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쉬어가며 보는 영화

이충렬 감독 <워낭소리>

새벽길 2009. 1. 5. 16:04
이 영화 봐야겠다.   
  
삶을 담아내는 깊은 울림, ‘워낭소리’ (컬쳐뉴스, 김나라 기자, 2008-12-19 오후 1:52:59)
[영화리뷰]이충렬 감독 <워낭소리>, 2008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  
워낭소리에는 삶의 모든 울림이 들어 있다. 할머니의 한숨도, 노인의 앓는 소리도, 현실 세계와의 유일한 끈인양 떠들어대는 라디오 소리도.
▲ 워낭소리에는 삶의 모든 울림이 들어 있다. 할머니의 한숨도, 노인의 앓는 소리도, 현실 세계와의 유일한 끈인양 떠들어대는 라디오 소리도.

워낭소리가 멈추고, 한순간 숙연해졌다.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 손수건이나 휴지를 꺼내려고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그 순간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라, 아무도 짜증스럽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늙은 소의 죽음 앞에서 말이다.
 
경북 봉화. 거기서도 더 들어가 마치 속세와는 단절된 듯 보이는 시골 마을에 팔순 최노인과 그의 평생지기 늙은 소가 있다. 또 할머니가 있다. 한쪽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는 최노인에게 늙은 소는 평생 그의 나머지 다리가 되어 줬다. 밭에서 논으로, 읍내로, 겨우내 필요한 장작불을 구하러 가는 길에. 삼십년을 그렇게 목에는 워낭을 달고, 달구지에 고물 라디오와 최노인을 태우고 그렇게 그림처럼. 
 
늙은 소와 최노인에게는 신의와 우정이 있다. 인간과 소와의 우정이라니. 저기 바다 건너 온 미친소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만은. 아무튼 평생을 우직하게 일꾼이 되어 준 늙은 소와 평생을 우직하게 농부의 삶을 살아온 그들 사이엔 종을 뛰어넘는 끈끈한 고리가 있다. 그것은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노인의 고집에, 길어야 생이 일년 남짓 남았음에도 고단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늙은 소의 충직함에 잘 드러난다. 또 거저 줘도 안사겠다는 우시장 사람들에게 500만원 이하엔 늙은 소를 팔지 않겠다는 노인의 꼿꼿한 자존심에 늙은 소에 대한 노인의 깊은 신뢰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노인은 생태 보호를 위해서, 아니면 유기농으로 조금 나은 수익창출을 위해서 농약을 치지 않고 매일 손수 김을 매는 것이 아니다. 그럼 왜 잘 움직이지 않는 발을 질질 끌고 매일 기다시피 밭고랑을, 논고랑을 오가는 것일까. 소가 풀을 먹어야 하니까. 시간만 되면 일하다가도 꼴을 베러 가는 노인 대신 일을 두 배나 해야 하는 할머니만 고달프다. 매일 소죽을 쑤는 것도 보통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우리도 농약을 치자고, 사료를 먹이자고, 소를 팔자고 맘에도 없는 말로 노인을 보채보지만 노인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할머니의 한숨소리엔 꼼짝 않다가도 늙은 소의 워낭소리에는 번쩍 눈에 총기마저 도니, 할머니가 가재미눈을 하고 입을 삐죽거릴 만도 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노인과 늙은 소가 감동을 준다면 할머니는 웃음 담당임에 틀림없다. 할머니가 없었다면 영화의 매력은 절반 이하로 감소했을지도 모른다.
 
워낭소리에는 그런 삶의 모든 울림이 들어 있다. 할머니의 한숨도, 노인의 앓는 소리도, 현실 세계와의 유일한 끈인양 떠들어대는 라디오 소리도. 삶을 마감하는 날까지 워낭소리를 멈추지 않던 늙은 소는 겨울을 그 없이 지낼 노인과 할머니를 위해 장작을 그렇게도 많이 져 날라 놓고 갔나 보다.    
 
노부부는 깊은 산 속 끝없이 이어진 돌계단을 오른다. 늙은 소가 좋은 곳으로 갔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침내 다다른 산사에는 종소리인 듯, 풍경소리인 듯 워낭소리가 들려온다.
 
