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산불, 경북 산불 관련 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242013005
노조 “무리하게 투입했다 4명 참변”…노동부, 중대재해 조사 (경향, 이종섭·김정훈·최서은 기자, 2025.03.24 20:13)
지휘본부 “잔불 정리에 투입”
방염복 미지급 의혹엔 ‘부인’
“구조 요청했지만 지연” 증언도
경남 산청 산불 진화 과정에서 산불예방진화대원 3명과 인솔 공무원 1명이 숨진 것과 관련해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24일 “산불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상황이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보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진화 작업이 마무리되면 경남도, 창녕군 등 지자체와 산림청 관계자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기업 경영 책임자가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경남 창녕군 소속 산불예방진화대원 3명은 지난 22일 산청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가 숨졌다. 단기계약직인 이들이 숨지면서 현장 투입 결정이 적절했는지 책임론이 제기됐다. 산불예방진화대원을 현장에 투입한 건 경남지사와 산림청 등으로 구성된 현장 지휘본부였다. 현장을 빠져나온 생존자들과 사망자 유족들이 현장 투입 결정과 지휘, 구조 과정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생존자들과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 노조 등은 “산불 진압을 위해 무리하게 대원들을 투입했다가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반면 경남도와 산림청은 “잔불 정리를 위해 사고 지점에 투입된 것”이라고 했다. 경남도 관계자는 “헬기로 물을 뿌리고 잔불 정리 구역에 투입했기 때문에 무리한 투입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생존자들 사이에 당시 대원들이 구조를 요청했지만 구조가 지연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경남도 관계자는 “산림청 기록을 보면 22일 오후 1시56분쯤 고립 신고 접수 즉시 지상구조대가 출동했다”며 “3시50분쯤 헬기 수색활동도 시도했으나 공중 수색이 효과가 없고 하강풍으로 지상 구조 활동에 장애가 있어 헬기는 철수했다”고 말했다. 숨진 대원들에게 방염복 등 보호장비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경남도와 창녕군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경남공무원노조는 성명을 내고 “경찰은 산림청과 경남도로 구성된 현장 지휘본부가 초기 진화에 급급하다 무리하게 현장 인원을 투입하여 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하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현장 지휘본부의 안전조치 의무 등 관련 법령 위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262118035
‘알아서 대피하라’식 재난 안내, 농어촌 노인들 구하지 못했다 (경향, 류인하·백경열 기자, 2025.03.26 21:18)
사망자 대다수가 60~80대
집 안서 아예 못 나오거나
차량 대피 중 폭발 3명 사망
재난 안내 문자는 무소용
직접 도움 줄 시스템 갖춰야
지난 21일부터 이어진 산불은 어김없이 재난 취약계층인 노인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희생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이들은 대피 중 사망하기도 했고, 아예 집 안에서 나오지 못한 채 숨지기도 했다. 대형 재난·재해 시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피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경찰과 각 지자체에 따르면 경북 북동부로 번진 대형 산불로 인해 사망한 19명 중 대부분이 60~80대 주민들이었다.
이날 오전 11시쯤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한 주택에서 8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남성이 발견된 주택은 산불로 전소된 상태였다. 지난 25일 오후 6시쯤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에서는 80대 여성이 자신의 집 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여성은 88세 남편과 함께 인근 초등학교로 긴급대피를 하던 중 불을 피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25일 밤에는 청송군 청송읍 한 도로 외곽에서 60대 중반 여성이 불탄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같은 날 청송군 진보면 시량리에서는 7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긴급대피를 돕기 위해 집을 찾은 마을 이장이 발견했다. 진보면 기곡리에서는 치매가 있는 80대 여성이 실종되기도 했다. 이들은 민가로 번지는 산불을 미처 피하지 못했거나 집을 벗어나던 중 숨진 것으로 보인다.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요양원 환자 4명을 싣고 피신하던 차량에 불이 붙어 폭발하면서 80대 환자 3명이 사망했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불이 빨리 번지면서 대피를 하지 못한 상황이 많았다”고 말했다.
재난안전 전문가들은 재난·재해 시 발송되는 현행 재난안전 문자는 노인과 장애인 등 이동 약자들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고 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사회과학연구’에 발표한 논문에서 “재난의 안내가 일반적이며, 보편적인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 교수는 “안전안내 문자를 보면 노인과 장애인에 대한 지원 관련 내용은 따로 없다. 대피를 도울 인력과 구체적 방법 등은 알려주지 않고, 대부분 각자 힘으로 대피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스로 힘으로 대피하기 힘든 노인들에게 일반적인 내용의 안전안내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도시에 비해 재난에 취약한 농어촌 노인들에 대한 실질적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 이재준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조교수는 “재난이 닥쳤을 때 도시 거주 노인들은 농어촌 거주 노인들에 비해 사망 피해가 많지 않다”며 “행정안전부가 농어촌 재난에 대비해 자율방제단을 꾸려 운영하고 있지만 자율방제단조차 대부분 노인들로 구성돼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안내 문자를 보내고 ‘알아서 대피하라’는 식의 시스템 대신 반드시 누군가 직접 도움을 드리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016
경북 산불 ‘우왕좌왕’ 대응에 사망사고 ‘속수무책’ (매노, 홍준표 기자, 2025.03.27 07:30)
산불 진화대원 사망에 헬기까지 추락 … 안전장구 미흡, 안전지침 지켰는지 의문
경상도 지역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공무원과 진화대원이 사망하고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숨지는 등 인명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안일한 대응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풍과 건조한 날씨로 산불이 확산해 진화 인력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할 경우 추가 인명피해 우려가 커진다.
‘비화’ 현상에 피해 급속도, 진화대원 조건 열악
26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안동·청송·영양·영덕 등 인근 4개 시군으로 번지며 피해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엿새째 산불 진화용 헬기와 진화대원이 현장에 투입됐지만 산청·하동 산불의 진화율은 이날 오후 기준 75%, 안동지역 산불의 진화율은 52%에 그치는 상황이다.
불기둥으로 상승한 불똥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이 산불의 기세가 꺾이지 않는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산림과학원과 화재 전문가들에 따르면 불똥이 상승기류를 탈 경우 최대 2킬로미터까지 날아간다. 지금까지 여의도 면적의 약 60.5배에 달하는 1만7천534헥타르(㏊)가 산불의 영향을 받았다.
문제는 산불 진화에 악조건인 탓에 심각한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날 오후 4시 기준으로 사상자 수가 50명으로 잠정 파악됐다. 산불 대응 중앙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사망자 24명, 중사자 12명, 경상자 14명으로 집계됐다 의성에서 사망 20명, 중상 7명, 경상 8명 등 35명이 사상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진화에 투입된 공무원과 공무직 노동자들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 지난 22일 창녕군청 소속 30대 공무원 1명과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3명이 산불현장에 투입됐다가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날 오후 12시51분께는 의성군 신평면 교안리 한 야산에서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던 헬기 1대가 추락해 기장 A(73)씨가 사망했다. 추락 헬기는 강원도 인제군 소속의 담수용량 1천200리터의 임차 헬기로, 1995년 7월 생산돼 30년 가까이 운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될 듯, 지자체장 대상
이번에 목숨을 잃은 진화 인력은 모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자 1명 이상이 사망할 경우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한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데, 숨진 산불진화대원들은 창녕군 소속 기간제 노동자라 창녕군수가 해당될 가능성이 있다. 공무원도 대법원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판단하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상 종사자에 해당한다. 고용노동부는 산불 진화 업무를 수행하다가 사망사고가 났기 때문에 산재로 보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추후 조사할 예정이다.
그러나 중대재해 적용 여부 이전에 산림청 등 주무기관이 진화대원의 안전조치에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산불재난특수진화대는 체계적인 교육훈련 없이 재해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 산림청지회에 따르면 진화대원들은 대기시간에 청사 주변 조경 관리나 청소 등 업무에 투입되고 심지어 민간인 묘지 벌초에도 동원된다. 무엇보다 진화복·방염장비 등 충분한 안전장비가 지급되지 않아 운동화를 신고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산림청 교대·휴식 보장 지침 지켜졌나
산림청이 지난해 발표한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 내용이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종합대책에는 산불현장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정기교육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산불 전문 진화인력 중심으로 동원체계를 마련해 조별로 편성하고 위험지는 특수진화대가, 위험이 낮은 잔불이나 뒷불감시 등은 예방진화대에게 임무를 부여한다고 했다. 방염복의 안전을 위해 2023년 8월에는 난연성과 열수측 등 개선사항을 반영한 ‘복제 지침’을 개정하기도 했다.
특히 산림청은 ‘규정된 안전장비를 착용한 진화대원만 산불현장에 투입하고 장시간 산불 진화시 교대와 휴식을 보장한다’고 대책에 명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이 역대 최악의 동시다발적 산불 앞에서 효용을 잃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인세진 우송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유례를 찾기 힘든 산불이라 어떠한 조치도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대용량 헬기로 빨리 진압하는 게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소방관들은 처우 개선이 많이 됐는데 비해 산불 진화대원들은 고령이 대부분이고 기간제 근로형태다 보니 안전장구 지급이 미흡한 것 같다”며 “낙후한 과거 소방청 정도의 대응 매뉴얼이 전부인 셈인데, 현 상황에서는 전문가들이 현장에 참여할 수 있는 대책이라도 펼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43061855&code=11131100&cp=nv
3년 전 대책 외쳤지만… 이번에도 비만 기다려 (국민일보, 안동=최일영 기자, 2025-03-27 18:48)
24시간 산불 감시 CCTV 설치 등
진화시스템 개선 없이 사태 되풀이
불과 3년 전인 2022년 발생한 울진·삼척 산불은 당시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지며 열흘 동안 계속됐다.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투입됐음에도 진화가 안 됐고, 결국 비가 내리자 꺼졌다. 이후 정부와 산림청은 24시간 산불을 감시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지능형 CCTV 설치, 지연제 투입, 드론산불진화대 등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번 영남 산불도 비만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대형 산불 발생 때마다 진화 시스템 개선을 외쳤지만 이번에도 비슷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매번 거론됐던 헬기 부족과 노후화는 이번 영남지역 산불에서도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전력으로는 동시다발 대형 산불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산림청의 헬기는 대형 7대(8000ℓ 이상), 중형 32대(5000ℓ 미만), 소형 11대(1000ℓ 미만) 등 총 50대다. 소방청도 대형 헬기 4대를 포함해 총 32대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담수 용량이 큰 러시아산 헬기 일부는 부품 수급 등의 문제로 운영이 어려워 실제 가용 헬기는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산불 진화 인력의 고령화와 열악한 처우도 단골 주제다. 현장에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투입되는 자원이지만 고령화 문제로 실제 투입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불에 취약한 소나무 수종 전환과 부족한 임산도로 문제 제기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처럼 산불 진화 체계가 과거에 머물면서 비만 바라보는 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동시다발·대형 산불 추세가 뉴노멀이 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 봄철 등 일정 기간만 가동되던 대응 체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진단이다. 고령화 문제 해결과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산불 진화에 특화된 조직을 정비·확대·상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헬기가 뜨지 못하는 야간 시간대 공중 진화 역량을 높이기 위해 야간 운행이 가능한 헬기 도입 확대, 고중량 드론 도입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많은 물을 뿌릴 수 있는 고정익 항공기 도입 등 실효성 논란이 있는 사안도 다시 공론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계명문화대 소방환경안전과 김명균 학과장은 27일 “일본의 경우 문화재에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관련 기관과 협의해 설치할 수 있다 정도로 느슨하다”며 “정부가 변화된 산불 양상에 맞춰 행정·재정, 소방력 등 전방위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실화를 막을 수 있는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고 고령자가 많은 지방일수록 인식 변화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며 “재난의 일상화를 상정하고 지진, 산불 등 재난을 총망라한 새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2715280003907?did=NA
[사설] 재난문자 위주 산불 대피책…‘이장’에게만 맡겨둘 건가 (한국일보, 2025.03.28 00:10)
일주일째 이어진 최악의 산불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27명에 달했다. △기상(건기 장기화) △지형(골바람) △수종(소나무) 등 구조적 요인으로 산불이 대형화·일상화했다는 경고가 이어졌지만, 산불의 심각성에 걸맞은 대피 체계 수립에 실패하면서 인명피해가 크게 났다.
사망 사고를 보면 대피 도중에, 혹은 아예 몸을 피하지도 못한 채 목숨을 잃은 사례가 많다. 경북 안동시에선 50대와 70대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청송군에서도 70대가 집에서 숨을 거뒀다. 영덕군에선 요양원 직원이 환자들을 옮기다가 차량이 폭발해 3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인 산간 마을 특성을 반영한 경보 시스템도 없었다. 본보 기자들의 현장 취재에 따르면 △재난문자에 대피 장소가 명시되지 않은 경우(안동) △30분 만에 대피 장소가 변경된 사례(영덕) △학교로 대피하니 다시 체육관으로 가라는 혼선(영양)이 잇따랐다. 구형 피처폰을 쓰는 고령자 중엔 재난문자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상황 전파를 위한 비상연락망이나 유사시를 위한 대피 체계도 미리 준비되지 않았다. 마을 이장이나 주민이 일일이 이웃을 돌며 인기척을 확인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영양군에선 이장 부부가 이웃을 찾으려고 대피소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다가 화마에 변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사상 최악의 산불(피해면적 3만6,000㏊)이 워낙 순식간에 닥치기는 했다. 그러나 선제 경보와 대피를 통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사고도 적지 않다. 피할 새도 없이 산간에 사는 고령자들이 주로 당했다는 점에서, 이번 참사는 27명의 사망자를 낸 2023년 경북 북부 폭우·산사태와도 맥이 닿아 있다.
우리는 수십 년간 여러 참사를 겪으면서 교통이나 도시 인프라 관련 재난에는 상당한 수준의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농·산촌 인구 저밀지역에서 고령자에게 닥치는 재난에 맞서는 데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절감했다. 고립되어 사는 고령자에게 정확히 경보를 전달할 수 있는 시스템과 행동요령, 유사시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는 인력과 장비 지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281942001
경북 산불 1주일 만에 진화…‘1㎜ 단비’가 기적 불렀다 (경향, 송진식 백경열 기자, 2025.03.28 19:42)
1~2㎜ 내린 ‘찔끔비’가 결국 구원의 ‘단비’
살신성인 진화·소방대원들, 주민·자원봉사자 ‘영웅’
사상 최대·최악 산불로 기록…숱한 과제 남겨
정부 역할은 어디에, 지자체 ‘각자도생’식 대응
필요한 건 딱 1~2㎜의 ‘단비’였다. 지난 21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해 동북권을 집어삼킬듯이 번지던 산불이 일주일(149시간)만에 진화됐다. 산림청은 28일 오후 5시 “경북 산불이 모두 진화됐다”고 선언했다.
전날 오후 늦게 들어 내린 ‘찔끔 비’가 결국 단비가 됐다. 지난밤 65%대에 머물던 진화율은 기상여건이 개선되면서 오전부터 급진전됐다.
통상 산불 진화에 도움이 되려면 적어도 5~20㎜ 정도의 비가 내려야 하는 것으로 본다. 산림청도 전날 찔끔 내린 비에 “큰 도움은 못될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진화 현장 관계자들도 잠깐 내리다 그친 비에 하늘을 바라보며 장탄식을 쏟았다.
하지만 이날 새벽을 지나며 상황은 반전됐다. 기상청 집계를 보면 27일부터 이날 오후까지 의성에 1.5㎜, 안동 0.2㎜, 영덕 2.0㎜, 청송 1.6㎜ 의 비가 각각 내렸다. 적은 양이라 “분무기 수준”이라고 했던 이 비는 산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던 ‘연무’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무 때문에 발목이 잡혀있던 진화헬기들이 아침 일찍부터 전면 투입됐다. 전날 한창 연무가 심할 때는 실제 가동되는 진화헬기가 30%를 밑돌았다. 임상섭 산림청장은 산불 발생 이후 처음으로 “오늘 진화하기 좋은 날씨”라며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때부터 진화율은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며칠 내 불던 강풍도 잦아들었다. 이날 의성 지역에는 초속 4m의 바람이 불었다. 산불이 급확산되던 시기에는 초속 25m의 ‘태풍급’ 바람이 불었다. 적은 비에도 주변 습도가 올라 산불 확산이 억제됐다.
