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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진. 2008. 자통법 앞둔 한국 금융시장의 지각변동
이한진의 글은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한국 금융시장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자본시장통합법 및 금융화에 관한 일련의 글들도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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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금융정책에는 금융도 국민도 없다 (새사연 이슈 종합, 2008-07-08 ㅣ 이한진/진보금융네트워크 준비위원)
[2008년 하반기 초점과 전망⑤] 자통법 앞둔 한국 금융시장의 지각변동
2009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여의도 증권가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변화의 주된 방향은 자본의 성격과 국적을 불문하고 한국 증권업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여의도 증권가로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 상호간의 M&A보다는 신규진출과 업무영역 확장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진입 형태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기존 금융업계의 경우 주로 신규 설립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둘째, 국내 산업자본의 경우 초기 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기존 증권사를 인수함으로써 속도에 역점을 두고 있다. 셋째, 외국자본의 경우 현지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국 금융업에 자금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의도(자본시장)로 몰리는 돈 돈 돈
금융업계의 증권업 신규진출 및 업무영역 확장 의지는 지난 5월 9일 금융위원회의 증권업 예비허가 심사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신규 설립을 신청한 12개 회사 가운데 8개사에 대하여, 업무영역 확대 등을 신청한 기존 3개사에 대하여는 2개사에 대하여는 예비허가를 승인한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7월말까지 이들 예비허가 회사들에 대하여 본 허가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렇듯 신규 설립이 급증하고 있는 데에는 정부의 정책기조 변화가 크게 한 몫하고 있다. 애초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필요성의 하나로 증권업계의 구조조정이 미흡하여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며, 법 제정을 계기로 겸업화 및 대형화를 추동함으로써 증권업계 내부의 자발적인 인수ㆍ합병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증권업계와 시장에서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에 따른 위기 요인보다는 각종 규제 완화에 따라 미래 기회요인이 더 클 것으로 분석함으로써 증권사 주가가 급등하는 등 경영권 프리미엄이 급증하게 되자 시장 내에서의 ‘자율적 구조조정’은 말 그대로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증권업 구조조정 정책기조는 급변하게 된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을 통하여 신규 설립 기준을 대폭 완화하는 방향이 바로 그것이다. 자율적 구조조정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신규 진입을 대폭 확대하여 시장 내 경쟁을 격화시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키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실제로 시행령에서는 매매, 중개, 집합투자(자산운용), 신탁, 투자자문, 투자일임 등의 6개 업무 분야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대형금융투자회사의 설립 자기자본 기준을 당초 예상보다 크게 낮춘 2000억 원으로 최종 확정했고, 자산운용업의 자기자본 기준은 100억 원에서 80억 원으로, 위탁매매업의 경우 3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투자일임업은 30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하는 등 진입장벽을 대폭 낮추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산업자본과 외국자본의 금융시장 유입
산업자본의 증권업 진출은 기존 증권사를 직접 M&A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바, 진입비용보다는 진입속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3월 유진그룹의 서울증권인수 이후 현대차그룹, 두산그룹, 현대중공업의 증권사 인수가 뒤를 잇고 있다. LS그룹의 경우 온라인 증권사인 이트레이드증권 인수를 추진 중에 있다.
게다가 증권가에서는 롯데그룹, 아주그룹, GS그룹 등이 향후 증권사 M&A의 주체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구나 이들이 증권사 신규 설립 신청을 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이들 또한 기존 증권사를 인수함으로써 보다 빠른 시간 내에 자본시장에 정착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외국자본 또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실제로 올 1사분기 외국인 직접투자액의 절반 이상은 금융업에 집중됐다. 올 1사분기 금융 분야 외국인 직접투자액은 13억 6,8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대비 235%나 급증했는데, 이는 총 외국인 투자액 27억 2,000만 달러의 50.4%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이러한 현상은 참여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 또한 금융업에 대한 과감한 규제개혁(특히 증권 및 보험관련업)을 약속하며, 금융기관의 이익극대화 논리를 적극 옹호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로 인해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금융업은 제조업에 비해 매우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투자는 금융업 중에서도 규제 완화가 적극 추진되고 있는 보험 및 증권관련업에 집중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1,000만 달러 이상의 금융 분야 투자는 총 19건으로 분야별로 살펴보면 보험은 7건, 증권 2건, 자산운용 2건, PEF 2건, 비은행 5건, 은행은 1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 국가별로 보면 영국(6억 달러), 미국(3억 7,000만 달러)이 전체 투자의 70% 이상을 차지한 가운데 주요 투자 목적은 점포 신설 등 영업력 확장을 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외국자본의 주된 전략은 한국 현지사업 강화임을 알 수 있다.
거대한 후폭풍 예고 - 대규모 구조조정과 외국 금융기관에 의한 시장잠식
국내 증권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변화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과잉ㆍ중복투자가 몰고 올 후폭풍과 외국 금융자본에 의한 시장잠식이라 할 수 있다. 애초부터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의 일환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대형투자은행(IB)을 육성해야 한다는 논리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증권업 신규 허가로 2009년 증권사는 62개사로 크게 늘어나게 되었다. 금융위원회가 증권업 신규 진입을 허용한 것은 2001년 이후 만 6년여 만에 처음이다. 국내 증권사의 수는 지난 2001년 64개로 정점을 보이다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6년 54개사까지 줄었다가 다시 8개사가 증가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신규진입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증권업계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격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한편으로 정부는 퇴출기준도 강화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에 금융투자회사의 퇴출기준인 ‘유지조건’을 신설해 자기자본 기준의 70%를 밑돌게 되면 인가ㆍ등록을 취소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입장은 진입장벽 완화로 과당경쟁을 유도하여 시장에서 도태되는 업체는 약육강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에 의거하여 걸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초 글로벌투자은행 육성을 위해 자발적인 인수ㆍ합병을 유도해봤지만, 기존 증권사의 경영권 프리미엄만 올라가고 대주주가 이에 안주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명분으로는 시장을 내세우면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게 된 것이다. 금융위원회 홍영만 자본시장정책관의 “신규진입 및 영업확대에 따라 연내 1,100명 이상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증권산업 내 경쟁강화 및 라이센스 프리미엄을 낮춤으로써 시장의 역동성과 자율성을 활용한 증권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발언 내용이 이를 잘 증명한다.
그렇다면 경쟁을 강화시켜 구조조정을 유도함으로써 소수의 대형투자회사와 특화된 중소투자회사로 시장을 재편하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장밋빛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금융허브 정책이나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초기부터 구체적이고 단계적인 청사진도 없이 무모한 구호만 난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육성을 통하여 금융허브로 도약하겠다는 정책기조에 대한 가치판단은 배제하고 판단하더라도, 한국 금융시장에는 이를 실현시킬만한 인적 역량도 물적 기반도 전혀 없다는 것이 구체적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 의도대로 성공적으로 글로벌 투자은행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사실 점진적이고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치밀한 준비가 선행됐어야 했다. 국내 금융노동자의 교육ㆍ훈련을 통하여 전문적 자질을 높이고, 신상품 개발능력 제고를 통하여 편중된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동시에 각종 리스크 관리능력이 사전적으로 개선되어야 국내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과 신뢰가 확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본적 인프라도 구체적 청사진도 전무한 금융허브 전략
이처럼 자본시장통합법은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을 위한 최고의 매개수단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투자은행의 개념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정의하는 투자은행의 기능은 현존하는 국내 증권사들이 주식, 채권과 같은 매개수단을 통하여 기업에 장기자금을 중개하던 기능에서 벗어나 자기계산 하에 투자하는 자기매매업무(Dealer)와 자기자본투자(PI, Principal Investment)를 본격화하는 것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적인 투자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은 단순하게 자기자본의 규모가 크다거나, 이를 기반으로 기업들에게 싸게 자금을 조달해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업금융의 경쟁력은 해당 업체의 자금사정과 수요에 가장 적합하게 자금 조달구조를 만들어내고, 시장에서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통적인 금융상품이나 여러 가지 파생상품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고객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인 IT 업계의 경쟁력이 단순하게 장비를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 솔루션과 패키지화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점과 내용적 측면에서 일맥상통한다.
규모의 경제와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편 국내 금융시장을 무조건적으로 개방하여 선진 금융기법을 배우고, 이를 통해 우리도 해외시장에 나가 막대한 수익을 창출함으로서 금융산업을 신성장동력화 하겠다는 발상 또한 자본시장의 작동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환상에 불과하다. 자본시장은 기본적으로 규모의 경제와 정보의 비대칭성이 작동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는 말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금융기관이 무조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총자산 및 자기자본 규모는 국제적 금융기관들에 비해 현격한 열세에 놓여있다. 국내 은행 상위 4개사 총자산(평균 1,497억 달러)은 미국 상위 4개사(평균 11,166억 달러)의 13.4%에 불과하고, 국내 대형 증권사의 자기자본규모 또한 세계적 투자은행과 비교할 때 6% 수준에 불과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IMF나 세계은행 그리고 국제적 신용평가기관이나 국제적 투자은행들이 정보의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국내 금융기관에 비해 현격하게 우위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기관투자자나 펀드매니저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일반 투자자 보다 앞서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국내 금융기관이 제3세계에 나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현재 국제 금융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대형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 헤지펀드들이 돈이 되는 시장을 한국 금융기관에게 양보할리 없기 때문이다.
보조인력으로 전락한 금융노동자의 암울한 미래
결국 정부의 조급증과 무모함이 국내 증권사의 대외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시장규모가 일정한 현실에서 업체 난립을 통한 과당경쟁은 수수료 인하 등의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수수료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의 입지는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생각대로 고용창출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부의 최종 목적지가 대형화와 전문화에 있는 한 양적 팽창이 해소되는 시점에서의 대규모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2~3년 후에는 과잉유휴인력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은행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었듯이 금융기관의 겸업화 및 대형화가 고용을 확대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고용 불안정성이 점차 심화될 것이라는 점은 국내 금융노동자 대다수(약 87%)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정부 정책변화로 인하여 보조인력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각종 정부 회의 자료를 통해서도 추론이 가능하다. 지난해 11월 증권업 허가 정책 운용방향이란 금융감독원 보도자료에 따르면 증권업 재인가 및 신규 진입 시 세부 심사항목에서 전문인력 확보와 관련하여 해외소재 유수금융회사 경력자(자산운용, IB관련, 리스크관리, 조사분석, 내부통제 등과 관련된 업무) 채용 시 가점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제2차 금융허브회의 자료(07.07.18, 금융발전심의회 전문가 중심 개편)에는 “런던, 뉴욕에 상응한 금융여건 구축 위해 금융발전심의회를 해외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하고 월가 출신 부총리 자문관을 영입”한다고 나와 있다.
