한 정부의 중대재해법 흔들기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의 안전 의식 변화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52시간 유연화 정책에 대해 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이 기본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반도체 업종에 대해 주64시간까지 노동을 허용하고, 30인 미만 사업장엔 일시적·한시적으로 추가연장근로 기간을 연장하면서 과로사 발생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노조법 2·3조 개정 요구는 노동자들이 마땅히 ‘안전’하게 쟁의할 권리를 찾기 위한 취지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생명, 안전’이 다르지 않다면서 “이태원 참사는 자유와 공정을 부르짖으며 출발한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윤석열 정부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12일 노동자대회 이후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촉구, 노동자와 시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촛불대회도 열 예정이다.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90736
"셀프 수사 막을 독립기구 필요" 세월호 교훈 또 뒷전 (JTBC, 신진 기자, 2022-11-04 20:31)
[앵커] '셀프 수사'는 세월호 참사 때에도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이 그 문제를 수사하고 수사의 범위까지 정하는 그야말로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교훈은 지난 9월 공개된 '사회적참사 특조위' 보고서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그 교훈을 벌써 잊었나 봅니다. 신진 기자입니다.
[기자] 사회적참사조사위원회, '사참위'는 세월호와 가습기살균제 참사 같은 대형 참사를 막자는 취지로 꾸려졌습니다. 3년 6개월 활동을 마친 뒤 여든개의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그 중엔 '독립적이고 상설로 운영되는 조사 기구를 만들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최예용/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전 사참위 부위원장) : 중립적이고 전문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기관이 상설적으로 있다면 곧바로 개입을 해서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또 재발 방지에 대해서 권고도 하고…]
권고안에는 재난안전법 시행령에 '심리적 응급처치'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이태원 참사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특히 개선안 80건 중 19건은 행정안전부에 대한 권고사항입니다.
하지만 이상민 장관은 최근까지도 사참위 보고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이상민/행정안전부 장관 : {사참위 결과 보고서 보셨나요?} 어떤 것이요? {9월 2일 종합보고서 나왔습니다. 사참위.} 합참이요? {사참위요.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요.} 네네. {보셨나요, 보고서?} 자세히는 못 본 것 같습니다.]
관련법에 따르면 국가기관은 사참위 권고사항을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회는 담당자의 징계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5984.html
[세상읽기] 안전할 권리는 어떻게 발견되는가 (한겨레, 류영재 | 대구지방법원 판사, 2022-11-06 18:47)
공장에서 사람 손목이 잘렸다. 사람보다 큰 기계 안에 들어가 내부를 청소하다가 갑자기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 날에 깊이 베였다. 기계는 왜 갑자기 작동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동료 노동자가 실수로 기계 작동 버튼을 눌렀다. 처음에는 동료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고임이 명백해 보여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법정에서 그의 반성을 들으면서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째서 오래 일한 노동자가 그러한 실수를 하게 된 것일까. 재판을 하며 답을 찾았다. 그 공장의 기계 청소는 노동자가 기계 안에 들어가서 직접 청소를 한 뒤 기계를 가동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계 안에는 대형 칼날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청소 도중 기계가 작동하게 되면 노동자가 큰 부상을 입게 된다. 이런 위험 때문에 기계 작동 버튼함에 시정장치를 하여 청소를 마친 노동자가 직접 시정을 풀고 청소를 마무리한 뒤 기계를 작동하도록 하는 방안이 안전관리사항으로 권고되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공장에는 이런 시정장치가 없었다. 버튼함에는 기계 여러 대의 작동 버튼이 함께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버튼들의 모양새도 비슷했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 노동자가 다른 기계를 작동시키려다가 순간적으로 버튼 위치를 착각하여 청소 중이던 기계의 작동 버튼을 눌렀고, 하필이면 작동 버튼을 누른 기계 안에는 사람이 들어가 청소 중이었다. 사정을 모두 알고 나니 고민이 되었다. 책임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버튼을 잘못 누른 동료만이 져야 할 책임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실수가 심각한 인명피해로 이어진다면 그곳은 일단 위험한 작업장이다. 위험한 작업장이 안전한 작업장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적절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 작업 특성에 따라 특히 위험을 부르는 실수 유형이 있다면 이는 사전에 충분히 경고되어야 한다. 경고를 무시하는 노동자들은 관리·감독되어야 한다. 실수 예방 조치들도 취해져야 한다. 발생한 실수가 위험으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 방법이 활용되어야 한다. 법은 노동환경을 안전하게 만들고 관리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담시킨다. 어째서 사업주들은 일터를 안전하게 만들 의무를 지는가? 노동자들에게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각종 산재 사건에서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보장되었는지 여부는 그 사건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실수나 잘못과 별도로 판단되어야 한다. 사고의 발생에 노동자들의 실수나 잘못이 존재했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노동자 책임으로 돌리면 노동자들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사라진다.
노동 현장을 넘어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공공장소-거리, 광장, 공원 등에선 어떨까. 헌법과 재난안전법에 의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및 각종 사고로부터 사람의 생명 등을 확보하기 위하여 관할 구역 내 안전관리를 할 책임을 진다. 대법원은 사람의 생명 등에 대하여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 상태가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다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에 근거가 없더라도 그러한 위험을 배제하여야 할 의무를 갖는다고 판시하였다.
핼러윈을 맞아 좁고 경사진 골목이 가득한 이태원에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가 바로 그 좁고 경사진 골목에서 밀고 밀려 압사당했다. 비극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규명되진 않았다. 원인에는 그 골목에 있던 누군가의 실수 또는 잘못도 포함될 수 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밀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병목현상이 나타났음에도 사람들은 그 골목에 계속 진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밀었다거나 사람 많은 곳으로 사람들이 진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룻밤 새 그 골목에 있던 300여명의 사람이 죽고 다쳤다면, 그날 밤 그 골목은 이미 위험한 장소였다고 봐야 한다. 그날 밤 그 골목은 왜 위험한 장소가 되었는가. 위험한 장소를 안전한 장소로 바꾸기 위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어떠한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야 ‘안전할 권리’가 발견된다. 안전할 권리가 보장되었는지 여부는 위험한 골목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실수나 잘못과는 별도로 밝혀져야 한다. 이와 달리 수많은 우주들이 동시에 사라진 비극을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릴 때 우리와 다음 세대 모두의 안전할 권리는 사라지게 된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070300115
[정동칼럼] 국가 없는 사람들 (경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2022.11.07 03:00)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국가의 부재와 국가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있다. 정치학자인 나는 이런 물음에 민감하다. 국가를 부름이, 안전과 보호에 대한 요구가 치안국가·감시국가를 불러오지는 않을지, 걱정도 한다. 안전과 보호는 민중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우파 포퓰리즘 정치는 그런 요구를 낚아채어 민중의 안전을 민중에 대한 치안과 통제로, 시민의 보호를 외부로부터 내부를 보호하는 배타주의와 혐오 선동으로 변질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날 우리에게 국가가 있었느냐는 물음은 지금까지 대체 어떤 국가가 있었으며, 우리가 원하는 국가는 어떤 국가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 국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물어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 나라 사람들에게 국가란 너무 오랫동안 악몽이었다. 나도 ‘좋은 국가’를 가졌던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어릴 때 국가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으며, 너무 가까이, 너무 자주, 너무 도처에서 출현하며 겁을 줬다. 그런 국가도 변했다. 한류와 K팝을 거치면서 국가는 아이돌이 되고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껍데기가 되어갔다. 우리 세대의 국가가 공포의 대상이었다면, 지금 청년 세대에게 국가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집단이다. 통치 권력의 성격은 ‘죽이는’ 권력에서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으로 변화했다. 사람들은 어떤 국가에서나 많이 죽었지만 일상화된 폭력과 무차별적 대중학살은 후자에서 더 심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죽게 내버려두는 권력’이 신자유주의 지배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각자 보험을 들고, 각자 질병과 사고, 노후에 대비하고, 각자 살아남도록 하려면, 국가가 그런 역할을 도맡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치안은 시장을 위해 작동하면 되는 것이고, 국가는 자본에 대한 책임만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이 누구의 국가인가를 물어야 한다. 국가와 사회의 해체는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며, 사회 공공성 파괴의 결과다. 오늘날 국가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같은 보수정치세력에는 권력을 차지하면 공로자들에게 한 자리씩 나눠주고 제 식솔 챙겨줄 수 있는 전리품에 지나지 않고, 기업인들에겐 뜯어먹을 공공사업 발주기관 이상이 아니다. 국가의 부재는 국가 사유화의 결과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를 목도하면서 알랭 바디우는 이 참극에 깃든 ‘오래된 병’을 고찰했다. 그는 글로벌 자본이 주권국가를 집어삼키며 사유화하는 양상을 ‘국가의 자본주의적 소멸’로 설명한다. 첫째, 유럽과 북미 등 제도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정상국가들에서는 자본의 대리자들이 선출직·비선출직 등 정부를 점령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합법적으로 국정에 개입한다. 둘째,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불량국가들의 경우다. 자본은 이런 불량국가도 선호하는데, 부패한 관료들을 매수하기도 좋고, 멍텅구리 정치지도자를 세워놓고 나라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자본은 적극적으로 국가 자체를 붕괴시켜버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무주공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위 세 가지 경우 모두에서 ‘국가 없는 사람들’이 대거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는 ‘내부 난민’이다. 내부 난민은 자국 안에서 국제법상의 난민 지위조차 없이 난민화되어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지만,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재조직한 이래로 북반구 국가의 내부에서도 대거 발생하고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영국 노동자는 자신의 시민권과 생사여탈권이 국가가 아닌 ‘보험회사(금융자본)’에 달려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국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플 때도, 죽을 때도 국가는 없었다. 점점 더 많은 국가가 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에게 금융업자나 용역업자를 보낸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가 되는 시간이 무섭다. 슬픔과 분노, 죄책감으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다. 하지만 이 참극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헤쳐보려 노력한다. 체제의 폭력은 우연히 죽은 자와 우연히 살아남은 자들을 가르고, 그 우연성은 살아남은 자들도 항구적인 불안 속에 몰아넣는다. 사건 자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함께, 이번에는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직시했으면 한다. 우리가 왜 국가 없는 사람들이 되었는지. 무고한 이들의 죽음은 그것을 해명하는 우리의 사유와 실천을 통해서만 무화되지 않고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동료 시민으로서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고, 우리가 정치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6177.html