임 청장은 “주불이 진화될 정도로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면서도 “이날은 기상 여건이 좋았다. 진화 헬기가 처음으로 원활하게 투입될 수 있었고, 불똥이 다른 지역으로 날아가 확산하는 속도도 현저히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며칠간 총력전을 펼쳤음에도 진화율이 50~60%에 머물렀던 점을 감안하면 ‘1㎜ 단비’가 가져온 결과는 기적에 가깝다. 다만, 피해면적이 워낙 넓기때문에 지역에 따라 당분간 산불이 일부 재발화할 수 있다.
날씨가 ‘주연’이었다면 ‘조연’은 산불 진화에 헌신을 다한 산림청·지자체 소속 진화대원들과 소방청 소속 소방관들이었다. 하루 1시간도 제대로 못자는 강행군을 펼치면서도 끝까지 최전선에서 진화에 나섰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피난도 마다하고 남은 각 지역 주민들, 갈퀴와 물펌프를 지고 산에 오른 지자체 공무원들, 전국 각지에서 달려와준 자원봉사자와 시민들 모두 산불 진화의 조력자들이었다.
경북 지역을 할퀸 이번 산불은 1주일 간 총 4만5157ha(산불영향권역 추정치)를 태우고 사그라졌다. 서울 전체 면적의 절반을 훌쩍 넘는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전 최대 규모였던 2000년 동해안산불의 피해면적(약 2만3000ha)의 갑절에 달한다. 경북 지역 사망자만 24명, 산청 산불 사망자(4명)까지 더하면 역대 최악의 인명피해를 냈다. 산불로 대피한 경북 지역 주민 수만 3만3000명에 달하고, 주택 약 3000채가 전소되는 등 수많은 이재민과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산불 진화는 끝났지만 산불이 이렇게까지 확산된 원인과 배경, 문제점 등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많은 소방전문가들은 산불 초기 대처 및 진화에 실패한 점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을 초기 사나흘간 제압하지 못하면서 결국 안동, 청송, 영양, 영덕에 이르기까지 경북을 동쪽으로 횡단해 급속히 산불이 번졌다. 일각에서는 대응 초기 산림당국과 소방당국간 원활한 협조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족한 산불진화 인프라 문제도 되돌아봐야 한다.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진화 헬기는 모두 50대다. 이 중 담수량 8000ℓ의 대형헬기인 S64는 7대에 불과하다. 이어 담수량 3000ℓ의 KA-32(카모프) 29대, 2000ℓ의 KUH-1(수리온) 3대 등이다. 나머지 11대는 담수량 600~800ℓ의 소형이다.
주력 기종인 KA-32 헬기 중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을 교체하지 못해 지난해 상반기부터 운용이 중단됐다. 가뜩이나 헬기 수도 부족한 상황에서 전국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일자 현장에 투입가능한 헬기 수가 분산됐고, 결국 ‘중과부적’으로 산불 확산을 막지 못했다.
경북도의 산림면적은 134만ha로 강원도(137만ha)와 비슷하면서도 ‘비상소화장치’는 경북도가 강원도의 25% 수준에도 못미치는 등 전반적으로 산불 진화 인프라가 부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 산불 발생 시 투입되는 ‘예방진화대원’의 경우 이번 산불을 통해 고령화 문제와 부실한 운용 실태가 드러났다. 실제 산청에서는 진화대원 3명이 불길에 고립돼 숨지는 등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우리 산림의 주요 수종이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라는 지적도 고민해봐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산불 위기관리·대응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경북 산불 사망자의 대부분이 60~80대 노인층으로 재난에 취약한 계층이다. 정부 지자체는 재난문자를 통해 실시간 산불 확산을 전파하고 대피를 안내했지만, 알아서 대피하라는 식의 문자 메시지로는 인명을 구할 수 없음이 확인됐다. 사망자 태반이 집이나 피난길에 산불을 만나 소사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정부차원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산불발생 초기 국가재난사태, 특별재난지역 등을 잇달아 선포하고도 산불 확산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오도창 영양군수가 이날 정부와 경북도를 향해 “사흘간 헬기 지원을 못받았다. 영양이 불타고 있다. 도와달라”고 공개 호소한 것은 정부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극명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중대본은 각 지역 산불 진화율이나 피해현황 등 기초적인 통계조차 제대로 집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해지역 주민들에 대한 지자체 차원의 현금 지원 등 구체적인 지원책도 산불 발생 1주일 가량이 되어서야 나왔다.
결국 산불이 돌이킬 수 없게 커진 뒤인 지난 27일에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피해 현장에 상주하며 대응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지자체들은 ‘각자도생’식으로 확산과 대피를 안내했고, 구호소나 대피소의 여건이나 환경도 제각각 달리 운영되는 등 위기관리에 한계를 드러냈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5260
동아일보 “이재민 앞 재난 예비비 공방 얼마나 공허한가”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2025.03.30 11:36)
[아침신문 솎아보기] 신문들 “산불 피해 지역 복구 지원 대책 서둘러야”
한국일보 “역대 최악 인명 피해, 여야는 숫자 싸움”
싱크홀 경고 무시한 서울시…동아일보 “사전 경고 5번도 더 뭉개”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해 동해안 해변까지 번진 역대 최악의 산불이 가까스로 진화된 가운데, 경남 산청에서 발생한 산불은 마지막 남은 화선인 지리산 권역에 대한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신문들은 피해 지역을 복구할 지원 대책과 유사 사태를 막을 재발 방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산림청은 지난 28일 오후 5시 경북 산불의 주불이 진화됐다고 밝혔다. 22일 오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묘소에서 성묘객 실화로 발생한 화마는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5개 지역에서 확산하며 4만5157ha(산불영향구역)을 삼켰다. 이는 축구장 6만3245개 면적으로 기존 역대 최대 피해로 기록됐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2배 규모이며 인명 및 재산 피해도 막대했다. 앞서 지난 21일 시작된 경남 산청 산불은 10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산림당국은 마지막 남은 화선인 지리산 권역에 대한 진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0일 오전 8시까지 진화율은 전날 오후 6시 기준과 마찬가지로 99% 수준이다.
피해 지역을 복구할 지원 대책과 재발 방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산불은 인간의 힘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 ‘자연의 재해’였지만, 동시에 주의와 준비가 철저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인간의 재해’이기도 했다”며 “소각과 화기 소지를 엄금하는 예방책, 대형 헬기 등 장비의 대폭적 보강, 진화 인력 확충 및 전문성 강화, 화재를 키우는 침엽수 위주의 식목 탈피, 임도 확대 등 인프라 개선, 산간 지역 고령자 대피를 위한 사전 준비 등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 산불이 얼마나 큰 재난인지를 확인한 만큼, 이 대책을 실현하는 데 국가적 역량을 아껴선 안 된다”고 했다.
국민일보도 산불 대응 시스템을 다시 짜야한다고 당부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장비와 인력 확충이 우선이다. 이번 산불 진화 과정에서 추락한 헬기는 30년 된 노후 기종이었고, 조종사는 73세였다. 장비와 인력의 노후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산불 진화의 핵심은 헬기인데 이번에 동원된 헬기 대부분은 담수량 1000~2700ℓ 규모의 중소형 기종이다. 그러나 작은 헬기로는 역부족이다. 초동진화용 2만~3만ℓ이상의 대형 헬기를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아울러 “지금처럼 지역 고령층을 임시로 고용한 산불진화대원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 산불특수진화대원을 늘리고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 헬기가 못 뜨는 야간에는 소방차량이 다닐 수 있는 임도(차량용 산길)가 필요하다”며 “임도가 있으면 진화 효율이 5배 늘어난다니 이를 최대한 늘려야 할 것이다. 2022년 경북 울진 산불 때 금강송 군락지를 지켜낼 수 있었던 건 임도 덕분이었다. 대피 과정에서 발송된 재난 문자는 고령층에겐 실효성이 적은 것으로 파악된 만큼, 이들을 위한 대피 시스템도 보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러한 가운데 여야는 ‘산불 예산’ 규모를 두고 숫자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산불 대응에 쓸 수 있는 예산이 4조8270억 원이라고, 국민의힘은 6000억 원이라고 주장하며 서로 거짓말을 한다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관련해 한국일보는 사설을 내고 “일주일 넘게 이어진 산불로 역대 최악의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는데, 여야는 숫자 싸움이나 하고 있다. 피해 수습과 복구 과정에서 예산이 부족하다면 추경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을 늘리면 될 일”이라며 “재난 대응에 쓰는 예산은 그 쓰임과 편성 원칙에 따라 본예산에도 예비비에도 담길 수 있다. 기준에 맞춰 늘릴 항목을 정하면 된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민주당은 재난 예비비 복원 추경은 절대 불가하다고 고집할 일이 아니다. 국민의힘도 예비비만 2조 원 늘리는 원포인트 추경으로 야당을 자극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며 “여당 일방 추진으로 야권이 다수 의석인 국회 문턱을 어떻게 넘겠다는 건가. 게다가 야당 지적대로 지난 수년간 재난 대응에 쓸 목적 예비비로 수조 원을 편성해 놓고 대부분을 쓰지도 않고 남기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또 한국일보는 “초대형 산불이 잦아질 것을 대비해 대형 소방헬기 추가 도입 같은 대응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됐는데, 대부분 제자리걸음”이라며 “정쟁 탓에 피해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차질이 벌어진다면 그 책임은 여야 모두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집도, 가재도구도 다 타버리고 더 잃을 것도 없는 이재민들을 자원봉사자들이 돕고 있다. ‘남 일 같지 않아서’ ‘내 부모님 같아서’ 달려온 이웃들이 독한 산불 연기를 뒤집어쓴 채 식사를 챙기고 잠자리를 돌본다”며 “그 덕분에 기운을 차린 이재민들이 검게 타버린 밭으로 나가 둘러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오랜 시간 가꿔온 것들을 한순간에 잃고도 서로 손 잡아주며 다시 일어설 채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절감한다. 여야가 벌이는 ‘재난 예비비’ 공방이 얼마나 공허한가를”이라며 “남을 돕다 노모 잃고도 누굴 원망 않고 자책하는 아들의 눈물은 우리 모두가 닦아줘야 한다”고 했다.
싱크홀 경고 무시한 서울시…동아일보 “사전 경고 5번도 더 뭉개”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땅꺼짐(싱크홀) 사고와 관련해 서울시가 전문가들의 사전 경고를 묵살하거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2021년 한국터널환경학회는 서울시에 사고 장소 인근에서 9호선 연장 공사 등으로 인해 지반침하가 우려된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현장 점검은 제대로 지뤄지지 않았다. 2023년 서울시에 제출된 9호선 연장 안전영향평가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지하철 건설 및 운영이 지하 공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근 단층대를 조사해 연약 지반임을 확인했고, ‘땅꺼짐 위험도’를 4단계 ‘위험’으로 분류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착공 후 지반 침하 위험 파악을 위한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동아일보 관련해 <“피할 수 없는 사고는 없다”… ‘싱크홀’ 사전경고 5번도 더 뭉갰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고 “사고를 막을 기회는 최근에도 있었다. 지하철 공사에 참여했던 관계자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붕괴 우려 민원을 제기했지만 서울시는 ‘이상 없다’며 일축했다”며 “이달 인근에서 바닥 균열 민원 등이 접수됐을 때는 직접 현장에 가지도 않았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모든 사고에는 사전 경고나 전조 증상이 있다. 이번 사고 역시 위험신호가 여러 차례 울렸지만 서울시는 듣지 않았다”며 “이 같은 공무원들의 태만이 쌓여 귀중한 생명이 희생됐고, 시민들은 발밑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고 했다.
https://www.hani.co.kr/arti/area/gangwon/1189656.html
이 불난리를 겪고도…산불 위험에도 ‘불법 소각’ 여전 (한겨레, 박수혁 천경석 기자, 2025-03-30 16:31)
지난 29일 아침 7시 전북 완주군 삼례읍. 아침운동을 나온 임승기(63) 완주군 산불예방진화대장이 연기가 나는 것을 발견하고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ㄱ(74)씨가 영농부산물인 깻대를 태우고 있었다. 임 대장은 불부터 끈 뒤 ㄱ씨의 인적사항을 확인하고 경고 처리했다.
임 대장은 “평일에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순찰을 하고, 최근에는 야간에도 대응조가 편성돼 순찰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진화팀 출·퇴근 시간을 알고 있어 이른 새벽이나 밤늦게 소각한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고, 영세한 분들이다 보니 매정하게 과태료를 부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남에서 난 초대형 산불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영농 부산물 불법 소각은 여전하다.
30일 오전 둘러본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에서도 밭 곳곳에 여러 차례 불을 피운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산불 조심 기간을 맞아 감시 인력들이 마을 곳곳을 순찰하고 있지만 빈틈을 노려 영농 부산물 등을 불법 소각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춘천시청 불법소각 단속반 지정훈 주무관은 “요즘은 농촌에 사는 어르신들도 영농 부산물 소각이 불법이라는 건 다 안다. 하지만 ‘내가 이거 좀 태운다고 산불로 번지겠어?’라는 안전불감증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단속에 걸리지 않게 연기가 보이지 않는 일몰 후에 태우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했다. 이 탓에 춘천시청 불법소각 단속반은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현장 단속 시간을 확대하는 등 단속인력과 불법 소각 농민 사이의 숨바꼭질이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영농 부산물 수거 등 지자체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관련법상 영농 부산물은 ‘폐기물’로 분류돼 종량제 봉투에 담아 분리 배출해야 하는데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대 농민은 “비닐하우스 10동에서 발생한 영농 부산물을 모아 놓으면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커다란 종량제 봉투를 준비해도 뿌리와 줄기 등을 넣다 보면 비닐이 다 찢어질 것이고, 가뜩이나 바쁜 영농 준비철에 부산물을 봉투에 넣을 인력도 없다. 불법인 건 알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태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태우지 말라고만 하지 말고 영농 폐비닐처럼 지역마다 마을공동집하장을 만들어 영농 부산물을 수거하는 시스템부터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산림청이 계절별 산불 발생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연평균 산불 건수 546건 가운데 303건(56%)이 봄철에 집중됐다. 주요 원인은 입산자 실화가 171건(31%)으로 가장 많지만, 쓰레기 소각 68건(13%)과 논·밭두렁 소각 60건(11%)이 바로 뒤를 이었다. 전체 산불 중 24%는 농민 부주의가 산불로 이어진 경우인 셈이다.
한편, 경북 산불의 최초 발화 혐의를 받는 50대가 이날 경찰에 입건됐다. 경북경찰청은 지난 22일 오전 11시24분께 경북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한 야산에서 불이 나게 한 혐의(산림보호법 위반)로 ㄴ(56)씨를 지난 29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302057005
75명 사상·주택 3379채 전소…역대 최악 ‘산불 참사’ (경향, 주영재 기자, 2025.03.30 20:57)
열흘 만에 진화 완료…복구 돌입
보물 2건 등 국가유산 30건 소실
서울 면적의 80% 산천이 쑥대밭
지난 21일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을 시작으로 경남·경북 지역을 휩쓴 산불이 발생 열흘 만에 꺼졌다. 이번 산불은 사망자 30명을 포함해 75명의 인명 피해를 낳은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30일 오후 1시 기준 최종 집계해 발표한 영남 지역 산불영향구역은 4만8106㏊에 달했다. 서울 면적의 80%에 육박하는 크기이다.
의성군에서 시작해 안동시와 영덕·영양·청송군을 휩쓴 산불은 지난 28일 오후 5시 무렵 진화가 완료됐다. 산청 산불은 30일 오후 1시 지리산 외곽 200m에 걸쳐 있던 마지막 남은 화선이 진화됐다. 21일 오후 3시26분쯤 산청 시천면 한 야산에서 불이 난 지 213시간 만이다.
산림당국은 이날 일출과 동시에 헬기 50대, 인력 1473명, 차량 213대를 동원해 진화에 나섰다.
경북 청송 지역에 최대 순간풍속 6m, 산청·하동 지역에 2.5m의 강한 바람이 불었지만, 이전보다는 강도가 약했다.