기간제법 및 파견법 시행령 개정도 심상치 않다. 전문직 종사자는 사용기간이 2년을 초과해도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되지 않는 소위 기간제한 특례 적용 조항이나 표준직업분류표상 전문가와 준전문가는 파견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이 이미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은행, 증권, 보험 노동자 모두 전문가로 분류되기 때문에 기간제한 특례나 파견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발표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령에서 위탁가능업무의 범위를 본질적 업무까지 대폭 확대하고 재위탁까지 허용토록 한 것은 향후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대개의 금융노동자가 비정규직 지위로 추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연봉 올라간다고 안심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선진금융기법의 핵심은 신용위험의 재가공 및 위험전가 구조
이러한 변화는 국민경제적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를 통해서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미국의 금융시장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승승장구해왔다. 그리고 그 호황의 주된 요인은 신용파생상품을 포괄하는 구조화증권의 존재에 있다. 부동산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존재하는 각종 신용위험을 재가공하고 포장함으로써 적절하게 위험을 전가할 수 있도록 만든 파생금융상품의 눈부신 발전이야 말로 선진금융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제완화와 더불어 진행된 금융자본의 자기 증식과 팽창은 너무도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이 금융감독 당국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었다. 금융감독 뿐만이 아니라 금융기관 스스로가 금융의 파생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의 정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 바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본질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국의 금융정책에는 금융의 안정성과 공공성을 확립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향이 없다.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 비판적 시각이 배제되다보니, 오로지 남는 것은 무조건적인 개방을 통한 선진 금융기법의 습득이라는 장밋빛 전망뿐이다. 금융세계화의 주도국인 미국에서조차 다양한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하여 금융에 대한 규제와 통제는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새로운 규제 조치들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진짜 배워야 할 것은 이처럼 금융산업은 규제산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금융을 국민경제적 차원에서의 인프라나 시스템(금융의 공공재적 성격)으로 이해하는데서 벗어나 금융자본의 수익성을 중시하는 산업적 관점에 매몰되게 된 계기는 IMF 외환위기다. IMF 당시 초국적 금융자본은 유동성 제공의 대가로 한국 금융시장, 특히 자본시장의 무조건적인 개방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권력 스스로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논리를 적극 편승ㆍ수용함으로써 자본의 요구와 이해에 자발적으로 복무하게 된 것이다.
금융허브(금융중심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국내 금융시장의 축을 자본시장(직접금융, 특히 유통시장)으로 이동시킴과 동시에, 금융자본의 보다 자유로운 수익창출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국제금융시장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하여 초국적 금융자본의 국내 유입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재벌 등 국내 주요자본의 금융자본화를 촉발시켜 국내 자본도 초국적 금융자본의 국제적 흐름에 적극 동참시키겠다는 전략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보험업법 개정을 매개로하여 한미FTA 협상을 타결함은 물론 금융기관의 겸업화와 대형화를 적극 추동하고 있는 것이다.
효율적 자산배분자에서 자산운용자로 정체성을 바꿔가는 금융자본
금융세계화 이전의 금융시스템이 금융 수요자로서의 기업에 장기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장기적인 성장관계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현재 금융세계화 국면에서의 금융자본은 단기적 관점에서의 수익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원배분자라기보다는 자금운용자로 그 본질적 역할을 바꿔가고 있다. 금융허브 전략 역시 자산운용업을 그 중심에 놓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도 금융허브 전략과 맥이 닿아있다. 자산운용업 중심의 금융허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시장에 존재하는 각종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해당 사업을 유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국내 자본시장의 파이가 충분히 커져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한국 자본시장으로 몰려들 국내외 자본들에게는 다양하고 충분한 먹거리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기간 내 이들 자본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먹거리에는 공기업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의 실생활에 꼭 필요한 공공서비스의 질과 양이 앞으로 어떻게 되건 말건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금융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공기업 민영화의 이유인 것이다.
이처럼 금융(세계)화된 사회의 금융기관이나 공적 기업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목적의식은 외면하고, 사적 기업으로서 이익창출에만 몰두하도록 자본과 시장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금융의 사유화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화를 본격적으로 추동하게 되어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축시키고 양질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런 차원에서 생각할 때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원칙의 단계적 폐지와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설립 규제 완화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자본시장통합법을 매개로 금산분리 폐지 및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설립과 국책은행 민영화를 가속화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핵심적인 금융정책이기 때문이다.
금산분리 폐지 및 금융지주회사 설립 규제완화에 대한 강력한 대응 필요
역사는 금융의 핵심적 역할 중의 하나는 산업자본(기업)에 대한 평가와 감시의 역할임을 입증하고 있다.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외환유동성의 위기가 무분별한 사업영역 확장 탓에 과도하게 비대해진 일부 재벌그룹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금융기관을 소유한 재벌들이 모기업의 도산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회사인 금융기관을 사금고처럼 이용함으로써 국내 금융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이어져 국민경제 파탄이라는 결과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대우그룹은 IMF 당시 금융계열사 서울투신운용을 이용해 불법적으로 7조 6,00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하여 사용함으로써 그룹의 위기를 국내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로 확산시킨 바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산분리 폐지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감안하여 1차적으로는 사모펀드와 연기금의 은행 지분 보유 규제를 완화하고, 2단계로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상향조정하며 최종적으로 사전적 소유규제를 완전히 폐기하겠다면서 에둘러가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시기상의 문제일 뿐 최종적 목표는 금산분리 완전 폐기이다. 금융위원회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형식이야 어찌됐건 시간이 갈수록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지배는 더욱 공고화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고객의 돈으로 운용되는 금융기관의 속성을 무시한 금산분리 폐지
금산분리 폐지는 금융의 본질적 속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대부분 주주의 돈(자본금) 보다는 타인의 돈(고객의 돈)을 가지고 영업을 하므로 특정 대주주가 위험한 자산운용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 9월말 기준 국내 금융기관의 총자산 합계액은 2,212조 원인 반면 자기자본(자본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은 188조 원에 불과하다.
산업자본이 일단 금융기관을 지배하게 되면 대주주의 입장에서는 아주 적은 비용으로 막대한 자금을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얻게 된다. 금융기관이 부실화되어도 자본금이 적기 때문에 스스로가 치러야 할 자기비용도 적다. 그런데 제조업체와는 달리 금융기관이 부실화되면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금융이용자가 피해를 입게 되고, 해당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금융시장 전반의 안정성을 해치게 되는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효과가 막대하다.
거대 금산복합기업의 도산은 국민경제에 재앙으로 다가올 것
즉 산업자본인 모기업의 이해에 따라 금융기관의 자금이 기업의 무리한 확장이나 위험한 투자에 과도하게 동원된다면 해당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는 물론이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될 소지가 큰 것이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합된 거대금산복합기업의 탄생은 IMF 당시 경험했던 대마불사의 딜레마를 다시 연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거대금산복합기업의 도산은 국민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실이 생겨도 이를 조기에 해결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는 결국 부실의 심화라는 결과를 낳게 되고 종국에는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로 확대될 것이고, 종국에는 국민경제에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편으로는 금융기관의 이윤이 계열기업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이는 자회사인 금융기관이 모기업이나 계열기업에 적정가격 이하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역으로 관계회사로부터 구입하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을 적정가격 이상으로 높게 구입함으로써 가능하다. 게다가 자회사인 금융기관으로부터 과도한 배당금을 갈취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안정성이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다음으로는 기업 활동에 있어서의 공정한 경쟁이 훼손될 것이라는 점이다.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소유는 그렇지 못한 기업과의 경쟁에서 근본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기업 활동의 성패가 원활한 자금조달 여부에 달려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을 소유하기 어려운 경쟁기업이나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항상 시장의 실패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금융기관을 소유한 산업자본은 해당 금융기관을 통하여 현재의 경쟁기업이나 잠재적 경쟁자는 물론이고 다양한 기업들의 정보를 속속들이 파악하게 되어 사업 확장과 팽창을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이는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일부 재벌(대기업집단)로의 경제력 집중이라는 근원적 문제점을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활력을 더욱 훼손하게 될 것이다.
금융환경 변화로 제2금융권에도 금산분리의 원칙 적용 필요
비은행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대한 규제완화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 금융위원회의 방침은 금융자회사와 비금융자회사를 모두 지배하고 있는 현 재벌체제를 그대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가 재벌의,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정부임을 만천하에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지금의 금산분리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금산분리가 적용되지 않았던 금융산업의 경우에도 금산결합의 폐해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들을 보다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경우 증권회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행령을 통하여 신용공여ㆍ지급보증 등의 겸영업무를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간접금융으로서의 은행이 지녔던 핵심 기능인 여수신 업무가 제한적으로나마 증권사에게도 허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험사의 경우도 보험업법 개정을 통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어슈어뱅킹(assure banking, 보험회사가 은행을 자회사로 두거나 은행 상품을 판매하는 행위)을 허용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추세는 금융의 겸업화, 통합화 현상과 맞물려 더욱 더 강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는 국민들의 유휴자금 대개가 주로 은행의 예·적금으로 쏠렸지만, 앞으로는 이들 자금이 제2금융권인 증권, 보험으로 급격하게 이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더욱 강조해야
“금융기관이 아니라 금융회사로 바꿔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금융관이다. 이는 한마디로 현재 모든 금융기관들은 앞으로 다른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이익창출(혹은 주주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기업(회사)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금융자본의 수익극대화는 금융소비자인 국민들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이명박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금융회사가 아니라 금융기관이라 칭했던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 금융기관은 금융시장에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시장의 불안정성과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함으로써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자원배분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금융기관의 본원적 역할은 심장의 역할과 동일하다. 심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피가 인체 구석구석까지 제대로 돌지 못하여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금융이 자원배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국민경제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금융업은 공공성을 근거로 한 규제산업이라 분류된다. 실지로 은행법, 증권거래법, 보험업법 등 모든 금융관련법에서는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함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금융기관의 역할은 이미 돈벌이로 전락한 상태다. 대개의 금융기관 모두가 제조업에 비해 월등한 자기자본수익율(ROE)을 보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구조조정을 통하여 대형화를 실현한 일반 시중은행들의 수익성이 매우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러한 고수익의 이면에는 국민의 혈세를 동원한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과 정리해고를 통한 은행노동자의 일방적 희생, 서민금융과 기업금융의 포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2005년, 2006년 상위 4개 은행의 자기자본수익율은 최저 15%대에서 최대 20%대에 달하고 있다. 시장금리의 4~5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그리고 외국인 지분율이 높을수록 순이익의 상당부분을 배당으로 빼가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도 최근 지주회사 계열, 외국자본 계열, 대주주 주식소유비중이 높은 중소형사의 경우 심지어 당기순이익을 웃도는 고율배당이 실시되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기사회생한 금융기관 주주들의 이익은 어느 정도면 타당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 또한 매우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제한적 유동성과 자율성을 근간으로 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자본의 부절적한 욕망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하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오직 이명박 정부만이 오만과 독선 속에 무조건적인 개방과 규제철폐를 외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게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이미 분명해졌다. 결국 금융공공성을 확립하고 대안적 금융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극복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는 금융노동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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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이 노동자의 시각에서 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자본시장통합법이 가진 문제를 명시적으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다. 자통법이 우리의 현실과 무관한 별세계의 것이 아닌데, 왜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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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시각에서 본 자본시장통합법 (이한진 |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정책국장 |기관지 노힘 제 129호, 2007년07월26일 9시41분)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성을 부채질 할 뿐
금융시장의 본원적 기능(자원배분기능)을 인체에 비유하면 심장의 역할과 동일하다. 심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피가 인체의 구석구석까지 제대로 돌지 못해 사람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처럼, 금융이 자원배분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국민경제를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융업은 공공성을 근거로 한 규제산업이라 정의할 수 있다. 실지로 은행법, 보험업법, 증권거래법 등 모든 금융관련법에서는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함을 제일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 금융 공공성이란 법조문이나 교과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문화된 문구가 되어버렸다. 국내 정치권력이 구제 금융을 볼모로 한 IMF의 금융시장 개방 압력에 대하여 최소한의 금융 주권을 지켜내려는 노력보다는 굴종의 대가로서 정치권력을 보장받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후 정치권력은 스스로가 신자유주의의 맹신자로 전향하여 자본시장에 남아있는 모든 규제를 자발적으로 철폐한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소유한도가 없어지고, 의무공개매수제도가 폐지되며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가 전격 허용되었다. 그 결과 자원배분이라는 금융의 본질적 기능을 담당하는 금융기관마저 하나의 상품처럼 사고파는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이 때문에 168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국민의 혈세가 공적자금으로 투입되었던 금융기관조차 사회적 공공재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수익만을 탐하는 욕망덩어리 사적기업으로 변질되었다.