<워낭소리>는 올 해 부산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인 피프메세나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2009년 1월 미국에서 열리는 제25회 선댄스영화제 ‘월드다큐멘터리경쟁’ 부문에 한국 다큐멘터리 최초로 공식 초청 받았다. 19일(금) 폐막하는 2008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영화를 놓친 사람들에겐 참 다행히도 오는 1월 극장에서 정식개봉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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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다큐 최고 흥행작 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한혜미 (winona3232), 2008.12.22 21:35)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의 30년 동행과 이별 이야기
 
9월이었던가. <워낭소리>를 프리뷰용 DVD로 챙겨보았다. 개봉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이 확정돼 해외세일즈용 포스터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큰 기대 없이 사전 정보도 없이 보게 된 영화는 놀랍게도 시작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옆에서 누가 살짝만 찔러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건 너무 이상한 기분이었다.
 
남녀가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통속멜로도 아니고, 고통에 겨워 통곡하지도,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이 구구절절 흘러 나오는 것도 아닌데…. 다만 팔순의 노 부부가 소 한 마리에 의지한 채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당신들의 일상을 마주한 것 뿐인데…
 
영화는 도심 속에서 나고 자란 우리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할아버지와 소의 교감을, 그들의 진한 우정을 과장 없이, 거짓없이 그대로 화면에 담았다.
 
최노인이 한 평생 농사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삼 십년지기 친구 소 한 마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치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귀가 어두운 노인은 소의 워낭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생을 마감할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노쇠한 소는 친구를 위해 마지막 힘을 기울여 겨울 땔감거리를 힘겹게 그러나 기여코 이고지고 걸었다. 
   

▲ <워낭소리> 한 장면 ⓒ (주)인디스토리  워낭소리
 
오랜 제작기간 동안 이 팔순의 부부와 마흔의 소 한 마리를 지켜보면서 얼마나 전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을까. 하지만 이충렬 감독은 자신의 기록에 어떤 설명을 위한 내레이션 조차 생략했다. 모든 것을 보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듯이 그저 따뜻한 시선을 둔 카메라를 통해 묵묵히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워낭소리>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인 '피프 메세나상'을 수상했다. 이어 한국다큐멘터리 최초로 2009 선댄스 영화제 '월드 다큐멘터리 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해외의 영화 관객들이 <워낭소리>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19일 폐막한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1차 상영 시 80% 좌석 점유율을, 2차 상영 시 완전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상 수상이 조심스럽게 점쳐졌던 <워낭소리>는 예상대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워낭소리>가 2003년과 2006년 각각 서독제 관객상을 수상한 김동원 감독의 <송환>과 정병길 감독의 <우린 액션배우다>에 이어 다큐멘터리 최고 흥행작이 되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무리는 아닌 것이다.
 
'팔순 노인과 마흔 살 소의 아름다운 30년 동행 그리고 가슴 뭉클한 이별 이야기' <워낭소리>는 기축년 소의 해인 내년 1월 15일 개봉한다. 이미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제를 통해 보았고 가슴 뭉클하다고, 쉼없이 눈물을 훔쳤다고, 온 마음을 주고 싶다고 고백한 <워낭소리>가 어쩌면 내년 한 해의 시작을 따뜻하게 지펴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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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철의 영화 만화경]다큐 영화 ‘워낭소리’ (서울, 이용철 영화평론가, 2009-01-03  13면)
노인·황소 ‘존재의 투쟁’
  
몇 년 전까지 극장에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건 낯선 일이었다. 다큐멘터리가 친근한 장르로 자리 잡게 된 건 ‘송환’, ‘영매’, ‘사이에서’, ‘비상’, ‘우리학교’ 등이 대중의 호응을 얻으면서부터다. ‘워낭소리’는 이런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되는 신작 다큐멘터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은 ‘워낭소리’는 내친 김에 최고의 독립영화제인 미국의 선댄스영화제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언뜻 보기에도 노쇠한 소가 느린 걸음으로 수레를 몬다. 수레에 탄 노인은 잠에 빠졌다. 노인은 쇠똥이 덕지덕지 붙은 소가 수레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윽고 밭에 도착한 노인이 일을 시작하면, 이번엔 소가 슬며시 눈을 감는다. 힘든 걸음의 할머니가 나타나 머리에 이고 온 새참을 내려 놓는다. 멀리서 산새가 울고, 언덕엔 진달래가 피었다. 겉모습만 보면 참 평화로운 풍경이다.
 