지금까지 영남 지역 산불로 30명이 숨지고 중상 9명 등 45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의성·안동 산불이 발생한 경북 지역에서 사망자 26명을 포함해 59명이 피해를 입었다. 산불진화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이 숨진 경남 지역에서는 14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울산에서도 2명이 다쳤다.
시설 피해도 역대 최대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대본 잠정 집계로 전국에서 총 6322곳이 피해를 봤다. 주택 3379채가 전소됐고, 비닐하우스·축사 등 시설물 2120곳이 피해를 입었다.
문화재 피해도 크다. 천년고찰인 의성 고운사의 보물 연수전과 가운루가 불탔다. 영양 답곡리 마을을 지켜주던 만지송도 검게 그을렸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번 영남 지역 산불로 피해를 본 국가유산은 총 30건이다. 보물 2건과 천연기념물 3건 등 국가지정문화재 11건과 시도지정문화재 19건이다.
산불 진화가 완료되면서 정부와 지자체는 본격적인 피해 조사와 복구 작업에 돌입했다. 정부는 산불 피해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며, 복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추진도 공식화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3302101025
컨트롤타워 부재·장비 부족…초기 진화부터 ‘총체적 부실’ (경향, 이종섭 기자, 2025.03.30 21:01)
중대본·산림청, 나흘 넘게 산불영향구역 파악도 못해
대피 안내 방향으로 30분 만에 번져…자력 탈출 중 숨져
지자체장들 “대형 산불 진화 장비 등 인프라 보강해야”
영남지역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산불 대응체계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역대 최대 피해를 남긴 이번 산불은 허술한 재난 대응 시스템 탓에 초동대응부터 실패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북 의성군에서 지난 22일 시작된 산불은 인근 4개 시군으로 확산됐다. 산불이 확산되기 좋은 기상여건이 산불 장기화에 영향을 미쳤다. 산불은 25일 강풍을 타고 시속 8.2㎞ 속도로 주변 지역에 퍼져나갔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번지는 산불은 초기 진화 단계에서 실패했다. 의성의 첫날 진화율은 6%에 그쳤다. 전날 발생한 경남 산청군 산불과 함께 21~22일 전국에서 30건이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경북지역 산불 앞에 정부와 산림당국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와 산림청은 산불이 동시다발로 확산된 25일 산불영향구역에 대해 제대로 된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25~26일엔 집계자료도 나오지 않았다. 산림청은 강한 바람 등으로 진화대원들이 모두 철수했고 열화상 드론을 띄우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이유를 댔지만, 산림당국이 보유한 장비와 인력이 대형 산불 앞에서 역부족이란 뜻이었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주민 안전 확보에 한계를 보였다. 지자체가 대피하라고 안내한 방향으로 불이 30분 만에 번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력으로 대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나이 많은 주민들이 주로 희생됐다. 재난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재난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해 각 지자체가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 주민 혼란만 가중시킨 셈이기 때문이다.
산불 피해를 입은 지자체에서는 대형 산불 진화 장비 및 인프라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많을 때는 헬기가 90대 가까이 왔지만 담수 용량 1000ℓ 미만이 70%라 공중에서 물을 쏘면 다 흩어지고 없었다”며 “그나마도 밤에는 헬기를 띄울 수 없고, 아침에는 연기나 안개로, 낮에는 바람 때문에 헬기가 뜨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제는 산불 대응체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며 “외국처럼 수송기를 동원하는 등 적어도 몇만ℓ씩 물을 담아 초기에 불을 끌 수 있는 장비와 야간에도 뜰 수 있는 헬기나 진화 장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산불 진화에 동원된 헬기는 최대 120대가 전부였다. 산림청이 보유한 진화헬기는 50대로, 이 중 담수 용량이 8000ℓ인 대형 헬기는 단 7대다. 주력 기종은 러시아산 3000ℓ급 카모프 헬기로, 29대 중 8대가 부품 수급 문제 때문에 운영되지 않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도 경직된 화재 진압 절차 완화와 충분한 장비 구축을 요구했다. 박 지사는 “이번 산불 진압 과정에서 민간헬기 이착륙 시 정부 허가 문제로 헬기 동원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며 “특별재난지역 등 특수 상황에서는 정부 허가 없이도 민간헬기 이륙이 가능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화재 진압에 산림청 특수진화대가 많은 역할을 했다. 정부는 지자체 광역산불전문예방진화대에도 충분한 장비 및 시설을 지원해줄 것을 건의한다”고 말했다.
박 지사는 “산불 진화 과정에서 주간에 불을 끄면 야간에 재발화하는 상황이 되풀이됐다”며 “야간 산불 진화를 위한 열화상 드론, 이동형 고출력 LED 조명, 휴대용 서치라이트 등 전문 장비가 보강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산불 진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3015490001694?did=NA
기후변화에 '괴물 산불' 예상해 대책 세웠지만...속절없이 당했다 (한국일보, 세종= 정민승 기자, 2025.03.30 21:00)
헬기 90대 확보(2017년)→ 현재 50대
2027년 임도 3207km(2023년)→851㎞
특수진화대 980명(2017년)→390명
산림당국이 열흘 가까이 영남지방을 태운 대형 산불 같은 대규모 산림 재난을 사전에 예상하고도 충분히 대처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의 연중화, 대형화에 대비하기 위해 산불 대응체계 강화 계획을 세웠지만 현재까지 이행률은 낙제점에 가깝다.
30일 산림청이 올해 초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17개 시도 등 산불 유관기관에 보고한 '2025년도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구축이 완료된 산불 진화 임도(숲길)는 총 851km로 당초 계획한 임도 확충 규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산림청은 2023년 3월 산불 진화 임도 구축 계획 발표 당시 332km에 불과한 임도를 매년 500~700km씩 늘려 5년 뒤인 2027년에 3,207㎞로 확충하기로 했다. 대형 산불 발생 시 헬기가 뜰 수 없는 야간 진화를 위해서는 임도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산불 현장에서 임도의 중요성은 이번 영남 산불로 또 한 번 드러났다.
대형 산불에 대비하기 위해 임도 10배를 늘리기로 한 계획은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산림청은 올해 500㎞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지만 2년 뒤 3,207㎞ 구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산림청 관계자는 "임도가 바람길, 불길이 된다며 일부 산주의 반대가 심했고 건설비도 1㎞당 3억 원으로 비싸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불 진화의 핵심 기반이 되기 때문에 밀어붙여 2년 사이 500㎞가량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 진화의 핵심 전력인 헬기 확충 이행률도 저조하다. 2017년 계획 수립 당시 동시 다발·대형·재난성 산불이 증가하면서 효과적인 진화를 위해 산불 전용 헬기 90대 확보를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산불 때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 진화헬기는 50대에 그쳤다. 그중 8대는 부품 수급이 막힌 러시아제라 출동 가능한 헬기는 더 적은 42대였다. 2017년에 산불 진화헬기는 45대로, 대수로만 놓고 보면 오히려 역성장한 것이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환경연구부장은 "기후변화로 산불의 파괴력이 치솟고 있는 만큼 대응 역량도 급상승해야 하지만 현실이 따르지 못한 셈"이라고 말했다. 헬기의 경우 계약 후 제작돼 현장 도입까지 3년 이상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안일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더 문제는 산림청 등 재난당국이 기후변화에 따라 대형화·연중화하는 산불의 가공할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는 데 있다. 매년 초 발간되는 '산불방지 종합대책'을 보면, 한 해도 빠짐없이 기후변화와 함께 산불이 대형화·상시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깔고 각종 계획을 수립했다.
이규태 한국산불방지기술협회장은 "연평균 대형 산불은 2010년대 연 1.3건에서 2020년대 들어 4.8건으로 늘었고, 피해 면적은 857ha에서 6,270ha로 3.7배나 증가했다"며 "특히 2022년에는 11건이나 발생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남성현 전 산림청장은 "대규모 산불이 늘어나는 원인과 그에 대한 소각 금지, 헬기 확보, 임도 확충 등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대응책도 모두 나와 있다"며 "관건은 그 대책을 실행하는 것인데, 환경단체의 반대, 예산 당국의 비협조 등으로 이행이 안 되니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https://www.rapport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333
[시민건강논평] 산불 재난이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라포르시안, 시민건강연구소, 2025.03.31 08:05)
영남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열흘 넘게 이어지며 큰 피해를 낳았다. 30일 오전 9시 기준으로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중 30명이 사망하였다. 현재 주불은 모두 잡혔지만, 계속 불어오는 강한 바람 탓에 잔불이 재발화될 위험이 아직 남아있는 상황이다. 황망하게 생을 마감한 분들을 깊이 애도하며, 하루 속히 산불이 완전히 진화되어 더 이상 안타까운 희생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 산불 피해는 역대 최대 규모로, 약 5만 헥타르의 산림이 훼손됐고 전소된 주택도 3천채에 이른다. 갑자기 더워진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불면서 산불 확산 속도가 매우 빨랐기 때문이다. 이밖에 산불 진화 인력과 헬기를 비롯한 장비 부족, 뒤늦은 대피 경보, 소나무 위주의 조림 등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산불 재난 대응 체계를 철저하게 점검하고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듯, 기후변화로 인해 앞으로 이런 대형 산불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번 산불 역시 극단적 기후 변동에 따라 가뭄, 홍수, 산불이 번갈아 나타나는 ‘기후 채찍질’ 현상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산불 재난의 위험에 맞서기 위해서는 여러 층위의 접근이 필요하다. 관련 예산 확충과 인력·장비 보강, 대응 매뉴얼 재정비와 감시·대응 시스템의 기술적 정교화, 불에 강한 활엽수 중심의 내화수림대 조성을 통한 자연 방화선 구축 등 현재 많이 거론되는 대안들을 포괄하면서도, 동시에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정책 기조의 대전환도 함께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우리는 산불 예방과 대피, 복구, 회복 등 모든 대응 과정에서 건강 불평등이 중요한 문제로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재난이 그렇듯 산불에 있어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더 큰 건강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특히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은 산불 위협에 가장 취약한 집단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장애계는 성명을 통해 “산불 속에서 기적처럼 발견되어야만 살아남는” 장애인의 현실을 규탄하며, 재난 대피에 취약한 장애인을 위한 즉각적인 대책 마련으로, 대피소 거주자를 위한 구체적 지원계획과 의료 지원 대책, 장애인 재난대응 매뉴얼 수립 등을 촉구하였다(☞관련자료: 바로가기 ).
특히 이번 산불의 사상자 대부분은 중고령자였다. 산불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들이 고령화율이 높은 지역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사각지대에 방치된 고령 1인 가구를 신속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체계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아울러 임시 대피소에 머무는 동안에도 적절한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산불 재난이 유발한 건강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화상과 같은 직접 피해 외에도 산불은 연기 흡입을 통해 호흡기 건강을 악화시킨다. 또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 불안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몇년간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던 미국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를 보면, 산불에 노출된 고령 집단에서 천식과 정신건강 문제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자연과학 분야에서 재난 취약성은 노출과 민감도, 적응능력의 함수로 정의된다. 노인과 어린이, 임산부, 기저 질환자 등은 동일한 연기량에 노출되더라도 민감도가 높고 적응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건강 피해가 크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이들도 이러한 고위험 집단에 포함되는데, 그 까닭은 노출을 줄일 수 있는 수단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 연기에 더 많이 노출되거나, 또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관련자료: 바로가기). 국외 연구에 따르면, 산불로 인한 대기 질 악화가 실내 오염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지는데, 저소득층 거주 구역에서 더 크게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연구진은 이를 공기청정기 구입과 같은 방어적 투자 능력의 차이로 설명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공간 분석을 통해 여성과 비영어권자, 유색인종 등 사회적 소외집단이 거주하는 구역이 산불 영향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 즉,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일수록 산불 대비와 피해 복구에 필요한 자원과 정치적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짐작컨대 이번 영남 산불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좁게는, 피해 지역 내 노인과 비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격차, 넓게는 도시와 비도시,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간의 격차가 산불 재난에 따른 건강 피해의 격차로 ‘발현’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권력의 격차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그곳에서 선주민과 함께 머물고 있던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제때 대피 안내를 잘 받았는지, 이재민을 위한 지원에서 소외되고 있지 않은지, 건강 문제가 발생했다면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되면 이재민에게 일정기간 의료급여 수급 자격이 부여된다. 이러한 지원은 한국 국적자와 더불어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에게 제공된다. 이는 곧 미등록 체류자는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들도 똑같이 산불로 고통을 겪었음에도 말이다.
건강 불평등을 줄이고자 한다면 산불 재난의 취약성이 가진 이러한 교차성의 문제를 섬세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https://www.hani.co.kr/arti/area/capital/1189710.html
매년 산불 덩치 커지는데…진화대 95%는 비전문 인력인 현실 (한겨레, 이준희 기자, 2025-03-31 06:00)
최악 산불 무방비 한국
(1) 후진적 진화시스템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등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이 30일 마침내 모두 꺼졌다. 피해 면적은 서울의 약 80%에 해당하는 4만8238㏊에 이르고, 인명 피해도 사망 30명, 부상 45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산청 산불은 주불 진화까지 213시간34분이나 걸렸다. 이번 산불은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대형 살수 헬기 부재, 낡은 장비, 고령의 진화 인력 등 진화 시스템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또 시골 마을 고령층과 농촌 취약계층이 큰 피해를 보게 돼 지역 불균형 문제도 노출했다. 한겨레는 기획 시리즈로 이번 산불이 준 교훈을 짚어보고 대책을 모색해본다.
경북 의성에서 강풍을 타고 넘어온 산불을 마주한 오도창 영양군수는 사흘 만인 지난 28일 긴급호소문을 냈다. 오 군수는 “산불 진화에 가용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했으나 역부족”이라며 “사흘 동안 기상 악화로 헬기가 전혀 지원이 안 됐다”고 했다. 오 군수는 군민들에게 “불 끄기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대부분이 70∼80대인 영양 주민 중 2천여명이 등짐 펌프를 메고 잔불 정리에 나서거나 자원봉사에 동참했다. 인구 1만5271명의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벌인 사투였다.
영양군은 전날인 27일 임차 보유 중이던 진화헬기 1대를 임차 업체 소속 조종사와 함께 현장에 투입했다. 그러나 연기가 시야를 가리면서 진화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이 헬기는 26일 의성군 신평면에서 추락사고가 난 기종(S76)과 같은 기종으로, 30년 전 생산됐다. 산불과 사투를 벌인 지자체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산림 당국 등은 산불이 경북 북부 전체로 확산하기 시작하자 매일 인력 5천여명과 헬기 80여대 등을 현장에 투입했다. 이들은 산불 현장에서 목숨을 건 진화 작업을 벌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초대형 화마 앞에서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체계는 총체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경북 곳곳에서 산불과 맞선 평균 나이 61살의 산불예방진화대원들은 매일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내리 일했다. 산을 오르내리는 시간과 식사 시간 등을 제외해도 하루 8시간가량 직접 불과 사투를 벌였다. 산불진화대는 각 10명으로 구성된 4개 팀이 교대로 이런 진화 작업에 투입됐다.
산불진화대는 크게 산불특수진화대, 산불예방진화대, 공중진화대로 나뉜다. 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불예방진화대는 6개월~1년 계약을 체결한 기간제다. 전문적인 직무 교육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주로 산불 예방과 잔불 정리 작업을 맡지만, 이번 산불처럼 대형 산불에는 진화에 직접 투입된다. 지난 22일 경남 산청에서는 창녕군청 소속 예방진화대원 3명이 작업 도중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이런 위험한 업무를 맡는 건 국내 산불진화대의 인력 현실 때문이다. 2024년 기준 전체 산불진화대(1만143명) 중 산불예방진화대는 95%인 9604명에 이른다. 한 60대 산불진화대원은 “영농기엔 농사를 짓고,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초봄에 진화대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반면 전문인력인 산불특수진화대(공무직)는 435명, 공중진화대(공무원)는 104명이다. 특히 평균 나이 41살로 비교적 젊은데다 진화가 어려운 높은 산지 등에 투입하는 특수진화대는 2019년에야 정식 출범했지만 부족한 예산 탓에 저임금에 시달렸고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열악한 장비는 산불 진화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한국은 산악지형이 많아 고성능 장비를 이용한 맞춤형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야간에는 헬기 운용이 어려워 지상에서 이를 메워줘야 한다. 그런데 기존 산불진화차량(800~1200리터)보다 물탱크가 3배 이상 크고 험로 주행이 용이해 ‘야간진화헬기’로 불리는 고성능 산불진화차량(3600리터)은 2024년 기준 29대로 전체 산불진화차(1438대)의 2%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이번 산불 때 지상 방어선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공중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은 산불의 헬기 진화율이 80%에 이를 만큼 헬기 운용이 산불 진화에서 핵심이다. 하지만 이번 산불 때 산림청 보유 헬기 50대 가운데 35대만 현장에 투입됐다. 러시아제 8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부품 수입이 끊겨 운용이 불가능했고, 7대는 1980~90년대 도입한 600리터급 소형 헬기라서 대형 산불 현장에 투입할 수 없었다.