자본의 축적방식이 생산적 축적에서 금융적 축적으로 그 본질적 형태를 전환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핵심은 금융세계화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적 차원에서 글로벌적 금융시스템 구축하기 위한 초국적 금융자본의 1차적 공세는 OECD, IMF, 세계은행, 국제신용평가기관을 앞세운 자본자유화와 금융시장개방 압력으로 나타났다. 금융시장 개방을 통한 금융 국경 및 장벽제거가 금융세계화의 1차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한미 FTA나 자본시장통합법은 금융세계화의 2차적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융세계화의 2차적 과정은 글로벌적 금융시스템을 자본시장과 초국적 금융자본(투자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세계화는 초국적 금융자본(금융자본과 금융화된 산업자본)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지배력을 확장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중심의 초국적 금융자본은 한미 FTA 투자조항(특히 투자자-국가 소송제)을 통해 자신들의 투자와 기대수익에 대한 확실한 보호 장치를 확보하는 가운데, 산업 전 분야에 걸친 폭넓은 시장 개방을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자 대상(먹거리)을 다양화하려 한다. 미국 금융자본의 주요 요구를 전격 수용하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은 금융의 중심축을 간접금융(은행)에서 직접금융(자본시장)으로 이동시킴으로서 한국의 금융시장을 글로벌적 금융시스템에 확실하게 연계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시스템은 자본 중개라는 금융의 본원적 기능보다는 초국적 금융자본이 금융기관이나 각종 펀드를 통하여 수익창출 창구로서 자본시장을 이용하려 한다는 점에 있다. 결국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한다는 금융의 본원적 측면은 배제되고, 투자자(초국적 금융자본)의 수익극대화를 위한 자산운용 측면만 강조되는 것이다.
한미 FTA 금융서비스 협상과 관련해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미국 금융자본의 요구는「 미한 재계회의․주한미국상공회의소 2005년 정책보고서」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다 개방화된 겸업주의 금융시스템으로의 전환. 둘째, 우체국․농협․수협․축협 등 준 정부 금융기관에 대해 민간 기업과 동일한 법규, 세제 및 기준의 적용. 셋째, 포지티브 규제환경에서 네거티브 규제환경으로의 전환. 넷째, 금융서비스 부문의 규정과 기준을 보다 개방화된 글로벌 영업기준으로 전환. 다섯째, 금융서비스 부문 노동시장의 유연성 증대. 여섯째, 금융서비스 부문에 대한 세율 및 과표를 낮추라는 요구 등이다.
지난 7월 3일 국회본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안을 보면 한미 FTA 금융서비스 협상에서 좀처럼 쟁점이 형성되지 못했던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자통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①현재 자본시장의 모든 금융업(매매업, 중개업, 자산운용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자산보관관리업) 상호간 겸업을 허용하여 대형 ‘금융투자회사’육성 ②금융상품의 범위를 네거티브시스템(포괄주의)으로 전환 ③금융투자회사의 송금, 결제 등 부가서비스 제공 허용 등으로 겸업화와 네거티브 규제환경으로 전환이라는 미국 측의 핵심적 요구를 전격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통법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 금융자본의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지배력이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겸업화에 따른 대형화는 물론이고, 지급결제기능의 부여, 금융상품의 포괄주의나 펀드운용의 규제 완화 등은 금융투자회사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포장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금융 산업별 외국인 지분 현황을 보면 미국 중심의 초국적 금융자본은 한국의 금융산업 중 자국의 시스템과 유사한 은행업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를 완성한 바 있다. 하지만 자국의 금융시스템과 현격한 차이가 나는 한국의 증권업과 보험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실질적 지배의 매력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미 금융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자본시장통합법안 국회 통과로 초국적 금융자본의 급속한 유입이 예상된다.
결정적으로 자통법은 장기자금조달시장으로서 자본시장 역할 제고 방안이 빠져 있다. 자본시장은 크게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으로 구분되는데, IMF 이후 초국적 금융자본의 단기적․투기적 속성으로 인해 한국 자본시장에서 기업에 장기자금을 공급하는 발행시장은 위축되고, 유통시장만 급팽창함으로서 과잉 유동성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이후 주식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및 배당금 유출 추이(표2)를 보면 2004년을 기점으로 자본시장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 총액보다 배당금으로 유출된 자금총액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주주자본으로서의 초국적 금융자본이 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업가치 극대화보다는 단기적 관점에서 이익 극대화를 위한 이익 회수에 집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여기에 주주들의 주가 상승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해마다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는 자금까지 고려하면, 결국 자본시장은 기업에 장기자금을 공급해 주는 자금중개 창구가 아니라 기업의 돈을 블랙홀처럼 집어 삼키는 투기판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통해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한다는 금융의 본원적 측면을 담아내지 못하는 한, 자통법은 영미식 투자은행(Investment Banking)을 모방한 짝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주주들의 단기 이익극대화를 위하여 대규모 자사주 매입으로 단기간에 주가 상승을 도모하거나 고배당을 실시하는 주주자본주의적 경영행태는 극심한 설비투자 부진으로 귀결되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설비투자 금액은 78조원으로, 외환위기 직전인 96년 77조원에 비해 불과 1조원이 늘어났다. 10년 사이의 설비투자 증가율이 1.3%에 그친 것이다. 설비투자 부진은 저성장 기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크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더구나 자통법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금융 빅뱅으로 인한 금융노동자의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규제완화를 통한 사모펀드 활성화나 기업 M&A 시장 확대는 상시적인 노동자 퇴출구조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행 자본시장 법령체계는 증권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회사, 신탁회사 등 금융회사별로 금융투자업을 세분화하고 있으며, 금융투자업 상호간에는 겸영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으나 자통법에서는 자본시장과 관련한 6개 광역 금융업의 상호 겸영을 허용함으로써 “금융투자회사”의 대형화를 유도하고 있다.
대형화를 위해서는 금융투자회사로의 대규모적 자금 유입은 물론이고 무차별적 인수합병 또한 필수적이다. 결국 금융 빅뱅(구조조정)이 예고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차별적 M&A와 이를 통한 증권회사 수를 축소하는 것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증권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게다가 증권노동자 구조조정은 자통법안 중 ‘판매권유자 제도’와 연계되어 대대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 구조조정 및 대형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수혜를 받은 주체는 한국 경제도 민중도 아닌 초국적 금융자본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겸영에 따른 투자자와 업자간, 투자자간 이해상충 가능성은 이해상충 방지체계(Chinese wall)를 통해 방지한다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이해상충 방지체제 즉 별도의 전담임원이나 인력의 편성, 인적교류의 제한, 금융상품 판매시 설명의무 강화나 설명 불충분으로 인한 손해 발생 시 원본 결손액을 손해액으로 추정한다는 등의 대책은 최소한의 기본적 장치에 불과하다. 실지로 자통법의 주요 모델인 미국에서 조차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보다 더욱 엄격한 장치들 집단소송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가지고 시장을 규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선 위법사항 적발 시 회사의 존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통합법의 실질적인 벤치마킹 대상인 영국과 미국에서도 동일 몸체에서 자산운용업과 증권업을 겸업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자산운용업계에서도 증권사 중심의 통합이 초래할 부작용과 이해상충 문제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증권사는 거래가 자주 이뤄질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지만 자산운용은 거래수수료가 비용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적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물론 자통법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 자본시장 내 관련 법률을 통합하고 금융 업무를 기능별로 재분류하여, 동일한 금융기능(금융업)에 대해서는 동일한 규율과 투자자 보호 법제를 적용한다는 자통법의 기본방향은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행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규율하는 기관별 규율체제는 동일한 금융행위임에도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규제차익이나, 일부 파생상품거래 및 투자계약 등과 관련하여 법제화 미비로 나타나는 투자자 보호 공백을 방지할 수 없었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시장독점이라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금융상품 포괄주의 또한 증권거래 수수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업계의 수익구조를 감안할 때 한편으로는 수익구조 다변화나 수요자 측면에서의 다양한 경제 위험에 대한 헤지(hedge, 가격변동의 위험을 선물의 가격변동에 의하여 상쇄하는 현물거래)가 가능해진다는 장점도 있다. 금융업간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지급결제 기능의 부여도 소기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전체 금융시스템의 균형 발전을 위해 자본시장 규제체제를 정비하겠다는 목표가 어설픈 금융허브 구축 논리나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탄생시키겠다는 장밋빛 환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 있다. 겸업화를 통한 대형화, 이를 통한 자본시장의 경쟁력 강화는 단순한 환상에 불과하다. 국내 5대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규모는 1조 5천억원대임에 불구하고 세계 3대 투자은행(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의 평균은 28조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겸업화를 통한 대형화로 외국금융기관과의 경쟁에서 규모의 경제 실현을 바란다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 겸업화․대형화를 근간으로 한 정부의 자본시장 정책은 국내 모든 금융기관들의 자산, 자본, 노하우를 감안할 때 국내 투자금융회사를 초국적 금융자본이나 일부 국내 재벌에게 통째로 바치자는 논리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초국적 금융자본이 지배하게 될 소수의 대형투자금융회사로 이익이 집중됨으로서 금융안정성을 저해함은 물론, 금융 공공성 훼손, 자본 분배 기능의 약화로 국민경제가 위축되리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의 전격 개방과 더불어 물밀듯 밀려들어온 초국적 금융자본은 기존의 ‘대출자본’에서 ‘주주자본’으로 그 본질적 형태를 전환한다. 초국적 금융자본의 주주자본으로의 지위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돈을 빌려준 채권자(초국적 금융자본)의 입장에서야 채무자(국내 금융기관 및 기업)가 원리금만 제 때에 상환하는 한 기업경영에 개입할 근거가 전무하지만, 주주의 경우에는 사사건건 배놔라 감놔라 개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초국적 금융자본은 국내 금융기관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의 최대주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개별기업 경영에 영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당 업종의 산업정책, 나아가 국가 차원의 경제정책까지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80년대 이후 2000년대까지 개인-기업간 실질소득 증가율 추이(표4)를 보면 IMF 이후의 주주자본이 이익창출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들어난다. 기업의 실질소득 증가도 대개 외국인지분율이 높은 일부 수출 중심의 대기업에 편중된 현상으로 외국인 투자비중 증가는 사회 계층적 양극화뿐만이 아니라 대-중소기업, 수출-내수기업 간 양극화를 낳게 된다.