[숨&결] ‘무능한 관료’라는 대참사 (한겨레,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2022-11-07 20:02)
예기치 못한 죽음 뒤에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남겨진 사람들이 있다. 나는 20대에 어머니를 잃었다. 심근경색으로 인한 급사였고, 미국에 있던 나를 포함해 가족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따라 죽어버리고 싶은 지독한 고통 속의 유일한 위안은 내가 죽고 엄마가 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다정했던 엄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이런 절망을 결코 이겨낼 수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자식을 잃은 비통함에 무너져버린 부모와 심하게 다친 자식을 애끓게 걱정하는 부모들이 수백명이 넘었던 10월29일 참사 직후, 책임 있는 고위직들의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관료제는 형식화를 통해 위계 구조를 객관화하는 것, 일정한 역할이 기대되는 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 간의 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경직적이고 무기력한, 그저 그런 인물들이 리더가 돼도 상관없다. 하급자나 통치를 받는 사람보다 뛰어날 필요도 없다. 더 못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위계하에서 복종은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하며, 공식적인 목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개인의 이해 추구와 조직의 존속 자체가 주된 목적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힘이 소수의 권력자에게 집중되면서 구성원은 움직이는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고, 결국 인간성을 철창(iron cage) 안에 가두는 결과도 초래한다. 그래서, 관료제를 이론화한 막스 베버는 이 제도가 대중 민주주의와 갈등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였다. 민주주의는 선거와 소환 등을 통해 관료의 임기를 단축하려는 관성을 가진다. 대중은 정치인을 선택할 수 있는 만큼 그를 몰아낼 수도 있다. 이런 갈등은 관료의 정치력 부족으로 더욱 악화한다. 관료제의 한계를 아는 베버는 그의 조국인 독일이 세련된 정치를 하지 못할까 우려하며 관료제의 최고 지위는 유능한 전문 정치인에 의해 채워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공감 능력이 없는 고위 관료의 화려한 학벌과 법적 지식이 얼마나 쓸모없는가를 국민에게 웅변으로 보여준다. 경제가 휘청거리며 수많은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는데도 경제부처는 기업의 탐욕을 부추기는 탈규제와 감세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전혀 책임지지 못해 생겨난 참사에 행정안전부 장관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다가 경찰 하위직이 어디서 뭘 잘못했는지 그들에게만 화살을 돌리고 있다. 학생의 공감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100미터 경기를 50미터 앞에서 출발할 수 있는 이들을 위해 교육 불평등과 격차를 더 벌리는 데 몰두해온 교육부 장관도 7일 임명되었다. 이 정부의 화룡점정은 참사를 겪은 국민을 농담으로 능욕하는 국무총리이다.
‘개사과’ 이후, 나는 대통령 사과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날리면’ 이후에는 사과하지 않는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게 되었다. 진정한 사과에는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야당들이 요구하는 국정조사를 받아 이번 참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고, 유가족들이 더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듣지 않도록 책임 있는 고위 관료들을 모두 경질·파면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너무나 급작스러웠을 뿐, 질병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으로도 나는 10여년간 죄책감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만일 내가 죽고 엄마가 살았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원할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죽었음은 물론 태어났다는 것조차 잊은 채, 엄마가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기 바랐을 것 같다. 천천히 슬픔의 늪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만큼, 자식도 부모를 사랑한다. 청년들의 짧은 생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 빛났을 그들의 삶을 추모한다. 극단적인 절망 속에 멈춰버렸을 부모님들의 삶을 위로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 죽음도 막을 수 없는 깊은 사랑이 부모님들께 가닿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
 
http://www.safe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742
[성명]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가는 길, 국가의 역할을 묻는다 (녹색당, 2022.11.07 21:20)
10월 29일의 참사로 모든 이가 슬픔과 분노에 잠겨 있던 11월 5일 오후 8시 20분,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 구내에서 화물열차 관련 작업을 하던 코레일 소속 노동자가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공공기관인 코레일에서 올해에만 벌써 4번째 발생한 산재 사망 사고다. 3월 14일 대전, 7월 13일 서울 중랑역, 9월 30일 고양시 정발산역에서도 노동자가 연이어 목숨을 잃었다.
6일 영등포역 인근에서 275명이 탄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했다. 34명의 승객이 부상을 입었고, 6일과 7일 열차와 전철이 극심한 지연과 혼잡에 시달렸다.
1월에 KTX-산천 열차가 궤도를 이탈하여 승객 7명이 다치고 7월에 SRT 열차가 탈선하여 11명이 다치는 등 올해 들어서 벌써 3번째 탈선 사고다.
2020년 58건이던 철도 사고는 지난해 64건으로 늘어났고, 올해는 9월까지 66건이 발생해 이미 지난해 전체 기간 사고수를 넘어섰다.
우리는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각종 재해는 심각해지고, 신종 감염병이 창궐하며, 작업장과 산업 단지에서는 산재가 발발하고,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의 위험이 엄습하는 가운데, 도시의 거리와 공공교통체계 내에서도 더 이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위험사회에서 벗어나 안전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 
첫째, 국가는 정권의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안전과 행복을 추구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사람이 몰리는 이태원에는 정복 경찰관 58명만을 배치하고,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는 1천 100여 명의 경찰을 배치했다가 9시쯤 모두 철수시킨 것은 단지 일선 경찰의 실수가 아니다. 경찰이라는 국가기관이 어떻게 '시민의 안전'이 아니라 '정권의 안보'에 이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준 극명한 사례인 것이다.
그리고 예상 가능한 상황에 대한 대비부터 상황이 발생한 뒤 시스템의 작동까지 구멍 투성이였음이 매일 밝혀지고 있다.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과 개편뿐 아니라, 국가의 역할까지 되짚어봐야만 한다.
둘째, 모든 행동의 기준을 생명과 안전에 두는 가치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더 이상 GDP 수치의 증가, 주식 시가 총액과 배당액의 증가, 수출과 무역흑자의 증가, 기업의 이윤 증가 등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성장만을 부추기는 사회는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다. 경제성장이라는 기계는 지금까지 사람의 목숨을 갈아 넣어서 돌아갔다. 생명을 짓밟고서 돌아가는 이 기계는 이제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기후위기는 더 이상 이 기계가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국가의 자원을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올해 발생한 철도 사고의 근본 원인은 코레일의 비용 절감 시도이다. 선로 관리, 시설 불량 및 차량 노후, 안전수칙 미이행 등 모든 사고의 배후에는 '공공기관 혁신'을 명분으로 한 '경영합리화' 기도가 있다.
현 정부는 차량 정비 민간 개방, 관제권 이관, 철도시설 유지·보수업무 개방 등의 형태로 민영화 수순을 밟고 있다.
하지만 공공 인프라에 민간 기업의 수익성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공성 확대는 삶을 번영시키는 열쇠인 동시에 노동자와 시민 모두의 안전을 강화하는 열쇠이다. 민영화는 즉시 중단되어야 하고, 공공투자는 더욱 늘어나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무려 35번이나 말했다. 과연 누구의 자유이며,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그 자유가 시장 지배자의 자유, 착취와 불평등을 확대할 자유, 평범한 사람의 생명과 행복을 앗아갈 자유라면, 녹색당은 그 자유를 거부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회에 자유는 없다. 안전사회야말로 진정한 자유가 꽃 피우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녹색당은 모든 인간이 빈곤, 불안, 차별,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실질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https://www.kptu.net/board/detail.aspx?mid=F686C1F3&opt=&keyword=&page=2&idx=36096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와 중대 산업재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이태원 참사 책임 회피 규탄! 국민 안전 국가 책임 강화!
공공운수노동자 대정부 요구 발표 기자회견
ㅇ 일시 : 11월 9일(수) 13시30분 / 장소 :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ㅇ 주최 :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ㅇ 진행
- 사회 : 안명자 사무처장
- 취지발언 : 현정희 위원장
- 철도 인력 충원·안전 대책 수립 :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
- 지하철 구조조정·정부 재정 지원 강화 : 명순필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
- 의료인력 충원·공공의료 확충 : 이향춘 의료연대본부 본부장
- 화물안전운임 일몰제 폐지·확대  : 박재석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
- 공공부문 비정규직 안전 인력 충원 : 방두봉 지역난방안전지부 지부장
- 국민 안전 국가 책임 강화를 위한 긴급 대정부 요구 발표 : 공성식 정책실장
ㅇ 핵심 요구
- 이태원 참사 책임 회피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 철저한 진상 규명 근본적 대책 수립하라
- 안전 규제 해체 중단하고 안전 법제 강화하라
-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단하고 안전 인력 확충하라
-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하고 국가 책임 강화하라
 
[발언문]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정부의 명백한 실패” “전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참사” “국가가 응답해야 한다”
외신이 전한 이태원 참사 보도 내용입니다. 2014년 4월의 세월호부터 2022년 10월의 이태원까지, 죽지 않고 안전할 국민의 권리는 단 한 치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14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사 14일 만에 국무회의 자리에서 사과 아닌 사과발언을 했습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은 참사 9일 만에 용산 집무실 회의장에서 사과 아닌 사과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박근혜는 자신의 책임을 숨긴 채 해양수산부를 제물로 내놓았습니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책임을 숨긴 채 구청장과 경찰, 소방서를 방패로 세우고 있습니다. 같은 꼬리 자르기가, 책임회피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노동재해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11월 5일 오봉역에서 일하던 철도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올 들어 철도에서 벌어진 네 번째 산재사망입니다. 2016년 이후 지금까지 철도공사에서 노동하다 유명을 달리하신 노동자만 열다섯 명입니다. 사고 때마다 부족한 인력과 위험한 작업환경이 원인으로 지적됐지만, 한 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력과 예산을 줄이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발표만 있을 뿐입니다. 더 죽으란 이야기입니다.