‘워낭소리’는 죽음을 앞둔 소와 노부부에게 남겨진 2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경상북도 봉화에 사는 노부부의 집엔 마흔 살 먹은 소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30년 동안 태우고 다녔고 논밭을 함께 일군 소의 도움으로 부부는 아홉 남매를 키웠다. 노인은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낫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소가 앞으로 1년을 못 살 거란다. 애써 웃는 노인은 수의사의 말을 안 믿는 척한다.
 
‘워낭소리’의 홍보 포인트는 소와 노인의 30년 묵은 교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거리다. 소를 절대 팔지 않겠다던 노인이 드디어 소를 우시장에 내놓은 날, 카메라는 소의 눈을 포착한다. 살집좋은 비육우 사이로 마른 몸을 드러낸 소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흐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소가 죽음에 이를 즈음, 노인이 쇠코뚜레를 풀어 주는 장면은 또 얼마나 눈물겨운가.
 
하지만 ‘워낭소리’의 진짜 감동은 쓸모없다고 판정 받은 존재의 투쟁에 있다. 곧 쓰러질 것 같은 늙은 소는 간혹 걸음을 멈추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거리들을 모두 해낸다. 이에 질세라,노인은 발가락뼈가 이탈하고 발가락이 곪아 터져도 앙상한 다리로 노동을 계속한다. 소와 노인은 자신들을 무용지물로 취급하는 타자의 시선을 결연하고 우직한 자세로 거부한다.
 
‘워낭소리’는 죽음과 소멸에 저항하는 소와 노인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목숨을 연명하는 두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다큐멘터리를 대했던 필자는 그들에게서 ‘불굴’의 주제를 읽게 됐다. ‘워낭소리’는 안일하고 나약한 삶, 노동의 가치를 빼앗긴 삶, 원칙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을 향한 근엄한 목소리이자, 죽음에 맞서 삶을 멈추지 않는 존재에게 바치는 속 깊은 헌사다. 감독 이충렬,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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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여든 농부와 마흔 소..다큐 '워낭소리'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2009-01-03 09:47)
  
소의 해 기축년 연초에 관객들을 만나지만 사실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단지 소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등장인물은 여든에 가까운 할아버지 농부와 그의 부인, 그리고 부부가 30년을 키워온 마흔살 된 늙은 소다.
 
적극적으로 대상에 개입하려는 최근 다큐멘터리의 경향과는 달리 이 영화는 애초에 관객들을 어디론가 이끌려고 하거나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거나 하는 식의 의도는 없어 보인다.
 
다큐멘터리에 흔히 나오는 내레이션도 없고 배경 음악도 많지 않으며 굴곡이 심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카메라는 그저 농촌의 늙은 농부와 그의 늙은 부인, 그리고 늙은 소를 묵묵히 쳐다볼 뿐이다. 생의 말년에 있는 이들 셋을 통해 감독의 카메라가 전하는 이야기는 바로 나이듦과 죽음, 그리고 이별이다.
 
이제 죽을 날이 머지않은 소와 오랜 동지이자 친구인 소를 떠나보내야 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할머니는 사실 서로 비슷한 처지이며 관객들 역시 나이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야기 배경은 경북 봉화의 농촌. 최 할아버지는 농기계도 농약도 이용하지 않고 옛날식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다.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의 단짝은 30년간 그를 위해 일을 해 준 나이든 소다. 소는 오랜 세월 그의 손과 발이 되어줬고 소가 일해준 덕에 아홉 형제가 공부를 마쳤으니 할아버지에게는 웬만한 사람 이상으로 소중한 존재다.
   