결국 한미 FTA나 자본시장통합법은 오로지 초국적 금융자본의 수익극대화를 위한 개방과 경쟁, 그리고 효율만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말처럼 국내 금융시장 개방은 IMF 이후로 상당히 진척되어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개방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점도 충분히 노출되어 있다. 새로 도입되는 정책이나 제도가 그 자체로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여타 제도와의 상호보완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충분히 예상되는 문제들에 대한 사전 대책을 수립하는 등 전략적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자본시장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시각이나 수요 기반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 어설픈 금융허브 구축 논리나 세계적인 투자은행을 탄생시키겠다는 장밋빛 환상은 은행업에 이어 자본시장마저 초국적 금융자본의 잔치판으로 변질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형화와 주주자본주의 집착하는 정부의 편집증적 태도는 은행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에서 분명하게 들어난다. 정부는 은행의 구조조정이 수익성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매년 수조원대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그 증거라고 누누이 자랑하고 있다. 수조원대 이익 창출의 뒤에는 비정규직 양산을 통한 비용절감이 있었음을, 무차별적 인수합병과 겸업화 과정에서 퇴출된 수많은 금융노동자이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자영업자 대열에 나서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조원대의 이익 창출의 수혜자는 한국경제도 우리 국민도 아닌 주주자본으로서의 초국적 금융자본일 뿐이다. 오히려 국민경제적 차원에서의 자원배분이라는 금융공공성이 위축됨으로서 일반 서민이나 영세․중소기업은 은행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고착화가 한국 사회에서 급진전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금융허브 구축,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보험업법 개정 등으로, 대외적으로는 한미 FTA 협상으로 안과 밖에서 밀고 당기며 한국 사회를 구조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결국 노동운동을 포함한 진보운동이 현재의 사회․정치․경제적 환경변화에 보다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차원에서 진행되는 금융환경 변화를 보다 계급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대안적 금융시스템을 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금융시장개방의 폐해(주주자본주의 심화)를 방지하기 위해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적 욕구를 보다 강력하게 통제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차적으로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투기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금융기관의 바람직한 소유구조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양극화 해소는 물론 국민경제 전반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라도 자본보다는 노동에 유리한 방향으로, 금융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시스템을 개혁하여야 한다.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로르동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체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영미식 주주자본주의를 경계하며 “도대체 초국적 금융자본은 몇 %의 수익을 창출해야 만족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고삐 풀린 금융자본에 고삐를 채워야 한다며 “주주이익한정 인정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것을 제안한다. 국내 상위 4개 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의 2005년, 2006년 자기자본수익율(ROE)은 최저 15%에서 최대 20%대에 달하고 있다. 시장금리의 4~5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그리고 순이익의 대부분은 초국적 금융자본이 배당으로 빼가고 있다. 한미 FTA와 자본시장통합법은 반드시 폐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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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에 뒤늦게 실린 금융노동자에 대한 기사는 FTA 체결, 자본시장통합법이 초래할 충격 앞에서 이미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링크한 나머지 기사들로 읽어볼 만하다.
완(전) 소(중한) 금융노동자? 완(전) 소(모품) 금융노동자!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20일, 신현경 기자, ∙정병기 기자)
1명이 기획에서 결재까지, 고용불안∙스트레스로 과로사 속출, 주주배당 확대
자연스럽게 인원이 축소됐고, 업무량이 크게 늘어났다. 윤 과장 부서만 해도 30명이 있었지만, 지금은 5~6명뿐이다. 자연스럽게 노동시간이 증가했다. ‘세븐 일레븐’(오전 7시에 출근해 밤 11시에 퇴근)이 유행이 됐다. 휴가를 반납하는 일도 다반사다. 담당자가 휴가를 가면 그 업무가‘올 스톱’되기 때문이다. 다른 증권사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 김광우(가명∙37) G증권 업무지원부 과장은 기획부터 결재까지 혼자 맡고 있다. 부서인원도 8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3~4명 업무량 혼자 소화
보험업계는 어떨까. 미래에셋생명 강남지점에서 일하는 이선주(가명∙34)씨는 최근 몸무게가 11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줄곧 50킬로그램 중반 정도 나갔는데, 요즘은 40킬로그램을 겨우 넘는다. 외환위기 이전 3~4명이 담당하던 업무를 혼자 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업무를 맡은 계약직원이 3~4명 있지만, 업무량 감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선주씨가 맡고 있는 업무는 족히 네댓 가지가 넘는다. 고객 상담과 FC(보험모집인) 관리, 본사 업무 보고, 지점장 등 관리자 보조, 지점 총무업무 등을 혼자 처리하고 있다. 새로 입사한 계약직의 직무교육(OJT)도 그의 몫이다. 그는“계약직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고용도 불안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한다”며“비정규직의 고용불안이 결국 정규직의 노동강도를 높이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인수합병될 때마다 업무는 더 늘어나고 그만큼 퇴근시간이 늦어진다. 미래에셋생명은 2005년 SK생명이 바뀐 것이다. SK생명의 전신은 한덕생명이다.
올해 초 정규직으로 전환된 O은행 박은영(가명∙34)씨. 정규직으로 전환됐다는 기쁨도 잠시, 기존 정규직원보다 많은 실적 목표가 주어졌다. 동료와 함께 올해 말까지 인터넷뱅킹 900개, 카드 460개를 유치해야 한다. 지점 실적의 50%에 달하는 양이다. 그렇지만 실적을 달성해도 받을 수 있는 성과급은 기존 정규직의 절반에 불과하다.
최소 인력으로 최대 효과를 누리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직체계와 인사제도 변경은 물론이고 영업시스템 변화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업본부제의 도입이다. 지역에 영업본부를 설치하고 본부장에게 지점의 예산권과 인사권을 부여한다. 본부장은 지점장의 평가권한도 갖고 있다. 영업본부제는 은행∙증권∙보험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모든 게‘경쟁’
김재현 금융노조 정책본부장은 “영업본부제 도입으로 본점에서는‘손안대고 코푸는 격’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할 수 있게 됐다”며“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 감소를 위해 영업본부제 폐지 등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점장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입사 25년차인 수협은행 동여의도지점 정영성(46) 지점장은 출근하자마자 직접 고객들을 찾아 나선다.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실적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출고객을 직접 찾아갑니다. 서류작성도 현장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한정된 시장을 놓고 은행간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 과거와 달라진 점이죠. 대출을 원하는 사업자가 있으면 전 은행권이 달려드는 실정입니다.”
외환위기 이전엔 대출을 해주면 고객들이 고맙다고 식사를 사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대출고객들을 정례적으로 만나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최근처럼 시중자금이 증권사로 대거 이동할 때면 좌불안석이다. 위에서는 실적압박을, 밑에서는 치고 올라온다. 글자 그대로 ‘샌드위치’신세다.
일부에서는 전문경영인체제가 경쟁을 부추긴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임기가 한정된 경영진들이 투자보다는 비용을 줄여 수익을 높이려 하기 때문이다.
매일 날아드는 성적표
그런 가운데 성과급제의 확산은 금융노동자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2004년)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대다수 증권회사에서 차등성과급제를 도입했다. 은행권에서도 집단성과급제가 유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두서너 곳에서 개인성과급제 도입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김경중(41) 국민은행 여신관리지원센터 차장은 “매일 날아오는 성과기록표로 인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불고 있는 자격증 열풍도 치열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현재 금융부문 노동시장에서 통용되는 자격증의 종류는 신용분석사, 보험대리점, 증권분석사, 손해사정인, 투자상담사, 금융자산관리, 주식선물옵션, 보험판매관리사 등 은행∙증권∙보험을 통틀어 30개가 넘는다. 방카슈랑스 확대 등의 영향으로 업무영역이 무너지면서 업종에 관계없이 취득해야 할 자격증이 늘고 있다.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증권전문인력 자격시험 접수인원은 2만3천316명으로 전년 동기(1만7천101명) 대비 3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문인력 신규등록인원은 1천994명으로 6% 증가했다. 증권사들은 직원들에게 투자상담사, 주식선물옵션, 자산관리 등 4~5개 자격증을 의무적으로 취득하도록 하고 있다. 자격증이 없을 경우 승진에서 누락되기도 한다.
자격증 취득은 직원들에게 이중삼중의 부담을 준다. 학원 수강비용이 지원된다 하더라도, 교육시간의 경우 퇴근시간 이후나 주말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진희 증권노조 정책국장은“전문화 교육 부담이 개인에게 전가돼서는 안 된다”며 “산업차원에서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업무가 많아지고 경쟁이 심해진 탓에 금융노동자들은 죽을 맛이다. 과로사와 자살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업무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원인이다. 금융노조산하 사업장에서 최근 4년 동안 업무와 관련해 사망한 사람만 30명에 달한다. 금융노조가 일반은행 9곳 5만4천4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 해 평균 16.5명이 업무와 관련한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 홀로 족' 증가
증권업계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이후 업무스트레스로 인한 돌연사와 자살사건이 20여건에 달한다. 지난 4월에는 하나대투증권(구 대한투자증권)의 이아무개 과장이 회사 체력단련실에서 목을 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회사측에서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집계하기도 힘든 실정이다.
강종면 증권산업노조 위원장은“노조가 추산한 것만으로도 대략 1년에 평균 2~3건의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며“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증권노동자들의 건강권이 더 큰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끼리의 치열한 실적 경쟁은 조직문화마저 바꿔 놓았다. 집단문화가 사라지면서, 회식자리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과거 활발했던 동아리 활동이 최근에는 시들해졌다. 금융회사들이 조직 활성화 차원에서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는 있지만 여유가 없어서인지 참여율이 좀체 높아지지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을 통한 대형화가 급속히 확산됐다.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일반은행의 자산규모는 지난 97년 말 23조3천290억원에서 대형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2003년 말 57조1천941억원으로 증가했다. 145.2%의 증가율이다.
보험업의 경우도 같은 기간 2조2천173억원에서 4조4천234억원으로 99.5%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증권사는 평균 48.2% 증가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출된 부실기관을 제외하면, 자산규모 증가율은 더욱 높아진다. 수익도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겸업화도 함께 진행됐다. 은행은 신용카드업과 신탁업∙종금업을 겸업한다. 펀드와 보험상품 판매는 2003년 시작된 방카슈랑스를 통해 진행됐다. 보험사도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법 시행으로 은행과 함께 간접투자자산을 판매하고 운영하는 게 가능해졌다.
대형화∙겸업화로 금융기관은 인건비 절감효과를 누렸고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신한금융그룹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6천464억원으로 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우리금융도 상반기에 그룹 출범 이후 최대치인 1조5천43억원의 순이익을 보였다. 기업은행도 상반기 중 올해 목표인 1조2천억원의 70.4%에 달하는 8천450억원, 하나금융 역시 올 상반기에 지난해 상반기보다 40% 늘어난 7천13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금융기관이 거둔 수익의 상당 부분은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외국인 지분이 늘어나면서 배당액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주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경쟁적으로 배당을 늘리고 있다.
금융노동자는 ‘소모품’
국민은행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전체 수익의 49.7%인 1조2천278억원을 배당했다. 지난해보다 배당액 기준으로 무려 560%나 증가한 액수다. 우리금융지주는 수익의 23.8%인 4천836억원, 신한금융지주는 수익의 21.4%인 3천922억원을 각각 배당했다. 하나금융지주도 전체 수익의 17.5%인 1천887억원을 배당했다. 국민은행은 전체 배당액의 81.7%, 하나지주는 81.03%가 외국인에게 돌아갔다. 신한지주도 배당액의 51.5%가 외국인 주주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금융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많지 않다. 인력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강도가 세졌고 부족한 인력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을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다른 산업에 비해 금융산업에서 비정규직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이 올해 3월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부문 비정규직의 비율은 53%에 달했다. 이들은 무기계약과 유기계약, 시간제근로, 용역, 독립도급근로, 일용대기근로 등 다양한 형태로 근무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금융노동자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데 대해 노동계 책임론을 제기한다. 정규직이 임금을 높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는데 합의했고, 경영진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것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본부장은 “노동계가 임금을 양보하더라도 인원충원을 요구했어야 했다”며 “임금을 높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채워 노동강도를 약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금융산업 앞에는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기다리고 있다. 국내 금융산업의 틀을 바꿀 수 있는 자본시장통합법, 한-미 FTA, 한-EU FTA가 그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외환위기 때보다 10배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산업 재편이 이미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시작된 전쟁
은행∙증권∙보험의 지점을 통합한 통합점포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프라자를 비롯해 흥국, 미래에셋, 한화금융그룹들이 경쟁적으로 통합점포를 늘려가고 있다. 자통법이 시행될 경우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2005년부터 통합점포인 하나금융프라자를 확대하고 있다. 8월 현재까지 30여곳에서 문을 열었다. 비용을 줄이고 고객에게 은행상품만이 아니라 보험과 증권상품까지 제공한다는 취지다. 그렇지만 통합점포는 필연적으로 업종 간 노동자들의 경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
권현지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개인주의가 만연하면서 개인성과가 집단성과나 회사 성과로 100%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당장은 어렵더라도 인사시스템과 경영시스템을 연계해 직원과 회사, 나아가 금융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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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제조업 접고, '금융화' 추구한다면? (프레시안,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2007-09-11 오후 8:39:24)
[밥&돈·13]"산업에서 금융으로"…한국 재벌의 변화한 '축적 전략', 그 파장은?