이런 인력과 장비 문제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지적됐다. 문제는 예산이다. 산림청은 2023년 ‘산불 백서’에서 야간 산불 대응력 등을 키우기 위해 2027년까지 산불특수진화대와 공중진화대를 2500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또 담수량 5천리터 이상 대형 헬기를 확충하고, 12개 산림항공권역당 최소 대형 헬기 2대 이상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산불특수진화대 등은 전혀 인력 충원이 없었다. 헬기 충원은 중형 헬기 2대에 그쳤다. 2023년 강릉 산불 뒤 예산 80억원을 투입해 담수 용량이 크고 기상 영향을 덜 받는데다 야간에도 운용이 가능한 ‘고정익 항공기’ 도입을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예산 문제로 무산됐다.
산불 진화 체계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산불은 대형화·연중화하고 있다. 산림청 자료를 보면, 봄에 주기적으로 비가 내려 산불 발생이 적었던 2024년을 제외하고 2017년부터 해마다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또 겨울이 건조하고 따뜻해지면서 12월과 1월 평균 산불 발생 건수가 1990년대 38건에서 최근 5년 동안에만 75건으로 두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1991년부터 2015년까지 발생한 1만560건의 산불 위치정보를 토대로 산림청이 만든 산불다발지역 지도는 서울, 인천, 부산, 대전, 대구 등과 같은 인구 밀집 지역에 산불 위험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갈수록 대형 인명 피해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커지는 산불 위험에 대응할 체계를 만들기 위한 예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류주열 연구사는 “정부와 국회가 산불 진화 예산을 충분히 확보해 첨단 장비를 도입해야 한다”며 “특수진화대원의 경우도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하기보다는 안정적인 고용 확보와 업무영역 확장을 통해 지상진화력을 증대해야 한다”고 했다.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40727
[박상욱의 기후 1.5] 예견됐던 대형산불, 원인은 이번에도 '인간' (JTBC, 박상욱 기자, 2025.03.31 08:00)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81)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형산불로 30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쳤습니다. 여의도 면적의 166배에 달하는 4만 8,238.6ha가 불탔고, 여전히 곳곳에선 잔불 정리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직접적인 피해뿐 아니라, 어린이집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인근 지역의 학사일정이 조정되는 등 간접적인 영향에 이르기까지. 산불은 영남지방 일대에 피해를 입혔습니다. 갑작스러운 산불이었지만, 그 위험은 실제 산불 발생에 앞서 경고됐습니다.
연말연시, 부족한 강수로 전국은 메말라갔습니다. 2024년 12월 2일~2025년 1월 1일 사이, 전국의 누적 강수량은 고작 6.2mm로 평년의 20.3%에 그쳤습니다. 특히, 남부지방의 경우, 평년의 16.9% 수준의 강수를 기록했는데, 부산·울산·경상남도는 이 기간 0.1mm의 누적 강수량으로 평년의 0.6%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대구, 경상북도 또한 3.1mm로 평년의 12.7% 수준이었죠. 평년과의 비교가 무색할 만큼, 강수 자체가 거의 없던 셈입니다.
상황은 1월이 되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1월 2일~2월 1일 사이, 충남과 호남을 중심으론 많은 눈·비에 평년보다 더 많은 강수가 기록됐지만, 영남 일대의 강수는 여전히 평년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구·경북 53.6%, 부·울·경 59.1%로 전국에서 가장 강수가 부족한 상태가 이어졌죠.
이후 2월 2일~3월 1일, 다시금 전국이 메말라갔습니다. 전국적으로 이 기간 내린 강수는 평년의 3분의 1 수준보다 적었고, 이번엔 중부지방의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강원도는 평년의 6.3%, 수도권도 22.8% 수준의 강수만 기록됐을 뿐입니다. 영남 지역 역시, 대구·경북은 평년의 18.3%, 부·울·경은 29.4%의 강수량을 기록하며 메마른 상태는 계속됐습니다.
이윽고 3월에 접어들자, 중부지방은 오랜만에 평년보다 더 많은 강수가 기록됐습니다. 때늦은 폭설 덕분입니다. 그럼에도 전국적으론 산불 발생 첫날인 3월 21일 기준, 2주간의 강수량은 평년의 41.3%에 그쳤고, 부·울·경 지역에 내린 강수는 평년의 18.2%, 대구·경북에 내린 강수는 평년의 33.1%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2024년 12월 22일부터 지난 3월 21일까지 석달간의 누적 강수로 보더라도, 이 기간 강수는 평년보다 부족했습니다. 3개월 누적 강수 기준, 부·울·경의 강수 평년비는 52.4%, 대구·경북의 강수 평년비는 64.4%로, 타 지역 대비 가장 적은 강수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동시다발 대형 산불의 시작점이었던 경남 산청의 경우, 강수 평년비는 45.5%에 그쳤고, 영천 42.8%, 안동 51.5% 등 산불 발생지역 모두, 산불의 실제 발화 이전부터 심각한 강수 부족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기간, 영남 지역에서 강수 평년비가 가장 낮았던 밀양(39.7%)이었습니다. 이곳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연말부터 메말라간 탓에, 이미 산청에 지난 21일 산불이 발생하기 전까지 전국에서 177건의 산불이 발생한 터였습니다. 2024년 연간 전체 발생 건수(279건)의 절반 이상에 달하는 63%가 발생했고, 그러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면적은 무려 162ha로, 2024년 연간 전체 피해 면적인 132ha를 이미 넘어섰던 상태였죠. 이미 대형 산불의 위험 신호가 켜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월 중순까지도 산불 위험은 전 국민의 관심사에 들지 못했습니다. 때 늦은 폭설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고, 많은 언론 역시 폭설의 피해와 폭설의 이유를 찾는 데에 집중하면서, 건조한 현실에 대한 인식은 점차 떨어지게 된 것이죠.
수십cm의 눈이 내렸는데, 며칠 만에 산불에 취약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눈과 비의 비율인 '수상당량비'를 통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눈은 얼음 결정이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고, 그 결정들 사이엔 공간이 존재합니다. 그 공간엔 공기가 들어가 있죠. 30cm나 쌓인 눈일지라도, 녹고 나면 불과 20~30mm의 '자박한 물'에 그치는 이유입니다. '가벼운 눈'이라고도 부르는 건설의 경우, 수상당량비는 15 가량으로 30cm의 건설은 20mm의 비 수준에 그칩니다. 눈 예보 때에 우리의 걱정을 키우는 '무거운 눈', 이른바 습설의 경우엔 수상당량비가 10 안팎으로 더 낮지만, 30cm의 습설도 결국 30mm의 비에 그칩니다.
그나마 눈이 내린 이후 한파가 이어져 온 동네가 눈에 뒤덮인 상태였다면, 그 위로 건조한 바람이 불더라도 지면에서 화재가 퍼지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폭설이 지난 직후 전국엔 갑작스러운 '초여름 급' 날씨가 찾아왔고, 결국 지표면의 쌓인 눈은 금세 녹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계속된 포근한 날씨와 건조한 바람에 이 수분은 증발하고 말았고요.
이런 상황 속, 국립산림과학원은 2월 24일 산불 위험을 경고했습니다. “고온 건조한 강풍인 양간지풍이 불 거로 예측된다”며 “기온이 차차 오르며 등산객 증가와 농사 준비를 위한 소각행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후, 3월 20일 경남 북부와 울산에 건조주의보가 발효된 것을 시작으로, 건조특보는 빠르게 확대됐습니다. 기상청은 20일 새벽 4시에 발표된 통보문을 통해 “당분간 동쪽 지역을 중심으로 차차 대기가 건조해지고, 바람도 강하게 불 것”이라며 “작은 불씨가 큰불로 번질 수 있으니 산불 등 각종 화재예방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3월 21일 아침, 국립산림과학원은 다시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보도자료와 함께, “산불위험지수 분석 결과, 전국 대부분 지역이 '높음'으로 예측됐다”고 경고했습니다. 당시 국가 산불위험 예보시스템의 산불위험지수 분석 결과에 따르면, 경남 북부와 울산을 중심으로 산불위험이 높은 상태였습니다. “산림 인접지에서는 소각, 흡연, 취사 등 불씨 취급을 삼가야 한다”는 경고로부터 불과 몇 시간 후, 경남 산청군에선 이러한 '삼가할 행동'이 일어났고, 그렇게 걷잡을 수 없는 산불은 시작됐습니다.
계속해서 한반도로 유입된 건조한 바람은 산불 발생지역에선 더욱 건조해졌습니다. 산맥을 넘으며 안 그래도 건조했던 바람이 더 건조해진 겁니다. '양간지풍'이라는 이름으로 태백산맥의 동편에 부는 건조한 바람은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의무교육시절, 주관식 답으로도 자주 등장했던 '푄 현상'으로 바람이 산맥을 넘으며 고온 건조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태백산맥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이번엔 소백산맥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가뜩이나 건조했던 서풍 계열의 바람은 소백산맥을 오르며 그 공기의 온도가 높아지고, 습도는 낮아졌습니다. 그 결과, 산 너머 경남과 경북 지역엔 고온 건조한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그리고, 이 바람은 그저 온도가 높거나 건조하기만 한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세기 또한 매우 강했습니다. 강력한 하층제트가 한반도를 뒤덮으며 강풍이 찾아온 겁니다. 통상 하층제트는 장마철과 같이 강수를 동반하는 고온 다습한 성격의 강한 바람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바람의 방향이 남서풍보다는 서풍 또는 북서풍에 가까워지면서, 이 제트가 수증기를 머금기 어려웠고, 그 결과 고온 다습에서 '다습'이 빠진, 고온의 강한 바람이 되어버렸죠. 이번 산불 지역에선 순간최대풍속 20m/s를 넘는 태풍급 강풍이 불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산불 확산의 3요소로 ① 연료(탈 수 있는 물질), ② 지형(고도, 경사, 경사향, 지세 등), ③ 기상(바람, 습도, 온도, 강수 등)을 꼽습니다. 이미 건조해진 환경 속, 온갖 낙엽과 나뭇가지로 가득한 지표면에 바싹 마른 나무가 늘어선 이들 지역에 강한 바람과 경사의 조합이 만나면서 산불은 뜀박질하듯 산을 건너 뛰어가며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평지에서 아무런 바람이 불지 않을 때, 산불은 분당 19cm의 속도로 퍼집니다. 이 속도는 경사가 가팔라질수록 빨라져 30도 경사에서 분당 57cm로 빨라지죠. 여기에 바람이 더해지면 그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같은 평지라 해도, 6m/s의 바람이 불 때, 산불은 분당 3.79m의 속도로 퍼집니다. 6m/s라는, 아주 강한 바람이라고 보기 힘든 풍속임에도 경사가 더해지면, 확산 속도는 분당 4.8m(10도 경사), 8.57m(20도 경사), 15m(30도 경사)로 점차 빨라집니다.
이렇게 산불이 확산되는 과정은 그저 2차원적인 '수평 이동'만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씨는 하늘을 날아오르고, 하늘에서 강력한 바람을 만나 수km를 날아가기도 하죠. 바람을 타고 산비탈을 올라간 불길은 정상 부근에서 고열로 인해 발생한 강력한 상승기류를 만나 불씨를 날립니다. 그 불씨는 그럼 바람을 마주보는 다음 경사면으로 건나가 다시 불을 붙이게 되죠. 불길이 오르막을 올라갔다 다시 내리막을 타고 내려오기보다, 오르막을 오르고 다음 산의 오르막으로 건너뛰는 방식으로 확산하는 겁니다. 우리가 비화(飛火)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입니다. 이런 산불은 대체로 남향 또는 남서향에서 주로 발생하고, 북쪽 또는 북동쪽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이번 산불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산불은 우리 인간의 실수로 시작됩니다. 그 실수는 대체로 지표면에서의 화재를 일으키죠. 그렇게 시작된 지표화는 지표면 아래에 켜켜이 쌓인 썩은 유기물들을 태우는 지중화나 나무의 줄기로 확대되는 수간화로 발달하고, 이어 나무의 가지와 잎이 몰려있는 나무의 끝자락까지 타버리는 수관화로 이어집니다. 수관화로 산불이 발달하게 되면, 이 역시 화재의 높이가 가장 높아지는 만큼, 불씨는 더더욱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산불의 특성 탓에, 산불 진화는 '골든타임'이 매우 중요합니다. 발생 초기부터 실제 화세를 압도할 진화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이죠.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의 골든타임은 '산림헬기 신고 접수 후 50분', '지자체 임차헬기 기준, 30분'입니다. 초기에 얼마나 신속히 헬기가 투입돼 진화 작업을 시작하느냐가 핵심인 것이죠. 이 시간을 놓치면 바람과 경사의 조합으로 순식간에 수km씩 퍼져나가는 화선을 감당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인력과 장비가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기후변화로 산불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것은 이젠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가 됐지만, 이런 인력과 장비를 '실제 화세를 압도할 만큼' 보유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현실에선 '압도할 진화력'이 '예산 낭비'로 비판받기 일쑤입니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선 산불이 건수로나 피해면적으로나 늘고, 커진다 하더라도, 단기적 관점에선 늘었다 줄었다 반복하기 때문에, '충분한 능력'을 사전에 보유해놓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지난 2024년만 하더라도, 평소보다 산불의 건수도, 피해면적도 적었던 만큼, '인력도 장비도 늘려야 합니다'라는 목소리는 힘을 얻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요. 결국, 2025년 산림청의 전체 예산 규모는 2조 6,246억원으로 전년 대비 120억원 늘었음에도 산불과 관련한 예산은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산불방지대책 예산은 2024년 624억 3,400만원에서 올해 578억 6,900만원으로, 산림헬기의 도입 및 운영 예산은 1,123억 4,400만원에서 938억 5,800만원으로 줄었습니다.
본격적인 진화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과 초동 대응입니다. 애당초 산불이 발생하지 않도록 불법적인 소각 활동을 단속하고, 지역 내 지표면에서 불필요한 바이오매스를 제거하는 등 산림의 관리에 나서고, 그러한 활동을 취약시기엔 더욱 강화하고, 그럼에도 발생한 화재에 신속히 대응해 대형 산불로의 확대를 막는 것이죠. 이를 위해선 기초단체의 역량이 뒤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지자체는, 그 중에서도 '일선 현장'을 맡는 기초단체는 더더욱 인력난과 예산난, 장비난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나 중앙 정부 산하의 정부기관들도 이런 '만성 부족'을 겪기는 마찬가지이나, 그 부족함은 기초단체에 비할 바가 안 됩니다.