이태원 참사는 국가책임을 외면한 소위 ‘작은 정부’가 국민의 목숨과 안전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를 드러낸 비극이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책임은 국가와 정부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국가책임과 공공성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에서 공공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민영화, 인력-예산 감축, 공공서비스 민간 이전 등, 국민의 삶과 안전을 재벌의 이윤을 위해 팔아치우고 약화시키는 정책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공공운수노조는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적 참사와 중대 산업재해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국가책임 강화-국민안전 보장 요구안을 제시합니다. 이는 일터와 일상에서 끊일 줄 모르고 이어지는 재난과 참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국민의 안전할 권리와 사람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시급한 조치입니다. 국가책임-사회공공성 확대를 위한 조치입니다. 오늘 우리가 제시하는 요구는 곧 국가와 정부의 존재 이유입니다.
공공운수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공공-운수-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25만명이 함께 하고 있는 노조입니다. 그만큼의 무한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노동하고, 투쟁하는 노조입니다. 만일 윤석열 정부가 이런 공공운수노조의 요구와 경고를 무시한 채, 지금과 같은 민영화-시장주의에 터 잡은 ‘작은 정부’를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의 공공성-노동권 파괴에 맞서 11월말~12월초 국가책임 확대와 안전사회 실현을 위한 대정부 공동파업에 나설 것임을 분명히 밝힙니다.
다시 한 번 이태원 참사로 유명을 달리 하신 희생자 분들을 마음 깊이 추모하며, 명복을 빕니다.
 
[발언문]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난 5일 오봉역 화물기지에서 열차 조성 작업을 하던 33살 청년 철도노동자가 작업 중 열차에 치여 돌아가셨습니다. 오봉역은 화물물동량이 제일 많은 역임에도 제대로 된 이동통로조차 설치되지 않았고 반면 노동 강도가 높아 산재사고의 위험이 높은 사업장이었습니다. 물론 노동조합에서는 선로개선과 작업환경 개선 등을 노사협의회에서 요구하였으나 번번이 예산 등의 문제로 묵살되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노사간의 합의로 진행한 4조2교대 전환은 한명의 안전인력 충원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봉역 수송 역시 인력충원 없이 4조2교대로 전환하면서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사고 당시 3명으로도 부족한 작업을 2명이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3인 1조 작업이었다면 이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고현장은 처참했습니다. 열차에 치여 시신도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유족을 어제 찾아뵙습니다. 황망한 마음에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부모님 앞에서 노동조합 위원장인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고인의 아버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보니 다 자기 자식과 같은 연배였다고, 한 명 한 명 다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니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가 죽으면 왜 그 유족과 남은 동료들이 그 모든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안전인력을 충원하라고 요구하였는데 국토부와 기재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한다는 말이 작업자의 과실을 운운하고 있습니다. 정작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정부 관료는 왜 그 자리에서 유족의 슬픔을 함께 하지 않는 것입니까?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인력감축의 숫자놀음 하는 것이 현장의 노동 강도를 증가시키고 심지어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다는 것을 왜 모른 척 하는 것입니까? 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님에게 살아남은 노동자들만이 곁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까?
올해만 벌써 네 번째 사망사고입니다. 만성적인 일력 부족과 무관하지 않은 사고들입니다. 그리고 철도노동자들은 짙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채 휘청거리며 오늘 이순간도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인력감축은 철도현장을 핏빛으로 물들일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철도노동자들의 죽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재부가 혁신가이드라인이며 내놓고 있는 인력감축은 철도노동자들을 사지로 몰 것이며 철도안전을 파괴시킬 것입니다.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막아내도록 하겠습니다. 고 장휘성 조합원의 명복을 빕니다.
 
[발언문] 명순필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 명순필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서울지하철을 이용하는 2천만 시민의 안전이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그래서 오늘 안전한 세상, 안전한 지하철을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 없다는 맘으로 이 자리에 서있습니다. 
10.29 이태원 참사대책이라는 이유로 정부와 서울시는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으로 혼잡율이 높은 역에 출퇴근 시간에 180명의 안전요원이 투입되었습니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정부와 서울시-공사의 이러한 노력에 박수를 치고 싶지만 이는 시민들을 속이는 행위임을 밝힙니다. 
이유는 본사직원들이 나와 급조되어 한시적으로 하는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이 만큼의 안전인원이 필요함을 인정한 것입니다. 부족인력에 다른 부서의 인원을 역으로 임시로 배치시켰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상시적 안전인력입니다.
신당역 사고이후 일하는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는 지하철을 막고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생명도 위험해질 수 있는 안전의 사각지대인 지하철에 안전인력을 늘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인원감축이라는 구조조정을 발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신당역 사건이든, 10.29 참사든, 나홀로 근무를 하는 인원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할 생각 없었던 것이고 일하는 노동자가 죽어도, 무고한 수많은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을 때도 사고나 참사가 나면 땜방식의 처방을 통해 일단 우선 넘기고 보는 행위는 지금의 서울시와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위험을 방치하는 범죄행위와 같습니다.
인력감축으로 지하철은 병들어가고 있고 이로 인해 일하는 노동자와 다수의 이용객인 천만시민의 안전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천만 시민안전을 지키고자, 죽음의 외주화로, 안전을 팽개치는 탈선을 유도하는 정부와 서울시의 정부의 사악한 구조조정 지침은 철회되어야 한다.
경고합니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지난 11월4일 쟁의권을 확보했고 천만시민들의 생명을 걸고 땜방식, 보여주기식 전시 안전대책으로 도박을 한다면 천만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과 함께 싸울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발언문] 이향춘 의료연대본부 본부장
현재도 코로나 확진자가 1주일 평균이 3만명이고, 향후 20만명 정도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여 7차 대유행이 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원도 채우지 못할 정도로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허덕이고 있는데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423명의 인력을 축소하라고 합니다. 입사 2년 만에 50%의 간호사가 사직하고 있을 정도로 노동강도는 높고, 의료사고의 위험 속에 매일을 불안하게 일하고 있는데 더 쥐어짜고, 더 힘든 노동조건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물가인상을 반영한 실질임금 인상을 요구하지만 임금가이드라인으로 노사 자율교섭을 차단시키고, 노사합의 인력마저 기재부는 승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환자안전을 위한 필수인력 확보와 안전한 노동환경을 요구하고 있지만 방만경영이니 재정을 더욱 긴축하라고 요구합니다. 비정규직으로 병원 일자리를 채우고, 숙련된 노동자는 없어 신규입사자가 신규에게 인수인계하는 일이 반복되어 행여나 의료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하루하루 살얼음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3년 내내 긴장과 비상 상황에서 매일매일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일해 왔지만 바뀐 것 없는 정부를 향해 우리의 요구를 걸고 내일 10일 의료연대본부는 파업을 합니다. 직접 거리로 나서서 국민들에게 우리의 요구를 알려내기 위한 파업입니다. 인력이 부족해서 단 한사람의 환자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환자를 안전하게 돌볼 수 있게 병원노동자들이 일을 멈추고 거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의료연대본부는 병원노동자들의 요구를 모으고 담아 안전이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병원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투쟁에 힘차게 나설 것입니다.
 
[발언문] 박재석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
국민여러분 반갑습니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 박재석입니다. 
화물연대는 “화물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도로도 안전할 수 있다.” 라고 지난 20년간 외쳐왔습니다. 만연한 밑바닥 운임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더 많이 더 빨리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화물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 화물연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물노동자 중 55%가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6시간 이상 초 장시간 노동도 전체의 9%에 달합니다. 그리고 같은 조사에서 99%의 화물노동자들이 화물차운행 중 교통사고 위험을 걱정한다고 나왔습니다. 화물노동자는 국민과 ‘도로’라고 하는 작업장을 공유합니다. 전국 도로위에서 수많은 자동차와 보행자를 스쳐지나가며 일합니다. 
화물노동자가 일하는 매순간 사고를 걱정해야 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도로를 이용하는 국민 모두의 일상은 살얼음판위를 걷는 듯 불안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장시간 노동을 방지하겠다고, 2시간 주행 후 15분 휴식의무를 법제화 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화물을 운송해야 하는 압박과 낮은 운임으로 인해 대부분의 화물노동자들이 이를 지키기 어렵다고 대답했습니다. 근본적으로 화물노동자에게 충분한 운임 보장이 되고, 화주의 책임이 강화되어야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도를 통해 화주의 책임을 강제하고, 적정운임을 보장하는 것만이 화물노동자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한 지금의 안전운임제도는 일몰과 품목제한이라는 한계로 인해 제도의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6월 총파업 당시 윤석열 정부와 국토교통부는 안전운임제도 지속추진과 품목확대 논의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를 정면으로 뒤집으며 안전운임 제도 폐지와 개악에 나서고 있습니다. 
정부는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며 안전에 대한 비용과 책임을 화물노동자에게 전가해왔던 화주를 옹호하고, 화주와 똑같은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입장은, 이 정부에게 화물노동자와 국민의 안전은 지켜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화주의 돈벌이를 위해 희생시킬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선언입니다. 화물연대는 윤석열 정부에게 지난 6월 총파업 합의를 지킬 것을 분명히 요구합니다. 더 이상 정부의 화주 편들기를 봐주지 않을 것을 선언하면서, 안전운임제 개악저지, 일몰제폐지, 차종/품목 확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발언문] 방두봉 지역난방안전지부 지부장
저는 지역난방 열배관을 점검 업무를 하는 노동자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이 사진은 백석역 인근 고양지역에서 노후배관에서 100도씨 고온수가 시민들이 다니는 도로위로 솟구쳐있는 모습니다. 4년 전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사고를 떠올리실 수 있지만, 이것은 올해 5월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고의 사진입니다.