보통의 소들이 15년 가량을 사니 마흔줄에 접어든 이 소는 이미 수명 이상을 살았다. "길어야 1년 살 것"이라고 말하는 수의사의 말에 할아버지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안 그래"라며 웃을 뿐이다.
 
할머니는 소만 챙기고 자기는 챙기지 않는 할아버지가 원망스럽다. 소를 팔자고 소리도 쳐 보고 신세타령을 하며 구시렁거리기도 해 보지만 사실 할머니는 할아버지 건강이 걱정이다. "나 같이 고생한 사람이 없다"면서도 "영감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꺼다"며 애정 표현도 한다.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에 고비가 되는 사건은 바로 할아버지와 소의 건강이다. 의사는 혈압이 높은 할아버지에게 일을 줄일 것을 권하지만 젊어서부터 습관적으로 일을 해온 할아버지는 뼈만 남아 앙상한 다리를 일터로 옮긴다. 할아버지를 닮아 마른 데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하던 소는 결국 제자리에 서지도 못해 우리를 빠져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워낭소리'는 일반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지만 사실 독립영화계에서는 작년 한해 가장 많은 화제를 몰았던 다큐멘터리 영화다. 부산국제영화에제서는 최우수 다큐멘터리에 주어지는 피프메세나상을 탔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오는 15일 열리는 세계 독립영화의 축제 선댄스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던 이충렬 감독의 첫번째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로, 감독은 "삶의 내리막길에서 소와 아버지가 빚어낸 아름다운 교감과 눈물겨운 헌신을 그리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제목인 '워낭소리'는 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여 단 방울의 소리를 뜻한다. 15일 개봉.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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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소가 사람보다 낫지” (한겨레, 이재성 기자, 2009-01-04 오후 07:26:31)
다큐멘터리 ‘워낭소리’
 
여든 살 할아버지와 마흔 살짜리 소의 동행을 그린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는 사라져가는, 혹은 잊혀져가는 것들에 바치는 눈물겨운 헌사다. 좋은 영화가 대개 그렇듯, 생로병사의 숙명을 묵묵히 받아내는 존재들을 통해 살아 있다는 것의 무게를 새삼 느끼게 하는 영화다. 카메라는 할아버지와 소의 걸음처럼 천천히 우리 농촌의 맨살을 쓰다듬는다.
 
80살 할아버지·40살 소 ‘30년 동행’
절제된 영상으로 농촌 맨살 쓰다듬어

 

■ 할아버지와 소 최원균 할아버지와 소는 닮았다. 주름진 얼굴, 비쩍 마른 몸, 멍한 눈동자. 다리가 불편해 잘 걷지 못하는 것도 닮았고, 말이 없는 것도 닮았다. 소가 끄는 달구지는 할아버지의 유일한 자동차. 그는 사람들에게 “이 소를 30년 타고 다녔다”며 “나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낫다”고 말한다. 소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장사 치러 줘야지. 내가 상주질 할 건데”라며 웃는다.
 
■ 질투하는 할머니 감상에 빠지기 쉬웠던 다큐가 유머로 반짝거릴 수 있었던 건 이삼순 할머니 덕분이다. 할머니는 해설이 따로 없는 이 다큐의 내레이터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늘 지청구를 늘어놓는데, 심지어 소와 할아버지 사이를 질투한다.
 
“소는 부지런한 사람 잘 만나지 않았습니까? 내가 못 만났지. … 아이고 누구는 팔자 잘 타고 나서, 싱싱한 영감 만나서 농약도 치는데 …. 저 놈의 소가 죽어야 끝을 내지, 언제나 내 팔자가 피려나. 농사가 우예 되든지 맨날 소 꼴만 베고 ….” 할머니의 어록은 싱싱하다. 할아버지가 고장난 라디오를 두들기자, “라디오도 고물, 영감님도 고물”이라며 놀리는 장면은 삶의 애환이 깃든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다.
 