당장 이번 산불의 큰 피해를 입은 경남 산청군과 경북 의성군의 상황은 어떨까.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나 세수 규모와 직접 관련되는 인구 구성을 살펴봤습니다. 당장 전체 인구수만 하더라도, 산청군은 2019년 3만 5,417명에서 2024년 3만 3,308명으로, 의성군은 5만 2,595명에서 4만 8,780명으로 줄었습니다. 반면 만 65세 이상 인구수는 두 곳 모두 2천명 가량 늘면서 노인 인구의 비중은 산청군 42%, 의성군 47%로 높아졌죠. 신속한 재난 재해 대응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재해가 벌어지고 난 후엔 '예산 부족'을, 재해가 일어나기 전엔 '예산 낭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곤 합니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주체는 언론이 되기도, 시민단체가 되기도 하죠. 건조한 시기엔 이런 산불과 관련한 정책과 인프라가, 습한 시기엔 침수와 관련한 정책과 인프라가 그런 지적과 비판의 단골 대상이 됐습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대응의 시급성을 외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먼 미래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처럼, 이러한 산불이 앞으로 더욱 빈번해지고, 그 피해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경고에도 '먼 지역의 일'이라며 관심 두지 않는 이들 또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무려 30명의 시민과 산불 진화를 위해 투입된 공무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리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한 지적 또는 비판이 그 목소리에 대한 '무관심'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으로도 갈음할 수 없는 이 피해는 다음 산불, 다음 재난, 다음 재해에도 반복될 것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189892.html
산불 불쏘시개 된 가뭄·강풍…‘기후변화 멈추라’는 경고였다 (한겨레, 김규남 윤연정 기자, 2025-03-31 19:10)
최악산불 무방비 한국
② 영남 산불 키운 환경 요소
역대급 고온건조 ‘기후’에 국지성 돌풍 ‘지형’
기후변화로 봄 가뭄 더 심해질 텐데…
이번 영남 산불이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것은, 산불 확산의 3요소인 기상, 지형, 연료 3요소가 모두 산불 확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 요소들을 앞으로 어떻게 관측하고 관리할 것인지가 재발 방지의 핵심이다.
핵심 주범은 불꽃을 2㎞까지 날리며 산불을 확산시킨 강풍이다. 경북 의성 산불은 확산 속도가 역대 최고치인 시간당 8.2㎞였는데, 배경엔 일(25일) 최대 순간풍속이 초속 25.4m(영덕)에 달했던 태풍급 강풍이 있었다. 강풍의 원인은 ‘남고북저’ 기압계다. 남쪽에서 고기압이 시계 방향으로, 북쪽에선 저기압이 반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한반도에 강한 서풍을 불어왔다.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바람의 강도가 평년보다 강했고,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작용하는 ‘기압경도력’이 굉장히 강해진 환경”이었다고 짚었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 낮은 강수량·상대습도 등 전국이 바짝 마른 기후 조건이었던데다, 영남 지역이 특히 심했다. 예컨대 의성의 평년 2월 강수량은 22.6㎜였지만 올해 2월은 4.8㎜로 5분의 1에 불과했다. 목재의 건조한 정도를 나타내는 실효습도도 25일 의성 41%, 안동 36% 등이었다. 여기에 지형 요소까지 크게 작용했다. 영남 지역은 골짜기가 많은 험한 산악 지형이어서, 골바람과 국지성 돌풍이 불며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었다. 채희문 강원대 교수(산림환경보호학)는 “산의 사면을 따라 바람의 방향이 계속 바뀌고, 국지풍이 계속 불면서 화재의 진행 방향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고 짚었다. 그동안 주로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하던 봄철 대형 산불이 이번에 영남 내륙에서 크게 번진 것에도, 이처럼 기후 조건과 함께 지형 조건이 함께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원래 봄철 대형 산불에 취약한데, 기후변화로 인해 그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기상청이 1981~2020년 40여년간 우리나라 봄철 건조 경향과 산불과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대기 중 수증기량을 가리키는 상대습도는 1980년대 71.3%에 달했다가 지속적으로 점차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10년 조금 높아졌어도 67.4%에 머무른다. 1980년대 12.2도였던 전국 평균 기온은 2010년대엔 13.1도로 높아졌다. 1~3월 고온건조한 날씨가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정수종 교수와 장동영 연구원 등 연구팀이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100년치(1923~2022) 강원·경북 기상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평균 기온은 4도 상승, 연간 강수량 17㎜ 감소, 상대습도는 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지난 100년간 이 지역 기후가 습하고 추운 겨울에서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로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이는 산림이 화재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인한 고수온 현상도 문제다. 최근 한반도 해역 수온은 지난 100년간 약 1.5도 상승했는데, 전세계 평균(0.6도)보다 2.5배 가파르다. 김백민 부경대 교수(환경대기과학)는 “이번 대형 산불의 배경엔 ‘남고북저’ 기압계가 있는데, 이러한 강한 고기압이 출현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한번 나타나면 오래 지속하고 있다”며 “바닷물 온도가 뜨거워지니 공기가 빠르게 팽창하면서 기압계가 고기압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강풍이 불어오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산불은 일단 마무리됐지만, 대형 산불이 발생하기엔 여전히 최적의 조건이다. 서울과 경기·강원·충북·경상도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 30일부터 건조주의보가 발효돼 있고, 앞으로 2주간 뚜렷한 비 예보도 없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환경연구부 부장은 한겨레에 “원래 3월20일~4월20일이 대형 산불이 많은 시기라, 주말 비 소식이 적은 상황에서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또 “영남 일대 소나무들이 다 타서 맨흙이 드러나, 여름철 폭우 등에 산사태를 일으킬 수 있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기후변화를 멈춰 세우지 않는 한 봄철 고온건조·강풍이 강화되는 흐름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학)는 “앞으로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산불 발생 잠재력은 폭발적으로 커지게 될 것이다. 특히 이미 기후위기의 티핑포인트가 넘어갔기 때문에 앞으로 산불을 포함해 이상 기후 현상은 우리가 더 감당하기 힘든 상황으로 갈 것”이라며 “방화·실화를 줄이는 등 최대한 발생·확산 가능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6317194
산불 현장 일주일 있어보니…정부, 사람 살릴 고민 없었다[기후로운 경제생활] (CBS 기후로운 경제생활, 2025-03-31 21:18)
■ 방송 : 유튜브 CBS 경제연구실 '기후로운 경제생활'
■ 진행 :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대담 :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화재에 취약한 식재, 건조한 환경, 부족한 진화 자원
현장에서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산불" 진화 의욕 꺾일 정도
사망자만 30명에 달하는, 산불 대응의 둑이 완전히 무너졌다
풍속까지 강한 산불 확산 조건, 대피 조치 왜 못했나
◆ 홍종호> 극심한 피해를 낸 영남 산불. 일주일 만에 겨우 진화가 완료됐고 여파는 훨씬 길 전망입니다. 산불은 더욱 상시화, 대형화할 것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아 들었는데요. 지난 가을에 경고의 메시지를 주셨던 분이죠.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과 함께 이번 산불의 원인과 대응 체계에 대한 이야기 나눠봅니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어요. 현장에서 바로 올라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제 가셔서 얼마나 계셨나요?
◇ 서재철> 화재 발생 다음 날인 3월 23일 일요일에 가서 29일 토요일 아침까지 보고 철수를 했습니다.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현장을 계속 확인하면서 초기에는 의성 주민들이 대피할 때 지원도 해 드리고요. 사실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심각했어요. 초유의 재난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저희도 많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로 계속해서 산불 현장을 두루 살피고, 정부에 건의도 하고, 정책적인 대안도 요청했는데요. 이번 상황은 국제사회에서 기후위기 재난을 이야기할 때 나타났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본래 기후위기 재난은 어느 사회든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피해가 집중되죠. 국제 사회에서는 저개발 국가와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들이 피해를 많이 보는데, 이번 산불은 그런 상황이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봤던 LA 산불, 캘리포니아 산불, 캐나다 산불, 호주 산불 같은 초대형 산불은 외국의 일이고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기본적인 인식 자체를 완전히 폐기하는 양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 홍종호> 네. 이번 산불, 인명 피해가 자그마치 75명에 달했습니다. 주민들의 집과 일터도 많이 사라졌고요. 원인을 좀 더 총론적으로 말씀해 주신다면요?
◇ 서재철> 객관적으로 보면, 영남 지역은 겨울철 내내 건조했어요. 과거 20-30년 전 겨울철에 비해 평균적으로 눈비가 적게 내리고, 전체적으로 따뜻했기 때문에 습도가 떨어졌죠. 3월 21일과 22일에는 전국적으로 이상 고온이 나타났고, 영남 지역도 평균보다 10도 넘게 기온이 올라갔어요. 그나마 남아있던 습기가 고온에 증발하면서 더 건조해졌고, 이럴 때 불이 나면 안 되는데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났습니다. 그중 한 곳이 의성이었고요.
◇ 서재철> 더 안타까운 건 3월 21일이었죠. 금요일 오후에 경남 산청에서 산불이 났습니다. 산불이 나자마자 3시간 만에 3단계 대형 산불이 발동되었고, 진화 자원들이 투입되었죠. 3월 22일 토요일 오전에는 산청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모든 헬기가 동원됐고, 의성에서도 대형 산불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자원 부족 상황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 홍종호> 장비가 여실히 부족했군요.
◇ 서재철> 네. 군사 작전으로 말하자면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한 곳에만 집중해도 당일에 대형 산불을 잡아내기는 어려운데, 두 곳에서 동시에 발생하니까 자원이 분산되었죠. 또 의성 지역은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소나무가 워낙 많습니다.
산불은 쉽게 얘기해서 소나무, 잣나무처럼 외형으로 볼 때 일반 시민들이 소나무라고 하는 이 나무들이 가장 위험합니다. 활엽수만 있는 숲에서는 산불 진행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요. 불이 날아다니고, 인근 집을 불태우고 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의성 일대부터 안동 지역은 특정 산지 사면이나 봉우리, 능선에 최대 90-100% 소나무로만 덮여 있는 곳이 산재돼 있습니다.
◇ 서재철> 그래서 일요일 상황을 보면 오전에는 연기가 너무 가득해서 진화 헬기가 못 들어가고, 오후에 시도해 보려니 두세 시부터 바람이 초속 5-6m씩 불면서 진화가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초기 주불의 화선, 불길이 몇십km씩 광범위하게 펼쳐지면서 진화 헬기의 접근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헬기 조종사들과 통화를 해보면, 이게 엄두가 안 난다는 겁니다. 화선이 너무 넓어서요. 다른 산불 현장에서는 불을 끄면 진도가 나가는 것이 느껴지는데, 여기는 숨이 턱 막힐 정도라는 겁니다. 흔히 우리가 상황이 너무 넓고 크면, 중과부적일 때는 의욕이 꺾이거든요.
◆ 홍종호> 그 숲 얘기가 지금 백가쟁명처럼 나와요. 낙엽이 문제다, 소나무가 문제다, 이런 얘기 많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소나무가 많은 건 어떻게 봐야 합니까?
◇ 서재철> 일단 소나무가 많은 건 객관적인 우리의 여건이고요. 전체 산림의 25-40%가량이 침엽수고, 그중에 30% 정도가 흔히 보는 소나무류예요. 소나무, 잣나무, 리기다소나무가 한 30% 될 겁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경북 북부의 소나무 밀도가 훨씬 높다는 겁니다. 경북 북부 읍면 수목의 50%가 소나무류고요.
이건 산림청이 게을렀다고 보는데요. 전국의 소나무 밀도와 면적이 어떻게 된다, 데이터를 제대로 제시해 줬어야 했어요. 그럼 재해 대책에 바로바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피 체계를 꾸릴 때 소나무 밀도가 높은 마을과 읍면에 더 많이, 더 속도감 있게 지원하는 게 소위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죠.
◆ 홍종호> 불이 발화했을 경우 이 지역의 피해가 클 수 있다는 거죠.
◇ 서재철> 네. 건물이 고층일 경우 소방법을 더 촘촘히 적용하는 것처럼요. 탈출이 어렵지 않습니까. 그런데 산불 관점에서 보면 소나무류가 위험하지, 활엽수는 이 정도로 진행 속도가 빠르지 않거든요. 활엽수는 불길이 낙엽을 타고 야금야금 가지만, 불티가 날아가고 불길이 하늘을 뒤덮고 비화되는 건 다 소나무예요. 그러니까 소나무 밀도 지도를 시군에 제공해줘야 하는 거죠.
지금 논쟁이 되는 게 소나무를 매년 얼마나 심었냐 아닙니까. 시민들에게 데이터를 공개해서 불필요한 논쟁을 줄이는 게 필요합니다. 저희가 알고 있기로는 과거에 낙엽송이나 외래종을 더 많이 심었고 소나무는 90년대부터 많이 심었어요. 소나무 조림은 1년에 전체 물량의 15% 정도 심었다고 알고 있는데, 지금은 소나무를 더 이상 심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 홍종호> 90년대에 소나무를 많이 심은 것은 우리 고유종을 심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건가요? 과거에는 속성수를 심었고요.
◇ 서재철> 그렇죠. 과거 YS 정부부터. 물론 80년대에도 소나무를 심긴 했지만, 저는 2000년 동해안 산불 이후부터 사실 소나무를 심으면 안 된다고 봤어요. 소나무는 산불에도 취약하지만 병해충에도 약하기 때문에 더 이상 심으면 안 되는데, 지금도 전체 물량의 15% 가까이 심는다는 건 정책의 엇박자라고 보고요. 그러나 중요한 건, 경북 북부나 강원 남부에 소나무가 워낙 많은데 10년 안에 이 소나무를 인위적으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소나무를 더 심지 않는 건 당연하고, 소나무를 안고 살 수밖에 없고 현재 있는 소나무를 전제로 산불 대책을 마련하는 게 필요합니다.
◆ 홍종호> 더 철저한 방제 대책이 필요하다는 말씀 같습니다. 일본과 잠깐 비교하면 일본은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 온대 지역이 좀 더 많으니까 상대적으로 활엽수가 많은 건 사실이겠죠?
◇ 서재철> 일단 습도 자체가 다른데요. 그러나 올봄 일본도 산불 피해가 있었죠. 거의 수십 년 동안 산불이 일본 임야청이나 일본 정부의 큰 이슈가 아니었는데, 지난 1월 말에 이와테현 산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의성 산불과 같은 시기에 일본 서부 쪽 오카야마현부터 시코쿠 에히메현까지 일주일 이상 산불이 발생하면서 산불의 안전 국가, 혹은 산불에 큰 걱정이 없는 나라가 아니게 됐어요. 일본에서도 산불 이슈가 커졌습니다. 일본은 기후변화라는 표현보다 지구 온난화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쓰는데 이제 일본도 지구 온난화에 산불 이슈가 들어간 거죠.
◆ 홍종호> 그런데 일본은 인명 피해는 없더라고요. 그 부분이 저는 참 마음이 안 좋았어요.
◇ 서재철> 일본도 안심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난 체계가 훨씬 고도화됐지만, 동일본 대지진이나 최근의 지진 상황을 보더라도 어떤 나라든 안심은 금물이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 홍종호> 네. 그런데 한국은 어쨌든 굉장히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고. 그런 걸 보면서 뭔가 우리나라는 방재 대책이 참 취약하다는 생각을 또 안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에요.
사실 작년 가을 저희 방송에 나오셔서 예방이 사후적 조치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이번 상황 보니 어떻습니까? 헬기도 말씀해 주셨는데 인력이나 장비 면에서 준비가 잘 돼있었나요? 어떻게 보십니까?
◇ 서재철> 201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대형 산불의 인명 피해를 살펴보면요. 2019년 고성 산불 당시 변압기가 터져 속초에서 한 명이 사망한 적이 있었는데, 그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어요. 그리고 2023년 4월 10일 강릉 산불 때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이분은 경찰이나 소방의 도움으로 대피했었고 불이 꺼진 뒤 집 상황을 보러 갔다가 사망한 거라서 대피 중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산불은 사망자만 30명에 달하고 있어요. 정부의 산불 대응의 둑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죠. 또 가슴 아픈 것은 주택 피해가 3천 동 이상입니다. 피해를 본 분들은 대부분 60, 70대의 분들이고, 평생 그곳에서 살아온 분들이죠. 삶의 터전이거든요. 주택 피해도 너무 큽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산불 대책의 초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재난에서 첫 번째 원칙은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산불에서 과연 생명을 지키는 데 산불 대책의 초점이 맞춰졌는가 했을 때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아주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 홍종호> 위원님 말씀에서 안타까움과 비장함이 느껴지는데요. 과거 산림이 타거나 주택이 전소되는 피해는 있었고 강원도 산불 때는 가스 설비에 불이 옮겨붙는 걸 막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거죠. 사전적으로 이런 상황을 예견하기는 힘들었을까요? 어떤 준비가 부족했던 겁니까?