이것은 지역난방유지보수 공사 중 기존 지역난방배관이 파손되면서 고온수가 흘러넘친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지난 6월 도로 위 맨홀 시설물 점검 중 작업자가 달려오는 차에 치인 사고 사진입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지역난방안전(주)은 2018년 백석역 사고 이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대형사고에 대비해 365일 24시간 점검을 하기 위해 설립한 지역난방공사의 자회사입니다. 하지만 공사는 지난 7월 경비 절감을 위해 우리 열배관 점검 업무 계약금액을 축소해, 점검 횟수를 줄이고 점검 인력을 20% 축소했습니다.
발 밑 위험은 쉽게 발견되지 않고, 일단 발생하면 대형 인명사고로 일어나기 때문에 상시 점검과 초동대처 태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데, 아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공공기관 경비를 절감하라고 했다고 시민 안전마저 경비절감의 대상으로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한국지역난방공사는 이렇게 줄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얘기합니다. 이 사진이 수도권 지역 지역난방 배관망 지도입니다. 백석역 사고가 터지고 나서 지역 주민들이 열배관을 발 밑 지뢰라고 했는데, 여기 배관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에게도 이렇게 배관 점검인력을 줄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국지역난방공사에 윤석열 대통령 선거캠프의 주요 인사였던 새 사장이 내정되었다고 합니다. 저희 공공운수노조 지역난방안전지부는 새 사장에게 지역난방 안전문제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파업을 진행합니다. 많은 관심과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국민 안전 국가 책임 강화를 위한 긴급 대정부 요구
<국민 안전 국가 책임 강화를 위해 국정 기조 대전환 필요>
-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와 중대 재해로 안타까운 죽음과 시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음
* 10·29 이태원 참사, 산재 사망 사고 등 중대 재해가 끊이지 않고 반복. 중재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의 산재 사고 사망자 수는 2022년 1~9월 510명으로 크게 줄지 않고 있고, SPC 제빵공장, 철도 오봉역 화물기지 등 대기업·공공부문에서도 사망 사고가 이어지고 있음
- 안전보다는 이윤을 우선하는 ‘시장 주의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 삶과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로 국정기조가 대 전환되어야 함
시장주의 작은 정부: 참사 책임 회피, 시장 자유와 기업 지원 위한 규제 해체, 공공부문 구조조정·인력 감축, 공공부문 민영화·예산 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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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안전 국가 책임 강화: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 대책 수립, 일터와 시민 안전 위한 법·규제 강화, 공공부문 안전 인력 충원, 공공부문 공공성·국가 재정 책임 강화
 
1. 사회적 참사와 중대 재해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 대책 수립
ㅇ 취지
- 정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꼬리 자르기식 책임 회피를 중단하고, 사고의 원인에 대한 심층적이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함
- 중대 산업 재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며, 정부가 실질적 사용자인 공공부문의 경우 모범을 보이고, 민간으로도 확산될 수 있도록 법제도 정비 및 현장 감독을 해야 함
ㅇ 요구
① 이태원 참사 국무총리 사퇴, 독립적·철저한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 수립
- 국무총리 사퇴·정부 책임자 처벌
- 정부와 독립적이고 피해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조사 기구 구성과 운영, 대책 수립
② 철도 오봉역 산재 사망 근본적 대책 수립
- 인력충원을 통해 수송원 3인1조 입환 작업 시행
- 안전한 작업통로 설치 및 조명탑 추가 설치를 통해 작업환경 개선
- 전국 주요 철도기지 입환 작업 실태조사 및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 마련
- 정부는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른 인력감축 및 철도민영화 정책 즉각 중단
2. 생명과 안전 위한 법 제·개정 및 규제 강화
○ 취지
- 정부는 기업 지원을 위해 대대적인 규제 해체에 나서고 있으나, 이러한 규제에는 공공서비스의 보호와 국민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규제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과정에서 화물안전운임제 등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법제도가 개악, 후퇴할 우려가 커지고 있음
- 기업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규제 폐지 중단하고 오히려 안전을 위해 시장과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아 함
○ 요구
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중대재해처벌법 개정
-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으로 시민의 ‘안전권’을 명시하고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 명문화
-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시도 중단하고 모든 사업장 적용·공무원 면책 삭제 등 개정
②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
- 화물안전운임제 일몰제 폐기, 전 차종·전 품목 확대 즉각 개정
③ 철도안전법 개정
- 철도종사자에 대한 규제 중심에서 안전 중심의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면 개정
- 철도안전 관리체계 철도 노동자 참여, 독립적인 국가안전감독기구 설치
④ 원청의 안전 책임 강화
- 원청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상 안전보건의무 이행 철저한 지도 감독
- 하청 대표자와 안전보건 논의 진행, 작업장 순회 점검, 위생시설 제공 등
- 통신케이블 등 문제가 확인된 영역에서부터 노동부 지도 감독 실시
*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조사 결과 통신케이블 등 대기업에서조차 원청이 역할이 부재하며 이로 인해 하청 현장은 안전보건관련 규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어 심각한 상황임
3.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단·안전 인력 충원
○ 취지
- 공공부문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결되거나 국민의 기본적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음. 공공부문에는 적정한 인력이 투입되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하고 시민에게 안전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함
- 현재 정부는 공공부문에 대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인력 감축을 진행하고 있음. 정원을 줄이고 인력을 재배치. 이는 노동자 뿐 아니라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음.
- 인력 감축이 아닌 안전 인력 충원이 해법. 과거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사고 이후 공공기관 안전 인력 충원이 진행되었으나 현장의 안전 인력이 아닌, 관리 인력 중심의 충원이 이루어졌음. 위험 업무 다인 근무, 적정 노동강도 유지를 위해 대대적인 안전 인력 충원이 필요
○ 요구
① 공공부문 정원 감축·구조조정 중단
- 정부 조직의 공무원 및 공무직 노동자에 대한 정원 축소 중단
-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폐기 및 공공기관과 자회사에 대한 정원 축소와 인력 감축 중단
② 노동자·시민 안전 위한 현장 인력 충원
- 위험 업무 2인 1조, 3인 1조 근무 등 현장 인력 충원
- 철도 수송원 3인1조 입환 작업 시행, 자회사 인력 감축 중단 안전 인력 충원
- 서울교통공사 인력 감축 중단, 도시철도 안전인력 충원
- 국립대병원 인력 감축 중단, 병원 현장 인력 충원
- 인천공항 자회사 교대제 개선(원청과 같은 4조2교대 도입), 현장 부족 인력 11% 충원
- 지역난방안전 정원 축소 중단, 안전 인력 확대
- 학교 공무직 배치 기준 개선, 교육청 ‘전담 대체인력 제도’ 도입
- 집배원 겸배제도 폐지, 예비 인력 충원
- 작업자 건강과 대시민 서비스 안전 위한 적정 노동강도 유지를 위한 현장 인력 충원
③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기준 법제화
- 10만이 청원한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으로 간호사 1인당 적정 환자 기준을 법제화
- 국립대병원에서부터 시범 사업 실시하고 2023년 정부 예산으로 반영
4.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공공성 강화와 국가 재정 책임 확대
○ 취지
- 정부는 민자투자 확대, 외주화, 재정 지원 축소, 공공기관 기능조정, 민간위탁 등 다양한 형태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음. 민영화는 공공서비스를 시장과 이윤 중심으로 운영되도록 하여 안전을 위협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력 감축과 구조조정 역시 안전의 위협 요소임
- 민영화를 중단하고 공공서비스 국가의 재정, 운영 책임을 강화하는 한편 민영화된 부분도 재공영화하여 공공성을 강화해야 함
- 2019년 공공기관 안전지침이 수립되어 안전 중심의 운영 강화 시도가 있었으나 지침의 한계와 형식적 운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음. 더구나 최근에는 안전 관련 경영평가 배점을 4점에서 2점으로 축소하는 등 기존 정책의 후퇴도 진행. 공공기관의 안전 중심 운영, 노동자와 시민이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의 구축 필요
○ 요구
① 민영화·기능조정 중단, ‘공공서비스 민영화 금지와 재공영화 기본법’ 제정
- 민자투자사업 확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 사적 연금 활성화 등 민영화 정책 중단
- 민영화를 금지하고 재공영화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기본법 제정
② 안전 중심 공공부문 운영 전환
- 공공기관 안전기본계획 이행 담보 : 예산 및 정원 반영
- 현장 안전을 저해하는 안전 등급제 폐지
-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는 안전관리 이행점검 협의체 구성
- 공공기관 경영평가 안전 평가 배점 삭감 원상 회복하고 객관적이고 실질적 평가 지표 마련
③ 도시철도 안전 강화 국고 지원 확대 및 제도 개선
- 전국 도시철도 노후차량·시설 교체, 무임수송 손실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
- 무임소송 손실 국고 지원 위한 철도산업법 개정 및 예산 반영
- 노후차량·시설 국고 지원 5,758억원 증액 요청 : 지원 대상 및 국비 지원율 확대‘
- 민간위탁 운영되는 도시철도 공영화 및 안전 운영 강화
- 민간 지하철 노선의 시행사 직영 추진 및 공영화
- 도시철도-경전철 최저가 입찰 제외 및 폐지(지방계약법 제18조)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937
공동파업 경고한 공공운수노조, "안전 위한 국정기조 대전환 필요" (참세상, 은혜진 기자 2022.11.09 17:03)
공공운수노조, '작은 정부' 비판…안전 관련 대정부 요구안 발표
이태원 참사 이후 공공부문, 운수 산업, 사회서비스 노동자들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483건 일어났고, 510명이 사망했다. 지난 5일 오봉역 화물기지 철도노동자 사망사건을 비롯해 올해 들어 한국철도공사에서 네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공공부문에서도 사망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공공운수노조는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참사·중대 산업재해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를 촉구했다. 국가 책임을 포기한 '작은 정부'가 노동자와 시민을 위험에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조는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시장주의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 삶과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로 국정 기조가 대 전환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노조는 국민 안전 관련 국가 책임 강화를 위한 긴급 대정부 요구안을 발표했다. △사회적 참사와 중대 재해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 대책 수립 △생명과 안전 위한 법 제·개정 및 규제 강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단?안전 인력 충원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공공성 강화와 국가 재정 책임 확대 등이 주요 요구다.