■ 그리고 이충렬 감독 프리랜서 방송 피디 일을 하는 이충렬(43) 감독은 “나이 먹어 돈도 못 벌고, 장가도 못 가고 떠돌아다니기만 하니까,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며 “아버지랑 의사소통 하지 못했던 먹먹한 느낌을 담아 이 시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소와 아버지와 고향의 얘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 할아버지와 소를 만난 건 2005년 3월. 전국의 우시장과 농촌을 헤맨 지 5년 만에 찾아낸 주인공이었다. 경북 봉화의 축협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내려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와 소는 어릴 적 기억 속 그림 그대로였다.” 그는 “사금파리처럼 흩어져 있던 그분들의 삶을 다시 온전한 그릇으로 만들어드린다는 심정으로 다큐를 찍었다”고 말했다.
 
■ 명품 다큐의 탄생 <워낭소리>는 드라마와 영상이 모두 뛰어난 명품 다큐다. 할아버지와 소를 시샘하는 듯하지만, 두루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할머니, 소한테 해가 될까봐 농약도 치지 않고, 사료 대신 풀을 베어다 먹이는 할아버지의 정성, 이제는 늙어 걸어다닐 힘도 없는 소가 할아버지를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습, 젊은 소가 들어와 늙은 소를 구박하는 광경 등 극적인 요소가 넘친다.
 
절제와 기다림의 미덕을 아는 감독의 우직함은 다큐의 완성도를 극대화했다. “급할 게 없는 할아버지와 소의 템포에 맞추기 위해” 들고 찍기(핸드헬드)로 급하게 다가가기보다는 오랜 시간 기다리며 ‘멀찌감치’(롱 샷) 찍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하는 데만 여섯 달, 촬영은 햇수로 3년이 걸렸다. 새와 풀벌레 소리, 워낭(소의 턱 밑에 달린 방울) 소리가 청각 이미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피아노와 대금 소리는 꼭 필요한 장면에만 사용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과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받았고, 오는 15일부터 열리는 2009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15일 개봉.
 
사진 인디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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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고향 닮은 아버지와 소 얘기 하고팠다” (서울, 강아연기자, 2009-01-10  14면)
다큐 영화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
  
소띠 해 초입,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리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15일 개봉)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의 30년 우정을 담고 있다. 반짝이는 사금파리를 모아 하나의 그릇을 빚어놓은 것 같은 이 영화 앞에서 잔잔한 감동, 훈훈한 여운 등의 수사는 차라리 무색하다. “(영감은) 소에게는 잘해 주면서 내게는 잘해 준 게 없어.”라는 할머니의 지청구에 빙긋 웃다가도, 소가 숨을 거두자 “우리 가거든 같이 가면 될 건데….” 하는 장면에선 번지는 눈물을 훔치게 된다. 극장 밖을 나설 때는 워낭(소의 귀에서 턱으로 늘여 단 방울)의 정갈한 울림이 마냥 귓가를 맴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15년 동안 주로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이충렬(43) 감독. 막 산고를 끝낸 뒤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그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워낭소리’는 15일부터 열리는 미국 선댄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 세계인들과도 만난다.
 