◇ 서재철> 산불 대책이 하는 일이 많습니다. 진화와 예방 등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요. 산불이 발생했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의 피해를 막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 홍종호> 과거에도 이런 식의 산불이 없지는 않았죠. 겨울이나 봄철에 산불이 발생했는데, 그때 이번처럼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빠르게 산불이 번진 적은 없었던 겁니까?
◇ 서재철> 객관적으로 속도가 빠른 건 사실이었고요. 이례적 강풍도 있었습니다. 영덕 같은 경우 오후 5시 54분 영덕 관내의 낙동정맥 생태축인 황장재, 달산면, 지품면 일대로 영양, 청송 불이 넘어오기 시작했는데요. 그날 낮 1시 반부터 영덕읍 내 자동 기상 관측망 AWS에 초속 15m의 바람이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 홍종호> 초속 15m면 거의 태풍급 바람에 가까워지는 거 아니에요.
◇ 서재철> 그렇죠. 관측 장비가 있는 곳은 지표면이죠. 그로부터 200m, 300m 고도 위도에는 더 강한 바람이 불겠죠. 사실 영덕군은 22년 2월 16일에 대형 산불을 한번 겪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원들도 비상근무 태세를 유지해야 했는데요. 결과적으로 보면 과연 주민 대피를 위했는가. 건조 특보의 강풍. 적어도 산불 관계 종사자에게는 기본 상식이거든요. 위험이 이미 상존했고 옆 시군에서 국가적으로 속보가 뜰 정도의 산불이 이미 토요일에 발생해서 월요일까지 유지됐는데 적어도 청송, 영양, 영덕에서 대피에 대해 고민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 청송, 영덕, 영양군은 공무원 숫자 한 500명 정도 될 겁니다. 그 직원들을 비상 근무로 읍면과 마을로만 보냈다면. 요즘 우리 농산촌 공무원들은 차 없는 사람 없습니다. 자동차가 다 있으니까 이장과 협조하는 체계로 대비만 했어도 집이 불타는 건 좀 불가항력적이었지만 인명 피해는 현격히 줄일 수 있었을 겁니다.
◆ 홍종호> 노약자, 어르신들이라도 미리 대피시킬 수 있었을 것인데 이게 안 됐다.
◇ 서재철> 특히 안동과 영덕은 거듭 말씀드리지만 대형 산불을 최근 5년 사이 여러 차례 겪었거든요. 그러면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지와 어떤 상황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는데 대피에 대해서 왜 고민을 안 했냐는 거예요.
◆ 홍종호> 그래요. 정리하자면 과거의 산불에 비해서 굉장히 건조했고 강풍도 합쳐지면서 산불이 아주 빠르게 확산했다. 그런데 주민들이, 특히 노약자분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불이 올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고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다.
◇ 서재철> 대피 고민을 많이 안 했던 것이 점점 확인되고 있죠. 그리고 데이터가 있습니다. 해당 피해 지역에 그날 소방 신고가 들어온 건수, 시간, 위치, 그리고 피해 주민들이 어디에서 참변을 당하셨는지에 관해서요.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런 초유의 재난이 들어오면 아주 상세하게 한 점 한 점 조사를 하고 기록을 남기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 상황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요. 지금 마치 책임자 처벌 논쟁처럼 되고 있는데요. 우리가 이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일차적으로 피해 이주민을 돕고 지원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과 함께 이 상황을 잊지 않고 획득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확인해서 대책을,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피 체계도요. 여기서 더 들어가면요. 산불 대책의 1단계에서 지휘관이 시장, 군수입니다. 그런데 시장, 군수가 선출직으로 취임한 이후에 단 한 번도 산불 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재난이나 국민의 생명, 재산과 매개되는 군, 소방, 해경을 포함한 경찰은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직무 교육을 강도 있게 현장과 이론을 포함해서 해요. 교육 매뉴얼이 다 있고요. 그런데 산불이 일어났을 때 지휘관이 시장, 군수인데도 이분들이 취임 이후에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요. 그 밑의 참모들, 산림 분야나 녹지 분야의 종사자들에게도 체계적인 교육이 없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90465.html
[아침햇발] ‘산불 화마’가 31명 덮친 그날의 기록 (한겨레, 황보연 | 논설위원, 2025-04-03 15:30)
역대 최악의 산불이 지나갔지만 상흔이 크다. 영남 일대에서 산불 피해를 입은 면적이 4만8238㏊에 달하고 불에 탄 주택도 3986채(경북)에 이른다. 파괴된 산림이 다시 제 모습을 갖추려면 30년, 생태계 복원까지는 100년이 걸린다.
무엇보다 31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산불을 끄다가 화마에 휩쓸리고 구조받지 못해 불길에 갇혔다. 각기 마지막이 될 줄 미처 몰랐던 ‘그날’의 기록들은 아직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다만 이들의 희생에는 공통점이 보인다. 위험 요인이 사전에 노출돼 있었다는 점이다.
경남 창녕군 소속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3명은 지난달 22일 산청에서 불길을 잡는 데 투입됐다가 숨졌다. 이들은 산불 예방 기간에 5~6개월씩 일하는 기간제 노동자였다. 숙련도가 낮은 60대 고령자들인데다 전문 방염장비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예방진화대원은 10시간의 법정 교육만 받으면 할 수 있다. 산불 진화 경험이 전무해도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는 의미다. 전국공무원노조는 “대원들의 안전모가 건설 현장에서 쓰는 (열에 취약한) 플라스틱 재질이었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최소한의 안전 확보 조처가 이행된 것인지 규명돼야 한다.
비숙련 고령자가 주력인 산불진화대 문제는 누차 지적돼왔다. 대형 산불이 갈수록 느는데 진화인력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충원되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잔불 정리와 뒷불 감시를 맡는 예방진화대가 9604명(2024년 기준)인데 주불 진화에 전문성을 갖춘 특수진화대는 413명에 불과하다. 특수진화대는 애초 2016년에야 예방진화대의 예비비로 시범운영되기 시작했고 2019년 정식 출범 뒤에도 줄곧 인력 충원이 없었다.
미국의 경우, 헬기를 타고 험준한 산악지형에 투입되는 헬리텍 대원과 스모크 점퍼, 극한의 주불 진화에 투입되는 핫샷 대원, 장비를 전문적으로 가동하는 진화장비 대원 등 세분화된 임무에 따라 전문성을 갖춘다.
73살의 헬기 조종사는 강원도 인제군의 임차 업체 직원이었다. 그는 지난달 26일 경북 의성군 신평면 부근에서 산불 진화를 하다가 헬기가 추락하면서 참변을 당했다. 우리나라는 산악 지형이 많은 탓에 주불 진화를 대부분 헬기에 의존한다. 대형 헬기 확충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른 바 있지만 역시 진전이 없었다. 추락한 임차 헬기는 담수 용량이 1200리터에 불과하고 30년 가까이 된 노후 기종이었다. 소방청 연구에 따르면, 헬기의 적정 교체 주기는 20년이다. 고령의 조종사가 노후 헬기를 혼자 몰면서 고도의 진화 작업을 벌인 것이 애초부터 무리한 임무는 아니었는지 규명돼야 한다.
같은 날 영덕군 영덕읍의 한 요양원에서 차량으로 탈출하던 80대 입소자 3명도 끝내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모두 거동이 불편한 와상 환자들이었다. 걷거나 뛸 수가 없었다. 신속한 대피를 위해선 구급차나 이송 지원 차량이 필요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요양원 직원들의 차량이 전부였다. 가까스로 차에 올라탔지만 10분도 못 가 불이 차량에 옮겨붙었다. 직원들이 뒷좌석 입소자를 한명씩 내려주는 과정에서 차량 폭발이 일어났다.
이들을 비롯해 산불에 희생된 지역 주민 대부분은 고령의 노인과 장애인 등이다. 혼자 힘으로 안전을 지키기 어려운 안전취약계층이다. 청각 장애가 있는 79살 남성과 소아마비 환자인 71살 여성은 각기 집 안에 고립된 채로 숨져 있었다. 93살의 치매 환자는 실종된 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80대 부부는 집 밖으로 나가다가 이내 불길을 만났다.
이들에게 적합한 대피 지침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민재난안전포털의 산불 국민행동요령을 보면, ‘거동이 불편한 경우 안전한 장소에서 도움을 기다리라’고 나온다. 정부가 보낸 재난문자에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문구가 포함됐다. 그러나 정작 어디로, 어떻게 대피하라는 것인지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없는 고령자들은 재난문자조차 수신하지 못했다. 일본은 장애인과 고령자, 임산부 등 재난 취약계층의 명부 작성을 의무화했다. 거주지와 신체적 특성에 따른 구체적인 대피 경로와 방법을 담은 개별 피난계획도 세우도록 한다.
산불은 기후위기 등의 영향으로 점차 대형화되고 동시다발로 발생하면서 피해 규모를 키우고 있다. 그에 비해 산불 영향권 구역은 대부분이 초고령 지역이다. 경북 의성군의 경우 65살 이상 고령자 비중이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된다. 재난 상황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대피처로 옮겨줄 조력자가 있어야 하고 적절한 이동수단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2년 전 ‘산불 백서’를 내면서 진화 인력 및 장비 부족 문제를 비롯해 다각도로 개선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큰불이 났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가져선 안 된다. 과감한 예산 투자와 체계적인 방재 인력 양성, 맞춤형 대피 방안 마련 등을 서둘러야 한다.
https://news.lghellovision.net/news/articleView.html?idxno=502384
[산불 그 후]①경북 산불 복구 앞두고... 강릉 이재민은 2년째 임시주택 (헬로TV뉴스 정승환 기자, 2025.04.03 17:49)
[앵커] 지난 3월 경북과 경남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은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과 함께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습니다. 이제는 복구와 함께 산불 예방과 대응 체계를 점검할 시점인데요. 연중화되고 대형화되는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떤 과제가 남았는지 기획 보도 순서로 짚어봅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신속한 일상 회복을 가로막는 '보상금 문제'를 들여다봤습니다. 정승환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달, 영남 지역을 뒤덮은 대형 산불. 전국 11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피해 면적만 4만 8천 헥타르에 달했습니다. 특히 의성에서 시작돼 안동, 청송, 영양, 영덕까지 번진 경북 지역 산불은 5개 지역 주민에게 심각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주택 3천700채가 불에 탔는데, 이재민은 3천 명이 넘습니다. 불은 꺼졌지만,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여전히 대피소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 없는 기다림은 이재민들을 더욱 막막하게 합니다.
[김옥희 / 경북 안동 산불 피해 주민 : "마을에 들어가려 해도 전부 폭삭 내려앉은 데다 연기 때문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공기가 탁해서. 공사 중이라는데 그래서 집에 가지도 못하고…."]
앞선 산불 피해 주민들의 상황은 어떨까. 지난 2023년 4월, 강릉 경포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120헥타르와 주택 204채를 태워 55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시켰습니다.
[기자 : "강릉 경포 산불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임시주택에 남아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강릉시가 제공한 조립주택에는 117세대 254명의 이재민이 입주했습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인 55세대 122명은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전영자 / 강릉 경포 산불 피해 주민 : "밤에 바람 조금만 불어도 잠을 못 자요. (시끄러워서요?) 집을 들고 가는 것 같아요. 근데 어떻게 안 불편해요. 집이 집이 아니죠. 그냥 살아야 되니까 사는 거지."]
이재민들의 일상 복귀가 늦어진 이유 중 하나는 부족한 보상금 때문이었습니다.
[김광영 / 강릉 경포 산불 피해 주민 : "땅 구입하는 데만 돈(보상금) 다 쓰고 우리 돈 보태서 땅 샀어요. 집은 다 짓고 나면 대출받아야죠. 앞으로가 더 어렵죠. 자식이 물려받는 거죠. 저도 그럴 수밖에 없죠."]
경포 산불의 전파 피해 주택 보상금은 4천만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전국에서 몰려든 성금이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4차례에 걸친 성금 지급은 완료까지 열 달가량이 걸린 데다, 성금을 보탠 금액도 새집을 짓기엔 부족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성금을 합한 주택 피해 지원금은 1억 2천만 원에서 최대 1억 8천만 원이었습니다.
[이봉길 / 강릉 경포 산불 피해 주민 : "땅 사는 데 1억 원 들었거든요. 보상 나온 게 2억 원도 안 돼요. 1억 원 얼마 나왔겠지. 찔끔찔끔 주니 알 수가 없지. 천만 원도 주고 2천만 원도 주고…. 나머지는 빚졌다고 봐야죠."]
지난 2022년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 때도 이재민 보상은 정부 지원금과 민간 성금을 합쳐 최대 1억 2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대형 산불이 날 때마다 ‘보상금 현실화’ 요구가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산불은 꺼졌지만, 이재민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습니다. 피해 주민들의 조속한 일상 회복을 위해선 현실에 맞는 보상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5426
산불, 진압에서 기후위기 대응으로 패러다임 전환하자 (미디어오늘, 심혜영 그린피스 기상기후 선임연구원, 2025.04.05 10:48)
[그린피스 캠페이너 연속 기고 ③]
지난 3월 발생한 경북 산불은 여의도 약 160배 면적, 축구장 약 6만 6000개인, 약 4만5156ha를 태우며 최대 규모의 인명, 재산 피해를 냈다. 발화 원인은 인간 실화였지만, 작은 불씨가 이같은 ‘괴물 산불’이 된 데에는 기후변화가 자리한다.
이번 경북 산불의 최초의 발화 시점인 3월 22일, 해당 지역의 산림청 산불위험지수를 보면, 그 지수가 매우 높았다. 산불위험지수가 높다는 것은 연료가 건조하여 타기 좋은 상태임을 의미한다.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건조화가 작은 불씨를 확산하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따라 산불의 규모는 커지고, 봄철에 주로 집중되던 기존과 달리 산불 위험 시기도 연중화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산불 대응은 여전히 지역, 경제적 차원에서 논의되는 데 그친다. 이 같은 경향은 산불 관련 언론 보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언론재단이 운영하는 기사검색사이트 빅카인즈에서 ‘산불’, ‘기후변화’ 그리고 한국 산불 관리 주체인 ‘산림청’과 ‘정책’을 검색한 결과 지난 3월 19일 기준 관련 기사는 총 670건이다. 이를 대분류 상으로 보면 ‘지역’이 334건(49.9%)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 경제 104건(15.5%)순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에 산불이 발생하는 해당 지역 언론에서 산불과 관련 정책에 대한 보도가 자주 이뤄진다. 또 국내 산불 관련 보도는 로봇이나 인공지능, 드론 등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을 기반한 산불대응 체계 구축이나 산림 바이오매스, 목재, 산림 일자리 등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 기후 상황은 ‘조울증 상태’라고 표현 가능하다. 조울증은 기분이 끝도 없이 고양되다가 우울에 빠지는 양극성 증상을 특징으로 하는데, 기후 역시 역대급 폭염 후 혹한 예고가 매년 반복되는 등 불안정하고 불규칙적인 양상을 보인다.
올해 경북 산불이 역대 최대 피해를 낸 데에도 조울증 기후의 영향이 있다. 극심한 기후위기와 변화로 인해 한반도 대기 역시 산불에 더욱 취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는 건조해지고, 적설량은 감소하며 해충을 증가케 한다. 이로 인해 산불의 기간이 길어지고, 산불로 타버린 면적은 넓어진다.