노조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는 국무총리 사퇴와 정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진상조사기구는 정부에서 독립된 형태를 제시했으며, 해당 기구에는 피해자·시민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제도 및 규제와 관련해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중대재해처벌법 개정,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 철도안전법 개정, 원청의 안전 책임 강화 등이 제시됐다. 위험 업무에 대한 2인 1조, 3인 1조 근무 등 인력 충원이 필요한 곳으로는 한국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 국립대병원, 인천공항공사 자회사, 지역난방공사 자회사, 학교, 우체국 등이 언급됐다. 공공기관과 공공기관 자회사에 대한 정원 축소와 인력 감축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다.
오봉역 사망사건, 이태원 참사 정부의 후속 대응에
인력충원 호소하는 노동자들
최근 오봉역 청년 철도노동자 사망사건의 원인에서도 인력 부족이 꼽힌다.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은 "노사간의 합의로 진행한 4조 2교대 전환은 한 명의 안전 인력 충원 없이 진행됐다. 사고 당시 3명으로도 부족한 작업을 2명이 하고 있었다. 만약 3인 1조 작업이었다면 이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더 이상의 인력감축은 철도 현장을 핏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기재부가 혁신 가이드라인이라며 내놓는 인력감축은 철도노동자들을 사지로 몰 것이며, 철도 안전을 파괴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순필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지난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와 서울시가 출퇴근 시간, 지하철역에 안전 요원을 투입하는 것이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 노동자들이 새로운 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순필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정부 등이 15개 역에 하루 200명씩 현장 인력을 빼 쓰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업무를 멈추고 투입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항의하니, 2개월 정도만 이대로 버텨본다고 한다"라며 이는 "평상시 이만큼의 안전 인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코로나19 7차 대유행을 우려하며 인력 충원 요구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는 10일 파업을 벌이는 의료연대본부의 이향춘 본부장은 "숙련된 훈련을 통해 환자를 봐야 하는데, 그 기간을 단축하다 보니 노동자들은 환자를 사망에 이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직하고 있다"라고 파업의 이유를 전했다.
지역난방 열 배관 점검 노동자도 인력 부족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 지역난방 열 배관 점검 노동자인 방두봉 지역난방안전지부 지부장은 "(지역난방)공사는 지난 7월 경비 절감을 위해 우리 열배관 점검 업무 계약 금액을 축소해, 점검 횟수를 줄이고 점검 인력을 20% 축소했다"면서 "(지난 2018년) 백석역 사고가 터지고 나서 지역 주민들은 열 배관을 '발밑 지뢰'라고 한다. 이 위에 사는 시민들에게도 배관 점검인력을 줄여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 지부장은 지난 5월 백석역 인근 고양 지역 노후배관에서 100도에 달하는 고온의 물이 도로 위로 솟구쳐 있는 사진, 지난 6월 도로 위 맨홀 시설물 점검 중 작업자가 달려오는 차에 치인 사진 등을 보여주며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전했다.
국민과 '도로'라는 사업장을 공유한다는 화물노동자 대부분은 화물차 운행 중 교통사고를 걱정하고 있다. 최근 화물연대본부 조사 결과 99%의 노동자는 교통사고 위험을 걱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5%는 12시간 이상 일하며 16시간 이상 초장시간 노동을 한다는 노동자도 9%나 됐다. 박재석 화물연대본부 사무처장은 "화물노동자가 일하는 매 순간 사고를 걱정해야 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도로를 이용하는 국민 모두의 일상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 불안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면서 "적정운임을 보장하는 것만이 화물노동자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대정부 요구안이 "일터와 일상에서 끊일 줄 모르는 재난과 참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 위원장은 "공공운수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공공-운수-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25만 명이 함께 하는 노조"라며 "만일 윤석열 정부가 이런 공공운수노조의 요구와 경고를 무시한 채, 지금과 같은 민영화-시장주의에 터 잡은 ‘작은 정부’를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의 공공성-노동권 파괴에 맞서 11월 말~12월 초 국가책임 확대와 안전 사회 실현을 위한 대정부 공동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11101111021
윤석열 대통령의 말…정책결정자의 말이 ‘안전’과 ‘재난’을 가른다 (경향, 허진무 전지현 기자, 2022.11.10 11:11)
대통령의 메시지는 국가의 정책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사 시절부터 “법과 원칙에 따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서도 지난 1일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처리하라”고 했다. 경찰과 용산구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여서 규정이나 매뉴얼이 없었다’고, 대통령실은 “집회나 시위가 아닌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에 경찰이 개입할 권한이 없다”고 변명했다. 국가가 시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라야 할 법과 원칙이 없었다’는 이유를 댄 것이다.
뒤늦게 대통령실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이 윤희근 경찰청장에게 “경찰은 왜 4시간 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나. 제도가 미비해 대응을 못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냐”며 질타했다고 공개했다. 이 발언을 두고도 책임을 경찰에게 떠넘기는 ‘유체이탈’ 화법이란 지적이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8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윤 대통령이 원자력발전과 관련해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상기시켰다. 이런 태도가 ‘안전에 무관심한 국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런 태도가) 이태원 참사와 직접 연결되는 행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참사가 발생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의 핵심”이라며 “정책 결정자의 태도나 지향은 안전이나 재해 예방의 행정과정 자체를 변경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AI 재난예방’한다더니…재난문자도 늑장 발송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신속하고 정확한 디지털 국가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재난안전 신고와 정보를 통합 처리하고 예방 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막상 재난이 닥치자 첨단 기술은커녕 기본적인 재난 문자메시지 기능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 8월8일 수도권에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져 9명이 숨졌다. 차량 1만여대가 침수되고 피해액은 1000억원이 넘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방에선 일가족 3명이 쏟아지는 빗물을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서울시는 오후 9시19분 ‘저지대 침수구역 대피’ 재난문자를, 관악구는 오후 9시21분 ‘도림천 범람 우려’ 재난문자를 발송했지만 저지대 주택들이 침수된 뒤였다. 위험에 빠진 신림동 일가족을 구조해달라는 신고가 오후 8시59분부터 경찰에 8건 접수됐지만 경찰은 30분이 지난 뒤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윤 대통령은 다음날인 9일 일가족 사망 현장을 찾아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은 미리 대피가 안됐는가 모르겠네”라며 “내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이 벌써 침수가 시작되더라고”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시내가 침수되는 상황을 보고서도 용산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로 가지 않고 서초구 자택으로 퇴근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자택에서 재난 대응을 지시했다’고 해명했지만 대통령의 ‘재택 근무’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강승규 시민사회수석은 “비가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을 안하냐. 대통령이 계신 곳이 바로 상황실”이라고 말해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다음달인 9월에는 태풍 ‘힌남노’가 경북 지역을 강타해 11명이 숨졌다. 윤 대통령은 이번에는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철야 근무하고 포항·경주시를 재난특별지역으로 지정했다. 윤 대통령은 9월10일 “국민 안전에 대해 국가는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때도 재난 문자메시지는 여지없이 늦었다. 서울시는 참사 당일 오후 11시56분에야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긴급사고로 현재 교통통제 중. 차량 우회 바랍니다’라는 문자를 처음 보냈다. 경찰에 최초 112신고가 접수되고 약 6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태원동 일대에 몰려든 인파와 차량 때문에 소방당국의 구조 작업이 늦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국회에서 “분명히 국가는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인력 감축하며 안전도 감축
윤석열 정부는 예산 절감을 위해 공공분야 인력을 대규모 감축하는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 지침’을 세웠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21일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방만하게 운영돼온 부분은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의 고강도 구조조정 속에서 안전과 직결된 예산과 인력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월8일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자회사인 지역난방안전 노동자 1명이 경기 고양시의 도로 맨홀 안에서 열수송관 점검을 하다 차량에 치여 다쳤다. 노조는 교통 통제와 안전한 작업을 위해 사측에 ‘도로점용허가’를 신청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역난방안전은 2018년 12월4일 고양시 백석역 열수송관 파열로 1명이 사망하고 55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자 설립한 안전관리 전담 자회사이다. 지역난방안전은 지난 7월 열수송관 안전 점검 횟수를 줄여 점검인력을 175명에서 141명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정부의 ‘인력 감축’ 지시에 공공기관들은 잇달아 안전 업무를 축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전력공사는 ‘고압검침’ ‘전력량계 시험’ ‘전력설비 방호’ 등의 안전 업무를 자회사로 이관해 64명을 줄인다. 한국가스안전공사는 액화석유가스(LPG) 대중이용시설 검사 기간을 연 2회에서 1회로 축소하고 저장능력 250㎏ 미만인 지하실을 검사 대상에서 제외해 37.5명을 줄인다. 한국전기한전공사는 ‘도심지 전기안전관리대행’ 업무에서 398명을 줄인다.
올해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 5일 경기 의왕시 오봉역에서 차량 정리 작업을 하던 직원 1명이 열차에 치여 숨졌다. 다음날인 6일에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해 승객 34명이 다쳤다. 한국철도노조는 인력 부족을 오봉역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작업자의 불안전한 행동은 사고 원인이 아니라 높은 업무강도나 개인의 피로 등 다양한 배후 원인의 결과”라는 것이다.
안전 중시가 ‘관료적 사고’인가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의 완화를 주장해왔다. 이 법은 사고 책임자를 처벌해 산재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을 보면 산업재해에 대한 공약은 ‘소규모 사업장이나 건설현장에 산재예방 기술과 예산을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이 사실상 유일하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대형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수사와 처벌을 강조하면서도 산재에 대해선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고 했다. 전국민 산재보험을 공약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나 중대재해법 강화를 공약한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비해 산재 관련 공약이 훨씬 적었다.