'삼성 은행' 추진 계획 담긴 내부 문건
지난 8월 30일 YTN은 삼성전략기획실 산하 삼성금융연구소의 자료를 입수하여, 그 내부 보고서에 "2005년 하반기에 금산 분리 과제가 본격 거론되도록 하고 2007년에는 은행업무의 일부를 확보한 뒤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에 나서자는 시간표까지 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삼성금융연구소가 2005년 5월 작성하고 금융부문 최고위 기구인 금융 사장단회의가 내부 지침으로 채택한 보고서로서, 삼성 그룹의 최고 현안 중 하나인 은행업 진출을 위한 방안으로 금융지주회사에 주목하고 이에 대해 다각도로 분석한 뒤 5대 추진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삼성, 은행 소유 추진 물밑작업")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금산분리 원칙'이란 산업 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것에 제한을 두는 원칙으로서 우리의 현행법에 따르면 비금융기업은 은행의 지분 소유 비율이 10%미만으로 제한되어 있고, 의결권 행사는 4%로 한정되어 있다.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될 경우, 금융 안정성의 초석이라 할 은행 부문이 재벌의 축적 전략의 도구가 되어 결국 전체 금융 체제에 심각한 불안정성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이런 법이 제정된 근거다.
'금산분리' 유지는 국내 재벌 역차별?…이명박 "금산분리 철폐하겠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러한 국내 대기업들의 은행 소유 불가 원칙이 해외자본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이 원칙을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방에서 나오고 있다.
론스타에 의한 외환은행 매각에서 잘 드러났듯, 현재 국내 주요 은행들의 소유구조는 심각할 정도로 외자에 의해 침식되어 있으며, 그나마 외자에 대해 독립성을 가지고 있던 우리은행마저도 곧 매물로 나올 상황이다. 이때 은행을 사들일 자금력을 가진 국내 재벌들이 금산분리 원칙에 묶여 있는 바람에 계속해서 은행들이 외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 따라서 이는 국내 재벌들에게는 '역차별'이고, 우리 나라 금융 구조에 있어서는 불행한 초국적화의 진행의 원인이므로 '금산분리 원칙'은 마땅히 철폐되어야 한다는 것이 금산분리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다. 실제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이미 금산분리 원칙을 철폐하겠다는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언론에 소개된 삼성금융연구소의 보고서는 이 금산분리를 둘러싼 최근의 움직임을 '금융 체제의 안정성'이나 '은행의 외국 매각' 등 기존 시각이 아닌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해보아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 그것은 국내 재벌들의 주체적인 '축적 기획'의 변화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이런 변화가 지금 추진되고 있는 바 소위 '금융 허브 전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그것이 한국 자본주의 전체의 성격 변화에 가지는 함의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금융화' 축적 전략
'금융화'(financialization)라는 용어는 90년대 이후 영국 미국을 비롯한 지구적 자본주의의 성격 변화를 묘사하는 말로서 많이 회자됐던 것이지만, 그 의미는 상당히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혹자는 GDP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의 변화 등 막연하게 금융의 중요성의 증대를 일컫는 용어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줄리 프라우드(Julie Froud) 그룹이나 그레타 스킵너(Greta Skippner) 같은 이들은 '금융화'라는 말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금융화'라는 표현은 기업의 축적 전략의 변화를 의미한다. 스킵너는 특히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의 현황을 조사하여 기업 부문의 이윤(좀 더 정확히는 현금 흐름)에서 영업 활동이 아닌 각종 금융 자산의 보유를 통하여 얻는 이윤의 비중이 거의 절반에 달하도록 증가하였음을 보이고 있다.
또 줄리 프라우드 그룹은 한 걸음 나아가 기업 경영의 원칙 자체가 경제적 부가 가치(EVA)등으로 평가되는 현금 흐름, 나아가 기업의 시장 가치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기업 경영 방식의 변화 그리고 그것이 산업과 노동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의미로서 기존의 '주주 자본주의' 등과 같은 용어의 모호함을 대체할 말로 '금융화'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재벌의 축적 전략이 변했다"…'산업 지배'에서 '금융화'로
한국이나 일본의 기업은 물론 심지어 미국의 대기업들도 이러한 '금융화' 축적 전략이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기업의 경영 목표들을 시장 점유율의 극대화, 기업의 외형적 성장을 통한 권력과 명예의 증대 등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 시절의 대기업들의 축적 전략이라는 것은 직접적 간접적으로 '산업' (실제의 생산 활동의 조직이라는 의미에서)과 연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대규모 기업 집단이 나타나기도 하였고, 미국의 경우처럼 수평적으로 한없이 팽창하는 다부서 기업(multi-divisional corporation)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사회 경제의 산업적 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력의 극대화가 기업 활동의 모토였고, 이러한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공급하는 금융 부문과 기업은 어느 정도 그 존재 방식과 활동 원칙에서 구별짓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런데 이 '금융화' 축적 전략의 경우처럼 기업들이 스스로의 축적의 지표를 산업적 관계에 대한 직접적 지배력이라기보다 '시장 현재가치의 극대화'로 보게 된다면?
피곤한 노사 협상, 골치 아픈 기술 개발…"그런 것, 왜 하죠?"
그렇게 되면 제조업이나 그 밖의 비금융 부문에 종사하는 기업들도 금융 기관들과 근본적인 사고의 차이를 가질 이유가 없어진다. 복잡한 노사갈등을 껴안고, 골치아픈 신기술 개발 등의 장벽을 넘고 넘는 그야말로 "손을 더럽히는(get hands dirty)" 제조업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나, 투자 은행처럼 몇 장의 서류와 회의를 주고 받아 대규모 인수 합병 건을 성사시키는 '쿨한' 방법으로 수익을 내는 것이나, 기업의 현금 흐름이나 좀 더 근본적으로는 금융 시장에서 평가되는 '시장 현재 가치의 극대화'라는 관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편집자 주 : 이런 주장은 결코 낯선 게 아니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던 송희영 논설실장은 지난 6월 30일자 칼럼 "글로벌 '쩐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길"에서 "최고 호황을 누리는 국내의 어느 조선회사 임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적었다. "1억 달러짜리 대형 선박을 수주해 3년 간 수천 명의 기술자들이 땀 흘려 수출하면 500만 달러나 600만 달러 정도 남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금융기관은 선박 건조 자금을 1억 달러 정도 빌려주고 단번에 엇비슷한 금액을 벌어갑니다."
☞관련 기사 : "<조선일보> 송희영 칼럼에 답한다")
이에 따라 기업 활동과 경영에서 보면 그 기업 본래의 영업 활동보다 각종 금융 활동의 중요성과 비중이 점점 커지고 기업의 조직 형태나 원칙 자체도 이러한 금융화 관점에서의 합리성으로 맞추어지게 되며, 점점 산업적 합리성이라는 것과는 거리를 가지게 된다. 그 가운데에 미국의 경우 90년대를 통과하면서 수직적 구조를 가진 다층구조지주회사(multi-layered holding company)가 주요한 기업 형태로 떠오르게 된다.
잭 웰치, '금융화 축적 전략'의 선봉…'지주회사' 전환으로 뒤따르는 한국 재벌
이렇게 새로운 금융화 축적 전략의 경영 방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90년대에 걸쳐 하나의 신화를 구축했었던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전(前) CEO 잭 웰치(Jack Welch)였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지주회사로의 전환 흐름은 필자가 과거 지적한 바 있는 것처럼 한국의 재계에서도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게 되었다. (☞관련 기사 : 재벌의 '지주회사' 전환…일터엔 어떤 변화가?)
하지만 이는 단순한 기업 형태의 변화를 넘어서서 좀 더 근본적인 축적 전략 자체의 변화를 암시하는 것이다. 동양 그룹의 경우처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사모펀드 등을 포함한 금융업을 중심으로 기업 전체의 조직을 바꾸겠다고 공언하는 이들도 있다.
또 두산 그룹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본래의 대표 사업이었던 OB맥주와 같은 제조업체마저 매각해가며 '실탄'을 마련한 후, 그 자금으로 초국적적인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공격적 인수 합병을 계속해왔다. 결국 2001년 경까지만 해도 1조원 정도에 불과했던 두산 그룹의 시장 현재가치는 올해 20조원을 넘는 것으로 경이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제조업 접고, 금융화 추구
이제 삼성이 은행업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다시 음미해보아야 한다. 이 현상은 "대재벌이 자신의 돈주머니를 확보하려는 움직임" 정도의 차원에서 전통적인 교과서 경제학의 관점에서만 문제를 설정할 일이 아닌 듯 하다. 즉, '제조업체'에 기반한 '산업 자본'으로서의 삼성의 성격은 변하지 않은 채 그저 그들이 자신들의 돈주머니를 마련하려는 책동으로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 아닐까 한다.
삼성이 금산 분리 철폐를 통하여 은행업까지 포괄하는 전방위적인 금융업으로의 진출을 꾀하는 것은 이미 삼성이라는 굴지의 대재벌도 이러한 '금융화' 축적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21세기형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으로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맞물려 고려해야 할 의제는 삼성의 지주회사로의 전환 가능성이다. 이미 삼성 그룹의 소유 지배 구조는 그동안 이재용 씨로의 승계 문제와 연결되어 끝없는 논란을 낳은 바 있었고, 최근에는 그 대안으로서 지주회사로의 전환의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삼성 물산을 정점으로 하여 제조업체들을 묶은 산업지주회사, 그리고 삼성 생명을 정점으로 하여 삼성 카드 삼성 증권 등의 금융업체들을 묶은 금융지주회사로 나누어지는 것이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로 이야기되고 있다.
비록 그 두 갈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수 있지만, 삼성이 이미 산업 자본으로서의 성격을 탈각하여 금융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집단으로 성격을 변화시키는 움직임은 계속 존재해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보험이나 증권을 넘어서서 금융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은행업까지 삼성이 진출하기 위해 이미 몇 년전부터 지속적인 작업을 해왔다고 하는 YTN의 보도는 깊게 음미해볼 만하다.
노무현 정부의 '금융 허브' 전략은 '금융화' 기획의 결정판
여기에서 하나 더 생각해 볼 문제는 노무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금융 허브' 전략이다. 이 전략은 지금까지 한국을 동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만들어 외국의 유수한 대형 금융 기관들이 아시아로 진출하는 교두보로서 만든다는 '대외적인' 차원에서만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금융 허브 전략에 대해 국내의 대재벌 등의 한국 자본 세력이 갖는 이해 관계는 무엇일까. 한국이 초국적적인 금융 허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이들도 하나의 금융적인 자본으로서 성격을 바꾸어 초국적 자본의 흐름으로 합류하는 것을 자신들의 적극적인 이해 관계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금융 허브론은 단지 몇 몇 관료들이나 엘리트 집단들이 독자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아이디어를 넘어서서 한국의 자본과 지배 세력들의 집단적인 이익에 대한 합의를 구현하고 있는 '축적 기획'이 아닐까.