산불로 인해 타들어간 면적이 넓어질수록 죽은 초목도 증가한다. 이런 건조한 죽은 초목은 불에 잘 타는 일종의 ‘땔감’ 역할을 하게 되는데, 건조한 대기에 땔감 재료까지 더해지며 산불이 더 자주, 크게 발생하게 된다. 타들어간 나무는 탄소를 내뿜고, 이는 대기 중 탄소농도 증가로 이어져 기후변화를 가속화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의 대형, 장기화가 다시 기후 변화 속도를 견인하는 끝없는 악의 순환 고리가 일어나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도 유례없는 대형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고 있다. 2019년 인도네시아, 2022년 미국 캘리포니아, 포르투갈, 2023년 캐나다, 미국의 하와이, 2024년 칠레 등이 대형 산불로 몸살을 앓았다. 이같은 대형 산불에 대해 미국 항공우주국(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NASA)은 기후변화가 산불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산불 피해 규모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1월 미국 LA에서 발생한 산불은 최대 2750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도 피해 면적이 늘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0년대에 발생한 국내 산불 피해 면적은 2010년의 약 7.8배에 달한다. 인명 피해도 급증했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산불 사망자 수는 263명으로,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 1997년 266명에 이어 산불로 인한 사망자 수 역대 두 번째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국내에는 아직 기후변화에 따른 산불 대응방안이 부재하다. 국내 산불 관리의 주체는 산림청이다. 산림청이 매년 발표하는 ‘전국 산불방지 종합대책’을 보면, 산불의 대형, 연중화 경향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나아가 이상기후로 인해 산불이 국가적이고 전세계적 기후재난이 되어간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종합 대책에서는 기후변화 대응방안을 다루고 있지 않다. 기후변화 대응방안이 포함되지 않으니 산불 논의는 여전히 지역적 차원에 그친다. 산불을 특정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산불 대응 정책 기조 역시 ‘불이 나면 끈다’ 정도의 사후적, 단기적 방안에 그친다.
단기적이고 진압 중심적인 대응 정책에 기조 변화가 필요하다. 포르투갈의 산불 대응 정책 기조 변화 연구에 따르면, 산불을 진압하는 데 중점을 두는 정책은 연료량을 증가시켜 오히려 산불을 더 크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압 중심의 정책은 경제적인 효율도 떨어진다. 미국 산림청에서 산불진압에 쓴 비용은 2020년과 1989년을 비교하면 약 4배 증가했으나, 연료량도 함께 증가하는 결과를 낳으며 오히려 산불 위험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레이아(Moreira) 박사 연구팀은 이 현상을 ‘소방 함정(Firefighting Trap)’이라고 명명하며, 사후대응적이고 근시안적인 정책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산불 위험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산불을 기후재난의 하나로 분류하고 통합적으로 관리, 대응해야 한다. 산불 저감을 위한 생태적 접근, 탄소 배출 저감 정책과 연계한 대응체계와 같은 산불의 연쇄적인 발생을 끊을 수 있는 장기적인 산불 대응 관점이 필요하다.
언론도 산불을 단순한 자연재해에서 기후 위기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역 중심의 단편, 반복적인 내용 위주와 산불 피해와 경제적 대응책 강조에만 그치는 현 산불 관련 보도의 한계는 명확하다. 불안정한 기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산불 보도는 심층적인 원인 분석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산불 위험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재난 대응 정책이 무엇인지 조명해야 한다. 언론이 정책 비판을 넘어 대안까지 제시하는 공론의 장을 형성한다면, 보다 지속 가능한 산불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5438
산불에 삶이 불탔는데… 대출해주고 살아남으란 ‘유체이탈’ 대책 (더스쿠프, 김정덕 기자, 2025.04.07)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재난 지원 대책의 맹점
이재민 재기가 관건인데
현실 속 지원은 대출 집중
대출보다 직접 지원 필요
법 개정으로 일부는 개선
법안에만 그친 적도 많아
대출로는 피해 복구 한계
# 초대형 산불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제 남은 건 피해 복구와 재건이다. 이는 단순히 재를 치우고, 풍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게 아니다. 재난 피해자들의 일상을 찾아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의 지원은 필수다.
# 하지만 정부는 지원 대책의 초점을 여전히 저금리 융자 지원에 맞추고 있다. 재난의 무게를 피해자에게 슬그머니 떠넘기는 ‘유체이탈 대책’이나 다름없다. 이래서는 피해자들이 일상을 되찾기 힘들다. 직접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무엇을 논의해야 할까.
지난 3월 국민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했다.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까지 번졌기 때문이다. 산불의 규모가 컸던 만큼 피해 규모도 상당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일 기준 인명 피해는 75명(사망 31명ㆍ중상 8명ㆍ경상 36명)이었고, 3261명(1975세대)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공식적인 재산 피해 규모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정부는 복구 비용만 3조~4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산불로 소실된 임야는 4억8000만㎡(약 1억4520만평)로 추정된다. 3월 14일에 시작된 산불은 보름 만인 28일에야 진화가 대략 완료됐다.
산불이 잡히자 정부는 곧장 피해 복구 대책 마련에 나섰다. 2일 정부는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4000억원 이상의 재정을 지원하는 ‘산불 피해지역 농업인 지원방안’부터 내놨다. 이 재원을 농가의 설비ㆍ시설 복구와 사료구매, 긴급생활안정자금 등에 쓰겠다는 거다.
이 방안에 따르면 우선 정부는 농작물(54개), 가축(41개), 농업시설(75개), 축사(14개), 농기계ㆍ설비(80개) 등 294개 항목의 농약대금과 가축 입식비(구매비), 시설 복구비를 농가에 지원한다. 또한 재난지역 지정 유형(일반ㆍ특별)에 따라 항목에 차이가 있지만, 각종 공과금(세금ㆍ4대 보험료ㆍ전기요금ㆍ통신요금 등 36개 요금)의 납부도 유예하거나 감면해준다.
피해 조사가 끝나는 대로 재해복구비와 재난지원금도 지급할 예정이다. 농가 단위 피해율이 50%를 넘는 경우 긴급생계비(2인 가구 120만원ㆍ4인 가구 187만원)를 1회 지급하고, 1학기분 학자금도 지원(100만원)한다. 정부는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도 편성해 추가적인 재정 정책을 펼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가 지원에 나섰으니 산불 피해로 삶의 터전과 경제활동 수단을 모두 잃은 이재민들도 일상을 빠르게 되찾을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적은 지원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생계비 지원 액수는 한달 최저임금인 209만원(2025년 시급 기준)보다도 적어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생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잿더미 속에서 재기하려면 집이라도 다시 짓고 살아야 하는데, 정부가 그 돈을 모두 지원해주진 않는다.
예컨대 행정안전부의 ‘재난복구 비용 등에 대한 부담기준’에 따르면 재해로 주택이 절반 이상 파손됐거나 유실됐을 경우, 집을 복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30%를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다. 나머지 70%는 융자 지원이다. 자비 부담 비중이 훨씬 높다.
결국 이재민들은 모아둔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그렇지 않다면 돈을 빌려서 재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재민들 입장에선 정부의 지원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많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지원 대책의 큰 빈자리를 메우는 건 저금리 융자(대출)다. 정부가 다양한 보조금 정책을 내놓으면서 저금리 융자 대책을 함께 내놓은 건 그래서다. 정부는 피해 농가의 경영 안정을 위해 농축산경영자금 상환유예와 이자 감면(최대 2년), 최대 5000만원(법인 1억원)의 융자 지원도 할 계획이다.
피해를 본 조합들을 대상으로 재해자금(2000억원 한도)도 무이자로 제공하고, 피해 가구당 최대 3000만원의 긴급생활안정자금도 농협을 통해 무이자로 지원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번 산불의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인 경상북도에서 이번 산불 피해 농가와 어가를 위해 내놓은 선제적 대응책도 대부분 융자였다. 농어촌진흥기금 200억원을 무이자로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산불 피해 농ㆍ어가(법인 포함)는 영농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1000만원까지 2년간 무이자로 융자받을 수 있다. 이미 지원한 융자금의 상환기한도 1년간 연장하고, 이자는 전액 감면한다.
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융자 지원과 같은 간접적 지원책으로는 이재민들이 재기하기가 쉽지 않다. 피해를 오롯이 자력으로 견뎌내라는 것과 다름없어서다. 그래서 정치권은 그동안 여러 재난이 있었을 때마다 재난의 재발을 고려해 이재민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덜어줄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내놨다. 그 아이디어가 법안 발의를 통해 현실이 된 것들이 적지 않다.
사례를 보자. 2016년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 일대에서 발생한 지진과 경북 전 지역을 강타한 태풍 치바로 인한 재난을 계기로 정치권은 특별재난지역 지정에 허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특별재난지역이 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피해가 있어야 하는데, 읍ㆍ면ㆍ동과 같은 소규모 지역은 시ㆍ군ㆍ구와 비슷한 피해를 입어도 행정단위가 작아서 피해 규모도 작을 수밖에 없었다.[※참고: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의 재난 피해자들은 주거용 건축물 복구비 보조나 공과금 감면 등 좀 더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특별재난지역 지정에서 소규모 지역은 배제되기 일쑤였다. 문제점을 인지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은 2016~2017년 사이 ‘소규모 지역도 일정 피해 기준을 둬서 기준에 해당할 경우 중앙대책본부장이 대통령에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할 것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개정안을 내놨다. 이 아이디어는 2018년 같은 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반영됐다(대안반영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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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비슷한 시기, 정치권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이 된다고 해도 영세 소상공인을 위한 피해시설 복구 지원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에 따라 재난안전법 개정을 통해 소상공인도 국고보조를 지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어 풍수해보험법을 개정해 소상공인들이 풍수해보험 가입하면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 범위 내에서 보험료를 지원하는 체계도 만들었다.
문제는 이재민들의 피해를 좀 더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아이디어들이 법안 발의에만 그친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19년 이채익(국민의힘) 의원(이하 당시 직함)이 발의한 재난안전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여기엔 주택 파손 정도에 따른 복구비의 정부 보조금 지원 비율을 기존 30%에서 70%로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자비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정부는 ‘법 개정이 아니라 대통령령에서도 충분히 규정을 바꿀 수 있고, 주택 외 사유시설의 피해 지원과 형평성 논란이 있을 수 있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후속 작업은 없었다. 결국 개정안은 임기만료 폐기됐다.
2021년 송영길(더불어민주당ㆍ현 소나무당) 의원은 재난 발생 시 소상공인의 임차료를 정부와 임대인이 분담하는 의무를 담은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내놨는데 소관위원회에서 논의도 하지 않은 채 임기만료폐기됐다.
2023년엔 정청래(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고(고물가ㆍ고금리ㆍ고환율) 상황과 골목상권 붕괴 등으로 인해 소상공인의 생존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재난 발생 시 ‘소상공인의 건축물과 시설물, 그에 부수 또는 포함되는 동산’의 피해를 모두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같은 해 이만희(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현행 재난지원금 산정 기준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면서 재난지원금의 하한을 설정하고, 재난 피해 규모에 따라 지원금 액수도 증액할 수 있도록 하는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세 개정안 모두 제대로 된 논의도 하지 못한 채 임기만료폐기됐다.
2024년엔 신현영(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재난을 겪은 피해자들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한 의료지원 체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재난 피해자의 지속적인 치료를 위한 ‘장기추적 조사(코호트 조사)’와 ‘재난 피해자 전담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재난안전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이 역시 임기만료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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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개정안의 공통점은 재난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는 내용이라는 데 있다. 직접 지원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2020년 팬데믹 당시 정부는 직접 지원보다 융자 지원에 힘을 쏟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대출로 연명했던 소상공인 중 상당수는 지금도 빚더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3월 27일 발표한 ‘3월 금융안정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대출잔액은 1064조2000억원이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 전체 대출잔액이 684조9000억원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5년 만에 55.4%나 늘었다.
게다가 지난 3일 오기형(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증사업을 하는 13개 공기관ㆍ금융공기업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보증기관의 지난해 대위변제액은 16조3142억원으로 역대 최대치였다. 소상공인들이 빚을 갚지 못해 기관들이 대신 변제한 게 그만큼이라는 얘기다. 2023년(13조7742억원)보다 18.4% 증가했다. 융자를 통한 지원은 사회 안정이 아니라 사회 불안 요소를 키운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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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그 후]③산불 대응 핵심 '임차헬기'…국비 지원 절실 (헬로tv뉴스 정승환 기자, 2025.04.07 17:34)
[앵커멘트] 영남권 산불이 남긴 과제를 짚어보는 연속보도 이어갑니다. 오늘은 산불 진화용 임차 헬기 살펴볼 텐데요. 진화헬기는 산불 초동 진화의 핵심 전력이죠. 산불이 빈발하고 규모도 커지면서 진화 헬기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지만, 지자체가 임차 비용 전액을 부담해야 하다 보니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최근 임차헬기 추락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노후 헬기에 대한 안전성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정승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물주머니를 매단 헬기가 산 위로 물을 쏟아붓습니다. 산불 진화의 핵심 전력인 진화헬기입니다. 그중에서도 지자체가 운용하는 산불 진화 임차 헬기는 산불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중요 자원입니다.
[권창오 / 춘천국유림관리소 보호관리팀장 : "(일차적으로) 강원도 산불방지센터에서 해당 시군에 있는 임차헬기를 출동시키는 걸로 알고 있고요. (산림청) 헬기가 가까운 데 있으면 거의 같은 시간에 도착하는데요. 강원도 북부하고 동부하고 남부 지역에 치우쳐 있다 보니까 (늦을 때도 있습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 배치된 산불진화용 헬기는 모두 119대. 이 중 지자체 임차 헬기는 78대로, 66%를 차지합니다. 국가 재난에 준하는 대형 산불 발생 시에는 소방헬기와 군 헬기도 투입되지만, 상시 전력은 아닙니다.
문제는 임차 헬기가 상시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비용 부담은 온전히 지자체 몫이란 겁니다. 강원도도 올해만 79억 원을 들여 헬기 8대를 임차했는데, 매년 부담이 큽니다.
[김진태 / 강원도지사(지난달 31일) : "기재부에서는 (임차헬기는) 지방이양사업이라는 게 지금 확고한데 그런 걸 떠나서 산불 대응력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부를 계속 설득하겠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연이은 헬기 추락 사고로 지자체들의 어려움이 더욱 커질 걸로 전망됩니다. 가뜩이나 지자체간 헬기 확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노후기종의 안전성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성 확보를 위해선 수리와 정비 강화가 불가피한 데, 현행법상 비용 부담은 민간항공사와 임차해야 하는 지자체에게 돌아갈 공산이 큽니다.
[기자 : "홍천권역 산불 진화용 임차헬기입니다. 이 헬기는 1999년에 생산돼 26년째 운항 중인데요. 강원도 내 임차헬기 중 가장 기령이 적은 최신 기종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 강원도 내 임차 헬기 7대의 평균 기령은 40년. 국토부의 노후항공기 특별관리 기준인 20년을 배나 넘었습니다. 이 가운데 화천권과 원주권 배치 헬기는 45년. 산불이 잦은 동해안권 헬기 기령은 50년 이상입니다. 지난달 경북 의성에서 산불 진화 작업 중 추락한 인제권 헬기도 30년 이상 운항한 노후 기종이었습니다.
[송치웅 / 강원도 임차헬기 조종사 : "인력, 장비 개선 이런 것들을 민항사, 소속 회사가 모든 걸 떠안아야 되거든요. 불이 나면 시도가 통합해서 운영하기 때문에 그런 차원에서 국가가 좀 보전을 해주면 훨씬 효율성 있는 또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6일 대구에서는 또 다시 산불 진화 중이던 임차 헬기가 추락해 70대 조종사가 숨졌습니다. 기령 44년의 오래 된 헬기였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임차 헬기가 추락한 지 11일만에 같은 사고가 반복된 겁니다. 산불 대응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인명피해를 막기위해서라도 임차 헬기에 대한 국가적 지원책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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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 부채질하는 재난: 환경부는 약자 비명 듣고 있나요? (더스쿠프, 최아름 기자, 2025.04.08)
더스쿠프 같이탐구생활
붉은점 13편 산불과 불평등
더 늘어나진 않은 건조일수
그런데도 산불 위험은 커져
기후위기가 끌어올린 위험
탄소배출 줄일 수밖에 없어
산불로 큰 피해 본 건 시민들
시민 목소리 반영은 아직 미비
산불이 강원도와 경북에 상처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노인과 사회적 약자가 화마火魔에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산불에서 보듯, 재해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부터 덮칩니다. 지구가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금,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후정책을 짜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정부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을까요?
기후위기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약한 사람들입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뉴스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대표적일 겁니다. 하다하다 기후위기까지 불평등을 부추긴다는 건데,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세계가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점점 건조해지고 있기 때문이죠. 최근 강원도와 경북을 덮친 대형 산불은 ‘건조’의 위험함을 뼈아프게 보여주는 듯합니다.