산재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인식이 드러난 장면이 있다. 지난해 12월1일 경기 안양시에서 도로포장 공사를 하던 노동자 3명이 바닥 다짐용 롤러에 깔려 숨졌다.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다음날 사망 현장을 방문해 “(노동자가) 시동장치를 끄고 내리기만 했어도… 간단한 실수 하나가 정말 엄청나게 비참한 사고를 초래했다”며 “이건 그냥 본인이 다친 것이고, 기본적인 수칙을 안 지켜서 이런 비참한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을 두고 중대재해법 완화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사고 당일에는 충남북부상공회의소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해 중대재해처을 두고 “기업인들의 경영 의지를 위축시키는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며 “합리적으로 설계해 기업 하시는 데 걱정이 없도록 하고, 산재 예방에 초점을 맞춰 근로자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원전 최강국 건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며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원전 규제를 풀고 안전 기준을 낮춰 원전 일감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22일 원전산업 협력업체 간담회에서 “지금 원전업계는 전시다. 탈원전이라는 폭탄이 터져 폐허가 된 전쟁터”라며 “전시엔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해 8월5일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선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원전 자체가 붕괴한 것은 아니니 기본적으로 방사능 유출은 안 됐다”고 했다. 2011년 3월 지진해일(쓰나미)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 발생한 대규모 방사능 유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물론 일본 정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 측은 인터뷰가 보도되자 발언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1100300075
이주호 부총리와 윤석열 정부, ‘위험한 컬래버’ (경향, 송현숙 후마니타스 연구소장·논설위원, 2022.11.10 03:00)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임명했다. 현 정부 들어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14번째 고위직 인사다.
현 정부에 더 이상 잘 어울릴 수 없는, ‘완벽한’ 인사다. 지난달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전 부처의 산업부화를 주문했다.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관련 서비스 산업부라 봐야 하고, 국방부는 방위산업부,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산업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부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뛴다는 자세”도 당부했다. 교육부에 대해선 이미 지난 6월 “교육부 스스로가 경제부처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던 터다. 각 부처의 존재이유를 배반할 수도 있는, 기막힌 인식이다. 이런 대통령의 장단에 별 고민 없이 박자를 맞춰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주호 부총리다.
이 부총리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일했던 경제학자다. 언론 인터뷰에선 스스로를 “시장경제주의에 철저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재임 당시, 교육에도 시장경쟁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공언하며, 가능한 한 많은 정보 공개로 교육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원 평가, 일제고사,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등을 추진하며 점수 공개와 줄세우기를 일삼았고, 입학사정관제 확대, 국립대 총장 직선제 폐지 등은 예산과 페널티라는 당근과 채찍으로 단시간 내에 정해진 답을 향해 현장을 굴복시켰다.
그러나 교육에선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잊었을지 모르지만 이주호 장관 시절 교육계 최대 이슈는 심각해져가는 학교폭력이었다. 모든 것이 점수와 평가로 재단되는 극도의 경쟁적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열패감과 고통의 수렁에 빠졌고 교육현장은 안으로 병들며 황폐해졌다.
세월호 참사 한 달 후 신설된 사회부총리는 비경제정책 분야인 교육·사회·문화를 총괄하는 자리다. 교육·문화체육·보건복지·고용노동·환경·여성가족부 등 경제적 효율보다는 일상의 복지가 중요한 분야들이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구분한 국가의 오른손(전통적 의미의 국가 기능)과 국가의 왼손(복지를 위한 예산 지출 기능) 중 왼손에 해당한다. 스스로 시장경제주의에 철저하다고 평가하는 사회부총리가, 국가의 오른손을 견제하며 복지를 챙기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견제는커녕 폭주하는 오른손에 맞춰 박수를 쳐주지 않을까 불안하다.
세월호에 이어, SPC 사태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며 “돈보다 생명” “이윤보다 안전”의 구호가 높아지고 있다. 민심은 ‘적극적인 공공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시대정신은 ‘복지와 공공성 강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경제위기에서) 재정정책은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현 정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지난 9월 현금 복지는 취약계층 위주로 하고, 서비스 복지는 민간 주도로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주도 고도화”라 포장했지만, 사회서비스 민영화를 가속화해 안 그래도 한 줌뿐인 복지서비스의 공공성을 놔버리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방향은 약자 복지를 줄줄이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주거 약자들에 절실한 공공임대 예산 5조600억원이 삭감됐고, 중소기업이 청년을 고용하면 주던 정부 지원금 1조원, 저소득층 에너지 바우처, 에너지 복지예산 492억원 등이 싹둑싹둑 잘렸다.
어느 때보다 공공의 자리가 절실한데, 현 정부는 기본부터 바닥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법 입법, 다각적인 공공부문 민영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전 부처의 산업부화’라는 기치 아래 이 부총리와 윤석열 정부의 ‘협업’이 몰고 올 난장판이 무섭다.
지난달 28일 인사청문회에서 이주호 후보자는 “고교 다양화 정책이 서열화로 이어진 부작용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지금 교육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사회부총리의 영향력은 장관 때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교육·노동·복지·환경 등의 잘못된 정책 방향은 ‘사회적 재난’을 몰고 올 텐데, “최선을 다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10년 후 한국 사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비극적 역사가 반복될까 정말 우려스럽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10913310005707
[단독] 세월호 계기 '골든타임 매뉴얼' 만들고도... 경찰 등 無협조에 참사 반복 (한국일보, 이정원 기자, 2022.11.10 04:30)
서울시, 세월호 반성 2014년 매뉴얼 만들어
55개 재난유형 세분화, '황금 목표시간' 제시
"유관기관 협조 없으면 시민 대처 무용지물"
서울시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 유형을 세분화해 만든 ‘골든타임(황금시간ㆍ사고 발생 후 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시간) 대처 매뉴얼’이 이태원 참사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 당일 원활한 교통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소방당국의 현장 출동이 지체된 이유가 가장 크다.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의 소방 협조를 매뉴얼에 명문화해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압사 등 55개 재난 골든타임, 이태원에선?
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시는 2014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부임 직후 재난 초동대처를 강화하기 위해 ‘재난유형별 황금시간 목표제’를 내걸고 정책 수립에 나섰다. 세월호 사태 당시 해경 등 당국의 소홀한 대처가 피해 규모를 키운 것으로 드러나자 박 전 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10대 안전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중에서도 황금시간 목표제는 핵심이었다.
서울시는 수차례 연구 용역과 민관협의기구 논의를 거쳐 같은 해 12월 재난유형을 55개로 자세히 분류했다. 이태원 참사 상황과 유사한 공연ㆍ행사장에서의 인파 사고도 ‘인적 재난’ 유형에 들어갔다. 특히 시 싱크탱크 격인 서울연구원은 황금시간 목표제 검증 및 평가 용도로 2016년 작성한 최종 보고서에서 공연ㆍ행사장 안전사고의 주된 원인을 ‘압사’로 적시했다. 또 심폐소생술(CPR) 황금시간(5분)을 지키려면 ①시민의 초동 대처와 ②소방당국의 현장 출동 속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
이태원 참사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했다. 시민들의 대응은 빨랐다. 현장 목격자들은 압사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수십 건의 신고로 일찌감치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구조 인력은 즉각 투입되지 않았다. 경찰과 서울시, 용산구청의 늑장 교통 통제 탓에 구급대가 5분 거리를 가는 데 33분이 걸렸다. 재난의료지원팀 역시 소방당국에 첫 신고가 접수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사이 ‘심정지 상태’였던 수십 명의 환자가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단순히 구조팀의 출동 속도가 능사가 아니라 빠른 출동에 필요한 세부 여건, 즉 ‘관계기관의 협력’이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참사 5년 전 "소방 노력만으론 부족" 지적

더 뼈아픈 건 이태원 참사를 예상이라도 한 듯, 이미 유관기관 협조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문제 제기가 오래전에 있었다는 점이다.