현재 전직 현직의 경제 관련 고위 관료들은 입을 맞춘 듯 한국에 '금융 빅뱅'이 임박하였음을 선포하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을 금융 허브로 전환시키는 보다 큰 계획의 일환임을 암시하고 있다.
"시행 앞둔 자통법, '금융화' 기획의 맥락에서 살펴야"
그 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다. YTN의 보도는 삼성금융연구소의 계획의 하나가 지급결제기능처럼 지금까지 은행에만 주어져 있었던 기능들을 증권사나 보험사에도 부여함으로서 실질적으로 삼성 생명이나 삼성 증권이 은행의 성격까지를 대거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 지금 시행될 자통법은 증권사에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하는 것을 주요한 내용의 하나로 삼고 있으며, 보험 관련으로 나오게 될 새로운 법령들도 보험업체들이 금융지주회사를 세워 은행을 산하에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앞으로 금융 허브 프로젝트의 '로드맵'을 따라 줄줄이 나오게 될 일련의 금융 빅뱅의 조치들도 이렇게 삼성 등의 대재벌들이 '금융화' 축적 체제로 전환하게 되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진행되는 것일까. 삼성 산하의 일개 경제 연구소에서 작성된 문건 하나를 놓고 이렇게 큰 질문들에 대해 확실한 증거를 잡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히 경솔한 일일 것이다.
금산분리 철폐, 자통법, 지주회사, 금융 허브 등의 주제들은 대단히 광범위하고도 복잡한 많은 쟁점들을 품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을 이렇게 하나의 시각만으로 그 성격과 내용을 재단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고 자칫 '음모 이론'과 같은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삼성이 '금융화' 전략 취하면, 고용과 산업 기반은?
하지만 이러한 여러 흐름들 상호간의 관계와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노파심에서이든 절박한 경각심에서이든 예의주시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전체 그림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큰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큰 그림에서의 흐름이 한국 경제 나아가 우리들 모두의 살림살이, 그야말로 '밥과 돈' 모두에 끼칠 충격이란 실로 심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금융업의 주력을 방향으로 하여 지주회사로 전환한다면? 우선 우리 경제의 고용이나 산업 구조와 직결되어 있는 '제조업'은 어떻게 될까? 또 국내의 대재벌들이 줄을 이어 하나의 '금융 자본'으로 변하여 중국, 베트남, 인도를 주무대로 삼는 '초국적 자본'으로 변한다면 그것이 우리 경제와 보통 사람들의 경제 생활에 갖게 되는 충격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국내 자본의 '금융화' 축적 기획을 목표로 하여 국내의 금융 체제 전체가 재구조화된다는 것은 또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일까?
대중의 삶을 뒤흔드는 변화, 손 놓고 구경만 해야 하나?
이러한 거대한 재구조화의 한복판에 처한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이러한 흐름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거나 민주적인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일개 기업 산하의 일개 경제 연구소의 일개 보고서에 대한 보도를 도무지 예사롭게 범범히 보아넘기기 힘들게 되는 이유는 이런 생각들이 자꾸 꼬리를 물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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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일탈'이 아니라 '기획' (프레시안, 요약=노주희/기자, 2007-06-15 오후 7:45:29)
[관점] 홍기빈의 '축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
<프레시안>은 금융경제연구소 등 10개 연구단체들이 15일 주최한 심포지엄 'IMF에서 FTA로'에서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한 글 '축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를 요약해 게재한다. 이 요약문은 독자들이 IMF 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한미 FTA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한미FTA라는 수수께끼
한미 FTA는 많은 이들에게 수수께끼였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이익은 전무하거나 불명확한 반면 피해와 위험은 무수하고 명확한 한미 FTA를, 노무현 정부는 어째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것인가. 경제적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많은 이들은 정치적인 요소로 한미 FTA를 설명하고자 했다. 뭔가 굵직한 치적을 남기고픈 '집권 말기의 심리학'이라는 지적도 나왔고, 대통령 선거판을 주도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략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지어는 한미 양국의 경제통합을 획책하는 친미 세력들의 '음모'라는 주장도 나왔다.
전통적인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는 분명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동학(動學)이 지향하는 푯대는 '국민경제의 번성'이 아니라 '더욱 효율적인 자본축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 FTA를 '지배 세력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기획'으로 보면 어떨까? 한미 FTA는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를 관통하는 일련의 흐름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미 FTA의 추진은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도 '어불성설'이기는커녕 '사필귀정'이 아닐까? 우리 내부에는 한미 FTA를 원하고 추진해 온 세력이 없었을까?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라는 현재의 사건을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진행된 역사적 구조 변화의 '지속(durée)' 속에 놓고 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기간에 한국이 겪은 신자유주의적 구조 변화에 대한 설명은 "시장의 전횡"이나 "자본의 강화"와 같은 현상 기술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자본축적과 '축적 기획'
IMF 위기 이후 10년간 진행된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를 설명하는 말로써 많이 쓰였던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이라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는 아직도 모호하다.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를 '시장'이라는 "살인 기계(juggernaut)"의 작동으로 보고, 다른 이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몰인격적이며 자연사적인 운동"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시장'과 '자본주의'라는 전통적인 개념과 그에 기반을 둔 분석틀은 현실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데 큰 한계를 지닌다. 이들은 구체적인 현실세계로부터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장과 자본주의는 200년 전부터 현실세계를 규정하는 중심 원리로 작동했고, 이미 그 공간적 범위도 전 세계로 확장됐다. 지난 10년간의 한국'으로 한정된 시공의 상황을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으로 포착하려다 보면, '시장의 전횡'이나 '자본주의 본래의 운동법칙'을 넘어서는 분석이 나오기 어렵다. 그 대응책 역시 '국가기구와 시민사회의 협조를 통한 거버넌스로 시장의 전횡을 통제한다'든가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변혁한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개념들로는 현실을 파악하기 힘들 때에는, "사건 그 자체로!"라는 한 위대한 철학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 10년간 겪어 온 신자유주의의 현실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중요한 현상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자본축적'이다. '축적'이란 사회적 구조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구조 변화의 결과만을 수치상으로 보여주는 '사후적인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가 갈파했듯, 자본은 "사회적 관계"다. 자본과 지배 세력은 사회적 관계라는 '외생적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축적의 게임을 진행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서의 축적 게임이 한계에 부닥치면 이들은 새로운 게임의 룰을 찾아낸다. 이들은 이 새로운 룰이 작동할 수 있도록, 기업, 금융, 노사관계 등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이르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의 재구조화하려고 한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자본과 지배 세력이 어떤 새로운 게임의 룰을 염두에 두고서 어떤 특정 방향으로 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하려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바로 '축적 기획'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20세기 말부터 자본과 지배 세력이 지구적 규모와 일국적 규모에서 착상하고 추진해 온 하나의 '축적 기획(accumulation project)'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금융화: 신자유주의 축적 기획의 게임법칙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축적 기획"의 내용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금융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 즉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새롭게 나타난 축적 기획의 성격으로 '금융화'를 포착하고자 한다.
◇ 축적의 지표: 시장 자산 가치의 극대화
전후 자본주의는 흔히 포디즘(Fordism) 시대의 자본주의라고 일컬어진다. 포디즘의 주요한 특징은 생산설비의 확장과 고도화, 고용과 임금의 지속적인 상승을 통한 시장의 창출 등이다. 이런 포디즘식 순환이 이뤄지려면, 국가는 잘 정돈된 금융 체제를 갖춰야 했고, 기업은 경영자들의 자율재량을 통해 시장 점유율의 상승, 기업 규모의 거대화 등을 경영 목표로 해야 했다.
이같은 어제의 축적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폴 스위지(Paul Sweezy)는 1966년 폴 바란(Paul Baran)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에서 나타났던 이같은 경향을 '독점자본(Monopoly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이 기업이론으로는 "설명은커녕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음을 고백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 여러 지구적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지난 25년간 금융 부문이 엄청나게 확장되고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이런 발전은"기업이 지배하는 '실물' 경제의 구조와 작동에 중대한 방식으로 반작용을 가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1980년대에 일어났던 기업 매수(buyout) 광란을 주목했다. 실제 '생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없었던 초기의 금융 거래자들이 금융 거래를 통해 기업의 통제권을 쥐고서 기업과 생산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기업 경영 방식의 변화나 금융 부문의 질적·양적 팽창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산업구조까지 바꾸어 놓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스위지는 이 변화는 자본축적의 이론 그 자체, 특히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전면 재구성하지 않으면 다룰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과 축적에 대한 이론과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에 부닥치게 된다. 축적이란 '양이 불어나고 있는 상태'이니, 양이 불어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1960년대 '케임브리지 논쟁'은 자본이 단순히 '실물'의 자본재이며 자본의 양은 이 실물 자본재의 총량을 합산하면 된다는 전통적인 이론을 이미 무너뜨렸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자본과 축적 이론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할 것인가?
일찍이 100년 전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이러한 주류의 전통과는 정반대의 자본과 축적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자본이란 철저하게 "금융적(pecuniary)" 개념이며, 자본축적도 철저히 금융 부문과 비즈니스 부문의 논리로 운동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금융 부문에서의 자본축적은 실물의 '산업" 부문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금융 부문에서의 자본 축적이라는 논리가 현실의 실물적 관계를 재구조화한다.
닛잔과 비클러(Jonathan Nitzan and Shimshon Bichler)는 이런 베블런의 관점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에 따르면, 자본이란 보유하고 있는 생산재의 크기와 같은 '실물'적인 것들로 측량되고 축적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란 유형·무형의 '자산(asset)'이며, 자산의 크기는 소수의 개인이나 집단이 주어진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산과 일반적 사회관계에 걸쳐서, 소유권이라는 형태를 통해 쟁취하는 권력의 크기다. 따라서 자본의 크기는 자산의 현재가치(present value), 즉 '내 자산을 지금 당장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매각할 때 받는 대가의 크기'라는 지극히 금융적인 개념이다.
◇ 주주 자본주의: GE의 경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 대기업들의 자본축적 방식은 주로 기업 확장을 통해 영업이익을 늘이고, 이를 사내에 보유하든지 아니면 신규 투자를 해서 기업의 내적·외적 성장과 팽창을 계속하는 사이클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기업 행태는 효율성과 통제력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낳았다. 그러자 경영학계에서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을 신봉하는 학자들이 나타나 기업 경영의 지표를 '주주 이익의 극대화'로 놓고 이것을 목표로 기업 경영과 구성에 일대 혁신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급격히 팽창한 동시에 극적인 탈규제를 겪었던 미국 금융시장은 이런 이론을 현실에 집행할 주체인 기관 투자가들을 등장시켰다.