문제는 통계가 이런 위험함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기상특보를 통해 10년 전과 지금의 상황을 확인해 보시죠. 건조를 다루는 우리나라의 기상특보는 건조주의보와 건조경보로 나뉩니다. 건조주의보는 실효 습도 35% 이하 상태가 2일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건조경보는 실효 습도 25% 이하 상태가 2일 이상 지속할 것으로 예상될 때를 말합니다.
10년 전인 2015년 1월 1일부터 2015년 3월 31일까지 강원도와 경북의 건조주의보는 강원도 471건, 경북은 523건이었습니다. 건조경보는 각각 248건, 105건이었죠. 2025년 같은 기간엔 어땠을까요? 날씨가 10년 전보다 더워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건조주의보든 건조경보든 더 늘어났을 공산이 큽니다.
과연 그럴까요? 놀랍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2025년 같은 기간 강원도와 경북에선 각각 408건, 417번의 건조주의보가 발령됐습니다. 건조경보는 180건, 73건이었죠. 지난 10년의 통계를 종합해보면, 건조주의보는 13.4%(강원도), 20.3%(경북), 건조경보는 27.4%(강원도), 30.5%(경북) 줄어든 셈입니다.
비단 건조 특보만이 아닙니다. 건조 일수 역시 2015년 120건에서 2024년 78건으로 35% 감소했습니다.[※참고: 건조 기상특보의 횟수는 지역별, 일별을 구분해 합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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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건조와 산불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걸까요? 아닙니다. 산불 위험도를 측정하는 지표는 이미 기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건 FWI(산불위험지수ㆍFire Weather Index)입니다. FWI는 0~99로 표기합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수분 함유량이 적다는 의미입니다. 20을 넘으면 산불 발생 위험이 크다고 평가합니다.
2021년 광주과학기술원(GIST)은 기후위기와 산불 간의 상관관계를 시뮬레이션한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결과를 보면,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더 오를 때(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대비)와 2.0도 오를 때 FWI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에서 2.0도로 0.5도만 상승해도 FWI는 크게 높아집니다. 일례로, 지중해 부근과 북미 서부 지역의 산불 발생 건수는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동아시아는 3~4월에 집중됐던 산불조심기간이 12~2월까지 넓어졌습니다. 이 또한 FWI가 상승한 탓입니다.
카이스트 연구팀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연구 결과도 방향성이 같습니다. 이들이 3월 31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 산불이 위험한 날은 최대 120일까지 늘어났습니다.
FWI를 기준으로 20을 넘긴 날이 최대 4개월 증가했다는 건데, 가장 큰 위험 지역은 경북이었습니다. 특히 소백산맥 인근은 FWI가 20을 초과하는 날짜가 최대 151일에 달했습니다.
산업화 이전 이 지역의 FWI 20 초과 날짜는 최소 14일이었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1.5도 이상 높아졌다는 걸 감안하면 이 연구 결과는 지구 온난화로 산불의 위험성이 얼마나 커졌는지 가늠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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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법 개정 작업은 아직도 답보 상태입니다. 2024년 8월 헌법재판소가 “현시점에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은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7개월이 훌쩍 흐른 지금까지 새로운 ‘법’도 새로운 ‘탄소감축 목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환경부는 올 7월까지 기본 얼개를 갖추고, 9월에는 탄소감축계획을 유엔에 제출하겠다는 로드맵을 세워놨습니다. 하지만 진짜 다양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공론화 과정은 없습니다.
환경부가 ‘산불 취약지역에 사는 진짜 주민’이나 ‘기후변화로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아직 없습니다. 그래놓고 무엇을 근거로 새로운 탄소감축계획을 만들겠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정부도 이젠 약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산불로 진짜 취약한 대상이 누구인지 밝혀졌으니까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6813
까맣게 탄 산하, 대형 산불 대책 재점검 시급 (중앙일보, 남성현 국민대 석좌교수·전 산림청장, 2025.04.08 00:20)
경북과 경남의 산하를 까맣게 태운 이번 영남 지역의 대규모 산불은 필자도 처음 경험하는 극한의 산불이다. 기후 위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대형 산불 재난이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이번 산불을 교훈 삼아 기존 대책을 전면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산불 방지 시스템은 크게 예방·진화·복구의 3단계로 구성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방 단계다. 봄철은 산불의 주요 원인인 바람·습도·온도가 가장 취약한 시기다. 한국의 산불은 대부분 사람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인위적인 사회재난이자 자연재해다.
한국의 산림은 지난 20년간 나무의 양이 3배로 늘어났다. 탈 연료가 그만큼 급증했다는 얘기다. 산불의 주원인인 입산자의 실화, 논·밭두렁과 영농 부산물 태우기, 쓰레기 소각 등이 매년 관행처럼 벌어진다. 자연적인 요인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이런 인위적 요인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협업을 통해 영농 부산물은 소각 대신 파쇄로 바꿔가야 한다.
산불 여부를 감시 판독하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정보통신기술(ICT) 플랫폼, 산악기상 관측망, 산불 상황 관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원인별로 예방 대책을 철저히 추진해야 한다. 솎아베기와 가지치기 등 숲 가꾸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해 산불로 번지는 연료를 줄여야 한다.
산불 진화 단계에서는 대형 산불로 번지지 않도록 골든타임인 50분 이내에 초동 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중과 지상에서 산불과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장비·인력·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산불 진화에 투입할 수 있는 헬기는 민·관·군 합해 200여대이지만, 주로 500~3000L다. 헬기 보유 대수보다 대형 헬기가 산불 진화에는 더 중요하다.
산림청 보유 헬기는 물 투하량이 8000L짜리가 7대이고, 3000L짜리가 29대다. 담수량 1만L짜리 대형 헬기를 10대 이상 도입해야 한다. 대형 헬기는 대당 약 550억원이지만, 국가안보와 사회재난 대응 차원에서 예산을 과감하게 투입해야 한다.
지상 진화를 위해서는 고성능 산불 진화 차량을 더 갖춰야 한다. 산림청이 29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대당 약 8억원의 고가다. 이를 적어도 100대 이상 확보해야 한다. 전국에 1만여명인 산불 전문 진화 인력도 대폭 늘려야 한다. 지상 진화 인력은 산림청 소속 공중 진화대와 산불재난 특수진화대가 있고, 지자체 소속으로 산불예방 전문 진화대가 있지만 대부분 산불 조심 기간에만 고용하는 임시직이다.
내년 2월부터 시행되는 산림재난방지법에 따라 산불·산사태·산림병해충 등 3대 산림 재난을 통합해 ‘산림재난대응단’으로 운영한다. 인력을 확충하고, 일정 기간만 고용하는 형태가 아니라 연중 고용해야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산불 지상 진화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산림 도로인 임도(林道)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산불 진화 임도의 필요성은 이미 입증됐다. 한국의 임도는 산림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인데, 이를 독일·일본 수준으로 확충해 가야 한다. 폭 5m 이상의 산불 진화 임도는 산불 취약 지역에서 먼저 건설해야 한다.
인명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긴급 대피 체계를 확 바꿔야 한다. 긴급재난 문자 메시지는 농·산촌 지역의 노약자 등에겐 실효성이 떨어진다. 마을마다 ‘스마트 방송 시스템’을 도입하고, 집안에서도 긴급 대피 방송을 들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지자체 공무원과 마을 이장 등을 통해 적어도 산불이 퍼지기 2시간 전에는 집집이 찾아가 긴급 대피를 안내해야 한다.
산불 복구 단계에는 산림뿐 아니라 인명·재산 피해 복구와 지원 대책이 포함된다. 산불 피해 지역 산림의 경우는 전문가와 지자체, 지역 주민 의견을 수렴해 2차 피해가 없도록 응급 복구와 항구 복구로 구분해 추진한다.
이제 산불 대책은 국가 안보, 국가 재난·안전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수립된 대책이 제대로 실행되려면 관련 예산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추경 예산과 예비비 등을 통해 시급한 분야부터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대책도 공염불이다. 재정 당국과 정치권의 신속한 후속 조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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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그 후]④산불 진화 필수 '임도'vs"불 난 데 부채질" (헬로tv뉴스, 정승환 기자, 2025.04.08 17:30)
[앵커] 산불 대응 체계 점검 연속보도 이어갑니다. 10일간 계속된 경남 산청 산불은 임도가 없어 초기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처럼 최근 대형 산불이 잇따르면서 임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데요.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임도 개설이 산사태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산불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승환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지난달 경남 산청과 하동 지역을 덮친 대형 산불. 축구장 2천600개에 달하는 면적을 불태우고, 열흘 만에 꺼졌습니다. 산불 현장에 접근하기 위한 임도가 없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은 겁니다.
임도는 산불 발생 시 진화차와 진화 인력이 빠르게 진입하기 위한 진입로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방화선 역할을 해 산불 확산을 방지한다는 게 산림 당국의 설명입니다.
[노용석 / 춘천국유림관리소장 : "최근 자료를 보면 수배, 많은 경우는 한 10배 정도까지 진화 효과가 있는 걸로 드러나고 있거든요. 실제로 산불이 일어난 곳에 임도가 있으면 더 쉽게 접근해서 불을 끌 수 있기 때문에 (진화 속도에) 차이가 크게 나고 있습니다.]
국내 산림면적은 628만 6천㏊. 임도 거리는 2만 5천847㎞입니다. 1헥타르당 임도 밀도는 4.1m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입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 1㏊에 24.1m로, 우리나라의 6배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산림청과 지자체 모두 임도 개설에 적극적입니다. 산불 대응력을 키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산림 경영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박승기 / 춘천시 산림조성팀장 : "산림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임도의 개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 최근 공사가 완료된 도로 폭 약 3m가량의 임도입니다. 이곳은 원래 도로가 없어 차량 진입이 불가능했던 곳인데요. 최근 임도 개설이 완료되면서 산 중턱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해졌습니다."]
하지만 임도의 역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임도가 산사태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바람길 역할을 해 오히려 산불을 키울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차량 접근이 쉬운 도로에서도 피해가 많았던 만큼 임도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3년 강릉 경포 산불 당시 현장에는 도로와 임도가 곳곳에 나 있었지만, 산불 방어에는 큰 효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홍석환 /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 "강릉 산불 지역은 대부분 포장도로입니다. 도로 밀도는 168m/㏊가 됩니다. 도로가 산불을 제어할 수 있다, 이런 얘기는 강릉 산불을 바라본다고 그러면 전혀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고 볼 수가 있겠죠."]
따라서 임도 보다는 산림 구조를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등 침엽수보다는 활엽수를 늘려야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홍석환 /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 "소나무림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빠르게 주변으로 불을 확산시키는데 반대로 활엽수림은 굉장히 서서히 바닥에서 천천히 타들어 가기 때문에 그렇게 피해가 커지지 않거든요."]
하지만 활엽수 역시 낙엽층이 물 흡수를 막고, 불쏘시개 역할을 해 진화를 방해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산불로 인한 피해는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 반복되는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정밀한 연구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해 보입니다.
https://www.news1.kr/local/busan-gyeongnam/5748031
경남 공노조 "공무원 산불 진화 전문가 아냐…강제 동원 멈춰야" (경남=뉴스1, 박민석 기자, 2025.04.09 오후 03:35)
산불 진화 업무 소방청 이관, 산청 산불 사망 사고 수사 촉구
지난달 경남 산청 산불에 투입된 창녕군 공무원과 산불 진화대원 4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가운데 공무원 노조가 산불 진화 업무의 소방청 이관과 진화 작업에 공무원 동원 중단을 요구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본부와 창녕군공무원노동조합은 9일 경남도청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불 진화에 지방직 공무원을 강제 동원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지난달 31일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 사고 당시 현장은 강풍과 역풍으로 불길이 순식간에 확산한 위험 지역이었다"며 "그럼에도 공무원과 산불 진화대원들을 무리하게 투입해 안타까운 결과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이어 "평상시 지방직 공무원은 행정업무를 담당하고, 산림청이나 소방청처럼 체력 훈련을 받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산림청이 제시한 일반 장비만을 착용한 채 취약한 조건에서 화마에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방직 공무원은 평소 산불 감시와 같은 예방 활동을 주 업무로 하고 산불 발생 시에는 잔불 감시와 뒷불 정리 등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산림청과 경남도는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산불 진화 업무를 소방청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정석 창녕군 공무원노조위원장은 "산불 현장에 투입된 창녕군 공무원과 진화대원들은 생소한 지역의 지리를 잘 모르는 채로 투입됐다"며 "산불과 같은 재난은 전문성과 장비, 훈련을 갖춘 인력들이 수행해야 하는데 공무원은 행정 전문가이지 산불 진압 전문가가 아니다"고 호소했다.
강수동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장은 "산청 산불 사망사고 당시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한 산림청과 경남도가 안전·보건상 유해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조치를 취했는 지 밝혀야 한다"며 "경남경찰청과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의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22일 창녕군 공무원과 산불 진화대원 9명은 산청 산불 진화 작업에 투입됐다가 산고를 당했다. 이들은 산청 산불 현장의 산 중턱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던 중 갑자기 분 역풍으로 산불에 고립되면서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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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산불 4명 희생에 산림청·경남도 대상 철저한 조사 필요" (경남도민일보, 이동욱 기자, 2025.04.09 18:31)
공무원노조 경남본부 기자회견
“악조건 속 현장 투입 책임규명을"
지자체장 전문성 부족 등도 지적
산림청·소방청 중심 업무재편 촉구
산청군 대형 산불을 진화하다가 진화대원과 공무원 등 4명이 숨진 사고와 관련해 당시 현장을 지휘한 산림청과 경남도를 대상으로 명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창녕군공무원노동조합은 9일 오후 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불 사망사고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지난달 22일 산청 시천면 대형 산불 현장에 투입된 창녕군 소속 진화대원 3명과 공무원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재 고용노동부 창원지청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경남경찰청은 발화 원인 등을 각각 조사하고 있다.
강수동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장은 모두 발언에서 "당시 현장에는 초속 17m 바람이 불고 비산화(불똥이 날아가 번지는 불) 현상도 있었다. 구곡산 해발 400m 지점 경사도 35~40도였다"며 "이 정도면 산불은 4배 이상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산불 온도는 1200도 이상이다. 산불진화기관 임무·역할 규정 중 경사가 급한 곳에서는 진화하면 안 된다고 언급돼 있음에도 대원들이 투입됐다"고 말했다.
이어 강 본부장은 "오후 1시 48분 구조 요청과 위치 전송, 3시 15분 4명 연락 두절이 있었는데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산불 현장을 실질적으로 지배·관리했던 기관은 산림청과 경남도였다. 안전보건상 위해 방지 업무 조치를 제대로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그는 "산불진화기관 주관부서인 산림청은 도착 인원과 진화 장비를 점검하고 안전교육을 하게 돼 있는데, 이 부분 조사도 필요하다"며 "그래야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경남도는 도내 산불 공동 대응을 위해 광역산불전문예방진화대를 2023년 11월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시군 산불진화대원들은 타지역 지리적 여건을 전혀 모르고 투입된다는 맹점이 있다"고 꼬집었다.
또 노조는 "훈련되지 않은 지자체 공무원의 산불 진화 현장 동원을 중단해야 한다"며 "산림보호법과 규정에 따라 산불 현장 지휘를 중소형 산불은 시장·군수, 대형 산불은 도지사가 맡는데, 이들은 산불 전문가가 아니다. 기후위기로 대형 산불이 상시화하고 있어 산불 비상 업무를 산불 진화 주관기관인 산림청에 예산을 투입하고 기구를 확대해 전적으로 맡기거나 소방청으로 이관해 전문적으로 담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 본부장은 "산림청 공중진화대 104명과 특수진화대 450명은 앞으로 10배 이상 늘려 지방산림청 등에 배치해 상시로 대응하면 된다"며 "대형 헬기 확충과 진화 드론, 항공기 도입, 안전 보호장비 확충 등에 예산을 대폭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는 산불 재난 대비 연구용역 시행도 도와 산림청에 제안했다. 앞으로 전체 공무원 서명운동, 국회 토론회 등으로 산불 제도 개선에 힘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