황금시간 목표제 시행 3년이 지난 2017년 대한안전경영과학회는 ‘재난대응 황금시간 목표제의 효과성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서울의 한 일선소방서 현장대응단 소속 대원 102명에게 물어 “교통량이 많거나 사고발생 지점이 원거리인 경우 소방당국의 노력만으로 도착 시간 단축이 곤란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안전 전문가들이 매뉴얼의 미흡함을 지적했지만 정책 평가에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나욱정 안동과학대 소방안전과 교수는 “시민 신고와 소방 출동을 황금시간 확보의 유일한 전제 조건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이태원 참사에서 확인한 것처럼 자치구 차원의 사전 대비, 경찰 인력 배치 등 세부 요소도 매뉴얼에 담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ttp://www.naeil.com/news_view/?id_art=441261
잇따른 10.29참사·중대재해 "국가 책임 안전 강화해야" (내일신문, 한남진 기자, 2022-11-10 10:59:07)
공공운수노조 '작은 정부' 비판
10·29 이태원 참사, 오봉역 철도노동자 사망사고 등 잇따른 사회적 참사와 중대산업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국민의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사회적 참사, 중대산업재해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며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시장주의 작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기본적 삶과 안전에 대한 국가 책임 강화로 국정 기조가 대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긴급 대정부 요구로 △사회적 참사와 중대재해에 대한 철저한 원인 규명과 근본적 대책 수립 △생명과 안전 위한 법 제·개정 및 규제 강화 △공공부문 구조조정 중단 및 안전 인력 충원 △공공부문 민영화 중단과 국가재정 책임 확대 등을 제시했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는 국가책임을 외면한 '작은 정부'가 국민의 목숨과 안전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 드러낸 비극"이라며 "윤석열정부는 민영화, 인력·예산 감축, 공공서비스 민간 이전 등을 추진하며 국가책임과 공공성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은 "올해만 벌써 철도공사에서 4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며 "노사 간 합의로 4조 2교대로 전환했지만 인력충원 없이 전환이 진행되며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어 "오봉역 사고 역시 3명이 한조를 이뤄 작업을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획재정부가 혁신가이드라인이라며 내놓고 있는 인력감축은 철도노동자들을 사지로 몰고 철도안전을 파괴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명순필 서울교통공사노조 위원장은 "인력감축으로 지하철은 병들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일하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며 "시민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정부와 서울시의 구조조정 지침이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 노동자들도 코로나19 7차 대유행을 우려하며 인력 충원을 요구했다. 이향춘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숙련된 훈련을 통해 환자를 봐야 하는데, 그 기간을 단축하다 보니 노동자들은 환자를 사망에 이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정희 위원장은 "정부가 지금과 같은 민영화·시장주의에 터 잡은 '작은 정부'를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의 공공성·노동권 파괴에 맞서 11월 말~12월 초 국가책임 확대와 안전사회 실현을 위한 대정부 공동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6650.html
[아침햇발] ‘눈 떠보니 후진국’ (한겨레, 박현ㅣ논설위원, 2022-11-10 14:56)
요즘 우리나라는 정치·외교·사회·경제 거의 전 분야에서 국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우리나라 국정 운영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있음을 방증한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책이 지난해 화제를 모았는데, 이제는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과 1.5㎞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참사는 국가의 부재를 참혹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다중인파가 몰리는 행사가 열리면 사전에 안전관리 대비책을 세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 어떤 조직도 총대를 메고 나서지 않았다.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다급하게 위기 신호를 보냈으나, 이에 신속히 반응하는 조직도 없었고 위기관리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경찰·지자체 책임자들은 아예 제자리에 있지조차 않았다. 이들을 독려하고 조정해야 할 컨트롤타워인 대통령실 국정상황실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존재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컨트롤타워 책임자들은 내 책임이 아니라거나(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 보고를 못 받았다고(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변명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정상황실이 위기관리의 컨트롤타워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는데 이를 책임지는 비서실장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이 장관은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한 장본인이면서도 경찰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고 뻔뻔하게 발뺌하기까지 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이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니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태원 참사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관료들이 늑장 대처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금융시장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촉발한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경색을 정부는 한달 가까이 방치했다. 금융관료들도 이 사안을 알고 있었으나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자금경색이 확산하고 나서야 허겁지겁 ‘50조+알파’ 유동성 공급대책을 내놨다. 게다가 지난주엔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콜옵션) 연기를 발표해 채권시장을 다시 불안에 빠뜨렸다. 금융당국은 이 발표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걸을 때는 작은 위험 요소라도 불씨가 돼 순식간에 위험이 확산할 수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것일까.
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의 해명이 더 가관이다. 그는 “흥국생명이 11월1일 콜옵션 행사 안 하겠다고 발표했고, 문제될 것 같아서 ‘흥국생명 괜찮은 회사다’라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며 “그런데 이게 해명이 안 될 것 같아 미리 조치를 준비한 것으로 대응하자고 했고, 11월9일 콜옵션 이행을 다시 추진해 사태가 해결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늑장 대처가 불안을 키웠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래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몰염치한 태도다.
지금 공직사회는 나사가 풀려 있어도 한참 풀려 있다. 나라는 엉망인데 관료들은 태평성대라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다. 중대 사안이 벌어질 위험이 농후한데도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외교 참사에 이어 사회, 경제 분야에서 잇따라 큰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현 집권 세력의 국정 수행능력이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했음을 방증한다. 권부 핵심을 차지한 검찰 엘리트들은 국정 운영 경험조차 없고, 이들이 하위 파트너로 손을 잡은 모피아를 비롯한 행정 관료들은 권력 핵심부 눈치보기에 급급하며 제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어쩌다가 국가 시스템이 갑자기 엉망이 되고 국격 추락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을까. 가장 큰 원인은 리더십에 있다. 어느 조직이나 리더는 우선순위를 선택해 방향을 제시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리더가 만사에 솔선수범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이 최종 책임을 지겠다고 하며 힘을 실어주고 독려를 해야 조직이 굴러가는 법이다.
거대한 관료 조직은 이런 리더십이 더더욱 필요한 곳이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이너서클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면서 책임을 하부에 떠넘기면 관료들은 충성도 하지 않을 뿐더러 복지부동에 빠진다. 혹시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눈치를 보며 자기 보신에만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도 대통령이 먼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들께 공식 사과를 한 뒤에, 공직자들을 엄중히 꾸짖었어야 했다.
두번째는 관료집단의 문제다. 과거 개발연대에는 관료가 유능한 집단으로 인정받았으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이미 지배계급화 되어 있어 서민층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국민과의 공감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비서실장, 이상민 장관 등 엘리트 관료 출신들의 행태에서 잘 드러난다.
윤 대통령이 그 동안의 국정운영 방식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환골탈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면적인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지나치게 검찰과 관료 엘리트들에 의존하면 이런 위기 상황은 반복해서 발생할 것이다. 진보·보수를 떠나 역량있고 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을 요직에 등용해 정부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그래야 관료 조직이 움직이고 국정 안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11015020004734?did=NA
[논담] “세월호, 이태원 다시 겪지 않으려면 대통령실·총리실이 위험관리 브레인 돼야” (한국일보, 임소형 논설위원, 2022.11.10 17:00)
[임소형의 응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15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2주가 됐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참사가 남긴 상처는 치유는커녕 여기저기서 덧나고 있다. 경제대국, 문화콘텐츠강국, 방역선진국에 산다는 자부심은 믿기지 않는 대규모 압사 참사에 속절없이 추락했다.
대규모 참사가 빚어진 원인과 책임을 되짚어가는 과정은 늘 그랬듯 지난하고 아프다. 화려한 발전 뒤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이면이 얼마나 허술하고 어두웠는지 하나둘씩 드러나는 내내 부끄러움과 분노를 곱씹어야 했다. 필연적으로 정치가 파고들었고, 결국 참사를 둘러싼 갈등과 분열의 외침이 위로와 반성의 목소리를 가리기 시작했다.
멀게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가까이는 세월호 침몰을 겪고도 또 대형 인명사고를 피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뼈아프다. 그렇게나 많은 사고가 있었는데도 한국의 공공 안전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외신들의 따끔한 지적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앞으로 달라질 순 있을까.
지난 3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에서 만난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대형 참사가 반복되는 원인을 ‘소통과 학습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30년 넘게 재난과 위험의 사회학을 연구해온 그는 “이번에도 비난만 하고 끝나면 같은 일이 또 반복된다”고 경고했다. 관료 사회가 치부를 온전히 드러내 변모해야 하고, 고위급 참모들이 위험 대비 전략을 총괄하는 브레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숙성형+돌발형+복잡계적 사고
-지난달 말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을 접한 순간, 위험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직감적으로 ‘소통의 실패’일 거라고 느꼈다. 재난은 대부분 사전에 예견되지 못한 채 출현하는 속성을 갖는다. 경찰이나 구청의 현장 인력들은 핼러윈 행사처럼 자연발생적으로 군중이 밀집할 때 그렇게까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사전에 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모이는지를 오랫동안 봐온 경험 많고 책임 있는 관리자가 전체 시스템 내에서 종합적인 판단을 해 행동을 취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막혔다. 위험 신호들이 곳곳에서 계속 답지할 때 제때 파악하고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이 안 됐거나 무시됐다. 이벤트 안전 관리 체계의 소통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에선 이런 경우에 대비해 정부가 사람들이 몰리는 행사 때 꼭 점검해야 할 목록을 매뉴얼로까지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해 놓는다. 경찰, 구청 인력이 아니어도 행사를 조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다. 매뉴얼을 이용해 교통과 밀집도 관리 방법을 확인하는 건 물론이고 현장에서 참가자들이 음식을 먹는지, 불꽃놀이 같은 특수효과가 있는지, 놀이 활동을 하는지 등에 따라 필요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면서,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며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를 2014년 4월의 세월호 참사와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둘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든다면.
소통의 실패로 빚어졌다는 점, 정치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태원과 세월호 사고를 보며 사람들이 분노하고 두려워한 주된 이유는 책임 없는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갈등이 촉발되고 위험이 정치화한다. 이는 한국 특유의 유교적 정서와도 맞닿아 있다.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보면 세상만사도 인간관계도 옳은 이치에 따라야 하는데, 재난은 옳은 이치가 깨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반드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기고, 정치도 책임자에 대한 비난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
세월호 참사는 전형적인 ‘숙성형’ 사고다. 배가 도입돼서 운행될 때까지 수년 동안 많은 위험 요소들이 발견되지 못한 채 축적됐다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안전점검, 구조변경, 과적출항 등 여러 단계에서 안전을 위한 규제나 기준이 지켜지지 않았다. 숙성형 사고는 규제를 운영하는 조직의 실패이기도 하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마포 가스폭발, 서해훼리호 침몰 등 1990년대에 유독 숙성형 사고가 많았다.
-세월호 침몰이 숙성형 사고라면, 이태원 참사의 특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
이태원 참사는 숙성형 사고의 측면도 있지만 ‘돌발형’ 사고이기도 하다. 여기에 ‘복잡계적’ 특성이 합쳐졌다. 합법적이고 제도화한 축제의 공간이 부족했던 젊은이들에게 핼러윈은 억눌렸던 에너지를 풀 수 있다는 기대감과 동질감을 줬다. 유럽의 밀 문화가 개인 노동 중심으로 발전해온 것과 달리 아시아의 벼 문화는 집단 노동 위주였다. 그래서 감정과 정보의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다. 한국은 교통망도 매우 발달해 있다. ‘좁은 세상’을 만드는 문화적, 기술적 배경이 기대감을 공유하며 끓어오른 젊은이들이 일거에 집단으로 모일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청둥오리나 기러기 떼는 수만 마리씩 이동해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간단한 원리에 따라 확보한 거리 유지 감각이 내재돼 있어 집합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속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특별히 훈련받지 않으면 그런 움직임이 불가능하니, 밀집이 과해지면 위기 상황이 생기게 된다. 마치 액체와도 같이 밀려가던 개인들이 임계점을 넘는 밀도로 밀착되면 고체처럼 변하고, 이때 받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단, 이런 문제를 사전에 인식하기만 하면 해결이 가능하다. 한강 불꽃놀이나 광화문 집회에도 사람들이 밀집했는데 이태원처럼 사고가 생기지 않은 이유다. 반면 이번 핼러윈 때는 개인들이 뒤늦게 위험을 알았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신고가 갔는데도 안전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사각지대가 됐다.”