원래 미국 금융시장은 질서정연하게 구획돼 있었고 각각의 금융기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도 엄격하게 제한돼 있었다. 그런데 70년대 초 석유위기 이후 초 인플레라는 예측불능의 금융적 환경이 도래하자, 금융기관들은 기존보다 더 높은 수익률로 생존하기 위해 이를 가로막는 기존 규제를 풀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따라 보험과 연기금 등에 대한 주식 소유 제한 규제가 풀렸고, 은행 이자율에 대한 규제도 철회됐다. 증권시장의 주요 행위자로 가계 대신 뮤추얼펀드, 보험, 연기금, 은행 등 대규모 기관 투자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덩치 큰 선수들이 유입되자, 미국에서는 1980년대 '정크본드' 붐을 시작으로 기업 경영권이 거래되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시장이 형성됐다. 그러자 적대적 인수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기업들은 주식 가치의 제고를 최고의 경영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해고와 자산 매매도 서슴지 않는 새로운 경영 행태를 보이게 됐다. 그 대표 주자가 잭 웰치(Jack Welch) 아래에서의 제너럴 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이었다. GE는 1980~1990년대 전통적인 대규모 "제조업체"로서는 시장 가치를 가장 높게 제고했다. 1980년과 1998년을 비교했을 때 수입(revenue)은 300% 증가했고, 순소득(net earnings)도 520% 증가했다. 시장 가치의 폭등과 배당금 증가 등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간 몫도 1200%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GE의 성공은 같은 기간의 미국 경제의 호황 때문만이 아니라, 잭 웰치만의 적극적인 "주주 가치 극대화를 통한 시장 가치 경영"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GE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전략들은 대부분 "실물적 생산"에의 투자와는 거리가 멀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업 인수와 기존의 사업 부문 양수도를 통한 재구조화(restructuring) △대규모 정리 해고와 연구개발(R&D) 투자 감소를 통한 '산업적' 비용 절감 △서비스, 특히 금융서비스 부문으로의 진출(GE 금융서비스) △대규모 자사주 매각(stock buybacks)을 통한 주가 부양 등이 있다.
곧 다른 대기업들도 GE와 동일한 경영 노선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한 경영평론가에 따르면, 미국의 100대 기업 중 약 3분의 1이 GE 의 뒤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제너럴 모터스, 아이비엠(IBM), 시어스, 케이마트(K-Mart), 보잉, 휴렛-패커드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친 대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 "시장 가치 자본주의"의 결과들
이러한 "시장 가치 경영"은 1980년대 이후 자본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운영 준칙(rule of the game)이 '기업의 현재 시장 가치의 극대화'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변화는 기업 경영은 물론 금융시장의 구조, 산업, 노동시장 모두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었다.
△ 현금 흐름: 경영 시간 지평의 단축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이나 자산총액의 증가와 같은 지표들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그 대신 '일정한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현금이 창출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는 소위 '캐시 플로우(cash-flow)'가 핵심 경영 지표로 등장한다. 이는 기업 경영의 시간 지평(time horizon)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소위 "영미식 자본주의의 단기적 성과주의"라고 비판받는다. R&D 투자, 직원들의 교육과 장기적 생활복지, 기업 조직 내의 사회관계, 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개선 등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필요한 것들은 일단 뒷전이 되고 심지어 희생당한다.
△ 제조업체의 '금융 자본화'
금융화의 가장 중요한 귀결 중 하나는 금융 기관과 비금융 기업들의 행태가 통일되는 것이다. '현재 시장 가치의 극대화', 이를 평가할 주주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현금 흐름을 강화한다는 단일한 원칙 아래에서는 산업 자본이니 금융 자본이니 하는 전통적인 구별이 의의를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크립너(Greta Krippner)는 최근 '금융화'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이윤 증가가 상품 생산과 교역보다는 주로 금융적인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는 '축적 패턴'의 변화로 정의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법인의 이윤 중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 반면 금융, 보험, 부동산 등 금융 부문의 몫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 금융 체제
1970년대 이후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규제가 풀린 금융시장을 넘나들면서 거의 모든 종류의 금융증서들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또 가계에서 은행, 보험, 연기금 등의 형태로 나오던 엄청난 자금이 모두 구획이 사라진 자본시장으로 밀려들었다. 경영자들은 스톡옵션 등의 보상체제를 통해 주주들의 이익과 밀착한 경영을 하게 됐고, 이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이들의 기업 경영권을 더욱 강화시켰다.
프로우드(Julie Froud) 등 영국의 회계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의 이런 주주 자본주의적 환경 아래에서 국민경제 차원에서의 금융 체제의 구성과 의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지적했다. 새 금융 체제는 자본시장이 가계와 기업 부문을 잇는 매개자(intermediary)가 아니라 양쪽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제자(regulator)가 되는, 이른바 '쿠폰-풀 체제(Coupon-pool System)'라는 것이다. 프로우드는 금융 시장 전체가 주식, 채권, 그 밖의 온갖 금융 증서들이 차별 없이 거래되는 쿠폰-풀의 틀로 통일된다고 본다. 이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가계로부터 나오는 자금의 공급과 회수, 왼쪽으로는 국가와 기업에 의한 자금 융통이 이루어지는 두 개의 순환 구조가 생겨난다. 오른쪽에서는 가계 자금이 금융 빅뱅 등의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 뮤추얼 펀드, 보험, 연기금, 부동산 등 기관 투자에 집중 유입돼 결국 모두 이 통일된 쿠폰-풀로 들어오게 된다. 한편 국가와 대기업은 자기 금융이나 조세에의 의존도를 줄이고 이 쿠폰-풀에서의 자금 융통 비중을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 쿠폰-풀은 기업 및 국가 부문은 물론 가계의 개인들의 경제적 행동을 결정하는 규제자가 된다.
아직 이 왼쪽과 오른쪽의 구조를 모두 갖춘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영국, 미국의 대금융 자본을 선두로 지구적 자본의 공세는 날로 강화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같은 방향으로 국내의 기업 및 금융 체제를 재구조화하고 있다. 한국도 IMF 체제 10년을 거치며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국가와 기업 운영의 원리로 확립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본시장통합법(그야말로 "쿠폰-풀"이다)이나 금산분리 폐지 등을 통해 "빅뱅"까지 추구하고 있다.
△ 기업 형태
기존의 주요 자본주의 국가는 자국의 조건을 고려해 적극적인 산업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금융 정책을 편다. 대기업 등은 이같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조절(regulation) 아래에서 각자 목표에 따라 대기업 부문과 중소기업의 하청 부문에 이르는 일련의 산업구조와의 연쇄 관계를 맺어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축적 체제는 자본 축적을 평가하는 기준과 시간적 지평이 단기적인 "현재의 시장 가치와 현금 흐름"이라고 하는 원칙으로 바뀌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먼저 상호 주식 보유(cross-share-holding)나 은행과의 장기적 관계 등을 매개로 했던 기업집단(corporate groups)이 해체된다. 기술적 생산성의 안정화와 향상 등과 같은 장기적인 기업 경영의 시간 지평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중소기업 부문과의 연결 고리도 끊어지게 된다. 대신 기업을 주식시장에서의 평가에 가장 유리한 형태로 "날씬하고 옹골차게(lean and mean)" 만든다는 원칙이 세워진다.
대기업, 나아가 산업 구조 전체를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에 맞게 재구조화하는 강력한 틀로 각광받는 것이 바로 '지주회사'다. 지주회사는 정점에 선 모기업이 '주식 가치'라는 단일한 원리에 따라 산하 기업들의 기업 통치(corporate governance)를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모회사는 산하 기업들 내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노사 문제를 간단히 회피할 수 있다. 또, 모회사는 산하 기업들의 주식 발행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게다가 기업 인수의 경우와 달리, 모회사는 산하 기업의 주식을 '50%+1만 보유하면 되기 때문에 기업 인수합병(M&A)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2007년 한국, 기업과 금융 부문의 변모
IMF 위기 이후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금융 부문'이 엄청나게 확장되고 복잡해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화(financialization)'란 단지 '금융 부문의 확장'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금융화는 예전엔 '실물 경제'의 작동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던 금융 부문이 기업의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실물 생산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한국의 금융화 10년
금융화란 기업, 노후 생계 등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러저러한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IMF 사태 이전엔 기업, 특히 국민경제와 고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IMF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업 경영권 시장의 형성, 소유지배구조 개혁, 주식시장 자유화 등을 통해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켰다. 또 주식시장을 개방해 이런 거래가 한국인이나 국내에서뿐 아니라 외국인과 국외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를 상품화하고 국내외적으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치가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진행돼 왔던 것이다.
'기업 그 자체'를 거래하는 주체, 즉 주주나 금융투자자들이 기업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으로 부상했다. 이런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나타난 금융투자의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경영권을 사들인 뒤, 비핵심 부문의 매각, 정리해고 등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것이다. 사모펀드는 유통과 생산 영역에 모두 개입해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발전된 형태의 금융투자 형태다. 한국의 장하성 펀드, 보고펀드가 바로 이런 사모펀드다.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올리려면 구조조정을 통해 비핵심 부문과 노동자들을 해당 기업 밖으로 자유롭게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국가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의 법률로 지원한다. 또한 투자자들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실을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으려면 외환시장이 자유화돼야 한다. 이렇게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바로 '소액주주운동'이고, 이같은 투자자 보호는 한미 FTA 등에서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로 절정에 달한다. '금융화'라는 시각에서 보면,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세력이 그토록 민영화를 재촉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대다수 공기업들은 생활 필수재를 생산하므로 시장이 넓고 현금흐름도 양호하다. 이런 '맛있는' 기업들을 민영화해서 사고파는 머니게임을 벌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금융적 이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금융화는 국가 거시경제정책의 기조까지 바꿔 놓는다. 세금, 사회보장 등에 관련된 재정정책을 억제하고 통화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물가안정에 두는 것이다. 금융투자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만큼 투자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화는 서민들의 라이프-사이클을 금융시장에 연관시키기도 한다. 국가는 연기금, 실업보험금 등 공자금을 국내외 증권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고, 이 결과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금융시장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한편, 이런 경제 환경에서는 저성장과 이에 따른 고용불안이 불가피하므로, 복지제도가 사회적인 의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탈민족주의와 반집단주의, '웰빙'을 강조하는 문화상품들이 부상한다. 고실업-저성장 사회에 의욕적인 시민들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 그 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
이처럼, IMF 사태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자본시장(주식시장)의 활성화'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 경제, 문화 부문이 재조정되는 것이었다.
◇ 김대중 시대 :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업·금융 개혁은 결국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기업과 은행을 재료로 머니게임을 벌일 수 있도록 '기업 경영권 시장'을 개방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한국경제 시스템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의 '악의 축'이며 청산 대상으로 낙인찍혔고, 특히 재벌은 기존엔 불가능했던 M&A의 대상이 됐다.
IMF는 국회로 하여금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도록 해, 국가의 경제 개입을 원천봉쇄했다. 재벌에 대해서는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해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한편 부채비율 200%를 내세워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라고 명령했다. 이와 동시에 은행에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8% 달성 및 대기업 여신 축소를 강요했다. 이는 기업과 기업의 자금줄인 은행의 목을 동시에 죄는 조치였다.
이런 IMF의 명령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은행 대출이 아니라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이는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쪼개 주식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했다. 은행 역시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는 은행 역시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외국환 취급 은행의 스왑, 옵션, 선물거래 전면 허용 △상업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소유 제한의 철폐 등이 바로 1997년에 실시됐다.
이렇게 기업과 은행이 결별하고 각각 '상품'이 되었다. 이렇게 기업과 은행이 상품이 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와 이 '상품'을 사들였다. 김대중 개혁이 진행됐던, 1998년 이후 3~4년은 기업과 은행이 국가와 재벌 가문, 상호 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주식상품으로 전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기'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이같은 기업·금융 구조조정과 함께 IMF가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 바로 자본시장의 개방이다. 외국인들도 한국 기업을 자본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8년 정부는 지배 지분을 획득하려면 주식의 상당 부분을 공개 매수하도록 했던 '의무공개매수제'를 폐지하고, 국내 기업과 은행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허용했다. 같은 시기 외국인에 대한 주식한도가 폐지됐고, 2조 원 이상 자산을 가진 국내 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때 정부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정도 사라졌다. 국내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도 철폐됐고, 국내 채권 및 단기 자본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됐으며, 외국인들이 10% 이상 투자할 때 대상 기업 이사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던 규정도 폐지했다.