→어떻게 기획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자식으로서 좋은 모습 보여주지 못해 부모님에 대한 자괴감이 컸다. 돈도 못 벌고 결혼도 못했으니…. IMF사태가 터지면서 아버지가 화두로 많이 떠올랐는데, 나도 그런 흐름을 탄 것 같다. 나는 고향이 전남 영암인 촌놈이다. 유년의 기억 대부분이 아버지의 소 문화이고, 지금도 아버지가 농사를 짓고 계신다. 그래서 쇠락한 고향을 닮은 아버지와 그를 닮은 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상을 찾는 데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할아버지와 소를 만나게 됐나.
-방송 외주제작 PD로 지내다 2000년부터 프리랜서 독립PD 생활을 했다. 그때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마다 이장, 면사무소, 부녀회장, 축협, 농협 등에 수소문을 했다. 그러다 2005년 이른 봄 경북 봉화군 축협 관계자가 전화를 해왔다. 봉화 하눌마을에 살고 계신 최원균(81) 할아버지와 이삼순(78) 할머니 부부를 만나자마자 ‘이분들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다.
-2005년에는 촬영과 동시에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 더 주안점을 뒀다. 그해 겨울 젊은 소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7년 4월쯤 촬영을 마무리했다. 후반작업에 1년 남짓 걸렸고, 얼마 전에야 최종본을 프린트했다. 만으로 3년쯤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애초엔 방송물로 기획했다고 들었다. 어쩌다 영화가 됐나.
-편집본을 모니터하는 동안 주변에서 “방송하기 아깝다.”, “영화로 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많이 하더라. 2007년 말쯤 흥행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를 제작하기도 했던 고영재 PD를 소개받으면서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영화를 최 할아버지와 이 할머니도 보셨나.
-프라이버시 지켜드리고 싶어서 극장으로 모시지는 못했다. 대신 DVD를 보내 드렸다. 할아버지는 보시다가 다른 일을 하셨다하고, 할머니는 끝까지 보셨는데, ‘청춘을 돌려다오.’라는 노래 부분에서 자기 삶이 슬프다며 한참 우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요즘도 일하시나. 말 안 듣던 젊은 소는 이제 길들여졌나.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으시지만, 여전히 일하신다. 젊은 소도 말을 잘 듣는다.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소아버지 일을 하고, 젊어서는 소중개사 일을 해서 소 다루는 데 전문가다.
 
→소가 죽는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던데 맞나.
-아니다. 소가 죽을 때 혼자 가서 직접 지켜보면서 찍었다. 소가 자주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는데, 그 장면을 잡지 못했다는 말이 와전된 것 같다.
 
→귀 어두우신 할아버지가 소 울음소리만 들리면 고개를 돌리는 장면과 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 등에 대해 작의, 연출이라는 시선도 있더라.
-소 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신 것은 사실 그대로다. 촬영 초반에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면 일상에서 반복되는 공통분모를 알 수 있지 않나. 그것을 짧은 영상으로 편집해 넣었을 뿐이다. 소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실제 장면이다. 소와 이별을 해본 사람들은 소의 눈물을 다 봤을 것이다. 우시장에 가도 흔히 소의 눈물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인데 흐름이 극영화처럼 너무 완벽하다고 보는 의견에는 어떻게 생각하나.
-날것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게 무조건 리얼리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분들 삶의 원형질을 가지고 장난치거나 속인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표현방법의 문제이지 본질의 문제는 아니다.
 
→전체적으로 내레이션을 배제했는데 이유가 있나.
-할머니의 대사로 충분히 통하기 때문에 넣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레이션은 사족이라고 하더라.
 
→소가 진짜 마흔 살까지 살았나. 보통 소의 생물학적인 수명은 15세밖에 안 된다던데 신기하다.
-25~30세 소도 많이 있다. 축협 기록을 보면 최장수 소가 38세로 돼 있다. 할머니 말씀이 이 소도 장수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미국소 관련 시위 장면도 잠깐 등장하는데, 선댄스 관객들이 그 장면을 잘 받아들일지 염려가 된다.
-2004년 김동원 감독이 ‘송환’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표현의 자유상’을 수상할 때, 인사말에서 부시 정권 비판을 했는데 기립박수를 받았다더라. 걱정하지 않는다. 물론 문화적 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다. 남편이 상전대접을 받고, 부모님이 자식들과 겸상을 하지 않는 등 시골에 남아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 남존여비사상 등이 그렇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감수성은 우리와 다르지 않을 듯하다.
 
→영화를 돌아봤을 때 아쉬운 점은 없나.
-우직한 면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아버지를 곧 소’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소는 암소다. 그래서 소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 같은 노래 ‘봄날은 간다’를 잠든 노인을 태우고 소가 걸어가는 장면에서 썼는데, 저작권과 비용 문제 때문에 빼야 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시를 쓰는 시인처럼 ‘느끼는’ 논픽션을 하고 싶다. 관객과 공감할 수 있다면 극영화도 상관없다. 소재나 장르는 따지지 않는다. 일상과 내면을 다루는 작품을 하고 싶다.