법률가들 바이어스, 현실과 괴리
-외신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정부가 공공 안전 체계를 충분히 갖췄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로 분명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이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문제 해결법을 학습하는 방식을 사회학에선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먼저 ‘내부화'를 통해 해결하는 ‘단일 순환 학습(싱글 루프 러닝)’이다. 내부 누구의 책임이냐부터 따져서 빨리 벌을 주고 빨리 사표를 받는 식이다. 그리곤 내부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조직 간판을 바꾸는 방식으로 변화를 보여주려 한다.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결심들도 내놓는다. 그러나 이건 제대로 된 학습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응이 대표적인 단일 순환 학습 사례다. 당시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만들고 해양경찰청을 해체하는 등 내부 중심의 해결에 주력했다. 그렇게 끝내 버리니 달라지는 게 없다.”
-그럼 실패로부터 뭘 어떻게 학습해야 하나.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나.
내부화가 아니라 ‘외부화’로 접근해야 한다. 그게 사회학에서 설명하는 ‘이중 순환 학습(더블 루프 러닝)’이다. 핵심은 문제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외부에, 특히 전문가들에게 공개하는 것이다. 실수를 낱낱이 드러내고 어디가 문제였는지를 객관적으로 짚어야 한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이후 보건당국이 외부 전문가를 불러들여 대응 과정 하나하나 다 공개하고 점검해가며 백서를 만들었다. 그 경험이 코로나19 대응에 큰 도움이 됐다. 실패에서 배운 것이다. 외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보를 내놓으면 공격받으니 자꾸 덮으려 하고, 그럴수록 정치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리스크(위험) 관리’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사람들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할 때 리스크 총량과 변화 추세를 가늠하고 전략을 짜야 한다. 새롭게 부상하는 리스크가 뭔지, 정부가 기준을 만들고 대비해야 하는 리스크와 민간에 맡겨야 하는 리스크가 뭔지 전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위험 관리 조직은 대증적이다. 화재, 범죄, 가스, 전기 등 각 위험 요소별로 대응 조직이 따로따로다. 각 조직의 실무자들은 자기가 담당한 일만 하려 하고, 규정대로만 판단하려 한다. 리스크 전체를 보는 브레인이 없으니 겹치는 부분, 비는 부분이 생긴다. 이태원 참사가 바로 그렇게 생긴 사각지대에서 일어났다.
행정조직론의 시조라 불리는 프랑스 학자 헨리 페이욜이 제시한 조직 운영의 원칙 중 하나가 실행과 스태프(참모) 기능의 구분이다. 우리로 치면 정부의 각 부처는 실행을, 대통령실이나 총리실은 스태프를 맡아야 한다. 리스크 사각지대를 채우고 전체를 아우르는 대응 전략을 책임지는 스태프 기능이 현재 부족하다. 다른 재난에 대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9월 태풍 ‘힌남노’로 국가기간산업 시설인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일부 침수됐다. 스태프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지금쯤은 아예 고로까지 물에 잠기는 상황에 대비한 계획을 고민하고 있어야 한다. 카카오 먹통 사태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센터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의 일상이 마비되는 만큼 네트워크 도미노라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한 데 대해 결국 사과했다. 공직자의 발언이 시민들 생각과 한참 동떨어져 있어 답답할 때가 많다.
늘 규정대로만 판단하는 법률가들의 바이어스(편향)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처음엔 주최자가 없고 신고도 안 돼 있는 행사라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사건으로 여겼을 것이다. 여기서 정부가 학습해야 하는 건 제도와 현실 사이의 괴리다. 명시적인 주최자가 없어도 초연결사회에선 감정이 확산되고 정보가 전파되며 개인들이 모인다. 그렇게 모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나 밀도가 될 수 있다. 이런 복잡계적 현상이 현실에선 얼마든지 나타난다.
다행히 우리에겐 기술이 있다. 지하철 타는 인원을 셀 수 있고, 주요 장소마다 군중 밀도를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런 기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혁신적 방법으로 리스크 관리가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 정부의 스태프 기능이 맡아야 할 일이다.”
재난적 유대감 끌어올려야 할 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한국에서 노동자들이 일하다가 허망하게 숨지는 사고도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세월호, 이태원 같은 대형 참사가 계속되는 것과 산업재해가 이어지는 현상이 관계가 있을까.
“산업재해도 결국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 산업 현장에는 늘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논리가 작동한다. 안전을 챙기면 비용이 많이 들기에 압력이 될 수밖에 없다. 가령 한 노동자가 현장에서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해보자. 한쪽에선 일을 빨리 하라는 압력을 주고, 다른 한쪽에선 안전을 챙겨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결정적인 순간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조직의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노동자의 결정에 조직이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산업 현장의 안전은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다. 많은 산업재해가 알려지지 않고 은폐되는 것도 시스템에 있는 잘못된 규제 때문이다. 결국 이태원 같은 참사도 산업재해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시스템을 열고 바꿔야 한다. 물론 결정적인 실수와 잘못을 처벌하는 건 당연하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사회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엇이라고 보나. 사회적 재난을 막으려면 시민들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공공성이 특히 부족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주요 33개국의 공공성을 비교한 조사가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꼴찌로 평가받았다. 시스템이나 제도가 얼마나 공익성과 분배적 정의에 걸맞게 설계돼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 사회 서비스에 실제로 차별 없이 접근할 수 있는지, 시민들이 제도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바꿔 나가는 역할을 하는지, 사회적 규칙이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돼 있는지의 네 가지 측면을 비교했는데, 모두 최하위였다. 그렇게 공공의 안전에도 소홀했던 결과가 이태원 참사를 빚어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 사회엔 재난적 유대감이 있다. 외환위기 당시 대대적인 금 모으기 운동이,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확산 때 쏟아진 도움의 손길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심폐소생술에 나섰던 시민들이 재난적 유대감을 확인시켜줬다. 쉬운 비난에 참여하기보다 재난적 유대감을 업그레이드해 사회의 공공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시민 각자가 시스템의 불완전과 취약성을 목격했을 때,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정부에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피드백을 주저하지 말자. 시민들이 늘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 역할을 해야 사회가 달라진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6716.html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물가상승대응, 50년 전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한겨레,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2022-11-10 18:22)
세계경기가 안좋은데도 물가가 오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이에 대응한다며 연신 금리를 올리고, 빚을 떠안은 만국의 중산층은 그럴 때마다 두려움에 떤다.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이런 상황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50여년만이다.
물론 그때와 견주기는 아직 이르다. 80년대 초까지 10년 넘게 지속된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이나 불황의 규모가 훨씬 더 컸다. 하지만 호황이 아닌데도 물가가 오른다는 점만큼은 그때와 지금이 마찬가지다. 이렇게 낯선 경제상황이 펼쳐지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정책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신자유주의 시대도 80년대 초에 이런 식으로 시작됐다. 한데 반세기 만에 다시 비슷한 상황이 닥쳤다.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당시 경제학계 다수는 이를 순전히 화폐적인 현상으로 봤다. 주요국 정부들이 확장재정정책을 남발한 탓에 화폐공급이 지나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실제 이 진단에 따라 미 연준은 80년대 초 금리를 20%대까지 올렸고, 이로 인한 인위적인 불황이 결국 장기 인플레이션을 잠재웠다. 그러나 이로써 거시경제의 최종통제권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서 연준을 포함한 금융세력에게로 넘어갔다.
70년대 당시에도 이견이 적지 않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과연 화폐적 현상이기만 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더 근본적인 요인은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에서 쌓여온 사회세력 간 모순과 대립이었다. 역사상 완전고용에 가장 근접했던 이 무렵 자본주의 중심부에서는 노동과 자본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일국 수준을 넘어 지구 차원에서는 석유 등 1차 산품을 수출하는 남반구 국가들이 북반구의 일방적 수탈에 반기를 들었다. 중심부 경제의 독점자본은 이 모든 긴장과 충돌을 가격에 전가했다. 공산품 가격의 지속적인 인상에는 노자 대립과 남북 대립이라는 이런 복잡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오로지 화폐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경제이론은 이 점에서 자본주의 체제에 더없이 훌륭한 무기가 됐다. 이는 초고금리를 통해 인위적 불황을 조성함으로써 노동자나 남반구 국가들을 길들이는 데 도움이 됐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직면한 근본 문제에서 사람들의 눈을 돌리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 덕분에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혀 해소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 시기 동안 더욱 거대하고 심각해지기만 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복합위기, 즉 불평등과 감염병, 기후재앙의 동시 전개다.
이번에도 물가상승을 둘러싼 담론 지형은 현 상황을 화폐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지배되고 있다. 미 연준이 이런 시각에 따라 금리를 인상하고 있고,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에 맞장구치며 재정정책마저 긴축 기조로 돌아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인플레이션의 진짜 동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해묵은 모순에서 나온다. 감염병에 대한 취약성, 과도한 화석에너지 의존, 강대국 사이 패권 충돌과 전쟁 같은 문제들 말이다.
70년대의 패착을 다시 반복할 수는 없다. 거시경제 통제권이 금융세력에게 있음을 재확인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 물가상승을 금리인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도 쟁점일뿐더러 백보 양보하더라도 재정정책마저 이 기조를 무작정 따라갈 이유는 없다. 공세적 확장재정을 자제해야 한다면, 증세를 통해서라도 생존권 위기와 기후급변에 맞서는 공적 개입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이를 통해 거시경제 통제권을 둘러싼 민주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경계선도 새로 정해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가 최근 서울 이태원에서 있었던 비극적 사건에 제대로 답하는 과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제 안전 관련 예산은 시장지상주의가 강요하는 온갖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물며 보수정부의 긴축만능론이 통할 구석은 없다. 다름 아닌 여기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최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