그 결과, 해외자본은 국내 대표 기업과 금융기관을 보유하게 됐다. 해외자본은 외환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SC제일은행, 신한은행에서 1대 주주거나 50%를 상회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해외자본은 삼성전자, SK텔레콤, LG화학, 포스코 등 국내 대표기업에서도 의미 있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경제의 '등뼈'에 해당하는 산업들도 해외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려 전략산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고부채-고성장 모델은 역사의 피안으로 넘어가고, 저부채-저성장 시대가 왔다. 은행의 영업 형태가 수익성 극대화 일변도로 흐르면서 '위험이 낮은' 가계대출이 '위험한' 기업대출을 능가하게 됐다. 이는 기업의 자금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돼, 결국 국민경제 전체적인 총투자율의 저하로 이어졌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설비투자 금액은 모두 78조 원으로, 1996년의 77조 원에서 1조 원(1.3%)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이같은 투자부진은 낮은 경제성장의 원인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노무현 개혁 : 금융시장 중심 사회의 심화
한국은 '독재정권이나 재벌가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본시장이 전 사회의 소득-분배-소비를 결정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이같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2대 정부'의 대응은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적응'을 '대안 전략'으로 축약한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론'이다. 2003년 초 세상에 선보인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단순한 '금융산업 발전방안'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발전 모델(즉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주력산업으로 하는 통상국가')로 제시된 것이다.
IMF 사태 이전에는 국내 예금자나 투자자의 돈이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국내 산업에서 운용된 뒤 다시 일정한 수익(이자)과 함께 국내 예금자나 투자자의 손으로 회귀하는 식으로 돈의 흐름이 형성됐다. 이에 비해 금융허브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의 돈까지 국내외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해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운영된 뒤 다시 국내외의 투자자에게 회귀하는 방식으로 자금이 흐른다. 금융허브(financial hub), 즉 금융거래(financial)의 축(hub)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미 '돈이 국경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순환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결국 '금융허브 정책'이란 '돈의 세계적 순환'이라는 가능성을 기반으로, 국내외의 부유한 개인들이 자산을 투자하고 싶은 국내적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외의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면 그들의 투자가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 정부의 부당한(?) 시장 외적인 간섭으로 이들의 투자가 손해를 볼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FTA의 기본정신 중 하나가 '투자자 보호'라는 점을 상기하면, 금융허브론과 FTA가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박정희 모델 파산론'과 '김대중(DJ) 개혁'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론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다른 표현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물결은 세계경제 내에서 국민경제 간 서열을 변화시킬 것인데, 정부는 이 수직적 서열 체계에서 가급적 높은 자리에 한국경제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예컨대 중국에서 IMF 사태와 비슷한 경제위기가 발생해 기업가치가 현저히 낮게 평가될 회사가 있다면, 이 중국 회사를 인수해 구조조정 한 후 되팔아 막대한 수익을 얻는 '금융 연금술'의 주인이 반드시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업자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시대의 금융강국! 이것이 참여정부의 꿈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법률적으로 치밀한 준비를 해 왔다. 우선 한국을 '자산운용업 중심의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계획 하에 지난 2003년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했으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제정했다. 2005년엔 금융기관의 아웃소싱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의 개정안 원안인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을 냈다. 2008년부터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 한국사회 금융화의 전망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금융화는 노무현 집권기에 한 단계 도약했다. 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 강요된 신(新)금융 질서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하고 '우리의 역량'으로 바꿔,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이 당했던 그 방식'으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구상을 갈고 닦았던 시기가 지난 4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경제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바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 오는 정기국회나 대통령 선거 이후에 시도될 한미 FTA의 비준, 금산분리 철폐 및 한국판 엑슨 플로리오법 추진, 생명보험사 상장, 재벌그룹들의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결국 재벌을 '금융화의 완료'에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융화의 동력으로 활용된 이후 재벌들의 고용창출 능력 및 산업연관 효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해질 가능성이 높다.
맺으며
신자유주의를 축적 기획으로 이해한다면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을 거치면서 진행돼 온 한국 사회의 변화, 특히 기업과 금융 부문의 변화는 '금융화'라는 방향을 꾸준히 지향하는 일관성을 보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결코 정치권과 한미 간의 정치적 관계에 의해 벌어진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축적 기획'이라는 경제적 관점과 '국내 자본과 지배 세력의 기획'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한미 FTA는 지난 10년간의 구조 변화가 가져온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구조 변화는 소위 지구화된 세계경제에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지상 명령일까. 만약 신자유주의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든가 "역사의 운동 법칙"과 같은 초월적인 개념들로 파악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자본과 지배 세력의 축적 기획으로 파악할 경우, 이 기획이 지닌 적나라한 정치적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지배 세력의 기획을 저지시키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국가 기구를 통한 시장 독재의 저지 등과 같은 소극적인 방향이 아니라, 이런 기획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진보 세력의 독자적인 기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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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벌들 금융자본으로 변해갈 것" (김동현 기자, 2007년06월15일 ⓒ민중의소리)
홍기빈, "IMF 이후 10년은 '금융화' 축적기획 과정"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5일 은행연합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IMF에서 FTA로 : 축적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 심포지엄에서 “금융화는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라면서 “OECD 가입부터 IMF, FTA까지 일련의 흐름은 기업을 사고 팔 수 있도록 들고 시장가치라는 코드로 경제관련 모든 행동이 통일되는 금융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축적과정이 산업자본의 생산-판매 활동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인 반면 금융화는 기업을 사고팔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FTA는 자본시장통합법, 금산분리철폐, 지주회사 도입과 함께 맞물리는 ‘금융화 축적 기획’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홍 연구위원의 주장을 보충하면서 “중국과 인도의 25억 인구가 세계 경제시장에 편입되면서 엄청난 규모의 잉여가치가 생산되고 있고 이 잉여가치를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뜯어먹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국과 미국 간에 엄청난 불평등 교역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시스템이 깨지기를 바라는 세력은 없다”면서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산업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억 과학기술처 박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거론된 담론 중 금융화만 추진되고 나머지는 다 무너졌다”면서 “축적구조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여러 부분이 잘 돌아야 하는데 과연 이런 조건에서 금융 중심의 경제구조가 성공할 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홍 연구위원은 “금융허브론은 산업정책이 아니다. 이것이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면서 “우리는 산업차원의 논리에서 다시 시작해서 금융화를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IMF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 개혁은 외국 자본과 국내 재벌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축적을 가져왔지만 ‘나라 살림살이’에는 저조하거나 지극히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나라 살림살이’의 관점에서 진보진영의 독자적인 기획을 구성해 나가기 시작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과 이인영 의원, 정세은 충남대 경제과 교수, 조원희 국민대 교수 등도 함께 했다. 한편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고 진보대연합을 주장하고 있는 임종인 의원이 방청을 위해 토론회장을 찾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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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는 IMF에 이어진 자본의 '축적 기획' (참세상, 라은영 기자, 2007년06월18일 12시51분)
[심포지움] 외환위기 10년 한국 경제 회고와 전망
홍기빈 연구위원은 지금의 단계를 "한국의 기업 및 금융 부문에서 지난 10년간 진행돼 왔으며 한미FTA 국면과 맞물려 일관성 있게 진행되고 있는 '금융화 축적 기획’으로의 볼 것"을 제안했다.
여기서 언급된 '금융화'는 단순히 금융 부문이 성장했다, 확장됐다는 의미의 용어가 아니라, 예전에 '실물경제'의 작동하는 역할에 한정됐던 금융부문이 기업의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실물 생산,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사태를 의미한다. 홍기빈 연구위원은 "이전의 금융부분이 실물 경제의 그림자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실물의 '산업'까지도 재구조화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미FTA는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축적 게임의 룰을 찾아내는 자본과 지배세력이 특정시기, 특정 지역에서 새로운 게임의 룰을 염두에 두고서 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하려고 하는 정치 프로젝트"로, '축적 기획' 진행형의 연장으로 해석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찬근 인천대 교수는 ‘축적 기획’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에 동감을 표하며, “금융화의 현상에 글로벌 자본주의가 모두 다 포함돼 있지만, 심포지움의 분석에 있어서 중국과 인도라는 변수가 제외돼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인도와 중국이 세계 시장에 편입돼, 25억의 인구가 새롭게 노동시장에 유입됐음을 강조하며, "세계적인 경제의 축적 체제로의 중요성은 미국의 금융메커니즘과 인도, 중국의 세계시장 편입을 중요한 변수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축적 기획의 주체로 외국의 투기적 금융자본들, 월스트리트 인베스트 뱅크(IB)와 사모펀드 등을 꼽으며 “과거에는 정치권력이나 제죽주의식민권력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면, 이제는 이들이 주먹을 쓰지 않고도 이런 금융투자은행들이 대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찬근 교수는 "(이런 금융화, 세계 시장의 흐름 속에서) 한국 노동자들의 생존 기반을 어디에 둘 것인가"에 질문을 던지며 "심각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양극화 문제는 시발점에 있을 뿐, 앞으로 훨씬 더 엄혹한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임을 경고, "진보운동의 엄청난 방향성 전환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1부 심포지움이 10년의 한국 경제 진단에 집중됐다면, 2부는 '대안적 사회의 재구축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단위들의 고민과 사회적 제안들을 난상으로 제기됐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원장은 ‘노동중심, 노동주도형 경제 모델’을 주장하며, 기업 소유-지배구조의 전면개편, 국제 투기자본의 통제, 은행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사회적 규제, 노동자고용 국가 책임제, 기술 혁명 등 산업 정책을 통해 노동 주도형 경제 모델 성장을 위한 국가 차원의 장기 계획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나아가 "남북경협도 개성공단 차원을 넘어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북의 기술과 남의 우주산업 등 기술을 결합시켜 새로운 성장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를 들으며 "남북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형태가 아닌 노동중심의 통일민족 경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안연대회의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금융주도는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들이 있기에 결국 생산중심 시스템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라며 "대기업의 사회적 대타협 모델이 여전히 유효하며, 선택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를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 복지모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화식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책위원장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 축적 기제에서 구체 내용은 상품화와 금융화이고 이의 결정체가 "바로 투기자본"이라고 규정하며, "투기자본에게 세금을 걷자는 것은 투기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으로, 새로운 경제 체제에 대한 모티브를 만들어야 한다"며 현재 고민 중인 사안들을 열거했다.
정용건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은 좀더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안했다. 현재 주주자본주의의 폐해, 투자의 단기화 및 투기화와 같은 폐해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식양도차익, 자본이득에 대한 과세를 통해 장기투자를 유도해 투기화를 방지하고, 이 세원으로 고용안정 사업 및 비정규직 지원 사업에 투입할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주가조작, 허위공시, 내부자 거래 등 자본시장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코스닥 시장에 대한 역할 및 성격 재구축을 위해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펀드 구성 및 증권회사의 직접 투자 강화, 증권집단소송제의 현실화" 등의 방안들을 덧붙였다. 이어 정용건 위원장은 "진보세력으로 대안들을 제시해야 하다고 하지만, 대안 제시가 약간의 모순만 수정되는 형태로 귀결된다면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며, "주도적으로 관찰하고 개입해 들어갈 것이지, 밖에서 반대만할 것인지 같이 토론해 보자"며 이후 과제를 남겼다.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비정규직을 의도적으로 늘리고 있음"을 주장하며 "사회적으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정규직화 하는 설계, 특단의 계획을 실행해 보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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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분 산업지배력 갖는 ‘금융화’ 가속 (<매일노동뉴스> 2007년 6월 18일, 신현경)
‘외환위기 10년’ 조명 토론회 개최…홍기빈 연구위원 ‘기업·은행 상품으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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